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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 편극광

불규칙 편파 I

"당신 휘하의 인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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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흐르는 격렬한 고통이 나를 깨웠다.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얼마 만일까.

지휘관

여긴... 어디지?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초연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피부로는 주위에서 일렁이는 열풍이 느껴졌다.

지휘관

쇼크로 인한 단기 실명인가... 제길, 적어도 귀는 멀쩡해서 다행이군...

???

지휘관님,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 숨을 가다듬으세요.

서둘러야 합니다.

누군가가 축축한 타올로 내 코와 입을 덮었다. 겨우 그뿐이었는데도 숨을 쉬기가 많이 편해졌다.

지휘관

누구지...?

???

당신의 휘하 인형입니다. 체력을 아끼세요.

사라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지휘관

아...!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지휘관

그 굉음... 해안선 포탑인가...

???

고폭탄 포격이었습니다. 이제 움직이실 수 있습니까?

부축해 드릴 테니, 따라와 주세요.

점점 의식이 맑아졌다. 눈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지만, 몸에 큰 부상을 입진 않은 것 같았다.

지휘관

알았어... 다른 인원들은?

???

힘을 주겠습니다. 하나, 둘!

지휘관

으윽...!

그 인형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좁은 어깨는 불에 달궈진 듯, 매우 뜨거웠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

이쪽으로. 네, 이쪽입니다.

죄송합니다. 불길이 너무 거세, 겨우 찾아냈습니다.

자, 여길 잡고 밖으로 뛰어내리세요. 밑에서 받아 줄 겁니다.

지휘관

지금 불이 났다고? 너는?

???

저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안에 다른 생존자는 없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지휘관

넌 누구지? 이름을 말해!

???

보잘것없는 인형일 뿐입니다.

지휘관님 내려간다! 모두 받아!

그 인형은 나를 툭 밀었고, 허공으로 떨어지면서 추락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바로 수많은 팔이 내 몸을 받아내었다.

그들은 나를 어깨 위에 지고서 빠르게 달렸다.

퍼엉!

내가 구출됐던 방향에서, 소름 끼치는 폭발이 연달아 터졌다.

???

비켜 비켜! 카리나 씨 어딨어? 지휘관님 찾았어!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해!

???

지휘관님!

지휘관

이 목소리... 카리나니? 넌 괜찮아?!

카리나

네... 저 괜찮아요. 제가 안 보이세요?

지휘관

미안해, 충격 때문인지 지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카리나

잠시만요, 당장 응급 처치를 할게요.

지휘관

그래... 우리 병력은 어떻게 됐지? 방금 날 구해준 건 누구야?

카리나

......

카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떨리는 손으로 쥔 의료용 솜으로 상처를 소독했다.

하지만 희미하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휘관

카리나? 대답해 줘.

카리나

열차가 철갑고폭탄에 맞아, 완전히 파괴됐어요...

격리벽 안까지 여파가 들어와서, 사방에 불이 났어요... 바로 뛰어 들어온 인형이 저를 업고 나왔고요...

지휘관님은 무너진 잔해 밑에 깔리셔서... 지휘관님을 구하려고 많은 인형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거의 다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지휘관

......

카리나

지휘관님... 저희... 진 건가요...?

지휘관

......

항상 밝고 낙관적이던 카리나의 그런 질문에, 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카리나

...다 됐어요.

지휘관님, 다시 눈을 떠 보세요.

카리나의 말을 듣고, 난 다시 눈을 떠 보았다.

우리는 기지 앞에 앉아 있었고, 주위에는 살아남은 인형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총상과 화상이 아련했다.

다가올 결말을 예감했는지, 다들 슬프고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보니, 카리나도 똑같은 눈빛이었다.

지휘관

카리나, 방금 날 구해낸 건 누구지?

카리나

저도 모르겠어요... 안에 들어간 인형이 하도 많아서...

지휘관

그래... 알았다.

댄들라이는?

카리나

벽이 무너져서 따로 고립됐어요.

다행히 통신은 가능해요.

지휘관

통신기 줘 봐.

댄들라이, 들리나? 현재 상황을 보고해라.

댄들라이

<color=#00CCFF>현재, 잔존 인형은 5%도 남지 않았습니다.</color>

<color=#00CCFF>계속 싸우시겠습니까?</color>

지휘관

계속 싸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사전에 준비했던 작전 방안은 전부 쓸 수 없게 됐어. 다른 수는 없을까?

댄들라이

<color=#00CCFF>그리폰에게 아직 승산이 있긴 합니다. 다만 1%도 채 되지 않습니다.</color>

지휘관

아직 방법이 있다는 말이군.

댄들라이

<color=#00CCFF>방금 해안선 포탑의 공격으로 인해 열차가 파괴되었지만, 지금 AR팀이 그 포탑을 탈환했습니다.</color>

<color=#00CCFF>물론 군이 반격하겠지만, 그 시간 안에 최소한 한 번은 포격이 가능합니다.</color>

<color=#00CCFF>지금 적 열차의 위치를 확인해, 고스란히 갚아주는 거죠.</color>

지휘관

카리나! 리벨리온에게 당장 군의 위치를 확인하라 해!

카리나

아, 알겠습니다!

댄들라이

<color=#00CCFF>이 위치에서는 수비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404소대가 리벨리온을 따라 기지로 진입한 경로를 이용할 것을 추천합니다.</color>

<color=#00CCFF>내부에 진입한 이후, 입구를 폭파해 봉쇄하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겠죠.</color>

지휘관

알았다. 지연 전술이 먹히길 바라야겠군.

댄들라이

<color=#00CCFF>그리고, 이제 몇 남지 않았기에 인형들의 마인드맵을 다시 한번 백업하였습니다.</color>

<color=#00CCFF>더 이상은 제가 이곳에 있어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저는 가서 루니샤를 돕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지휘관님.</color>

지휘관

그래, 가서 AR팀을 도와줘.

적어도, 너희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