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꼬치
SAT8
그리폰 인형 숙소.
SAT8은 탁상 앞에 앉아 체크리스트를 검사하고 있었다.
활동 참가 인원은... 모두 문제 없고.
핼러윈 코스튬은... 응, 다 완성했네.
그럼...
삐익.
통신이 들어왔다.
앗, 카리나 씨군요!
SAT8, 지금 바빠?
저번에 요청한 것들 다 끝났어.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카리나 씨.
뭘 이 정도 가지고. 어차피 오랫동안 방치된 곳이었어.
하지만 낡은 설비들 중 부피가 큰 건 꺼내지 않았으니까, 활동 중에 함부로 건들면 안 돼.
그리고 지휘관님에겐...
알고 있어요. 카리나 씨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모두에겐 비밀을 유지하고, 아무거나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당부할게요.
통신 종료.
음... 그럼 장소도 마련됐네.
이제 남은 건, 필요한 소품들... 다 구매했어.
좋아, 다 준비됐다! 이제 핼러윈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지...
체크리스트를 전부 검사한 SAT8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이제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구나.
설마 이렇게 작은 규모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이 정도로 힘들 줄이야... 전부터 활동을 조직하던 인형들이 존경스러워지네.
하지만...
SAT8은 탁상의 체크리스트들을 가지런히 모아 정리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 활동 계획과 준비는 거의 다 나 혼자서 해냈어.
이제 나도 한몫하는 어엿한 인형이 됐다는 뜻이겠지?
핼러윈 전야.
SAT8이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으으... 어떻게 된 거지?! 여긴 또 어디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야아아!!
SAT8! 정신 차려!
지금 나도 같이 있어! 진정해!
......
SAT8은 혼란스런 마음을 다잡고, 브렌과 함께 전자 공간의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괴담에 놀란 건 그렇다 쳐도, 이번엔 어딘지도 모를 전자 공간 속에서 길을 잃어 버리다니...)
(주최자인 내가 이런 추태를 보여서... 브렌 씨도 분명 화가 났겠지...)
(으음...)
(이렇게 계속 조용한 것도 어색하니까, 아무 말이라도 걸어보자.)
참 커다란 극장이네요.
그렇군.
...앗!
SAT8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려는 것을 브렌이 붙잡았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호박 장식에 발이 걸린 것 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많이 가져오지 않는 건데...
물론 알 수 있었을 리가 없지만요, 하하...
너... 정말 괜찮은 것 맞아?
그리폰의 엘리트 인형인 만큼, 이런 돌발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죄송해요, 폐를 끼쳤네요... 침착하도록 노력할게요.
(나도 참, 왜 이렇게 호박 장식을 많이 만들었을까... 오히려 움직이기 불편하잖아.)
(브렌 씨도 분명 화났겠지? 다 내 잘못이야...)
(어엿한 인형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네...)
몇 분 후.
복도의 끝에서, SAT8과 브렌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을 보았다.
온갖 물감이 뒤섞인 것 같은 색깔에, 형태마저 흐물흐물 끊임없이 바뀌는 물체였다.
반투명한 환영 같은 그것은, 인간이라면 낼 수 없을 날카롭고도 음침한 소음을 냈다.
SAT8은 귀를 막아보았지만, 그 소리는 마인드맵에 직접 울려 퍼졌다.
확실히, 네 말 대로 심상치 않은 것들이군...
전자 유령...
도망쳐, SAT8! 놈들이 온다!
전자 유령들이 브렌과 SAT8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브렌은 한 손으론 유령들을 뿌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론 SAT8의 손을 꽉 붙잡은 채 어두운 복도를 질주했다.
정말로 네 말처럼 불행이 찾아왔네.
죄, 죄송해요...!
제가 책임지고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게요!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건 내 책임도 있어...
아무튼, 빨리 달려! 놈들에게 붙잡혔다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
두 인형은 복도를 따라 쫓아오는 유령들을 간신히 뿌리쳐 내고 있었다.
SAT8, 뒤를 조심해!
아차... 위험해!
삐익.
브렌! SAT8!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 말이 들리나요!?
어디선가 신호가 흘러들어왔지만, 곧바로 희미해지면서 잡음과 함께 사라졌다.
브렌 씨, 방금 그거 들었어요?
나도 들었어. 누군가 우릴 부르는 것 같았는데.
방금 그건 분명 FAMAS 씨의 신호예요. 이번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은 인형인데...
아! 어쩌면 다들 저희가 실종됐다는 걸 눈치챘나 봐요! 곧 구조대가 도착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를 바라지.
SAT8과 브렌은 복도 끝의 문을 열었다.
...아까 그 극장으로 되돌아온 건가?
똑같이 생기긴 했지만, 좌표가 전에 있었던 극장과는 달라요.
여기에 유령은 없는 것 같군.
다행이네요. 그럼 여기서 잠깐 쉴까요? 그런 다음 다시 출구를 찾아볼게요.
...수고하네.
수고라 할 만한 일도 아니에요. 모두 그리폰의 동료인데...
그런가...
음, 그럼 브렌 씨에겐 사주경계를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실수해선 안 돼! 반드시 브렌 씨와 함께 무사히 탈출할 거야!)
(좋아, 데이터베이스 검색 개시...)
......
(로그아웃 가능한 노드는 어디에 있지...)
SAT8! 놈들이다!
네?!
무수한 전자 유령들이 극장의 벽을 통과해 들어와, 두 인형을 에워쌌다.
제길, 수가 너무 많아!
SAT8, 출구는 찾았어?
아, 아직...
그럼 강행돌파할 수밖에 없겠군... 우선 안전한 곳부터 찾아!
하지만 당분간 따돌린다 해도 또 따라올 텐데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SAT8은 주위를 둘러보던 중, 몇몇 유령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호박 장식 곁을 맴도는 것을 눈치챘다.
설마...
SAT8, 다른 방법이 있어?
저 애들, 호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브렌 씨, 이 호박을 있는 힘껏 멀리 던져봐요!
쳇... 왠지 우스꽝스럽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자, 이 호박이나 먹고 떨어져라!
브렌은 SAT8의 호박 장식 하나를 힘껏 내던졌다.
그러자, 점점 둘을 향해 다가오던 유령들이 방향을 틀어 호박 장식을 쫓아갔다.
좋았어, 나머지들도 이렇게 따돌려 버려요!
......
SAT8과 브렌의 호박 투척 덕분에, 주위를 에워싸던 전자 유령들을 모두 따돌릴 수 있었다.
그틈을 타서 두 인형은 극장을 벗어나, 근처의 창고처럼 생긴 방에 다다랐다.
여기서 계속 출구를 찾아볼게요.
하지만 제 전자전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아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괜찮아... 지금은 시간이 넉넉한 것 같으니까.
아, 그리고...
SAT8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에 아직 남아 있던 호박 장식을 옆의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뭐야, 지금 출구를 찾는 거 아니었어?
네, 지금 검색 프로그램을 돌리는 중이에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브렌 씨가 심심하실 거 같아서요.
지금 여기서 핼러윈 이벤트를 계속할까 하는데, 어떠세요?
너 말이야... 이럴 땐 일에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제 전자전 성능으론 이 정도가 한계인걸요. 이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엘리트 인형은 하나같이 참 제멋대로군...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일에 집중하지 못할 거 아니야.
헤헤... 이제 안전하고, 따로 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럼, 중단된 곳부터 이어가면, 이제 제가 이야기할 차례죠?
그런데, 그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면서 괴담을 할 담력은 있는 거야?
저, 절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니에요?!
이벤트에 참여한 이상, 각오는 진작에 했다고요!
그래그래, 그럼 그 각오라는 걸 보여줘 봐.
네! 이건, 어느 섬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예전에, 어느 섬이 있었어요. 인간들에게 전염병이 돌 때면, 환자들을 보내 격리하고 치료하는 섬이었죠.
전염병이 심각할 때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인데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 섬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거리를 넘어서, 마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것처럼...
......
(잠깐만... 방금 그 유령들의 소리도 그런 느낌이었지...?)
저기... SAT8, 네 손의 그 호박을 쥐어 터뜨릴 셈이야?
아, 아직 안 끝났어요!
전염병이 잠잠해지자, 그 섬도 점점 잊혀져갔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호기심으로 가득찬 한 미스터리 프로그램 촬영팀이 그 섬에 상륙했어요.
황폐해진 섬에서의 탐험을 생방송했는데, 촬영팀의 멤버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마지막엔 그 생방송마저 끊겼어요.
그리고, 그 후로, 그들을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SAT8, 너 안색이 좀...
SAT8? SAT8!
...꺄아아아아악!
좀 진정해, SAT8!
정말이지... 자기가 한 괴담에 자기가 놀라는 녀석이 어디 있어?
......
그 후, 다시 진정된 SAT8은 전자 공간의 출구를 찾아내었고, 브렌과 함께 현실 세계로 무사히 돌아왔다.
핼러윈 당일.
...휴우, 다 됐다.
예정대로, 어제 남은 호박을 남김없이 다 간식으로 만들었어.
에휴, 딱 이것만 계획대로 진행됐네.
가서 모두를 대접해야지. 어젠 진짜 힘들었어...
SAT8은 완성된 호박간식을 가방에 넣고, 주방을 나섰다.
지금쯤이면 모두 카페에 있겠지?
브렌 씨도 있을까? 어제의 일을 모두에게 말하진 않았으려나...
아이, 창피해! 내가 한 괴담에 내가 겁먹다니, 그게 무슨 꼴이람...
SAT8은 온갖 고민을 떠안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 문 앞.
어찌됐든, 결과를 마주봐야 해.
어엿한 인형으로서 용기를 내는 거야!
SAT8은 스스로 기운을 넣고, 카페의 문을 열었다.
음? SAT8이구나. 어쩌다 이제서야 왔니?
지지지지휘관님?!
왜왜왜 지휘관님이 여기 계세요?!
어... 그냥 좀 쉬러 왔어. 온 김에 다른 애들 몇 명이랑 얘기도 나눴고.
그러다 너도 핼러윈 축하 파티를 하러 온다고 들었어.
(다행이다, 지휘관님은 그저 우연히 오신 것 같네...)
(다른 인형들이 어제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면 좋겠는데...)
아... 네, 확실히 약속했어요. 모두에게 줄 간식을 준비하느라 좀 시간이 걸린 거예요.
여기, 제가 만든 호박파이예요. 드셔보실래요?
나야 좋지. 어디 맛 좀 볼까... 오오! 정말 맛있는데?
지휘관님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과연 SAT8이야. 동료를 잘 배려해주는구나.
이, 이런 건 별거 아니에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인걸요.
아무튼,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카페의 다른 애들을 잘 부탁해.
너라면 애들이 사고 치지 않고 핼러윈을 잘 보내도록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네, 알겠습니다~ 그 기대에 반드시 부응할게요!
지휘관이 떠났다.
으으... 지휘관님이 이렇게나 믿어주시다니, 왠지 좀 부끄럽네.
난 아직 한참 멀었는데...
하지만, 지휘관님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힘내야지!
좋았어, 핼러윈 파티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SAT8은 카페에 성큼 발을 내디디며 외쳤다.
여러분, 호박파이를 가져왔어요~! 맛은 지휘관님도 맛있다고 하셨답니다――
다 함께 나눠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