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로드 MkⅡ - 해 질 무렵의 위기

설립 기념일.
연회장.

웰로드 문제 있나요, 지휘관?

지휘관 아니, 그냥... 좀 의외라서.

연회장에서 웰로드가 소리 없이 곁에 나타나서 솔직히 깜짝 놀라긴 했지만.
언제나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놀란 것은 아니다, 그런 점은 익숙하니까.
오늘밤 웰로드가 입은 새 예복이 마치 20세기의 탐정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섬세하고도 시원스러운 드레스라는 점에 놀란 것이다.

웰로드 의외라뇨?

지휘관 네가 설마 그런 레이스 달린 스커트를 입을 줄은 몰랐어.
(그러면서도 꼭 군용 코트를 걸치는군.)

웰로드 네? 지휘관, 그 말은 너무...

지휘관 (아차,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웰로드 아마추어스럽군요!

지휘관 미안... 어? 뭐 뭐라고?

웰로드 아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입지 않으면 이런 연회장에서 너무 눈에 뜨이게 되지 않나요?
그럼 어떻게 보석을 지킬 수 있단 말이죠? 설마 제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나요?

지휘관 아 아니, 그러니까...
어... 미안하다, 웰로드...

웰로드 어쨌든 간에, 어서 정신 차리고 업무에 전념하세요.

지휘관 노력하지.
(뭐지, 어쩌다 한 소리 듣고 말았네...)
그럼... 업무에 집중하자. 크흠... 뭐 수상한 점이라도 있나?

웰로드 수상한 점이라면, 지휘관 지금 모습이 수상하군요.

지휘관 뭐라고?

웰로드 지금 저의 컨셉은 영국 몰락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소문의 보석의 자태를 보고 자신의 책임과 명예심을 되찾으려 하는 굳세고 도도하며 타인을 가까이하지 않는 소공녀예요.

지휘관 그렇게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어? 난 그렇게까지 하란 적...

웰로드 제3자가 보면 지금 지휘관은 마치 저에게 친한 척하는 것처럼 보이겠죠.
낯짝 두껍고 끈질긴 녀석으로 말이죠.

스스로 말한 컨셉처럼, 여태까지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지휘관 (뭔 컨셉을 이런 식으로 짜 놨을까... 뭔가 상처받는 느낌이다.)
어, 그럼... 난 다른 곳을 둘러볼 테니까, 연회장은 맡기도록 하지...

... 한 시간 후.

호텔 복도.

웰로드 어째서 이런 일이!

대피 중인 사람들 속에 섞여 웰로드, 그리즐리 그리고 ZasM21 세 인형은 IDW와 M1873이 결투 중인 틈을 타 보석을 빼돌려 호텔 복도의 다른 한 켠으로 몸을 숨겼다.
아무도 자신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확인하자 웰로드는 낮은 소리로 불만을 내뱉었다.

그리즐리 쉬잇!
조심해, 웰로드, 아직 적이 몇 명인지 파악하지 못 했어.

웰로드 적? 몇 명이냐고?
저기 있는 건 M1873이지 않냐! 어떻게... 적일 수가...
설마 M1873 말고도 이런 짓을 하는 그리폰 인형이 더 있다는 말이냐?

그리즐리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

ZasM21 웰로드, 일단은 진정해, "적"이라고 한 건 단순한 호칭일 뿐이야.
아님 이런 상황이니까, [상대]라고 불러도 괜찮아.

그리즐리 ZAS, 그런 말은 도움이 안된다고...
내 생각엔 그리폰의 인형이 보석을 훔치거나 하진 않을 거야.
분명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야.

웰로드 이해할 수 없어...
악행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같은 기지의 동료로서 내가 나서서 구원하겠다!

ZasM21 이봐, 이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구원이니 뭐니 말하지 마.

웰로드 제길!
어째서 어둠의 사도가 되고 말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M1873의 멱살을 잡고 캐묻고 싶지만...

그리즐리Mk V 그럼 서두르는 게 어때, M1873도 항상 멱살을 잡힐만한 옷을 입고 다니진 않으니까.

??? 어흥!!

세 인형 와앗!

갑자기 복도 정중앙에 한 명의 모습의 나타났다.
그리즐리가 신속하게 웰로드와 ZAS의 앞을 막고 권총을 겨누며 눈앞의 사람을 주시했다.

그리즐리 (소리 낮춰) 조심해.

EVO3 Ahoj~ 지금 웰로드에게 신경 쓸 게 아니라, 나를 주의해야지.

웰로드 큭... EVO3!
어떻게 너마저 악에 물들고 만 것이냐!

ZasM21 ... 웰로드 넌 일단 진정해.

그리즐리 항복하시지, 지금 넌 혼자고, 우린 세 명인걸.

EVO3 흐음, 그건 그렇네,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걸...
그럼 난 못 본 셈 쳐주렴~

말 끝나기 무섭게 EVO3는 뒤돌아 도망쳤다.

웰로드 서라!
그 어떤 죄악도 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즐리, ZAS, 너희는 보석을 가지고 의뢰인에게 이동해, 의뢰인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도록 호위하도록!

웰로드는 EVO3가 도망친 방향으로 몇 발 쏘고 뒤쫓아갔다.

뿌연 안갯속에서 EVO3가 한순간 입가에 미소를 띤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ZasM21 그나저나, 웰로드도 대장으로서는 훌륭한데, 너하고 같이 있을 땐 왠지 네 부사수 같단 말이지.

그리즐리Mk V ...그러게, 뭔가 날 언니로 보는 듯한 느낌이야.

ZasM21 최고참은 쟤인데 말이지...

그리즐리와 ZasM21은 마주 보고 서로 미소를 보이곤 웰로드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렸다.

...두 시간 후.

그리폰 기지.

웰로드가 보낸 답신을 받았을 때 마침 창고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그다지 밝지 않은 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문 앞에 서서 문틀을 두드렸다.
웰로드는 바로 일어서 나를 뒤돌아 보았다.

지휘관 미안, 좀 늦었다.

웰로드 사과할 필요 없어요, 지휘관.

지휘관 오늘 밤 어땠어?

웰로드 ...
결국엔 보석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들었어요.

지휘관 응, 그러니 임무 완료야.
웰로드는 아직도 웃음기가 없구나.

웰로드 웃음이 나올 리가 없잖아요!
지휘관, 보석을 빼앗겼는데 이건 임무 실패잖아요!

지휘관 아니, 넌 충분히 잘했어...

웰로드 제가 역부족인 탓에 실패하고 말았어요.

웰로드가 점점 고개를 숙이며, 표정이 앞머리에 가려졌다.

지휘관 웰로드, 사실은 말이지...
처음부터 보석은 빼앗길 예정이었어.

웰로드 네?

지휘관 넌 충분히 잘해줬어.
그리즐리가 작전 중 네 모습은 마치 경찰 같았다고 하더라.
너흰 이미 아주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어.

웰로드 어... 그, 그런가요...

웰로드는 잠시 입을 다물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웰로드 지휘관, EVO3 그들이 결코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 믿었어요.

지휘관 흠, 물론이고 말고.

웰로드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알아서는 안 될 일을 말하게 했네요.

지휘관 아니 아니,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웰로드 알아요... 빛은 어둠으로부터 나오고, 어둠은 빛을 만들어 내는 법.
그러니 어떤 일들은 그림자 속에 숨겨야 하는 거죠.

웰로드의 눈빛에는 더 이상의 망설임도 속상함도 보이지 않고, 평소의 꿋꿋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휘관 음, 그 말대로야.

웰로드 그러니 고마워요, 지휘관.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됐어요.

지휘관 뭐, 감사할 필요는 없어.
빛이니 어둠이니 뭔가 소설에서 나올 말 같지만.
악을 응징하는 것이라면 웰로드를 굳게 믿고 있으니까.

웰로드 네...?

지휘관 웰로드는 정의의 사자니까.

웰로드 하지만... 모두들 저 보고... 그러니까...
중2병이라고 하는데요...?

지휘관 아니, 실력이 있으면 그건 더 이상 컨셉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의 사자야!

웰로드 ...
하핫, 네!
지휘관 말이 맞아요!

웰로드가 웃음을 터뜨린 것을 보자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ZAS가 들었다면 분명 놀렸겠지.
그래도, 이걸로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면 됐어.
녀석이 이렇게 웃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