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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 건슬링거 걸

장막극Ⅱ

3/3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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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엥, 지휘관?!

왜 지휘관이 여기 있어!?

아무튼 일단 엎드려! 아직 적이 몇 명 더 남았어!

익숙한 목소리가 내 어깨를 붙잡더니 어디론가 휙 던졌다.

총성은 끊이질 않아, 난 습관적으로 몸을 최대한 낮췄다.

총성 몇 발과 그에 따른 비명이 더 들려오고 나서야 주위가 잠잠해졌다.

감각이 다시 돌아오면서 주위가 차차 밝아지자,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깨달았다. 방금 전의 그 호텔이었다.

...아니, 그 호텔이었던 곳이었다. 고급스러웠던 호텔은 폐허로 변했고, 멋진 레스토랑도 무너진 벽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리코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익숙한 목소리의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SPAS12

지휘관이지? 역시 지휘관 맞구나!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옆에 뿅하고 나타났어?

지휘관

SPAS!

...잠깐, 너 옷은 언제 갈아입었어?

SPAS12

응?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휘관

역시 그때 내가 잘못 본 건가...

SPAS12

뭘 봤든 얘기는 나중에! 지휘관은 날 꺼내주러 온 거지?

지휘관

뭐... 대충 그렇지?

SPAS12

미안해애애!! 다시는 주방의 식재료 안 훔칠게에에!!

그러니까 빨리 이 모의전 종료해 줘! 나 진짜 반성하고 있다고! 앞으로는 시키는 거 군말 않고 다 할게!

지휘관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이건 모의전도 아니고 나도 마음대로 끝낼 수 없어.

SPAS12

으에에... 역시 그랬구나...

어휴 정말,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적들이 우르르 쳐들어와서 며칠을 쉬지도 않고 싸웠는데... 이런 모의전은 얼차려 치곤 너무한 거 아닌가 싶더니만...

지휘관

뭐? 며칠이나?

SPAS12

그렇다니까! 매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싸우기만 하고...

레벨 2 플랫폼이라서 망정이지, 안 그랬음 진작에 에너지 바닥났을걸? 무기랑 탄약은 노획하면서 어떻게든 버텼지만.

지휘관

그래도 여태까지 잘 버텼구나.

SPAS12

그렇지 뭐, 다른 뾰족한 수도 안 보였으니.

적이 막 무지막지하게 강한 건 아니지만, 수가 너무 많아. 게다가 무슨 "제5공화국파는 죽어라!" 같은 뭔지도 모를 소리나 질러대고, 대체 뭐냐고...

SPAS-12는 투덜대면서 산탄총을 재장전했다.

카리나

<color=#00CCFF>지휘관님, 괜찮으세요?</color>

SPAS12

오, 카리나야?

카리나

<color=#00CCFF>다행이다... SPAS도 지휘관님과 합류했구나.</color>

SPAS12

합류라기 보단, 그냥 지휘관이 내 옆에 "뿅!" 하고 나타났어.

카리나

<color=#00CCFF>"뿅!" 하고...?</color>

지휘관

<color=#00CCFF>뿅이든 펑이든 상관없으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부터 설명해 줘.</color>

카리나

<color=#00CCFF>아 참, 깜빡할 뻔했네요.</color>

카리나

<color=#00CCFF>그게... 공간에 간섭할 때 살짝 문제가 생겼어요.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인형의 연산 지원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가 없어요.</color>

<color=#00CCFF>걸린 권한을 조금씩 처리해보면 되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color>

지휘관

역시 사전 설정 때문에 간단히 해결되진 않는군.

SPAS12

공간에 간섭한다니? 사전 설정은 또 뭐고? 대체 무슨 말이야 지휘관?

지휘관

여기서 어떻게 무사히 나갈지에 대한 얘기야.

SPAS12

오호.

지휘관

<color=#00CCFF>그럼 SPAS도 나도 여전히 아까 그 모의 공간 속이라는 거네?</color>

카리나

<color=#00CCFF>네, 하지만 연산 지원이 어느 정도 중단돼서 SPAS가 나타난 거 아닐까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누가 SPAS를 일부러 숨기고 있었단 소리로 들리는걸.</color>

카리나

<color=#00CCFF>SPAS의 마인드맵의 연산력이 그 공간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니까요. SPAS는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나?</color>

SPAS12

아니, 전혀... 하나도 기억 안 나...

정신 차리자마자 저것들이 달려들어서, 여태까지 계속 싸우던 중에 방금 지휘관이 나타났어.

카리나

<color=#00CCFF>제 추측이 맞았네요. 지휘관님과 인형들은 서로 이끌리고 있고, 그래서 공간의 설정이 느슨해지자 자연스럽게 SPAS가 나타난 거예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하지만 왜 여기가 갑자기 불바다가 됐지? 이젠 어떻게 하고?</color>

카리나

<color=#00CCFF>아마 시뮬레이션에 잡음이 생기면서 리코가 혼란에 빠진 탓이겠죠. 그래서 공간을 구성하는 알고리즘도 엉망진창이 돼서 영문 모를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변해 버렸군.</color>

카리나

<color=#00CCFF>최대한 빨리 연산 지원을 차단할게요. 돌아올 방법도 이것부터 해결해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알았다, 서둘러 줘.</color>

SPAS12

앗, 위험해!

지휘관이 카리나와 통신하던 와중, SPAS-12가 기척을 느끼고 소리쳤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SPAS12

윽...!

지휘관

SPAS! 괜찮아!?

SPAS12

응... 난 괜찮아.

휴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SPAS-12는 탄흔이 하나 더 생긴 방패를 옆으로 치우고, 총을 들어 그늘에 숨은 그림자를 조준했다.

지휘관

잠깐!

SPAS12

응?

???

왜... 쟝 씨가 적이랑 같이 있어요...?

지휘관

리코...?

리코였다. 여전히 웨이트리스의 옷차림이지만, 그 작은 손으로 찻잔 대신 총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얼굴과 분위기도 자료에서 묘사된 것과 일치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의체로서의 리코였다.

풋풋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지금의 리코는 눈빛에서 엄청난 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나는 그 살의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이해가 갔다. 그녀의 "행복한 삶"은 조금 전 물거품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지휘관

리코... 그 총은 어디서 났어?

리코

말해드렸잖아요.

여기서, 제가 원하면 뭐든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요.

지휘관

왜 총 같은 걸 가지길 바랐는데?

리코

잊으셨어요? 제 손에 처음으로 총을 쥐어 준 사람은 바로 쟝 씨예요.

이 총을 다시 쥔 순간, 깨달았어요. 이곳의 모든 게 가짜고, 제가 있을 곳은 여기에 없다는 사실을요.

지휘관

...미안해.

리코

왜 사과하세요? 쟝 씨는 잘못한 거 없어요.

아까 쟝 씨가, 저는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 말씀하셨죠?

모든 게 사라져 버릴 때 조금 망설여졌지만, 쟝 씨는 절대 저를 속이지 않는다는 게 생각났어요.

왜냐면, 다시 기억났거든요. 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지휘관

뭣...

리코

제가 허무했던 이유는, 여기가 전부 가짜였기 때문이에요.

저의 진정한 행복은 쟝 씨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것... 쟝 씨의 적을 해치우는 거예요.

리코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총알 한 발이 또 SPAS-12의 미간으로 날아들었다. 다행히 SPAS-12는 재빨리 방패로 막아냈다.

리코

다 알아요. 지금 임무 중이시죠? 쟝 씨는 지금 저를 시험하시는 거죠?

다 알아요.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만약 일하는 도중 누군가에게 모습을 들키면, 반드시 죽이라고.

SPAS12

지휘관... 어, 어떡하지...?

지금 다른 방향에서 발소리가 들려와... 적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지휘관

<color=#00CCFF>카리나, 아무래도 싸우는 수밖에 없겠어. 혹시 여기서 리코를 공격하면 본인에게 피해가 갈까?</color>

카리나

<color=#00CCFF>안 돼요! 지금 상황에서 리코가 다쳤다간 원래의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해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하지만 리코는 SPAS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color>

카리나

<color=#00CCFF>그래도 안 돼요!공간을 유지하는 연산이 약해지면서 그곳에서의 기억과 원래의 기억이 뒤섞여서,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 상태일 거예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그럼 어떡하면 좋지?</color>

카리나

<color=#00CCFF>제가 꼬인 걸 어떻게든 해독해볼게요! 그때까지 리코를 제외한 나머지 적들만 처리해 주세요!</color>

지휘관

끄응... 알았어. SPAS, 너도 들었지? 조금만 더 버텨야 하니까 절대 방패를 놓치지 마!

리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리코

그건 오늘도 내 몸이 제대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

리코

내 몸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다행이다, 움직여. 자유로운 몸, 정말 멋진 일이야.

리코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아직 살아있어, 아직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어.

리코

죽는 건 너무 아까우니까, 살아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니까.

리코

나는... 그렇게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밤중에 갑자기 정전된 것처럼, 주위가 어두워졌다.

리코, SPAS-12, 다른 사람들... 모두 사라졌다.

눈이 다시 어둠에 차차 적응되고 나니, 꽤나 낡은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문고리에 손을 뻗었지만, 닿기 직전 움찔했다.

그 모의 공간은 사라졌다. 즉, 지금 나는 리코의 진짜 "비타"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문을 열면 이 "비타"의 결말도 지어진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 나의 목적인데, 이 문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끼익...

???

드디어 오셨군요, 쟝 씨.

그런데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너머에서 뻗어 나온 손이 내 팔을 잡아당겼고, 나는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끌려들어간 그곳은 원형 정원이었다. 주위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고, 한가운데엔 마치 나비의 고치처럼 생긴 오두막이 있었다.

정원은 매우 조용했다. 몸을 통해 내 심장 소리가 전해질 정도의,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고요함이었다.

???

너무 늦게 오셨어요.

지휘관

SPAS...?

나를 끌어당긴 사람은 다름아닌 SPAS-12였다. 그녀는 내 팔을 잡던 손을 놓고, 사뿐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방금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과 몸짓, 그리고 얼굴도 그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미소를 띄고 있었다.

사브리나

어서 오세요, 쟝 씨. "사브리나"라 불러 주세요. 드디어 이곳을 찾아오셨군요.

지휘관

사브리나... 그때 내가 본 건 너였구나?

사브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그럼, 넌 정체가 뭐지?

사브리나

저는 고독한 신의 충실한 하인이자 친구, 그리고 당신을 여정의 종착지로 인도할 안내인입니다.

지휘관

고독한 신...?

사브리나

이곳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외로움을 참고 계신 분입니다.

지휘관

이곳... 리코 말이로군.

날 리코에게 데려다 주겠어?

사브리나

물론이죠. 저는 바로 그것을 위해 이곳에서 52년을 기다려 왔으니까요.

지휘관

뭐...? 52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사브리나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저 고치 같은 오두막으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휘관

여기서... 줄곧 리코와 너 둘만 있었어?

사브리나

신께선 본디 혼자였습니다. 맹세를 지키기 위해,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오직 당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기대했지만, 운명의 수레바퀴에 의해 그 미래는 가장 행복하던 순간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앗아간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신께선 이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그 남자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지휘관

그 남자?

사브리나

쟝 클로체.

그는 차가운 남자였지만, 모든 권한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쟝 씨"가 아니시죠?

지휘관

......

사브리나

괜찮습니다. 당신이 "쟝 씨"가 아니시더라도, 여전히 그녀를 구원할 자격이 있습니다.

쟝 씨가 떠나간 후로도, 신은 이곳을 나가려 하지도, 이 공간 외의 세상을 만들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저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뽑아낸 그림자인 저를.

저는 그녀를 위해, 그녀 혼자뿐인 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매일 매일...

아주 기나긴 세월을 그녀와 함께 보냈습니다.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함께이기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런 날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휘관

무슨 일이 있었지?

사브리나

한 소녀가 제 앞에 나타나, 이곳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저를 만든 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힘을 손에 넣자, 저도 이곳의 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신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생겨, 신께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 다짐한 그날, 저는 신을 저 오두막 안에서 잠들게 했습니다. 저 고치 같은 오두막에서, 달콤하고 긴 꿈을 꾸게 했습니다.

그녀가 잃었던 것들, 바랐던 것들, 가졌던 것들, 가지지 못했던 것들 전부, 꿈 속에서 이룰 수 있도록.

신은 맹세를 어기지 않으면서 그녀가 누려야 마땅했던 행복을 누리게 되었고, 저는 그녀의 소원을 성취시키면서 제가 만들어진 의미를 실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잠든 동안, 저는 당신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꿈이 끝나는 때, 당신이 다시 나타날 것임을 알았기에.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지휘관

너는...

사브리나

그 "꿈"을 부순 것이 당신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신께 빌렸던 힘. 결국 돌려드려야 마땅하겠죠.

지금의 제 모습도 당신에게서 빌린 것입니다.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지휘관

그 공간도, 네 의식도 전부 SPAS의 마인드맵을 이용해 구성한 거로군.

사브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그녀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도 후회되지 않습니다.

지휘관

하지만, 네가 그저 리코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존재했다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쉽거나 하진 않아?

사브리나

"쟝 씨", 당신이 의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지휘관

......

사브리나

저를 따라오세요.

당신의 그 상냥함은, 그 아이... 제 신께 베풀어 주세요.

나는 사브리나를 따라 그 오두막에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항상 병상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기는커녕, 걷는 방법조차 배울 수 없었다. 손발은 아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분명 몸에 달려 있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침대 옆을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데, 난 그저 누워 있기밖에 못해."

"난 의사 선생님과는 다른 생물인 걸까?"

"의체가 되면,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나요?"

"그렇다면, 의체가 되겠어요. 저를 선택해 주세요... 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내 복수를 도와다오."

"쟝 씨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내가 받은 첫 명령이었다."

"지금처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

"내 눈으로 직접 태양과 달을 보고, 백사장 위를 뛰어다닐 수 있고, 쟝 씨를 위해 싸울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쟝 씨에게 쓸모가 없어진다면..."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리코

쟝 씨...

지휘관

잘 잤니?

리코

네... 엄청, 엄청 긴 꿈을 꿨어요.

꿈 속에서 쟝 씨가 돌아오셔서, 다시 함께 임무를 수행했어요.

지휘관

그랬구나.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이야.

리코

그런가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돌아오셨잖아요.

지휘관

그래, 돌아왔지.

리코

엄청 오래 기다려서...

쟝 씨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제가 더는 쓸모 없어진 줄 알았어요.

지휘관

많이 늦긴 했지만, 돌아왔어. 널 데리고 돌아가려고.

리코

새로운 임무인가요?

지휘관

아니... 이제 더는 싸울 필요 없어.

리코

하지만... 싸울 필요가 없다면, 저는 쟝 씨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것 아닌가요?

지휘관

싸우지 않아도, 리코는 리코로서 살아갈 이유가 있어.

리코

저도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나요?

저도 그런 행복한 삶을 살 자격이 있나요?

지휘관

꿈 속이 아니어도 소망은 이룰 수 있는 법이지.

그 왕좌에서 내려와도, 널 지켜주고 사랑해 줄 사람이 있어.

리코의 손을 잡아, 왕좌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사브리나가, 살며시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사브리나

쟝 씨,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낸 것들은 전부 꿈 속 허상이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힘을 빌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던 꿈을 이루어 주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지휘관

...그래, 원하는 대로 하렴.

눈 깜빡할 새에, 나는 다시 이 "비타"에 들어왔을 때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SPAS-12의 연산을 빌려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내 손엔 다시 커피잔이 들려 있었고, 그 독특한 향이 다시 한번 내 코를 감쌌다.

한 모금 들이켜 보니, 여전히 아주 쓴 맛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는 커피에 우유를 조금 넣어 섞었다. 우유 거품은 잔에서 소용돌이를 그리며 서서히 커피에 녹아들었다.

리코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신가요?

지휘관

음, 아주 훌륭해.

리코

헤헤헤... 제가 일주일이나 연구해서 조합해낸 블렌드예요.

지휘관

잘 마셨다.

다른 곳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커피였어.

리코

그럼, 앞으로는 제가 매일 만들어 드릴게요!

리코는 기뻐하며 웃었다. 손에는 권총이 아닌 주전자를 쥐고 있었다.

역시, 이 아이는 지금 이런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타는 석양이 비추는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고, 창밖의 풍경은 마치 물감이 쏟아진 것처럼 찬란해졌다.

리코와 나는 말없이 저 풍경을, 그리고 도시 너머 멀리,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붉은 구름은 하늘에서 꼬리를 흔드는 고래 같았다.

구름이 자리를 뜨자 석양이 조금 눈부셔졌지만, 나도, 내 곁의 소녀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지휘관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리코

네.

지휘관

석양이 질 때면, 어째선지 기분이 우울해진단 말이지.

리코

쟝 씨와 함께라면, 저한텐 그저 아름다운 경치예요.

지휘관

...그만 돌아갈까?

리코

네!

주위가 점점 새하얘졌다.

눈을 가리는 하얀 빛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사브리나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이야기도,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

???

싸움이 끝나고, 그 애는 살아남았다.

항상 엄격하게 다뤘건만, 그 애는 언제나 내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쉽게 만족하고, 너무나도 쉽게 감사하는 그 애를 볼수록... 난 죄책감에 짓눌렸다.

그 애는 자신이 쓸모 없다며 버려질 것을 두려워했고, 나도 그 감정을 이용했다.

이를 그 애를 단련시키는 것으로 치부했지만, 실상은 내 진심에서 눈을 돌리는 비겁한 도피 행각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 애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공사의 의체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자랐을 테니까.

???

살육을 위한 의체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너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그게 바로 네 진정한 가치다.

???

행복하거라, 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