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내기
"기지 입구에서 그리폰 소대는 군의 후속 부대 상대로 분투한다."
잠수함 기지의 지상.
입구의 시가지에서는 전투가 15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폰의 전술인형들은 적당한 건물이라면 전부 엄폐물로 삼고, 하나둘씩 폭파해 가면서 적의 길을 막았다.
그리폰은 군이 진격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군은 돌파하기 위해 전념했다.
이 싸움의 관건은 입구 쪽의 궤도 통로였지만, 군의 두 차례나 되는 공세 모두 시원찮게 저지당했다. 그리폰은 여태까지의 전투로 군과의 교전 요령을 금세 익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인형의 장점이 빛을 발했다.
반면 인간 병사들은 사기가 크게 꺾였다. 그 누가 일개 PMC의 민수용 인형들을 상대로 이토록 큰 희생을 치르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입구 통로는 아직도 확보하지 못했습니까?
자율 모드인 인형들만으론 놈들을 밀어붙일 수 없는데, 보병 사상자가 너무 많아.
게다가 건물의 밀집도가 높아서 화력도 제대로 전개할 수가 없고, 차량도 전진이 어렵다.
제기랄... 아예 포격으로 다시 쓸어버릴 순 없습니까?
통로와 너무 가까워. 실수로라도 입구를 파괴했다간 그리폰에게 놀아나는 꼴이다.
한시라도 빨리 대위님과 합류해야 하는데...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다시 한번 총공세를 실시해 보자고.
헤마타이트, 여기는 지르콘. 우측의 진격을 중단하고 정면의 제압 사격에 집중하라, 이상.
헤마타이트, 수신 완료.
하지만 좌측 도로도 막혔습니다. 강행돌파합니까?
장교는 대답 없이 조종석에 앉았다.
2소대, 본 차량을 따라오도록. 2소대 이외 전원 좌측 돌파 준비.
예!
한편, 그리폰 쪽 전선.
M1 개런드의 소대가 반파된 건물에 의탁해 정면의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잔존 화력소대는 그들과 함께 이 최후의 방어선을 사수했다.
운용하던 중장비가 파괴된 화력소대의 인형들은 전장에서 주인을 잃은 총을 들고, 동료 전술인형들과 함께 군에 맞서 싸웠다.
보명 6명이 엄폐하며 접근 중! 그쪽에서 사격 가능하니 부탁합니다!
이미 사격 중이야!
개런드! 적 티폰은 아직 반응이 없어! 다시 한번 내려가서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멀리서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를 시작으로 난전이 벌어졌다. 개런드의 소대는 엄폐물 사이를 날렵하게 넘나들며, 도로에 IED를 설치하려 했다.
정말 겁쟁이들뿐이군요! 헤이! 댁들은 정면으로 돌격할 배짱도 없어요?!
M1 개런드는 밖을 향해 손가락을 세워 적을 도발했다.
물론, 그 즉시 총탄이 폭우처럼 쏟아져, 황급히 머리를 숙여야 했다.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되게 화내네!
한양조 씨! 폭탄 설치 다 됐어요?
네 네, 거의 다 됐어요!
여기서 자폭하게 되기 전에 빨리 끝내요!
재촉한다고 더 빨리 안 되거든요?!
제 본업은 가게 청소지, 폭탄 설치가 아니라고요!
저도 본업이 부지깽이 들고 군용 탱크 상대하는 거 아니거든요!?
불평 그만하고, 지연 신관 2배로 감는 거 잊지 마세요! 놈들의 차량이 지나가는 도중에 터져야 해요!
그 말 벌써 3번째예요!
개런드! 적이 그쪽으로 접근하고 있으니까 서둘러!
네, 금방 가요!
콰아앙!
바로 그때, 광장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자욱한 연기가, 멀리 있는 창고의 입구를 집어삼켰다.
또 우측이야!? 스프링필드, 괜찮아?! 무슨 일이야?
적 기갑 병력이 잔해를 우회해 들어왔어요! 이대로 강행돌파할 셈인가 봐요!
버틸 수 있겠어?
적이 좀 더 접근하면 대전차포로 반격하겠어요!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이쪽의 화망을 돌파할지도 몰라요!
알았어, 개런드한테 지원 가라고 할게!
개런드, 들었지?
폭탄 설치 끝나는 대로 스프링필드한테 가! 그쪽이 위험해!
네에 네에 갑니다 가요!
같은 시각.
그리폰 임시 지휘부.
지휘관님, 군의 4번째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스프링필드 쪽이 위급 상황이에요.
다른 제대가 지원하러 이동 중이고, 각 소대들도 아직 버틸 만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지시 있으신가요?
음...
지휘관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교착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후방 지시는 이미 무용지물이다.
인형들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해도, 군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력 지원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지휘관은 K를 바라봤지만, K도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지휘관도 알고 있었다. 지금 K가 할 수 있는 일은, 빔펠의 코발트-13에게서 통신이 오는 즉시 수화기를 받는 것뿐이란 것을.
...각 제대에게 5분만 더 버티라고 전달해.
네!
전장으로 변한 시가지.
엄호할 테니 빨리 이쪽으로!
전술인형들이 엄폐물로 달려드는 군용 인형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이걸로 마지막이에요!
스프링필드는 부상당한 인형을 등에 업고서 전력으로 개활지 위를 왕복했다.
부상자 엄호! 제압 사격 계속해요!
박격포탄도 남은 거 다 던져요!
전투 중 박격포를 잃은 화력소대의 인형들은 포탄을 수류탄 삼아 엄폐물 밖으로 던졌다. 비록 군용 인형을 파괴하기엔 폭발력이 모자랐지만, 진형을 망가뜨리기엔 충분했고, 뒤이은 제압 사격으로 공세가 정체시켰다.
이런, 총알이 바닥났어요! 탄창 남는 사람 없어요?
없어요! 저도 이게 끝이에요!
으아아, 포격 회피!
콰앙!
개런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날아든 포탄이 건물에 직격해 벽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적의 총탄이 쏟아졌다.
스프링필드 씨!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부상병 데리고 먼저 후퇴하세요!
하지만 여러분은 탄약이...!
돌아가서 스프링필드 씨의 특제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그리고, 총알이 없으면 총검을 쓰면 되죠!
전원 착검!
어... 대도도 되나요?
놈들을 썰어버릴 수 있으면 뭐든 되니까 준비나 해요!
한양조 88식은 대도를 꺼내 들고, 등의 추진기에 시동을 걸었다.
...어째 당신은 1개 사단이 몰려와도 가뿐할 거 같네요?
그야 물론이죠!
자, 스프링필드 씨는 빨리 후퇴하세요!
여기 있어봤자 방해만 된단――?
엥, 긴급 통신?
주인님의 지시인가요?
방어 임무 완료! 전원, 기지 내부로 후퇴!
오오! 드디어 지원이 도착했군요!
얼른 놈들이 펑펑 터져나가는 광경을 보고 싶어요!
됐으니까 죽기 싫으면 잔말 말고 달려요!
조금 전, 그리폰 임시 지휘부.
지휘관은 각 인형의 위치와 전장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그리고 카리나는 인형들의 자원 분배와 통신망 조정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K 앞의 통신기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숨을 죽였고, K의 손에 들린 수화기에 시선이 집중됐다.
K도 역시 긴장한 기색으로 말없이 수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는 코발트-13. 폭포, 응답하라.
여기는 폭포.
중앙이 공습 지원을 허가했다. 5분 내로 공습 가능하니 즉시 좌표를 제시하라, 이상.
수신 완료. 잠시 대기하라, 이상.
K는 홀가분해진 듯, 한숨을 내쉬고 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습 좌표가 필요해.
183번 도로와 열차 정거장의 교차점부터 기지 입구까지 총 200m 구간 전부.
지휘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무 가까운데... 진심인가?
달리 선택지가 없어.
K는 그 결단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인형들을 철수시켜. 철수에 필요한 시간은 내가 최대한 마련해 보지.
지휘관도 고개를 끄덕이고, 카리나와 함께 제대에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폭포. 공습 좌표, 8472-6543. 목표는 지상의 모든 표적이다, 이상.
좌표 8472-6543, 확인 중이니 대기하라. ...공격 범위 내에 그리폰 부대가 관측된다. 위험 사격 확인 바란다, 이상.
인형들에게 지시 전달을 마친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지휘관은 잠깐 생각한 뒤 K에게 손가락 2개를 펴 보였다.
여기는 폭포. 위험 사격 확인했다. 해당 좌표 내 그리폰 부대는 2분 내로 철수할 것이니 그대로 공습 요청한다, 이상.
코발트-13, 수신 완료. 120초 후 폭격하겠다. 건투를 빈다. 이상, 통신 종료.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
민수용 인형들을 가지고 아직까지 버티다니,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인형이 튼튼한 것에 감탄해야 할지, 우리나라 군대가 이렇게까지 한심해진 것에 한탄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런 장난감조차 압도하지 못하면서 허구한 날 서방과 싸울 생각만 하니, 상층부가 저버릴 만도 해.
그리폰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고? 잠깐 봐도 되겠나, 소령 동지?
빔펠의 지휘관은 정치장교에게 망원경을 건네줬다.
망원경에는 불바다가 되고 건물들이 무너져 가는 기지가 비쳤다.
그리폰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전술인형들이 연막탄을 잔뜩 던져 시야를 가리고 입구 안으로 부리나케 철수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당원 동지?
존경심마저 들 정도로 강인하군. 세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우리의 임무에도 지장이 생겼겠지.
하지만 그래봤자 일개 PMC니, 전멸하는 것도 시간문제라 보네.
그렇군. 전원, 모든 카메라를 꺼라.
음? 저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단 방침 아니었나?
국장 동지께서 생각을 바꾸었나 보군?
모스크바에서 공습 허가가 떨어졌네. 지상의 모든 반란군을 섬멸하란 명령이야.
고작 저 PMC 하나 구하자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아무래도, 우리 안전국이 독일과 무슨 거래라도 한 모양일세.
그리고 내부로 파견한 요원이 상층부가 원하던 것을 찾았다 하는군.
정치적 명분이 충분하군.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촬영한 증거 영상에 허점이 생기지 않나?
저 인형들이 잘 싸워 준 덕분에, 자극적인 장면은 충분히 찍었네. 나머지는 중앙의 높으신 분들이 고민할 일이지.
알았네. 각 소대, 드론을 포함한 모든 카메라를 꺼라.
2분 후, 하늘에서 첫 번째 불똥이 떨어졌다. 유사시 저 기지의 지하 구조물을 뿌리째 들어내기 위해 준비한 1.5톤 항공 폭탄이었다.
불똥은 그대로 군의 마지막 남은 장갑 열차에 명중했고, 열차는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으며 장난감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뒤이어 더 많은 불똥들이 공중에서 분열해, 지면을 불꽃으로 수놓았다.
쉴 새 없는 폭발이 기지 내부까지 뒤흔들었고, 자욱한 연기가 주위를 모조리 뒤덮었다.
더 이상 직접 확인할 것이 없다 판단한 빔펠의 지휘관은 망원경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전원 준비시키게. 슬슬 마무리하고 퇴근할 시간일세.
알았네, 소령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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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기지의 지상.
입구의 시가지에서는 전투가 15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폰의 전술인형들은 적당한 건물이라면 전부 엄폐물로 삼고, 하나둘씩 폭파해 가면서 적의 길을 막았다.
그리폰은 군이 진격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군은 돌파하기 위해 전념했다.
이 싸움의 관건은 입구 쪽의 궤도 통로였지만, 군의 두 차례나 되는 공세 모두 시원찮게 저지당했다. 그리폰은 여태까지의 전투로 군과의 교전 요령을 금세 익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인형의 장점이 빛을 발했다.
반면 인간 병사들은 사기가 크게 꺾였다. 그 누가 일개 PMC의 민수용 인형들을 상대로 이토록 큰 희생을 치르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입구 통로는 아직도 확보하지 못했습니까?
자율 모드인 인형들만으론 놈들을 밀어붙일 수 없는데, 보병 사상자가 너무 많아.
게다가 건물의 밀집도가 높아서 화력도 제대로 전개할 수가 없고, 차량도 전진이 어렵다.
제기랄... 아예 포격으로 다시 쓸어버릴 순 없습니까?
통로와 너무 가까워. 실수로라도 입구를 파괴했다간 그리폰에게 놀아나는 꼴이다.
한시라도 빨리 대위님과 합류해야 하는데...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다시 한번 총공세를 실시해 보자고.
헤마타이트, 여기는 지르콘. 우측의 진격을 중단하고 정면의 제압 사격에 집중하라, 이상.
<color=#00CCFF>헤마타이트, 수신 완료.</color>
하지만 좌측 도로도 막혔습니다. 강행돌파합니까?
장교는 대답 없이 조종석에 앉았다.
2소대, 본 차량을 따라오도록. 2소대 이외 전원 좌측 돌파 준비.
예!
한편, 그리폰 쪽 전선.
M1 개런드의 소대가 반파된 건물에 의탁해 정면의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잔존 화력소대는 그들과 함께 이 최후의 방어선을 사수했다.
운용하던 중장비가 파괴된 화력소대의 인형들은 전장에서 주인을 잃은 총을 들고, 동료 전술인형들과 함께 군에 맞서 싸웠다.
<color=#00CCFF>보명 6명이 엄폐하며 접근 중! 그쪽에서 사격 가능하니 부탁합니다!</color>
이미 사격 중이야!
개런드! 적 티폰은 아직 반응이 없어! 다시 한번 내려가서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 거야!
<color=#00CCFF>알겠어요!</color>
멀리서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를 시작으로 난전이 벌어졌다. 개런드의 소대는 엄폐물 사이를 날렵하게 넘나들며, 도로에 IED를 설치하려 했다.
정말 겁쟁이들뿐이군요! 헤이! 댁들은 정면으로 돌격할 배짱도 없어요?!
M1 개런드는 밖을 향해 손가락을 세워 적을 도발했다.
물론, 그 즉시 총탄이 폭우처럼 쏟아져, 황급히 머리를 숙여야 했다.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되게 화내네!
한양조 씨! 폭탄 설치 다 됐어요?
네 네, 거의 다 됐어요!
여기서 자폭하게 되기 전에 빨리 끝내요!
재촉한다고 더 빨리 안 되거든요?!
제 본업은 가게 청소지, 폭탄 설치가 아니라고요!
저도 본업이 부지깽이 들고 군용 탱크 상대하는 거 아니거든요!?
불평 그만하고, 지연 신관 2배로 감는 거 잊지 마세요! 놈들의 차량이 지나가는 도중에 터져야 해요!
그 말 벌써 3번째예요!
<color=#00CCFF>개런드! 적이 그쪽으로 접근하고 있으니까 서둘러!</color>
네, 금방 가요!
콰아앙!
바로 그때, 광장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자욱한 연기가, 멀리 있는 창고의 입구를 집어삼켰다.
또 우측이야!? 스프링필드, 괜찮아?! 무슨 일이야?
<color=#00CCFF>적 기갑 병력이 잔해를 우회해 들어왔어요! 이대로 강행돌파할 셈인가 봐요!</color>
버틸 수 있겠어?
<color=#00CCFF>적이 좀 더 접근하면 대전차포로 반격하겠어요!</color>
<color=#00CCFF>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이쪽의 화망을 돌파할지도 몰라요!</color>
알았어, 개런드한테 지원 가라고 할게!
개런드, 들었지?
폭탄 설치 끝나는 대로 스프링필드한테 가! 그쪽이 위험해!
<color=#00CCFF>네에 네에 갑니다 가요!</color>
같은 시각.
그리폰 임시 지휘부.
지휘관님, 군의 4번째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스프링필드 쪽이 위급 상황이에요.
다른 제대가 지원하러 이동 중이고, 각 소대들도 아직 버틸 만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지시 있으신가요?
음...
지휘관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교착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후방 지시는 이미 무용지물이다.
인형들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해도, 군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력 지원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지휘관은 K를 바라봤지만, K도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지휘관도 알고 있었다. 지금 K가 할 수 있는 일은, 빔펠의 코발트-13에게서 통신이 오는 즉시 수화기를 받는 것뿐이란 것을.
...각 제대에게 5분만 더 버티라고 전달해.
네!
전장으로 변한 시가지.
엄호할 테니 빨리 이쪽으로!
전술인형들이 엄폐물로 달려드는 군용 인형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이걸로 마지막이에요!
스프링필드는 부상당한 인형을 등에 업고서 전력으로 개활지 위를 왕복했다.
부상자 엄호! 제압 사격 계속해요!
박격포탄도 남은 거 다 던져요!
전투 중 박격포를 잃은 화력소대의 인형들은 포탄을 수류탄 삼아 엄폐물 밖으로 던졌다. 비록 군용 인형을 파괴하기엔 폭발력이 모자랐지만, 진형을 망가뜨리기엔 충분했고, 뒤이은 제압 사격으로 공세가 정체시켰다.
이런, 총알이 바닥났어요! 탄창 남는 사람 없어요?
없어요! 저도 이게 끝이에요!
으아아, 포격 회피!
콰앙!
개런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날아든 포탄이 건물에 직격해 벽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적의 총탄이 쏟아졌다.
스프링필드 씨!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부상병 데리고 먼저 후퇴하세요!
하지만 여러분은 탄약이...!
돌아가서 스프링필드 씨의 특제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그리고, 총알이 없으면 총검을 쓰면 되죠!
전원 착검!
어... 대도도 되나요?
놈들을 썰어버릴 수 있으면 뭐든 되니까 준비나 해요!
한양조 88식은 대도를 꺼내 들고, 등의 추진기에 시동을 걸었다.
...어째 당신은 1개 사단이 몰려와도 가뿐할 거 같네요?
그야 물론이죠!
자, 스프링필드 씨는 빨리 후퇴하세요!
여기 있어봤자 방해만 된단――?
엥, 긴급 통신?
주인님의 지시인가요?
방어 임무 완료! 전원, 기지 내부로 후퇴!
오오! 드디어 지원이 도착했군요!
얼른 놈들이 펑펑 터져나가는 광경을 보고 싶어요!
됐으니까 죽기 싫으면 잔말 말고 달려요!
조금 전, 그리폰 임시 지휘부.
지휘관은 각 인형의 위치와 전장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그리고 카리나는 인형들의 자원 분배와 통신망 조정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K 앞의 통신기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숨을 죽였고, K의 손에 들린 수화기에 시선이 집중됐다.
K도 역시 긴장한 기색으로 말없이 수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color=#00CCFF>여기는 코발트-13. 폭포, 응답하라.</color>
여기는 폭포.
<color=#00CCFF>중앙이 공습 지원을 허가했다. 5분 내로 공습 가능하니 즉시 좌표를 제시하라, 이상.</color>
수신 완료. 잠시 대기하라, 이상.
K는 홀가분해진 듯, 한숨을 내쉬고 지휘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습 좌표가 필요해.
183번 도로와 열차 정거장의 교차점부터 기지 입구까지 총 200m 구간 전부.
지휘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무 가까운데... 진심인가?
달리 선택지가 없어.
K는 그 결단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인형들을 철수시켜. 철수에 필요한 시간은 내가 최대한 마련해 보지.
지휘관도 고개를 끄덕이고, 카리나와 함께 제대에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폭포. 공습 좌표, 8472-6543. 목표는 지상의 모든 표적이다, 이상.
<color=#00CCFF>좌표 8472-6543, 확인 중이니 대기하라. ...공격 범위 내에 그리폰 부대가 관측된다. 위험 사격 확인 바란다, 이상.</color>
인형들에게 지시 전달을 마친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지휘관은 잠깐 생각한 뒤 K에게 손가락 2개를 펴 보였다.
여기는 폭포. 위험 사격 확인했다. 해당 좌표 내 그리폰 부대는 2분 내로 철수할 것이니 그대로 공습 요청한다, 이상.
<color=#00CCFF>코발트-13, 수신 완료. 120초 후 폭격하겠다. 건투를 빈다. 이상, 통신 종료.</color>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
민수용 인형들을 가지고 아직까지 버티다니,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인형이 튼튼한 것에 감탄해야 할지, 우리나라 군대가 이렇게까지 한심해진 것에 한탄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런 장난감조차 압도하지 못하면서 허구한 날 서방과 싸울 생각만 하니, 상층부가 저버릴 만도 해.
그리폰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고? 잠깐 봐도 되겠나, 소령 동지?
빔펠의 지휘관은 정치장교에게 망원경을 건네줬다.
망원경에는 불바다가 되고 건물들이 무너져 가는 기지가 비쳤다.
그리폰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전술인형들이 연막탄을 잔뜩 던져 시야를 가리고 입구 안으로 부리나케 철수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당원 동지?
존경심마저 들 정도로 강인하군. 세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우리의 임무에도 지장이 생겼겠지.
하지만 그래봤자 일개 PMC니, 전멸하는 것도 시간문제라 보네.
그렇군. 전원, 모든 카메라를 꺼라.
음? 저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단 방침 아니었나?
국장 동지께서 생각을 바꾸었나 보군?
모스크바에서 공습 허가가 떨어졌네. 지상의 모든 반란군을 섬멸하란 명령이야.
고작 저 PMC 하나 구하자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아무래도, 우리 안전국이 독일과 무슨 거래라도 한 모양일세.
그리고 내부로 파견한 요원이 상층부가 원하던 것을 찾았다 하는군.
정치적 명분이 충분하군.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촬영한 증거 영상에 허점이 생기지 않나?
저 인형들이 잘 싸워 준 덕분에, 자극적인 장면은 충분히 찍었네. 나머지는 중앙의 높으신 분들이 고민할 일이지.
알았네. 각 소대, 드론을 포함한 모든 카메라를 꺼라.
2분 후, 하늘에서 첫 번째 불똥이 떨어졌다. 유사시 저 기지의 지하 구조물을 뿌리째 들어내기 위해 준비한 1.5톤 항공 폭탄이었다.
불똥은 그대로 군의 마지막 남은 장갑 열차에 명중했고, 열차는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으며 장난감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뒤이어 더 많은 불똥들이 공중에서 분열해, 지면을 불꽃으로 수놓았다.
쉴 새 없는 폭발이 기지 내부까지 뒤흔들었고, 자욱한 연기가 주위를 모조리 뒤덮었다.
더 이상 직접 확인할 것이 없다 판단한 빔펠의 지휘관은 망원경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전원 준비시키게. 슬슬 마무리하고 퇴근할 시간일세.
알았네, 소령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