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구조대원
SPS
......
지휘관님?
갑자기 회의에 절 부르시다니, 무슨 일이세요?
네게 맡길 임무가 있어.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30분 후에, 인어 수색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열 거야.
그리고 너와 88식은 후방 구조팀으로 편성될 예정이고.
작전이라지만, 임무 자체는 간단해. 모두의 안전을 지키면 되는 거야.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전력을 다해 임무를 수행할게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88식은 해상 작전 능력이 없어.
수영도 사실상 못 하는 데다가, 모르는 걸 극도로 무서워해서...
그렇군요.
그래서, 너의 전문성을 고려해 88식을 네게 맡길게.
네, 맡겨만 주세요!
어떻게 준비할지 먼저 생각해 보고 있으렴.
난 다른 팀의 임무를 배정하러 갈게.
지휘관님이 내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어. 신뢰에 반드시 보답해야 해.
남은 시간 동안 88식을 위한 구명 훈련을 짜야겠다.
흐음... 모르는 것을 엄청 무서워한다고 했지?
그럼 입수 체험부터...
......
그날 밤, 새벽 4시.
구명 훈련 계획의 구상을 끝낸 세르듀코프는 공방을 지나다,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누가 깜빡하고 간 것이 아닐까 싶었던 세르듀코프가 불을 끄러 안으로 들어가 보니, 피로에 눌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억지로 버티고 있는 88식이 있었다.
(88식?)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세르듀코프는 슬그머니 88식의 뒤로 다가가, 그녀가 엎어져 있는 작업대에 어지럽게 펼쳐진 설계도와 계산용 모눈종이를 보았다.
(아하, 이번 임무를 위해서 열심이었구나.)
(나도 지지 않아, 88식!)
행여 방해될까, 세르듀코프는 살금살금 공방 밖으로 나갔다.
다음날, 새벽 2시.
공방은 역시나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세르듀코프가 들어가 보니, 88식은 턱을 괸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르듀코프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서, 88식의 곁에 간식을 살포시 두고 자리를 떠났다.
사흘째, 아침 6시.
세르듀코프는 다시 공방을 찾았다.
88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치를 껴안은 채, 작업대 위에 엎어져 쿨쿨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르듀코프는 할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쉬고, 시간을 확인한 뒤 짐을 챙기러 갔다.
......
6시간 후.
인어 수색대는 목적지인 해변에 도착했다.
그리도 다시 1시간 후.
세르듀코프는 한구석에 버려진 상자 속에 숨어 있는 88식을 바닷가로 데리고 나와, 푸른 바다와 눈 부신 햇살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88식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흐음... 내가 처음 해상 임무를 수행했을 때도 얘처럼 무서워했던가?)
......
몸에 힘 빼고, 후우... 하아...
그냥 해상에서의 임무일 뿐이야. 육상 임무와 별다를 거 없어.
전문 훈련을 받은 프로 인형이 초보 같은 꼴을 보이면 어떡해...
자, 세르듀코프...
이제 5를 세면, 자신 있게 임무에 나가는 거야.
5... 4... 3...
2...
1.9... 1.8... 1.7...
......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진짜 꼴불견이네...
모두 준비됐지?
전원 집합!
지금부터 이번 임무의 브리핑을 시작할게!
긴장하지 말고, 자신 있게, 우아하게!
세르듀코프, 넌 할 수 있어!
......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칠게.
질문 있는 사람?
없습니다!
좋아, 이제 흩어져서 각자 준비운동하고 있어.
아, 세르듀코프는 잠깐 남아줄래?
제게 따로 시킬 임무가 있나요?
아니.
그냥 많이 긴장한 것 같아서.
너의 상태를 좀 확인하고 싶었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계속 두리번거린 걸 말하는 거라면, 그냥 사주 경계하던 거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티가 났나...)
(출발하기 전에 예습을 잔뜩 했는데...)
(그리폰 게시판의 베스트 글인 "첫 해상 임무에서 프로처럼 행동하기"의 Q&A 내용을 전부 달달 외웠는데도...)
"긴장한 걸 들키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사주 경계하고 있었다고 둘러대기."
참고로 "첫 해상 임무에서 프로처럼 행동하기"는 내가 쓴 거야. 익명이지만.
설마설마했는데, 그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확실하구나.
......
이목이 쏠리고 있네. 자리를 옮길까?
세르듀코프, 해상 임무는 처음이지?
......네.
하지만 그렇다고 실수하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나도 세르듀코프의 능력과 직업 정신을 믿고서 내 소대에 선발한 거니까.
감사합니다.
사실, 나와 처음으로 함께 임무에 나가는 동료들은 자꾸 내 외모만 보고서 내 작전능력을 의심하거든.
날 어린애 취급하고 장난만 치면서,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세르듀코프가 날 믿어 줘서 정말 고마워.
......
좋아, 그럼 내가 해상 임무와 육상 임무의 차이점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줄게.
세르듀코프는 육상 임무 경험만 있지?
해상 임무도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맞아! 그냥 몇 가지 사항만 더 주의하면 돼.
......
............
...1시간 후.
대충 이 정도야.
나머진 내가 실전에서 자세히 설명해줄게.
......
있지, 난는 해상 임무가 정말 좋아. 특히 수중 임무가 제일 좋아!
예전에 바닷속에서 해파리를 봤는데,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으면서도 아름답고, 물의 흐름을 따라 흔들흔들하는 모습이 신기루 같았어.
만약 이번에 발견하면 꼭 세르듀코프에게도 보여줄게!
정말요? 바닷속 생물은 직접 본 적이 없어요.
그나저나, 이제 슬슬 임무 개시할 시간이네요.
이번 임무는 2인 1조 형식으로 진행할 거야.
다른 대원들은 조 편성이 다 끝났으니까, 너랑 나랑 한 조가 될 거야.
그럼 잘 부탁해!
어... 잠깐만요. 임무 중 파트너랑 안전띠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거 맞죠...?
만약 도중에 저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간...
저는 바로 이탈해도 ADS는 계속 현장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걱정 마, 이번 임무는 평범한 난이도니까.
내 지시를 따르면 아무 문제 없이 완수할 수 있어!
세르듀코프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어~
......
기초적인 구조 훈련 내용은 이상이야.
이제 해변을 순찰하며 모두의 안전을 지키자!
구조 관련 지식을 많이 기억했지만, 그래도 역시...
괜찮아, 순찰하면서 되새기면 돼!
1시간 동안 순찰하고...
세르듀코프 씨, 저 소리 들었어요?
무슨 소리?
저기에서 누가 비명을 지른 것 같은데...
그래? 해수면도 잔잔하기만 한데...
잠깐 기다려 봐, 망원경 가져올게.
세르듀코프는 망원경을 가지러 가방을 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 까마귀 한 마리가 세르듀코프의 가방을 궁금한 듯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세르듀코프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망원경을 찾아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그 까마귀는 세르듀코프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 가방 안의 물건을 가져가려 했다.
다행히, 뒤늦게 눈치챈 세르듀코프가 공포탄을 쏘아 까마귀를 쫓아냈다.
나도 예전에는 까마귀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렇다고 네 도둑질을 봐주진 않아.
세르듀코프가 계속 가방 속을 뒤지던 그때, 갑자기 88식이 소리쳤다.
R93 씨!
제가 구해드릴게요!
88식!?
깜짝 놀라 돌아보니, 88식이 바다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눈 부신 햇살 아래, 88식은 잔잔한 수면을 어지럽히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렸다.
88식...
바닷물은 88식의 허리까지, 가슴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88식은 계속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 광경을 세르듀코프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몇 초 후, 88식이 머리를 수면 밖으로 꺼낸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려 했지만...
살려줘요! 켁켁!
저... 어푸... 저 수영 못 해요!
겁에 질린 88식이 안간힘으로 허우적댔다.
그와 동시에, 세르듀코프는 저 멀리 잔잔한 바다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분홍색 머리를 보았다. R93이었다.
세르듀코프는 연산량을 극한으로 높여, 현 상황에서 두 사람을 동시에 구조할 가능성을 반복해서 계산했다.
수많은 실패 결과를 도출하고, 마인드맵 모듈이 살짝 뜨거워진 뒤에야 세르듀코프는 연산을 중단했다.
당장 구할 수 있는 건 한 명뿐인가...
그럼, 가까이 있는 88식부터 구하자. 미안해 R93...!
......88식! 조금만 참아! 지금 구해줄게!
세르듀코프는 구명 튜브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어, 88식이 달린 길을 따라 그녀보다 훨씬 빠르게 헤엄쳤다.
세르듀코프! 거기 가만히 있어!
지금 바로 갈게!
...네!
자, 내 손을 잡아!
좋아요, 이제 내 품으로 뛰어.
아래를 보지 말고, 나를 봐!
히... 힘내 볼게요...
나 믿지, 세르듀코프?
네...!
그럼 전부 나에게 맡겨!
그때 내가 ADS를 믿었던 것처럼, 88식도, 지휘관도 나를 믿고 있어.
그 믿음을 저버려선 안 돼!
세르듀코프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88식을 향해 전력으로 헤엄쳤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손끝이 닿으려는 그때였다.
하늘에서 뭔가가 세르듀코프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녀의 선글라스였다.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그녀의 물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조금 전 쫓아냈던 그 까마귀가 자신의 짐가방을 물고서 물건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세르듀코프는 갑작스런 까마귀의 공습을 피하면서 88식의 상태를 보느라 혼란에 빠졌다.
그 무리한 움직임과 과도한 긴장 탓에, 그녀의 종아리 부분에 고장이 발생했다.
아 진짜, 저리 가!
아앗! 어푸어푸, 이런...!
종아리에... 쥐가... 아니라 고장 났어! 어푸어푸...
세르듀코프 씨!?
세르듀코프는 고장난 다리를 붙잡은 채로 가라앉았다. 마치 깊은 바다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치, 침착하게 심호흡부터... 케흑! 아 참, 물속이었지...
어떡하지?! 누가... 도와줘...
......
88식...
도와줘...
응... 이건?
정신을 차리니, 어느샌가 다가온 88식이 세르듀코프를 등 뒤에서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88식...?
내가 가르쳐 준 구조 방법을 기억해냈구나!
그리고 성공했어!
88식의 팔에 감싸인 세르듀코프는 안정감을 느꼈다.
헤엄쳐 온 거리도 있으니, 88식이 물가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동안 호흡 기능을 조절해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야...
...응? 어라!?
분명 시간이 좀 더 걸릴 터였는데, 불쑥 물밖으로 나오게 된 세르듀코프는 어리둥절했다.
그제서야 두 인형은 여태까지 수심이 1.5m 정도인 지점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어......
이, 일단... 물에서 나가죠...
두 인형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백사장의 푹신하고 바싹 마른 모래를 밟자마자, 두 인형은 동시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
......
푸흡... 하하하하하!
헤헤헤...
이거야 원...
내 직장 경력 중에서도 손에 꼽을 대형 사고인걸, 하하하...
아뇨, 다 제 탓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우리 둘 다 그대로 수복실행이었는데.
역시, 널 믿길 잘했어.
으으... 고마워요, 세르듀코프 씨.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 아직도 그 상자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을 거예요.
바다에 뛰어드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물론... 물에 들어가자마자...
걱정 마,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대신 내 다리 고장 난 것도 말하지 마...
저... 근데 우리 뭔가 잊고 있지 않나요?
......?
아 맞다, R93!
빨리 지휘관에게 보고하러 가자!
서로 창피한 모습을 웃음으로 감추면서, 두 인형은 함께 햇볕으로 뜨거운 모래사장 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