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더 - 오페라의 유령

컨텐더 지휘관, 이 초대장 좀 받아줄래?

눈앞에 있는 건 화려한 디자인의 편지봉투였다. 정중앙에 새겨진 장미 문양 금박. 지금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극단의 것이다.
과거에는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극단이었는데, 오늘날의 연기자들은 모두 고급스러운 민수용 인형이다.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운 좋은 자들은 보통 고위 인사나 유명인들일 텐데...... 왜 그 극단의 초대장이 여기 있는 거지?

컨텐더 ......지휘관, 지휘관?

컨텐더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지휘관 응...... 듣고 있어.

컨텐더 이건 그 극단에서 사적으로 의뢰한 거야.
극단에 있는 주연 인형이 갑자기 고장이 났는데, IOP에서 내일 공연 전까지 도저히 고칠 방법이 없다 나 봐. 그래서 그리폰 쪽 인맥을 통해 나를 대신 차출해 가기로 했어.

지휘관 ......민간에서 하는 연극 일을 PMC에 맡기다니, 괜찮은 건가?

컨텐더 이 지역에서 하루 내로 현장에 도착 가능한 동일 모델 인형이 나 하나뿐이야. 게다가 나도 위장 잠입 훈련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IOP 측에서 제공한 데이터와 모듈까지 더하면, 적어도 공연을 무사히 끝마치는 데는 분명 문제없겠지.

지휘관 ...... 공연하는 거랑 위장 잠입은 분명 다른 거인데.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연극 쪽은 걱정하지 않을게.
그럼, 이 초대장은 뭐지?

컨텐더 그리폰 규정에 따르면, 외부로 파견되는 전술 인형은 반드시 본사 인원과 동행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내가 직접 잘 아는 사람을 한 명 골라가도 된다고 헬리안 씨가 그랬어. 그래서 바로 지휘관이 생각이 났지.

지휘관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겠어. 그럼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컨텐더 지휘관이 따로 해야 할 건 없고, 공연 전후로 공연장 측에 확인 서명만 해줘. 그동안 지휘관은 공연을 마음껏 즐기면 돼.
그런데 이런 평범한 민간 업무 때문에 지휘관을 귀찮게 해서 정말 면목이 없네......
만약 시간을 내기 어려우면, 헬리안 씨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컨텐더의 손에 있던 초대장을 받았다.

지휘관 오페라 공연을 볼 여유 정도는 있다고, 나한테 맡겨.

컨텐더 받아주는 거야?......다행이네.

컨텐더가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 조금 의외였다.

지휘관 난 네가 다른 사람 없어도 항상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인형이라 생각했는데.

컨텐더 내 실력에 99%의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만약 지휘관이 같이 현장에 있으면 그게 바로 완벽한 작전 성공을 가져다줄 행운의 1% 니까,

지휘관 그럼 옷을 멋지게 입어야겠네. 근데 아쉽게도 나한테 그런 상류층 문화에 어울리는 예복이 없는데...

컨텐더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지휘관. 극단 측에서 우리 회사 제복을 단정하게 입고 오면 된다 했거든. 그거는 어렵지 않잖아.

지휘관 그러면 컨텐더 넌 네가 입게 될 예복이 기대되지 않는 거야? 네가 무대의 주인공이잖아.

컨텐더 그건 내가 간섭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야. 난 그저 연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공연을 잘 마칠 수 있게, 내일 나는 먼저 공연장에 가서 리허설에 참여할 거야. 지휘관은 오페라 시작 전에 공연장에 오면 돼.
그리고 초대장 가져오는 거 절대 잊지 말고.
그럼 내일 공연을 기대하라고. 온 힘을 다해 임무를 완성 시킬 테니까. 지휘관에게 완벽한 연기를 선사해주겠어.

다음날 오후, 공연장.

사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손상된 인형들의 공연 데이터는 IOP가 컨텐더의 데이터 베이스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임시 대리지만, 컨텐더는 조금도 허점 없이 공연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무대 위의 컨텐더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제복을 입은 채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지휘관 와...... 뭔가 평소 때랑 비교해서, 지금 모습은 정말 다르네.

남자처럼 분장을 해서 용맹하고 훤칠한 느낌이 드는 것이외에, 그녀의 위풍당당한 분위기와 희미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지휘관 역시 컨텐더답게, 전장이 아닌 곳이어도, 온 힘을 다해 승리를 쟁취하는구나......
아니면...... 아마 무대에 서 있으니까 더 몰입하는 건가.

어느 사이에 오페라는 마지막에 접어들었다. 조명이 어두웠다가 점점 밝아지면서, 관중석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휘관 정말 훌륭한 공연이다. 공연이 끝나면 그녀를 잘 칭찬해 줘야...

......!

이때, 빨간 점 하나가 컨텐더의 흰색 제복 옷자락을 따라 느릿느릿 위로 향하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손뼉을 치려던 손이 순간 공중에서 굳어버렸다.

컨텐더 모두! 엎드려!

그녀에게 소리 질러 주의를 주려는 순간, 컨텐더는 갑자기 무대에서 뛰어내려 관중석 등받이를 밟으면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뛰쳐왔다.
어쨌든 인형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욱 예민했다.

같은 시각에 2층 VIP석 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공연장 안은 순간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재빠르게 현장 상황을 관찰했다. 2층에서 누군가 공격하기 시작했고, 무대에 있는 인형도 무기를 들고 인간에게......

컨텐더 지휘관? 다친데 없어?

지휘관 괜찮아. 내가 너의 그 1% 행운인데, 그렇게 쉽게 다치진 않아.

컨텐더 조직적인 기습이야! 어떻게 해야 하지?

지휘관 넌 내가 빈손으로 그냥 왔을 거 같아?
컨텐더, 그 옷을 입은 채로 작전 가능하겠어?

컨텐더 99% 정도 실력 발휘할 수 있어. 지휘관, 지시를 내려줘.

지휘관 각 제대는 들어라. 현 시간부로 대인 작전 제한을 해제한다. 준비——

비록 기습을 당했지만,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모든 준비를 해놨기 때문에 적을 제압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이런 흔치않은 공연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지휘관 ——반격 개시!

......

......
작전 종료 후, 공연장 휴식실.

휴식실 입구를 지나가다가, 긴 테이블 옆에 앉아 있는 컨텐더를 봤다.
그녀는 아직 무대 위의 그 예복을 입은 채였다.앞에 있는 유리그릇에는 빙수가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이 드문 광경에 이끌려서 안에 들어가 그녀를 불렀다.

지휘관 맛있어 보이는데, 컨텐더.

컨텐더 지, 지휘관?! 갑자기 여긴 왜......

지휘관 잠깐, 경례할 필요 없어. 계속 먹어. 단지 지나가다가 우리 주인공께서 여기 있길래 보려고 온 거뿐이야.
정말 맛있는 위문품을 즐기고 있네.

컨텐더 그런 셈이지..... 빙수를 먹고 있을 때 좀 더 냉정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거든.
지휘관도 좀 먹을래?

지휘관 난 됐어. 좀 있다 바로 나가야 하니까.
이 맛있는 빙수를 너랑 같이 즐기고 싶지만, 조금 있다 난 오늘 있었던 일을 헬리안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그녀를 오래 기다리게 둘 순 없어.

컨텐더 그렇구나...... 오늘 정말로 고생 많았어.
아 참, 지휘관. 오늘 공연 어땠던 거 같아?
보니까 지휘관은......만족 못한 거 같은데.

지휘관 정말 훌륭했어. 다만 커튼콜을 미처 받지 못한 건...... 좀 아쉬운 생각이 드네.

컨텐더 관중들의 박수보다는...... 지휘관의 지휘하에 작전을 할 수 있고 지휘관을 위해 승리했으니, 나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해.
그리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 건, 사실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야.
아마 이건 지휘관이 가져다준 행운이 만든 기적이라고 생각해.

컨텐더가 이렇게 생각한다니 좀 안심해도 될 거 같군. 마침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공연 끝나기 전에 말하려 했던걸 말해볼까.

지휘관 컨텐더, 너 무대에 있을 때...... 정말 멋있더라.

컨텐더 어, 어? 지, 지휘관 지금 나보고 멋있다고 했어?

...... 컨텐더는 다시 아무런 말도 없이 빙수를 크게 한입 먹었다.

지휘관 야, 그렇게 먹으면...... 머리 안 아파?

컨텐더 지휘관 때문에 지금 머리 아파.

지휘관 에, 아...... 미안. 여자한테 멋있다는 칭찬은 아무래도 맞지 않겠지......

컨텐더 아, 아니......
그렇다기보단...... 좀 기쁘다고 할까.

지휘관 무대에 섰던 거처럼, 99% 실력 발휘했을 때의 그런 기쁨?

컨텐더 내 생각엔 이건......
...... 1%의 그거 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