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
"404소대가 굳게 닫힌 차단문 앞에서 대책을 생각하던 중 기습이 닥쳤다."
......
연결이... 끊어졌어.
이제 한시름 놨네.
침입자의 마인드맵에서 정보는 제대로 확보했어?
응, 언니 말대로 했어.
그런데...
그런데?
녀석의 마지막 스캔 기록을 보니까, 녀석의 현재 위치에 패러데우스로 의심되는 신호가 최소 10기는 있어.
정확히는... 니토로 의심되는 신호야.
적이 있으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뜻이네. 안젤리아가 못 움직이는 이유도 녀석들 때문이겠지.
니토만 최소 10명이라고...?
그럼 놈들이 지휘하는 패러데우스 유닛이 적어도 100기는 넘을 텐데? 정말 그것들 말고 다른 신호는 없었어?
뽑아낸 정보에서 다른 유닛은 탐지되지 않았어. 낙관적으로 본다면, 패러데우스는 니토 빼고 전멸했을 수도 있지.
정말 그렇더라도, 하나 상대하기도 벅찬 놈을 어떻게 10명씩이나 상대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안젤리아를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야.
정말 괜찮을까?
패러데우스의 병력이 인근에서 잠복 중일 가능성도 매우 높아. 정면돌파에 능한 녀석을 불러와야 해.
적어도... AR팀 정도는 돼야 할걸.
지금 통신이 먹통이니까, 네가 뛰어가서 데려올래?
너무 오래 마인드맵이 들쑤셔져서 로직 연산 모듈이 망가지기라도 했어?
난 아주 멀쩡하니까, 어서 명령이나 수행해.
HK416은 UMP9을 바라봤지만, 그녀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라저.
몇 분 후.
사방을 정찰했음에도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404 소대는, 굳게 닫힌 차단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위의 모든 통로가 차단문으로 막혔어.
댄들라이의 지도에 표기된 이 구역의 도면상으로도, 방해 신호원의 위치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
미안해, 언니... 리벨리온은 커녕 다른 신호도 도저히 탐지할 수가 없어.
아무래도, 리벨리온이 있는 구역 전체가 신호 차폐 처리된 것 같아.
반격했더니 겁이라도 먹었나? 유일한 단서가 끊기다니, 골치 아프게 됐네...
네 마인드맵 코어를 교체하는 걸 감수하고 침입을 차단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걸. 뭐, 교체할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언니, 이제 어떡하지?
지금 스캔도, 통신도 불가능한 걸 보면 시설 내부에 전용 신호 방해 장치가 있는 것 같아.
예상한 바야. 여기가 정말 안젤리아가 말한 놈들의 실험실이라면, 우릴 순순히 들여보내 줄 리가 없어.
방해 장치를 찾아낸다면 상황이 호전되겠지만...
지향성 차단이라... 리벨리온 녀석들, 번지수를 제대로 잘못 짚어서 꼼짝없이 갇힌 모양이네.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지향성 차단이라면, 방해 장치는 분명 차단 범위 밖에 있을 거야. 범위 안에 있다면 안젤리아가 진작에 박살 냈겠지.
그럼 그 장치는 정확히 어디 있을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제야.
흐음... 두 조로 나뉘어서, 한 조는 실험 구역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다른 한 조는 방해 장치를 찾는 게 어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방해 장치를 수색하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셈인데?
유체이탈해서 차단문을 통과하기라도 하려고?
지금 가진 폭탄을 전부 쓰면, 이 문을 부술 수 있을까?
평범한 벽이라면야 하고도 남지. 하지만 이건...
HK416이 차단문을 두드리자, 묵직한 쇳소리가 울렸다.
소리로 봐선 두께가 족히 500mm는 넘어. 이걸 뚫으려면 지금 가진 폭탄의 4배는 필요해.
......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별로 넓지도 않은 구역이잖아. 이곳 외의 통로는 벌써 다 정찰했다고.
그럼... 아예 손 쓸 방도가 없는 거야?
정 안 되면, 그냥 돌아가서 지휘관을 돕는 게 어때? 아까 그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으니, 분명 그쪽도 심각한 상황일 거야.
우리는 우리의 임무가 있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돼.
지도상에 표기된 구역이니, 분명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갈라져서 움직이자. 나랑 9이 통로를 찾아볼 테니까, 너랑 G11은 방해 장치를 찾아내서 파괴해.
흥...
HK416은 무기를 발밑에 내려놓더니, 꿈쩍도 하지 않는 차단문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서 UMP45를 노려보았다.
명령 안 따르고 뭐 해?
그런 무모한 계획을 말하는 거라면, 못 들었어.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책인데?
최선책이라고?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위험한 임무라도 참았어. 항상 네가 어둠 속에 숨어서 적을 해치울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재수 없고 밥맛이지만, 그래도 너의 그 임기응변 능력만큼은 인정했다고.
그런데, 방금 그건 뭐야? 무슨 생각으로 그딴 걸 명령이랍시고 따르라 해?
평소처럼, 임무를 완수하려는 생각이지.
아니, 넌 지금 우리더러 상대할 수 없는 적과 싸우라고 시켰어. 우리를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게 하려는 거야.
우린 AR팀처럼 대놓고 싸우기엔 부적합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적을 해치우는 게 우리의 스타일이지.
그런데 당장 저 앞의 아주 좁은 공간에 니토가 10명 넘게 있는데, 여기서 둘로 나뉘자고?
정말 예전이랑 같은 상황이라 생각해? 그게 여태까지의 네가 내릴 만한 판단이야?
뭐야, 우리 잘난 엘리트 전술인형 아가씨께서 겁이라도 먹으셨나 봐?
엘리트니까 상황 파악을 하는 거지!
나야 아무리 치열한 전투라도 내 성능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넌 나와 달라. 9도, G11도 나와 달라.
너희는 누가 뭐래도 민수용 인형이라고. AR팀이랑 어깨 좀 맞댔더니 천하무적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
......
이제야 좀 너네와 함께할 마음이 생겼는데, 이대로 모두가 고철덩이가 되는 꼴은 보기 싫어.
416...
뭐... 뭐야? 왜 갑자기 말싸움해?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니야.
흥... 겁먹은 거 맞네 뭘.
그렇게 무서우면 지금 떠나도 안 말릴게. AR팀에 들어가든 지휘관을 도우러 가든,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우리 사이의 빚은 다 청산했잖아? 억지로 내 장단 맞춰 줄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넌 억지로라도 저 안에 들어가겠다는 거지?
안젤리아가 안에 있어. 반드시 구출해야 해.
그게 우리의 임무니까.
아니야... 넌 안젤리아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때 너와 함께였던 인형을 위해서겠지.
전에 네 마인드맵 파편을 통해서 봤어. 네가 그리폰과 안젤리아에게 협력하는 이유는 그 작전에 참가했던...
9 같은 의동생이 아니라, 너와 동형 모델인 자매 인형 때문이지?
우리 지금 옛날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말 돌리지 마.
너야말로 뜬금없는 소리 하지 마.
됐으니까 듣기나 해.
난, 그때의 일은 떠올리기도 싫었어. 그때의 기억은 내게 있어 치욕일 뿐이니까.
너 때문에 부대에서 쫓겨나고, 이딴 엉터리 소대에 들어오게 된 치욕뿐이었어.
그저, 날 이 꼴로 만든 녀석에게 이유를 캐묻고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지.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우리 엘리트 전술인형 씨?
하지만... 많은 일을 겪고 나서 깨닫게 됐어.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했어. 이제 와서 녀석이 그때 왜 그랬는지 알아내는 게 무슨 소용이야?
과거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야.
네가 과거의 진상을 밝혀내봤자, 잃은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네가 정말 404 소대를 아낀다면, "평소"처럼 잘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너는 너고, 나는 나야.
그게 뭐가 다른데!
우린 모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라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404 소대"라 이름 지은 거 아니었어!?
아니... 우린 존재하지 않게 된 게 아니야. 존재가 지워진 거지.
넌 운이 좋아서 빠져나갔어... 운이 좋아서 그때의 일을 겪지 않았어...
하지만... 다른 인형들은 모두 죽었어. 그때의 인간들도, 전부, 전부 다 죽었어!
살아남은 건 나뿐이야...
그런데, 그 일이 전부 아예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렸다고... 그들이, 애초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뭐?! 인간이든 인형이든, 죽어버리면 다신 돌아올 수 없어!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
겨우 건진 그 목숨을 죽은 자들을 위해서 내다 버리겠단 거야?!
닥쳐! 네가 뭘 알아!
그날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주제에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지 마!
동료들, 친구, 내 곁의 모든 것들이 전부 죽어 사라졌어!
그래, 네 말대로 난 엘리트도 아니고, 제대로 된 전술인형도 아니야. 그저 성능이 쓰레기 같은 소모품이지!
하지만 그때, 그 애가 내게 말해 줬어! 인형에게도 스스로를 위해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그러니까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
그때의 진상? 그딴 거 아무래도 상관없어!
진실이고 나발이고, 왜 다 죽어야 했냐고!
난 단지 ,그 모든 것을 일으킨 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을 뿐이야!
그때 겨우 목숨을 건졌을 때도, 너희와 소대를 짰을 때도, 그러다 안젤리아와 그리폰과 협력하게 됐을 때에도, 내 목적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단 한 순간도 변한 적 없다고!
UMP45가 차단문을 주먹으로 힘껏 쳤고, 정적이 감돌던 통로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HK416은 그런 격한 감정 표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UMP45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저 안에 니토가 열 명이 있든 천 명이 있든, 다른 모든 걸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들어가겠어.
저 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예전처럼 완벽하게 계획하고 움직일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내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건, 여기서 계속 꾸물거리다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거야.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놈이 웃는 꼴을 상상하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
네가 제 발로 불구덩이로 걸어 들어가려는 이유, 잘 들었어.
그럼 대답은?
그렇게 죽으러 가고 싶다면야 나도 막을 이유가 없지.
알면 됐어.
하지만 저 안은 바깥보다 훨씬 위험할 게 뻔하니까, 방해 장치를 찾는 건 9이랑 G11에게 맡기고 내가 너와 함께 들어갈 길을 찾겠어.
어? 하지만...
넌 전자전 특화 인형이잖아. 니토 상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어. 차라리 밖에서 네 특기를 발휘하는 게 낫지.
하지만 언니가 또 강제 침입당하면...
괜찮아 9, 녀석이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어.
우리 엘리트 전술인형 씨는 아무래도 나처럼 단단히 미친 모양이야. 그럼 차라리 미치광이끼리 같이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정해졌으면 빨리 움직이자.
어... 저기, 이야기 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조용해진 통로에서는 인형들의 옷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발전기의 소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무슨 소리? 뭐야, 아까는 좀비더니 이번엔 폴터가이스트야?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 줘...
그때, 천장에서 나던 쿵쿵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조명이 꺼졌다.
적이다. 야간 시야로 전환하고 주위 경계.
404는 총을 들고 사주경계를 했다. 쿵쿵대는 소리가 사라지나 싶더니, 머리 위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엎드려!
낮은 천장에 구멍이 뚫렸고, G11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려던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녀를 낚아채 구멍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아악!!! 누가 날 붙잡았어! 도와줘 416!!!
큰일이야, G11이 잡혀갔어!
젠장, 방아쇠는 또 왜 안 당겨져?!
모두 다급히 G11을 구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이 또...!
이성질체인가? 아니면 또 M16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초가 지나자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이제 움직여져...
9! 나 좀 받쳐 줘!
아, 알았어! 영차!
위에 환풍 통로가 있었다니... 젠장, 구멍이 너무 작아서 몸이 안 들어가.
그럼 내가... 끄으으으응... 안 돼, 나도 못 들어가겠어.
어디보자... 나라면 들어가지겠네.
왜 G11을 잡아갔는지 알겠어. 하지만 이러면 상대의 체격도 꽤 작다는 소린데...
UMP45는 플래시를 켜고 전선으로 가득한 파이프 속을 살펴보자, 저 멀리서 G11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G11의 신호가 잡혀. 멀리 가진 않았나 봐.
그리고... 끌려간 방향으로 보건대, 이 파이프를 통하면 신호 차폐 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네가 쫓아갈 테니, 너희는 다른 입구랑 방해 장치를 찾아.
어? 언니 혼자서 G11을 찾으러 가려고?!
안에 매복이 있으면 어떡해!
구멍 더 크게 뚫게 잠깐 내려와.
아니, 폭탄은 되도록 아끼도록 해. 정말 매복이 있다면, 이렇게 좁은 통로로 잔뜩 들어갔다간 그대로 전멸이야.
나 혼자서라면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어.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발 받쳐 줄게.
그 바보 녀석 데리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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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이... 끊어졌어.
이제 한시름 놨네.
침입자의 마인드맵에서 정보는 제대로 확보했어?
응, 언니 말대로 했어.
그런데...
그런데?
녀석의 마지막 스캔 기록을 보니까, 녀석의 현재 위치에 패러데우스로 의심되는 신호가 최소 10기는 있어.
정확히는... 니토로 의심되는 신호야.
적이 있으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뜻이네. 안젤리아가 못 움직이는 이유도 녀석들 때문이겠지.
니토만 최소 10명이라고...?
그럼 놈들이 지휘하는 패러데우스 유닛이 적어도 100기는 넘을 텐데? 정말 그것들 말고 다른 신호는 없었어?
뽑아낸 정보에서 다른 유닛은 탐지되지 않았어. 낙관적으로 본다면, 패러데우스는 니토 빼고 전멸했을 수도 있지.
정말 그렇더라도, 하나 상대하기도 벅찬 놈을 어떻게 10명씩이나 상대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안젤리아를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야.
정말 괜찮을까?
패러데우스의 병력이 인근에서 잠복 중일 가능성도 매우 높아. 정면돌파에 능한 녀석을 불러와야 해.
적어도... AR팀 정도는 돼야 할걸.
지금 통신이 먹통이니까, 네가 뛰어가서 데려올래?
너무 오래 마인드맵이 들쑤셔져서 로직 연산 모듈이 망가지기라도 했어?
난 아주 멀쩡하니까, 어서 명령이나 수행해.
HK416은 UMP9을 바라봤지만, 그녀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라저.
몇 분 후.
사방을 정찰했음에도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404 소대는, 굳게 닫힌 차단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위의 모든 통로가 차단문으로 막혔어.
댄들라이의 지도에 표기된 이 구역의 도면상으로도, 방해 신호원의 위치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
미안해, 언니... 리벨리온은 커녕 다른 신호도 도저히 탐지할 수가 없어.
아무래도, 리벨리온이 있는 구역 전체가 신호 차폐 처리된 것 같아.
반격했더니 겁이라도 먹었나? 유일한 단서가 끊기다니, 골치 아프게 됐네...
네 마인드맵 코어를 교체하는 걸 감수하고 침입을 차단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걸. 뭐, 교체할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언니, 이제 어떡하지?
지금 스캔도, 통신도 불가능한 걸 보면 시설 내부에 전용 신호 방해 장치가 있는 것 같아.
예상한 바야. 여기가 정말 안젤리아가 말한 놈들의 실험실이라면, 우릴 순순히 들여보내 줄 리가 없어.
방해 장치를 찾아낸다면 상황이 호전되겠지만...
지향성 차단이라... 리벨리온 녀석들, 번지수를 제대로 잘못 짚어서 꼼짝없이 갇힌 모양이네.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지향성 차단이라면, 방해 장치는 분명 차단 범위 밖에 있을 거야. 범위 안에 있다면 안젤리아가 진작에 박살 냈겠지.
그럼 그 장치는 정확히 어디 있을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제야.
흐음... 두 조로 나뉘어서, 한 조는 실험 구역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다른 한 조는 방해 장치를 찾는 게 어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방해 장치를 수색하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셈인데?
유체이탈해서 차단문을 통과하기라도 하려고?
지금 가진 폭탄을 전부 쓰면, 이 문을 부술 수 있을까?
평범한 벽이라면야 하고도 남지. 하지만 이건...
HK416이 차단문을 두드리자, 묵직한 쇳소리가 울렸다.
소리로 봐선 두께가 족히 500mm는 넘어. 이걸 뚫으려면 지금 가진 폭탄의 4배는 필요해.
......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별로 넓지도 않은 구역이잖아. 이곳 외의 통로는 벌써 다 정찰했다고.
그럼... 아예 손 쓸 방도가 없는 거야?
정 안 되면, 그냥 돌아가서 지휘관을 돕는 게 어때? 아까 그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으니, 분명 그쪽도 심각한 상황일 거야.
우리는 우리의 임무가 있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돼.
지도상에 표기된 구역이니, 분명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갈라져서 움직이자. 나랑 9이 통로를 찾아볼 테니까, 너랑 G11은 방해 장치를 찾아내서 파괴해.
흥...
HK416은 무기를 발밑에 내려놓더니, 꿈쩍도 하지 않는 차단문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서 UMP45를 노려보았다.
명령 안 따르고 뭐 해?
그런 무모한 계획을 말하는 거라면, 못 들었어.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책인데?
최선책이라고?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위험한 임무라도 참았어. 항상 네가 어둠 속에 숨어서 적을 해치울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재수 없고 밥맛이지만, 그래도 너의 그 임기응변 능력만큼은 인정했다고.
그런데, 방금 그건 뭐야? 무슨 생각으로 그딴 걸 명령이랍시고 따르라 해?
평소처럼, 임무를 완수하려는 생각이지.
아니, 넌 지금 우리더러 상대할 수 없는 적과 싸우라고 시켰어. 우리를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게 하려는 거야.
우린 AR팀처럼 대놓고 싸우기엔 부적합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적을 해치우는 게 우리의 스타일이지.
그런데 당장 저 앞의 아주 좁은 공간에 니토가 10명 넘게 있는데, 여기서 둘로 나뉘자고?
정말 예전이랑 같은 상황이라 생각해? 그게 여태까지의 네가 내릴 만한 판단이야?
뭐야, 우리 잘난 엘리트 전술인형 아가씨께서 겁이라도 먹으셨나 봐?
엘리트니까 상황 파악을 하는 거지!
나야 아무리 치열한 전투라도 내 성능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넌 나와 달라. 9도, G11도 나와 달라.
너희는 누가 뭐래도 민수용 인형이라고. AR팀이랑 어깨 좀 맞댔더니 천하무적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
......
이제야 좀 너네와 함께할 마음이 생겼는데, 이대로 모두가 고철덩이가 되는 꼴은 보기 싫어.
416...
뭐... 뭐야? 왜 갑자기 말싸움해?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니야.
흥... 겁먹은 거 맞네 뭘.
그렇게 무서우면 지금 떠나도 안 말릴게. AR팀에 들어가든 지휘관을 도우러 가든,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우리 사이의 빚은 다 청산했잖아? 억지로 내 장단 맞춰 줄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넌 억지로라도 저 안에 들어가겠다는 거지?
안젤리아가 안에 있어. 반드시 구출해야 해.
그게 우리의 임무니까.
아니야... 넌 안젤리아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때 너와 함께였던 인형을 위해서겠지.
전에 네 마인드맵 파편을 통해서 봤어. 네가 그리폰과 안젤리아에게 협력하는 이유는 그 작전에 참가했던...
9 같은 의동생이 아니라, 너와 동형 모델인 자매 인형 때문이지?
우리 지금 옛날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말 돌리지 마.
너야말로 뜬금없는 소리 하지 마.
됐으니까 듣기나 해.
난, 그때의 일은 떠올리기도 싫었어. 그때의 기억은 내게 있어 치욕일 뿐이니까.
너 때문에 부대에서 쫓겨나고, 이딴 엉터리 소대에 들어오게 된 치욕뿐이었어.
그저, 날 이 꼴로 만든 녀석에게 이유를 캐묻고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지.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우리 엘리트 전술인형 씨?
하지만... 많은 일을 겪고 나서 깨닫게 됐어.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했어. 이제 와서 녀석이 그때 왜 그랬는지 알아내는 게 무슨 소용이야?
과거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야.
네가 과거의 진상을 밝혀내봤자, 잃은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네가 정말 404 소대를 아낀다면, "평소"처럼 잘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너는 너고, 나는 나야.
그게 뭐가 다른데!
우린 모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라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404 소대"라 이름 지은 거 아니었어!?
아니... 우린 존재하지 않게 된 게 아니야. 존재가 지워진 거지.
넌 운이 좋아서 빠져나갔어... 운이 좋아서 그때의 일을 겪지 않았어...
하지만... 다른 인형들은 모두 죽었어. 그때의 인간들도, 전부, 전부 다 죽었어!
살아남은 건 나뿐이야...
그런데, 그 일이 전부 아예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렸다고... 그들이, 애초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뭐?! 인간이든 인형이든, 죽어버리면 다신 돌아올 수 없어!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
겨우 건진 그 목숨을 죽은 자들을 위해서 내다 버리겠단 거야?!
닥쳐! 네가 뭘 알아!
그날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주제에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지 마!
동료들, 친구, 내 곁의 모든 것들이 전부 죽어 사라졌어!
그래, 네 말대로 난 엘리트도 아니고, 제대로 된 전술인형도 아니야. 그저 성능이 쓰레기 같은 소모품이지!
하지만 그때, 그 애가 내게 말해 줬어! 인형에게도 스스로를 위해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그러니까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
그때의 진상? 그딴 거 아무래도 상관없어!
진실이고 나발이고, 왜 다 죽어야 했냐고!
난 단지 ,그 모든 것을 일으킨 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을 뿐이야!
그때 겨우 목숨을 건졌을 때도, 너희와 소대를 짰을 때도, 그러다 안젤리아와 그리폰과 협력하게 됐을 때에도, 내 목적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단 한 순간도 변한 적 없다고!
UMP45가 차단문을 주먹으로 힘껏 쳤고, 정적이 감돌던 통로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HK416은 그런 격한 감정 표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UMP45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저 안에 니토가 열 명이 있든 천 명이 있든, 다른 모든 걸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들어가겠어.
저 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예전처럼 완벽하게 계획하고 움직일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내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건, 여기서 계속 꾸물거리다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거야.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놈이 웃는 꼴을 상상하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
네가 제 발로 불구덩이로 걸어 들어가려는 이유, 잘 들었어.
그럼 대답은?
그렇게 죽으러 가고 싶다면야 나도 막을 이유가 없지.
알면 됐어.
하지만 저 안은 바깥보다 훨씬 위험할 게 뻔하니까, 방해 장치를 찾는 건 9이랑 G11에게 맡기고 내가 너와 함께 들어갈 길을 찾겠어.
어? 하지만...
넌 전자전 특화 인형이잖아. 니토 상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어. 차라리 밖에서 네 특기를 발휘하는 게 낫지.
하지만 언니가 또 강제 침입당하면...
괜찮아 9, 녀석이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어.
우리 엘리트 전술인형 씨는 아무래도 나처럼 단단히 미친 모양이야. 그럼 차라리 미치광이끼리 같이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정해졌으면 빨리 움직이자.
어... 저기, 이야기 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조용해진 통로에서는 인형들의 옷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발전기의 소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무슨 소리? 뭐야, 아까는 좀비더니 이번엔 폴터가이스트야?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 줘...
그때, 천장에서 나던 쿵쿵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조명이 꺼졌다.
적이다. 야간 시야로 전환하고 주위 경계.
404는 총을 들고 사주경계를 했다. 쿵쿵대는 소리가 사라지나 싶더니, 머리 위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엎드려!
낮은 천장에 구멍이 뚫렸고, G11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려던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녀를 낚아채 구멍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아악!!! 누가 날 붙잡았어! 도와줘 416!!!
큰일이야, G11이 잡혀갔어!
젠장, 방아쇠는 또 왜 안 당겨져?!
모두 다급히 G11을 구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이 또...!
이성질체인가? 아니면 또 M16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초가 지나자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이제 움직여져...
9! 나 좀 받쳐 줘!
아, 알았어! 영차!
위에 환풍 통로가 있었다니... 젠장, 구멍이 너무 작아서 몸이 안 들어가.
그럼 내가... 끄으으으응... 안 돼, 나도 못 들어가겠어.
어디보자... 나라면 들어가지겠네.
왜 G11을 잡아갔는지 알겠어. 하지만 이러면 상대의 체격도 꽤 작다는 소린데...
UMP45는 플래시를 켜고 전선으로 가득한 파이프 속을 살펴보자, 저 멀리서 G11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G11의 신호가 잡혀. 멀리 가진 않았나 봐.
그리고... 끌려간 방향으로 보건대, 이 파이프를 통하면 신호 차폐 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네가 쫓아갈 테니, 너희는 다른 입구랑 방해 장치를 찾아.
어? 언니 혼자서 G11을 찾으러 가려고?!
안에 매복이 있으면 어떡해!
구멍 더 크게 뚫게 잠깐 내려와.
아니, 폭탄은 되도록 아끼도록 해. 정말 매복이 있다면, 이렇게 좁은 통로로 잔뜩 들어갔다간 그대로 전멸이야.
나 혼자서라면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어.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발 받쳐 줄게.
그 바보 녀석 데리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