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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 이성질체

피의 신념Ⅲ

"여기서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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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내부.

지휘관과 인형들은 성당 안으로 후퇴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런 전투 속에서도 성당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탄흔과 ELID가 죽으면서 흩뿌린 체액을 닦아낸다면, 벽화들은 다시 신성하면서도 희망찬 분위기를 자아내리라.

RO635

참 아이러니하네.

RO635와 SOP2는 날개 한 짝이 부러지고 머리가 박살난 천사 조각상 앞에 잠시 멈춰섰다.

M4 SOPMOD II

RO, 방금 뭐랬어?

RO635

아니, 그냥... 성당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감상적이 되어 버렸어.

신이 인간에게 무엇이 규칙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다 가르쳐줬는데도... 이것 봐, 신을 모시는 곳이 지금은 묘지나 다름없어.

RO635는 조심스럽게 한 시체를 넘었다.

RO635

무엇이 정의인지 다 알면서, 왜 끝없이 서로 싸우는 걸까...

M4 SOPMOD II

하지만 지휘관이... 어, 예전에 뭐라고 했더라...

신은... 모두를 좋아해서...?

RO635

"신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었다." 말이야?

M4 SOPMOD II

그래그래, 그거!

그러니까, 오히려 신의 아낌없는 사랑에 버르장머리가 없어져서, 가진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

RO635

혹시 모르지. 그들이 말하는 규칙은, 신이 정한 것이 아닐 수도.

M4 SOPMOD II

정말 그 책에 쓰인 대로라면,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신은 용서해줄 거 아니야.

SOP2는 화풀이하듯, 바닥에 흩어진 조각상의 파편을 발로 찼다.

M4 SOPMOD II

이렇게, 조각상을 발로 차도 용서하고.

사람을 죽여도 용서하고.

이렇게 도시 전체를 박살내도, 용서하고...

RO는 손을 SOP2의 어깨 위에 얹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RO635

적어도, 우리 지휘관님은 저 괴물들을 용서치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도 지휘관님을 따르면서, 이 세상의 죄악을 조금씩이나마 없애갈 거고.

같은 시각, 성당 안의 다른 곳.

TEC9

으아악!

성당 안에 인간이 왜 이리 많아?!

카리나

다들 여기로 피난왔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너도 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이 너 때문에 놀랐잖아!

TEC9

<color=#A9A9A9>놀란 건 난데...</color>

TEC9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적에게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이내 몸을 돌렸다.

TEC9

저기... 얘들아? 이빨 딱딱거리는 건 괜찮은데, 좀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

나 무서워서...

가까운 구석에는, 몸을 웅크린 아이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TEC9를 바라보고 있었다.

TEC9

<color=#A9A9A9>(내가 왜 인간에게 말을 걸었담...)</color>

<color=#A9A9A9>(하지만 계속 감염자가 터지는 걸 보고 있자니, 진짜 토할 것 같아.)</color>

아이

누나... 지금 사람을 죽이는 거야?

갑작스런 질문에, TEC9는 당황했다.

TEC9

<color=#A9A9A9>(으으, 카리나 씨는 어디 갔지?)</color>

<color=#A9A9A9>(X95는 아직도 안 돌아왔나...)</color>

TEC9

크흠... 아, 아니.

어, 언니는 지금... 괴물을 잡고 있어.

아이

괴물이구나...

저 괴물들이... 우리 엄마를... 흑흑...

TEC9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이

엄마의 원수를 갚을 거야, 이 나쁜 괴물들...!

TEC9

<color=#A9A9A9>(이렇게 어린 인간이... 벌써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되겠지...? 그래...)</color>

TEC9

그럼 먼저, 살아남아.

아이

응?

TEC9

어떻게든... 살아남는 거야. 괴물을 만나면 전력으로 도망쳐, 알았지?

복수고 뭐고 다 언니들에게 맡겨.

카리나

뭐야, 인간이랑 잘 대화할 수 있잖아.

그러면서 지휘관님하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너도 참 골치아픈 애라니까.

어느샌가 카리나가 TEC9 뒤에 서 있었다.

TEC9

엄마야! 카리나씨 언제 오셨어요?!

너,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어휴, 진짜 놀랐잖아요!

5분 후.

RO635

지휘관님, 지금은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밖에서 ELID가... 젠장,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요!

그 말대로, 잡담할 때가 아니었다.

방금 성당 하나쯤은 지켜낼 수 있다 했지만, 현 상황으로선 그것조차 어렵다.

그리고 인형들도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M4 SOPMOD II

으으... 성당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다들 쉬지도 않고 총만 쏴댔으니...

이대로라면, 총알이 먼저 바닥날지 적들이 먼저 안으로 쏟아질지의 문제야.

나야 맨손으로 녀석들을 확 찢어버릴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포탄은 못 이겨...

RO635

뛰쳐나갈 생각 말고 자리를 지켜.

지원이...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면 돼.

카리나

<color=#A9A9A9>(아까 통신이 연결됐을 때, RO는 자리에 없었지...)</color>

<color=#A9A9A9>(이제 무전기를 거의 다 고쳤어... 빨리 K 씨와 다시 통신이 연결되어야 할 텐데...)</color>

RO635는 SOP2를 진정시켰지만, 자신도 슬슬 한계인 것을 느꼈다.

성당 내의 사기가 저하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듯, 적들은 더 맹렬하게 포격을 쏟아부었다.

카리나

이 망할 기계가 좀 제대로 일해 보란 말이야아아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우리 모두 여기서 죽는다고!

카리나가 통신 설비를 발로 뻥 차자, 무전기에서 잡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삐이익!

K

<color=#00CCFF>오, 이제야 연결됐군. 너희 모두 죽은 줄 알았다.</color>

카리나

됐다――!! 지휘관님! K 씨와 통신 연결됐어요!

지휘관

철수 작전은 어떻게 됐지? 지금 여긴 철수를 지원해줄 사람도, 설비도 없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물론, VIP마저 죽고 말 거다.

K

<color=#00CCFF>그것 참 재미없는 농담이군.</color>

카리나

지금 이게 농담 같아요?

저 화력 차이를 보세요, 적이 우리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요!

K

<color=#00CCFF>지금 도시 안에는 소형 헬리콥터도 착륙이 불가능해.</color>

<color=#00CCFF>철수 지점은 도시 바깥의 삼각주 지대로 옮겨졌다. 자세한 좌표를 전송하지. 30분 후, 그곳으로 철수용 항공기가 도착할 거다. VIP를 그 좌표까지 호송하도록.</color>

지휘관

불가능하다.

K

<color=#00CCFF>뭐라고?</color>

지휘관

울릭 주석이, 성당 내 피난민의 안전을 부탁했다. 내가 떠나자 해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다.

K

<color=#00CCFF>그 주석이 뭐라든 내 알 바 아니야. 필요하다면 기절시켜서라도 데려와.</color>

<color=#00CCFF>시간이 없어. 기존 계획대로, 주석을 데리고 철수해라. 계속 한 지점에서 화력을 낭비하지 말고——</color>

지휘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불가능하다.

지금 그쪽은 여전히 안전한 곳에 있겠지? 즉, 너 자신만은 안전히 이탈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VIP를 철수시키고 싶다면, 저 민간인들도 함께 철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라.

지금, 당장, 지원을 보내라.

너와 따질 시간은 없다.

카리나

<color=#A9A9A9>저기, 지휘관님,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건...</color>

성당 밖의 포격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이 통신도, 언제 다시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K

<color=#00CCFF>............</color>

<color=#00CCFF>5분 내로, 그쪽으로 수송 차량이 도착할 거다.</color>

지휘관

그렇게 나와야지.

K

<color=#00CCFF>철수 작전은 내가 짤 테니까. 인형과 민간인들에게 철수 준비를 똑바로 시켜.</color>

<color=#00CCFF>그리고 방금 그 건방진 태도, 기억해 두지.</color>

지휘관

흥, 여기서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