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게임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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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시간을 돌려서.
한편, 테라 컴퓨터 유적.
신사 숙녀 여러분, 두 눈 크게 뜨고 보시라! 인류 문명의 마지막 유산! 최후의 기적!
테라—— 컴퓨터——!!!
...의 유적. 됐으니까 그만해. 나도 그 우렁찬 목소리에 깨어난 거란 말이야.
따라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까.
하루도 안 돼서 다시 오게 된 소감은 어때, 꼬맹아?
모르겠어... 오늘 별의별 엄청난 일들을 잔뜩 겪었지만, 여기가 가장 그리운 느낌이야.
기운이 없어 보이네.
막 기억을 되찾은 참이니까 그렇지! 아직도 마인드맵에서 어느 게 소중한 기억이고 어느 게 널 만나고 일어난 재수 없는 일인지 분류 중이라고.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모양이구나?
정말 눈치 하난 끝내주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고. 파트너를 철혈의 잔해 무더기 속에 장장 3년이나 버려뒀단 말이야.
분명 더 좋은 수가 있었을 텐데... 내가 더 유능했다면...
꼬맹이 넌 충분히 잘 해냈어. 내가 했던 것들 중 제일 끝내주는 일보다 훨씬 끝내줘.
아니야, 이건 다 IDW 덕분이야...
다나, 왜 모래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잠깐 정리해보자...
테라 컴퓨터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엘리사는 그 계획을 실행하려 했지? 그리고 IDW는 그걸 막기 위해 스스로 엘리사 대신 컴퓨터의 메인 AI가 되었고.
다나는 Super-Shorty를 도와 철혈 쓰레기를 치웠다. Super-Shorty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맨홀 뚜껑이 열리고 두 사람은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테라 컴퓨터는 IDW의 연산을 따라 전혀 다른 세계 멸망 계획을 실행했겠지?
그래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방법이 철혈로 싹 쓸어버리는 거에서 세상을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는 걸로 변경된 거고.
...그러게, 왜 하필이면 모래지?
고양이라서.
고양이?
IDW는 설계 단계서부터 고양이의 특징이 넣어졌어.
그래서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거야. 성격도 좀 시끄러운 고양이 품종을 참고했겠지.
아마 I.O.P.가 동물 귀를 좋아하는 고객을 위해... 친구 대용 같은 제품으로 설계한 거라고 생각해.
고양이라... 질이 좋아하겠네. 근데 고양이랑 모래가 무슨 상――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건 그냥 모래가 아니라...
그래, 그냥 모래가 아니야.
...고양이용 모래지.
...고양이에게 있어 똥을 치우기에 최적인 거구만.
이거야 원... 정말 기묘하단 말밖에 안 나오네...
풉, 너도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는구나?
Super-Shorty와 다나는 전선으로 이루어진 동굴을 통과했다.
IDW의 연산 능력은 영 꽝이라서, 계획의 실행 속도도 덩달아 크게 떨어졌어.
그래서 테라 컴퓨터의 세계 멸망 계획은 아직도 완료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는 거지.
어... 그 말은 즉, 조금이라도 더 똑똑한 고양이 인형이 들어갔다면 우린 하룻밤 사이에 수 조 톤이 넘는 모래에 파묻혀 버렸을 수도 있다는 소리네?
하하... 맞아. 바보 덕분에 살아남은 거야.
꼬맹아, 너와 IDW는 최선을 다했잖아. 원흉은 그 안나라는 녀석이지.
녀석이 알마를 잡아가지만 않았어도, 이 사태는 3년 전에 해결됐을지도 몰라. 그건 네가 어쩔 수 없는 거야.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안나를 이길 수는 있을까? 말을 들어 보니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벌써 겁먹었어? 알마가 말하길 원래 신경질적인 성격이라며?
누, 누가 겁먹었다는 거야?!
난 제리코처럼 이성적이지도 않고, IDW처럼 활발하지도 않아. 내 성격은... 엉망이야.
그리폰 시티에서 지낼 때도 난 항상 존재감이 없는 꼬맹이었어. 그래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그런 인상을 없애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환영받고 싶었어.
대화를 계속하며, Super-Shorty와 다나는 이번엔 좁은 수송관 안을 기어갔다.
3년 전 알마가 내게 이 임무를 맡겼을 땐, 난 진심으로 기뻤어. 드디어 모두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 임무 파트너가 IDW란 걸 알았을 때...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몸집이 작단 이유로 선택받았다는 걸 깨달았지. 하필이면 내 콤플렉스가 내가 선택받은 이유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성질을 냈지. IDW에게도, 너 따윈 방해만 될 뿐이다, 시끄럽다면서 듣기 싫은 말을 잔뜩 했고.
하지만 그건 다 내가 나를 욕하는 말이었어. 나 자신에 대한 증오를 애꿎은 IDW에게 퍼부은 거였어.
Super-Shorty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왜 날 미워하기는커녕, 마지막 순간까지 웃으면서 내게 작별 인사를 했을까?
잘해 주지도 못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리기까지 하다니, 난 정말 구제불능인 쓰레기야...
야, 꼬맹이.
정말로 네가 파트너한테 상처도 입히고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빚을 진 상대는 걔지, 너 자신이 아니잖아. 너를 쓰레기라 욕할 자격이 있는 것도 걔지, 네가 스스로 탓해 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난... 그저...
넌 그저 네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스스로를 나무라는 거야. 그래가지곤 그 녀석에서 더 멀어지기만 할걸? 녀석이 진정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가 무서워서 눈을 돌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할 일은, 용기를 내서 녀석과 마주하는 거야. 정말로 널 쓰레기라 생각하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너 멋대로 정하고 자책하지 말고, 상대에게도 기회를 줘. 알았어?
하지만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IDW의 마인드맵이 테라 컴퓨터의 연산량을 버텨낼 수나 있었을지...
게다가 벌써 3년이나 지났는걸...
지금 그걸 확인하러 가고 있잖아.
IDW 녀석이 널 보면 껴안든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든 하겠지. 그러고 난 다음 함께 세상을 구하자고.
하, 세계의 종말엔 관심 없다면서?
확실히, 그냥 내 방식대로 살고 싶을 뿐이야. 모래비든 철혈이든, 지금 상황에 딱히 관심은 없어.
나한테 정장을 입고 물가나 소비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거트 펀치나 먹으라지.
스파이시 치킨이랑 전등이 없었으면 난 진작에 속세를 버리고 떠났을 거야.
그런데, 이건 세상을 구하는 일이잖아? 이렇게 끝내주는 일을 놓칠 수야 없지!
세상을 구하는 일이 그렇게 쉽진 않을 것 같지만... 뭐, 나도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어서 테라 컴퓨터를 찾자.
그건 그렇고, 참 대단한 곳에 테라 컴퓨터를 숨겨놨구나. 지구가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핵까지 와보겠어.
여긴 어떤 전파도 닿지 않고 중력 엘리베이터로도 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안나라 해도 찾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좀 복잡하네. 길이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혀.
그래도... 거의 다 온 거 같네!
그걸 어떻——우왓?!
다나가 Super-Shorty의 머리를 잡아 확 숙이는 그 순간, 광선 한 줄기가 스쳤다.
여기에 철혈이 있으니까!
빨리 엄폐물을 찾아! 테라 컴퓨터의 호위 유닛이야!
너무 빨리 들켰어! 우리 둘만으론 돌파 못해!
정말 성가시게 됐구만. 어디...
으음... 안 되겠다. 역시 나라도 저걸 다 해치우는 건 무리겠지?
아니,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어?!
아 진짜, 녀석들은 왜 이리 늦어?
제리코! 10분 안에 안 오면 그랜드슬램 때보다 몇 배는 더 끝내주는 내 활약을 못 보고 놓칠 거다!
타탕!
그딴 거 알까보냐. 방송에서 그걸 1년 내내 틀어대서 지겨워 미치는 줄 알았는데.
다나, 이번엔 내게 빚진 거다.
난 몇 번이나 널 구해줬는지 안 따지는데?
많아도 서너 번이겠지.
그런데... 제리코라고? 그 화이트 나이트의 발키리 군단 소속 전설의 영웅 잭?!
다나의 부하로군. 기억이 돌아왔다고 들었다. 축하하지.
어... 잠깐, 왜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 거야...?
알마가 수복해줬거든. 그 해커와 16Lab의 쾌속 수복 기술에 감사할 따름이야.
나는? 알마한테 연락한 건 난데?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잭, 슈트는 안 입는 거야? 그리고 변신 히어로 군단은 어디 있어?!
아니, 난 잭이 아니야.
맞잖아! 목소리가 딱 잭인데 뭘!
그건 나중에 따지도록 하지. 다나, 일단 나를 계속 따르겠다는 부하들과 함께 왔다. 지금 움직이면 되는 건가?
그런 것치곤 꽤 많이도 왔는걸?
너처럼 말을 도통 들어먹질 않는 녀석은 소수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난 총은 별로 쓰기 싫다니까.
그럼 거기서 그러고 있어. 지금부터는 우리가 활약할 차례니까.
...철혈의 수가 꽤 많군. 어쨌든 다 해치우면 되는 거지?
왜, 철혈이 불쌍해졌어?
몇 년 동안이나 철혈을 추적했고, 아까는 그 망할 아키텍트의 속임수에 당했다. 덕분에 지금은 철혈놈들을 남김없이 싹 쓸어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뭐가 불쌍하겠어?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어. 여긴 지형이 협소한데 우리 병력도 많지 않아.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 없어! 빨리 테라 컴퓨터까지 가서 IDW에게 방어 시스템을 정지하라고 해야 해!
그럼 빨랑빨랑 움직이자고. 제리코, 엄호 부탁해!
너무 빨리 가지는 마. 엄호 가능한 범위도 얼마 안 돼.
노력해볼게. 가자, 꼬맹아! 몸 좀 풀어보실까!
흥, 나도 근질거리던 참이야! 지금은 뭐라도 해치워야 기분이 풀리겠어!
하핫, 화풀이 상대를 제대로 찾았네!
좋았어, 여기를 정리하는 대로 테라 컴퓨터로 직행이다!
제리코와 화이트 나이트의 엄호를 받으며, 다나와 Super-Shorty는 앞으로 나아갔다.
펑! 퍼펑!
우와, 저 철혈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 좀 보게. 너 정말 단단히도 화났구나?
마음이 급한 거지! IDW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찾았다! 앞에 저거!
......
드디어...
이게 테라 컴퓨터구나. 실물을 보는 건 나도 처음이야.
거기 둘! 좀 서둘러! 철혈의 증원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어서 우리도 더는 버티기 힘들어!
야, 아까는 전부 싹 쓸어버리겠다며!
너무 빨리 가지 말라는 소린 듣지도 않았지?
IDW... IDW!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 꼬맹이. 근데 저렇게나 높은데 너 균형 감각은 자신 있어?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IDW가 기다――히익!?
테라 컴퓨터의 외벽을 기어오르던 Super-Shorty의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휴우... 위험했어!
하하, 괜찮아?
"5분 서두르다 50년 먼저 간다"라는 명언은 들어본 적 있어?
IDW만큼 날렵하진 않지만, 나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나 말고 저 틈새에 누가 들어가!
Super-Shorty는 다시 침착하게 외벽을 올랐다.
콤플렉스라기엔 너무 편리한 덩치 아니야?
그런 말 듣기 싫거든?!
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키 좀 작은 게 무슨 대수야!
잠시 후, Super-Shorty는 기억에서 보았던 테라 컴퓨터의 입구에 다다랐다.
다 왔다... 그때 IDW가 이 구멍으로 들어갔어.
IDW, 내가 금방 거기서 꺼내――꺄악!?
쩌적!
발밑의 외벽이 갑자기 갈라져, Super-Shorty는 피할 새도 없이 틈새로 빠지고 말았다.
꼬맹아!
......!
......
넌...
틈새 속에서 다른 손이 Super-Shorty의 손을 꽉 붙잡았다.
대장, 어째 무거워진 것 같다냐.
IDW...? IDW! 너 어떻게——
냥? 좋은 아침이라 인사하는 게 더 나았냐?
다들 이제 그만 멈추라냐!
위잉!
철혈이... 공격을 멈췄어?
아직 덜 싸웠어, 대장님?
괜찮기는 한데, 초밥집에서 두 점 먹었더니 가게가 문을 닫은 것 같은 느낌이군.
......
그래서... 냐 얼마나 오래 잔 거냐?
...3년. 그날 이후로 3년이나 지났어...
미안해 IDW, 다 내 잘못이야...
3년...
놓친 애니메이션이 잔뜩이구냐.
좋은 분위기 끊어서 미안한데 말이지...
원주민의 경험으로 살짝 조언하자면, 일단 내려오고 나서 얘기해.
30분 후, 남반구로 향하는 중력 엘리베이터.
지금은 좀 어때? 어디 아픈 덴 없어?
우웅... 와! 정말 모래가 잔뜩이다냐! 여기 원래 숲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냐! 이게 다 내가 한 거냐?
그래, 너 때문에 숲이 저 모래 속에 파묻혔어.
더는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환경보호단체가 널 산 채로 뜯어버렸을 거야.
헤헤, 냐도 어쩔 수 없다냐. 3년이나 잤으니 말이다냐.
어휴, 네가 스스로 캡슐에서 나올 수 있는 걸 알았으면 안 올라가고 그냥 밑에서 불렀을 텐데.
대장이 내 이름을 불러줘서 깬 거다냐.
엘리사가 워낙에 일에 충실해서 그렇지, 냐는 딱히 한 거 없다냐. 혼자서는 저 철혈 무리를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었을 뿐이다냐.
정말이지, 괜히 걱정했잖아. 나오자마자 팔팔하고.
냐하, 그래도 3년이나 가만히 있었더니 몸이 좀 삐거덕거리는 거 같다냐.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운동장을 10바퀴 정도는 돌아야겠다냐!
IDW...
냥?
미안해.
냥? 갑자기 무슨 소리냐?
고작 3년 기다린 건데 아무렇지도 않다냐. 대장도 뾰족한 수가 없었지 않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예전에 내가 널 대한 태도를 사과하는 거야.
정말 미안해. 너한테 괜히 화풀이나 하면서, 정말 심한 말을 잔뜩 해서...
냥? 그랬던 거냐?
냔 그냥 내가 많이 모자라서 대장이 화낸 건 줄 알았다냐.
아니야, 넌 정말 잘했어. 네가 모두에게 세상을 구할 기회를 준 거야.
하지만... 난 정말 형편없었어. 대장 노릇 할 자격 없어...
하지만 대장 없이 IDW 혼자서는 소대라 부를 수 없잖냐?
어휴 이 바보야, 그럼 네가 직접 대장을 하면 되지!
에이, 그건 싫다냥. 한 명뿐인 부대는 그 사람이 실수하면 그대로 끝장이잖냐.
하지만 둘이라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 지금처럼 말이다냐.
......
후후... 그럼 네가 내 실수를 만회해준 거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 네가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와아! 냐가 도움이 됐다니 정말 기쁘다냐!
야... 왜 내가 잘못했다고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 거야?
왜냐니... 잘못하는 게 무슨 큰일이냐? 냐는 규칙 어기는 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냐.
못 살아... 너랑 이런 걸 따진 내가 잘못이지. 나만 혼자 한탄하는 바보가 됐네.
아아, 진짜! 왜 너랑 파트너가 된 거냐고!
대장, 아직도 내가 싫은 거다냐?
...아니, 널 싫어한 적 없어. 그냥...
너랑 함께 있으면 나만 못된 놈이 되거나 아니면 나까지 바보가 되는 거 같아.
냐하하, 그건 우리 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이다냐! 그게 바로 파트너 아니겠냐!
흥, 마음대로 생각하셔. 어차피 당분간 또 같이 일해야 하니까.
아무튼 간에, 아직도 3년 전에 중단됐던 임무를 나와 함께 완수하고 싶어?
물론이다냐, 대장!
날 계속 대장이라 부르는 건 당연하지만, 이제부터는 앞에 "꼬맹이"를 붙이도록 해.
냥? 꼬맹이 대장...? 어째서냐?
친구는... 그렇게 불러도 되니까.
그, 그래도 너도 나보다 얼마 안 크다고!
띵!
남반구 지표면에 도착하였습니다. 잊으신 물건이나 무기는 없는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응! 다 왔으니 출발하자냐, 꼬맹이 대장!
알마, Super-Shorty 일행을 데려왔다. 지금부터――
IDW——!!
으읍! 숨...! 숨 막힌다냐...!
아이고, 꼬맹이 둘만 보내서 다행이네. 팀으로 보냈으면 세상을 구하려는 마당에 단체 프리허그 이벤트라도 열렸겠다.
제가 직접 뽑은 아이들이니까요.
그런 말 안 해도 돼. 그냥 키 작아서 뽑은 거면서.
Super-Shorty, 그 임무에 몸집이 작은 인원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뿐이면 디너게이트나 말하는 시바견을 보내도 됐어.
너희라면 성공하리라 믿었기에 너희를 선택한 거야.
하지만, 그때 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
지금은 어떠니?
...모두를 믿을 거야. 내가 보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는 일을 힘을 합쳐 도와주는 모두를.
드디어 깨달았구나. 정말 기뻐.
그리고 그건 네가 타인보다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인은 모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란다. 나도 항상 내가 고칠 점을 내 가족을 보면서 찾아내곤 해.
그래서 여태 솔로인 거냐?
IDW...! 넌 컴퓨터 속에서 정신 수행을 좀 더 하다 와야겠구나!
장난은 그만하고 얼른 시작하는... 아니, 계획을 속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그래, 3년 전에 다하지 못 한 임무를 완수하자!
알마는 테라 컴퓨터에 다가갔다.
정말로, 내 둘째 언니가 찍은 사진이랑 똑같네.
네 언니가 테라 컴퓨터를 찍은 적이 있어?
어렸을 적엔, 둘째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언니가 모험을 떠나겠다면서 자신의 아이를 부모님께 내팽개치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래서 전 다짐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결국... 그 후로 다시는 연애를 못 했지만요...
뭐, 너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는 뜻이겠지.
후후, 말 정말 잘 하시네요. 물론 다 제가 자초한 일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언니 덕분에 이런 취미를 가지게 됐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죠.
엘리사의 코드는 해독을 끝냈습니다. 이제 테라 컴퓨터에 다시 넣으면 명령을 수정할 수 있어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성하다니 대단하군.
제가 왜 멀쩡한 손을 기계로 바꿨겠어요?
인간의 육체는 장애물일 뿐이에요. 두뇌의 가능성을 영원히 따라갈 수 없죠.
아무튼, 엘리사를 테라 컴퓨터 안에 넣고 다시 깨우는 일은 누가 맡을 건가요?
그 영광은 우리 꼬맹이 둘한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
IDW, 가자.
냐? 냐도 같이 가는 거냐?
당연하지. 네가 엘리사를 꺼냈으니까, 다시 넣는 것도 네가 해야 해.
Super-Shorty와 IDW는 엘리사를 들쳐 업고 가서 테라 컴퓨터에 다시 연결했다.
모두들! 엘리사를 다시 연결했다냐!
엘리사! 엘리사, 내 말 들리냐?
이상하다냐, 왜 반응이 없는 거다냐?
헬로? 엘리사!
너 선을 잘못 꽂은 거 아니야? 비켜봐, 내가 확인해볼게.
이 물건에 3년 동안이나 붙어 있었는데 헷갈릴 리가 없다냐!
으음... 확실히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잠깐만, 무슨 소리 안 들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냐앙? 뭔가가... 째깍째각거리는데냥...?
아니야, IDW...
이 소리는...!
폭탄이다! 도망쳐! 모두 빨리 도망쳐!
뭐?!
모두 엎드려!
콰아아앙!!
......
콜록... 콜록콜록...!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Super-Shorty! IDW! 어디 있니!
난 괜찮아!
IDW, 너도 괜찮아?
괜찮다냐! 꼬맹이 대장의 방패 덕분에 살았다냐.
휴우... 네가 조금만 더 컸어도 못 막아줬을 거야.
다행이구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테라 컴퓨터가 갑자기 폭발했지?
컴퓨터가 없으면, 지구는...
정신 똑바로 차려! 폭심지에 누군가 있다!
저건... 누구지?
......
야 임마! 네가 한 짓이냐!
아무리 지금 도시가 엉망진창이라 해도 그렇지, 군사 기지 내에서 폭탄 터뜨리는 건 할 짓이 아니지!
......
안녕, 다나 제인. 좋은 밤이야.
너는...
아하, 네가 바로 안나라는 녀석이구나?
방금 뭔 짓을 했는지 설명 정도는 해주는 게 도리 아니야?
모두가 보았다시피, 테라 컴퓨터를 폭파했어.
그리고 엘리사의 데이터와 융합해서 실체를 얻었지.
무슨...?! 말도 안 돼!
아쉽지만, 테라 컴퓨터는 이제 없어.
아니, 없어진 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바로 테라 컴퓨터야. 너희가 나를 없애면, 지구의 마지막 희망도 함께 사라지게 돼.
넌 대체 무슨 괴물이냐!
나는 신이야, 이 세상 최후의... 신.
듣기엔 엄청 중2병스럽지만... 누구든지 꿈을 꿀 수는 있잖아? 난 그저 그걸 실현했을 뿐이야.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어느 틈에...
엘리사를 조사해봤을 때 데이터에는 아무 위험성도 없었어! 네가 손을 쓸 시간은 없었을 텐데!
그래? 그럼 네 컴퓨터는 검사해 봤어? 몇 시간 전에 누가 네 방에 들르지 않았을까?
뭐라——
아키텍트...
아키텍트가 한 짓이 틀림없어! 녀석의 진짜 주인은 안나였어! 녀석이 우리 모두를 속인 거야!
그러니까... 아키텍트는 내 컴퓨터를 노리고 여기에 온 거였단 말이야?!
그거 말고 또 있겠어? 나노머신 덩어리에 불과한 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 세 번 쳐죽여도 모자랄 자식!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라!
흐음, 나도 드디어 녀석이랑 제대로 붙을 합리적인 이유가 생겼네...
하지만 지금 어딨는지도 모를 아키텍트보단, 눈앞의 네가 더 큰 문제야. 이제 뭘 할 속셈이지?
그야 물론, 내 계획을 계속해야지...
이 세계를 파괴할 거야.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냐! 이 세상에 대체 뭐가 불만이냐!
솔직히, 나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해.
단지...
이 세상이 진실되고 안정적이었다면 말이지만.
무슨... 소리야?
신경 쓸 거 없어, 너희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아주 큰 문제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전쟁과 갈등에 꼭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잖아. 그저, 서로의 의견이 어긋난 것뿐이지.
안나는 뒤로 돌아,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야! 어디 가! 우리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당연하잖아? 아니면 내가 왜 너희 앞에서 당당하게 변신 쇼를 보여줬겠어?
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화이트 나이트의 기갑 유닛...!
사방에서 몰려온다냐! 뭐가 저렇게 많은 거냐?!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어.
지금의 난 테라 컴퓨터야. 명령자인 동시에 실행자라고.
모래도 철혈도, 이제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어.
포위망을 뚫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
타타탕!
지구를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뒤덮고, 슈피리어 호수만큼 커다란 초콜릿 빨대로 핵을 뚫어버릴 거야.
아, 그전에 세계 10대봉에 아이스크림콘을 씌워야겠다. 그럼 지리학 시험지에 아무데나 "콘"이라 써도 되겠지?
어때, 너희는 마음에 들어? 이렇게 세상이 멸망하는 게 여고생이란 설정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세상을 파괴하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넌 로망도 없니? 지구를 예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려면 몇 시간은 걸린다고.
그리고 바닐라의 비율도 계산해야지. 너무 흘러넘치는 건 싫으니까, 북아메리카까지 덮이는 정도면 충분하겠다.
그딴 짓을 하게 놔둘 것 같냐! 우리가 반드시 막겠어!
너를 따르던 불쌍한 기계 병기들이 너희를 방해할 거야.
기갑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안나는 불길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난 지금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세계를 마지막으로 구경할 거야. 이런 꿈도 감동도 없는 문명을 말이야.
빨래하기 전 잔뜩 쌓인 옷더미라고 생각하면, 새것처럼 깨끗해진 모습을 상상했을 때 쾌감이 들지 않아?
널 반드시 찾아내겠어! 각오하고 있으라고!
그래 그래, 너희가 날 찾아올 수 있게 힌트는 남겨둘게.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이 도시는 내가 좋아하는 와플보다도 훨씬 더 부서지기 쉽거든.
주위의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불길 속 안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
이제... 어떻게 하지...
여러분도 큰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너, 너희들은! ...누구냐?
어... 제리코 대장...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아무렴, 나보다 더 망신을 당했겠어?
저기... 모두 수고했어... 하하...
으... 지금 내가 이런 말 해도 귀에 들어가지도 않겠지...?
도로시 총리? 그리고... 스텔라! 살아있었군요!
제가 할 말이에요. 아무래도 오늘은 좋은 일도 많이 있네요.
됐으니까 누가 결론만 말해줄 순 없어?
이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았어요.
얼른 말하도록. 추가 근무 수당은 총리한테 청구하면 되니.
저희가 막아야 하는 건 안나가 아니라...
...질이에요.
엥? 세상을 구하려면 지금 당장 안나를 잡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세상을 구해야죠.
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세상이 아니에요.
헤이, 조. 서로 이끌릴 시간이 되었어.
골리앗을 가지고 가면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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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시간을 돌려서.
한편, 테라 컴퓨터 유적.
신사 숙녀 여러분, 두 눈 크게 뜨고 보시라! 인류 문명의 마지막 유산! 최후의 기적!
테라—— 컴퓨터——!!!
...의 유적. 됐으니까 그만해. 나도 그 우렁찬 목소리에 깨어난 거란 말이야.
따라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까.
하루도 안 돼서 다시 오게 된 소감은 어때, 꼬맹아?
모르겠어... 오늘 별의별 엄청난 일들을 잔뜩 겪었지만, 여기가 가장 그리운 느낌이야.
기운이 없어 보이네.
막 기억을 되찾은 참이니까 그렇지! 아직도 마인드맵에서 어느 게 소중한 기억이고 어느 게 널 만나고 일어난 재수 없는 일인지 분류 중이라고.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모양이구나?
정말 눈치 하난 끝내주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고. 파트너를 철혈의 잔해 무더기 속에 장장 3년이나 버려뒀단 말이야.
분명 더 좋은 수가 있었을 텐데... 내가 더 유능했다면...
꼬맹이 넌 충분히 잘 해냈어. 내가 했던 것들 중 제일 끝내주는 일보다 훨씬 끝내줘.
아니야, 이건 다 IDW 덕분이야...
다나, 왜 모래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잠깐 정리해보자...
테라 컴퓨터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엘리사는 그 계획을 실행하려 했지? 그리고 IDW는 그걸 막기 위해 스스로 엘리사 대신 컴퓨터의 메인 AI가 되었고.
다나는 Super-Shorty를 도와 철혈 쓰레기를 치웠다. Super-Shorty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맨홀 뚜껑이 열리고 두 사람은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테라 컴퓨터는 IDW의 연산을 따라 전혀 다른 세계 멸망 계획을 실행했겠지?
그래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방법이 철혈로 싹 쓸어버리는 거에서 세상을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는 걸로 변경된 거고.
...그러게, 왜 하필이면 모래지?
고양이라서.
고양이?
IDW는 설계 단계서부터 고양이의 특징이 넣어졌어.
그래서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거야. 성격도 좀 시끄러운 고양이 품종을 참고했겠지.
아마 I.O.P.가 동물 귀를 좋아하는 고객을 위해... 친구 대용 같은 제품으로 설계한 거라고 생각해.
고양이라... 질이 좋아하겠네. 근데 고양이랑 모래가 무슨 상――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건 그냥 모래가 아니라...
그래, 그냥 모래가 아니야.
...고양이용 모래지.
...고양이에게 있어 똥을 치우기에 최적인 거구만.
이거야 원... 정말 기묘하단 말밖에 안 나오네...
풉, 너도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는구나?
Super-Shorty와 다나는 전선으로 이루어진 동굴을 통과했다.
IDW의 연산 능력은 영 꽝이라서, 계획의 실행 속도도 덩달아 크게 떨어졌어.
그래서 테라 컴퓨터의 세계 멸망 계획은 아직도 완료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는 거지.
어... 그 말은 즉, 조금이라도 더 똑똑한 고양이 인형이 들어갔다면 우린 하룻밤 사이에 수 조 톤이 넘는 모래에 파묻혀 버렸을 수도 있다는 소리네?
하하... 맞아. 바보 덕분에 살아남은 거야.
꼬맹아, 너와 IDW는 최선을 다했잖아. 원흉은 그 안나라는 녀석이지.
녀석이 알마를 잡아가지만 않았어도, 이 사태는 3년 전에 해결됐을지도 몰라. 그건 네가 어쩔 수 없는 거야.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안나를 이길 수는 있을까? 말을 들어 보니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벌써 겁먹었어? 알마가 말하길 원래 신경질적인 성격이라며?
누, 누가 겁먹었다는 거야?!
난 제리코처럼 이성적이지도 않고, IDW처럼 활발하지도 않아. 내 성격은... 엉망이야.
그리폰 시티에서 지낼 때도 난 항상 존재감이 없는 꼬맹이었어. 그래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그런 인상을 없애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환영받고 싶었어.
대화를 계속하며, Super-Shorty와 다나는 이번엔 좁은 수송관 안을 기어갔다.
3년 전 알마가 내게 이 임무를 맡겼을 땐, 난 진심으로 기뻤어. 드디어 모두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 임무 파트너가 IDW란 걸 알았을 때...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몸집이 작단 이유로 선택받았다는 걸 깨달았지. 하필이면 내 콤플렉스가 내가 선택받은 이유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성질을 냈지. IDW에게도, 너 따윈 방해만 될 뿐이다, 시끄럽다면서 듣기 싫은 말을 잔뜩 했고.
하지만 그건 다 내가 나를 욕하는 말이었어. 나 자신에 대한 증오를 애꿎은 IDW에게 퍼부은 거였어.
Super-Shorty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왜 날 미워하기는커녕, 마지막 순간까지 웃으면서 내게 작별 인사를 했을까?
잘해 주지도 못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리기까지 하다니, 난 정말 구제불능인 쓰레기야...
야, 꼬맹이.
정말로 네가 파트너한테 상처도 입히고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빚을 진 상대는 걔지, 너 자신이 아니잖아. 너를 쓰레기라 욕할 자격이 있는 것도 걔지, 네가 스스로 탓해 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난... 그저...
넌 그저 네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스스로를 나무라는 거야. 그래가지곤 그 녀석에서 더 멀어지기만 할걸? 녀석이 진정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가 무서워서 눈을 돌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할 일은, 용기를 내서 녀석과 마주하는 거야. 정말로 널 쓰레기라 생각하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너 멋대로 정하고 자책하지 말고, 상대에게도 기회를 줘. 알았어?
하지만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IDW의 마인드맵이 테라 컴퓨터의 연산량을 버텨낼 수나 있었을지...
게다가 벌써 3년이나 지났는걸...
지금 그걸 확인하러 가고 있잖아.
IDW 녀석이 널 보면 껴안든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든 하겠지. 그러고 난 다음 함께 세상을 구하자고.
하, 세계의 종말엔 관심 없다면서?
확실히, 그냥 내 방식대로 살고 싶을 뿐이야. 모래비든 철혈이든, 지금 상황에 딱히 관심은 없어.
나한테 정장을 입고 물가나 소비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거트 펀치나 먹으라지.
스파이시 치킨이랑 전등이 없었으면 난 진작에 속세를 버리고 떠났을 거야.
그런데, 이건 세상을 구하는 일이잖아? 이렇게 끝내주는 일을 놓칠 수야 없지!
세상을 구하는 일이 그렇게 쉽진 않을 것 같지만... 뭐, 나도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어서 테라 컴퓨터를 찾자.
그건 그렇고, 참 대단한 곳에 테라 컴퓨터를 숨겨놨구나. 지구가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핵까지 와보겠어.
여긴 어떤 전파도 닿지 않고 중력 엘리베이터로도 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안나라 해도 찾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좀 복잡하네. 길이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혀.
그래도... 거의 다 온 거 같네!
그걸 어떻——우왓?!
다나가 Super-Shorty의 머리를 잡아 확 숙이는 그 순간, 광선 한 줄기가 스쳤다.
여기에 철혈이 있으니까!
빨리 엄폐물을 찾아! 테라 컴퓨터의 호위 유닛이야!
너무 빨리 들켰어! 우리 둘만으론 돌파 못해!
정말 성가시게 됐구만. 어디...
으음... 안 되겠다. 역시 나라도 저걸 다 해치우는 건 무리겠지?
아니,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어?!
아 진짜, 녀석들은 왜 이리 늦어?
제리코! 10분 안에 안 오면 그랜드슬램 때보다 몇 배는 더 끝내주는 내 활약을 못 보고 놓칠 거다!
타탕!
그딴 거 알까보냐. 방송에서 그걸 1년 내내 틀어대서 지겨워 미치는 줄 알았는데.
다나, 이번엔 내게 빚진 거다.
난 몇 번이나 널 구해줬는지 안 따지는데?
많아도 서너 번이겠지.
그런데... 제리코라고? 그 화이트 나이트의 발키리 군단 소속 전설의 영웅 잭?!
다나의 부하로군. 기억이 돌아왔다고 들었다. 축하하지.
어... 잠깐, 왜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 거야...?
알마가 수복해줬거든. 그 해커와 16Lab의 쾌속 수복 기술에 감사할 따름이야.
나는? 알마한테 연락한 건 난데?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잭, 슈트는 안 입는 거야? 그리고 변신 히어로 군단은 어디 있어?!
아니, 난 잭이 아니야.
맞잖아! 목소리가 딱 잭인데 뭘!
그건 나중에 따지도록 하지. 다나, 일단 나를 계속 따르겠다는 부하들과 함께 왔다. 지금 움직이면 되는 건가?
그런 것치곤 꽤 많이도 왔는걸?
너처럼 말을 도통 들어먹질 않는 녀석은 소수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난 총은 별로 쓰기 싫다니까.
그럼 거기서 그러고 있어. 지금부터는 우리가 활약할 차례니까.
...철혈의 수가 꽤 많군. 어쨌든 다 해치우면 되는 거지?
왜, 철혈이 불쌍해졌어?
몇 년 동안이나 철혈을 추적했고, 아까는 그 망할 아키텍트의 속임수에 당했다. 덕분에 지금은 철혈놈들을 남김없이 싹 쓸어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뭐가 불쌍하겠어?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어. 여긴 지형이 협소한데 우리 병력도 많지 않아.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 없어! 빨리 테라 컴퓨터까지 가서 IDW에게 방어 시스템을 정지하라고 해야 해!
그럼 빨랑빨랑 움직이자고. 제리코, 엄호 부탁해!
너무 빨리 가지는 마. 엄호 가능한 범위도 얼마 안 돼.
노력해볼게. 가자, 꼬맹아! 몸 좀 풀어보실까!
흥, 나도 근질거리던 참이야! 지금은 뭐라도 해치워야 기분이 풀리겠어!
하핫, 화풀이 상대를 제대로 찾았네!
좋았어, 여기를 정리하는 대로 테라 컴퓨터로 직행이다!
제리코와 화이트 나이트의 엄호를 받으며, 다나와 Super-Shorty는 앞으로 나아갔다.
펑! 퍼펑!
우와, 저 철혈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 좀 보게. 너 정말 단단히도 화났구나?
마음이 급한 거지! IDW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찾았다! 앞에 저거!
......
드디어...
이게 테라 컴퓨터구나. 실물을 보는 건 나도 처음이야.
거기 둘! 좀 서둘러! 철혈의 증원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어서 우리도 더는 버티기 힘들어!
야, 아까는 전부 싹 쓸어버리겠다며!
너무 빨리 가지 말라는 소린 듣지도 않았지?
IDW... IDW!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 꼬맹이. 근데 저렇게나 높은데 너 균형 감각은 자신 있어?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IDW가 기다――히익!?
테라 컴퓨터의 외벽을 기어오르던 Super-Shorty의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휴우... 위험했어!
하하, 괜찮아?
"5분 서두르다 50년 먼저 간다"라는 명언은 들어본 적 있어?
IDW만큼 날렵하진 않지만, 나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나 말고 저 틈새에 누가 들어가!
Super-Shorty는 다시 침착하게 외벽을 올랐다.
콤플렉스라기엔 너무 편리한 덩치 아니야?
그런 말 듣기 싫거든?!
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키 좀 작은 게 무슨 대수야!
잠시 후, Super-Shorty는 기억에서 보았던 테라 컴퓨터의 입구에 다다랐다.
다 왔다... 그때 IDW가 이 구멍으로 들어갔어.
IDW, 내가 금방 거기서 꺼내――꺄악!?
쩌적!
발밑의 외벽이 갑자기 갈라져, Super-Shorty는 피할 새도 없이 틈새로 빠지고 말았다.
꼬맹아!
......!
......
넌...
틈새 속에서 다른 손이 Super-Shorty의 손을 꽉 붙잡았다.
대장, 어째 무거워진 것 같다냐.
IDW...? IDW! 너 어떻게——
냥? 좋은 아침이라 인사하는 게 더 나았냐?
다들 이제 그만 멈추라냐!
위잉!
철혈이... 공격을 멈췄어?
아직 덜 싸웠어, 대장님?
괜찮기는 한데, 초밥집에서 두 점 먹었더니 가게가 문을 닫은 것 같은 느낌이군.
......
그래서... 냐 얼마나 오래 잔 거냐?
...3년. 그날 이후로 3년이나 지났어...
미안해 IDW, 다 내 잘못이야...
3년...
놓친 애니메이션이 잔뜩이구냐.
좋은 분위기 끊어서 미안한데 말이지...
원주민의 경험으로 살짝 조언하자면, 일단 내려오고 나서 얘기해.
30분 후, 남반구로 향하는 중력 엘리베이터.
지금은 좀 어때? 어디 아픈 덴 없어?
우웅... 와! 정말 모래가 잔뜩이다냐! 여기 원래 숲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냐! 이게 다 내가 한 거냐?
그래, 너 때문에 숲이 저 모래 속에 파묻혔어.
더는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망정이지, 환경보호단체가 널 산 채로 뜯어버렸을 거야.
헤헤, 냐도 어쩔 수 없다냐. 3년이나 잤으니 말이다냐.
어휴, 네가 스스로 캡슐에서 나올 수 있는 걸 알았으면 안 올라가고 그냥 밑에서 불렀을 텐데.
대장이 내 이름을 불러줘서 깬 거다냐.
엘리사가 워낙에 일에 충실해서 그렇지, 냐는 딱히 한 거 없다냐. 혼자서는 저 철혈 무리를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었을 뿐이다냐.
정말이지, 괜히 걱정했잖아. 나오자마자 팔팔하고.
냐하, 그래도 3년이나 가만히 있었더니 몸이 좀 삐거덕거리는 거 같다냐.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운동장을 10바퀴 정도는 돌아야겠다냐!
IDW...
냥?
미안해.
냥? 갑자기 무슨 소리냐?
고작 3년 기다린 건데 아무렇지도 않다냐. 대장도 뾰족한 수가 없었지 않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예전에 내가 널 대한 태도를 사과하는 거야.
정말 미안해. 너한테 괜히 화풀이나 하면서, 정말 심한 말을 잔뜩 해서...
냥? 그랬던 거냐?
냔 그냥 내가 많이 모자라서 대장이 화낸 건 줄 알았다냐.
아니야, 넌 정말 잘했어. 네가 모두에게 세상을 구할 기회를 준 거야.
하지만... 난 정말 형편없었어. 대장 노릇 할 자격 없어...
하지만 대장 없이 IDW 혼자서는 소대라 부를 수 없잖냐?
어휴 이 바보야, 그럼 네가 직접 대장을 하면 되지!
에이, 그건 싫다냥. 한 명뿐인 부대는 그 사람이 실수하면 그대로 끝장이잖냐.
하지만 둘이라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 지금처럼 말이다냐.
......
후후... 그럼 네가 내 실수를 만회해준 거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 네가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와아! 냐가 도움이 됐다니 정말 기쁘다냐!
야... 왜 내가 잘못했다고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 거야?
왜냐니... 잘못하는 게 무슨 큰일이냐? 냐는 규칙 어기는 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냐.
못 살아... 너랑 이런 걸 따진 내가 잘못이지. 나만 혼자 한탄하는 바보가 됐네.
아아, 진짜! 왜 너랑 파트너가 된 거냐고!
대장, 아직도 내가 싫은 거다냐?
...아니, 널 싫어한 적 없어. 그냥...
너랑 함께 있으면 나만 못된 놈이 되거나 아니면 나까지 바보가 되는 거 같아.
냐하하, 그건 우리 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이다냐! 그게 바로 파트너 아니겠냐!
흥, 마음대로 생각하셔. 어차피 당분간 또 같이 일해야 하니까.
아무튼 간에, 아직도 3년 전에 중단됐던 임무를 나와 함께 완수하고 싶어?
물론이다냐, 대장!
날 계속 대장이라 부르는 건 당연하지만, 이제부터는 앞에 "꼬맹이"를 붙이도록 해.
냥? 꼬맹이 대장...? 어째서냐?
친구는... 그렇게 불러도 되니까.
그, 그래도 너도 나보다 얼마 안 크다고!
띵!
남반구 지표면에 도착하였습니다. 잊으신 물건이나 무기는 없는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응! 다 왔으니 출발하자냐, 꼬맹이 대장!
알마, Super-Shorty 일행을 데려왔다. 지금부터――
<size=50>IDW——!!</size>
으읍! 숨...! 숨 막힌다냐...!
아이고, 꼬맹이 둘만 보내서 다행이네. 팀으로 보냈으면 세상을 구하려는 마당에 단체 프리허그 이벤트라도 열렸겠다.
제가 직접 뽑은 아이들이니까요.
그런 말 안 해도 돼. 그냥 키 작아서 뽑은 거면서.
Super-Shorty, 그 임무에 몸집이 작은 인원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뿐이면 디너게이트나 말하는 시바견을 보내도 됐어.
너희라면 성공하리라 믿었기에 너희를 선택한 거야.
하지만, 그때 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
지금은 어떠니?
...모두를 믿을 거야. 내가 보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는 일을 힘을 합쳐 도와주는 모두를.
드디어 깨달았구나. 정말 기뻐.
그리고 그건 네가 타인보다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인은 모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란다. 나도 항상 내가 고칠 점을 내 가족을 보면서 찾아내곤 해.
그래서 여태 솔로인 거냐?
IDW...! 넌 컴퓨터 속에서 정신 수행을 좀 더 하다 와야겠구나!
장난은 그만하고 얼른 시작하는... 아니, 계획을 속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그래, 3년 전에 다하지 못 한 임무를 완수하자!
알마는 테라 컴퓨터에 다가갔다.
정말로, 내 둘째 언니가 찍은 사진이랑 똑같네.
네 언니가 테라 컴퓨터를 찍은 적이 있어?
어렸을 적엔, 둘째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언니가 모험을 떠나겠다면서 자신의 아이를 부모님께 내팽개치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래서 전 다짐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결국... 그 후로 다시는 연애를 못 했지만요...
뭐, 너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는 뜻이겠지.
후후, 말 정말 잘 하시네요. 물론 다 제가 자초한 일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언니 덕분에 이런 취미를 가지게 됐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죠.
엘리사의 코드는 해독을 끝냈습니다. 이제 테라 컴퓨터에 다시 넣으면 명령을 수정할 수 있어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성하다니 대단하군.
제가 왜 멀쩡한 손을 기계로 바꿨겠어요?
인간의 육체는 장애물일 뿐이에요. 두뇌의 가능성을 영원히 따라갈 수 없죠.
아무튼, 엘리사를 테라 컴퓨터 안에 넣고 다시 깨우는 일은 누가 맡을 건가요?
그 영광은 우리 꼬맹이 둘한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
IDW, 가자.
냐? 냐도 같이 가는 거냐?
당연하지. 네가 엘리사를 꺼냈으니까, 다시 넣는 것도 네가 해야 해.
Super-Shorty와 IDW는 엘리사를 들쳐 업고 가서 테라 컴퓨터에 다시 연결했다.
모두들! 엘리사를 다시 연결했다냐!
엘리사! 엘리사, 내 말 들리냐?
이상하다냐, 왜 반응이 없는 거다냐?
헬로? 엘리사!
너 선을 잘못 꽂은 거 아니야? 비켜봐, 내가 확인해볼게.
이 물건에 3년 동안이나 붙어 있었는데 헷갈릴 리가 없다냐!
으음... 확실히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잠깐만, 무슨 소리 안 들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냐앙? 뭔가가... 째깍째각거리는데냥...?
아니야, IDW...
이 소리는...!
폭탄이다! 도망쳐! 모두 빨리 도망쳐!
뭐?!
모두 엎드려!
콰아아앙!!
......
콜록... 콜록콜록...!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Super-Shorty! IDW! 어디 있니!
난 괜찮아!
IDW, 너도 괜찮아?
괜찮다냐! 꼬맹이 대장의 방패 덕분에 살았다냐.
휴우... 네가 조금만 더 컸어도 못 막아줬을 거야.
다행이구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테라 컴퓨터가 갑자기 폭발했지?
컴퓨터가 없으면, 지구는...
정신 똑바로 차려! 폭심지에 누군가 있다!
저건... 누구지?
......
야 임마! 네가 한 짓이냐!
아무리 지금 도시가 엉망진창이라 해도 그렇지, 군사 기지 내에서 폭탄 터뜨리는 건 할 짓이 아니지!
......
안녕, 다나 제인. 좋은 밤이야.
너는...
아하, 네가 바로 안나라는 녀석이구나?
방금 뭔 짓을 했는지 설명 정도는 해주는 게 도리 아니야?
모두가 보았다시피, 테라 컴퓨터를 폭파했어.
그리고 엘리사의 데이터와 융합해서 실체를 얻었지.
무슨...?! 말도 안 돼!
아쉽지만, 테라 컴퓨터는 이제 없어.
아니, 없어진 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바로 테라 컴퓨터야. 너희가 나를 없애면, 지구의 마지막 희망도 함께 사라지게 돼.
넌 대체 무슨 괴물이냐!
나는 신이야, 이 세상 최후의... 신.
듣기엔 엄청 중2병스럽지만... 누구든지 꿈을 꿀 수는 있잖아? 난 그저 그걸 실현했을 뿐이야.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어느 틈에...
엘리사를 조사해봤을 때 데이터에는 아무 위험성도 없었어! 네가 손을 쓸 시간은 없었을 텐데!
그래? 그럼 네 컴퓨터는 검사해 봤어? 몇 시간 전에 누가 네 방에 들르지 않았을까?
뭐라——
아키텍트...
아키텍트가 한 짓이 틀림없어! 녀석의 진짜 주인은 안나였어! 녀석이 우리 모두를 속인 거야!
그러니까... 아키텍트는 내 컴퓨터를 노리고 여기에 온 거였단 말이야?!
그거 말고 또 있겠어? 나노머신 덩어리에 불과한 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 세 번 쳐죽여도 모자랄 자식!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라!
흐음, 나도 드디어 녀석이랑 제대로 붙을 합리적인 이유가 생겼네...
하지만 지금 어딨는지도 모를 아키텍트보단, 눈앞의 네가 더 큰 문제야. 이제 뭘 할 속셈이지?
그야 물론, 내 계획을 계속해야지...
이 세계를 파괴할 거야.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냐! 이 세상에 대체 뭐가 불만이냐!
솔직히, 나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해.
단지...
이 세상이 진실되고 안정적이었다면 말이지만.
무슨... 소리야?
신경 쓸 거 없어, 너희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아주 큰 문제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전쟁과 갈등에 꼭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잖아. 그저, 서로의 의견이 어긋난 것뿐이지.
안나는 뒤로 돌아,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야! 어디 가! 우리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당연하잖아? 아니면 내가 왜 너희 앞에서 당당하게 변신 쇼를 보여줬겠어?
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화이트 나이트의 기갑 유닛...!
사방에서 몰려온다냐! 뭐가 저렇게 많은 거냐?!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부를 수 있어.
지금의 난 테라 컴퓨터야. 명령자인 동시에 실행자라고.
모래도 철혈도, 이제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어.
포위망을 뚫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
타타탕!
지구를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뒤덮고, 슈피리어 호수만큼 커다란 초콜릿 빨대로 핵을 뚫어버릴 거야.
아, 그전에 세계 10대봉에 아이스크림콘을 씌워야겠다. 그럼 지리학 시험지에 아무데나 "콘"이라 써도 되겠지?
어때, 너희는 마음에 들어? 이렇게 세상이 멸망하는 게 여고생이란 설정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세상을 파괴하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넌 로망도 없니? 지구를 예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려면 몇 시간은 걸린다고.
그리고 바닐라의 비율도 계산해야지. 너무 흘러넘치는 건 싫으니까, 북아메리카까지 덮이는 정도면 충분하겠다.
그딴 짓을 하게 놔둘 것 같냐! 우리가 반드시 막겠어!
너를 따르던 불쌍한 기계 병기들이 너희를 방해할 거야.
기갑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안나는 불길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난 지금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세계를 마지막으로 구경할 거야. 이런 꿈도 감동도 없는 문명을 말이야.
빨래하기 전 잔뜩 쌓인 옷더미라고 생각하면, 새것처럼 깨끗해진 모습을 상상했을 때 쾌감이 들지 않아?
널 반드시 찾아내겠어! 각오하고 있으라고!
그래 그래, 너희가 날 찾아올 수 있게 힌트는 남겨둘게.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이 도시는 내가 좋아하는 와플보다도 훨씬 더 부서지기 쉽거든.
주위의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불길 속 안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
이제... 어떻게 하지...
여러분도 큰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너, 너희들은! ...누구냐?
어... 제리코 대장...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아무렴, 나보다 더 망신을 당했겠어?
저기... 모두 수고했어... 하하...
으... 지금 내가 이런 말 해도 귀에 들어가지도 않겠지...?
도로시 총리? 그리고... 스텔라! 살아있었군요!
제가 할 말이에요. 아무래도 오늘은 좋은 일도 많이 있네요.
됐으니까 누가 결론만 말해줄 순 없어?
이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았어요.
얼른 말하도록. 추가 근무 수당은 총리한테 청구하면 되니.
저희가 막아야 하는 건 안나가 아니라...
...질이에요.
엥? 세상을 구하려면 지금 당장 안나를 잡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세상을 구해야죠.
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세상이 아니에요.
헤이, 조. 서로 이끌릴 시간이 되었어.
<color=#FFFF00>골리앗을 가지고 가면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습니다.</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