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패러독스 Ⅰ
"여기서는 모든 망설임을 버려라, 일말의 나약함도 쓸모가 없으니."
"여기서 망설임은 금물이다. 조금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AK...12......
여긴...
의식은 마치 시멘트 반죽에 뒤섞인 것마냥 무거웠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안젤리아는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사수를 불러봤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으윽...
갑작스런 날카로운 이명이, 송곳처럼 그녀의 귀를 찔렀다.
멎지 않는 그 이명은 그녀를 깊은 기억 속의 "어느 날"로 이끌었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의 광경이 떠오르는 게, 이것으로 몇 번째인지.
엄마——!!
우으으... 아빠아아...
타앙!
......
......
겨우 생각났다.
여긴 신소련이 아니다.
철썩!
푸학!
헉... 헉... 윽?!
첨벙!
보글보글보글...
처절한 몸부림에 양동이는 다시 한번 요동쳤고, 이미 쏟아진 물로 흥건한 심문실의 바닥은 점점 더 더러워졌다.
양손은 결박된 상태였다. 의수는 쇠사슬로, 다른 손은 거친 밧줄로.
격하게 몸부림칠 때마다 손목의 살갗이 점점 쓸리고, 벗겨졌다.
누런색이었던 밧줄은 이제 빨갛다 못해 검붉은색이었다.
푸학!!
콜록콜록콜록, 헉... 헉...
방금은 잠시 의식을 잃었던 걸까?
시답잖은 고문에 기절한 것도 모자라, 옛 기억마저 떠올리다니.
꼴불견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소련인!
안젤리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네 차례 그녀의 머리를 양동이에 처박은 이 우락부락한 남자는, 드디어 안젤리아의 귓가에 대고 고막을 터뜨릴 기세로 고함질렀다.
독일에 온 목적이 뭐냐!
니... 니 XX XX으러...
물론, 안젤리아는 여태껏 그에게 욕설밖에 안 내뱉었다.
이 새끼가...!
첨벙!
안젤리아의 얼굴은 또다시 양동이에 처박혔다.
그만.
푸하아!!
다른 사람이 끼어든 덕에, 숨을 고를 틈이 생겼다.
하지만 이렇게 물고문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안젤리아는 지금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기분이었다.
손에 단도와 숫돌을 든 다소 홀쭉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단도의 날을 세우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그는 안젤리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젤리아의 머리는 더러운 물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었지만, 다행히 시선을 가리진 않았다.
아직 정신은 멀쩡하지? 네 이름은?
에... 엘리자베스 슈워츠코프...
...뭣 때문에 독일에 왔지?
관광 말고... 더 있겠냐...? 너네 국회의사당, 맨손 등반하고 싶어서 왔다... 신소련인 버킷리스트 탑 3야... 못 들어봤어...?
개소리 집어치워!
뻐억!
단단한 몽둥이가 목덜미를 강타했다. 눈앞이 순간 번쩍이고 다시 어두워져, 또 한 번 의식을 잃을 뻔했다.
카프리! 지금 질문하는 거 안 보여!?
아니, 그래도...
씩씩대는 거한은 불만 가득한 투였지만, 그래도 몽둥이를 내렸다.
허억... 허억...
이것 봐, 안젤리아 요원.
당신이 잘 훈련받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계속 이래서야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없다고.
남자는 짝눈을 뜨며 얼굴을 안젤리아에게 들이댔다.
위압감을 주려는 속셈인지, 목소리도 방금보다 내리깔았다.
안젤리아의 눈엔 그의 얼굴의 흉터와, 손에 든 단도가 보였다.
슈타지란 놈들은... 접객 방식이 다 이따위냐...?
설마, 우린 손님에겐 항상 열정적이라고. 하지만 적에겐 아주 냉혹하지.
남자는 단도의 칼끝을 안젤리아의 얼굴에 대고, 몸을 더 가까이 기울였다.
그리고 소련인인 댁은 독일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어.
그뿐인가? 독일 정부에게 봉사하는 선량한 중요인사까지 살해했는걸.
내가 몇 번을 말해... 몰리도는 패러데우스의 스파이라니까.
댁의 주장을 누가 증명해 주지?
우리가 보기엔 말이야, 한 정부 인사가 댁과 같이 비행기를 탔는데...
궁지에 몰려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생사불명이 된 걸로밖에 안 보이거든.
이건 살인 사건이야, 소련인 아가씨.
당신은 몰리도 포거트를 살해했어.
...웃기지도 않아.
날 잡아 가두려고 기를 쓰는 게 보여.
아님 우선 순위란 개념도 없냐...?
얼굴을 찌르는 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안젤리아는 얼굴은 초췌해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매처럼 날카로웠다.
비서 한 명의 생사따위 아무 관심 없잖아, 너흰 그냥 나를 잡아들일 명분이 생기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
남자는 칼몸으로 안젤리아의 얼굴을 툭툭 치곤, 그녀 뒤의 거한에게 신호를 보냈다.
똑바로 대답해!
퍼억!
거한은 몽둥이로 안젤리아의 등을 내리쳤다.
카학!
갑작스런 타격에 안젤리아는 각혈했고, 침과 섞인 걸쭉한 피가 그녀의 입술에서 양동이의 구정물에 떨어졌다.
...원래 이렇게 더러운 물이었나? 아님 고문 때문에 그새 더러워졌나?
기억나질 않는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질 않는다.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나야 좋지.
남자가 실눈을 떴다.
말해, 안젤리아 요원.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 밑에서, 대체 뭘 봤지?
똑바로 대답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약속하지.
풋... 후후.... 크크크크크...
드디어 예상했던 질문을 듣자, 안젤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가 웃겨, 이 년아!
컥... 크흐흑.... 하하하하하!
그거 때문에, 고작 그거 때문에 몰리도가 내 눈앞에서 도망치도록 놔뒀다?
네놈들의 더럽고 유치한 권력을 위해서!?
지옥에나 떨어져, XXX들아!
퉤!
안젤리아는 피 섞인 침을 코앞의 남자의 얼굴에 뱉었다.
......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손의 숫돌을 홱 양동이에 던졌다.
흉터 안 남길 기도해라.
어차피 많거든?
덜컹!
그만, 거기까지.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바깥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남자의 손은 움찔하며 멈춰 칼끝은 안젤리아의 왼쪽 뺨을 아주 살짝 찌르기만 했고, 피는 단 한 방울만이 흘렀다.
......
갑자기 들이닥친 여성은 아무 말도 않고, "심문관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2분 전까지만 해도 죽일 기세로 성질을 부리던 남자들은 곧바로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 그 여성의 뒷편에서 정장 차림의 남성 두 명이 더 나타나, 안젤리아를 묶었던 밧줄과 쇠사슬을 풀더니 그녀를 거칠게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뭐야... 뭘 하려는 거야...?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끌려 나온 안젤리아는 주위를 관찰할 새도 없이 머리에 복면이 씌워졌다.
......
철퍼덕!
잠시 후 그녀는 샌드백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등뒤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장소가 바뀌었다?
하지만 복면 때문에 여전히 눈앞은 껌껌했고, 포박에서 겨우 풀려난 손에 이번엔 수갑이 채워졌다. 안젤리아는 꿈틀대며 몸을 뒤집어, 간신히 윗몸을 일으키고 복면을 벗으려 하는... 그때였다.
안젤리아...? 안젤리아!
애를 쓰던 안젤리아 곁에 달려온 누군가의 손이 복면을 벗겨 주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AN-94였다.
AN-94...?
안젤리아, 상처가 심하다.
AN-94는 초조해하면서도 능숙하게 안젤리아를 들어 안아, 소파 위에 눕혔다.
그제서야 안젤리아는 자신이 옮겨진 방이 평범한 공간임을 깨달았다. 방에는 소파만이 아니라 식탁까지 있었다.
난, 괜찮아... 다른 애들은?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기에 나 혼자였는데, 방금 두 사람이 안젤리아를 던져두고 갔다.
쓰읍...
안젤리아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문이 또 열렸다.
저기, 진짜 기계팔 달아볼 생각 없어?
AK-12!
어, AN-94? 여기 있었―― 안젤리아?!
안젤리아를 본 순간, AK-12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야!!
AK-12는 방금 자신을 데리고 온 그 사람에게 따지려 들었지만, 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
AK-12! 케흑...
...진정해.
AK-12를 말리려고 크게 소리치자, 상처가 다시 찢어졌는지 안젤리아는 격하게 기침했다.
너야말로 진정해, 너 지금 상태가 안 좋은 수준이 아니란 말이야.
당장 치료해야 해.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 이게 끝이 아니야. 갑자기 우릴 이렇게 한곳에 모으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
문이 다시 한번 열리더니, 우뚝 선 형체가 문틀을 꽉 채우며 나타났다.
드, 들어가!
......
AK-15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고, 뒤이어 여전히 장난기 어린 눈빛의 RPK-16도 들어왔다.
어머, 다 모였네요? 죽기 전에 가족사진이라도 찍어야겠어요.
죽기 전에?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거 같냐...
아니에요? 그럼 왜 우릴 갑자기 이렇게 한곳에다 모아 놨대요?
꿈 깨라고 해. AK-15, 오면서 무기고 같은 거 봤어?
...아니, 하지만 무기를 소지한 순찰대원은 봤다.
좋았어, 각자 한 자루씩 챙겨서 돌파하자. RPK 넌 안젤리아를 업어, 달리 쓸모도 없으니까.
이잉, 너무해요.
그만.
안젤리아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놈들한테 말한 것도 없으니, 아직 우릴 처분하진 못해.
내가 봐선... 다른 일이 일어난 거야.
다른 일이라니, 무슨 일?
또다시, 안젤리아가 말을 잇기 전에 문이 열렸다.
......
안젤리아를 "심문실"에서 꺼낸 그 여성이었다.
...뭐야.
여러분은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임시 거처를 마련했으니, 그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대신, 안젤리아, 당신은 지금부터 베를린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배정한 거처에서 머무르고, 지정된 통금 시간을 엄수하십시오.
우리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에 따르십시오.
그냥 다른 데다 연금하겠단 소리네.
꼭 그럴 필요 있어?
이제 가십시오.
지금 당장.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여성 관리는 짜증난 투로 안젤리아 일행을 쫓아냈다.
급작스러운 전개에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차마 더 묻기도 전에 안젤리아 일행은 다시 우락부락한 경호원들에게 억지로 끌려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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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망설임은 금물이다. 조금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AK...12......
여긴...
의식은 마치 시멘트 반죽에 뒤섞인 것마냥 무거웠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안젤리아는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사수를 불러봤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으윽...
갑작스런 날카로운 이명이, 송곳처럼 그녀의 귀를 찔렀다.
멎지 않는 그 이명은 그녀를 깊은 기억 속의 "어느 날"로 이끌었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의 광경이 떠오르는 게, 이것으로 몇 번째인지.
엄마——!!
우으으... 아빠아아...
타앙!
......
......
겨우 생각났다.
여긴 신소련이 아니다.
철썩!
푸학!
헉... 헉... 윽?!
첨벙!
보글보글보글...
처절한 몸부림에 양동이는 다시 한번 요동쳤고, 이미 쏟아진 물로 흥건한 심문실의 바닥은 점점 더 더러워졌다.
양손은 결박된 상태였다. 의수는 쇠사슬로, 다른 손은 거친 밧줄로.
격하게 몸부림칠 때마다 손목의 살갗이 점점 쓸리고, 벗겨졌다.
누런색이었던 밧줄은 이제 빨갛다 못해 검붉은색이었다.
푸학!!
콜록콜록콜록, 헉... 헉...
방금은 잠시 의식을 잃었던 걸까?
시답잖은 고문에 기절한 것도 모자라, 옛 기억마저 떠올리다니.
꼴불견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소련인!
안젤리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네 차례 그녀의 머리를 양동이에 처박은 이 우락부락한 남자는, 드디어 안젤리아의 귓가에 대고 고막을 터뜨릴 기세로 고함질렀다.
독일에 온 목적이 뭐냐!
니... 니 XX XX으러...
물론, 안젤리아는 여태껏 그에게 욕설밖에 안 내뱉었다.
이 새끼가...!
첨벙!
안젤리아의 얼굴은 또다시 양동이에 처박혔다.
그만.
푸하아!!
다른 사람이 끼어든 덕에, 숨을 고를 틈이 생겼다.
하지만 이렇게 물고문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안젤리아는 지금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기분이었다.
손에 단도와 숫돌을 든 다소 홀쭉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단도의 날을 세우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그는 안젤리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젤리아의 머리는 더러운 물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었지만, 다행히 시선을 가리진 않았다.
아직 정신은 멀쩡하지? 네 이름은?
에... 엘리자베스 슈워츠코프...
...뭣 때문에 독일에 왔지?
관광 말고... 더 있겠냐...? 너네 국회의사당, 맨손 등반하고 싶어서 왔다... 신소련인 버킷리스트 탑 3야... 못 들어봤어...?
개소리 집어치워!
뻐억!
단단한 몽둥이가 목덜미를 강타했다. 눈앞이 순간 번쩍이고 다시 어두워져, 또 한 번 의식을 잃을 뻔했다.
카프리! 지금 질문하는 거 안 보여!?
아니, 그래도...
씩씩대는 거한은 불만 가득한 투였지만, 그래도 몽둥이를 내렸다.
허억... 허억...
이것 봐, 안젤리아 요원.
당신이 잘 훈련받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계속 이래서야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없다고.
남자는 짝눈을 뜨며 얼굴을 안젤리아에게 들이댔다.
위압감을 주려는 속셈인지, 목소리도 방금보다 내리깔았다.
안젤리아의 눈엔 그의 얼굴의 흉터와, 손에 든 단도가 보였다.
슈타지란 놈들은... 접객 방식이 다 이따위냐...?
설마, 우린 손님에겐 항상 열정적이라고. 하지만 적에겐 아주 냉혹하지.
남자는 단도의 칼끝을 안젤리아의 얼굴에 대고, 몸을 더 가까이 기울였다.
그리고 소련인인 댁은 독일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어.
그뿐인가? 독일 정부에게 봉사하는 선량한 중요인사까지 살해했는걸.
내가 몇 번을 말해... 몰리도는 패러데우스의 스파이라니까.
댁의 주장을 누가 증명해 주지?
우리가 보기엔 말이야, 한 정부 인사가 댁과 같이 비행기를 탔는데...
궁지에 몰려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생사불명이 된 걸로밖에 안 보이거든.
이건 살인 사건이야, 소련인 아가씨.
당신은 몰리도 포거트를 살해했어.
...웃기지도 않아.
날 잡아 가두려고 기를 쓰는 게 보여.
아님 우선 순위란 개념도 없냐...?
얼굴을 찌르는 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안젤리아는 얼굴은 초췌해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매처럼 날카로웠다.
비서 한 명의 생사따위 아무 관심 없잖아, 너흰 그냥 나를 잡아들일 명분이 생기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
남자는 칼몸으로 안젤리아의 얼굴을 툭툭 치곤, 그녀 뒤의 거한에게 신호를 보냈다.
똑바로 대답해!
퍼억!
거한은 몽둥이로 안젤리아의 등을 내리쳤다.
카학!
갑작스런 타격에 안젤리아는 각혈했고, 침과 섞인 걸쭉한 피가 그녀의 입술에서 양동이의 구정물에 떨어졌다.
...원래 이렇게 더러운 물이었나? 아님 고문 때문에 그새 더러워졌나?
기억나질 않는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질 않는다.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나야 좋지.
남자가 실눈을 떴다.
말해, 안젤리아 요원.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 밑에서, 대체 뭘 봤지?
똑바로 대답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약속하지.
풋... 후후.... 크크크크크...
드디어 예상했던 질문을 듣자, 안젤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가 웃겨, 이 년아!
컥... 크흐흑.... 하하하하하!
그거 때문에, 고작 그거 때문에 몰리도가 내 눈앞에서 도망치도록 놔뒀다?
네놈들의 더럽고 유치한 권력을 위해서!?
지옥에나 떨어져, XXX들아!
퉤!
안젤리아는 피 섞인 침을 코앞의 남자의 얼굴에 뱉었다.
......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손의 숫돌을 홱 양동이에 던졌다.
흉터 안 남길 기도해라.
어차피 많거든?
덜컹!
그만, 거기까지.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바깥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남자의 손은 움찔하며 멈춰 칼끝은 안젤리아의 왼쪽 뺨을 아주 살짝 찌르기만 했고, 피는 단 한 방울만이 흘렀다.
......
갑자기 들이닥친 여성은 아무 말도 않고, "심문관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2분 전까지만 해도 죽일 기세로 성질을 부리던 남자들은 곧바로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 그 여성의 뒷편에서 정장 차림의 남성 두 명이 더 나타나, 안젤리아를 묶었던 밧줄과 쇠사슬을 풀더니 그녀를 거칠게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뭐야... 뭘 하려는 거야...?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끌려 나온 안젤리아는 주위를 관찰할 새도 없이 머리에 복면이 씌워졌다.
......
철퍼덕!
잠시 후 그녀는 샌드백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등뒤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장소가 바뀌었다?
하지만 복면 때문에 여전히 눈앞은 껌껌했고, 포박에서 겨우 풀려난 손에 이번엔 수갑이 채워졌다. 안젤리아는 꿈틀대며 몸을 뒤집어, 간신히 윗몸을 일으키고 복면을 벗으려 하는... 그때였다.
안젤리아...? 안젤리아!
애를 쓰던 안젤리아 곁에 달려온 누군가의 손이 복면을 벗겨 주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AN-94였다.
AN-94...?
안젤리아, 상처가 심하다.
AN-94는 초조해하면서도 능숙하게 안젤리아를 들어 안아, 소파 위에 눕혔다.
그제서야 안젤리아는 자신이 옮겨진 방이 평범한 공간임을 깨달았다. 방에는 소파만이 아니라 식탁까지 있었다.
난, 괜찮아... 다른 애들은?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기에 나 혼자였는데, 방금 두 사람이 안젤리아를 던져두고 갔다.
쓰읍...
안젤리아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문이 또 열렸다.
저기, 진짜 기계팔 달아볼 생각 없어?
AK-12!
어, AN-94? 여기 있었―― 안젤리아?!
안젤리아를 본 순간, AK-12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야!!
AK-12는 방금 자신을 데리고 온 그 사람에게 따지려 들었지만, 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
AK-12! 케흑...
...진정해.
AK-12를 말리려고 크게 소리치자, 상처가 다시 찢어졌는지 안젤리아는 격하게 기침했다.
너야말로 진정해, 너 지금 상태가 안 좋은 수준이 아니란 말이야.
당장 치료해야 해.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 이게 끝이 아니야. 갑자기 우릴 이렇게 한곳에 모으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
문이 다시 한번 열리더니, 우뚝 선 형체가 문틀을 꽉 채우며 나타났다.
드, 들어가!
......
AK-15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고, 뒤이어 여전히 장난기 어린 눈빛의 RPK-16도 들어왔다.
어머, 다 모였네요? 죽기 전에 가족사진이라도 찍어야겠어요.
죽기 전에?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거 같냐...
아니에요? 그럼 왜 우릴 갑자기 이렇게 한곳에다 모아 놨대요?
꿈 깨라고 해. AK-15, 오면서 무기고 같은 거 봤어?
...아니, 하지만 무기를 소지한 순찰대원은 봤다.
좋았어, 각자 한 자루씩 챙겨서 돌파하자. RPK 넌 안젤리아를 업어, 달리 쓸모도 없으니까.
이잉, 너무해요.
그만.
안젤리아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놈들한테 말한 것도 없으니, 아직 우릴 처분하진 못해.
내가 봐선... 다른 일이 일어난 거야.
다른 일이라니, 무슨 일?
또다시, 안젤리아가 말을 잇기 전에 문이 열렸다.
......
안젤리아를 "심문실"에서 꺼낸 그 여성이었다.
...뭐야.
여러분은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임시 거처를 마련했으니, 그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대신, 안젤리아, 당신은 지금부터 베를린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배정한 거처에서 머무르고, 지정된 통금 시간을 엄수하십시오.
우리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에 따르십시오.
그냥 다른 데다 연금하겠단 소리네.
꼭 그럴 필요 있어?
이제 가십시오.
지금 당장.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여성 관리는 짜증난 투로 안젤리아 일행을 쫓아냈다.
급작스러운 전개에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차마 더 묻기도 전에 안젤리아 일행은 다시 우락부락한 경호원들에게 억지로 끌려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