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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거울단계

무저갱 카오스 Ⅲ

"그 누구의 희생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살아남는 자들이 그들의 희생에서 더욱 소중한 것을 얻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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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대사 보기 (140줄)

패러데우스의 인해전술에, 몰리도와 나르시스가 나서지 않아도 AR팀은 점차 열세에 몰렸다.

위로는 몰리도와 그녀의 부대가.

아래로는 나르시스가 버티는 상황에서, 지금 상태로 적을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몇 안 되는 선택지 모두, 절망적이었다.

댄들라이

지휘관님.

댄들라이의 무덤덤한 표정에서조차 애처로움이 엿보였다.

치지직...

통신기는 여전히 노이즈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댄들라이

이젠 정말... 방도가 없습니다.

지휘관

설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

AR15

여기서 끝인가...

예비 방안도, 퇴로도 없었다.

M4 SOPMOD II

우리... 여기서 죽는 거야?

AR15

왜, 무서워?

M4 SOPMOD II

아니? 죽더라도 다 함께 죽는 거잖아.

그럼 안 외로워!

하지만...

AR15

하지만?

M4 SOPMOD II

하지만 여기서 죽으면, M4랑 M16을 다시 못 보잖아...

RO635

바보 같은 말 하지 마!

M4 SOPMOD II

우이씨, 어차피 죽게 생겼는데 말도 못해?

밀물처럼 몰려드는 패러데우스가, AR팀의 위태로운 저지선에 부딪혔다.

몰리도는 일부러 지휘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섰고, 마흐리안의 싸늘한 몸뚱이는 다 쓴 걸레짝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지휘관의 눈은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기세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르시스

감히 날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들었겠다아아!!

언니! 저놈들 다 죽여도 돼? 다 죽여도 되지?!

몰리도

그래, 다 죽여.

니모겐은 살려 두고, 나머진 네 마음대로 해.

AR15

...열받게 하네 진짜.

AR-15가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손엔 비수를 쥐었다.

AR15

오늘 죽더라도 저년이 다시는 못 웃게 만들어버리고 죽겠어.

AR팀의 끈질긴 저항으로, 패러데우스 부대도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르시스와 몰리도의 존재가, 두 채의 태산처럼 그들을 가로막았다.

세 인형들의 소체도 한계에 도달했다.

지휘관과 댄들라이를 지키는 그들의 몸엔 더러운 피가 잔뜩 묻었다.

치지직...

통신기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휘관

...다들, 이번 임무에 나온 걸 후회하진 않니?

RO635

그럴 리가요, 지휘관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건 제 평생의 영광인걸요.

AR15

난 좀 후회되네, 아직 지휘관이랑 몇 번 못 마셨는데.

M4 SOPMOD II

난... 난 M4랑 M16을 다시 보고 싶어어...

지휘관

......

지휘관은 여전히 통로를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패러데우스 부대와, 그들 중앙의 몰리도와 나르시스를 노려봤다.

지휘관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 해도, 너흰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너희 패러데우스에겐 파멸 이외의 결말 따윈 없어.

...지옥에서 다시 보자고.

몰리도

말을 참 잘하시네요, 과연 안젤리아 씨가 마음에 들어할 만해요.

몰리도는 경멸 어린 미소로 답했다.

몰리도

당신들의 시체는 이 지하에 묻혀, 이곳의 모든 것과 함께 역사 속 한 톨의 먼지가 되어 세상에게 잊혀질 거예요.

시대로부터 도태된 쓰레기, 패러데우스란 수레바퀴에 뭉개질 벌레들.

당신들의 희생은 무의미해요, 우리 바보 언니처럼요.

지휘관

......

지휘관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휘관

마흐리안의 목숨은 네놈 따위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인간으로서 죽기를 택했어, 추악한 괴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몰리도

후후후...

몰리도가 어깨를 으쓱하자, 거미 같은 기계팔도 살짝 흔들렸다.

몰리도

묘비에 그렇게 적어드릴게요.

지휘관

......

......끝이구나.

지휘관은 눈을 감았다.

???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아 아.</color>

<color=#00CCFF>지휘관, 내 말 들려?</color>

지휘관

?!!

RO635

뭐, 뭐지?!

AR15

통신...? 통신이다!

UMP45

<color=#00CCFF>어휴, 볼륨 좀 줄여 줄래? 청각 모듈 터지겠네.</color>

<color=#00CCFF>지금 그쪽 상황은 어때?</color>

지휘관

45... 성공했구나?

잘했다! 역시 너희라면 해낼 줄 알았어!

몰리도

쳇...

M4 SOPMOD II

지휘관!

교란기가, 교란기가 전부 꺼졌어!

그 말대로, 기지 안을 밝히던 푸른 빛이 일순간 꺼졌다.

번쩍거리던 교란기들이 전원을 잃고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UMP45

<color=#00CCFF>그야 당연하지, 우리가 누군데.</color>

<color=#00CCFF>그래서 지금 상황 어떻냐니까?</color>

지휘관

자세한 얘긴 나중에 하자.

지금은――

――반격의 시간이다!

UMP45

<color=#00CCFF>역시 뭔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color>

<color=#00CCFF>이번 일은 좀 많이 힘들었으니까 보너스는 10배로 받을 거야.</color>

지휘관

20배도 괜찮아!

<size=55>——댄들라이!</size>

댄들라이

살면서 이 느낌이...

교란기가 꺼지는 소리와 동시에, 댄들라이가 고개를 들었다.

댄들라이

...이토록 기분 좋을 줄은 몰랐어.

댄들라이의 눈빛이 번쩍이자, 우르르 몰려오던 패러데우스의 무리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일제히 총구를 돌렸다.

AR15

좋았어!

지휘관

좋아! 할 수 있어!

이걸로 형세가 역전——

나르시스

쳇.

부웅—— 콰아앙!!!

나르시스의 부유검들이 일제히 빛나더니, 광선을 내뿜어 눈 깜짝할 사이에 패러데우스 부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지휘관

......!!

몰리도

왜요?

이걸로 역전한 줄 알았나요?

제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 당신이 상상이나 가나요?

니모겐을 붙잡기 위해 모든, 아주 작은 가능성까지도 철저히 계산했답니다.

고작 교란기가 무력화된 상황쯤...

제가 생각 못했을 것 같나요?

지휘관

...뭐라고?

몰리도

탄약이 바닥난 AR팀으로, 저와 나르시스를 상대로...

과연 니모겐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아아 그래, 어디 이 참에 우리에게 침투해 보는 건 어떻겠니, 니모겐?

몰리도는 비웃으며 댄들라이를 바라봤다.

AR15

야, 댄들라이! 큰소리 떵떵 쳤으니까 어떻게든 해 봐!

댄들라이

......

하지만 한번 힘을 방출한 댄들라이의 눈이 갑자기 빛을 잃었고, 조각상처럼 제자리에 굳었다.

RO635

다운됐어...?!

M4 SOPMOD II

말도 안 돼!

지휘관

......

몰리도

하하하하하!! 뭐야, 조금은 더 발버둥 칠 줄 알았더니만!

말했잖아요. 다 쓸모없다고, 다 헛수고라고!

몰리도

당신들이 한 짓 전부 무의미해!

마흐리안의 죽음처럼!

몰리도가 마흐리안의 얼굴을 짓밟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지휘관도 더는 울분을 억누르지 못해,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

지휘관

결코——

???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단호하고 힘찬 목소리가, 몰리도의 비웃음과 지휘관의 반박을 끊었다.

댄들라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전혀 다른 색채로 빛났다.

"댄들라이"

그 누구의 희생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살아남는 자들이, 그들의 희생에서 더욱 소중한 것을 얻으니까요.

지휘관

댄들...라이?

AR15

야! 너 지금 이 상황에서 또 그딴 장난이야?!

됐어, 면죄부 몇 개 남았든――

AR-15가 도저히 못 참고 버럭 소리질렀지만, "댄들라이"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입까지 올라왔던 욕설이 전부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그 익숙한 눈동자와 눈빛에, 목소리가 떨렸다.

AR15

M...4...?

RO635

뭐?!

M4 SOPMOD II

댄들라이에... M4가...?

나르시스

입만 살아서는!

다시 앞으로 나서는 "댄들라이"를 보며, 나르시스는 노발대발하며 손짓으로 주위의 부유검을 정렬해 칼끝을 지휘관에게 향했다.

쉬익——!

지휘관

——!

"댄들라이"

괜찮아요, 지휘관님.

부웅...

"댄들라이"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날아들던 무수한 칼날들이 허공에 멈춰, 일시정지된 비디오테이프처럼 그자리에 단단히 고정됐다.

나르시스

뭐... 뭐야!?

지휘관

M4...? 정말 너니?

M4A1

지금 돌아왔습니다.

[거울단계 END]

그리폰 기지에서, 여전히 대 패러데우스 모의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타타탕——!

퍼즐 소대의 화력이 마지막 패러데우스를 박살냈다.

VHS

......

끝났다.

AUGPARA

굉장해요! 우리 모두 대단해요!

류 소총

우으으... 저 감동 먹었어요...!

M200

후아아... 382번 연속 실패한 끝에 드디어...

퍼즐 소대가 기쁨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세이프하우스의 문을 박차고, 신난 SL8이 달려왔다.

SL8

좋았어 좋았어! 드디어 해냈구나!

내가 진짜 얼마나 기다렸다고!

SL8도 팔을 활짝 벌려 퍼즐 소대의 품에 몸을 던지려 했지만, VHS가 매정하게 제지했다.

VHS

스톱.

SL8

아?

VHS

지휘관, 우리 훈련 완수했어.

하지만 통신에 대답이 없었다.

VHS

...지휘관?

훈련장 바깥으로 지나가는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아무도 그들의 환호를 듣지 못했다.

M200

혹시 다른 일이 있으신 거 아닐까요?

AUGPARA

그렇겠네요, 선배는 평소에도 무지 바쁘니까요.

VHS

......

류 소총

아 참, 아까 전체 메시지가 왔던데 여러분도 보셨나요?

인형들은 저마다 통신기를 열어봤다.

VHS

무슨 통지 사항이겠지.

M200

스크린에 띄울게요.

메시지는 어떤 녹화 영상이었다.

영상에선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쑥스러워하며 렌즈 앞에 섰다.

???

<color=#00CCFF>...반가워요, 저는 마흐리안이라고 해요.</color>

카메라 앞에 선 것이 긴장됐는지, 소녀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말을 계속했다.

마흐리안

<color=#00CCFF>그리폰의 여러분과 이렇게 인사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color>

<color=#00CCFF>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의 어느날 직접 만나게 될 거라고 믿어요.</color>

뭔가 떠올랐는지, 소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마흐리안

<color=#00CCFF>사실... 전 "미래"란 단어를 말하기가 무서워요. 왠지 제 미래엔 나쁜 일들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color>

<color=#00CCFF>하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여러분과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미래가 마냥 싫지만은 않게 됐어요.</color>

말을 잇는 소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흐리안

<color=#00CCFF>어쩌면, 여러분은 이런 제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겠죠. 하지만 제겐 정말로 큰 의미가 있어요.</color>

<color=#00CCFF>감사합니다, 그리폰의 여러분. 제게 미래를 기대할 이유를 주셔서.</color>

<color=#00CCFF>금방 여러분과 만나기를 기원할게요.</color>

소녀는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영상 종료.

류 소총

우와, 저게 누구죠? 엄청 귀여운 분이네요!

AUGPARA

저도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름이 마흐리안이랬죠?

M200

곧 여기로 온다고 했어요.

VHS

그럼 예비 직장 동료인가 보지 뭐, 아무렴 어때. 난 훈련 성과 보고하러 갈 거니까 너희도 그만 해산해.

SL8

야 VHS, 잠깐 나랑 말 좀――

훈련장을 떠나는 VHS의 뒷모습을 SL8이 헐레벌떡 뒤쫓았다.

훈련장의 스크린 화면은, 여전히 재생이 끝난 영상의 소녀가 부드러운 미소로 손을 흔드는 순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