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는 곳
카모나 공화국, "다크존".
불문율로 점철된 무법지대.
벌써 두 블록이나 따라오는데, 이제 그만 나오지?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 낡을대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총탄의 흔적들은 다크존 동부에 위치한 이 황폐한 마을의 형편과 혼란한 상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런 이곳에서의 생활에 찌든 듯한 외모의 여성이 숨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대원"이신가요...?
여성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투복 차림에 총을 든 지휘관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다행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 아이를 살려 주세요!
여성이 기뻐하며 무릎까지 꿇고는 다리를 부여잡으려 했다.
지휘관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총을 겨눴다.
물러서!
아, 죄,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대원은 다크존으로 가는 의뢰를 받아 준다 들어서, 제 아이를 구해 달라 하려고... 아이 이름은 토니예요.
들었다고요?
마을에 계신 의사 선생님께 들었어요, 마룰로스의 큰 병원에서 오셨대요.
전투복 차림에 총도 있지만 아무 마크도 없는 사람을 찾으라고, 그 사람이라면 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해서...
죄송해요, 폐를 끼쳤나 보네요...
다크존에선 항상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니 말이죠... 일단 일어나세요.
총은 거뒀지만, 지휘관은 여성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녀의 두 손과 무기가 숨겨졌을 만한 곳을 살폈다.
말씀해 보십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심야, 다크존 동부의 어느 임시 캠프.
"물건"은?
새로 온 녀석 빼고 전부 보냈지. 모레 출항이야.
잘 보고 있어, 요즘 일이――?!
누구냐!?
조용하던 캠프가 갑자기 개들이 짖는 소리와 사이렌으로 소란스러워져, 갱단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총을 집었다.
XX XX 말을 하자마자... 가자.
어둠 속에서 지친 발걸음과 가쁜 숨소리가 이어졌다.
헉... 헉... 더, 더는 못 뛰겠어요...
살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
멀지 않은 곳까지 뒤쫓아온 네댓 명의 갱단이 주위를 마구 뒤져댔고, 결국 그들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짖기 시작했다.
저기다!
쏟아지는 손전등의 빛에, 도망치던 두 사람은 숨을 곳이 없어져 버렸다.
엎드려!
지휘관이 소년을 덮쳐 함께 쓰러지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총탄이 스쳤다.
멈춰 이 머저리들아!
"물건"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리더로 보이는 자가 부하들의 사격을 제지하고 손짓해 목표물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짚더미 뒤로 몸을 숨긴 소년은 공포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쩌죠...?
쉬잇...
지휘관은 대답 대신 소년을 조용히 시킨 뒤, 몸을 숨긴 짚더미의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타앙!
뭣――
타앙!
순식간에 갱단원 두 명이 고꾸라졌고, 한 명은 반대편의 트럭 뒤로 몸을 던졌기에 그를 쫓던 총알은 불똥만 튀겼다.
제기랄, 소이탄 던져! 저 자식 면상 좀 보자고!
노출되어 버린 지휘관의 위치로 갱단원 2명이 접근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듯했다.
퍼엉!
갑작스런 폭발에 흙먼지가 일었고, 짚더미 뒤에 숨었던 소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무언가를 던진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해... 해냈다...?
트럭 뒤편에서 나온 지휘관은 미처 던지지 못한 연막탄을 도로 집어넣고, 바닥에 널브러진 갱단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소년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류탄은 어디서 난 거야? 아주 잘했어.
이리 와서 같이 뭐 쓸 만한 거 있나 뒤져보자.
갱단원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 쓸 만한 약품과 탄약을 잔뜩 찾아낸 지휘관은 가득 찬 배낭을 소년에게 건넸다.
받아.
휘이익――파악!
어디선가 날아든 총탄이 지휘관의 팔을 스쳐 지나가, 뒤쪽의 차 문에 맞았다.
젠장, 숨어! 드럼통 뒤로!
그 말에 소년은 황급히 배낭을 버리고 몸을 숨겼지만, 지휘관은 그러지 않았다.
빨리——
폭발음이 소년의 외침을 집어삼켰다.
——!
그리고 굉음이 잦아들었을 때, 가까이서 군화가 잔디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바닥에서 돌을 집어 들어 꼭 쥐고,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윽고 발소리가 차 앞까지 온 순간, 소년은 돌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치고자 펄쩍 뛰어들었다.
죽어!
어?! 나야 나!
으앗?!
휴우... 죄, 죄송해요, 무서워서 그만...
누구인지 확인한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을 내려놓고는 차 아래로 툭 차 넣었다.
일단 가자. 배낭 챙기고,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르니 절대 긴장 풀지 마.
명심해, 여긴 다크존이야.
오, M32 전술 헤드셋이잖아?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영 아니긴 해도 픽업 증폭 효과는 괜찮지.
비가 쏟아지는 밤에 "애"까지 딸린 채로 이동하기란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기에, 지휘관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전리품을 확인했다.
저놈들 생각보다 더 까다롭네... 이번에는 손해 좀 보겠어.
이를 지켜보던 소년이 자신이 받았던 배낭을 내밀었다.
이것도 있어요.
지휘관은 소년의 진흙투성이인 얼굴과 영양실조인 듯한 가는 팔을 슬쩍 보고는 전리품 정리를 계속했다.
잘 가지고 있어.
네 어머니가 널 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의뢰비만 해도 이만큼이라고.
지휘관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보이자 소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 집에 그런 돈 없는데요?!
사실 나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어, 그리 부유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도와주려 했더니 규칙대로 하는 게 맞다면서... 그나저나, 넌 어쩌다 "생쥐단"한테 찍힌 거야?
생쥐...? 절 잡으려던 사람들 말인가요?
모르겠어요... 집에 가다 기절해서, 눈을 떠 보니 여기였어요.
저 말고도 같이 갇힌 사람들이 있었는데, 낮에 모두 부두로 끌려갔어요.
부두? 흐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지휘관은 잠시 조용히 총을 닦기만 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망볼 테니까 넌 좀 푹 자 둬.
날 밝으면 집으로 가자.
이른 아침, 다크존 동부 마룰로스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랫동안 수리조차 되지 못한 듯한 집의 문을, 토니가 벌컥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엄마! 아빠!
토니, 잠깐――
순간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가 가득한 바닥은 검붉은 피가 흥건했고, 그 위로 중년 남녀 한 쌍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으니까.
힘차게 문을 열었던 토니는 새하얗게 질려,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빨리 나가자.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토니는 지휘관의 손을 뿌리치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엄마! 아빠! 대체 누가 한 거야... 누구냐고!
문 앞의 지휘관은 눈앞의 부모를 부둥켜 안고 우는 소년과 저 뒤로 햇빛이 내리쬐는 한산한 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곤, 전술 헤드셋을 벗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토니, 당장 여길 벗어나야――
어딜?
기다렸다는 듯 등 뒤로 문이 닫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네댓 명 정도 되는 갱단원들이 다른 방에서 튀어나와, 현장을 포위했다.
감히 내 돈을 들고 째? 간도 크시구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지휘관은 천천히 양손을 들어 저항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당신들 짓이에요...?
노름판에서 져서 자식놈을 팔아먹고선, 다른 녀석한테 시켜서 빼돌리려 하다니 말이야... 네 아비는 그딴 수작을 부리고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나 봐?
글 읽을 줄은 알지? 직접 봐라.
종이 한 장이 휙 던져졌다. 그리고 그걸 주워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토니는 점점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눈으로 몇 번을 위아래로 훑고는 냅다 그걸 찢어 버렸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아빠가 그랬을 리 없어!
그리고, 엄마가... 엄마가 날 구해 달라고 했다고!
이년이 그랬다고?
갱단 두목이 바닥에 널브러진 여성을 가리키며 비아냥대곤 주머니에서 물방울 모양의 금 펜던트를 꺼내 내밀어 보였다.
에잉 쯧쯧쯧, 빚 갚으려고 자식은 팔아도 금은 안 팔겠다는 쓰레기가 세상 어디 있겠냐고, 킬킬킬...
그리고 두목은 시선을 돌려 지휘관을 꼬나봤다.
너한테 대신 갚으라 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그냥 규칙대로 돈 받고 일한 거잖아? 다만 내 형제들 몇 명 골로 보냈으니...
눈치껏 값나가는 거 두고, 조용히 갈 길 가.
...그래, 그렇게 할게.
지휘관은 천천히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 생각했어, 괜히 쓸데없이 싸울 필요――
토니!
외침이 들린 순간, 토니는 주위의 총부리를 아랑곳 않고 두목의 다리를 있는 힘껏 물었다.
끄아악!? 이런 XX!
정말로 죽일 셈은 없었는지, 두목은 총의 개머리판으로 토니의 머리를 내리쳤다.
동시에 지휘관은 전술 조끼에 손을 가져갔다.
삐이이――
고막을 찌르는 폭음이 집 안을 뒤흔들었다.
이 XXX이 충격 수류탄을...?! 모두 이어폰 빼! 이어폰 빼고 저 자식 잡아 XX!! 안 들려 이 XX들아!?
엄청난 현기증을 견디면서, 지휘관은 기절한 토니를 들쳐 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뛸 수 있겠어?
비틀대면서 얼마나 달렸을까. 토니도 이제 길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충격 수류탄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다.
……네.
둘로 나뉘어서 놈들을 따돌린 다음 서쪽의 폐가에서 만나자.
네? 같이 움직여야――
시간 없어, 내가 유인할 테니까 어서 가! 얼른!
지휘관이 밀면서 다그치자 소년은 잠시 머뭇대다 결국 시키는 대로 도망쳤고, 때마침 저 멀리서 갱단 무리가 지휘관이 있는 방향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으니까 찾아!
지휘관도 몸을 돌려, 토니의 반대 방향으로 도주했다.
밤이 되어, 갱단의 추격을 무사히 따돌린 지휘관은 서쪽의 폐가로 향했다.
오셨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먼지와 진흙투성이인 토니가 먼저 와 있었다.
쫓아오는 사람 없었어?
어, 없――
지휘관은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달칵.”
!
밖에서 잠그는 소리가 났다.
죄송해요!
차마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는지, 토니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목멘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문 밖에서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와서 사과라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구만. 시작해!
밖에서 어떤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냄새... 휘발유였다.
자, 잠깐만요! 저는 풀어 준다면서요!
내보내 줘! 내보내 달라고!
토니가 그리 두껍지 않은 문에 달려들어 마구 두들겼다. 그런데 지휘관은 딱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비켜 주기만 했다.
성냥이 켜지는 소리.
그리고 불길이 일었다.
안 돼!
토니는 불이 붙은 문에서 떨어져, 한쪽 테이블에 몸을 기댄 아주 침착한 표정의 지휘관에게 외쳤다.
무슨 방법 없어요?!
창백해진 얼굴로 쩔쩔매는 토니를 애써 무시하던 지휘관의 입에서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괜히 힘 빼지 마, 저놈들은 우리가 문을 박차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입과 코를 가리고 숨을 천천히 쉬면서, 놈들이 긴장을 늦추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잇따른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걷어차여 안쪽으로 열렸다.
열린 문앞에는 말총머리를 한 흑발의 여성이 서 있었고, 그녀 뒤로는 4명의 다른 여성들이 은발을 휘날리며 갱단과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집중 사격!
난데없이 끼어들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이 독특한 스타일의 5인조를 본 지휘관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떠올랐다.
너흰...!
한가하게 인사할 시간 없어. 총은 있어?
흑발의 여성은 UMP9 한 자루를 휙 건네곤 뒤돌아 전투에 합류했고, 지휘관은 구석에 웅크린 토니를 뒤로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주위의 갱단은 금세 말끔히 "청소"되어, 불길이 사그라든 폐가로 돌아온 지휘관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이 낯선 5인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너희가 그 "리벨리온" 분대지?
흑발의 여성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기만 할 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자기소개부터 할까? 안젤리아다.
굉장한 사건들을 여럿 해결한 고정 멤버 5인조 분대... 다크존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쉽지 않다? 그럴지도.
우린 그냥 이 근처를 지나다 생쥐단 놈들이 웬 민간인이랑 대원을 쫓고 있단 얘기를 들어서 와봤을 뿐이야.
너희가 제때 와 줘서 망정이지, 오늘은 정말 죽을 뻔했어.
출구도 없는 공간에 갇히다니, 너 정말 대원 맞아?
고생만 잔뜩 하고 좋은 소리는 하나도 못 듣는 임무를 하는 우리가 할 소린 아니네요.
......
납치되었단 아동이 이 아이인가?
토니는 지금 어둑한 구석에 숨어 자신의 기척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직접 들어봐야지.
죄송해요, 다른 수가 없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이지?
그 말에 소년은 발작하듯 지휘관에게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곤 절망에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전 그저...
살고 싶어서...
아하, 방에 갇혔던 원인이군요. 그런데 딱히 놀라진 않네요?
다크존에선 일상다반사니까.
상관없다는 투로 지휘관이 손을 젓는 그때, 옆에 서 있던 에르빈이 토니의 목덜미를 잡아 들었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에르빈.
안젤리아의 제지에 에르빈이 손을 툭 놓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토니는 황급히 지휘관의 뒤로 숨었다.
……
이걸 그냥 눈감아줄 건가요?
됐어.
배신하고, 이용하고... 언젠가 업보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다크존에선 어쩌면 이게 올바른 생존 방식일지도 몰라.
내가 훈계하거나 할 자격은 없지.
가봐.
토니는 조심스레 지휘관의 눈치를 살폈다. 예상했던 분노나 실망감은 없고, 이골이 난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토니는 입을 다물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뭔가 끙끙 고민하고 있었다.
끝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와 지휘관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낮에 주운 거예요... 어, 어디서 난 건진 모르겠지만 엄마가 당신이 저를 구하면 드릴 보수라고 했대요...
받으세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소년은 지휘관을 다시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카모나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지휘관이 손바닥을 펴 보니, 쥐여진 것은 물방울 모양의 금 펜던트였다.
난 마룰로스로 갈 거야, 또 임무가 있거든. 너희는?
안젤리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사정은 대충 알겠어. 우린 이만 간다,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그래, 몸조심해.
장비를 챙기고 떠나려는 리벨리온 분대를, 지휘관은 말없이 가만히 지켜봤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나가던 안젤리아가 잠깐 걸음을 멈췄다.
참, 이건 다른 얘긴데...
응?
배신하고 이용해 먹는 게 다크존의 방식이란 건 부정 않겠어. 그래도 동료와 함께하는 게 혼자보단 나아.
……
그리고 어깨 너머로 손을 흔들며, 안젤리아는 떠났다.
선두에서 전술 조끼를 정리하는 에르빈, 곁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확인하는 안티아, 뒤에서 장난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투닥대는 루치아와 레나테와 함께.
하하하...
지휘관은 자조하듯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오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
다음 날.
들었어? 강변에 있던 생쥐단이 별장째로 당했대! 살다 보니 이렇게 기쁜 날도 다 있네!
이른 아침부터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온 몸을 가린 남자가 길을 가로질렀다.
누군진 몰라도 부디 붙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만약 잡혔다간... 어후.
지휘관은 왼쪽 주머니를 만지작대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주머니 속엔 생쥐 마크가 새겨진 금속 인식표가 들어 있었다.
이것 참, 임무는 끝났는데 의뢰인이 없다니.
목의 물방울 모양 금 펜던트를 다시 옷 안으로 넣고, 지휘관은 인파 사이를 지나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마룰로스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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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나 공화국, "다크존".
불문율로 점철된 무법지대.
벌써 두 블록이나 따라오는데, 이제 그만 나오지?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 낡을대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총탄의 흔적들은 다크존 동부에 위치한 이 황폐한 마을의 형편과 혼란한 상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런 이곳에서의 생활에 찌든 듯한 외모의 여성이 숨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대원"이신가요...?
여성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투복 차림에 총을 든 지휘관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다행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 아이를 살려 주세요!
여성이 기뻐하며 무릎까지 꿇고는 다리를 부여잡으려 했다.
지휘관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총을 겨눴다.
물러서!
아, 죄,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대원은 다크존으로 가는 의뢰를 받아 준다 들어서, 제 아이를 구해 달라 하려고... 아이 이름은 토니예요.
들었다고요?
마을에 계신 의사 선생님께 들었어요, 마룰로스의 큰 병원에서 오셨대요.
전투복 차림에 총도 있지만 아무 마크도 없는 사람을 찾으라고, 그 사람이라면 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해서...
죄송해요, 폐를 끼쳤나 보네요...
다크존에선 항상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니 말이죠... 일단 일어나세요.
총은 거뒀지만, 지휘관은 여성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녀의 두 손과 무기가 숨겨졌을 만한 곳을 살폈다.
말씀해 보십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심야, 다크존 동부의 어느 임시 캠프.
"물건"은?
새로 온 녀석 빼고 전부 보냈지. 모레 출항이야.
잘 보고 있어, 요즘 일이――?!
누구냐!?
조용하던 캠프가 갑자기 개들이 짖는 소리와 사이렌으로 소란스러워져, 갱단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총을 집었다.
XX XX 말을 하자마자... 가자.
어둠 속에서 지친 발걸음과 가쁜 숨소리가 이어졌다.
헉... 헉... 더, 더는 못 뛰겠어요...
살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
멀지 않은 곳까지 뒤쫓아온 네댓 명의 갱단이 주위를 마구 뒤져댔고, 결국 그들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짖기 시작했다.
저기다!
쏟아지는 손전등의 빛에, 도망치던 두 사람은 숨을 곳이 없어져 버렸다.
엎드려!
지휘관이 소년을 덮쳐 함께 쓰러지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총탄이 스쳤다.
멈춰 이 머저리들아!
"물건"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리더로 보이는 자가 부하들의 사격을 제지하고 손짓해 목표물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짚더미 뒤로 몸을 숨긴 소년은 공포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쩌죠...?
쉬잇...
지휘관은 대답 대신 소년을 조용히 시킨 뒤, 몸을 숨긴 짚더미의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타앙!
뭣――
타앙!
순식간에 갱단원 두 명이 고꾸라졌고, 한 명은 반대편의 트럭 뒤로 몸을 던졌기에 그를 쫓던 총알은 불똥만 튀겼다.
제기랄, 소이탄 던져! 저 자식 면상 좀 보자고!
노출되어 버린 지휘관의 위치로 갱단원 2명이 접근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듯했다.
퍼엉!
갑작스런 폭발에 흙먼지가 일었고, 짚더미 뒤에 숨었던 소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무언가를 던진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해... 해냈다...?
트럭 뒤편에서 나온 지휘관은 미처 던지지 못한 연막탄을 도로 집어넣고, 바닥에 널브러진 갱단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소년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류탄은 어디서 난 거야? 아주 잘했어.
이리 와서 같이 뭐 쓸 만한 거 있나 뒤져보자.
갱단원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 쓸 만한 약품과 탄약을 잔뜩 찾아낸 지휘관은 가득 찬 배낭을 소년에게 건넸다.
받아.
휘이익――파악!
어디선가 날아든 총탄이 지휘관의 팔을 스쳐 지나가, 뒤쪽의 차 문에 맞았다.
젠장, 숨어! 드럼통 뒤로!
그 말에 소년은 황급히 배낭을 버리고 몸을 숨겼지만, 지휘관은 그러지 않았다.
빨리——
폭발음이 소년의 외침을 집어삼켰다.
——!
그리고 굉음이 잦아들었을 때, 가까이서 군화가 잔디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바닥에서 돌을 집어 들어 꼭 쥐고,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윽고 발소리가 차 앞까지 온 순간, 소년은 돌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치고자 펄쩍 뛰어들었다.
<size=50>죽어!</size>
어?! 나야 나!
으앗?!
휴우... 죄, 죄송해요, 무서워서 그만...
누구인지 확인한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을 내려놓고는 차 아래로 툭 차 넣었다.
일단 가자. 배낭 챙기고,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르니 절대 긴장 풀지 마.
명심해, 여긴 다크존이야.
오, M32 전술 헤드셋이잖아?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영 아니긴 해도 픽업 증폭 효과는 괜찮지.
비가 쏟아지는 밤에 "애"까지 딸린 채로 이동하기란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기에, 지휘관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전리품을 확인했다.
저놈들 생각보다 더 까다롭네... 이번에는 손해 좀 보겠어.
이를 지켜보던 소년이 자신이 받았던 배낭을 내밀었다.
이것도 있어요.
지휘관은 소년의 진흙투성이인 얼굴과 영양실조인 듯한 가는 팔을 슬쩍 보고는 전리품 정리를 계속했다.
잘 가지고 있어.
네 어머니가 널 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의뢰비만 해도 이만큼이라고.
지휘관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보이자 소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 집에 그런 돈 없는데요?!
사실 나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어, 그리 부유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도와주려 했더니 규칙대로 하는 게 맞다면서... 그나저나, 넌 어쩌다 "생쥐단"한테 찍힌 거야?
생쥐...? 절 잡으려던 사람들 말인가요?
모르겠어요... 집에 가다 기절해서, 눈을 떠 보니 여기였어요.
저 말고도 같이 갇힌 사람들이 있었는데, 낮에 모두 부두로 끌려갔어요.
부두? 흐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지휘관은 잠시 조용히 총을 닦기만 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망볼 테니까 넌 좀 푹 자 둬.
날 밝으면 집으로 가자.
이른 아침, 다크존 동부 마룰로스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랫동안 수리조차 되지 못한 듯한 집의 문을, 토니가 벌컥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엄마! 아빠!
토니, 잠깐――
순간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가 가득한 바닥은 검붉은 피가 흥건했고, 그 위로 중년 남녀 한 쌍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으니까.
힘차게 문을 열었던 토니는 새하얗게 질려,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빨리 나가자.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토니는 지휘관의 손을 뿌리치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size=50>엄마! 아빠! 대체 누가 한 거야... 누구냐고!</size>
문 앞의 지휘관은 눈앞의 부모를 부둥켜 안고 우는 소년과 저 뒤로 햇빛이 내리쬐는 한산한 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곤, 전술 헤드셋을 벗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토니, 당장 여길 벗어나야――
어딜?
기다렸다는 듯 등 뒤로 문이 닫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네댓 명 정도 되는 갱단원들이 다른 방에서 튀어나와, 현장을 포위했다.
감히 내 돈을 들고 째? 간도 크시구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지휘관은 천천히 양손을 들어 저항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당신들 짓이에요...?
노름판에서 져서 자식놈을 팔아먹고선, 다른 녀석한테 시켜서 빼돌리려 하다니 말이야... 네 아비는 그딴 수작을 부리고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나 봐?
글 읽을 줄은 알지? 직접 봐라.
종이 한 장이 휙 던져졌다. 그리고 그걸 주워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토니는 점점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눈으로 몇 번을 위아래로 훑고는 냅다 그걸 찢어 버렸다.
<size=50>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아빠가 그랬을 리 없어!</size>
그리고, 엄마가... 엄마가 날 구해 달라고 했다고!
이년이 그랬다고?
갱단 두목이 바닥에 널브러진 여성을 가리키며 비아냥대곤 주머니에서 물방울 모양의 금 펜던트를 꺼내 내밀어 보였다.
에잉 쯧쯧쯧, 빚 갚으려고 자식은 팔아도 금은 안 팔겠다는 쓰레기가 세상 어디 있겠냐고, 킬킬킬...
그리고 두목은 시선을 돌려 지휘관을 꼬나봤다.
너한테 대신 갚으라 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그냥 규칙대로 돈 받고 일한 거잖아? 다만 내 형제들 몇 명 골로 보냈으니...
눈치껏 값나가는 거 두고, 조용히 갈 길 가.
...그래, 그렇게 할게.
지휘관은 천천히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 생각했어, 괜히 쓸데없이 싸울 필요――
<size=50>토니!</size>
외침이 들린 순간, 토니는 주위의 총부리를 아랑곳 않고 두목의 다리를 있는 힘껏 물었다.
<size=50>끄아악!? 이런 XX!</size>
정말로 죽일 셈은 없었는지, 두목은 총의 개머리판으로 토니의 머리를 내리쳤다.
동시에 지휘관은 전술 조끼에 손을 가져갔다.
삐이이――
고막을 찌르는 폭음이 집 안을 뒤흔들었다.
이 XXX이 충격 수류탄을...?! 모두 이어폰 빼! 이어폰 빼고 저 자식 잡아 XX!! 안 들려 이 XX들아!?
엄청난 현기증을 견디면서, 지휘관은 기절한 토니를 들쳐 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뛸 수 있겠어?
비틀대면서 얼마나 달렸을까. 토니도 이제 길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충격 수류탄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다.
……네.
둘로 나뉘어서 놈들을 따돌린 다음 서쪽의 폐가에서 만나자.
네? 같이 움직여야――
시간 없어, 내가 유인할 테니까 어서 가! 얼른!
지휘관이 밀면서 다그치자 소년은 잠시 머뭇대다 결국 시키는 대로 도망쳤고, 때마침 저 멀리서 갱단 무리가 지휘관이 있는 방향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으니까 찾아!
지휘관도 몸을 돌려, 토니의 반대 방향으로 도주했다.
밤이 되어, 갱단의 추격을 무사히 따돌린 지휘관은 서쪽의 폐가로 향했다.
오셨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먼지와 진흙투성이인 토니가 먼저 와 있었다.
쫓아오는 사람 없었어?
어, 없――
지휘관은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달칵.”
!
밖에서 잠그는 소리가 났다.
죄송해요!
차마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는지, 토니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목멘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문 밖에서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와서 사과라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구만. 시작해!
밖에서 어떤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냄새... 휘발유였다.
자, 잠깐만요! 저는 풀어 준다면서요!
내보내 줘! 내보내 달라고!
토니가 그리 두껍지 않은 문에 달려들어 마구 두들겼다. 그런데 지휘관은 딱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비켜 주기만 했다.
성냥이 켜지는 소리.
그리고 불길이 일었다.
안 돼!
토니는 불이 붙은 문에서 떨어져, 한쪽 테이블에 몸을 기댄 아주 침착한 표정의 지휘관에게 외쳤다.
무슨 방법 없어요?!
창백해진 얼굴로 쩔쩔매는 토니를 애써 무시하던 지휘관의 입에서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괜히 힘 빼지 마, 저놈들은 우리가 문을 박차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입과 코를 가리고 숨을 천천히 쉬면서, 놈들이 긴장을 늦추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잇따른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걷어차여 안쪽으로 열렸다.
열린 문앞에는 말총머리를 한 흑발의 여성이 서 있었고, 그녀 뒤로는 4명의 다른 여성들이 은발을 휘날리며 갱단과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집중 사격!
난데없이 끼어들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이 독특한 스타일의 5인조를 본 지휘관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떠올랐다.
너흰...!
한가하게 인사할 시간 없어. 총은 있어?
흑발의 여성은 UMP9 한 자루를 휙 건네곤 뒤돌아 전투에 합류했고, 지휘관은 구석에 웅크린 토니를 뒤로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주위의 갱단은 금세 말끔히 "청소"되어, 불길이 사그라든 폐가로 돌아온 지휘관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이 낯선 5인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너희가 그 "리벨리온" 분대지?
흑발의 여성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기만 할 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자기소개부터 할까? 안젤리아다.
굉장한 사건들을 여럿 해결한 고정 멤버 5인조 분대... 다크존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쉽지 않다? 그럴지도.
우린 그냥 이 근처를 지나다 생쥐단 놈들이 웬 민간인이랑 대원을 쫓고 있단 얘기를 들어서 와봤을 뿐이야.
너희가 제때 와 줘서 망정이지, 오늘은 정말 죽을 뻔했어.
출구도 없는 공간에 갇히다니, 너 정말 대원 맞아?
고생만 잔뜩 하고 좋은 소리는 하나도 못 듣는 임무를 하는 우리가 할 소린 아니네요.
......
납치되었단 아동이 이 아이인가?
토니는 지금 어둑한 구석에 숨어 자신의 기척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직접 들어봐야지.
죄송해요, 다른 수가 없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이지?
그 말에 소년은 발작하듯 지휘관에게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곤 절망에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전 그저...
살고 싶어서...
아하, 방에 갇혔던 원인이군요. 그런데 딱히 놀라진 않네요?
다크존에선 일상다반사니까.
상관없다는 투로 지휘관이 손을 젓는 그때, 옆에 서 있던 에르빈이 토니의 목덜미를 잡아 들었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에르빈.
안젤리아의 제지에 에르빈이 손을 툭 놓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토니는 황급히 지휘관의 뒤로 숨었다.
……
이걸 그냥 눈감아줄 건가요?
됐어.
배신하고, 이용하고... 언젠가 업보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다크존에선 어쩌면 이게 올바른 생존 방식일지도 몰라.
내가 훈계하거나 할 자격은 없지.
가봐.
토니는 조심스레 지휘관의 눈치를 살폈다. 예상했던 분노나 실망감은 없고, 이골이 난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토니는 입을 다물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뭔가 끙끙 고민하고 있었다.
끝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와 지휘관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낮에 주운 거예요... 어, 어디서 난 건진 모르겠지만 엄마가 당신이 저를 구하면 드릴 보수라고 했대요...
받으세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소년은 지휘관을 다시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카모나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지휘관이 손바닥을 펴 보니, 쥐여진 것은 물방울 모양의 금 펜던트였다.
난 마룰로스로 갈 거야, 또 임무가 있거든. 너희는?
안젤리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사정은 대충 알겠어. 우린 이만 간다,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그래, 몸조심해.
장비를 챙기고 떠나려는 리벨리온 분대를, 지휘관은 말없이 가만히 지켜봤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나가던 안젤리아가 잠깐 걸음을 멈췄다.
참, 이건 다른 얘긴데...
응?
배신하고 이용해 먹는 게 다크존의 방식이란 건 부정 않겠어. 그래도 동료와 함께하는 게 혼자보단 나아.
……
그리고 어깨 너머로 손을 흔들며, 안젤리아는 떠났다.
선두에서 전술 조끼를 정리하는 에르빈, 곁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확인하는 안티아, 뒤에서 장난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투닥대는 루치아와 레나테와 함께.
하하하...
지휘관은 자조하듯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오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
다음 날.
들었어? 강변에 있던 생쥐단이 별장째로 당했대! 살다 보니 이렇게 기쁜 날도 다 있네!
이른 아침부터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온 몸을 가린 남자가 길을 가로질렀다.
누군진 몰라도 부디 붙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만약 잡혔다간... 어후.
지휘관은 왼쪽 주머니를 만지작대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주머니 속엔 생쥐 마크가 새겨진 금속 인식표가 들어 있었다.
이것 참, 임무는 끝났는데 의뢰인이 없다니.
목의 물방울 모양 금 펜던트를 다시 옷 안으로 넣고, 지휘관은 인파 사이를 지나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마룰로스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