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진 마음
Mk23
그리폰 기지, 지휘실.
내 눈앞의 인형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과부하로 기능이 정지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그녀의 고양이귀를 꼬집었다.
꺄악! 아, 달링! 또 날 놀리려고 한 말이지?!
Mk23은 귀를 감싸 쥔 채 살짝 화난 얼굴로 나를 째려보았다.
아니, 정말 그런 임무야.
아무튼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웨이에 올라야 하니까, 가서 실컷 워킹 연습이라도 하렴.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임무 내용을 다시 확인시켜줬지만, 내 예상대로 환호하진 않았다.
그, 그럼 달링은...
물론 매일 보러 갈 거야.
와아! 달링 최고!
그럼 지금 당장 준비할게!
인형은 폴짝폴짝 뛰면서 지휘실에서 나갔다.
으음... 이거 녀석을 너무 골려먹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래도 즐거워하니 괜찮겠지...?
30분 후.
인형 숙소.
Mk23은 침대에 앉아, 기쁜 마음으로 발을 굴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Mk23은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모처럼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건 좋은데... 차출되는 건 나만이 아니잖아?
그럼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달링을 꼬시면 어떡하지?!
Mk23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방심했다, 이건 오히려 사상 최대의 위기야!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그녀는 눈을 번뜩이며 침대에서 뛰어내려 방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잠시 후, 매우 진지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좋았어, 달링 수호 작전 개시야!
달링은 절대로 다른 애들에게 못 줘!
당장 카리나한테 가서 참가 인원 명단을 구한 다음 대책을 짜야지...
...며칠 후.
패션쇼의 분장실.
리허설을 기다리며, Mk23은 분장실의 거울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장실에서 조사한 결과로 봐선, 아무도 달링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네...
얼마 전, 메이크업이 한창이던 분장실.
아! 죄송해요, 잠깐 언니 생각을 하느라 당신을 못 봤어요.
화장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언니의 조언을 떠올려도 봤지만, 역시 어렵네요... 촬영 때 정말 괜찮을지...
네? 지휘관님이요? 아뇨, 오늘은 못 봤는데요...
저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해주세요...
아, 야옹이구나? 벌써 화장 끝났어? 역시 너 같은 애가 화장하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네.
응? 지휘관은 아직 못 봤는데. 정말이지, 임무를 툭 던져놓곤 어디론가 사라지기나 하고... 지휘관이 매일 보러 오겠다 했다고? 음, 그럼 나중에 오겠지 뭐.
다시 현재, Mk23뿐인 분장실.
Mk23은 전술 태블릿을 꺼내 들어, 적어놓은 메모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지난 이틀간, 다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달링과 함께 웨딩드레스 사진을 찍는 일은 없었어...
얼마 전, 촬영이 진행 중인 스튜디오.
지휘관 말이냐? 내 알 바 아니다.
그것보다, 업무 중엔 업무에 집중해라. 너처럼 정신을 딴 곳에 둬서는 완벽한 경지에 이를 수...
쳇, 도망쳤나. 나중에 훈계가 필요하겠군.
어쩌면 좋지... 아무리 찍어도 만족스러운 효과가 나오질 않아... 표정도 계속 어색하고...
넷?! 이런 꼴을 어떻게 지휘관님께 보여줘요? 안 돼요, 분명 비웃음만 살 거예요!
오히려 지휘관님이 여기 안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다시 현재, Mk23뿐인 분장실.
Mk23은 귀가 처진 채로 거울 속 자신과 눈싸움을 했다. 지금 눈을 깜빡이면 당장에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여태까지 달링에게 손을 대려는 녀석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임무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왜 아무도 달링을 한 번도 못 본 거냐고!
어째서... 대체 왜... 전에도 분명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 약속했으면서... 말도 없이 사라지고...
분장실에는 여전히 Mk23 한 명뿐이었다.
공들여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곧 내가 리허설에 나갈 차례네.
일단 임무에 집중하자... 그래도 이렇게 중요한 순간은 달링과 함께 하고 싶은데...
달링 바보 멍청이...
그때, 분장실의 문이 열렸다.
Mk23은 약간이나마 기대하며 뒤돌아 보았지만, 방으로 들어온 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게파드 M1이었다.
아... Mk23도 있었구나... 안녕...
게파드는 기운 없는 소리로 인사했다.
너 기운이 없어 보이네... 무슨 일이야?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너무 힘들어서...
드레스를 입은 채로 사진을 찍고, 런웨이를 걷고... 쉽고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더니만...
어째선지 매일 기지에서 야근할 때랑 똑같은 기분이야.
그 느낌,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
응... 그래봤자 내 투정일 뿐이지만...
Mk23는 게파드를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히고, 그녀의 땋은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리고는 기운을 내어 해맑게 웃어 보였다.
너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은 마인드맵 속에 쌓아두기만 해서는 안 돼.
내 리허설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나한테 다 털어놔 봐.
...10분 후.
으으, 이게 다 지휘관 때문이야!
지휘관이 "편한" 일이라 속여서 이렇게 된 거라고...
어휴... 맞아 맞아, 다 그 사기꾼 달링 때문이야.
게파드는 고개를 숙이고서,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10여 분간 마음속 불평불만을 털어놓은 덕분에, 표정이 훨씬 나아진 것을 Mk23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게파드 너 드레스 입으니까 무――지무지 예쁘다.
응?
Mk23은 게파드의 어깨를 잡고, 거울을 향하도록 돌렸다.
넌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 안 해?
그건...
화장하기 귀찮지, 가장 좋은 장면이 나오도록 사진 찍는 것도 번거롭지, 게다가 디자이너가 원하는 느낌대로 보일 수 있도록 런웨이를 왔다갔다 해야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전장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 말고도, 우리 전술인형이 이렇게 또 다른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드물잖아?
게파드는 이 일은 계속 "부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개인적으로 조언해주자면, 반대로 "포상"이라고 생각해봐.
스스로를 위해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는 거야.
Mk23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넋 나간 표정으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게파드를 지켜보고 있자니, 어째선지 자신도 넋이 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바보같이...
달링에게 이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지금은...
"자기자신을 위해 즐거워져라"? 게파드를 위로하려고 한 말인데, 생각해 보면 또...
......
각자의 생각에 빠진 두 인형은, 살짝 열린 문 너머로 누군가 그들을 한참 동안 조용히 바라보다 떠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
런웨이 현장.
Mk23의 마지막 리허설이 시작됐다.
분장실에서 홀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적 없다는 듯이, 무대 위의 Mk23은 밝은 미소와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모든 현장 지도 담당 디자이너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수고했어, 아가씨! 그 컨디션만 유지하면 정식 무대에서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Mk23은 디자이너들에게 인사를 한 후, 분장실로 향했다.
웃으면 돼. 미소를 유지하기만 하면 돼.
정식 무대에선 분명 달링이 나타날 거야.
그때 가서라도 상관없어, 달링에게 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때, 누군가 Mk23의 고양이귀를 꼬집었다.
아얏...?!
자, 네게 주는 "포상". 방금 그 모습, 정말 보기 좋았어.
Mk23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들자, 눈앞에는 어느샌가 나타난 지휘관이 서 있었다.
달링... 또 날 놀렸어!
흥! 정식 무대가 시작되면 방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니까 각오해!
그래,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어.
Mk23은 잠시 황홀한 표정으로 지휘관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휙휙 젓고는 분장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어가는 도중, 그녀는 지휘관에게 말을 덧붙였다.
달——링♪
왜 그래?
무대 끝나고 나면 잠깐 어울려줄래?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예약비로 말이야♪
그래, 약속할게.
Mk23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왜 약속대로 매일 오지 않았냐고 원망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다시 새로운 약속을 했다.
...놀리는 것도 그만해야겠네.
지금 저 애한테, 난 얼마나 나쁜 녀석으로 보일까...
임무가 끝난 후, 스튜디오.
Mk23은 여전히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고서, 손에 들린 부케보다도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행복을 향한 이정표처럼 눈부신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이번엔 약속 어기지 않고 제시간에 나타났네?
음... 그래, "보수"를 지불하러 왔어.
그래서, Mk23은 뭘 하고 싶어?
디자이너한테 물어봤는데, 쇼가 끝나고 바로 드레스를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그래서, 이 기회에 달링이랑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웨딩드레스 사진을? 설마 그걸로 인질 잡을 생각은 아니겠지?
흥, 내가 달링처럼 사기꾼인 줄 알아? 달링은 역시 나쁜 사람이라니까.
Mk23은 그렇게 험한 말을 하면서도, 내 옷깃을 붙잡아 끌면고 결혼식 배경이 그려진 스크린 앞, X자로 표시된 위치로 걸어갔다.
스크린 바로 앞에는 카메라가, Mk23의 발밑에는 원격 스위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Mk23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의 손을 꼬옥 쥐었다.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면... 다들 이렇게 손을 잡고 찍어.
고개를 돌려 흘깃 Mk23을 보니,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얼굴이 점점 붉어져 갔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역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아야야야! 왜 이렇게 세게 쥐어!? 이거 놔, 이거 놔.
엄살을 부리며 손을 흔들었지만, Mk23은 손을 놓지 않았다.
다시 그녀를 바라보니, 방금까지 즐겁게 움직이던 꼬리는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금 더 느슨하게 내 손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
지금 내 표정은 아주 가관이겠구나. 이런 순수한 소녀의 마음마저 가지고 논 빌어먹을 놈이니...
네 말대로구나. 네 달링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나는 바닥의 원격 스위치를 집어 들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을 다시 꼬옥 쥐었다. 뿌리칠 수 없도록, 다정하면서도 강하게.
다, 달링...?
왜?
네가 말했잖아? 웨딩드레스 사진은 손을 잡고 찍는다며.
직접 보지 않아도, 휙휙 거리는 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Mk23의 꼬리는 지금 마치 전력이 돌아온 안테나처럼 꼿꼿이 선 채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인간은 이렇게 교활한 생물이라 다행인 것 같네.
내게도 꼬리가 있었다면, 속셈이 진작에 들통났겠지.
꼬리? 속셈?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오늘 내게 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한 "포상"이야.
찰칵.
......
꺼내지 못한 말이 잔뜩 있다. 약속대로 매일 와서 지켜본 사실이나, 그녀가 스위치를 누르던 순간 흔들린 나의 마음이나.
쇼에서 Mk23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봤다고 한 말은, 아무래도 철회해야 할 것 같다.
스위치를 누르던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엿본 소녀의 미소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짓게 했으니, 나도 조금은 덜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