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K-999 - 광란의 질주

기지 앞에서 극장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던 와중, 누군가가 날렵한 형상의 바이크를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

??? 좋은 아침, 지휘관.

큼직한 바람막이를 걸친 그녀는 후드가 얼굴의 태반을 가리고 있었다.
찬찬히 상대를 살펴본 나는, 옷의 스타일과 무늬에서 눈 앞의 인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휘관 AEK......맞지?

AEK999 지휘관, 이름 정도는 잘 기억해두라고!

이녀석......목청 한번 크네.

지휘관 잊었을리가, 그저 드문 옷차림이길래 잠깐 눈치를 못 챘을 뿐이야.

AEK999 그렇구나......바이크 탈 때 평소 입던 옷은 불편해서 말이지, 그래서 오늘은 좀 편한 옷으로 입어봤어.

지휘관 개성있는 옷차림이네, AEK.

AEK999 내 멜로디는 이거 하나 뿐이 아니라고. 보아하니 앞으로 지휘관한테 잔뜩 알려줘야겠네.

지휘관 그거 기대되네......
맞다, 그럼 지금 드라이브하러 가는거야?

AEK999 그래, 지휘관. 모처럼 있는 자유시간인데 바람 좀 쐬고 오려고.

지휘관 굉장히 멋있는 오토바이인걸......

AEK999 후후! 지휘관, 보는 눈이 있는데!
완벽한 리듬감을 위해서 내가 개조하는데 애 좀 썼지.
듣기로는 컨텐더의 공연을 보러 간다던데, 내가 태워줄까?

지휘관 고마워, AEK. 그런데 그리폰에서 극장까지 차를 보내주기로 해서 말이야.

AEK999 그렇구나......뭐 어쩔 수 없지.
이녀석의 엔진 소리도 꽤나 괜찮은데 말이야.

AEK가 아쉽다는 듯이 시트를 두드렸다.

지휘관 오늘은 안되고, 다음에 시간 있을때 한번 태워줘.

AEK999 후후, 그럼 약속 한 거다, 지휘관.
이 녀석도 지휘관과의 드라이브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1시간 후.

지휘관 이럴 때 길이 꽉 막힐 줄이야.....어떻게 해야하지.
이렇게 길이 막히면 분명 지각일텐데......

조급한 내 마음과는 별개로 꽉 막힌 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던 와중, 낯익은 검은색 바이크가 차들 사이를 헤치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AEK999 운명의 재회란 꽤나 빠르게 찾아오는 듯 싶네. 안 그래, 지휘관?

지휘관 AEK?!
너가 왜 여기에 있어?

AEK999 방금 지나가던 길에 지휘관 차를 봤지.
내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휘관 그렇구나......정말 잘 와줬어! 극장까지 데려다 줄 수 있어?

AEK999 문제 없지. 어서 타, 지휘관.

그렇게 나는 AEK999의 바이크를 탔다. 꽉 막힌 길을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가는 그녀 덕분에 나는 금방 막혀있던 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휘관 하아......이제야 숨 좀 돌릴 수 있겠네.
여기서 극장까지는 아마 삼십분쯤 걸릴테고......공연은 사십분 후에 시작하니까 늦지 않았겠지.

AEK999 지휘관, 비록 지휘관이 이제 들으러 가는 그런 멜로디는 나한테 어울리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 그런 멜로디를 듣기 전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선율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지휘관 ......응?

AEK999 진정한 연주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휘관, 꽉 잡으라고!

귀청을 울리는 로큰롤이 트렁크에서 터져나왔다.

지휘관 뭐? ......AEK! 잘 안들려! ......뭘 하려는 거야?!

AEK999 Let's ROCK!!!

AEK999가 거칠게 스로틀을 당겼다, 바이크의 엔진이 난폭한 굉음을 자아냈다.
속도계의 바늘이 크게 젖혀지며, 마치 땅 위를 달리는 로켓에 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혼란 속에서 나는 그저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AEK999를 꽉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약 10분 후.

AEK999 도착했어, 지휘관.

지휘관 ......드, 드디어.

AEK999 지휘관, 내 음악은 마음에 들었어?
어째......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지휘관 괜찮아......그저......너무......너무 격렬했을 뿐이야......
잠깐......숨좀 돌리고......

AEK999 하하,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새길 수 있어야 완벽한 음악이지.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지휘관, 드라이브 하러 가는 거 잊지 않았지? 다음엔 더 짜릿한 음악을 준비해올테니 같이 즐기자고.

지휘관 그래......
......아, 아냐! 잠깐!

말을 끝마치지도 않았건만 AEK999는 이미 바이크를 타고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지휘관 ......
왠지, 후회할 게 분명한 약속을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