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방울
AK74U
세상 모두가 아는 것 하나...
그건 바로, 이 세상은 커다란 우연 하나와 자잘한 오류 잔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AKS! AKS, 일어나! 얼른!
74U, 일어나. 74U.
오늘 임무 있잖아.
우리는 우연히 만났다.
시간이 없어, 91. 초강수를 쓰자!
그 우연을 빼면, 전부 오류뿐이다.
느아아아악!
내 눈! 내 누우우운!!
그러게 빨리 일어났어야지, AKS! 오늘 임무가 있으면서 아직도 자고 있으면 어떡해?
그렇다고 전등을 모조리 켜면 어쩌자는 거야?! 시각 모듈이 터질 뻔했잖아!
이렇게라도 안 하면 74U는 안 일어나잖아. 빨리 준비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어휴, 대체 몇 시인데 그래...
...뭐야, 아직 시간 좀 있네.
10분밖에 없는데, 옷 안 갈아입어?
안 되겠어, AS VAL. 우리가 갈아입혀 주자.
뭐?! 야, 잠깐...
으앗, 추워! 너무 빨리 벗기지 마―― 야 야 그건 안 벗어!
......
에휴... 그러니까 AKS한테 맡기면 안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임무를 맡은 건 74U인걸. 어쩔 수 없잖아...
그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기는 무슨...
너희가 직접 임무 받기 싫다고 멋대로 내 이름 적어 넣은 거잖아.
그렇지만, 우리들 중에서 명절용 옷을 준비한 사람은 74U뿐이잖아.
맞아. 우리도 정말 참여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맞아, 어쩔 수 없었어.
웃기고 있네!
그리고, 이 옷도 그냥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쓰던 명절 옷이라고.
빼먹은 부분도 있는데 이거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무렴 어때. 아, 헤드셋 챙겨. 이번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도구야.
이제 됐다, 91한테도 보여줘.
자. ......보기 어때?
그럭저럭.
가까스로 합격이라고 쳐야겠지.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진심을 말해줘?
아니, 됐어. 괜히 부끄러울 것 같아.
하지만 차려입은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인삿말도 잘 해야 하는 거 맞지? 어... 그러니까, 해피 뉴 이어?
촌스러워. 내가 더 멋진 말을 가르쳐 줄게.
뭔데?
"만사형통하기를 기원합니다!"
뭐야 그거? 어느 나라말이야?
56-1식이 가르쳐 준 말이야. "당신의 만 가지 일이 전부 바라는 대로 풀리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이래.
응, 오늘 밤 만나는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는 거야. 개성적이라고 추가 점수가 붙겠지?
하아... 그런 말은 오히려 나 자신한테 먼저 말해주고 싶네. 만 가지 일이라... 다 내 마음대로 풀릴 리가 없잖아.
오늘은 일어나면서부터 "만사형통"하지 않았는데.
그나저나, 통신기는 준비됐어? 통신 잘 돼?
신호 양호해... 아직은.
어제 테스트할 때 기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는데, 임무 완수할 때까지 버틸 수나 있겠어?
네가 동료의 데이터를 꾸준히 업데이트했다면 이런 걸 준비할 필요도 없었어.
아... 그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아무튼, 통신 부탁할게. 이제 출발할 테니까, 상황 발생하면 빨리 대응해줘. 괜히 실수하긴 싫으니까.
........
AKS-74U는 숙소를 나서 다른 기숙사로 향했다.
...다행이다, 아직까진 신호 정상이야.
AKS, 다른 동료 만났어?
아니, 아직까지는 꽤... "만사형통"이네.
74U, 우리의 임무는 동료를 만나서 새해 인사를 전하는 거야.
야 이 방구석 여포들아, 그럼 너희가 직접 해봐. 세 마디도 말 못 하고 마인드맵에 블루스크린 띄울 애들이 참.
아니, 9A91은 다섯 마디 정돈 할 수 있으려나? 대신――
아, 왔다 왔어.
왜 그래, AKS? 누구랑 마주쳤어?
키 크고, 긴 갈색 머리에 빨간 눈, 콘서트라도 나갈 것 같은 옷. 저거 누구야?
빨리빨리, 저쪽이 눈치챘어!
그 특징에 부합하는 건...
다른 특징은 없어?
가슴 사이즈는 나만하고, 번개 모양 머리핀 3개. 빨리! 다가온다!
오우, AKS-74U! 안녕!
와, 옷 좋은데? 정말 잘 어울려.
오늘을 위해서 준비한 거야?
어... AKS-74U?
어...
M21, 그냥 M21이라고 부르면 돼.
아...! M21 씨! 어, 그러니까...
해, 해피 뉴 이어!
하하, 고마워.
하지만 우리 새해는 진작에 지났어. 오늘은 "그 녀석들" 새해야. 스타일도 많이 다르더라.
아 네네, 그렇네요.
어... 그래도... 명절을 즐기자는 마음은 똑같잖아요?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네...
저기 M21, M1911을 그냥 내버려 둘 거야? 또 잔뜩 취한 모양인 거야. M14랑 다른 애들도 술주정을 못 말리겠는 거야!
으억??
취했다고? M1911이? 그 녀석 주량 꽤 되지 않아?
"보기에"만 그런 거야! 그 할망구, 지휘관만 보면 그러는 거야...
큰일이야, 키가 엄청 작은데다 계속 M21 뒤에 있어서 있는지 몰랐어!
74U, 어떻게 생긴 인형이야?
키가 엄청 작고, 금발에, 카지노 걸 같은 복장에, 가슴은...
...AS VAL 정도이려나?
빨리빨리! 아직 저 둘이 대화하는 틈에...
그애 이름은... 치지직...
그리고 그거 뽕이야, 내 거가 진... 치이익....
망했다!
74U, 지금... 치직... 치지직...
이제 몇 잔만 더 마셨다간 1911 녀석 속옷까지...
어라? 얜 누구인 거야?
AKS-74U야, M9. 지난번 철수 작전 때 크게 활약한 인형이라고 톰슨이 말했잖아.
아, 안녕 M9. 그게, 그... 새해 복 많이 받아!
안녕, AKS-74U!
우리 숙소에 온 걸 환영하는 거야! 좀 놀다 갈 거야? 마침 지휘관도 같이 있는 거야.
그래그래, 내가 웃긴 얘기도 해줄게!
아니, 괜찮아요. 지금은 임무 중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거든요.
아, "인사 돌리기 행사" 말이구나? 조금 전에 들었어. 꽤 많은 소대가 참여했다더라.
헤에, 재밌어 보이는 거야!
그런데, 너 신입인데 누가 누군지 다 알긴 하는 거야?
어... 그야... 물론이지. 난 머리 좋으니까, 걱정 마!
그럼 휴일 잘 즐기시고, 저는 이만!
너도 새해 복...
...가 버린 거야.
저 녀석, 왠지 우리랑 거리를 두려는 것 같은 거야.
그래도 꽤 재밌어 보이는 녀석인데?
흐음... 너도 쟤도 어리바리한 게 어울리긴 하는 거야.
하하, 너무 비슷한 사람들 끼린 오히려 잘 안 맞는 법이야.
특히나 이런 명절날엔...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잖아?
......
여보세요, 내 말 들려? 9A91, AS VAL?
AKS, 괜찮아?
방금 통신기가 맛이 가서, 9A91이 세게 한 대 치니까 겨우 고쳐졌어.
어찌어찌 넘어갔어.
어휴, 인형들이 너무 많아서 구분하기 정말 힘드네...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어디 어디...
치직... 치지직...
어, 설마 또...
치직... 미안해... 치익...
너무 세게 쳤나봐... 치익...
퍼엉!
무슨 소리야! 설마 폭발한 거야?!
저기, 91? AS VAL? 대답해!
이게 누구신가, 74U잖아!
우왓?!
너, 너는...
헤헤, 새해 복 많이 받아. 뭐, 우리 새해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컷 마실 수 있는 날이면 아무래도 좋지!
네가 안 마시는 날이 있기는 하냐...
응? 74U, 왜 그래?
어... 그게... 어어... 음... 새,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물쭈물 뭐라는 거야? 똑바로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라고.
어?! 그, 그럴 리가... 제대로 말했는데...?
어허, 선배한테 그런 태도는 못 쓰지, 74U.
자자 동지, 보드카 한 잔 적셔!
아, 아니 됐어...
(잠깐, 무슨 술이 냄새가 이래? 공업용 알코올 아니야?!)
어머나 74U, 설마 술 못 마시는 거야?
쟤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거기 둘, 적당히 해.
일 보러 잠깐 한눈팔았더니 그새 나와서 말썽을 부리고 있네.
에이, 모처럼인 날인데 어때! 그리고 난 AK47이 나가자 해서 얘가 사고 치진 않나 지켜보고 있는 중인걸?
시모노프 넌 오히려 내가 사고 치길 기대하고 있겠지.
그리고, 명절은 원래 사람한테 술을 먹이는 날 아니야?
미안해, AKS-74U. 우리 머저리 두 명이 귀찮게 했네.
지금 인사 돌리는 중이지?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자.
그럼 우리는?
너네는 집에나 가. 스텐이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잘 대접하라고.
참, 92식이 그랬는데, 스텐이랑 AAT52한테 억지로 술을 한 방울이라도 먹였다간... 너희 둘로 술을 담궈 버린댄다.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어. 마카로프의 친구는 내 친구니까, 안심하고 맡겨만 달라고.
그럼 나중에 봐요 우리 교관님. 74U도 안녕!
잘 가! 나중에 시간 나면 한잔하자!
시모노프랑 AK47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안녕!
......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이번에는... FAL네 숙소일까나.
어떻게 가는지는 알아?
지도는 있지만...
어느 방인지, FAL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어? 그건...
내 이름은 뭐야?
어...
에이, 들켰구나?
네가 AS VAL이랑 91하고 통신하는 걸 들었어.
응... 누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건 너무 창피해서 그렇게 했어.
참고로, 난 마카로프라고 해.
안녕, 마카로프. 새해 복 많이 받아.
아... 그리고 미안해. 전에 중상을 입어서 메모리가 좀 손상됐는데, 아직 모두의 데이터를 갱신하지 못했어.
흐응~? 정말로?
네가 제멋대로인 녀석이란 것도 알고 별로 상관도 없지만, 동료 중 누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다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거야.
적어도 같은 숙소에서 사는 애들 이름은 다 기억해야 하지 않겠어?
난 고정 배치된 소대가 있고, 파트너도 몇 있거든. 파이슨이라든가 걔네 말이야, 알지? 데이터야 임무 받을 때 갱신하면 되니까.
다른 이유라도 있어?
있기는 해. 딱히 중요한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 어차피 당사자는 너니까.
그래도 이번 인사 돌리기는 내가 도와줘도 되겠지?
어? 마카로프 너 정말 소문대로 친절한 인형이었구나?
지금 네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할 거 아니야. 나도 일부러 다른 사람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면서 비웃는 인형이 아니고.
따라와.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돼.
......
Five-seveN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 Five-seveN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머, 마카로프네? 그리고 넌 74U 맞지?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리 대장 아가씨 FAL은 아직도 화장하는 중이라서, 내가 대신 나왔어.
아니, 화장을 아직도 해? 지금 지휘관은 톰슨네에서 M1911이랑 한바탕 난리던데.
그러게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전력투구할 때인데 뭐 하는 거람.
뭐, 그래도 난 상관없어. 오늘 밤은 내 마음대로거든. 후후후...
49, 가서 선물용 초콜릿 좀 가져와. 아 참, 두 번째 것부터 꺼내. 제일 위에 건 FNC가 몰래 뜯어서 먹었어.
(이 소대는 왜 다 이상한 인형들뿐이지...)
......
네게브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게브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린 딱히 새해 인사용으로 준비한 게 없는데.
엥, 정말로?
그냥 주문한 옷이 제때 배달 안 돼서 없는 거잖아.
그게 다 타보르가 배송료 아끼겠다고 그래!
어휴, 몰라 몰라. 대신 간식은 좀 만들었어.
네게브, 또 손님이야?
좀 이따가 들어갈 테니까, 등불 다 준비해줘. 우지도 곧 돌아올 거야!
(명절 준비하고 있네, 뭘...)
이 목소린... 소대에 누가 새로 들어왔어?
후훗, 그건 아니야.
정확히는... 복귀자라고 해야겠지.
들어와. 소개해줄게.
......
IWS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WS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앗...!
새해 인사하려는 사람이 왔어요, 모두 잠깐 멈춰주세요!
쯔모.
대삼원, 청일색, 문전청.
젠자아아아아아앙!!!
히이이이이이이잉!!!
안 되겠어, 선수 교체! 선수 교체!
너무 늦었습니다, SSG.
마카로프 씨, AKS-74U 씨, 두 분께도 충고해드리겠습니다. 이 문을 넘지 마세요.
아... 괜찮아요, 그냥 선물 드리러 온 거예요.
(이젠 뭘 봐도 놀랍지가 않네...)
......
호크, 새해 복 많이 받아.
호크, 새해 복 많이 받아.
잠깐, 74U. 너는 존댓말을 해야지.
앗? 미안해요, 몰랐...
에이 뭐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새해 복 많이 받으렴!
마카로프하고, 너는 74U 맞지? 어서 와 어서 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소시지 드시겠어요?
쳇, 설날이니까 오늘은 눈 감아 주지!
자자, 거기서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 앉아! 야 56-1식, 먹고 있지만 말고 가서 대장 보고 나오라 해!
......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선물을 다 나눠줬나 했더니, 먹을 걸로 다시 한가득이 되어 버렸네.
그래도, 이걸로 임무 완수지?
임무 목표치는 진작에 초과했어. 91이랑 AS VAL이 좋아하겠는걸?
모두를 기쁘게 해주려고 참여한 거 아니었어?
난 너처럼 인심 좋은 인형이 아니야. 난 내 친구를 위해서만 움직여.
데이터 갱신을 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지?
.....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AKS-74U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마인드맵엔, 약간 "불법"인 기억이 있어.
뭐,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고, 그저... 계속 남겨두기가 까다로운 기억이야.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다면, 바로 덮어씌워지겠지. 즉... 잊어버리게 될 거야.
지난 철수 작전 때의 일이지? 너도 그때 작전에 처음 투입됐으니까.
확실히, 그때의 내용은 검열이 더 엄격하긴 하지. 지금 우리는 과거의 그리폰이 아니야... 여러 가지로 단속 받는 게 많아졌어.
그게 우리 일이니, 누굴 탓하지는 않아.
그래도, 이 기억을 남길 수만 있다면... 약간의 대가는 치를 수 있어.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점점 불어난다는 것도.
응... 사실, 너희가 꽤 부러웠어.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맞아, "만사형통". 나만 빼고...
그 누구도 언제나 원하는 대로만 일이 풀리지는 않아.
저 인형들도 여러 괴롭거나 슬픈 일을 겪고, 그걸 넘어섰기에 지금 저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거야.
다들 너랑 똑같아. 넌 그저 받아들이는 게 조금 느릴 뿐이야.
그럼 넌 뭘 겪어봤어, 교관님?
......
작별.
......
작별이 뭔지 알아?
아니, 몰라.
"작별이란, 자신의 작은 일부가 죽는 것이다."
AAT52는 그렇게 말했어.
AAT52?
내 동료 중 하나야. 바보고. 그 말도 분명 어디서 배껴온 거겠지.
하지만, 걔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만의 논리가 있어. 게다가 다 옳은 말이지...
너무 옳아서 환장할 정도로.
...그 인형도 친구 때문에 그런 거야? 네가 아까 작별했다고 한 사람.
맞아. 그 녀석은 더 위험한 전장으로 떠나서, 더 듬직한 동료들과 함께, 더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고 있어.
가끔씩 연락은 하지만... 우린 이미 예전과는 달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AKU-74U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단지, 그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 좀... 시간이 걸리지.
창피해할 일도 아니야. 정말로 창피해야 할 건, 다시 만났을 때, 걔는 성장했는데 나는 제자리걸음이라는 거지. 아무 소득도 없이 잃은 것밖에 없어.
자아... 그럼 너는 무슨 케이스야?
나...?
글쎄... 난 우리가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걸.
넌 꽤 좋은 성능인 인격이 탑재됐어, 74U. 대다수의 인간과 인형을 속일 수 있는 인격을.
심지어는, 너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눈을 돌리든 부정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너 자신을 속이지는 마.
흐음...
왜 시모노프가 널 "교관님"이라 불렀는지 이해가 가네.
그냥 작은 충고야. 어쩌면 넌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지.
흥, 찾아내도 너한텐 안 알려줄 거야.
오늘 그렇게 요령 부리면서 인사 돌리는 걸 봐선 찾아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
아무튼, 난 먼저 가볼게. 그 크레이지 이반 둘이 숙소를 박살 내지 않았나 확인하러 가야 하니까. 너도 밖에 너무 오래 있지는 마. 추운 만큼 에너지 소모율도 커.
알았어...
마카로프, 잠깐만.
질문은 하나만 받을게.
"죽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마카로프가 뒤돌아보았다. 등불로 인한 그림자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약간이라면... 가끔은 괜찮다고 봐.
......
...........
어? AKS-74U 씨인가요?
어... 너는...
AKS-74U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후훗... 미안해, 아직 데이터 갱신을 안 해서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
괜찮아요, 전 MP5라고 해요! AKS-74U 씨 맞으시죠?
MP40 씨가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어요! 지금 인사 돌리러 가는 중이신가요?
아니, 난 다 끝내고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야.
그렇군요. 전 이제서야 출발해요. 오늘 밤에 참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래? 그럼 즐거웠어?
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제 애완동물을 찾아냈어요!
MP5는 그녀 옆의 인조 돼지를 톡톡 쳤다.
너도 "만사형통"이구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줄임말 같은 건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참...
MP5, 너 평소에 심부름 많이 하지? 군수지원 같은 거 말이야.
네, 왜요?
그럼 너 혹시...
혹시... HK416이라는 인형을 본 적 있어?
HK416...
네, 본 적 있어요. 제가 직접 보급품을 전달한 적도 있는걸요?
정말? 그 녀석 어딨는지 알아? 너희 숙소에서 살아? 그 녀석의 소식이 도통 없어서――
아... 416씨는...
지금 그리폰에 안 계세요.
뭐라고?
아마 사퇴한 거겠죠? 기지를 이전한 뒤로, 그 소대의 방이 없어졌어요.
...74U 씨, 무슨 일이세요?
......
뭐야, 그 자식...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결국 괜히 준비한 꼴이 됐네...
하하하, 오히려 운이 좋은 거라 해야 하나?
이렇게 엉망진창인 날에... 대가가 점점 지나치게 무거워져 가던 참에 알게 됐으니 말이야.
74U 씨,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아. 그냥, 갑자기... 나에 관한 일 중 하나가 알고 보니...
이미 내 바람대로 된 거였어.
새해 복 많이 받아, MP5. 그리고, 그 옷 정말 예뻐.
......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녀석과는 아주 잠깐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였어. 가장 길고도 위험한 길을.
하지만, 마지막 종점에서 녀석은 결국 따라오지 않았어.
아, AKS, 이제야 왔구나!
어땠어, 74U? "만사형통" 했어?
...74U?
......
드디어 깨달았어. 바로 지금이 내 최고의 순간이자, 최고의 결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만난 건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늘 겪은 수많은 만남처럼, 그저 우연에 불과했던 거야.
그건...
그 우연을 빼면, 모두 오류뿐이다.
이제, 한 가지만 남았어...
응? 무슨 한 가지?
AKS-74U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거. 데이터 갱신할 거니까, 동기화 좀 도와줘.
오, 드디어 체념한 거야?
애초에, 별로 대단한 고민도 아니었는걸. 이젠 작별해야지...
작별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잘 모르겠어.
그때 만난 것이 단순한 행운이었다면, 그 행운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해도 괜찮겠지.
후훗, 오늘 꽤 즐거웠나 보네?
그렇기에, 우연까지 오류가 되어 버리기 전에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래, 만사형통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반대로 한 가지 일이 만 번 잘 풀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