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패러독스 Ⅱ
"햇빛마저 눈부셔하는 사람이 오히려 햇빛 없는 삶을 견딜지 모른다."
독일 베를린, 국가안전국 본부.
건물에서 나온 안젤리아는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썰렁한 곳은 소련의 행정 구역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햇빛 눈부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뭐야 이게?
AK-12는 아직도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아니 진짜, 뭐냐고 이게. 48시간 고문 현장 체험 학습? 시간 땡하니까 끝이야?
나 가서 연장 넣어도 돼?
놀랍게도 무기까지 멀쩡하게 돌려받았다. 손에 쥔 총을 만지니, 안젤리아는 한순간 이대로 건물로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감금에서 풀려났으니 다행이지 않나?
나야 좋지. 하지만... 어째서지?
안젤리아는 고개를 들어, 자신 앞의 길고 긴 계단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계단의 가장 아래 단에는 RPK-16과 AK-15가 나머지 일행을 등지고서 앉아 있었다.
둘의 목이 케이블로 연결된 상태로, RPK-16은 무릎 위의 컴퓨터를 조작했다.
여태까지 각자 따로 갇혀 있었어?
안젤리아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와, 부하들 옆에 앉았다.
......
마인드맵은... OK.
화기관제 코어도... OK.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요?
응, 최소한 나는 신호 차폐 처리된 방에 혼자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걔네들 말로는 우리 넷이서 작당하고 과격하게 나올까 봐 무서웠대.
웃기지 않아? 우리가 정말 그럴 셈이었으면, 따로 가두든 모아서 가두든 뭔 차이래?
우리가 얼마나 갇혀 있었지? 이틀?
안젤리아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부터 계산한다면 48시간은 진작에 넘었죠.
이 이틀하고도 조금 더의 시간 동안 우린 아무도 못 만났어요. 아무도 못 보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거든요.
외장 설비랑 무기까지 몽땅 압수당했고 말이죠.
방 밖으로 나가는 건 누가 마인드맵을 날려버리러 왔을 때 아닐까 했다니까요.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작정하고 가둔 것 치곤 시간이 너무 짧아. 놈들 스타일로는 적어도 1주일은 가뒀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 내 입에서 아무것도 캐내지 못한 상황에서 쫓아내듯 풀어 줬다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야.
하긴, 가출했던 저 독일놈들 양심이 갑자기 돌아왔을 리도 없고.
...누가 뒷공작을 벌였어.
우리가 풀려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울릭 주석일까?
그 사람 입김이 그 정도로 세다면 애당초 우리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지.
48시간... 몰리도가 맨발로 소련의 국경을 넘고도 남을 시간이야.
K가 후속 작전을 인계받았다고 합니다.
AK-15가 번뜩 눈을 뜨는 동시에, RPK-16도 능숙한 손동작으로 그녀의 목에 꽂힌 케이블을 뽑았다.
자아, 앉으세요 대장님~
싫어, 검사 정돈 내가 직접 할 수 있어.
이틀 내내 갇혀 있었는데, 무슨 수작이라도 당했다면 투정 부리는 걸로 안 끝나요.
지금 같은 상황이면, 3배는커녕 반값짜리 소체도 못 찾을걸요?
......
AK-12는 툴툴대며 AK-15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K가 뒷수습을? 녀석을 아주 못 믿겠는 건 아니지만...
그래봤자 몰리도한테 레드카펫 깔고 보내 주기밖에 안 돼.
지금 돌아간다 해도 늦었습니다.
알아, 저 독일놈들한테 행동 범위까지 제한받았는걸.
안젤리아는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의 썰렁한 거리를 훑어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조용한 곳에,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에, 과연 지금 이 계단에서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숨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자기네 땅에서도 이렇게 슬금슬금...
아무래도 우릴 도와준 사람이 상당한 거물인가 봐?
그렇게 고민해 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우리 모두 잠시 정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안젤리아, 지금 몸 상태론 스스로 걷는 것조차 정신력 싸움이잖아요?
이래서는 조사도 계속할 수 없어요, 그쵸?
RPK-16는 은근슬쩍 안젤리아에게 몸을 기울여, 살갑게 치근대면서도 덜덜 떨리는 안젤리아의 다리를 그윽한 눈빛으로 곁눈질했다.
하지만 AK-12가 곧바로 연결된 케이블을 홱 잡아당겨, RPK-16의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그 점은 나도 이견의 여지가 없어.
남들 앞에서 얼마나 배짱을 부리든 억지를 부리든 나야 상관없지만, 지금 그 상태로 움직이자 한다면...
무모함을 넘어 어리석은 짓이야.
이미 시간을 잔뜩 허비했는데...
고개를 떨군 채, 안젤리아는 자신의 무릎을 보며 약간 분한 듯 대꾸했다.
그럼 조금 더 허비해도 달라질 거 없겠네.
원래대로라면 저놈들이 1주는 가둬 뒀을 거라며?
이제 겨우 48시간에 수면 취할 몇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야.
전체적으로 보면 꽤 시간을 번 셈이라고.
......알았어.
하지만, 휴식을 취하기 전에...
몸풀기 운동은 문제없겠지?
안젤리아가 허벅지를 찰싹 치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RPK-16도 케이블을 뽑아 점검이 끝났음을 알렸고, 휴대 설비를 정리하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어머머~ 안젤리아는 청년을 반찬 삼는 걸 좋아했군요?
RPK-16은 흥미로워하면서 주변을, 특히 방금 안젤리아가 주시했던 곳을 보며 귀여운 표정으로 혀를 내밀었다.
그딴 헛소리 좀 작작 하라고...
죄측에 두 명, 우측에 세 명.
그리고 후방 건물 내부에 최소 8명으로 추정.
어떻게 처리할까요?
저 풋내기들한테 동종업계 선배를 존중하는 법이나 가르쳐 줘.
우직한 독일놈들도 고생이란 것 좀 해봐야지.
Yes, ma'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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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국가안전국 본부.
건물에서 나온 안젤리아는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썰렁한 곳은 소련의 행정 구역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햇빛 눈부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뭐야 이게?
AK-12는 아직도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아니 진짜, 뭐냐고 이게. 48시간 고문 현장 체험 학습? 시간 땡하니까 끝이야?
나 가서 연장 넣어도 돼?
놀랍게도 무기까지 멀쩡하게 돌려받았다. 손에 쥔 총을 만지니, 안젤리아는 한순간 이대로 건물로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감금에서 풀려났으니 다행이지 않나?
나야 좋지. 하지만... 어째서지?
안젤리아는 고개를 들어, 자신 앞의 길고 긴 계단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계단의 가장 아래 단에는 RPK-16과 AK-15가 나머지 일행을 등지고서 앉아 있었다.
둘의 목이 케이블로 연결된 상태로, RPK-16은 무릎 위의 컴퓨터를 조작했다.
여태까지 각자 따로 갇혀 있었어?
안젤리아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와, 부하들 옆에 앉았다.
......
마인드맵은... OK.
화기관제 코어도... OK.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요?
응, 최소한 나는 신호 차폐 처리된 방에 혼자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걔네들 말로는 우리 넷이서 작당하고 과격하게 나올까 봐 무서웠대.
웃기지 않아? 우리가 정말 그럴 셈이었으면, 따로 가두든 모아서 가두든 뭔 차이래?
우리가 얼마나 갇혀 있었지? 이틀?
안젤리아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부터 계산한다면 48시간은 진작에 넘었죠.
이 이틀하고도 조금 더의 시간 동안 우린 아무도 못 만났어요. 아무도 못 보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거든요.
외장 설비랑 무기까지 몽땅 압수당했고 말이죠.
방 밖으로 나가는 건 누가 마인드맵을 날려버리러 왔을 때 아닐까 했다니까요.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작정하고 가둔 것 치곤 시간이 너무 짧아. 놈들 스타일로는 적어도 1주일은 가뒀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 내 입에서 아무것도 캐내지 못한 상황에서 쫓아내듯 풀어 줬다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야.
하긴, 가출했던 저 독일놈들 양심이 갑자기 돌아왔을 리도 없고.
...누가 뒷공작을 벌였어.
우리가 풀려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울릭 주석일까?
그 사람 입김이 그 정도로 세다면 애당초 우리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지.
48시간... 몰리도가 맨발로 소련의 국경을 넘고도 남을 시간이야.
K가 후속 작전을 인계받았다고 합니다.
AK-15가 번뜩 눈을 뜨는 동시에, RPK-16도 능숙한 손동작으로 그녀의 목에 꽂힌 케이블을 뽑았다.
자아, 앉으세요 대장님~
싫어, 검사 정돈 내가 직접 할 수 있어.
이틀 내내 갇혀 있었는데, 무슨 수작이라도 당했다면 투정 부리는 걸로 안 끝나요.
지금 같은 상황이면, 3배는커녕 반값짜리 소체도 못 찾을걸요?
......
AK-12는 툴툴대며 AK-15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K가 뒷수습을? 녀석을 아주 못 믿겠는 건 아니지만...
그래봤자 몰리도한테 레드카펫 깔고 보내 주기밖에 안 돼.
지금 돌아간다 해도 늦었습니다.
알아, 저 독일놈들한테 행동 범위까지 제한받았는걸.
안젤리아는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의 썰렁한 거리를 훑어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조용한 곳에,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에, 과연 지금 이 계단에서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숨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자기네 땅에서도 이렇게 슬금슬금...
아무래도 우릴 도와준 사람이 상당한 거물인가 봐?
그렇게 고민해 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우리 모두 잠시 정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안젤리아, 지금 몸 상태론 스스로 걷는 것조차 정신력 싸움이잖아요?
이래서는 조사도 계속할 수 없어요, 그쵸?
RPK-16는 은근슬쩍 안젤리아에게 몸을 기울여, 살갑게 치근대면서도 덜덜 떨리는 안젤리아의 다리를 그윽한 눈빛으로 곁눈질했다.
하지만 AK-12가 곧바로 연결된 케이블을 홱 잡아당겨, RPK-16의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그 점은 나도 이견의 여지가 없어.
남들 앞에서 얼마나 배짱을 부리든 억지를 부리든 나야 상관없지만, 지금 그 상태로 움직이자 한다면...
무모함을 넘어 어리석은 짓이야.
이미 시간을 잔뜩 허비했는데...
고개를 떨군 채, 안젤리아는 자신의 무릎을 보며 약간 분한 듯 대꾸했다.
그럼 조금 더 허비해도 달라질 거 없겠네.
원래대로라면 저놈들이 1주는 가둬 뒀을 거라며?
이제 겨우 48시간에 수면 취할 몇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야.
전체적으로 보면 꽤 시간을 번 셈이라고.
......알았어.
하지만, 휴식을 취하기 전에...
몸풀기 운동은 문제없겠지?
안젤리아가 허벅지를 찰싹 치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RPK-16도 케이블을 뽑아 점검이 끝났음을 알렸고, 휴대 설비를 정리하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어머머~ 안젤리아는 청년을 반찬 삼는 걸 좋아했군요?
RPK-16은 흥미로워하면서 주변을, 특히 방금 안젤리아가 주시했던 곳을 보며 귀여운 표정으로 혀를 내밀었다.
그딴 헛소리 좀 작작 하라고...
죄측에 두 명, 우측에 세 명.
그리고 후방 건물 내부에 최소 8명으로 추정.
어떻게 처리할까요?
저 풋내기들한테 동종업계 선배를 존중하는 법이나 가르쳐 줘.
우직한 독일놈들도 고생이란 것 좀 해봐야지.
Yes, ma'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