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스토리



그리폰 지휘실

일과 순찰 임무를 끝내고, 인형들은 해산해 각자 장비 손질을 하거나 숙소에 쉬러 갔다.

다만 MP7은 혼자 인쇄한 임무 기록 서류를 들고 지휘관 사무실에 제출하러 뛰어갔다.

MP7 사육사 씨, 임무 끝났어!
... 없는 건가?

지휘실엔 아무도 없고, 탁상 위에 어질러진 보고서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MP7 사육사 씨 점점 버릇이 없어져 가네! 가끔은 알아서 정리해야지, 언제까지 이 천재가 돌봐줘야 돼?
음, 이렇게 이렇게, 보고서를 탁상에 올려놓고...

MP7 ...응? 이게 뭐지?

임무 보고서를 탁상에 놓고 뒤돌아가려던 때, 지휘관 탁상 위의 검수 중인 서류에 눈길이 끌렸다.
서류 표지 위에 MP7의 사진과 프로필이 붙어 있었고...
... 붉은 펜으로 추가 문구가 쓰여 있었다.

MP7 시험 성적 우수, 직원 여행 명단에 우선으로 선발... 추가 - 전투공헌 순위 2위.

MP7 ... 2위???!!!

마치 성탄절 선물 내용을 미리 알아버린 아이처럼, MP7은 자신이 포상을 받은 것을 미리 알았다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인상을 가득 쓰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비행기에 탈 때까지, 심지어 바닷가에 다 와서까지 MP7은 눈살을 찌푸린 채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 심지어 AA12마저 같은 줄에 앉기 싫어할 정도로.

MP7은 바닷가에서 어슬렁어슬렁, 수영복을 입고 튜브까지 챙겼으면서도, 모래만 툭툭 차고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휘관 지휘관의 직감으로!! MP7 너 수영을 못하는 것 같은데.
어때? 수영 코치가 필요하니? 내가 확실하게 가르쳐 줄 수 있단다.

MP7 사육사 씨, 농담이 갈수록 재미없어져.

지휘관 재미없다면 더더욱 연습해야 내 유머감각을 기를 수 있잖아?
뭔가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MP7 그냥... 분해! 분하다고!

MP7은 주먹을 꽉 쥐고,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MP7 천재임에도 계속 노력했는데, 설마... 겨우 2등이라니... 그럴 리가...
아니야, 분명 사육사 씨 그쪽에서 잘못한 거야!

지휘관 (이런, 성적표를 보고 만 건가... 얘한테는 숨길 생각이었는데...)

지휘관 크흠, MP7, 함부로 내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뜻이니?
착한 어린이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MP7 그, 그게 아니고! 사육사 씨가 정리를 너무 안 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길이...

지휘관 아하!
그러니까 함부로 들어갔다는 뜻이지?

MP7 그, 그, 그게 아니라니까... 마, 말 돌리지 마!
아무튼 사육사 씨 용서 못 해!

지휘관 용서 하기 싫으면 하지 말던가... 우리 회사는 강한 인형일수록 이상한 버릇이 있다니까.
너 말이야, 인형으로서도, 직원으로서도, 너무 우수해서 생각을 지나치게 하는 점이 있어.
생각을 많이 하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그렇게 심술부리고 따지고 하는 건 엘리트 인형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야.
진정한 프로는 사적인 감정을 버리고, 프로페셔널하게 눈앞의 일을 똑바로 처리할 줄 알아야 돼. 작전도 일이고, 쉬는 것도 일이야.

MP7 ...

MP7 (하지만 사육사 씨 역시 말 돌리고 있는 거잖아!)

지휘관 그러고 보니, 마침 MP7에게만 맡길 수 있는 임무가 있는걸?

MP7 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지휘관 페르시카 씨가 휴가 가는 김에 습도, 기온, 염분이 모두 높은 환경에 노출된 인형들의 성능 데이터를 수집해달라고 했거든.
다른 인형들은... 봐봐, 공놀이 하거나, 족제비랑 놀고 있지, MP7 너한테만 맡길 수 있어!

MP7 어차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지휘관 (아 이런...)

지휘관 그 공헌 순위가 그렇게 중요하니?

MP7 당연하지!

지휘관 그저 자신이 2위라는 것 때문에 계속 그렇게 성질만 부리고, 이렇게 바다에 와서까지 계속 성질부릴 거니?

MP7 난 천재인데, 2위일 리가 없어...

지휘관 그래서 지금 내가 【MP7은 역시 천재구나! 공헌이고 뭐고 분명 내가 잘못 본 거였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임무가 있는데, 안 할 거니?
내가 서류 정리를 안 한 것 가지고, 평생 날 용서 안 하고, 내게 사과할 기회도 주지 않을 셈이니?

MP7 그런 게 아니라...

MP7의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지휘관 자아 자아, 화 풀고, 못생겨진다.
가서 수영하는 게 어때?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바다잖아, 모든 고민을 쓸어가 줄 수 있는 바다라고!

MP7 사육사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MP7은 궁시렁거리며 물속에 들어갔다. 언어의 마법 덕분인지 정말로 고민이 바닷물 속에 녹아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MP7은 기분이 약간 좋아져서 물 밖으로 나와 지휘관에게 보고하려고 했는데, 지휘관의 뒷모습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MP7 바보! 사육사 씨 바보!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데이터를 수집해주고 있는데!
같이 있어 준다면서! 다시는 말 걸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보글보글보글.

MP7 사실 사육사 씨 말도 맞아. 포상휴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인걸.

보글보글보글.

MP7 그러면서도 난... 아무 상관 없는 일 가지고 성질만 내고. 실력은 이미 인정받은 건데.

보글보글보글.

MP7 그렇다고 지금 가서 사과하는 건... 아니야! 너무 생각하지 마! 정신을 집중해!

MP7 임무를 받은 이상 프로답게… 눈앞의 임무를 완수해야 해!

MP7 그럼... 사육사 씨에게 직접 사과 하지 않아도 빚을 다 갚을 거야!

바닷속에서 조용히 다짐한 MP7은 둥실둥실 밀물 파도에 실려 튜브와 함께 물 밖으로 밀려나갔다.
물속에 있는 동안 그리폰 인형들은 비치발리볼 대회를 열었는지 한곳에 모였다.
그런데 바닷가에 딱 한 명 우글우글한 인파를 피해, 이 뜨거운 휴가 분위기에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MP7 저 녀석... AA12라고 했던가?
확실히 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었던가...

파라솔을 여러 개 우뚝 세워 자신의 의자 주위로 진형을 짜고, 다리를 꼬고 혀를 내밀고 부채질하는 모습은 괴로워 보이면서도 엄청 지루해 보였다.

MP7 어쩌면 사육사 씨 눈에는 나도 저렇게 불쌍하게 보였을지도...

그래서 MP7은 AA12에게 다가갔다.

MP7 야! AA12!

AA12 ... 응?

AA12 (더워, 얘는 뭐야...)

MP7 (이 녀석 왜 이렇게 건방져 보이지...)

MP7 야, 너 왜 혼자 여기 숨어있는 거야?
바다까지 와서 아깝지도 않아? 모처럼 수영복까지 입었으니까, 같이 수영하러 가자.

AA12 ... 싫어.

AA12 (너무 더워. 말하는 것도 싫어, 이 녀석도 짜증나...)

MP7 뭐어? 싫다고? 너 지금 널 초대하는 게 누군지 알아?

AA12 응? 너잖아? 그래서?

MP7 ... 너너너!
야, 내가’친히’같이 수영하자고 해주는데, 너 말하는 거 너무 건성인 거 아니야?
비록 나 같은 천재에게 시시한 친구는 별로 필요 없지만, 너 같은 인형에게 친구도 없으면 괴롭지 않겠어?

AA12 그럼 신경 쓰지 마.
난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괜찮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는데.

MP7 말을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야! 너도 이번 여행에 뽑혀서 온 거잖아!
자랑스러워할 일이잖아, 성적이 우수한 인형들을 뽑아서 온 거라고!

AA12 에이... 내 말 못 알아듣겠어? 그리고 왜 네가 나한테 와서 그런 말을 하는데? 너도 계속 혼자 놀고 있잖아?
겉치레뿐인 말만 늘어놓고 부끄럽지도 않아?

MP7 뭐라고! 선배를 존중할 줄도 모르는 거야? 신입 주제에...
... 야, 잠깐, 뭐 하려는 거야?!

AA12 시끄러워.

AA12는 구름 가득 낀 얼굴로 의자 옆에 세운 총을 들어, MP7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MP7 야?! 자, 잠깐만! 기다려봐! 너 미쳤어?

말싸움은 갑자기 총격전으로 돌변했다, 정확히는 일방적인 추격으로. MP7은 온 힘을 다해, 열 발이 넘는 산탄 세례를 피했다.

소란 소리를 듣고 지휘관이 급히 달려왔다.

지휘관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MP7 어, 그게... 그러니까, 그냥 얘하고 좀 다툰 거야!
괜찮아, 아무 일 없으니까! 여긴 나한테 맡겨주면 되니까, 사육사 씨는 안심해!

지휘관 다툰 거라...
왜 다툰 거로 모래 위에 탄흔이 생기는 거지...

MP7 대화야 대화, 대화하다 보니까 생긴 흔적이야.
아무튼 괜찮아 사육사 씨! 봐봐, 우리 둘 다 멀쩡하잖아!

AA12 ......
응, 지휘관, 대화하고 있었어... 대화하다 좀 다툰 것뿐이야.

MP7 (이 녀석 말 제대로 할 수 있잖아...)

지휘관 정말, 다툰다 해서 총까지 쏠 필요는 없잖아.
나하고 카리나도, 일하다가 가끔 다툴 때도 있지만 매번 잘 해결하잖아.
무슨 일 있으면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로 해결해. 대화는 분명 통하니까, 알겠지?

MP7 ... 그래 맞아,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할 테니까, 사육사 씨는 그만 가도 돼.

...
이러쿵저러쿵해서 MP7은 지휘관을 달래서 돌려보냈다.

MP7 휴우... 이걸로 일단 고비를 넘겼네...
야 너 말이야, 왜 갑자기...

AA12 우웁...

AA12가 갑자기 총을 버리고, 바닥에 꿇은 채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MP7은 깜짝 놀랐다.

MP7 야야야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

AA12 우웨웨웩... 오지 마... 난...

언제 AA12가 또 총을 쏠까 걱정됐지만, MP7은 침을 꿀꺽 삼키고 AA12를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혔다.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는 AA12를 보고, MP7은 다급히 AA12의 등을 두드리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지만, AA12의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MP7 (정말로 어디 망가진 거 아니야? 그럼 빨리 사육사 씨하고 G36을 찾아서...)

AA12 다, 당분... 당분을 보충해야 돼... 괴로워...

MP7 당분? 여, 여기 있어! 근데...

MP7이 다 말하기도 전에 AA12가 손에 쥔 사탕을 덥석 물어갔다.

MP7 ... 근데, 엄청 신 건데...

AA12는 MP7의 나머지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MP7은 어쩔 수 없이 AA12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지나서 AA12의 기침과 헛구역질이 줄어들었고, 증상도 점점 가라앉았다.

MP7 이제 괜찮아?

AA12 으응...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MP7 깜짝 놀랐잖아.
G36한테 좀 봐달라고 해볼게.
진짜, 나만 일방적으로 맞은 건데...

AA12 ... 필요없어, 너하고 상관없으니까.

MP7 뭐가 상관없다는 거야! 너 아까... 이, 이이, 그, 으으... 그렇게 됐으면서!

AA12 그냥... 지휘관에게 점잖게 말하고 있다보니… 좀 메스꺼워서.

MP7 (점잖게 말하면 메스꺼워?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 내가 잘못했어, 네가 분명 경고했는데.

AA12 내 잘못도 있어... 지휘관이 한 말도 일리가 있어.
그리고, 사탕 고마웠어... 나중에 갚을게.

MP7 괜찮아, 어차피 내가 먹는 신 사탕도 입에 안 맞았겠지.

AA12 나쁘진... 않았어.

MP7은 잠깐 멍했다가, 웃었다.

MP7 결국 우리 둘 다 혼자 있기 좋아하면서도 이런 점에 공통점이 있나 보네? 괜찮은 느낌이야.

MP7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게 이렇게 힘들었구나, 사육사 씨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좀 알 것 같아.

MP7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아,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사육사가 되는 것도.

...

저 멀리 배구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지휘관 음... 저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정말로 의외인걸.

지휘관 만약 MP7이 자신의 공헌 순위를 2위로 밀어낸 범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지휘관 ... 모르는 것이 약이다, 그래, 모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