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안젤리아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천성이니까."
독일, 브레멘.
민간인 거주 구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베저 강 하류.
양쪽의 강기슭을 따라 약 50m의 거리를, 시꺼먼 승합차들과 "통행금지" 테이프가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에서 굉음을 내는 헬리콥터 아래로,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청년이 서류 가방을 들고 강가의 이끼로 가득한 길을 지났다.
......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엔, 잠깐의 틈도 없이 보고가 들어오는 무전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D1 구역 수색 완료, 의심 정황 없음.
A2 구역 수색 완료, 의심 정황 없음.
알았다. 하류로 범위 1km 추가, 수색을 속행한다.
전원 주목, "토끼"가 우리에서 빠져나갔다. 모두 눈 번쩍 뜨고 털 한 올이라도 찾아내도록.
Jawohl.
안전국의 수색인원들은 벌써 24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강변을 들쑤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편, 안젤리아가 독일에 온 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겉옷이 관목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자, 다가오는 인기척을 눈치챈 K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가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그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소령님.
이리 와.
네.
청년은 K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날카롭고 곧은 눈빛은 강을 향해, 아직도 바쁘게 움직이는 구조선을 바라봤다.
시간 없으니 간단히 말하지.
...사실 긴 말이랄 것도 필요 없어. 내가 왜 너를 불렀는진 알겠지, 라이트?
네, 안젤리아 님에 관한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보고서는 읽었고?
네, 안젤리아 님과 "몰리도 씨"의 충돌까지, 전부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이 건은 J 선배가 담당 아니었습니까?
녀석은 지금 꼴이 엉망이라, 네가 더 쓸모 있어.
그리고 마침 너에게도 중요한 시기니까 말이지. 어느 알파벳으로 할지는 정했나?
노,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J 선배는 우수한 요원이시잖습니까, 전 아직 멀었어요.
하, 재미없긴.
시간 없다 하셨잖습니까.
어쭈... 그래, 좋아.
K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전히 강 위를 동분서주 중인 구조선에 시선을 향했다.
몰리도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비행기에 동승했던 그분들도 강에 빠지는 순간을 목격하진 못했으니까요.
그 정도 높이라면, 잘 훈련된 요원이라도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수면에 부딪힌 순간 즉사했더라도 이상할 것 없죠.
하지만 우리 비서 아가씨는 아니지.
네, 문제는 몰리도가 일반인이 아니었단 점입니다.
안젤리아 님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거대 범죄 조직 "패러데우스"의 최신형 개조 인간이니까요.
"늑대들"의 우두머리, AK-12와도 견줄 정도로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패러데우스 관련 자료는 A 등급 기밀 사항이다.
이렇게 이례적으로 네게 알려 줬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겠지?
네.
원래대로라면 울릭 주석의 사무 빌딩으로 향했어야 할 그 비행기는, 예정 항로를 이탈했다.
증인의 증언 덕에, 비행기는 옛 베르더 호수를 지날 때 충돌이 시작된 것으로 단정지었다.
증인은 파일럿과 안젤리아 님 본인 말씀입니까?
맞아.
충돌은 약 6분간 지속됐고, 베저 강 상공에 도달했을 즈음, 용의자 몰리도는 계획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도주하고자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지.
그리고 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사건 지점 반경 5km를 봉쇄했다. 긴급 조치였지만, 포위망의 효력에는 꽤 자신 있어.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런 수확이 없단 겁니까?
K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봉쇄 전에 그녀는 이미 현장을 벗어난 상황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아니면 그녀가 수용성이었다고 보고하는 수밖에.
......
하지만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아.
아주 조금이나마, 단서를 찾았으니까.
K는 제자리서 둘이 지금 서 있는 강가를 살짝 쿡쿡 밟으며 말을 이었다.
1시간 전, 여기서 떨어진 비행기 문을 발견했다.
혈흔도 검출됐지. 그건 아직 비공개다만.
혈흔이요...? 확실히, 안젤리아 님이 몰리도가 부상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애들한테 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라 했지만, 역시 그녀의 종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도주 경로는 추측 가능한가요?
불가능해. 혈흔도 겨우 식별할 정도에, 별다른 인위적인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애당초 저 강물부터가 방해물이고 말이지.
그렇다면 시간을 추정할 순 없을까요?
예상 이동 거리를 계산해, 그걸 반지름으로 삼으면...
역시 두뇌회전이 빨라.
그게 여기서의 네 첫 번째 임무다. 검토 보고서는 여기 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해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넓은 반경 때문에 인원들이 너무 분산되어서, 설령 용의자를 발견하더라도 확보하기 어려울 겁니다.
상대는 고성능 전술인형과도 대적할 수 있는 괴물이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소극적으로 나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
...그렇다면, 중요한 건 두 번째군요?
그래... 맞아.
방금 인사조정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의 수색 작업이 끝나는 즉시 베를린으로 이동하도록.
기뻐해라 꼬맹이, 네가 사모하는 안젤리아 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시치미 떼기는. 뭐, 사춘기 꼬맹이의 마음 따위 내 알 바 아니긴 하지.
아무튼 알았으면 빨리 움직여라, 손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아.
라이트의 뒤에는, 경호원 2명을 대동한 울릭 주석이 언제부터인가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앞에 나타난 우아한 여인에 당황한 라이트는 엉거주춤 허리 숙여 인사했다.
울릭은 그의 실례를 용서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에 답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가 봐.
라이트는 K에게 경례한 뒤, 보고서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 울릭과 어깨가 스쳤지만, 그의 시선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저 아이가 울리히의 아들인가요?
떠오르는 신성이죠.
못 믿으시겠지만, J가 가르친 녀석입니다.
울릭은 손짓으로 경호원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 달라 지시했다.
두 경호원들은 초라한 옷차림의 슈타지 요원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위치로 이동했다.
경호원들이 멀어진 뒤에야, 울릭은 천천히 K 곁으로 다가가 강물을 가르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구조선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취재를 받고 계셨습니까?
정치인에겐 언론이 곧 전장이랍니다, 슈바벤.
지난 이틀간의 뉴스만으로도, 방송국에서 1년은 족히 우려먹을 수 있겠죠.
뒷수습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말투에 주의하세요, "K 소령".
여긴 공개 장소입니다.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고는 피할 수 없는 노릇이겠죠.
제 판단 미스니까요.
울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홉스가 자독당의 사람임은 불 보듯 뻔했어요. 하지만 몰리도의 배경이 그토록 복잡할 줄이야... 둘이 한패라고 예상했건만.
상황이 이 지경으로 치닫게 된 데엔 저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저희 요원들의 세상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후회하지 말라, 정말 후회할 일은 그럴 여유도 없을 테니까."
슈바벤, 지금 제게 설교하는 건가요?
또 주제넘은 말투였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제 말은, 주석님께서 미리 두 사람이 수상하다 귀띔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거란 뜻입니다.
...그래요, 그랬겠죠.
울릭은 꼭 쥔 양손을 서로 살짝 주물렀다.
안젤리아가 플로라 연구소를 무너뜨렸을 때에도, 제가 무마할 수 있었어요.
리오니가 먼저 공격했으니까요.
고아원에서 월권행위를 했을 때도, 비난의 소리를 받아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지저분한 정치인이라도, 무고한 아동을 건드리진 못하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난민촌에서 벌인 일... 그건 선을 넘었습니다.
베를린은 굶주린 이리 떼처럼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었는데, 스스로 머리를 그 입 안에 들이민 거예요.
물론, 제가 미리 경고했더라도 막을 수는 없었겠죠.
안젤리아의 행동과 결과는 거의 필연적이니까요.
그게, 그녀의 방식이니까요.
그럼...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 겁니까?
베를린이 안젤리아를 데려갔습니다.
이젠 저로서도 어떨 도리가 없어요. 더는 제가 나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안젤리아를 순순히 놔줄 리가 없죠.
그들의 수단도 잘 압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전까진, 분명 안젤리아를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녀가 입을 다문 채 쓰러질 때까지.
이젠 그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J와 라이트를 베를린으로 보내셨잖습니까. 이미 충분히 도우신 겁니다.
......
...주석님?
울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K를 바라봤다. 그녀가 미세하게나마 표정이 흔들리는 것을, 베테랑 요원인 K는 놓치려야 놓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K는 당황스러웠다. 울릭과 같은 인물이 이런 표정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K.
예.
전 인사조정을 내리지 않았어요.
예...?
K는 울릭보다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그 과한 반응에 멀리 떨어진 경호원들의 주의를 끌 뻔했다.
그럼... 그 명령은 누가 대체 누가 내린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절대 평범한 임무일 리도 없고... 게다가 다른 부서도 아니고 저희라니, 안젤리아를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란 뜻 아닙니까?
네... 결과적으론 안젤리아에게 잘된 일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K.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걱정할 관계도 아닌걸요.
단지 조금... 아니, 좀 많이 놀랐을 뿐입니다. 대체 누가 주석님의 권한을 넘어 아직 브레멘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상위 슈타지 요원을 움직인 거죠?
모르겠어요.
울릭의 시선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그 아래로, 부지런한 수색대원들은 여전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여인을 찾아 강의 밑바닥을 헤매는 중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벌써 무대가 변했다는 거예요, 슈바벤.
우리가 너무 뒤처지지 않았기만을 바라죠.
......
......
......
......
지독한 금속의 비린내가 풍기는 좁은 공간.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 위로, 한 소녀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언니가 이렇게까지 혼난 거, 처음 봤어... 아버님, 엄청 화나셨어...
실패작은 마땅히 벌을 받는다. 그게 규칙이야.
언니마저 실패작이라니――
말조심해, 나르시스.
실패작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건 오직 그분뿐이야.
......응.
그럼, 이번엔 누굴 죽이면 돼?
......
몰리도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어쩌면, 조금 희생이 필요할지도 몰라.
정말?
만약 아버님이 너에게 날 죽이라 하신다면...
망설일 거야?
아니, 아주 기쁘게 할 거야.
그래... 넌 그러리라 믿어.
젖은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며, 몰리도는 눈앞의 소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깔끔하게 해 줘.
...응.
......
전체 대사 보기 (120줄)
독일, 브레멘.
민간인 거주 구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베저 강 하류.
양쪽의 강기슭을 따라 약 50m의 거리를, 시꺼먼 승합차들과 "통행금지" 테이프가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에서 굉음을 내는 헬리콥터 아래로,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청년이 서류 가방을 들고 강가의 이끼로 가득한 길을 지났다.
......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엔, 잠깐의 틈도 없이 보고가 들어오는 무전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color=#00CCFF>D1 구역 수색 완료, 의심 정황 없음.</color>
<color=#00CCFF>A2 구역 수색 완료, 의심 정황 없음.</color>
알았다. 하류로 범위 1km 추가, 수색을 속행한다.
전원 주목, "토끼"가 우리에서 빠져나갔다. 모두 눈 번쩍 뜨고 털 한 올이라도 찾아내도록.
<color=#00CCFF>Jawohl.</color>
안전국의 수색인원들은 벌써 24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강변을 들쑤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편, 안젤리아가 독일에 온 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겉옷이 관목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자, 다가오는 인기척을 눈치챈 K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가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그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소령님.
이리 와.
네.
청년은 K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날카롭고 곧은 눈빛은 강을 향해, 아직도 바쁘게 움직이는 구조선을 바라봤다.
시간 없으니 간단히 말하지.
...사실 긴 말이랄 것도 필요 없어. 내가 왜 너를 불렀는진 알겠지, 라이트?
네, 안젤리아 님에 관한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보고서는 읽었고?
네, 안젤리아 님과 "몰리도 씨"의 충돌까지, 전부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이 건은 J 선배가 담당 아니었습니까?
녀석은 지금 꼴이 엉망이라, 네가 더 쓸모 있어.
그리고 마침 너에게도 중요한 시기니까 말이지. 어느 알파벳으로 할지는 정했나?
노,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J 선배는 우수한 요원이시잖습니까, 전 아직 멀었어요.
하, 재미없긴.
시간 없다 하셨잖습니까.
어쭈... 그래, 좋아.
K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전히 강 위를 동분서주 중인 구조선에 시선을 향했다.
몰리도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비행기에 동승했던 그분들도 강에 빠지는 순간을 목격하진 못했으니까요.
그 정도 높이라면, 잘 훈련된 요원이라도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수면에 부딪힌 순간 즉사했더라도 이상할 것 없죠.
하지만 우리 비서 아가씨는 아니지.
네, 문제는 몰리도가 일반인이 아니었단 점입니다.
안젤리아 님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거대 범죄 조직 "패러데우스"의 최신형 개조 인간이니까요.
"늑대들"의 우두머리, AK-12와도 견줄 정도로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패러데우스 관련 자료는 A 등급 기밀 사항이다.
이렇게 이례적으로 네게 알려 줬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겠지?
네.
원래대로라면 울릭 주석의 사무 빌딩으로 향했어야 할 그 비행기는, 예정 항로를 이탈했다.
증인의 증언 덕에, 비행기는 옛 베르더 호수를 지날 때 충돌이 시작된 것으로 단정지었다.
증인은 파일럿과 안젤리아 님 본인 말씀입니까?
맞아.
충돌은 약 6분간 지속됐고, 베저 강 상공에 도달했을 즈음, 용의자 몰리도는 계획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도주하고자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지.
그리고 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사건 지점 반경 5km를 봉쇄했다. 긴급 조치였지만, 포위망의 효력에는 꽤 자신 있어.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런 수확이 없단 겁니까?
K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봉쇄 전에 그녀는 이미 현장을 벗어난 상황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아니면 그녀가 수용성이었다고 보고하는 수밖에.
......
하지만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아.
아주 조금이나마, 단서를 찾았으니까.
K는 제자리서 둘이 지금 서 있는 강가를 살짝 쿡쿡 밟으며 말을 이었다.
1시간 전, 여기서 떨어진 비행기 문을 발견했다.
혈흔도 검출됐지. 그건 아직 비공개다만.
혈흔이요...? 확실히, 안젤리아 님이 몰리도가 부상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애들한테 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라 했지만, 역시 그녀의 종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도주 경로는 추측 가능한가요?
불가능해. 혈흔도 겨우 식별할 정도에, 별다른 인위적인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애당초 저 강물부터가 방해물이고 말이지.
그렇다면 시간을 추정할 순 없을까요?
예상 이동 거리를 계산해, 그걸 반지름으로 삼으면...
역시 두뇌회전이 빨라.
그게 여기서의 네 첫 번째 임무다. 검토 보고서는 여기 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해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넓은 반경 때문에 인원들이 너무 분산되어서, 설령 용의자를 발견하더라도 확보하기 어려울 겁니다.
상대는 고성능 전술인형과도 대적할 수 있는 괴물이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소극적으로 나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
...그렇다면, 중요한 건 두 번째군요?
그래... 맞아.
방금 인사조정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의 수색 작업이 끝나는 즉시 베를린으로 이동하도록.
기뻐해라 꼬맹이, 네가 사모하는 안젤리아 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시치미 떼기는. 뭐, 사춘기 꼬맹이의 마음 따위 내 알 바 아니긴 하지.
아무튼 알았으면 빨리 움직여라, 손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아.
라이트의 뒤에는, 경호원 2명을 대동한 울릭 주석이 언제부터인가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앞에 나타난 우아한 여인에 당황한 라이트는 엉거주춤 허리 숙여 인사했다.
울릭은 그의 실례를 용서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에 답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가 봐.
라이트는 K에게 경례한 뒤, 보고서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 울릭과 어깨가 스쳤지만, 그의 시선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저 아이가 울리히의 아들인가요?
떠오르는 신성이죠.
못 믿으시겠지만, J가 가르친 녀석입니다.
울릭은 손짓으로 경호원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 달라 지시했다.
두 경호원들은 초라한 옷차림의 슈타지 요원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위치로 이동했다.
경호원들이 멀어진 뒤에야, 울릭은 천천히 K 곁으로 다가가 강물을 가르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구조선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취재를 받고 계셨습니까?
정치인에겐 언론이 곧 전장이랍니다, 슈바벤.
지난 이틀간의 뉴스만으로도, 방송국에서 1년은 족히 우려먹을 수 있겠죠.
뒷수습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말투에 주의하세요, "K 소령".
여긴 공개 장소입니다.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고는 피할 수 없는 노릇이겠죠.
제 판단 미스니까요.
울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홉스가 자독당의 사람임은 불 보듯 뻔했어요. 하지만 몰리도의 배경이 그토록 복잡할 줄이야... 둘이 한패라고 예상했건만.
상황이 이 지경으로 치닫게 된 데엔 저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저희 요원들의 세상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후회하지 말라, 정말 후회할 일은 그럴 여유도 없을 테니까."
슈바벤, 지금 제게 설교하는 건가요?
또 주제넘은 말투였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제 말은, 주석님께서 미리 두 사람이 수상하다 귀띔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거란 뜻입니다.
...그래요, 그랬겠죠.
울릭은 꼭 쥔 양손을 서로 살짝 주물렀다.
안젤리아가 플로라 연구소를 무너뜨렸을 때에도, 제가 무마할 수 있었어요.
리오니가 먼저 공격했으니까요.
고아원에서 월권행위를 했을 때도, 비난의 소리를 받아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지저분한 정치인이라도, 무고한 아동을 건드리진 못하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난민촌에서 벌인 일... 그건 선을 넘었습니다.
베를린은 굶주린 이리 떼처럼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었는데, 스스로 머리를 그 입 안에 들이민 거예요.
물론, 제가 미리 경고했더라도 막을 수는 없었겠죠.
안젤리아의 행동과 결과는 거의 필연적이니까요.
그게, 그녀의 방식이니까요.
그럼...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 겁니까?
베를린이 안젤리아를 데려갔습니다.
이젠 저로서도 어떨 도리가 없어요. 더는 제가 나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안젤리아를 순순히 놔줄 리가 없죠.
그들의 수단도 잘 압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전까진, 분명 안젤리아를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녀가 입을 다문 채 쓰러질 때까지.
이젠 그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J와 라이트를 베를린으로 보내셨잖습니까. 이미 충분히 도우신 겁니다.
......
...주석님?
울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K를 바라봤다. 그녀가 미세하게나마 표정이 흔들리는 것을, 베테랑 요원인 K는 놓치려야 놓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K는 당황스러웠다. 울릭과 같은 인물이 이런 표정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K.
예.
전 인사조정을 내리지 않았어요.
예...?
K는 울릭보다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그 과한 반응에 멀리 떨어진 경호원들의 주의를 끌 뻔했다.
그럼... 그 명령은 누가 대체 누가 내린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절대 평범한 임무일 리도 없고... 게다가 다른 부서도 아니고 저희라니, 안젤리아를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란 뜻 아닙니까?
네... 결과적으론 안젤리아에게 잘된 일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K.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걱정할 관계도 아닌걸요.
단지 조금... 아니, 좀 많이 놀랐을 뿐입니다. 대체 누가 주석님의 권한을 넘어 아직 브레멘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상위 슈타지 요원을 움직인 거죠?
모르겠어요.
울릭의 시선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그 아래로, 부지런한 수색대원들은 여전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여인을 찾아 강의 밑바닥을 헤매는 중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벌써 무대가 변했다는 거예요, 슈바벤.
우리가 너무 뒤처지지 않았기만을 바라죠.
......
......
......
......
지독한 금속의 비린내가 풍기는 좁은 공간.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 위로, 한 소녀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언니가 이렇게까지 혼난 거, 처음 봤어... 아버님, 엄청 화나셨어...
실패작은 마땅히 벌을 받는다. 그게 규칙이야.
언니마저 실패작이라니――
말조심해, 나르시스.
실패작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건 오직 그분뿐이야.
......응.
그럼, 이번엔 누굴 죽이면 돼?
......
몰리도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어쩌면, 조금 희생이 필요할지도 몰라.
정말?
만약 아버님이 너에게 날 죽이라 하신다면...
망설일 거야?
아니, 아주 기쁘게 할 거야.
그래... 넌 그러리라 믿어.
젖은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며, 몰리도는 눈앞의 소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깔끔하게 해 줘.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