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매화
T91
가구 전시회장.
JS 9과 T91이 작업 분담에 관해 토의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회장 내 통솔을 맡을게요.
T91 씨는 후방에서의 물자 관리를 맡아 주세요.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모두에게 제때 물자를 보급하는 일을 제가 얼마나 잘하는데요.
아, 그래서가 아니에요.
T91 씨가 맡는 일인걸요, 걱정되지 않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PA-15 관리 잘 할 수 있겠어요?
아... 노력해볼게요.
어? 너희 거기서 무슨 얘기해?
무슨 일로 노력하는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PA-15 넌 발소리도 안 내면서 다녀?
응...? 무슨 소리야, 평범하게 걸어왔는데.
네가 켕기는 게 있어서 못 들은 건 아니고?
켕기다니 무슨!
너한테는 숨길 일도 없어.
마침 잘 왔어요, PA-15.
일정이 빠듯하니, 바로 업무 분담을 시작할게요.
당신은 T91 씨와 함께 후방 물자 관리를 맡아 주세요.
물자를 임시 창고로 운반하고, 주기적으로 모두에게 보급품을 나눠 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같이 잘해보자, PA-15.
지휘관님을 위해서 말이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해야지 뭐.
근데, 그렇게 물자 관리하는 걸로 땡이야? 듣기만 해도 지루할 거 같은데.
지루할지 아닐지는 직접 해봐야 아는 법이죠.
저도 일을 시작해야 하니 먼저 실례할게요.
두 분 다 맡은 일을 잘 해내리라 믿어요.
그럼 힘내세요.
음... 왠지 말투에서 신뢰감이 느껴지질 않았어.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됐으니까 우리도 가자.
해야 할 일이 아주 산더미라고.
내 말을 무시하다니 간이 부었구나.
그래 그래 알았어, 똑바로 하면 될 거 아니야.
휴우... 정말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네.
나 그만 가 봐도 되지?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방금 "해야지 뭐"라 말했던 PA-15는 어디 갔어?
그래서 널 못 믿는 거라고.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화내지 마.
농담 좀 해본 거야.
우리도 네가 이런 지루한 일은 싫어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일은 일이야.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책임지고 맡은 바를 다해, 알았지?
네~
땡땡이칠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도망쳤지.
하여간 넌 가만 있질 못해서 탈이라니까.
업무 분담을 이따구로 한 사람 잘못이지.
내 성격을 알면서도 이런 일을 시킨 거잖아?
배식에 물자 관리... 이런 걸 누가 못해? 왜 하필 나냐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일손이 부족한지는 너도 알잖아. 사람 가릴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투정 부리지 마.
배식하러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얌전히 창고 보고 있어.
그러지 뭐.
혼자선 더 지루할 거 같으니까 얼른 갔다 와.
하아아――
그렇게 일부러 한숨 쉬어 봤자 안 통해.
T91 심술쟁이~
설마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갔다 올게,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았어~ 뭐가 됐든 아무도 훔쳐 가지 못하게 하면 되지?
그거야 당연한 거고.
뭐 망가지지 않게 잘 지켜봐.
PA-15 녀석, 정말 괜찮을까...
하지만 참 이상해... 그렇게 사고치고 다니는 앤데, 임무는 또 잘 수행한단 말이야.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일도 거의 없고.
그런데 왜 쟤만 보면 마음 놓고 믿을 수가 없는 건지... 어휴 참...
다소 불안했지만, 지금은 T91도 남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양손엔 휴대 식량이 담긴 봉지로 한가득이었고, 마음은 책임감으로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에이,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녀석한테 일을 맡긴 이상, 걱정하기엔 이미 늦었지.
말썽 안 부리고 잘할 거라 믿고, 난 내 할일부터 제대로 하자.
어디 보자, 우선은...
여기서 조금만 더... 좋았어. 시작하자, 할 9002세!
그가 네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말해 주지 않았구나...
아니. 내가, 네 어머니다.
???
음... 박력이 부족한가?
좀 더 다듬어야겠어.
좋아, 리테이크!
MG36이 웬일로 기분이 꽤 좋아 보이네? 어... 그런데 저 햄스터는 어디서 났지?
그냥 노는 것 같으면서도 바빠 보이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시간이라면 포장팀은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았겠지... 어라?
PKP랑 SPP-1 둘 다 벌써 왔네?
모두 의욕이 넘치는구나.
......
......
일찍 왔군.
아, PKP 씨.
으음...? 왠지 분위기가 이상한데, 내 착각인가...?
아무튼, 준비 작업 중인 거 같으니 괜히 끼어들지 말아야겠다.
먹을 건 여기다 두면 알아서 발견하겠지...
그때, T91의 눈에 밀크티 가게가 들어왔다.
반짝거리는 간판과 문 너머에서 다양한 밀크티의 향기가 풍겨 왔다.
이건 맛집이다. 밀크티 헌터로서의 감이 반응했다.
......
......
아, 안 돼, 지금은 일하는 중이야...
하지만 달콤한 밀크티의 향기가 계속해서 T91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
잠깐... 아주 잠깐은 괜찮겠지...?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이면 돼...
게, 게다가 밀크티는 술도 아닌걸! 마셔도 일에 지장 없잖아?
캬아~ 끝내준다!
밀크티 자체의 맛도 그렇고, 버블의 쫀득함까지 아주 완벽해!
이런 데서 상당히 좋은 가게를 찾다니~ 다음에 다른 맛도 보러 와야지...
으음~ 어...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망했다! 빨리 돌아가야 해!
T91이 헐레벌떡 전시회장으로 돌아와, 임시 창고로 달려갔다.
아, 그러고 보니 PA-15를 한참 동안 혼자 내버려뒀구나. 미안하게 됐네...
이 밀크티를 절반 나눠 줄까? 아니야, 아예 그 가게로 데려가서 한 잔 사 줘야겠다.
다소 미안한 마음을 품고, T91이 임시 창고의 문을 열었다.
PA-15~ 나 왔......?!
야 너 지금 그게 무슨 짓이야아아아!!?
오호,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무슨 짓이냐니, 보면 몰라?
엄~청 재밌는 일이지♪
PA-15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T91이 창고 밖으로 나설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창고 비품이 아닌 목제 의자에는 폭죽이 로켓처럼 덕지덕지 묶였고, 폭죽과 연결된 도화선이 PA-15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있는 것은... 불 붙은 성냥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 이 밀크티 다 마셔도 좋으니 제발 그만둬 주세요.
뭐야, 갑자기 웬 존댓말?
이게 얼마나 위험하길래?
보통 위험한 정도가 아니지! 제발 부탁이니까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겨우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물론, 전혀 "잠깐"이 아니었다.
자신이 밀크티 가게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T91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오호라, 그렇게 심각한 일이로군.
그래, 알면 돼애앴!?!???!
PA-15는 짐짓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능글맞게 웃으면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안 돼!!!
너 진짜 왜――
위험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법 아니겠어?
웃기고 있네, 위험하면 피하는 게... 헉!
오호라~
도화선은 순식간에 의자에 묶인 폭죽 더미 안으로 타들어 갔다.
그리고 잠시 아무 일도 없는 듯하더니...
타닥! 타타탁! 타타타타타탁!!
꺄아아아악!!!
우와... 이거 정말...
진짜 굉장한걸! 꺄하하핫!
뭘 잘했다고 웃어!? 저렇게 많은 폭죽이 한꺼번에 터졌다간...!
T91의 뛰어난 반사신경이 빛을 발했다.
T91은 잽싸게 임시 창고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리고...
퍼어어어엉!!!
폭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야야... 음, 정말 위험했어.
알...
아?
알면 하지 말라고 조오오옴!!
아하하,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으니까 화내지 마.
아이고, 예쁜 얼굴이 숯검댕이가 다 됐네.
거기에 인상까지 찌푸리면 못난 찐빵 된다 너?
누... 누구 때문에 요 모양 요 꼴이 됐는데!
어휴 진짜... 기가 막혀서 뭐라 화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
뭐야, 왜 그래?
이 나무 조각... 왠지 익숙한데.
내 의자겠지.
의자였던 거겠지.
으아아, 망했다...
괜찮아 괜찮아.
왜 네가 날 위로하는 건데...
지금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사람은 너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애교 부리는 거 아니겠어~
너 진짜...
에라 모르겠다...
폭발음도 엄청났으니 분명 다른 인형들이 몰려올 텐데, 그럼 괜히 일거리만 늘어나겠지?
내가 책임진다 해도 분명 다들 도와주려 할 거야.
......
내가 주의를 끌고 있을 테니까, 그동안 여기 다 깨끗하게 청소해놔!
그리고 이 의자도 다시 조립하고!
엑... 솔직히 이건 무리잖아.
잔말 말고 해!
에이... 알았어. 그럼 수고해, 공범 씨~
닥쳐! 공범은 무슨!
자꾸 그따위로 지껄이면 확 그냥 지휘관님한테 보고해버릴 줄 알아!
T91은 씩씩대며 창고를 나섰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었기에, 저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해...
다른 인형들이 보는 건 괜찮겠지만, 지휘관님이 저 꼴을 보셨다간...!
T91은 식은땀을 흘렸다.
안 그래도 재정 위기인데, 이런 일이 벌어진 걸 아셨다간...
보자마자 기절하실지도...
이, 일단 전시회 진행을 돕자.
손님이 많아져서 바빠지면 다들 창고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지겠지!
생각을 마친 T91은 즉시 전시회장의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다그쳤다.
이대로 포기하면 안 돼.
지휘관님이 엄청 실망하실 거야.
포기를 모르는 것이 그리폰의 신조잖아!
그러니까... 나도 접객팀과 함께 손님을 모으자!
그래, 바로 그거야!
현관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응...?
무슨 소리지? 사람이 잔뜩 모여서 떠드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살펴보니, 전시회장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엑, 갑자기 이렇게 많이...?
접객팀이 일을 잘했나 보네...?
......
으음... 그럼 문제 해결인가?
T91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손님이 이렇게나 많으면, 접객팀은 물론이고 모두가 바빠질 거야.
그 사이에 PA-15가 창고를 깔끔하게 청소하길 바라야지...
바쁘게 손님들을 안내하는 두 사람이 보이자, T91은 방금까지 초조했던 마음도 진정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자신까지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혼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니까.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T91은, 고생하는 모두에게 밀크티를 사 주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