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의 쉼표
WA2000
그리폰 설림 기념 연회 중.
초대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고, 연회장의 인형들 역시 인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번 연회에 참석한 인형들은 대부분 인간들과 어울리는 데에 있어 큰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항상 휴대하는 총기를 숨긴 인형들은 일반 인간 여성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들은 보통의 인간 여성들이 겪을 법한 문제들을 겪기도 했는데……
저기 있는 건 WA2000이네……
WA2000은 초대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화를 하는 동안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가서 봐야겠네.
WA2000과 그 손님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궁금해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조금……
부탁할게요, 조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건 무슨 대단한 악기가 아니에요……
그리고 케이스가 커서 여기서 열 수는 없어요.
WA2000이 들고 있는 건 커다란 첼로 케이스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전술 인형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항상 휴대한다.
그러니 첼로 케이스 속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케이스 속의 물건이 보여지면 귀찮아질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도와줘야겠다.)
두 분, 실례하겠습니다.
아, 지휘……
손을 들어서, WA2000의 말을 막았다.
당신은……?
저는 이 숙녀분의 동료입니다.
두 분의 대화를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이 숙녀가 이제 공연 준비를 하러 가야 해서요.
그렇군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WA2000을 데리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복도에서)
괜찮아, WA2000.
잠시 후에 조용히 연회장으로 돌아가면 될 거야.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었거든……
나는 물론 너를 믿어.
하지만 너희들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부탁을 직접 거절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잖아, 안 그래?
……그 인간도 엄청 이상해, 기어코 내 케이스를 보려고 하다니.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으면, 이런 모양의 케이스는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내 생각에 그 손님은 그저 너와 대화하고 싶어서 아무 이야깃거리나 찾은 것 같지만.
어째서?
그 손님한테 네가 인형이라는 말은 했어?
말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그 손님은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아?
그야 따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외모만으로는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잖아?
어쨌든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WA2000, 네 외모는 엄청 뛰어난 편이니까.
뭐, 뭐야!
갑자기 그런 말을…… 나는 원래 인형으로서도 엄청 뛰어나거든!
인간 취급하고 그래 봤자……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네네, 그럼 이제 돌아갈까? 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래.
그래도 그 사람이 갈 때까진 숨어있어야겠어…… 정말 귀찮네.
조금만 더 참아.
연회가 끝난 뒤에, 기지의 파티에 가서 풀면 되니까.
나는 그 파티에도 별로 관심 없어……
돌아가서 너무 피곤하면, 안 갈 거야.
그건 너희들을 위한 파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래도 자주 오지 않는 스트레스 풀 기회인데, 정말로 참석하지 않을 거야?
……지휘관이 나를 곤경에서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잠깐 돌아보는 것쯤은 못할 것도 없지.
고민해볼게.
파티 당일 밤.
시끄러운 파티 현장, BAR의 구석에서 WA2000을 발견했다.
좋은 밤이야, WA2000.
……안녕, 지휘관.
이 파티 어떤 거 같아?
혼돈의 도가니, 난장판 그 자체.
……그렇게 심해?
당연하지.
마이크를 붙잡은 채 놓지 않는 녀석도 있고, 술에 취해 테이블을 엎고 다니는 주정뱅이도 있고……
너어무 시끄러워서, 내 마인드맵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뭐, 이런 것도 다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와줬구나.
뭐, 불만이라도 있어?
당신의 초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난장판에 나와있는 거라고.
당연히 없지.
그래도 서로 같이 지내온 날들을 축하하고 기념하면서…… 조금 솔직해지지 않았어?
나는 딱히 기념하러 온 거 아니거든!
여기는 곳곳에 귀찮은 인형들이랑 귀찮은 일들 뿐이라서 가만히만 있어도 머리가 아파온다고.
난 그저…… 그저 혼자 숙소에서 할만한 일도 없고……
야식을 먹으러 온 거니까, 오해하지 마!
그래, 그래…… 알겠어. 어쨌든 오긴 왔으니까, 같이 축하하는 게 어때?
술병을 들어, 앞에 놓인 두 잔에 와인을 가득 따른 뒤, WA2000에게 잔을 들어 보였다.
지난 일 년 동안 함께 해서 즐거웠어.
새로운 일 년에도 계속 고생해 줘, WA2000.
WA2000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런 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그럼——
우리의 만남을 위해 건배.
건배.
유리잔이 부딪쳐 울려 퍼지는 청아한 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솔직해진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새로운 일 년에는 나도 당신의 곁에서 열심히 도와줄게.
그러니까…… 앞으로는 다가올 매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