제9전역-2E  매와 개Ⅱ (1)

......

하벨 그래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래...... 재수 없게 뒤져버린 리코 얘기부터 먼저 시작할까?

크루거 ............
리코의 일은 저도 매우 유감입니다.

하벨 아니지, 아니야. 별로 유감일 것도 없어. 이건 운명이야.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운명이란 말이야. 그저 그 녀석이 재수가 없어서 뒤로 자빠졌는데도 코가 깨졌을 뿐이야.
방금 분명 카터가 뭔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엘리사"라고 했던가?

크루거 ......그건 지금까지 줄곧 저희가 싸워왔던, 철혈을 지휘하는 AI입니다.

하벨 엘리사인가. 정말이지 좋은 이름이구만. 그런데 그게 정말로 그렇게나 중요한 건가? 군이 이렇게나 큰 소동을 벌여 처리해야 할 만큼 엘리사가 중요하다는 건가?

크루거 이건 인형 기술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군은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인형 기술을 비축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벨 하하하핫! 어이쿠야...... 크루거 씨......
자네는 정말로 카터가 말한 기술의 미래 같은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는 겐가? 나 역시도 인형을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세. 그런데도 난 자아 연산을 하는 AI가 우리 회사의 직원들보다 얼마나 더 똑똑한지 잘 모르겠던걸.
그러니까 말이야, 그저 단순한 인형일 뿐이란 말일세...... 보병의 보조 장비로 도입된 게 수많은 전쟁을 겪은 그 늙은 여우들의 성에 차기나 하겠나?

크루거 그 말씀은.......

하벨 철혈이 무슨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지? 그리고 엘리사는 어떤 물건을 기초로 설계되었지?

크루거 오가스......? 지금 그 말씀은 카터 장군님께서 오가스 시스템을 가지고 싶어 하신단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건 80년대에 이미 버려졌던 물건 아니었습니까?

하벨 바로 그 점일세. 우리가 80년대의 그 흐리멍덩한 놈들한테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게 천만다행이군 그래.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쯤 시베리아 벌판에서 감자나 캐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이 물건이 어디 멀쩡한 곳에서 발굴해온 건 아니라는 걸세. 그곳은...... 오래전부터 모두가 매우 주목해왔었던 곳이야.

크루거 ......

하벨 내 말은, 애초부터 이건 카터의 의지로 벌인 일이 아니라는 말일세.
카터는 말단 중에 말단일 뿐이고, 그 뒤에 있는 사람은...... 후후후......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국가를 초월하는 연맹이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가고 있네.
하지만 일부 보수 세력들이 항상 이 시대를 앞서간 전례 없는 위업을 막으려고 하고 있네. 그리고 승리의 여신은 언제나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의 손을 들어주셨고 말이야.

............하벨이 크루거에게 다가갔다.

하벨 내가 여기에 온 김에, 당신에게 충고를 하나 해주도록 하지. 절대 태풍 속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지 마시게나.
태풍은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파괴할 걸세. 지나가던 작은 새 한 마리가 빨려 들어가든 말든 태풍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게야.

............하벨은 몸을 일으켜 떠날 준비를 했다.

하벨 자네 같은 큰 손을 잃게 된다면 나중에 있을 주주 회의 때 보고하기 힘들어지니까 말일세. 어찌 됐든 난 아직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노후도 편하게 보내고 싶다네.

크루거 ......

............그때, 문이 열렸다.

카터 오래 기다리게 했군, 이제 해겨...... 하벨!

하벨 (크루거의 눈을 응시하며) 5분 걸릴 거라고 말했지?

카터 역시 네 녀석이 한 짓이었군! 이딴 비열한 짓을 할만한 녀석은 네 녀석 외에는 없지!
하벨! 자네는 어떻게 이런 장소에서까지 내 얼굴을 팔리게 하는 짓거리를 하는 건가!

하벨 어이구, 카터 장군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군인으로서, 장군님께서는 발언에 좀 더 신중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뎁쇼.

카터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해. 지금 당장 네 고물 지팡이로 남은 다리 한 짝마저 부러뜨려버리기 전에 말이야!

하벨 예이, 예이. 당신께서는 장군님이시고,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에는 무조건 따라야 합죠. 그럼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하벨이 크루거에게 다가갔다.

하벨 난 그저 사람을 보내 응접용 자동차 바퀴에서 공기를 전부 빼놨을 뿐이야. 아, 자네 것은 빼고 말이지. 흐흐흐흐......

............하벨은 몸을 일으켜 떠날 준비를 했다.

하벨 아, 그리고 거기에 있는 지휘관. 내가 자넬 지켜보고 있겠네. 곧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네.
그럼 모두, 나중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도록 하세.

제9전역-2E  매와 개Ⅱ (2)

............2시간 후.

M4 SOPMOD II RO......?

RO635 일어났어?

M4 SOPMOD II 얼마나 지난 거야?

RO635 대충...... 2시간 정도......?

M4 SOPMOD II 그렇게나 오래 잤나...... 지금 뭐 하고 있어?

RO635 M16의 상자에 자그마한 발신기가 달려 있잖아?
그 신호를 증폭시킬 수 있을까 해서. 지휘관님께서 분명히 우리를 찾고 있을 테니, 후퇴하기 위해서 연락 수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M4 SOPMOD II 정말?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RO635 뭐, 체력은 너보다 부족하지만, 다른 건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고.
응, 다 됐어. 이제 천천히 충전되기만을 기다리면 될걸?

M4 SOPMOD II 충전도 필요해?

RO635 강력한 신호를 보내려면 어느 정도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내 예비용 에너지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야. 게다가 예비용으로 충전하는 거니까 내가 가동을 중지하게 되는 일도 없지.

M4 SOPMOD II 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AR팀은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이 처음이라구.

RO635 하하하, 그거 정말로 영광인걸.
아, 맞다. 나한테 AR팀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어? 충전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말이야.

M4 SOPMOD II 어......
옛날 이야기... 잠깐만...

M4 SOPMOD II 아! 그래!
AR팀이 첫 훈련을 했을 때가 기억났어! 거의 재난이나 마찬가지였어!

M4 SOPMOD II .....그 훈련이 대략 5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말이야.
그중에 2시간 정도를 M4A1이 자기가 내린 명령을 고치는 데에 낭비했지.
그 2시간 동안 우리가 또 방을 잘못 찾아가는 바람에 말이야, 차가운 물에 20분이나 들어가 있거나, 다른 표적기를 쐈다거나, 때마침 울린 M4의 시계에 놀라서 3개나 부숴 먹기도 했었어.

RO635 우와............ 완전 의외인걸. 평범한 인형이 리더였다고 해도 훈련에서 그 정도로 실수하지는 않을 텐데......

M4 SOPMOD II 아마 신형 지휘 인형이라서 그랬었나 봐. 너도 알다시피 원래 우리는 엘리트 부대로 들어온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막상 들어와 보니 리더가 못 미더운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리고 AR15는...... 너도 걔가 결과에 엄청 집착하는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지? 나중에는 AR15의 얼굴에서 짜증이란 단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철철 넘쳐흘렀다니까.
M4가 그때 엄청 무서워해서, M16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었는데 말야, 아, 그때는 M4가 M16이랑만 얘기할 수 있었어.
그때 M16이 M4에게 AR15를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러다 더 크고 더 많은 실수를 저질러서 더 많은 동료에게 미움을 살 거라고 말해줬어.
그 말을 들은 M4가 돌연 조용해지더니, M16에게 안 되겠다고,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구.
그러더니 AR15한테 달려가서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정말로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거야. 결국, AR15가 한 눈으로 흘겨보더니, "정말로 M16이 말하는 건 잘 듣는구나" 라고 말하고선 휙 하고 가버렸어.
그 때, M4은 엄청 겁먹고 M16한테 또 해명을 하려고 뒤에 M16이 있는지도 모르고 몸을 냅다 돌렸단 말이야? 결국 두 사람이 쿵 하고 엄청 세게 부딪혔단 말이지.

M4 SOPMOD II 설상가상으로 M4의 개머리판이 M16의 배를 때렸다는 거야!

RO635 아......그건 좀 많이 아팠겠는걸.

M4 SOPMOD II 그렇겠지, M16이 그런 표정 지은 건 아무도 본 적 없을걸?
그러더니 M16이 이를 꽉 물고서는 "봐봐, 넌 지금 나한테 더 큰 실수를 저질렀잖아."라고 가까스로 말했어.

RO635 하하하, 그래서 그때 작전은 끝낼 수 있었어?

M4 SOPMOD II 가까스로 어떻게든 끝낼 수 있었어. 단지 마지막에 조금......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잘 들어봐!

RO635 무슨 일이 있었길래?

M4 SOPMOD II M4가 엄청나게 놀랄만한 행동을 한 거야! 그것 때문에 전부 다 울었다니까!

RO635 전부 다? 무슨 감동 받을 일이라도 한 거야?

M4 SOPMOD II 그게 말이야...... M4가 최루탄 하나를 던졌어.
우리가 마지막 목표는 완전히 부쉈어야 했는데, M4가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그만......
우리가 동시에 사격해야 할 때 그만 그걸 실수로 던져버리고 만 거야. 게다가 각도 계산까지 잘못하는 바람에...... 결국 우리한테 되돌아왔단 말이지.

RO635 잠깐만...... 인형이라면 그런 계산은 틀릴 수 없을 텐데.

M4 SOPMOD II 그래서 우리 전부 망했었지. 전부 다 최루 가스 안에서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AR15가 눈물을 흘리면서 M4를 때리러 갔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때리러 갔어......
근데 걔도 앞이 잘 안보이니까 계속 주먹질만 하면서 "M4! 이 멍청한 년이!"라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단 말이야.
"제기랄! 이 구제 불능에 대가리에는 똥만 차 있는 답도 없는 년! 내가 네 녀석의 멱살을 잡고 친히 마인드맵을 물리적으로 소독해주도록 해줄 테니까 말이야! 나한테 잡히기만 해 봐! 나한테 잡히기만 해보라고!!"
그래서 M16이 "너무 그렇게 화내지는 마, AR15. 최소한 우리는 목표를 처리했고, 게다가 M4의 옷에는 애초에 옷깃이 없어. 넌 인간 여자들이 싸우는 것처럼 머리채를 쥐어 잡아 뜯을 수밖에 없단 말이야."라고 말해줬어.

RO635 아하하핫, 나도 이전에 있던 소대에서 여러 번 봤었어. 식량 한 상자나 식수 두 상자를 가지고......
그럼 M16도 운 거야?

M4 SOPMOD II 당연하지. 사실 그렇게 자세하게까지 보진 못했는데, 아마 M16이 그렇게 심하게 운 건 그때가 유일할 거야.
그도 그럴 게 그때 나도 울면서 웃고 있었거든...... 그래, 엄청나게 웃기지 않아?
다들 훈련하기 전에는 그렇게나 진지했었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다 같이 시원하게 울어 재꼈으니까 말이야. 난 그제야 걔들이 나랑 똑같다는 걸 느꼈어.

RO635 그럼 M4는? 울면서 뭔가를 했었어?

M4 SOPMOD II 아니! 아무것도 못 했어!
걔는 진짜로 울음을 터뜨린 데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어대면서 끊임없이 "전부, 전부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무슨 괴롭힘 당한 어린애처럼 우는 건 영화에서 말고 처음 봤다니까.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뭐, 결국 우리 리더가 그렇게 엉망진창인 녀석이란 걸 확인하고 나니까 정말로 내가 다 부끄럽더라구. 진짜 완전 개 쪽팔렸었다니까!! 푸하하하하! 진짜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명장면이었는데 말이야!

M4 SOPMOD II 하......
아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날들이겠지만......

RO635 SOPII......
희망은 아직 있어, M16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AR15도...... 아직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잖아?
우리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반드시 무슨 방도가 생길 테니까.

M4 SOPMOD II 응...... RO, 넌 어째서 우리에게 감정 모듈이 설치됐다고 생각해?

RO635 글쎄......

M4 SOPMOD II 예전에 한 번 M16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 M16은 그게 우리가 단순히 살육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고 했어.
우리는 감정을 가졌어. 그러니 저런 아무런 감정도 없는 군용 인형들과는 달라......
하지만 감정은 우리의 약점이라고, 감정이 있기에 결함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네 생각은 어때? 인형이 감정을 지니는 게...... 결함품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RO635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감정 모듈은 인간들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거야. 그 누구도 자신의 상품에 일부러 결함품이라는 딱지를 달고 싶어 하지는 않잖아?
그러니......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

M4 SOPMOD II 이러는 편이 재미있어서일까? 그들은 그다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닐까?

RO635 후후후, 만약 정말로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야, 우리는 자유의 몸인 거네. 그치?
목적도 없고, 질서도 없지. 마카로프가 어느 날 야간 전투에서 돌아오더니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

M4 SOPMOD II 이야...... RO, 그거...... 흥미롭게 들리는걸.
최소한 난 감정 모듈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아. 감정 모듈이 있기에 AR15와 M16을 기억할 수 있고, 다시 만나기 위해 힘낼 수 있는걸.

RO635 맞아......
다만...... 지금 환경에서 감정은 아무 소용 없어, 지금은 우리가 살아남아야 할 때야.

RO635 반드시...... 살아남아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