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탄절
G36
으음...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하면 소체의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해.
그런데,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네... 누가 불을 끈 거지?
우선 수복 캡슐의 덮개부터 열고...
G36은 캡슐 덮개의 무게를 생각해 힘껏 밀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다시 보니, 그건 캡슐의 덮개가 아닌 골판지였다. 힘을 너무 준 탓에, G36은 갇혀 있던 곳에서 튀어나와 눈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어...? 눈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 기지의 수복 캡슐 안에 있었을 텐데... 어째서...
G36은 눈을 찡그리고 뒤를 돌아봤지만, 여전히 시야가 흐릿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녀에게 딱 맞는 안경이 옆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쓰고 나서야 G36은 또렷하게 볼 수 있었어요.
놀랍게도, G36이 나온 곳은 수복 캡슐이 아닌, 눈 속에 파묻힌 선물 상자였습니다.
으... 머리야...
조금만 연산을 하려 해도 머리가 아프네... 왠지 머리가 나빠지는 것만 같아...
G36은 제자리에서 일어나 그 선물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어서도 안 돼. 어서 기지와 연락을 취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자.
G36은 자그마한 손을 꼬옥 움켜쥐고 결심하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G36은 눈 속을 헤쳐나가려 했지만, 짧은 팔다리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날은 점점 저물어 갔고, 매서운 바람 소리까지 맴돌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어째선지, G36은 자신의 의식과 사고가 점점 무뎌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아... 추워... 그리고 배고파... 응?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가 부르르 진동하며 빛을 내뿜었어요.
G36이 조심조심 바구니를 덮은 천을 들춰보니, 안에는 빛나는 지팡이 사탕과 겨울용 옷이 들어있었습니다.
...사탕으로 열량을 조금 보충할 수 있겠지.
가능하면 제대로 된 먹거리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대답하듯, G36이 먹으려고 집어 든 사탕이 번쩍 빛을 뿜었습니다.
G36의 시야가 다시 돌아오자, 어머나!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이 나타났어요.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래도, 먹을 게 생겨서 다행이야.
아, 바구니에 수저도 있네! 다행이다, 빨리 먹고 힘내야지...
저기요, 거기 예쁜 언니... 저, 먹을 것 좀 나눠주실 수 있나요...?
어? 요정이 왜 이런 곳이 있는 거죠...?
저도 몰라요... 오늘은 엄청 춥다는 것밖에 모르겠어요...
뭐라도 먹지 않으면, 꼴까닥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럼, 같이 이 통닭을 먹어요.
와아! 정말 고마워요!
요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커다란 통닭을 게 눈 감추듯 꿀꺽 먹어치워 버렸어요.
어, 벌써?!
("같이"라고 했는데, 내 몫까지 먹어 버렸어...)
(그런데, 요정은 홀로그램 아니었나? 어떻게 저렇게 많이 먹는 거지?)
꺼억~ 잘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예쁜 언니!
으... "좀"이라고 했으면서...
네?
아뇨... 배부르게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언니, 저 숲속에 저처럼 불쌍한 요정들이 잔뜩 있어요!
괜찮으시면, 저 애들도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네? 조난당한 요정들이 더 있어요?
(어쩌면, 기지로 돌아가는 길을 아는 요정이 있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안내해 주세요!
덜덜덜덜덜... 아이 추워! 이대로라면 얼어 죽을 거야!
이쪽이에요, G36 언니! 이쪽으로 가면 저희의 대장이 있어요!
응? 목소리가 들리네. 거기 누구 있어?
아, 찾았다. 역시 다른 요정이 있었군요.
우와아~! 나 좀 도와줘! 돈! 돈이 필요해! 불을 지필 게 다 떨어졌거든!
어제 마지막 남은 돈다발을 다 태워 버려서, 지금은 불에 타지 않는 금괴밖에 남지 않았어!
대장, 지금은 돈다발보단 다른 걸 요구해야 할 상황이라고 보는데요...
그렇다면, 차라리 따뜻하게 입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털양말이라던가...
이번에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G36의 사탕 지팡이는 다시 빛을 내뿜었어요.
이윽고, 조금 커다랗긴 하지만 요정이 들어가기에 적당한 빨간 양말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오오오! 내가 쏙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야! 우와, 따뜻하다! 마치 이불 속에 들어간 거 같아!
대단해! 그거,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주는 요술 지팡이야? 네가 바로 전설의 그 산타클로스구나!
아뇨, 사실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것보다, 그리폰 기지가 어디 있는지 혹시 아세요?
기지? 그리폰? 가서 뭐 하려고?
아직 끝마치지 못한 임무가 있거든요. 빨리 기지로 돌아가야만 해요.
참 이상한 녀석이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구? 이런 날까지 임무 타령하는 인형이 다 있네...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 난 그런 거 잘 모르니까.
그렇군요... 알겠어요, 다른 요정에게 물어볼게요.
절 따라오세요! 지금 곤경에 처한 요정이 있는 곳을 알아요!
그 애는 언니처럼 임무에 충실하니까, 아는 게 있다면 분명 흔쾌히 대답해줄 거예요!
수호 요정과 G36은 숲속을 계속 나아갔습니다.
오랜 시간을 걸은 끝에, 아침이 밝고 나서야 눈 덮인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용사야, 빨리 나와!
빨리 안 나오면 크리스마스가 다 끝나 버릴 거야!
아니, 아직이야! 찰리는 어디 있지? 게릴라 팀은! 내 화염방사기는 또 어디 있고?!
갑자기 눈으로 뒤덮인 언덕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더니, 기합이 잔뜩 들어간 외침과 함께 속에서 드론이 튀어나왔어요.
저기, 당신이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난 지금 찰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땅속이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찰리...?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명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G36이 사탕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번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전구 고리가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딱 요정이 목에 걸만한 크기였어요.
오오! 아주 좋아, 딱 내가 원하던 거로군!
이것만 있으면 땅굴 속에서 찰리를 찾아내 해치울 수 있어!
고맙다, 전우여! 나는 다시 임무에 복귀하겠다!
잠깐만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G36이 용사 요정을 불러 세우기도 전에, 드론은 홀로그램을 띄운 그대로 다시 눈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못 물어봤네... 근데, 찰리가 대체 뭐예요?
땅속에 숨은 토끼가 바로 찰리예요. 쟤는 지금 그 토끼를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요정의 사고방식은 도통 모르겠네요.
저도 동감이에요.
언니는 지금 그리폰 기지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거죠? 그럼 따라오세요, 알고 있을 만한 요정을 또 한 명 알아요.
더 이상 기대하진 않지만...
하지만...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민간용 인형의 본능이에요!
그렇게, G36은 다시 요정을 따라갔습니다.
푸하하핫! 뭐야 저거, 이런 날씨에 순록 같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아~ 너무 웃겨, 아하하하하하!
너, 자꾸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 해체실로 끌려가도 모른다?
뭐 어떡하라고. 내 설정이 이런데, 어떻게 고쳐? 꺄하하!
그리고, 크리스마스인데도 선물도 없지, 같이 놀 사람도 없지! 이딴 명절을 만든 녀석은 확 불타 죽어야 해!
이렇게 따분한 명절인데, 남을 비웃는 것 말고 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럼... 제가 선물을 드릴게요.
심심할 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면... 이런 거 어때요?
G36이 사탕 지팡이를 휘두르자, 리본과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가 빛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이건 또 뭐야? 어디어디...
엄마얏! 어우 깜짝이야, 뭐야 이거? 깜짝 상자야? 안에는 뭐가 들었어?
어... 저도 안에 뭐가 든 건지는 모르는데요...
하하하! 뭐, 상관없어! 이거 갖고 다른 애들이나 놀래켜야지!
벌써 녀석들이 깜짝 놀라 뒤집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야호!
어, 야! 잠깐 기다려!
도발요정도, 수호요정과 G36이 불러 세우기도 전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못 말려, 뭘 물어보기는커녕, 감사하다고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 버리다니!
괜찮아요. 보답이나 감사를 바라고 온 게 아니니까요.
메이드 인형으로서,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제 의무예요!
하지만... 더는 도저히 못 걷겠어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으니, 이번엔 나를 위해 써봐야지!
음... 좋아, 지팡이로 먹을 것을 만들어 내자!
G36은 사탕 지팡이를 휘둘러,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을 만들어 냈어요.
잘 먹겠습니... 어라?
하지만, 음식들은 집으려 해도 손이 그대로 통과될 뿐이지 뭐예요?
어, 어라?
이거 전부 홀로그램이었어...?
사탕 지팡이가 만든 선물과 음식들은 전부... 환상이었던 말이야?
그럼 여태까지 다 헛수고였단 거야...?
G36은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마지막 기운마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죠.
결국 서 있을 힘도 없어진 G36은, 눈 위에 주저앉아 슬프게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언니, 무슨 일이에요? 누가 괴롭혔어요? 왜 울고 있어요?
어, 여러분은... 제가 도와줬던 요정들인가요...?
뭣이? 감히 내 전우를 울린 놈은 누구냐! 내가 친히 뼈와 살을 분리시켜 주마!
네 선물을 받고도 아무 보답도 하지 않는 건 좀 부끄러워서 말이지.
그래서, 다들 저마다 숨겨뒀던 보물을...
뭐, 보답이라곤 해도 우리 같은 요정들은 쓰지도 못하는 쓰레기니까 말이야, 꺄하하핫!
요정들은 드론의 힘을 합쳐 나무 상자를 끌고 와, G36에게 보여주었어요.
상자 안에는 탄약과 전지, 보존식 등, 당장 필요한 보급품으로 한가득이었어요.
이건...! 여러분, 정말 고마워요! 다 제게 필요한 것들이에요!
다 언니가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에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기쁨도 두 배니까요.
하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돌아가는 길?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의 모든 길은 이 숲속 광장으로 통하는데.
네?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 말처럼 정말로 모든 길이 다 이곳으로 통한다면, 왜 다른 인형들은 안 보이는 거죠?
말한 그대로야.
네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든지 간에, 결국 여기로 오게 되어 있지.
왜냐면, 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그것도 G36, 너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이브야.
그렇군요. 그런... 거였군요...
G36은 눈물을 닦고 일어섰습니다.
요정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저는 꼭 돌아가야만 해요.
야, 잠깐만 기다려 봐! 아직 네가 깜짝 상자에 놀라는 모습을 못 봤단 말이야!
함께 적의 잔당을 소탕하지 않겠나, 전우여? 분명 아주 재미있을 거야!
정말로 갈 거예요, G36 언니? 왜 그렇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려고 해요?
오늘 밤은 저희랑 같이 파티를 즐겨요!
왜냐하면...
...저는 그리폰을 위해 일하는 메이드 인형이니까요.
G36은 작은 발걸음으로 요정들이 선물한 상자에 다가갔어요. 하지만 작은 몸집과는 달리, 눈빛은 자신감과 결심으로 반짝였답니다.
인형은 타인을 돕기 위해 태어났어요. 저 혼자 이렇게 많은 선물을 독차지할 수는 없어요!
저에겐 이 선물들을 모두에게 나눠줘야만 진정한 크리스마스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부탁이에요! 저를 그리폰 기지로 돌려보내 주세요!
흐음... 그러는 걸 보니, 완전히 결심을 굳힌 모양이구나.
알았어, 돌려보내 줄게.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 전우여! 너도 우리를 기억해다오!
파티 도중에 떠난다니 거 참 무례한 짓이네!
그래도 뭐, 오늘은 실컷 놀았으니 됐어.
다들 준비됐어? 하나~ 둘~!
O Tannenbaum, O Tannenbaum~
(고마워요, 여러분... 모두 정말 고마워요...)
요정들은 G36과 선물 상자를 둘러싸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러주었습니다.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G36은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아, G36. 일어났구나?
음...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제가 왜 수복실에서 깨어난 거죠?
기억 안 나? 하긴, 요새 크리스마스네 뭐네 하면서 일이 참 많긴 했지.
그리고... 너도 참 한결같구나. 크리스마스 물자 운반 도중 팔이 깔려 망가지고 정신까지 잃다니 말이야.
네가 또 수복실로 실려 갔다고 들었을 때, 과연 G36다운 불행이라는 생각마저 들더라니까?
그랬군요. 그럼, 당장 준비 작업에 복귀하겠습니다.
아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내가 한발 앞서서, 크리스마스 준비 작업을 전~부 분담해놨어. 지금 네가 거들 일은 없다구.
그렇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FN57 씨.
괜찮아 괜찮아, 나도 얻은 게 있었으니까.
방금 막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난 참이야. 파티에 먹고 마실 게 잔뜩 있으니까, 지금 간다면 늦지는 않을 거야.
FN57이 G36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아... 그전에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FN57 씨는... 꿈을 꿔본 적 있으신지요?
뭐야, 잠 덜 깼어? 인형이 꿈을 꿀 리가 없잖아.
그럼... 요정은 어떤가요?
어째 너답지 않게 초조한 표정이네... 글쎄, 자세한 알고리즘은 지휘관에게 부탁해서 16LAB에게 문의해봐야겠지만...
적어도, 요정은 우리 인형보다는 단순하잖아? 덜하면 덜했지, 더하진 않을 거야.
우린 그저 무의식중에 시스템 자가진단을 할 뿐이야.
자가진단... 말인가요?
그래, 고장 났을 때 고쳐야 하는 건 몸뚱이뿐이 아니니까.
저는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저만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낸 것 같습니다.
FN57이 실눈을 뜨고 G36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흐음...? 그거 좋은 일이네. 우리가 겪는 일은 전부 마인드맵 성장에 기여하니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단순한 환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상관없겠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잠깐만, 주머니에서 뭔가 삐져나와 있는데?
네?
FN57 지적해주고 나서야, G36은 허리의 탄입대에서 반쯤 삐져나온 지팡이 사탕을 눈치챘다.
무엇이든 이루어주던 그 사탕 지팡이와 똑같았다.
아아아아아! 이런 명절날에 우리한테 보급품 운반을 시키다니! 요정권은 없는 거냐!
그 입 다물라, 병사! 오늘 흘린 땀이 많을수록 내일 흐를 피가 적어진다는 것을 모르나!
G36은 콜라를 비롯한 간식이 담긴 보급 상자를 끌고 크리스마스 파티장으로 이동하는 요정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 확실히, 인형은... 꿈을 꾸지 않죠.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깨어날 수 없는 꿈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과 함께 미소짓는 G36을 보며, FN57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