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스토리



...
물론 다들 처음으로 바다와 백사장을 봐서 흥분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애들의 반응은 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온몸이 피곤해진다.

지휘관 힘들어...
바닷가로 휴가 나와서까지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일단 어디 한구석에 가서 숨 좀 돌리자...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설마 여기를 폭발시키겠어…

조용한 곳을 찾아서 혼자 살짝 먼 곳으로 향했다.
슬슬 뒤돌아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약간 멀리 있는 제방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 잘못 본 건가 해서 눈을 깜박였다.

AK12 ...

지휘관 (AK12?)
(어째서 리벨리온의 인형이 여기에 있는 거지? 설마 근처에 리벨리온이 나서서 처리할 문제가 있는 건가...?)
(으음... 하지만 옷차림을 봐선 전투 임무는 아닌 것 같은데...?)

지휘관 ...
어릴 적부터 이 해변이 오래된 휴가철 핫 플레이스라고 듣긴했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바다를 처음 보는 건가, 12?

AK12 처음이기도 하고, 처음이 아니기도 해.
다만 여러 세세한 곳들은 모의훈련의 설비로도 재현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어느 정도 흥미롭네.

지휘관 ...
여기서 너랑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AK12 그럼 지금 상황에 맞는 대화를 할까?
여기서 그리폰의 인형들이 해변에서 노는 모습이 보이네, 모두 바보 같지만, 이런 모습도 괜찮지 않아?

지휘관 다른 말은 됐고, 설마 리벨리온이 그냥 그리폰 인형이 어떻게 노는가 보러 왔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AK12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야.

지휘관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서 걱정인 거야.
지금 AN94도 안 보이고,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AK12 자립심을 키우려 살짝 방치했다고 할게.
94도 계속 내 곁에만 있으면 넘지 못할 장벽이 있을테니까.

지휘관 리벨리온이 여기 온 이유는 알려줄 수 없고?

AK12 신 경 끄 렴 .

지휘관 ...

AK12 어머, 당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구나? 재밌네.

지휘관 난 지금 진지해, AK12.
그냥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도 넘어갈 수 없는 일도 있어. 특히 지금 바닷가의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면...

AK12 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과 그리폰 인형의 안전은 보장할게, 우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보장할 수 있는 거야.

지휘관 난 불안하기만 한데.

AK12 그건 당신이 지금 할 게 없어서 이상한 생각이 많은 거야.
아니면 이렇게 하자, 나도 여기서 그리폰 인형들이 노는 걸 보는 게 질렸으니까.
같이 ‘저거’라도 할까? 저기 비치발리볼을 가지고 있는 인형이 있잖아?

지휘관 난 그럴 기분 아닌데...

AK12 그럼 진 쪽이 이긴 쪽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자, 그쪽이 이기면,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려줄게.
그쪽은 몇 명이든 내보내도 되니까, 나와 94가 한 세트라도 지면 그쪽이 이긴 거로 할게.

지휘관 ... 자신들이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도 이해는 가, 너와 94의 실력이라면 우리는 분명 처참하게 질 테니까.

AK12 그렇네, 저런게 오래된 모델을 상대로는 너무 심한 것 같네.
그럼 나는 "눈을 뜨지" 않기로 할게, 어때?

지휘관 그리고 공으로 애들을 다치게 하면 안 돼, 어느 부분도 다치게 하지 마.

AK12 정말 깐깐하네...
좋아, 그렇게 하자, 우리도 한 번 놀아보지.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바닷가에 그려진 코트에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다.

AK12 그럼 우리 쪽은 내가 먼저 나설게, 나 하나면 충분하니까.

AN94 지휘관, 그리폰은 누가 출전하는가?

지휘관 (확실히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리벨리온의 위험성과 비치발리볼 규칙을 모두 아는 인형이...)

지휘관 좋아, 그럼...

G41 저희 쪽에서 가장 먼저 나가는 건 당연히 주인님이에요!

지휘관 잠깐...? G41?

AK12 지휘관?
알겠어, 설마 지휘관이 상대일 줄은 몰랐네, 한번 기대해 보지.

지휘관 AK12, 기다려 봐. 평범한 인간이 엘리트 인형을 상대하겠다는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리고 비치발리볼은 2인 1조로 하는 거라고... 아까 아멜리가 설명했잖아?

G41 가요, 주인님. 저 그리폰을 물로 보는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를 인형에게 주인님의 실력을 보여주세요!
저희 함께 전력으로 주인님을 응원할게요!

지휘관 야야야야, 밀지 마 G41! 제발 제발 놔주라고!

AK12 지휘관 준비됐어? 그럼 서브 간다.
연산 개시, 공격 준비.

지휘관 저기... 잠깐만?

G41 힘내세요 주인님! 반드시 이기세요!

공을 때리는 찰진 소리와 함께, AK12의 정밀한 연산을 통한 완벽한 포물선을 따라 공이 날아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 직격해, 나를 뒤로 날려버렸다.

이기는 건 둘째치고, 콧등이나 무사하면 다행이겠다.

...

G41 우으으...
주인님... 죄송해요...

지휘관 괜찮아, 무사하니까... 그렇게 내 위에서 깔고 앉지 말아줘.
...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AK12... 설마 날 죽일 생각으로 한 서브는 아니겠지?

AK12 나한테 그런 유치한 감정이 있다고 보이니?

지휘관 그건 그렇지...

AK12 근데 겨우 20분 만에 정신을 차리다니, 의외로 몸이 튼튼하네, 흥미로워.
그럼, 계속할까, 지휘관? 나도 내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하고 싶어서 말이야.

지휘관 모처럼의 여름 휴가를 기절한 채로 보내긴 싫으니까, 그만 봐줘라.

해가 지기도 전에 모든 시합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다.
시합이 끝나고 AK12는 다시 제방 위에 돌아갔다.

AK12 이게 인간의 체육활동인 건가...
처음에는 좀 재밌었지만, 요령을 알고 나니 바로 지루해졌어.

지휘관 아무래도 리벨리온이 바닷가에 온 이유는 평생 알 수 없겠구나.
그래도 이렇게 공놀이 할 시간까지 있는 걸 봐서, 무슨 긴급한 위험을 처리하러 온 건 아니라고 믿어.

AK12 그냥 그리폰 인형이 어떻게 노는지 보러 왔다고 생각하면 돼.

지휘관 나도 뭐 다른 수도 없으니 그렇다 치자.
이거 가져가렴, 너와 94의 몫 둘 다 있으니까.

AK12 빙수?
그리폰의 위문품은 필요 없어...

지휘관 위문품이 아니야, G36이 너희 둘이 온 걸 보고 특별히 준비한 거야.
맛도 특별히 맞춘 거니까, 녹기 전에 먹으렴.

AK12는 빙수를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한 입 먹었다.

AK12 으... 음...

지휘관 입맛에 안 맞아?

AK12 맛의 문제가 아니라, 난 찬 것을 잘 못 먹거든. 머리가 좀 아프네.

지휘관 인형도 찬 걸 먹고 두통이 오는 건가...?
엘리트 인형인 AK12에게도 이런 약점이 있었구나, 기억해 뒀다가 잘 써먹어야겠다.
AK12는 빙수의 자극에서 금방 회복되어 장황한 연설을 시작했다.

AK12 찬 것도 이 정도쯤은 되어야 입에 넣던가 하지.
그럼, 이 두통을 참으면서 그리폰의 지휘관에게 무슨 일을 시킬지 생각해볼게.

지휘관 날 그리폰에서 떠나게 할 생각하지 마라! 혹은 그것을 이유로 다른 인형에게 폐를 끼치게 하지도 말고!

AK12 그리폰에 아름다운 고위간부가 짝을 못 찾아 고생이라던데...
당신이 좀 차려입고 그 분의 왕자님이 되어주면 어떨까?

지휘관 사람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고!

AK12 그냥 농담이야.
지휘관, 요즘 이 세상에 당신처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인간은 얼마 없어.

지휘관 인간의 영혼은 마인드맵을 설계하는 것하고는 달라. 재미있는 영혼은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야, 어떨 때는 다른 무언가의 부산물이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런 영혼을 만났을 때는 잘해주는 편이 좋을 거야.

AK12 그러도록 할게.
그럼 이번 시합의 보상은 아껴두고, 나중에 내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얘기할게.
다음에 만날 때를 기대하고 있을게, 지휘관.

그 후, 여름의 바닷가를 떠올릴 때면, 머리에 공을 맞은 아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의 세상과 리벨리온은 이렇게 스치듯 다시 서로의 길로 돌아갔다.
모든 우리 인형이 저 눈을 감고 있는 인형이 대체 어떤 인형인지는 알지 못했다, 알아도 상관없지만, 모르는 편도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와 AK12 모두 알고 있듯이, 다음에 만날 때는 서로 누구를 등지고, 총구를 누구에게 겨누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