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리두 연주법EX
디제리두 연주법EX
저기...
여기, 이쪽이야.
짠!
이런 등장은 어때? 마음에 들어?
게임이 시작됐어, 비록 이번엔 네가 먼저 등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플레이어를 좋은 컨디션으로 맞이해야겠지?
좋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잠깐 설명해줄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네가 기억하는 것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완전히 새롭고 이상한 세계에 떨어질 거야, 너와 네 친구들의 신분과 관계도 네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를 거야.
또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그 그리폰의 인형들 말이야.
어쩌면 다 함께 기묘한 대모험을 즐길 수도 있고, 인생의 대위기에 빠질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예전에 말했 듯이, 인생의 90%는 어떻게 마음먹냐에 달렸으니까!
뭐가 밝은 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네가 계속 열심히 찾다 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그럼 행운을 빌게, 줄리아나, 그리고 조.
...그리고 이 세계에도 행운을 빌지.
...............
아직... 멀었어?
흐흐흐, 겁먹었어 MP5?
빨리빨리 가자. 가이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여기 너무 깜깜해... 그리고 폐허뿐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이드가 여긴 아주 오래전부터 아무도 온 적이 없다고 했어.
그리고 내가 함께인데 무슨 걱정――
으아악!!
손전등! 손전등!
MP-446은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손전등을 켰다.
...어휴 깜짝이야. 그냥 원주민 두개골이잖아? 철혈의 디너게이트 잔해인 줄 알았네.
바이킹...
너도 사실 어두운 게 무섭지...?
하, 하나도 안 무섭거든?! 어두운 게 무서우면 그리폰 시티에서 어떻게 살아남겠어!
그... 그냥 도중에 내 전력이 바닥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래. 밖으로 나설 때 79%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그 재미없는 시위에서 빠질 수 있다면야, 차라리 이러다 잡혀가서 모래나 치우게 되는 편이 훨씬 낫지.
그래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자유의 여신상이라든가, 피라미드라든가...
쳇, 그딴 돌무더기가 뭐가 좋다고. 피라미드 안에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데!
조금만 더 참아, MP5. 이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모험이야!
그리고 우리 가이드 언니를 좀 믿어 봐.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끝내주는 원주민이라고!
칭찬 고마워. 탐험가라 불러줬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지.
얘들아, 전방이 안전한 건 확실해. 적어도 3년 동안 누구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곳이니까.
3년... 역시 "그때"부터...
맞아, 귀여운 인형 아가씨.
[어그멘티드 아이]를 구독했다면, 세계 종말에 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을 봤겠지?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도 그 근거 중 하나야.
맞아맞아! 우와, 엄청 기대된다! 구석구석 스캔해서 그리폰 시티의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그래도 좀 무서워요. 철혈이 나타나진 않을까요? 아까 계엄령 표지판도 있던데...
우리가 어딨는지 찾으려 해도 못 찾을걸? 잠깐 기다려, 인증 시스템을 뚫어야 하니까.
...삐이.
락도어가 열렸다.
전자 모듈 없이 인증을 통과했어?
인형이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일은 딱히 없을 테니, 이참에 가르쳐 줄게. 인류 문명이 멸망하기 전엔 우리가 더 상위의 종족이었어.
저기... 죄송해요, 아직도 "인류 문명"이란 게 뭔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아요. "육식 기린"이란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난 [어그멘티드 아이]가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
인류는 외계 문명의 노예고, 지배자의 이 동그란 수상 정원을 꾸미기 위해 여러 가지 건축물과... 우리를 만들었다는 거.
그래...? 요즘 [어그멘티드 아이]는 구시대의 동물 칼럼만 볼만하던걸.
저번 호는 고령 여성 원주민의 생활과 퓨마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이 참 재밌었어.
...아, 죄송해요. "원주민"이라 부르면 실례일까요, 가이드 씨?
실례긴. 그게 사실인데 뭘.
원주민은 대부분 원주민이라 부르면 싫어하던데? 옛 인류가 집을 불태우고 땅을 뺏으면서 부르던 명칭이라면서.
그건 문명인이나 하는 짓이지. 진짜 인류 문명이 멸망해서 다행이야.
나중에 또 어디 가보고 싶은 데가 생기면 연락해. 여기 내 이름이니까 기록해둬.
음... 이거 가이드 자격증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지. 내가 레슬링 시합에서 받은 상장이야.
자, 잠깐만요! 당신이 그 다나 제인이에요?!
그랜드 슬램에서 Mk48을 이긴 붉은 혜성!
헤헤, 내가 말했잖아!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끝내주는 원주민이라고!
그냥 다나라고 부르면 돼. 나머진 내 직장 코드명이야. 너희들처럼 들고 다니는 무기로 이름을 붙이진 않지만.
자아, 다 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두 눈 크게 뜨고 보시라! 인류 문명의 마지막 유산! 최후의 기적!
테라—— 컴퓨터——!!!
...의 유적이다.
와아아...
......
그런데... 전자 쓰레기만 잔뜩이지, 아무것도 없는데요...?
완전 엉망진창이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죄다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순 흔적이잖아...
잠깐. 이 자국은... 철혈이 남긴 거다!
뭐?
앗! 잠깐만, 이 쓰레기들 철혈의 잔해 아니야!?
뭣?!
응...?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쿵, 쿵, 쿵.
텅 빈 방 안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익!? 바, 바이킹...
우왓! 왜, 왜 그래?!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려...
설마... 철혈일까...?
그 인형이랑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전자 괴물들...
소문이 언제 그렇게 괴상하게 바뀌었어?
쉿... 저기 케이블 있는 곳! 저쪽에서...
저게 녀석의 그림자야?
어, 엄청 커...
...그림자라서 크게 보이는 거겠지.
으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오지 마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악! MP5! 기, 기다려어어어!!
꺄아아아아아!!!
동아시아 - 베네수엘라 직통 중력 엘리베이터는 오른쪽이야. 나중에 가이드비랑 팁 받으러 갈 거니까 잊지 마!
두 인형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뒤, 다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넌 정체가 뭐야?
철혈하고 한판 붙는 건 오랜만이니까, 수가 너무 많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으어어...
많아도 10기 정도라면 좋겠어. 그 이상이면 진지하게 상대해야 해서 귀찮다고.
이윽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지...
응?
전지... 좀...
풀썩!
땅딸막한 인형은 비틀거리며 다나 앞까지 걸어오더니,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
10분 후.
으음...
깼어?
여긴...?
여긴 중력 엘리베이터 안이고, 넌 지금 나한테 업혀 있어. 방금 화강암층을 지났으니까 곧 지표면에 도착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야 모르지. 네가 느닷없이 테라 컴퓨터 유적에서 튀어나와서, 내 고객 둘을 놀래켜서 도망가게 만들었어.
몸이... 안 움직여.
그건 네 전력이 바닥나서 그래. 바깥으로 나가서 햇빛을 좀 쬐면 될 거야.
음...
그럼... 넌 누구야...?
다나 제인. 지구 원주민, 여성, 17살. 직업은... 오늘은 구시대 유적 가이드.
17살? 아무리 봐도...
정정하지. 17 더하기 "네 마인드맵을 뽑아내 사골을 끓여 먹을 숫자".
어... 그럼... 질문 하나만 더.
난... 누구야?
음? 기억 안 나?
전력이 바닥나서 메모리 모듈까지 휴면 상태로 전환됐나 보네.
모래밭에서 햇빛이나 잔뜩 쬐면서 천천히 떠올려 봐.
띵!
북반구 지표면에 도착하였습니다. 잊으신 물건이나 무기는 없는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다나가 등에 업은 인형을 내려놨다.
여긴 왜 이렇게 모래투성이야?
설명하자면 길어. 아무튼, 뭐 떠오르는 거 있어?
......
인형은 바닥의 모래를 손으로 한 줌 집어 올렸다. 모래는 가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모래...랑은 좀 다르네...?
이건 대체 뭐지...
어때, 이제 기억이 돌아왔어? 넌 누구야? 왜 테라 컴퓨터 방안에 숨어 있었어?
그건...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래? 아무래도 3년 동안 마인드맵이 녹슬었나 보네.
그래도 걱정할 것 없어. 적어도, 너는 아마 Super-Shorty일 거야.
...뭐야?
누구 보고 숏다리라는 거야!
아, 미안 미안. 네 이름이 Super-Shorty라는 뜻이었어.
네가 꼭 쥐고 있는 그 총 말이야. 그리폰 인형은 다 무기의 이름을 쓰지?
그런가... 듣기 싫은 이름이지만, 이 총... 왠지 익숙해.
그게 너희가 만들어진 이유니까. 기억나?
응... 그건 이제 기억이 나.
난 그리폰의 인형이고, 모두 자신이 가진 무기의 이름으로 불렸어.
그래서 내 이름도 Super-Shorty고, 난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전술인형이야.
음? 잠깐만, 인류를 지킨다고? 너 기억이 아예 공장 초기화된 거――
그때,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오고 있어.
화이트 나이트다. 그만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가자.
화이트 나이트?
그리폰 시티의 경비원이야. 인형이나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감정도 없는 기계들이지.
지금 지구의 처지가 처지인 만큼, 그냥 세계 경찰 같은 거라고 보면 돼.
그런데 왜 도망쳐야 해?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인형은 햇빛을 너무 많이 쬐면 나른해져서, 그리폰 시티로 돌아가 오락을 즐기기를 거부하게 돼. 그러면 사교 활동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폐증에 걸리고 말지.
그래서 화이트 나이트는 정기적으로 이 사막을 순찰해서, 만약 배터리 충전량이 80% 이상인 인형을 발견한다면... 끌고 가서 강제 노동으로 전력을 소모시키게 해.
놀기 싫다는 게 범죄야?
총리가 그렇게 정했거든. 그리폰 시티는 세계의 종말을 웃으면서 맞이하지 못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아.
그럼 이제 어떡해?
몰랐다곤 해도 난 법을 어긴 거잖아. 이대로 그냥 가선 안 되는 거 아니야?
미안하지만, 지금 네 말을 들어줄 시간 없어.
그게 무슨――
우왓?!
다나는 Super-Shorty를 번쩍 들어 옆에 세워진 차에 던져 넣었다.
꽉 잡아, 꼬맹아. 모처럼이니까, 내가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구경시켜 줄게. 겸사겸사 저 화이트 나이트도 따돌리고 말이야.
이건 위법 행위야, 다나 제인!
너는 관심 없을지 몰라도, 인간은 인형의 범법 행위를 용납하지 않아!
우린 합리적으로 이 세계의 불합리함을 피하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인간은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 멸망했으니까.
10분 후. 다나는 차에 Super-Shorty를 태우고서 사막을 가로질렀다.
헤이, 이제 기분이 좀 어때, 꼬맹아?
꼬맹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정말이지... 근데, 인류가 멸망했다고?
거의 다 끝장났어. 우리 문명과 함께 말이야.
뭐야 그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글쎄... 아마 수백 년 전의 일이었나.
인형들의 투표로 채택된 역사서에 따르면, 3029년에 환경주의자였던 정치계의 높으신 양반들이 초식 동물에게도 인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어.
그러다 어느 종교 축제에서, 코끼리 몇 마리가 어떤 실험용 바이러스를 유출시켰는데, 하필 인간과 접촉하면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류 문명이... 코끼리 때문에 멸망했다고?
아니. 내가 들은 바로는, 그때 인권협회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를 처리하기 싫어서, 수가 너무 많답시고 아예 좀비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줘 버렸대.
그리고 5년 후, 어느 연합 군사 훈련에 참석한 퍼스트레이디가 좀비들이 혐오하는 향수를 쓴 게 화근이 되어서 세계대전이 터졌다나 뭐라나...
뭐, 아무렴 어때. 이젠 서력의 기준이 대체 언제인지도 모르는 시대인데.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네.
그런 말은 됐어. 인간도 매머드나 검치호한테 유감이라고 해준 적 없잖아. 심지어 도도새는 우리 손으로 멸종시켰지.
그냥 마음껏 웃어. 앞으로는 너희의 시대야.
웃긴 뭘 웃어? 우린 인간이 아니라고!
난 그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의 역사를 놓친 건지 감도 안 잡혀...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 아니었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잖아?
더는 아니야. 지금 그리폰 시티에 등록된 거주민의 수는 30만 명이지만, 인류는 고작 1%밖에 안 돼.%。
지금 우리는 흔히 말하는 원주민이지, 더 이상 이 땅의 주인이 아니야.
그럼 나머지 99%는 뭐야?
너희들. 그리폰의 인형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그리고 다른 안드로이드도 조금 있고. 릴림이라든가.
정말? 그리폰 인형의 사교 활동 효율은 엉망인데,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나 오래 버텨 온 거야?
우린 인간의 지휘 없이는 소풍 하나도 제대로 계획하지 못할 텐데.
꽤 오래전에, 지루한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테라 컴퓨터가 한 릴림을 총리로 선출했어. 릴림은 인형보다 연산 속도가 월등하고, 더 인간에 가까운 사고 회로를 지녔으니까.
실제로도 도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어. 활동의 태반이 오락이고, 나머지 업무는 몽땅 화이트 나이트에게 떠넘긴 거지만.
처음엔 모두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화이트 나이트만으로도 도시의 치안을 유지하기엔 충분했으니까. 모두 그리폰 시티에서 놀고, 먹고, 자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테라 컴퓨터가 사라지자,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지. 총리도 건설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어.
테라 컴퓨터?
그래, 네가 튀어나왔던 거기. 내 선조의 선조의... 아무튼 오랜 옛날의 선조들이 멸망 전에 만든 컴퓨터야.
지구의 온갖 잡다한 걸 관리하고 조절했지... 자기장, 해류, 밤낮, 그리고 날씨까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로만 들려... 정말 그랬다면 지구는 진작에 멸망하고도 남았을 거야.
아마도 그랬겠지. 아무튼, 그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나자 인류는 지구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되었어.
언제든지 하늘에 해를 띄울 수 있고, 비도 마음대로 내릴 수 있고, 사수자리가 보고 싶다면 바로 가서 구경하다 덤으로 유성우도 보고서 돌아오곤 했다나 봐.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나서도, 테라 컴퓨터는 스스로 작동할 수 있었어. 그 덕에 그리폰 인형들도 아주 오랫동안 지구를 통치할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왜 지금은 온통 사막이야? 다른 건... 전혀 안 보여.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아쉽게도 넌 기억이 없어서 대답을 못 하겠지만.
3년 전, 테라 컴퓨터가 사라졌어. 그리고 지구에게도 문제가 생겼지.
먼저, 지구가 더 이상 회전하지 않게 됐어. 공전도, 자전도 멈춰서 우주 한가운데에 고정된, 마치 천장에 붙은 풍선 같은 신세가 된 거야. 하하하.
뭐어...? 그러고도 웃음이 나와?! 말도 안 돼! 근데 그렇다면 지구는 그 순간 끝장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이 됐어. 내 상식이 안 통하는 것 같아. 말을 말아야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상관이야?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됐지. 그리고 진짜 심각한 문제는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걸.
테라 컴퓨터가 사라진 그 다음날, 하늘에선 모래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어. 매월 10일 오전 8시 정각마다 북반구 전체에만 내리는 모래비가.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모래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어.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지구의 90%는 전부 모래 속에 묻혀버렸지.
인형도 이런 환경에선 못 버텨. 그래서 가끔씩 햇볕 좀 쬘 때나 나와. 가끔 엉뚱하게 모래비에 파묻히는 바보들도 있는데, 발키리 부대가 구해주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로 나무아미타불이야.
엄청난 소릴 참 침착하게도 말하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지구가 멸망할 텐데.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남반구도 몇 년 후면 완전히 매몰될걸? 다들 해결할 방법을 못 찾고 실컷 놀 수밖에 없어.
이제 인형들은 매일 남반구의 그리폰 시티에서 놀다가, 북반구의 사막에서 태양열 충전 겸 일광욕만 하면서 지내. 80% 이상 과충전한 인형은 끌려가서 모래를 바다에 버리는 작업에 동원되고.
흥, 내가 총리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거야.
너와 같은 생각인 사람도 있겠지. 아직 30만이나 되는 생각이 모래에 파묻히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몇 개월 전 그리폰 시티까지 모래가 밀려오는 걸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총리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항의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
너무 늦었지. 애당초, 자신의 운명을 컴퓨터와 오락용 로봇에게 맡긴 사람이 바보인 거야.
아무튼, 그래서 사막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구나...
보여봤자 화이트 나이트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잠깐...
엔진 소리 들리지 않아?
음... 7시 방향이네.
소리가 여러 개. 그리고 기종도 달라!
철혈공조의 아키텍트, 넌 이제 도망칠 수 없다! 순순히 투항하라!
꺄하핫! 그게 전속력이라고 내는 거야?
겨우 그 정도로는 내 발뒤꿈치도 못 따라잡아! 액셀 좀 팍팍 밟아 보라고!
하하, 이거 운 좋은데!
저 화이트 나이트 녀석들은 우리가 아니라 저 철혈 인형을 잡으러 온 거야! 안전벨트 꽉 매, 속도 더 낸다!
응? 철혈?
...다시 조금 기억이 나. 왠지 짜증나는 기분이야!
철혈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툭하면 그리폰 시티와 인형을 습격하는 전 세계 공공의 적이니까.
하지만 3년 전 모래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녀석들의 시대도 지나갔어.
아키텍트는 마지막 남은 철혈 보스 인형이야. 모래 다음으로 위대한 악당인 셈이지!
위험한 녀석이었잖아?! 근데 넌 왜 그렇게 신났어?
좀 위법 행위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의 마지막 악당을 해치울 기회라고! 이것보다 더 큰 업적이 어디 있겠어?
그건 미친 짓이야! 경찰에게서 범인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다나! 아무리 내가 기억상실이지만, 이건 안 된다고 생각해!
기억을 잃기 전의 네가 화이트 나이트가 아니었으면 좋겠네! 벨트나 단단히 붙들어 잡아, 전속력으로 달릴 거니까!
꺄아아아아아!!!!
이 속도... 야! 이 차량도 불법 개조한 거지?!
어머나? 새로운 플레이어 등장인가?
네 단골이다, 아키텍트.
오오! 익숙한 얼굴이네! 2라운드 콜?
나야 좋지! 하지만 네 졸개들이 귀찮게 구는데?
그러는 너도 언제 부하를 만들었어? 쪼끄만하니 귀엽네!
키 작다고 놀리는 거야 지금!?
그럼 어디 공평하게 겨뤄 보실까? 이긴 쪽이 진 쪽 마음대로 하기!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지만... 원주민의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안전 운전하라고!
게임 스타트! 컴온 컴온! 꺄하하하하하하!
맹렬한 추격전이 계속되는 와중, 다나와 아키텍트의 차량은 엄청난 속도로 나란히 달렸지만 화이트 나이트는 저 멀리 뒤쳐졌다.
다나! 저 앞을 봐! 절벽이야!
헤헤, 날 곱게 놔줄 생각이 없구나?
넌 내 마지막 사냥감인데 놔줄쏘냐. 꼬맹이, 아직 더 버틸 수 있지?
뭐, 뭐뭐뭐, 뭘 하려고?!
지금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래, 바로 그거야!
절벽이라니까! 정말 미쳤어!?
넌 인형인데 팔다리 좀 부러져도 괜찮잖아?
그럼 너는 어쩌고! 네가 죽으면 누가 날 데려가 줄 건데?!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꽉 잡아라!
브레이크 안 밟을 거야, 인간? 내가 너보다 더 빨리 반응한다에 내 예비 소체 3개 걸게. 그리고 그 3개를 진짜로 너에게 줄 만큼 목숨이 있다고!
네 말이 맞아. 치킨 게임이라면 내게 승산은 전혀 없지...
하지만, 난 밟을 생각 없어.
뭐어어어?!
그럼 베이비——
나와 함께 발할라로 가자고!
꺄아아아아악!!
콰앙!
다나는 차를 몰아 아키텍트를 들이받았고, 함께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
............
콜록콜록... 퉤퉤...
젠장... 다나! 다나 너 어디 있어!
뚜—— 뚜——
통화 상대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아키텍트! 콜록...
아키텍트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머리를 정리했다.
푸하~ 이번엔 꽤 재밌었어! 하지만 날 잡으려면 원주민 한 명이랑 너 같은 꼬마로는 부족하단다.
길을 비켜, 지금 임무 중이거든.
Super-Shorty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무기를 겨눴다.
첫 번째. 키 작다고 하지 마.
두 번째. 그대로 가게는 못 둬.
응? 내가 너한테 시비 건 적 있었나?
기억 안 나. 하지만 네가 엄청 싫다는 것만은 알겠어...
뭐어? 정말 어이가 없네, 엑스큐셔너를 싫어한다 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는데. 그 녀석은 맨날 돈 빌리고 안 갚거든.
하지만 난 얌전하고 순수한 여자아이인걸? 아무도 해친 적 없어!
자, 빨리 비켜. 안 그럼 정말 화낼 거야.
...안 돼.
......
어휴... 이렇게 가까이서는 별로 쏘고 싶지 않은데. 하는 수 없지.
네가 안 비킨 거다, 꼬므엌!?
빵!
털썩.
아키텍트는 괴상한 비명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휴우... 괜찮아, 꼬맹이?
역시 빵을 챙기고 다니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까.
지금 빵으로... 인형을 쓰러뜨린 거야?
그냥 빵이 아니야. 참깨 바게트지.
방금 그건 잘했어, 꼬맹아. 하지만 또 그렇게 무모한 짓은 삼가는 게 좋아.
내가 왜 이렇게 철혈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하하, 너 정말 화이트 나이트였던 거 아니야?
화이트 나이트에 그런 짜리몽땅은 없어.
또 늦었네, 제리코. 차가 모래에 빠지기라라도 했어?
아니. 우린 너처럼 정신없이 달리진 않아.
정말이지... 어딜 가든 널 만나게 되니까 점점 익숙해져 간다, 다나.
그래? 난 아직도 화이트 나이트가 껄끄러운데. 특히 같은 사냥감을 쫓을 때엔 더욱.
그런 행위를 보고 보통은 "공무집행방해"라 부르지.
어감이 너무 험악하지 않아? 난 "우정"이라 부르는데.
그딴 건 인간이나 믿지. 난 더 물질적인 것이 필요해.
제리코는 기절한 아키텍트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목표의 머리는 무사하군. 차에 실어서 메모리 모듈 스캔해.
드디어 마지막 철혈을 붙잡았군.
내 덕에 붙잡은 건데, 고맙다고 말 한마디 건네는 건 어때? 그리고 차 좀 고치게 수리요정 몇 기 빌려줘.
애초에 그건 네 차량이 아니잖아. 그리고 너 때문에 계획이 꼬였다고. 만약 이 녀석의 머리를 망가뜨렸다면 넌 오히려 구속감이었다.
그리고, 계엄령에 "적을 만난다면 위해를 가하지 말고 피할 것"이라는 문구를 보기는 했어?
그 아키텍트가 무슨 짓을 했는데?
녀석이 철혈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런데 이 짜리몽땅은 누구야?
키 작다고 하지 마!
다나, 원주민이 함부로 인형을 고용하는 것은 100년 전부터 금지됐다. 관련 수속은 했나?
1시간 전에 주운 녀석이야.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는데, 그냥 그 자리에 내버려둘 순 없잖아.
그렇군. 그럼 잠시 헤어져도 불만은 없겠지?
뭐야?
제리코, 잠깐만. 얘 햇빛을 그렇게 많이 쬐진 않았어.
다나, 우린 화이트 나이트의 최정예 765 블리츠크리그 군단이다. 얘가 햇빛을 얼마나 쬤는지는 관심 없어.
내가 걱정하는 건, 철혈과 접촉한 인형은 모두 [우산]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특히나 이런 신원불명인 녀석은 말할 필요도 없지. 반드시 그리폰 기지로 데려가서 검사해야 해.
[우산] 바이러스?
철혈의 컴퓨터 바이러스야. 그리폰의 인형에 침투하면 철혈의 두목인 엘더 브레인 [엘리사]가 그 인형을 철혈 인형처럼 부릴 수 있게 돼.
우리 765의 최종 목적은 엘리사를 붙잡아, 철혈이 그리폰 시티에 가져온 악몽에 종지부를 찍는 거지.
지금까지 체포한 철혈은 하나같이 엘리사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 이제 마지막 철혈 보스를 잡았으니, 틀림없이 이 녀석은 뭔가 알고 있을 거다.
운이 좋다면, 오늘 바로 엘리사를 붙잡아 철혈의 소란을 끝내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일을 위해서 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럼 미리 건투를 빌게, 제리코. 근데, 나도 얘랑 같이 기지에 가도 돼?
정말 알게 된지 1시간밖에 안 된 사이 맞아? 마치 이 녀석의 친언니인 것처럼 행동하는군.
이게 바로 원주민 스타일이라는 거야. 호감도 찍을 필요 없이 마음대로 하는 거지. 그리고 이 녀석, 내 여동생만큼이나 귀여운걸!
그렇군. 내가 너와 면식을 익힌지도 오래 됐지만,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
제리코 넌 진짜 융통성이라는 게 없구나.
그래도 난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특히 날 위해 보수를 청구해줄 때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하는 짓은 공무집행방해라니까...
...어차피 최종 결정은 총리의 몫이지만. 한번 연락해보지.
......
걱정 마, 꼬맹이. 별거 아닌 일이니까.
기껏해야 외투나 벗는 정도일 거야. 치마까지 벗을 일은 거의 없어.
겁먹은 거 아니거든!?
그저...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정리가 잘 안 돼...
걱정 말래도. 그리폰 시티가 엉망이긴 해도, 모래처럼 널 잡아먹지는 않아.
좋아. 축하한다, 다나.
억 소리 나는 보수 맞지?
우리 차량을 타고 함께 기지로 이동하고, 검사가 끝나면 이 짜리몽땅을 데리고 가도 돼. 이게 내가 널 위해 받아낸 보수다.
억... 하긴, 릴림 총리의 통큰 보상이 이 정도긴 하지.
그 정도로 만족하도록. 총리께선 요즘 매우 바쁘시다고. 그리고 세계 최고의 특수 부대의 차로 모셔다주는 거니까 영광인 줄 알아. 전원, 현장 정리하고 귀환한다.
이제 그리폰 시티에 가는 거야?
그래. 넌 여전히 아무 기억도 안 나겠지만...
그리폰 시티에서는 분명 오히려 그런 게 더 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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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여기, 이쪽이야.
짠!
이런 등장은 어때? 마음에 들어?
게임이 시작됐어, 비록 이번엔 네가 먼저 등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플레이어를 좋은 컨디션으로 맞이해야겠지?
좋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잠깐 설명해줄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네가 기억하는 것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완전히 새롭고 이상한 세계에 떨어질 거야, 너와 네 친구들의 신분과 관계도 네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를 거야.
또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그 그리폰의 인형들 말이야.
어쩌면 다 함께 기묘한 대모험을 즐길 수도 있고, 인생의 대위기에 빠질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예전에 말했 듯이, 인생의 90%는 어떻게 마음먹냐에 달렸으니까!
뭐가 밝은 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네가 계속 열심히 찾다 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그럼 행운을 빌게, 줄리아나, 그리고 조.
...그리고 이 세계에도 행운을 빌지.
...............
아직... 멀었어?
흐흐흐, 겁먹었어 MP5?
빨리빨리 가자. 가이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여기 너무 깜깜해... 그리고 폐허뿐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이드가 여긴 아주 오래전부터 아무도 온 적이 없다고 했어.
그리고 내가 함께인데 무슨 걱정――
으아악!!
손전등! 손전등!
MP-446은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손전등을 켰다.
...어휴 깜짝이야. 그냥 원주민 두개골이잖아? 철혈의 디너게이트 잔해인 줄 알았네.
바이킹...
너도 사실 어두운 게 무섭지...?
하, 하나도 안 무섭거든?! 어두운 게 무서우면 그리폰 시티에서 어떻게 살아남겠어!
그... 그냥 도중에 내 전력이 바닥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래. 밖으로 나설 때 79%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그 재미없는 시위에서 빠질 수 있다면야, 차라리 이러다 잡혀가서 모래나 치우게 되는 편이 훨씬 낫지.
그래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자유의 여신상이라든가, 피라미드라든가...
쳇, 그딴 돌무더기가 뭐가 좋다고. 피라미드 안에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데!
조금만 더 참아, MP5. 이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모험이야!
그리고 우리 가이드 언니를 좀 믿어 봐.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끝내주는 원주민이라고!
칭찬 고마워. 탐험가라 불러줬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지.
얘들아, 전방이 안전한 건 확실해. 적어도 3년 동안 누구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곳이니까.
3년... 역시 "그때"부터...
맞아, 귀여운 인형 아가씨.
[어그멘티드 아이]를 구독했다면, 세계 종말에 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을 봤겠지?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도 그 근거 중 하나야.
맞아맞아! 우와, 엄청 기대된다! 구석구석 스캔해서 그리폰 시티의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그래도 좀 무서워요. 철혈이 나타나진 않을까요? 아까 계엄령 표지판도 있던데...
우리가 어딨는지 찾으려 해도 못 찾을걸? 잠깐 기다려, 인증 시스템을 뚫어야 하니까.
...삐이.
락도어가 열렸다.
전자 모듈 없이 인증을 통과했어?
인형이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일은 딱히 없을 테니, 이참에 가르쳐 줄게. 인류 문명이 멸망하기 전엔 우리가 더 상위의 종족이었어.
저기... 죄송해요, 아직도 "인류 문명"이란 게 뭔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아요. "육식 기린"이란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난 [어그멘티드 아이]가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
인류는 외계 문명의 노예고, 지배자의 이 동그란 수상 정원을 꾸미기 위해 여러 가지 건축물과... 우리를 만들었다는 거.
그래...? 요즘 [어그멘티드 아이]는 구시대의 동물 칼럼만 볼만하던걸.
저번 호는 고령 여성 원주민의 생활과 퓨마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이 참 재밌었어.
...아, 죄송해요. "원주민"이라 부르면 실례일까요, 가이드 씨?
실례긴. 그게 사실인데 뭘.
원주민은 대부분 원주민이라 부르면 싫어하던데? 옛 인류가 집을 불태우고 땅을 뺏으면서 부르던 명칭이라면서.
그건 문명인이나 하는 짓이지. 진짜 인류 문명이 멸망해서 다행이야.
나중에 또 어디 가보고 싶은 데가 생기면 연락해. 여기 내 이름이니까 기록해둬.
음... 이거 가이드 자격증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지. 내가 레슬링 시합에서 받은 상장이야.
자, 잠깐만요! 당신이 그 다나 제인이에요?!
그랜드 슬램에서 Mk48을 이긴 붉은 혜성!
헤헤, 내가 말했잖아!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끝내주는 원주민이라고!
그냥 다나라고 부르면 돼. 나머진 내 직장 코드명이야. 너희들처럼 들고 다니는 무기로 이름을 붙이진 않지만.
자아, 다 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두 눈 크게 뜨고 보시라! 인류 문명의 마지막 유산! 최후의 기적!
테라—— 컴퓨터——!!!
...의 유적이다.
와아아...
......
그런데... 전자 쓰레기만 잔뜩이지, 아무것도 없는데요...?
완전 엉망진창이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죄다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순 흔적이잖아...
잠깐. 이 자국은... 철혈이 남긴 거다!
뭐?
앗! 잠깐만, 이 쓰레기들 철혈의 잔해 아니야!?
뭣?!
응...?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쿵, 쿵, 쿵.
텅 빈 방 안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익!? 바, 바이킹...
우왓! 왜, 왜 그래?!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려...
설마... 철혈일까...?
그 인형이랑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전자 괴물들...
소문이 언제 그렇게 괴상하게 바뀌었어?
쉿... 저기 케이블 있는 곳! 저쪽에서...
저게 녀석의 그림자야?
어, 엄청 커...
...그림자라서 크게 보이는 거겠지.
으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오지 마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악! MP5! 기, 기다려어어어!!
꺄아아아아아!!!
동아시아 - 베네수엘라 직통 중력 엘리베이터는 오른쪽이야. 나중에 가이드비랑 팁 받으러 갈 거니까 잊지 마!
두 인형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뒤, 다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넌 정체가 뭐야?
철혈하고 한판 붙는 건 오랜만이니까, 수가 너무 많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으어어...
많아도 10기 정도라면 좋겠어. 그 이상이면 진지하게 상대해야 해서 귀찮다고.
이윽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지...
응?
전지... 좀...
풀썩!
땅딸막한 인형은 비틀거리며 다나 앞까지 걸어오더니,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
10분 후.
으음...
깼어?
여긴...?
여긴 중력 엘리베이터 안이고, 넌 지금 나한테 업혀 있어. 방금 화강암층을 지났으니까 곧 지표면에 도착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야 모르지. 네가 느닷없이 테라 컴퓨터 유적에서 튀어나와서, 내 고객 둘을 놀래켜서 도망가게 만들었어.
몸이... 안 움직여.
그건 네 전력이 바닥나서 그래. 바깥으로 나가서 햇빛을 좀 쬐면 될 거야.
음...
그럼... 넌 누구야...?
다나 제인. 지구 원주민, 여성, 17살. 직업은... 오늘은 구시대 유적 가이드.
17살? 아무리 봐도...
정정하지. 17 더하기 "네 마인드맵을 뽑아내 사골을 끓여 먹을 숫자".
어... 그럼... 질문 하나만 더.
난... 누구야?
음? 기억 안 나?
전력이 바닥나서 메모리 모듈까지 휴면 상태로 전환됐나 보네.
모래밭에서 햇빛이나 잔뜩 쬐면서 천천히 떠올려 봐.
띵!
<color=#FFFF00>북반구 지표면에 도착하였습니다. 잊으신 물건이나 무기는 없는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color>
......
다나가 등에 업은 인형을 내려놨다.
여긴 왜 이렇게 모래투성이야?
설명하자면 길어. 아무튼, 뭐 떠오르는 거 있어?
......
인형은 바닥의 모래를 손으로 한 줌 집어 올렸다. 모래는 가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모래...랑은 좀 다르네...?
이건 대체 뭐지...
어때, 이제 기억이 돌아왔어? 넌 누구야? 왜 테라 컴퓨터 방안에 숨어 있었어?
그건...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래? 아무래도 3년 동안 마인드맵이 녹슬었나 보네.
그래도 걱정할 것 없어. 적어도, 너는 아마 Super-Shorty일 거야.
...뭐야?
누구 보고 숏다리라는 거야!
아, 미안 미안. 네 이름이 Super-Shorty라는 뜻이었어.
네가 꼭 쥐고 있는 그 총 말이야. 그리폰 인형은 다 무기의 이름을 쓰지?
그런가... 듣기 싫은 이름이지만, 이 총... 왠지 익숙해.
그게 너희가 만들어진 이유니까. 기억나?
응... 그건 이제 기억이 나.
난 그리폰의 인형이고, 모두 자신이 가진 무기의 이름으로 불렸어.
그래서 내 이름도 Super-Shorty고, 난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전술인형이야.
음? 잠깐만, 인류를 지킨다고? 너 기억이 아예 공장 초기화된 거――
그때,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오고 있어.
화이트 나이트다. 그만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가자.
화이트 나이트?
그리폰 시티의 경비원이야. 인형이나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감정도 없는 기계들이지.
지금 지구의 처지가 처지인 만큼, 그냥 세계 경찰 같은 거라고 보면 돼.
그런데 왜 도망쳐야 해?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인형은 햇빛을 너무 많이 쬐면 나른해져서, 그리폰 시티로 돌아가 오락을 즐기기를 거부하게 돼. 그러면 사교 활동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폐증에 걸리고 말지.
그래서 화이트 나이트는 정기적으로 이 사막을 순찰해서, 만약 배터리 충전량이 80% 이상인 인형을 발견한다면... 끌고 가서 강제 노동으로 전력을 소모시키게 해.
놀기 싫다는 게 범죄야?
총리가 그렇게 정했거든. 그리폰 시티는 세계의 종말을 웃으면서 맞이하지 못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아.
그럼 이제 어떡해?
몰랐다곤 해도 난 법을 어긴 거잖아. 이대로 그냥 가선 안 되는 거 아니야?
미안하지만, 지금 네 말을 들어줄 시간 없어.
그게 무슨――
우왓?!
다나는 Super-Shorty를 번쩍 들어 옆에 세워진 차에 던져 넣었다.
꽉 잡아, 꼬맹아. 모처럼이니까, 내가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구경시켜 줄게. 겸사겸사 저 화이트 나이트도 따돌리고 말이야.
이건 위법 행위야, 다나 제인!
너는 관심 없을지 몰라도, 인간은 인형의 범법 행위를 용납하지 않아!
우린 합리적으로 이 세계의 불합리함을 피하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인간은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 멸망했으니까.
10분 후. 다나는 차에 Super-Shorty를 태우고서 사막을 가로질렀다.
헤이, 이제 기분이 좀 어때, 꼬맹아?
꼬맹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정말이지... 근데, 인류가 멸망했다고?
거의 다 끝장났어. 우리 문명과 함께 말이야.
뭐야 그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글쎄... 아마 수백 년 전의 일이었나.
인형들의 투표로 채택된 역사서에 따르면, 3029년에 환경주의자였던 정치계의 높으신 양반들이 초식 동물에게도 인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어.
그러다 어느 종교 축제에서, 코끼리 몇 마리가 어떤 실험용 바이러스를 유출시켰는데, 하필 인간과 접촉하면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류 문명이... 코끼리 때문에 멸망했다고?
아니. 내가 들은 바로는, 그때 인권협회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를 처리하기 싫어서, 수가 너무 많답시고 아예 좀비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줘 버렸대.
그리고 5년 후, 어느 연합 군사 훈련에 참석한 퍼스트레이디가 좀비들이 혐오하는 향수를 쓴 게 화근이 되어서 세계대전이 터졌다나 뭐라나...
뭐, 아무렴 어때. 이젠 서력의 기준이 대체 언제인지도 모르는 시대인데.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네.
그런 말은 됐어. 인간도 매머드나 검치호한테 유감이라고 해준 적 없잖아. 심지어 도도새는 우리 손으로 멸종시켰지.
그냥 마음껏 웃어. 앞으로는 너희의 시대야.
웃긴 뭘 웃어? 우린 인간이 아니라고!
난 그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의 역사를 놓친 건지 감도 안 잡혀...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 아니었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잖아?
더는 아니야. 지금 그리폰 시티에 등록된 거주민의 수는 30만 명이지만, 인류는 고작 1%밖에 안 돼.%。
지금 우리는 흔히 말하는 원주민이지, 더 이상 이 땅의 주인이 아니야.
그럼 나머지 99%는 뭐야?
너희들. 그리폰의 인형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그리고 다른 안드로이드도 조금 있고. 릴림이라든가.
정말? 그리폰 인형의 사교 활동 효율은 엉망인데,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나 오래 버텨 온 거야?
우린 인간의 지휘 없이는 소풍 하나도 제대로 계획하지 못할 텐데.
꽤 오래전에, 지루한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테라 컴퓨터가 한 릴림을 총리로 선출했어. 릴림은 인형보다 연산 속도가 월등하고, 더 인간에 가까운 사고 회로를 지녔으니까.
실제로도 도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어. 활동의 태반이 오락이고, 나머지 업무는 몽땅 화이트 나이트에게 떠넘긴 거지만.
처음엔 모두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화이트 나이트만으로도 도시의 치안을 유지하기엔 충분했으니까. 모두 그리폰 시티에서 놀고, 먹고, 자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테라 컴퓨터가 사라지자,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지. 총리도 건설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어.
테라 컴퓨터?
그래, 네가 튀어나왔던 거기. 내 선조의 선조의... 아무튼 오랜 옛날의 선조들이 멸망 전에 만든 컴퓨터야.
지구의 온갖 잡다한 걸 관리하고 조절했지... 자기장, 해류, 밤낮, 그리고 날씨까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로만 들려... 정말 그랬다면 지구는 진작에 멸망하고도 남았을 거야.
아마도 그랬겠지. 아무튼, 그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나자 인류는 지구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되었어.
언제든지 하늘에 해를 띄울 수 있고, 비도 마음대로 내릴 수 있고, 사수자리가 보고 싶다면 바로 가서 구경하다 덤으로 유성우도 보고서 돌아오곤 했다나 봐.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나서도, 테라 컴퓨터는 스스로 작동할 수 있었어. 그 덕에 그리폰 인형들도 아주 오랫동안 지구를 통치할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왜 지금은 온통 사막이야? 다른 건... 전혀 안 보여.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아쉽게도 넌 기억이 없어서 대답을 못 하겠지만.
3년 전, 테라 컴퓨터가 사라졌어. 그리고 지구에게도 문제가 생겼지.
먼저, 지구가 더 이상 회전하지 않게 됐어. 공전도, 자전도 멈춰서 우주 한가운데에 고정된, 마치 천장에 붙은 풍선 같은 신세가 된 거야. 하하하.
뭐어...? 그러고도 웃음이 나와?! 말도 안 돼! 근데 그렇다면 지구는 그 순간 끝장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이 됐어. 내 상식이 안 통하는 것 같아. 말을 말아야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상관이야?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됐지. 그리고 진짜 심각한 문제는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걸.
테라 컴퓨터가 사라진 그 다음날, 하늘에선 모래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어. 매월 10일 오전 8시 정각마다 북반구 전체에만 내리는 모래비가.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모래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어.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지구의 90%는 전부 모래 속에 묻혀버렸지.
인형도 이런 환경에선 못 버텨. 그래서 가끔씩 햇볕 좀 쬘 때나 나와. 가끔 엉뚱하게 모래비에 파묻히는 바보들도 있는데, 발키리 부대가 구해주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로 나무아미타불이야.
엄청난 소릴 참 침착하게도 말하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지구가 멸망할 텐데.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남반구도 몇 년 후면 완전히 매몰될걸? 다들 해결할 방법을 못 찾고 실컷 놀 수밖에 없어.
이제 인형들은 매일 남반구의 그리폰 시티에서 놀다가, 북반구의 사막에서 태양열 충전 겸 일광욕만 하면서 지내. 80% 이상 과충전한 인형은 끌려가서 모래를 바다에 버리는 작업에 동원되고.
흥, 내가 총리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거야.
너와 같은 생각인 사람도 있겠지. 아직 30만이나 되는 생각이 모래에 파묻히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몇 개월 전 그리폰 시티까지 모래가 밀려오는 걸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총리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항의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
너무 늦었지. 애당초, 자신의 운명을 컴퓨터와 오락용 로봇에게 맡긴 사람이 바보인 거야.
아무튼, 그래서 사막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구나...
보여봤자 화이트 나이트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잠깐...
엔진 소리 들리지 않아?
음... 7시 방향이네.
소리가 여러 개. 그리고 기종도 달라!
<color=#00CCFF>철혈공조의 아키텍트, 넌 이제 도망칠 수 없다! 순순히 투항하라!</color>
<color=#00CCFF>꺄하핫! 그게 전속력이라고 내는 거야?</color>
<color=#00CCFF>겨우 그 정도로는 내 발뒤꿈치도 못 따라잡아! 액셀 좀 팍팍 밟아 보라고!</color>
<color=#00CCFF>하하, 이거 운 좋은데!</color>
<color=#00CCFF>저 화이트 나이트 녀석들은 우리가 아니라 저 철혈 인형을 잡으러 온 거야! 안전벨트 꽉 매, 속도 더 낸다!</color>
<color=#00CCFF>응? 철혈?</color>
<color=#00CCFF>...다시 조금 기억이 나. 왠지 짜증나는 기분이야!</color>
<color=#00CCFF>철혈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툭하면 그리폰 시티와 인형을 습격하는 전 세계 공공의 적이니까.</color>
<color=#00CCFF>하지만 3년 전 모래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녀석들의 시대도 지나갔어.</color>
<color=#00CCFF>아키텍트는 마지막 남은 철혈 보스 인형이야. 모래 다음으로 위대한 악당인 셈이지!</color>
<color=#00CCFF>위험한 녀석이었잖아?! 근데 넌 왜 그렇게 신났어?</color>
<color=#00CCFF>좀 위법 행위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의 마지막 악당을 해치울 기회라고! 이것보다 더 큰 업적이 어디 있겠어?</color>
<color=#00CCFF>그건 미친 짓이야! 경찰에게서 범인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라고!</color>
<color=#00CCFF>다나! 아무리 내가 기억상실이지만, 이건 안 된다고 생각해!</color>
<color=#00CCFF>기억을 잃기 전의 네가 화이트 나이트가 아니었으면 좋겠네! 벨트나 단단히 붙들어 잡아, 전속력으로 달릴 거니까!</color>
<color=#00CCFF>꺄아아아아아!!!!</color>
<color=#00CCFF>이 속도... 야! 이 차량도 불법 개조한 거지?!</color>
<color=#00CCFF>어머나? 새로운 플레이어 등장인가?</color>
<color=#00CCFF>네 단골이다, 아키텍트.</color>
<color=#00CCFF>오오! 익숙한 얼굴이네! 2라운드 콜?</color>
<color=#00CCFF>나야 좋지! 하지만 네 졸개들이 귀찮게 구는데?</color>
<color=#00CCFF>그러는 너도 언제 부하를 만들었어? 쪼끄만하니 귀엽네!</color>
<color=#00CCFF>키 작다고 놀리는 거야 지금!?</color>
<color=#00CCFF>그럼 어디 공평하게 겨뤄 보실까? 이긴 쪽이 진 쪽 마음대로 하기!</color>
<color=#00CCFF>그리고 미리 말해두겠지만... 원주민의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안전 운전하라고!</color>
<color=#00CCFF>게임 스타트! 컴온 컴온! 꺄하하하하하하!</color>
맹렬한 추격전이 계속되는 와중, 다나와 아키텍트의 차량은 엄청난 속도로 나란히 달렸지만 화이트 나이트는 저 멀리 뒤쳐졌다.
<color=#00CCFF>다나! 저 앞을 봐! 절벽이야!</color>
<color=#00CCFF>헤헤, 날 곱게 놔줄 생각이 없구나?</color>
<color=#00CCFF>넌 내 마지막 사냥감인데 놔줄쏘냐. 꼬맹이, 아직 더 버틸 수 있지?</color>
<color=#00CCFF>뭐, 뭐뭐뭐, 뭘 하려고?!</color>
<color=#00CCFF>지금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래, 바로 그거야!</color>
<color=#00CCFF>절벽이라니까! 정말 미쳤어!?</color>
<color=#00CCFF>넌 인형인데 팔다리 좀 부러져도 괜찮잖아?</color>
<color=#00CCFF>그럼 너는 어쩌고! 네가 죽으면 누가 날 데려가 줄 건데?!</color>
<color=#00CCFF>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꽉 잡아라!</color>
<color=#00CCFF>브레이크 안 밟을 거야, 인간? 내가 너보다 더 빨리 반응한다에 내 예비 소체 3개 걸게. 그리고 그 3개를 진짜로 너에게 줄 만큼 목숨이 있다고!</color>
<color=#00CCFF>네 말이 맞아. 치킨 게임이라면 내게 승산은 전혀 없지...</color>
<color=#00CCFF>하지만, 난 밟을 생각 없어.</color>
<color=#00CCFF>뭐어어어?!</color>
그럼 베이비——
나와 함께 발할라로 가자고!
꺄아아아아악!!
콰앙!
다나는 차를 몰아 아키텍트를 들이받았고, 함께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
............
콜록콜록... 퉤퉤...
젠장... 다나! 다나 너 어디 있어!
<color=#00CCFF>뚜—— 뚜——</color>
<color=#00CCFF>통화 상대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연결할 수 없습니다.</color>
...!
아키텍트! 콜록...
아키텍트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머리를 정리했다.
푸하~ 이번엔 꽤 재밌었어! 하지만 날 잡으려면 원주민 한 명이랑 너 같은 꼬마로는 부족하단다.
길을 비켜, 지금 임무 중이거든.
Super-Shorty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무기를 겨눴다.
첫 번째. 키 작다고 하지 마.
두 번째. 그대로 가게는 못 둬.
응? 내가 너한테 시비 건 적 있었나?
기억 안 나. 하지만 네가 엄청 싫다는 것만은 알겠어...
뭐어? 정말 어이가 없네, 엑스큐셔너를 싫어한다 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는데. 그 녀석은 맨날 돈 빌리고 안 갚거든.
하지만 난 얌전하고 순수한 여자아이인걸? 아무도 해친 적 없어!
자, 빨리 비켜. 안 그럼 정말 화낼 거야.
...안 돼.
......
어휴... 이렇게 가까이서는 별로 쏘고 싶지 않은데. 하는 수 없지.
네가 안 비킨 거다, 꼬므엌!?
빵!
털썩.
아키텍트는 괴상한 비명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휴우... 괜찮아, 꼬맹이?
역시 빵을 챙기고 다니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까.
지금 빵으로... 인형을 쓰러뜨린 거야?
그냥 빵이 아니야. 참깨 바게트지.
방금 그건 잘했어, 꼬맹아. 하지만 또 그렇게 무모한 짓은 삼가는 게 좋아.
내가 왜 이렇게 철혈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하하, 너 정말 화이트 나이트였던 거 아니야?
화이트 나이트에 그런 짜리몽땅은 없어.
또 늦었네, 제리코. 차가 모래에 빠지기라라도 했어?
아니. 우린 너처럼 정신없이 달리진 않아.
정말이지... 어딜 가든 널 만나게 되니까 점점 익숙해져 간다, 다나.
그래? 난 아직도 화이트 나이트가 껄끄러운데. 특히 같은 사냥감을 쫓을 때엔 더욱.
그런 행위를 보고 보통은 "공무집행방해"라 부르지.
어감이 너무 험악하지 않아? 난 "우정"이라 부르는데.
그딴 건 인간이나 믿지. 난 더 물질적인 것이 필요해.
제리코는 기절한 아키텍트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목표의 머리는 무사하군. 차에 실어서 메모리 모듈 스캔해.
드디어 마지막 철혈을 붙잡았군.
내 덕에 붙잡은 건데, 고맙다고 말 한마디 건네는 건 어때? 그리고 차 좀 고치게 수리요정 몇 기 빌려줘.
애초에 그건 네 차량이 아니잖아. 그리고 너 때문에 계획이 꼬였다고. 만약 이 녀석의 머리를 망가뜨렸다면 넌 오히려 구속감이었다.
그리고, 계엄령에 "적을 만난다면 위해를 가하지 말고 피할 것"이라는 문구를 보기는 했어?
그 아키텍트가 무슨 짓을 했는데?
녀석이 철혈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런데 이 짜리몽땅은 누구야?
키 작다고 하지 마!
다나, 원주민이 함부로 인형을 고용하는 것은 100년 전부터 금지됐다. 관련 수속은 했나?
1시간 전에 주운 녀석이야.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는데, 그냥 그 자리에 내버려둘 순 없잖아.
그렇군. 그럼 잠시 헤어져도 불만은 없겠지?
뭐야?
제리코, 잠깐만. 얘 햇빛을 그렇게 많이 쬐진 않았어.
다나, 우린 화이트 나이트의 최정예 765 블리츠크리그 군단이다. 얘가 햇빛을 얼마나 쬤는지는 관심 없어.
내가 걱정하는 건, 철혈과 접촉한 인형은 모두 [우산]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특히나 이런 신원불명인 녀석은 말할 필요도 없지. 반드시 그리폰 기지로 데려가서 검사해야 해.
[우산] 바이러스?
철혈의 컴퓨터 바이러스야. 그리폰의 인형에 침투하면 철혈의 두목인 엘더 브레인 [엘리사]가 그 인형을 철혈 인형처럼 부릴 수 있게 돼.
우리 765의 최종 목적은 엘리사를 붙잡아, 철혈이 그리폰 시티에 가져온 악몽에 종지부를 찍는 거지.
지금까지 체포한 철혈은 하나같이 엘리사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 이제 마지막 철혈 보스를 잡았으니, 틀림없이 이 녀석은 뭔가 알고 있을 거다.
운이 좋다면, 오늘 바로 엘리사를 붙잡아 철혈의 소란을 끝내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일을 위해서 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럼 미리 건투를 빌게, 제리코. 근데, 나도 얘랑 같이 기지에 가도 돼?
정말 알게 된지 1시간밖에 안 된 사이 맞아? 마치 이 녀석의 친언니인 것처럼 행동하는군.
이게 바로 원주민 스타일이라는 거야. 호감도 찍을 필요 없이 마음대로 하는 거지. 그리고 이 녀석, 내 여동생만큼이나 귀여운걸!
그렇군. 내가 너와 면식을 익힌지도 오래 됐지만,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
제리코 넌 진짜 융통성이라는 게 없구나.
그래도 난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특히 날 위해 보수를 청구해줄 때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하는 짓은 공무집행방해라니까...
...어차피 최종 결정은 총리의 몫이지만. 한번 연락해보지.
......
걱정 마, 꼬맹이. 별거 아닌 일이니까.
기껏해야 외투나 벗는 정도일 거야. 치마까지 벗을 일은 거의 없어.
겁먹은 거 아니거든!?
그저...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정리가 잘 안 돼...
걱정 말래도. 그리폰 시티가 엉망이긴 해도, 모래처럼 널 잡아먹지는 않아.
좋아. 축하한다, 다나.
억 소리 나는 보수 맞지?
우리 차량을 타고 함께 기지로 이동하고, 검사가 끝나면 이 짜리몽땅을 데리고 가도 돼. 이게 내가 널 위해 받아낸 보수다.
억... 하긴, 릴림 총리의 통큰 보상이 이 정도긴 하지.
그 정도로 만족하도록. 총리께선 요즘 매우 바쁘시다고. 그리고 세계 최고의 특수 부대의 차로 모셔다주는 거니까 영광인 줄 알아. 전원, 현장 정리하고 귀환한다.
이제 그리폰 시티에 가는 거야?
그래. 넌 여전히 아무 기억도 안 나겠지만...
그리폰 시티에서는 분명 오히려 그런 게 더 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