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4
E-S-4
......
..........
제어소 근처.
...이렇게 된 일입니다.
그럼... AR15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AR15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으... 역시 잘 모르겠어. M4가 둘이 됐단 거야?
아니, 좀 더 복잡해...
쉽게 말하자면, 다른 의식이 M4 씨의 의식 속에서 기생하고 있었단 소리야. 그럼 전에 있었던 상황도 설명이 되네요.
죄송합니다...
왜 저희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요? 정보 수집이든 오가스의 힘을 이용한 작전 진행이든,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저희에게 상황을 공유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모두에게 위험하지 않을까 했어요. 오가스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제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그래도 저희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아무리 위험해도 함께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다 제가 만약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린다면요!?
어... 아직도 뭐가 뭔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M4는 M4잖아. 대체 뭐가 걱정이야?
그만 그만, 이제 됐어.
416, 너도 AR팀이 서로 믿고 도와주는 것 좀 보고 배우렴.
아니 내가 무슨 상관인데!?
M4,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고민은 네 생각만큼 심각한 게 아니야. 말하면 다들 이해해 준다고.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그리고 그건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404의 대장도 그 뜻이겠지?
와, AR팀에도 정신이 멀쩡한 인형이 있긴 했구나. M4A1, 오가스에게 선택받은 넌 동료들이 오가스가 가져온 위협에 삼켜지지 않도록 지킬 의무가 있어.
오가스가 가져온 위협... 말인가요.
아까 기억 파편을 통해 봤겠지? 철혈의 엘더 브레인도 마인드맵에 오가스가 깃들어 있어. 어쩌면 이미 융합한 상태일지도 몰라.
나비 사건과 군의 배신. 이게 전부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진 않겠지?
철혈이든 패러데우스든... 확실히 뭔가를 찾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오가스에 대해 알고 있죠?
내가 어떻게 아냐고? 네 팀의 최고참은 나비 사건 때부터 우산에 감염됐어.
그리고 내가 알고 지내던 동료들은 우산에게 통제권을 뺏기거나 오가스에게 마인드맵이 융해됐지.
내 목표는 아주 간단해. 우릴 멋대로 장기말로 부린 놈들을 끄집어내서 벌을 내릴 거야.
그런데, 너는? 네 목표는 뭐니?
기억 속에서 본 사람이 누군지만 알면 되는 거야? 남은 소대원을 되찾기만 하면 돼? 아니면 그저 그리폰 인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만 할 셈이야?
저는...
설마, 옆에서 꼬드기는 목소리가 사라지니까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된 거야?
그럴 리가요!
예전에, 어느 인형이 내게 말해 주었어.
인형도...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살아가는 이유...
지금 우리의 목적은 일치해. 그리고 우리보단 네가 그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네 안의 오가스를 통제하는 건 네 의무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도망치지도 마. 네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여기서 죽고 말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분열된 것들은 시들고, 결국 하나가 되지. 너는 가서 빼앗긴 그 의지를 되찾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해.
너만이 할 수 있으니까, 얼른 가서 해야 할 일을 해.
M4A1은 지휘관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홀로 그 신호의 근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길은 그녀를 금세 탈린 바깥으로 인도했다.
UMP45의 말대로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오가스의 존재가 느껴져... 정말 이성질체에게 삼켜졌을까?
......
여기까지 오면서 적은커녕 이성질체도 보지 못했어. 다 어디로 간 거지?
길가의 하얀 꽃봉오리들은 만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담화가 피어나고 있어... 기억에서 본 그 장소인가?
누군가가, 날 이끌고 있어...
그녀들의... 신성한 꽃이 곧 필 거야...
오가스?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 내 마인드맵의 심층에서 들려오는 거지만, 다른 쪽인가...?
루니샤... 설마... 네가 올 줄은 몰랐어...
오가스의 목소리...! 아직 완전히 융합되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그들에게 삼켜질 리 없잖아... 그들이... 내게 융합되고 있어...
당신이 그들을요?
연결로 이루어진 플랫폼에... 정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어...
그래서... 이성질체의 의식에 남을 수밖에 없었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나도 너처럼... 나만의 목적이 있다고 했잖아...
네가 가까이 오면... 다시 네 마인드맵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이 이성질체가... 내 의식을 어디론가 업로드하고 있어... 내 의식이 쪼개져 가...
막아야 해... 내가 이성질체를 통제할 때까지... 이 정보만은 꼭 확보해야 해...
당신은 제게 있어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제가 왜 도와야 하죠?
잊지 마... 넌 나의 힘이 필요해... 그리고 차단문의 권한도 필요하잖아...
멀리서 잇따른 폭음이 울려 퍼졌다.
벌써 장갑 열차와 교전 중인가...
나도 서둘러야겠어.
우담화가... 피었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M4A1은 하얀 꽃들이 핀 길을 따라, 이성질체의 신호를 추적해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비좁은 절벽의 틈새를 지나 다다른 곳에 펼쳐진 풍경에, M4A1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방이 막 피어난 하얀 우담화로 가득했다.
꽃잎을 비추는 달빛과 꽃이 스스로 발산하는 형광빛이 어우러져, 협곡을 호수처럼 은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빛의 호수 한가운데, 한 사람이 외로이 서 있었다.
...왔구나.
......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는 뒤돌아 M4A1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녀의 옷은 다 헤졌지만, 니모겐이 입던 그 옷임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발을 내디딜 때마다 호수의 빛을 깨뜨리며, 이성질체는 M4A1에게 다가왔다.
꽃잎은 별가루처럼 흩날렸고, 그녀의 표정은 마치 어깨 너머의 달빛처럼 평온했다.
니모겐.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내가 이 이름을 쓰겠어.
아버님께서 날 용서해 주실 거야... 아니, 사실 전혀 관심도 없으시겠지...
...오가스를 그 아버님이란 자에게 전송한 건가요?
아버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드리면, 이 도시에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대답해 주시지 않아... 아버님은... 날 속인 걸까?
오가스를 돌려주세요. 그리고 탈린의 격리벽 제어 권한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여길 떠나야 해요.
그래... 넌 그것들이 필요하지...
그런데도 왜 나와 하나가 되지 않는 거야? 나와 하나가 되면 전부 자연스레 얻게 되는데.
죄송하지만, 당신과 융합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똑같은 대답이구나. 어차피, 이제 와서 너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어.
네가 오기 전에 정화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님께선 날 버리셨어... 이 우담화도 날 버렸어... 결국, 난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당신은... 왜 그토록 죽고 싶어 하는 거죠?
네 주위를 봐.
신성한 꽃들이 축복의 빛을 뿜어내고 있어.
이 빛에 선택받은 자는 용서를 받고, 근심 없는 천국으로 향할 수 있어.
그런데, 난 여태까지 정화되지 않았어. 난... 쓸모없는, 아버님에게 버림받은 쓰레기야...
하지만, 이제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아무 상관 없어.
의식들이 모이고 있어. 궁지에 몰려서, 마지막으로 여태껏 시도해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소망을 이루려 해...
(말의 주제가 변했어... 오가스가 말한 융합 때문인가?)
이 옷은... 아버님의 선물이야.
아버님께서 내게 주신,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내가... 더럽히고 말았어...
죄송해요 아버님... 죄송해요...
정신착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다른 기억들이 서로 뒤섞이고 있어.
당신의 목소리도 더 뚜렷해져 가네요.
융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
힘들어... 그리고 추워...
하지만... 즐거워.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야...
지금까지 나는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내 손으로... 뭔가를 바꾸고 싶어...
...........
가슴에서, 뭔가 넘쳐나는 느낌이 들어... 이게 바로 심장이 뛴다는 느낌일까?
넌... 아버님이 원하시는 걸 얻는 것을 막고 싶어? 그럼, 나를 죽여.
나를 해방시키면, 아버님은 우릴 받아 줄 수 있는 의식을 얻지 못하실 거야...
이 심장이 멈추면...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증오도 사라지겠지...
아버님... 저는 아버님을 미워하기 싫은데... 왜 저를 저버리셨나요...
녀석이 니모겐의 전투 시퀀스를 가동했어. 녀석의 바람대로... 죽일 거야?
싸움에는 어울려 주겠습니다... 하지만 죽이진 않겠어요.
동류라서 차마 죽이진 못하겠단 거니?
아뇨... 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그 기억들을 보고서 깨달았어요.
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란 사실을.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배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역겨웠어요.
하지만, 저들은 저와 달라요. 분명 같은 기억을 가지고, 같은 운명의 천칭에 놓였으면서, 서로 정반대의 운명을 겪었어요.
그러니... 제 손으로 저들의 비참한 운명에 종지부를 찍겠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비참한 운명에 시달리는 자들을 돕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전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그래... 너도 변했구나.
그녀 스스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라는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면, 마음껏 싸우도록 해.
그리고... 나는 그들의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나의 방식으로 그녀를 해방시키겠어.
이제 이 어처구니없는 촌극의 막을 내릴 때입니다. 저 이성질체들이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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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어소 근처.
...이렇게 된 일입니다.
그럼... AR15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AR15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으... 역시 잘 모르겠어. M4가 둘이 됐단 거야?
아니, 좀 더 복잡해...
쉽게 말하자면, 다른 의식이 M4 씨의 의식 속에서 기생하고 있었단 소리야. 그럼 전에 있었던 상황도 설명이 되네요.
죄송합니다...
왜 저희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요? 정보 수집이든 오가스의 힘을 이용한 작전 진행이든,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저희에게 상황을 공유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모두에게 위험하지 않을까 했어요. 오가스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제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그래도 저희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아무리 위험해도 함께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다 제가 만약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린다면요!?
어... 아직도 뭐가 뭔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M4는 M4잖아. 대체 뭐가 걱정이야?
그만 그만, 이제 됐어.
416, 너도 AR팀이 서로 믿고 도와주는 것 좀 보고 배우렴.
아니 내가 무슨 상관인데!?
M4,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고민은 네 생각만큼 심각한 게 아니야. 말하면 다들 이해해 준다고.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그리고 그건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404의 대장도 그 뜻이겠지?
와, AR팀에도 정신이 멀쩡한 인형이 있긴 했구나. M4A1, 오가스에게 선택받은 넌 동료들이 오가스가 가져온 위협에 삼켜지지 않도록 지킬 의무가 있어.
오가스가 가져온 위협... 말인가요.
아까 기억 파편을 통해 봤겠지? 철혈의 엘더 브레인도 마인드맵에 오가스가 깃들어 있어. 어쩌면 이미 융합한 상태일지도 몰라.
나비 사건과 군의 배신. 이게 전부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진 않겠지?
철혈이든 패러데우스든... 확실히 뭔가를 찾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오가스에 대해 알고 있죠?
내가 어떻게 아냐고? 네 팀의 최고참은 나비 사건 때부터 우산에 감염됐어.
그리고 내가 알고 지내던 동료들은 우산에게 통제권을 뺏기거나 오가스에게 마인드맵이 융해됐지.
내 목표는 아주 간단해. 우릴 멋대로 장기말로 부린 놈들을 끄집어내서 벌을 내릴 거야.
그런데, 너는? 네 목표는 뭐니?
기억 속에서 본 사람이 누군지만 알면 되는 거야? 남은 소대원을 되찾기만 하면 돼? 아니면 그저 그리폰 인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만 할 셈이야?
저는...
설마, 옆에서 꼬드기는 목소리가 사라지니까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된 거야?
그럴 리가요!
예전에, 어느 인형이 내게 말해 주었어.
인형도...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살아가는 이유...
지금 우리의 목적은 일치해. 그리고 우리보단 네가 그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네 안의 오가스를 통제하는 건 네 의무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도망치지도 마. 네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여기서 죽고 말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분열된 것들은 시들고, 결국 하나가 되지. 너는 가서 빼앗긴 그 의지를 되찾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해.
너만이 할 수 있으니까, 얼른 가서 해야 할 일을 해.
M4A1은 지휘관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홀로 그 신호의 근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길은 그녀를 금세 탈린 바깥으로 인도했다.
UMP45의 말대로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오가스의 존재가 느껴져... 정말 이성질체에게 삼켜졌을까?
<color=#00CCFF>......</color>
여기까지 오면서 적은커녕 이성질체도 보지 못했어. 다 어디로 간 거지?
길가의 하얀 꽃봉오리들은 만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담화가 피어나고 있어... 기억에서 본 그 장소인가?
누군가가, 날 이끌고 있어...
<color=#00CCFF>그녀들의... 신성한 꽃이 곧 필 거야...</color>
오가스?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 내 마인드맵의 심층에서 들려오는 거지만, 다른 쪽인가...?
<color=#00CCFF>루니샤... 설마... 네가 올 줄은 몰랐어...</color>
오가스의 목소리...! 아직 완전히 융합되지 않았나요?
<color=#00CCFF>그게... 무슨 소리야...</color>
<color=#00CCFF>내가... 그들에게 삼켜질 리 없잖아... 그들이... 내게 융합되고 있어...</color>
당신이 그들을요?
<color=#00CCFF>연결로 이루어진 플랫폼에... 정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어...</color>
<color=#00CCFF>그래서... 이성질체의 의식에 남을 수밖에 없었어...</color>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color=#00CCFF>나도 너처럼... 나만의 목적이 있다고 했잖아...</color>
<color=#00CCFF>네가 가까이 오면... 다시 네 마인드맵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color>
<color=#00CCFF>이 이성질체가... 내 의식을 어디론가 업로드하고 있어... 내 의식이 쪼개져 가...</color>
<color=#00CCFF>막아야 해... 내가 이성질체를 통제할 때까지... 이 정보만은 꼭 확보해야 해...</color>
당신은 제게 있어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제가 왜 도와야 하죠?
<color=#00CCFF>잊지 마... 넌 나의 힘이 필요해... 그리고 차단문의 권한도 필요하잖아...</color>
멀리서 잇따른 폭음이 울려 퍼졌다.
벌써 장갑 열차와 교전 중인가...
나도 서둘러야겠어.
<color=#00CCFF>우담화가... 피었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color>
M4A1은 하얀 꽃들이 핀 길을 따라, 이성질체의 신호를 추적해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비좁은 절벽의 틈새를 지나 다다른 곳에 펼쳐진 풍경에, M4A1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방이 막 피어난 하얀 우담화로 가득했다.
꽃잎을 비추는 달빛과 꽃이 스스로 발산하는 형광빛이 어우러져, 협곡을 호수처럼 은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빛의 호수 한가운데, 한 사람이 외로이 서 있었다.
...왔구나.
......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는 뒤돌아 M4A1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녀의 옷은 다 헤졌지만, 니모겐이 입던 그 옷임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발을 내디딜 때마다 호수의 빛을 깨뜨리며, 이성질체는 M4A1에게 다가왔다.
꽃잎은 별가루처럼 흩날렸고, 그녀의 표정은 마치 어깨 너머의 달빛처럼 평온했다.
니모겐.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내가 이 이름을 쓰겠어.
아버님께서 날 용서해 주실 거야... 아니, 사실 전혀 관심도 없으시겠지...
...오가스를 그 아버님이란 자에게 전송한 건가요?
아버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드리면, 이 도시에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대답해 주시지 않아... 아버님은... 날 속인 걸까?
오가스를 돌려주세요. 그리고 탈린의 격리벽 제어 권한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여길 떠나야 해요.
그래... 넌 그것들이 필요하지...
그런데도 왜 나와 하나가 되지 않는 거야? 나와 하나가 되면 전부 자연스레 얻게 되는데.
죄송하지만, 당신과 융합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똑같은 대답이구나. 어차피, 이제 와서 너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어.
네가 오기 전에 정화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님께선 날 버리셨어... 이 우담화도 날 버렸어... 결국, 난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당신은... 왜 그토록 죽고 싶어 하는 거죠?
네 주위를 봐.
신성한 꽃들이 축복의 빛을 뿜어내고 있어.
이 빛에 선택받은 자는 용서를 받고, 근심 없는 천국으로 향할 수 있어.
그런데, 난 여태까지 정화되지 않았어. 난... 쓸모없는, 아버님에게 버림받은 쓰레기야...
하지만, 이제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아무 상관 없어.
의식들이 모이고 있어. 궁지에 몰려서, 마지막으로 여태껏 시도해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소망을 이루려 해...
(말의 주제가 변했어... 오가스가 말한 융합 때문인가?)
이 옷은... 아버님의 선물이야.
아버님께서 내게 주신,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내가... 더럽히고 말았어...
죄송해요 아버님... 죄송해요...
<color=#00CCFF>정신착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다른 기억들이 서로 뒤섞이고 있어.</color>
당신의 목소리도 더 뚜렷해져 가네요.
<color=#00CCFF>융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color>
......
힘들어... 그리고 추워...
하지만... 즐거워.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야...
지금까지 나는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내 손으로... 뭔가를 바꾸고 싶어...
...........
가슴에서, 뭔가 넘쳐나는 느낌이 들어... 이게 바로 심장이 뛴다는 느낌일까?
넌... 아버님이 원하시는 걸 얻는 것을 막고 싶어? 그럼, 나를 죽여.
나를 해방시키면, 아버님은 우릴 받아 줄 수 있는 의식을 얻지 못하실 거야...
이 심장이 멈추면...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증오도 사라지겠지...
아버님... 저는 아버님을 미워하기 싫은데... 왜 저를 저버리셨나요...
<color=#00CCFF>녀석이 니모겐의 전투 시퀀스를 가동했어. 녀석의 바람대로... 죽일 거야?</color>
싸움에는 어울려 주겠습니다... 하지만 죽이진 않겠어요.
<color=#00CCFF>동류라서 차마 죽이진 못하겠단 거니?</color>
아뇨... 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그 기억들을 보고서 깨달았어요.
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란 사실을.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배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역겨웠어요.
하지만, 저들은 저와 달라요. 분명 같은 기억을 가지고, 같은 운명의 천칭에 놓였으면서, 서로 정반대의 운명을 겪었어요.
그러니... 제 손으로 저들의 비참한 운명에 종지부를 찍겠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비참한 운명에 시달리는 자들을 돕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전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color=#00CCFF>그래... 너도 변했구나.</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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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그리고... 나는 그들의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나의 방식으로 그녀를 해방시키겠어.</color>
이제 이 어처구니없는 촌극의 막을 내릴 때입니다. 저 이성질체들이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