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즐리 - 별이 빛나는 밤의 무도회

설립 기념일 전날 밤.
그리폰 지휘실.

그리즐리 뭐어어??

지휘관 그러니까, 그리즐리... 미안하게 됐다...

그리즐리 지휘관, 나 진짜 실망했어.

지휘관 알아 알아... 나도 솔직히 내키진 않지만...

그리즐리 지휘관, 이미 파티에서 입을 예복까지 만들었다고.
(소곤소곤) 일주일이나 걸려서!

지휘관 (요놈들 요즘 들어 일부러 다 들리게 혼잣말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즐리 ... 지휘관의 혼잣말도 들리는걸.

지휘관 어... 그나저나, 이번 임무에서는 예복도 쓸모가 있을 거야.

그리즐리 쓸모가 있다니...?

지휘관 그리즐리, 잘 들어...
비록 이번 임무는 보석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무장 상태로 보석 전시대 주위에 우뚝 서있을 수는 없어.
뭐라 해도 이건 생일파티니까.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속에 보다 자연스럽게 어울려 모습을 숨길 필요가 있어...
왜냐면...

그리즐리 왜냐면?

지휘관 우리의 이번 상대는 무려...

그리즐리 상대는?

지휘관 괴도니까아아!(쩌렁쩌렁)

그리즐리 ...

지휘관 ...
(어라, 그리즐리는 괴도에 흥미가 별로 없는 건가? 약간 말을 바꿔볼까...)

그리즐리 아! 알겠다, 지휘관!
괴도! 그러니까 망토를 두르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미친 듯이 웃는 악당이 맞지!

지휘관 현실의 괴도와는 좀 다를걸...

그리즐리 상대가 괴도라면 어쩔 수 없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할게!

지휘관 어, 그래, 좋아...
그럼 부탁하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떠나는 그리즐리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설마 "괴도"라는 설정이 인형들에게 상당한 매력이 있을 줄이야.
모두 다 함께 설립 기념 파티에서 마음껏 쉬게 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번 임무에서 조금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지.
벌써부터 모두의 임무 보고가 기다려지는군.

...설립 기념일 행사 날.
연회장.

저 멀리 화려하게 입은 그리즐리가 연회장 한구석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흥미 가득한 얼굴로 연회장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동시에 평소 경계 훈련 시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망설여져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지휘관 안녕, 그리즐리.

그리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즐리 안녕, 지휘관. 현재 경계 상황 이상무!

지휘관 ...그리즐리, 저기 너 너무 긴장한 건 아닌가?

그리즐리 지금 경계 중인걸, 지휘관.

지휘관 어, 그게...
그렇게까지 굳어 있을 필요는 없어...
괴도가 나타날 때만 주의하고 있으면 돼.

그리즐리 지휘관! 괴도라고!
뭐라고 할까, 아주 폼 나지 않아?

지휘관 ("망토를 두르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미친 듯이 웃는 악당"이라는 게 폼 난다는 말이었나?)

그리즐리 그럼, 나하고... 내 동료들은... 보석의 수호자가 되는 거잖아!
정의의 사도로서 괴도를 붙잡고야 말겠어!

지휘관 너 혹시... 웰로드와 팀을 짰더니 어디 이상한 구석이 옮기라도 한 건가?

그리즐리 어? 그런가? 난 오히려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지휘관 그래, 뭐 어쨌든, 지금 네 모습은 너무 눈에 띄니까.
지금 괴도가 여기 있다면 한눈에 네가 보안 인원인 걸 들키고 말걸?
그리고, 스릴을 즐기는 것도 중요해.

그리즐리 으음...
지휘관 말도 일리가 있네.

지휘관 저번에 얘기를 나누고 나서 그리즐리 너 이번 임무를 꽤나 기대한 모습이었지?

그리즐리 그래, 이번 작전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
그렇구나... 너무 기대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어.

지휘관 괜찮아, 좋은 모습을 보여 봐.
보안 관리는 너희에게 맡기지.
난 그럼, 잠깐 옆방에 가 볼게.

그리즐리 응, 지휘관.
보석은 반드시 지켜낼게!

...한 시간 반 이후.

호텔 창고 안에서.

그리즐리 휴우... 어떻게든 빠져나왔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솜씨네, 나와 웰로드 그리고 ZAS를 이렇게 떼어놓다니...

호텔 복도.

ZasM21 그리즐리, 먼저 가!

그리즐리 그게 무슨 소리야?!

DSR50 아직도 옥신각신 다툴 여유가 있나 보구나?

DSR-50이 그리즐리와 ZAS의 앞을 가로막고 강력한 화력을 퍼붓자 두 인형은 회피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ZAS는 그리즐리의 앞에 나서면서 들고 있던 보석을 그리즐리에게 쥐여 주었다.

그리즐리 야... 야!
너 왜 웰로드하고 같은 짓을 하는 거야...

ZasM21 아니 달라.
결론적으로 웰로드는 마무리를 지으러 가는 거지.
암살쯤이야 녀석에겐 일도 아니니까.

그리즐리 ...

ZasM21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추격에서 벗어나 보석을 지켜 흠집 없이 의뢰인의 손에 돌려주는 거야.

그리즐리 그러면서 왜...!

ZasM21 아무래도 머리는 몸만큼 좋지 못하나 보네.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야! 내가 녀석을 붙잡고 있을 테니, 보석을 갖고 어서 가!

DSR50 저기?
아까부터 너희 둘이서만 얘기를 나누고 왜 난 무시하니?

DSR-50이 그리즐리의 위치를 향해 총을 쏘았다.

ZasM21 뛰어!!

콰앙--

폭발 소리와 함께 그리즐리는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ZAS의 엄호를 받으며 신속하게 복도를 가로질러 창고 입구를 찾아 몸을 날렸다.

그리즐리 이런, 치마가 찢어졌네... 방금 DSR의 총알에 스친 건가.
너무하네, 이 예복 내가 한참을 공들여 만든 건데...
쯧... 설마 괴도와 이렇게 격렬하게 싸우게 될 줄이야.

이때, 그리즐리의 통신기가 깜빡였다.

그리즐리 어라, 내부 회선인가?
아마 그리폰의 신호겠지...

통신 연결.

??? 으음... 여보세요? 들려?

그리즐리 (어라, 화상이 안 나오잖아?)

??? 여기는 그리폰 지휘부, 보석 호위 팀의 그리즐리 맞아?

그리즐리 맞아, 여기는 그리즐리.
현재 내 소대는 괴도 단체에 습격을 당했다, 지원 바람!

??? 알았어, 지금 어디에 있어?

그리즐리 현재 연회장 로비 북측 복도에 있는 3번 창고 안이다.
ZAS는 현재 DSR과 전투 중이고, 잠시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 쪽은 아직 다른 적이 보이지 않아 당분간은 안전하다.

??? 알았어.
10분 뒤에 오른쪽 눈에 흉터가 있는 인형이 그쪽으로 갈 거야, 이름은 UMP9. 걔한테 보석을 인수인계하면 네 임무는 그걸로 끝이야.

그리즐리 라져.
... 음, 잠깐만?

??? 뭐, 뭔데?

그리즐리 그 지시는 현재 내 소대가 받은 임무와 모순된다, 재확인 바람.

??? 아니, 문제 없어, 치이익 UMP9에게 보석을 건내는 게 임무 내용 맞아.
치이익...

그리즐리 (어 방금 그건...?)
재확인 바람! 매우 중요한 보석이라고!

??? 치지직...
... 그래, 그렇다니까, 지휘관이 직접 내린 명령이야. 치지지지직...

그리즐리 (비정상적인 노이즈인가...)

??? 그리즐리? 저기, 들려?

그리즐리 확인.
임무 지시 이해하였으며, 창고에서 인수인계 대기하겠다.

??? OK.

통신 종료.

그리즐리는 조용히 창고 문 앞에 다가가, 바깥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틈틈이 들려오는 총 소리와 폭발 소리가 아니라 한편으론 듣고 싶으면서도 또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즐리 (역시...)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자, 그리즐리는 숨을 죽이고 총을 세게 쥐었다.
1초, 2초, 3초.
문이 열리고 문 앞에 UMP9가 서있었다, 그리즐리는 총을 UMP9의 관자놀이에 댔다.

UMP9 후읍... 진정해, 그리즐리, 나 UMP9이야.

그리즐리 ...

UMP9 보석을 인수인계 받으러 왔어~
너도 아까 들었지?

그리즐리 알았어.
UMP9이라고 했지... 너도, 괴도의 일원이지?

UMP9 내가 괴도라, 과연 어떨까?



그리즐리가 방아쇠에 힘을 준다.

UMP9 아 알았어, 난 괴도가 아니야, 정말로 보석을 회수하러 온 거야!

그리즐리 못 믿겠는걸.

UMP9 ...야, 그럼 어쩌라는 건데.
괴도라고 하면 총 쏠 거고, 아니라고 하면 또 안 믿어주고.

그리즐리 (지그시)...

UMP9 난 아군이야, DSR하고 한 패가 아니라고.
한 번 믿어 주는 걸로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리즐리 아군이 그리폰의 신호를 위장해 연락할 리가 없지.

UMP9 그건...
솔직히 말하면 위장 신호라고 할 수도 없어, 왜냐면 나도 확실히 그리폰의 인형이니까~

그리즐리 오호, 점점 흥미로워지는걸.
이건 뭐랄까... 수수께끼? 정말이지 웰로드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UMP9 너 말이야, 이렇게 포화를 뚫고 어렵게 찾아온 동료를 정말로 적으로 몰 거야?

그리즐리 아니, 함부로 말하지 마. 게다가 지금 네가 정말 동료인지 아직 확신이 안 서.
우선 널 여기에 묶어두고 보석을 건네줄게.
그 다음에 소대원들을 모아서 다 함께 이 수수께끼를 풀고, 지휘관에게 연락해 임무를 보고할 셈이야.

UMP9 아니 수수께끼라니, 너희 임무와는 좀 상관없는 이야기 아닐까?

그리즐리 (지그시)...

UMP9 알았어 알았어,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

UMP9이 갑자기 두 손을 내밀어 하마터면 그리즐리가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UMP9은 그리즐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두 손을 묶으라고 눈짓했다.
그리즐리는 한 손에 총을 쥐고 다른 손을 UMP9을 향해 뻗었다.

UMP9의 손가락에 닿는 순간, 총 소리, 폭발 소리, 주변의 모든 풍경, 눈앞의 UMP9의 모습마저 함께 사라졌다.
UMP9은 기절한 그리즐리를 바닥에 조용히 눕히고 그 옷 속에서 보석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UMP9 모험 놀이는... 일단 여기까지.
정말 무서웠어, 그리즐리 씨, "이걸"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다면 정말 붙잡힐 뻔 했어. --by 괴도.

밤, 그리폰 기지.
인형 숙소 안.

똑똑.

숙소의 문을 두드리고 얼마 안 지나 문이 열렸다.
그리즐리는 여전히 예복을 입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밤새 수학문제를 풀던 학생처럼.

지휘관 안녕, 그리즐리, 오늘 밤은 잘 지냈나?

그리즐리 지휘관...
나 도무지 모르겠어!

지휘관 어, 무슨 일이지?

그리즐리 분명 끝까지 보석을 지켜내서 의뢰인에게 건넬 생각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석이 사라졌어...
끄응, 머리를 굴려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지휘관 그 일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즐리 지휘관?

지휘관 넌 이미 훌륭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했어.
전장에서 아주 믿음직했다고 들었어! 서로 팀워크도 훌륭했고.

그리즐리 정말 이대로... 임무 달성이야?

지휘관 그래, 날 믿어.

그리즐리 (지그시)...

지휘관 (어... 뭐라고 설명해줘야지...)

그리즐리 알았어, 지휘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게.

그리즐리가 그렇게 말하다니 살짝 놀랐다. 동시에 날 이렇게 믿어주다니 기뻤다.

지휘관 (그리즐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응, 그걸로 됐어.

그리즐리 이해가 안 가는 일로 잔뜩이지만, 오늘 밤의 경험은 마치 탐험 소설 같은 기분이었어...
어찌 됐든 멋진 경험이었어.
다만...

지휘관 다, 다만?

그리즐리 지휘관, 모처럼 예복을 차려입었는데, 전투 중에 찢어지고 말았어...

지휘관 ...

그리즐리 지휘관, 예복을 다 수선하면, 다음에 같이 드라이브할 때 입고 나갈 수 있을 텐데..

지휘관 ...그런 차림으로 드라이브 나가게?

그리즐리 내 실력을 얕보지 마!
그러니까, 모처럼의 기념일이니까, 임무의 보수는 치마를 교체해 주는 것으로 해줄래?

지휘관 참, 그리즐리 넌 정말 애교를 부릴 줄 모르는군.

그리즐리 애, 애교라니 무슨! 합당한 요구야!

지휘관 하지만 그렇게나 고생했는데... 보수는 그걸로 충분한 건가?

그리즐리 다른 물건은 생각이 안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저 그때 내가 입은 손실은 이것 뿐이니까...

지휘관 아쉽게도 보수 신청에 그런 옵션은 없는걸.

그리즐리 그래...

지휘관 하지만, 내가 따로 신청을 올려줄 테니까 걱정 마.

그리즐리 뭐?

지휘관 이왕이면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안 그래?
뭐라 해도 그렇게 멋진 드레스인걸, 그냥 수선하는 것만으론 부족하잖아.

그리즐리 정말이야? 진짜 고마워, 지휘관!

그 순간, 원래부터 별처럼 반짝였던 그리즐리의 눈망울에 또 약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번 임무는 정말 깔끔하게 끝난 것 같다...
... 그리즐리에게도, 나에게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