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스토리



늦은 밤 그리폰 기지.
인형 숙소.

AA12는 탁상에 엎드려 라디오를 쳐다보며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AA-12 역시 물어보는 게 나으려나... 딱히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가기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내가 가서 대답할 때쯤이면 이미 자고 있겠지.

3시간 전.

똑 똑.

문을 두드리자, AA12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마주치자 AA12는... 몇 초정도 굳은 것 같았다.

지휘관 늦은 시간에 미안하지만.
그러니까, AA12, 이번에 단체 휴가 여행 명단에 네 이름이 있거든.

AA-12 ... 어.

지휘관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올 거니?

AA-12 ... 해변 휴가 말이야?

지휘관 그래.
너도 그리폰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모두하고 같이 나가서 놀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임무에 나갈 때도 서로 호흡이 맞을 테니... 말이야?

AA-12 .....
저기, 좀 나중에 대답할게.

지휘관 나중에? 알았어.
그럼, 기다릴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닫혔다.
쫓겨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 신입은 별로 나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과연 모두와 바닷가에 놀러 간다고 할 지 모르겠군...

잠시후

AA12는 여전히 탁상에 엎드려 라디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AA-12 아, 곧 시작한다.

인형 숙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였다.
AA12는 그 자세로 꿈쩍 안 하다가, 몇 분 후...
음악 소리가 울렸다.

DJ 카리나 말로 서로의 마음 전하고, 주파수로 서로를 더욱 가까이☆
여러분 모두 안녕! 좋은 밤이야, 오늘도 새벽 한 시 "카리나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시간이야!
오늘도 모두를 사랑하는 카리나가 모두의 생활 속 고민을 풀어줄 거야♪

AA-12 아 맞다, 문자 작성해야지...
이렇게 이렇게, 이러면 되겠지?
좋아, 발송!

DJ 카리나 그럼 먼저 우리 한 친구의 문자를 읽어보자, 과연 오늘의 행운아는 누구일까?
자, 나왔다. 오늘의 첫 번째 사연은 【사육사 씨가 나를 1등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 어떡해?】
음... 이 문제는...

AA-12 에이, 왜 내 게 아니야.
좀 피곤한데, 빨리 내꺼 내꺼내꺼내꺼내꺼...

DJ 카리나 ... 그러니까, 이런 일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해.

DJ 카리나 너희 불쌍한 카리나를 보렴, 매일 보고서 쓰지 정보 분석도 해야지, 어디서 보고거리랑 정보를 이렇게 많이 가져오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고생해도 지휘관님의 1위가 아니잖아.

DJ 카리나 그럼 다음 사연을 한번 볼까...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상사가 저보고 다른 직장동료들과 같이 해변으로 휴가를 가자고 초대했어요, 좋은 의도인 건 알지만, 가야 할까요?】

AA-12 DJ 카리나 씨, 도와주세요!

DJ 카리나 이 청취자 친구, 지금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말할게...

DJ 카리나 당연히 가야지!! 해변 휴가라고!
그리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잖아, 그럼 네 상사는 좋은 분인 거야, 적어도 직원을 보살필 줄 알고, 신입 직원도 즐거운 대인관계를 맺길 바라는 분이라고.

DJ 카리나 카리나도 정말 부러워! 나도 바닷가로 휴가 나가고 싶단 말이야!

AA-12 아, DJ 카리나 씨가 가라고 했네...
그럼 지금 지휘관에게 말하러 가자...

AA12는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 하지만 또 망설이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AA-12 아무래도 이미 자고 있겠지.
게다가 내가 왜 꼭 이딴 일에 신경 쓰는 것처럼...

DJ 카리나 그럼 이 청취자분은 무슨 사연이 있나 보자.
【새로 온 직원이 저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바다로 놀러 가자고 초대했지만, 흥미가 별로 없어 보이네요】...

DJ 카리나 그래, 여름이니까, 모두 바닷가 이야기를 하네.

AA12는 라디오를 뒤돌아봤다.

AA-12 어라, 이 사연은 설마...

DJ 카리나 ... 그런 건 잘 확인하시고 말해야 돼요?
새로 온 직원이면 부끄럽거나 낯을 가리거나 하는 이유일 수도 있으니까요.

...
라디오에서 DJ가 또 다른 청취자의 사연을 하나하나씩 읽었다. AA12는 서둘러 앉아 문자를 작성해 발송했다, 그러곤 다시 망설이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라디오를 쳐다보았다.

DJ 카리나 ...그럼 다음 사연을 들어볼까?

DJ 카리나 오호오...【제 상사께서 제가 피하는 건 줄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잘 못 나눌 뿐이니까,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리고 같이 해변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이 청취자의 사연은 아까 전의 문자와 관계가 있는 것 같네, 요즘 직장관계에 오해가 이렇게나 많은 걸까...

DJ 카리나 이 문자 내용도 재미있네.
【신입 사원이 해변 휴가에 같이 가기로 약속해줬네요! 부디 이번 휴가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절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네요.】...
호호호호, 오해가 풀린 것을 봐서 정말 기쁜 일이네요, 저도 바닷가에 휴가 나가고 싶은데...

30분 후.

DJ 카리나 이상으로 오늘의 고민 상담 끝~
비록 아까 바닷가에 간다는 두 청취자분이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잘 부탁드려요!""아뇨, 저야말로." 같은 문자를 주고받는 것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거예요♪

...
다음 날 아침.

AA12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이미 수영복을 입고 시끌벅적 떠드는 인형들과 햇볕이 쨍쨍한 바닷가에 있었다.

AA-12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으윽, 눈부셔, 게다가 너무 오래 긴장해 있었더니 메스꺼워...
우읍, 왜 이런 수영복까지 입은 걸까...

AA12는 두세 명씩 모여 흩어지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백사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파라솔을 펼쳐 태양을 피하려 했다.

AA-12 파라솔을 챙겨와서 다행이야... 여기에 이렇게 대충 하면...
...응?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 손으론 파라솔의 우산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몰래 총몸에 얹고...
빠르게 뒤돌아보자 멀지 않은 야자수 밑에서 키가 작은 인형이 고개를 반쯤 내밀고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AA-12 ...

아멜리 히익! ...

한 동안 눈싸움을 하던 AA12는 다시 포기하고 총에서 손을 떼 다시 파라솔을 세우기 시작했다.

AA-12 (이런, 이럴 땐 인사라도 하는 게 아닐까...)

아멜리는 AA12가 자신을 쫓아낼 의도가 없어보이자, AA12 곁으로 다가갔다.

아멜리 저, 저기, 안녕!

AA12는 화들짝 놀라고, 삐걱대면서 고개를 아멜리쪽으로 돌렸다.

아멜리 저기, 난 아멜리라고 해...
네가 새로 온 동료구나! 기지에 있을 땐 말을 걸 기회가 없어서...

AA-12 ... 안녕, 난 AA12야.

아멜리 AA12는 여기 혼자 있는 거야?
지금 저쪽에서 함께 비치발리볼을 할 생각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



아멜리가 AA12에게 말을 걸 때, 두 눈에서 마치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AA12는 그걸 보고 또 움찔했다.

AA-12 (심야 라디오에서 사회 에티켓을 어떻게 가르쳐줬지? 빨리 떠올려봐!)
아, 아니 난 됐어...
너무 사람이 많은 곳은 안 좋아해서.

아멜리 그렇구나...

AA-12 (어떡하지? 내가 잘못 말했나? 왜 고개를 숙이는 거야!)

아멜리 알겠다! AA12는 여기서 태양을 피하고 싶은 거구나?
그러고 보니, 바닷가는 자료에 있던 것처럼 눈부시고 더워, 나도 바다에 온 건 처음이라서 깜짝 놀랐어...

AA-12 그, 그래.

아멜리 저기... 파라솔 펴는 거 도와줘도 될까?
AA12 파라솔을 많이 가져왔네...

AA-12 어, 좋아.

아멜리 정말이야? 다행이다!

아멜리가 바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AA12는 잠깐 어쩔 줄 몰라 하다 그냥 아멜리가 하자는 대로 했다.
아멜리의 도움으로 파라솔 작업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얼마 후, AA12에게 커다란 파라솔을 세방향으로 설치한 햇볕을 완전히 차단하는 의자가 생겼다.
AA12는 사교성의 중요성을 또다시 한번 깨달았다.

AA-12 ... 응, 고마워.

아멜리 그, 그렇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 같은 기지의 동료니까 이 정도쯤은 당연히 도와줘야지!

AA-12 (답변 양식을 검색 검색...)
같은 기지의... 아, 마, 맞아, 동료니까.
그래도 고마워, 내 동료 아멜리.

아멜리 동료... 친구...



AA12가 어떻게 이 대화를 예절 있게 끝낼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멜리가 갑자기 항상 휴대하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기대로 가득 찬 얼굴로 AA12에게 내밀었다.

AA-12 ... 어?! 이건 뭐야?

아멜리 단추야! 바, 받아줘!

AA-12 ... 어어? 음, 응...

아멜리 그럼 AA12, 난 먼저 지휘관님 쪽으로 갈게!
안녕!

AA-12 ... 안녕.

AA12는 아멜리가 깡총깡총 뛰면서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대로 꽈당하고 넘어지는 꼴을 보고, 고개를 숙여 손안의 단추를 바라보았다.

AA-12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 단추는 또 뭐지? 방금 다른 인형과 성공적으로 대화를 나눈 건가...
아, 귀찮아. 그냥 밤까지 여기 있자, 덥고, 눈부시고,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
으윽, 방금 그렇게 점잖은 척 하는 것 역시 메스꺼운데...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찬 AA12는 고민해봤자 쓸모없는 문제를 접어두고, 의자에 푹 퍼졌다.
이제야 햇볕을 피해 조용히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저 멀리 튜브를 들고 있는 주황빛의 모습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
그날 밤.

AA12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는 이미 그 주황색 인형과 한탕 다투고 난 뒤였다. 당분을 보충한 뒤 캠프파이어 장소에 나타났다.

AA-12 뭐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 난 또 뭐 하고 있는 거지...

AA12가 멍하니 있을 때, 지휘관이 다가왔다.

지휘관 안녕, AA12.

AA-12 ... 지휘관이구나.

지휘관 어때, 바다 멋지지 않니?

AA-12 ... 점점 인사가 촌스러워지네, 지휘관.
그리고,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는 건, 그리폰 기지 높은 곳에서 바깥 폐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지휘관 그렇게 썰렁한 느낌이었니.

AA-12 ... 응.

지휘관 우리가 있으니까 이 바다가, 혹은 그리폰 기지가 그렇게 썰렁하지 않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AA-12 ......

지휘관 나는 너희가 있어서 매일 보람차고 즐겁단다!

AA-12 ... 지휘관의 생각은 물은 적 없어.

지휘관 그럼 그냥 내 혼잣말이니까 듣든 말든 상관없어.
비록 우리는 저마다 다른 하나의 개체지만, 모두가 함께 모여 있는 것과 혼자 있는 것은 분명 다르잖아?
아무튼, 그리폰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너도 여기서 많은 좋은 것들을 얻기를 바라지.

AA-12 좋은 것들... 그 폐허뿐인 구역에 그런 게 있을까?

지휘관 꼭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야.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개념이지만, 이 썰렁한 세상을 덮을 정도로 아름답지.

AA12는 잠깐 멍해졌다, 그리고 손안에 쥐고 있는 단추와, 입속에 남아 있는 막대사탕의 신맛을 떠올렸다.

지휘관 나중에 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모두와 함께 바닷가에 오겠니?

AA-12 ......
그건, 기지에 돌아간 뒤에 대답할게.

AA-12 (단추고 친구고 좋은 것이고 뭐고... 귀찮아, 그러면서도...)
(돌아가면 DJ 카리나 씨에게 확실하게 물어봐야겠어!)
(음, 가장 먼저 보낼 수 있도록 미리 문자를 준비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