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숨은 진심
ZastavaM21
휴우,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네...
발렌타인 파티 이후로 계속, 난 폭풍 속의 돛단배 같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파티가 끝난 그날 밤, 지휘관의 방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인물은 대체 누구?"
그 화제를 둘러싸고 인형들이 저마다 일을 벌이는 탓에, 모두의 일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카노가 갑자기 웨딩드레스 촬영회에 참석해 달래서 뭔가 했더니, 전부 그날 일과 관계된 애들이잖아...
내가 지금 있는 곳은 화단처럼 꾸며진 곳의 한구석이었다. 기지에 원래 이런 곳은 없으니, 아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꾸민 스튜디오일 것이다.
화단의 꽃들도 다 모조화였지만, 그래도 좋은 향수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지친 내 심신을 치유하는 듯했다.
그런데... 누가 부르는 거지?
호기심에 화단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니, 저쪽 끝에 꽃들에게 둘러싸인 인형이 있었다.
그녀도 내가 다가오는 걸 보곤 노래를 멈췄다.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길을 잃으셨나요?
아... 역시 Zas였구나...
왜 그러시나요, 절 보자마자 그렇게 긴장하시고.
빨리 이 소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분은 저도 지휘관님과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티가 나? 하긴, Zas도 그날 밤의 일 때문에 고생이 많았겠네.
네, 사건의 타임라인에 가장 먼저 있었던 게 저희니까요.
조금 난감한 기분이었다. Zas와 그리즐리가 술에 곯아떨어진 나를 파티장에서 숙소로 데려왔다는 건 다음날 들었지만, 그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날 방에 데려다준 것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정작 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니 원...
Zas를 괜한 일에 휘말리게 만들었단 생각이 드네.
그때 저희가 방에서 뭘 했는지 듣고 싶으신 모양인데, 그렇게 에둘러 말하실 필요 없어요.
지휘관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인형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잖아요?
그것도 티가 났니...
그때의 기록은, 어디 보자...
23시 01분, 방으로 진입. 그리즐리 MkV는 지휘관을 침대로 호송, 본 인형은 어질러진 방의 정리를 진행.
23시 10분, 방의 혼잡도가 예상보다 낮아 지휘관의 침실 외의 공간을 정리하는 데 성공.
23시 14분, 그리즐리가 지휘관의 취침을 확인함. 본 인형도 정리를 마무리하고 방에서 나가기에 동의.
23시 15분, 방의 문이 열렸던 흔적을 포착. 더불어 누군가가 탁상에 놓인 초콜릿의 포장을 뜯고 한입 베어먹은 것을 발견.
23시 16분, 본 인형과 그리즐리는 복도로 나와 문을 닫고 도어 록을 가동함.
좀 천천히 말해... 그리고 왜 시스템 로그를 읊는 듯한 어조야?
다 그 꼬맹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추궁한 탓이죠. 제가 지난 며칠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말해 드릴까요?
그거 알아? 난 지금 우리가 동료 관계인 점, 너희가 나보다 몸집이 작은 점 외에 너희를 사적 제재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 중이야.
그런 거에 덩치 차이가 상관 있던가?
그럼 내 휴식을 훼방 놓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단 뜻이지?
책임이라면 얼마든지 질 테니까, 그 전에 마지막으로 그날 밤의 세부 사항을 말해 줄 순 없을까?
내가 무슨 유리하다 싶으면 말이 많아지는 악당처럼 보여?
난 그저 너희가 더는 소란 피우지 못하도록 여기다 당분간 꽁꽁 묶어둘 셈이야.
그래도! 그날 정말 수상한 사람이 지휘관의 방에 침입하진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야!
23시01분방으로진입그리즐리MkV는지휘관을침대로호송본인형은어질러진방의정리를진행
23시10분방의혼잡도가예상보다낮아지휘관의침실외의공간을정리하는데성공
23시14분그리즐리가지휘관의취침을확인함본인형도정리를마무리하고방에서나가기에동의
23시15분방의문이열렸던흔적을포착더불어누군가가탁상에놓인초콜릿의포장을뜯고한입베어먹은것을발견
23시16분본인형과그리즐리는복도로나와문을닫고도어록을가동함.
Zas M21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그날 밤의 행적을 진술했다.
너, 너무 빠르잖아!
조금만 더 천천히 말해 줘!
애써 구석진 베란다에 숨었는데도 찾아와서 내 조용한 휴식을 망쳤잖아.
이렇게 말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줄 알아.
걱정 마 마카로프, 저럴 거 같아서 전부 녹음했지롱~
10분의 1배속으로 재생할게.
23시 01분, 방으로 진입. 그리즐리 MkV는 지휘관을 침대로 호송, 본 인형은 어질러진 방의 정리를 진행.
23시 10분, 방의 혼잡도가 예상보다 낮아 지휘관의 침실 외의 공간을 정리하는 데 성공.
23시 14분, 그리즐리가 지휘관의 취침을 확인함. 본 인형도 정리를 마무리하고 방에서 나가기에 동의.
응, 여기까진 문제 없어.
23시 15분, 방의 문이 열렸던 흔적을 포착. 더불어 누군가가 탁상에 놓인 초콜릿의 포장을 뜯고 한입 베어먹은 것을 발견.
그런데 이거! 이건 대체 뭐야?
난 그저 내 마인드맵 기록대로 진술했을 뿐이야.
판단은 너희 민폐쟁이들이 알아서 해.
Zas한테 의외로 친절한 면도 있었네? 하지만 그런다고 봐주진 않아.
그리고, 이 일에 관여하기 싫으면 그냥 묵비권을 행사하면 됐잖아.
그리폰과 지휘관에 대한 책임감으로 정보를 제공해 준 걸 수도 있지.
그런 심술궃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협조하는 김에 끝까지 도와주면 안 될까?
Zas M21은 스테츠킨의 궤변에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그들의 말대로 이 소동에서 벗어나려던 의도는 진작에 실패한 상태였다.
그럼 한 가지 사소한 사항을 추가 진술해 줄게. 방의 문이 열린 걸 발견했을 때, 프릴이 달린 치마자락을 본 거 같아.
프릴이 달린 치마를 입은 인형...?
프릴 달린 치마에 초콜릿이라... 누군지 알겠다!
좋았어, 네 휴식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우릴 내려놔! 조사할 사람이 생겼다고!
하지만 Zas M21은 스테츠킨의 말을 무시하고, 그물 함정째로 베란다 벽에 매달아진 두 인형을 내려 주지 않았다.
말은 그래도, 언제 또 다른 이유를 들먹이면서 내 휴식을 방해할지 모르잖아.
그냥 그렇게 둘이서 머리나 식히도록 해.
물론, 제가 내버려두고 간지 얼마 안 지나 마카로프가 그물을 찢을 방법을 찾아냈지만요. 아시다시피 탈출해서 스테츠킨과 함께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그날 내 방에 아주 잠깐 들렀던 것 때문에 휴식조차 즐기지 못했구나.
지휘관님은 제가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시는군요?
그래서 또 휘말리지 않으려고 혼자 화단 구석에 숨어있는 거지?
이 일에 다시 엮이지 않을 셈이었으면,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카노의 초대를 거절했겠죠.
...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왜 결국 초대를 받아들였을까요?
정말 이상하죠? 이렇게 제멋대로에 삐딱하고...
Zas는 살짝 고개를 떨구곤 침울하게 드레스의 끝자락을 매만졌다.
그게 너답다는 뜻 아닐까? 너무 고민할 것 없어.
그래도 덕분에 사건의 세부 사항을 더 자세히 알게 됐어.
마음이 혼란스런 와중에 답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나는 Zas에게 다가가 바닥에 끌린 그녀의 치마자락을 정리해 주었다.
내 움직임에 Zas도 자세를 바로잡아, 다시 그녀다운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지휘관님, 지금 절 신경써 주시는 건가요?
왜, 내 호의는 받기 싫어?
세심하셔서 조금 불쾌할 뿐이에요.
아 참, 그날 밤에 나 대신 방을 정리해 준 것도 아직 고맙다고 안 했구나.
그런 사소한 일도 아무래도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이신 걸 보니, 이 소동에 확실하게 끝맺음을 지으실 생각이시군요?
나한테만이라면 좀 참고 말겠지만, 다른 애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잖니.
지휘관님도 참 줏대가 없으시네요. 방금은 얼른 소동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하시더니, 지금은 또 저희까지 휘말리게 놔두진 않겠다 하시고.
역시 인간은 다 그런가요?
사태가 사태니 지휘관으로서 당연히 적극적으로 처리해야지. 다만...
Zas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휘관님, 어떤 것들은 눈빛만으로도 전할 수 있어요. 아시죠?
하하... 요즘 들어 Zas한텐 꼴불견인 모습만 보였구나.
사자는 벼룩 때문에 간지러워는 할지언정, 쓰러지진 않아요.
Zas...
그래, 네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움직여야지.
Zas의 격려를 받은 나는 기운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녀도 눈빛으로 내 의지를 눈치채, 가볍게 웃었다.
가시기 전에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얼마든지.
최근엔 기지의 재건과 출장 임무 배정으로 바쁘시죠? 어떨 땐 하루 종일 지휘실에만 계시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때 지휘관님의 방을 봤을 때,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 때문에 난잡해 보일 뿐 다 제때제때 정리정돈이 된 모습이었어요.
지휘관님이 그러실 여유는 없었을 텐데, 누가 도와 준 건가요?
아... Zas, 그 질문은...
역시 곤란하신가요? 그럼 대신 지휘관님이 제게 질문하세요.
흥미로운 질문이면, 더는 묻지 않을게요.
Zas가 무심하게 던진 제안에, 난 이미 생각하고 있던 유일한 대답이자 질문을 떠올렸다.
Zas, 아까 카노의 초대를 받기 꺼려졌다고 했지?
그런데 왜 결국 드레스를 입기로 했니?
그야 간단하죠.
제 웨딩드레스 차림을 본 지휘관님의 표정을 기록하고 싶어서예요.
어쩌면 그게 저희가 "인간성"을 부여받은 의미 아닐까요?
그럼, 흥미로운 질문이었니?
음... 제가 지휘관님께 너무 당돌하게 대답하진 않았나 싶네요.
하하, 그래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답이었어. 그런 복잡한 면도 네 매력 포인트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