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 카오스 Ⅰ
"...고마워요, 로빈."
점점 멀어지는 총격음을 뒤로하고, 지휘관과 댄들라이는 AR팀의 경호를 받으며 미로 같은 공장의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
...지휘관님.
미안하다 RO, 나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아뇨, 그래야 지휘관님다우신데요.
이 주변의 지형은 변동이 너무 심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이 보이지 않네요.
제기랄, 이대로 길을 못 찾으면 그리폰 소대의 희생이 무의미해져...
아예 그냥 천장을 펑~ 하고 박살내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이 바보야! 저 위에 뭐가 있는지 누가 알아?!
그리고 위의 지반이 무너져서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이렇게 단단한 벽을 파괴할 정도의 폭발물도 없어.
아무튼 움직이자, 꾸물거리다간 추격해 오는 놈들에게 따라잡혀서... 전멸하고 말 거야.
지휘관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의 벽을 주먹으로 쳤다.
제기랄!
......똑똑똑.
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벽 너머에서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AR-15 씨? 로빈? 거기 로빈이에요?!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
마흐리안?
치잇.
AR-15는 곧장 노리쇠를 당겼다.
AR-15, 기다려.
기다리긴 뭘 기다려! 넌 아직도 저년을 믿어?
내 장담하는데, 페로사도 저년한테 속았단 말이야!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증거도 있어!
증거...? 무슨 증――
로빈! 로빈!
다급하게 벽을 두드리는 마흐리안의 목소리가 지휘관의 사고를 정지시켰다.
지휘관은 잠시 침묵하다, 벽을 두드리고 대답했다.
마흐리안, 지금 어디 있지?
내부 통로에 있어요!
제 목소리를 따라 오세요!
지휘관님...?
RO, 가서 살펴봐.
네.
RO635가 고개를 끄덕이고, 마흐리안의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벽에 붙은 채로 천천히 움직였다.
네... 여기에요.
이쪽 벽에 비밀문이 있어요. 스위치가 있을 텐데, 그걸 15초 정도 누르면 열릴 거예요.
출구는 이쪽이니, 문을 열고 오세요. 제가 출구로 안내해드릴게요.
보이면 바로 기절시킬까?
함부로 움직이지 마.
나도 생각이 있어. 먼저 뭐라 하는지부터 들어보자.
벽면을 더듬던 RO635가 비밀문의 스위치를 찾았고, 잠시 지그시 누르자 정말 눈앞의 벽이 스르륵 열렸다.
RO635가 경계하며 먼저 들어가 살피니, 텅 빈 비밀 통로 안에 실험용기 몇 개를 품에 안은 마흐리안이 홀로 벽에 기대고 있었다.
로빈...!
그녀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힘없이 축 처진 팔은 더는 피가 나질 않았지만 그 출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혈청입니다.
그녀 품에 들린 물건을 보고, 댄들라이가 지휘관에게 속삭였다.
마흐리안,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여긴... 제 기억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채혈 기계에 이상한 장치가 생겼지만요...
제가 기억하는 길에 숨어, 저들의 눈을 피해서...
하지만 여러분을 찾지 못해서, 계속 위로 달렸어요... 그러다 여기에...
우리가 그딴 소릴 믿을 거 같아? 말을 지어내도 좀 더 성의 있게 하지?
거짓말이 아니에요, 부탁해요... 로빈...
마흐리안은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그녀는 말하면서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것이, 허약한 모습이 연기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벽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무 설득력 없단 생각 안 들어?
우린 당신 때문에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리폰 소대는 지금 생사도 알 수 없죠.
타당한 이유 없이는 당신을 더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이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혼자 슬쩍 어디로 사라지더니, 이렇게 뻔뻔하게 돌아와?!
......
지휘관!
댄들라이... 네 의견은?
만약 루니샤가 여기 있었다면, 분명 그녀를 믿었을 겁니다.
뭐어? 여기서 M4 얘기가 왜 나와!
내가 틀렸어?
윽... 아무튼 난 반대야!
난...
로빈...
저를 믿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당신을 믿고, 여러분을 돕겠다고 했어요...
......AR-15.
지휘관의 싸늘한 눈초리의 의미를 깨달은 마흐리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로빈...
너를 믿었어, 마흐리안.
그리고 호되게 대가를 치렀지.
마흐리안은 고개를 떨궜다.
불쌍한 척 말고 얌전히 있어!
AR-15이 사납게 총구를 들이댔지만, 그러지 않아도 마흐리안에겐 저항할 힘이, 의욕이 없었다.
천천히 다가온 AR-15가 다소 난폭하게 그녀의 품에서 혈청을 빼앗아 RO635에게 맡겼다.
잠깐 들고 있어 봐.
그러고선, 파우치에서 자외선 램프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야?
페로사에게 협력받은 "고전 전술"입니다.
페로사가 이년한테 자외선에만 반응하는 형광 가루를 묻혔다니, 그게 그들과 만났다는 확실한 증거예요.
아하.
AR-15는 기운을 잃은 마흐리안을 보면서, 확신으로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외선 램프를 켰다.
자, 이걸 보고도 어떻게 변명하나——?
하지만, 자외선이 비쳐진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왜 그래?
자, 잠깐만.
당황한 AR-15가 마흐리안을 잡아당겨 다른 어깨도 비춰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빛을 발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결국 인내심을 잃었는지, AR-15에게 그만하라 손짓했다.
시간 없어, 가자. 그녀는 여기 두고 간다.
이게 어떻게 된...
...로빈.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 길 끝에, 갈림길이 있어요...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최상층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내가 왜 네 말을 믿어야 하지?
마흐리안은 애처롭게 웃어 보였다.
당신을... 돕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
지휘관은 대답 없이 뒤돌아 손짓했다.
가자.
지휘관, 잠시만요!
이런 때에 오히려 네가 꾸물거리다니.
정말 널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앞뒤가 안 맞는단 말이야!
앞뒤가 안 맞다니, 뭐가? 저 여자에게 속아서, 우린 위기에 빠졌어!
그게 아니면 뭔데?!
하지만――
지휘관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던 찰나, 머리 위의 등불이 갑자기 깜빡였다.
좁고 긴 비밀 통로의 원래부터 음산하던 공기가, 점점 싸늘해졌다.
또각... 또각...
심연 같은 복도 저편의 어둠 속으로부터.
여인의 구두굽이 바닥을 두드리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지휘관님!
아닛!?
지휘관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늘에서 서늘한 칼날이 솟아났다.
——로빈! 안 돼!!
——!
난... 아직 널 믿어.
출구는 어느 쪽이지?
지휘관?!
AR-15이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휘관을 돌아봤다.
마흐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지휘관이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AR-15가 모두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휘관! 이년이 진짜 우릴 속였다니까요!?
AR-15, 방금 증거가 있다고 했지?
정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 줘 봐.
흥... 좋아요, 당장 증명해 보이죠!
AR-15가 파우치에서 자외선 램프를 꺼내 들었다.
어, 그게 뭐야?
눈 똑똑히 뜨고 잘 보세요!
AR-15이 램프를 마흐리안에게 들이대고 스위치를 켰다.
으음...!
......어어?
당황한 AR-15는 램프를 아예 마흐리안의 어깨에 파묻을 기세였다.
하지만 자외선으로 아무리, 양쪽 다 비춰 봐도, 마흐리안의 어깨는 깨끗했다.
AR-15...?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지금 네 꼴은 루니샤도 비웃었을 거야.
넌 좀 닥쳐 봐!
이럴 리가 없어... 분명 페로사가 어깨에 가루를 묻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자. SOP2, 네가 대신 부축해 줘.
마흐리안, 어서 출구로 안내해.
자, 손!
네...!
AR-15이 혼란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동안, 다른 인원들은 모두 다시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혈청을 전부 RO635에게 맡긴 마흐리안은 SOP2의 어깨에 기댄 채로 선두에 섰다.
SOP2의 부축을 받는 마흐리안이 안내하니, 지휘관 일행은 전진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직접 말한 것처럼, 마흐리안은 이곳의 지리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
지휘관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지휘관도 길을 알 수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혼자 뾰로통한 AR-15은 여전히 납득 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지만, 자외선 램프가 그녀에게 익숙한 흔적을 밝혔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AR-15도 일행이 곧 출구에 도착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댄들라이?
아직 교란 범위를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패러데우스가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문제없습니다.
탈출이 눈앞이었다.
......
마흐리안?
...고마워요, 로빈.
고맙다니, 뭐가?
저를 믿어 줘서요.
약속했잖아.
네, 약속했죠... 당신에게 혈청을 드리겠다고.
그건 이미 지켰어.
당신을 돕겠다고, 출구로 안내하겠다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나가는 중이지.
마흐리안은 힘겨워하면서도 웃다가, 갑자기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조금 흥분하며 낮게나마 폴짝 뛰었다.
저길 보세요!
거의 다 왔어요!
마흐리안이 가리킨 전방에, 햇빛으로 환한 입구가 마치 어두운 밤의 등대처럼 모두를 안내하고 있었다.
마흐리안은 양팔을 벌리고 뒤로 돌며, 평범한 소녀처럼 기쁨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하하...
그 빛을 보자, 지휘관도 마음을 놓으며 미소로 마흐리안에게 화답했다.
조금만 더 가면, 그들의 임무는――
——
——!
익숙한 소리가, 돌연 통로 끝에서 들려왔다.
AR-15도, 무심결에 자외선 램프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지휘관은 호흡을 잊었다.
——마흐리안!!!
로...
마흐리안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토록 그녀를 괴롭혀 왔던, 악몽 같은 발소리가 그녀 바로 뒤에 나타난 것이었다.
——!
잡았다, 사랑스런 우리 언니.
아......
흡사 거미 같은 기계팔이 마흐리안의 양옆에서 뻗어나와 팔을 붙잡았고, 예리한 칼날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녀와 감쪽같이 똑같은 얼굴이 나타나,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그녀의 뺨에 얼굴을 맞댔다.
그 섬뜩한 미소는, 지휘관이 아는 마흐리안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절대 아니었다.
......
이렇게 꼭 안으니, 우리 사이의 거리도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요?
수천 번... 수만 번을 껴안아도...
응?
우리, 사이는... 한 뼘도 가까워지지 않아...
우리 착한 언니, 여전히 고집이 세다니까요. 죽기 직전인데도 전혀 저와 친해지려 하질 않고.
뭐, 괜찮아요. 안심하고 먼저 가세요.
언니의 친구들도 하나씩 하나씩,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
마흐리안이 지휘관을 바라봤다.
로... 빈...
마흐리안의 몸이 움찔거렸고, 눈에서는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출구는...바로...
저 앞...이에요...
불쌍해라.
거대한 의수가 빠르게 수축했다.
마흐리안의 마지막 한마디는, 목에 걸려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저 희미하게, 입모양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웠어요, 로빈."
<Size=60>몰 리 도 ! ! !</Size>
마흐리안이 쓰러지면서 드러난 몰리도의 어깨에서, 형광 가루가 눈부시게 빛났다.
전체 대사 보기 (171줄)
점점 멀어지는 총격음을 뒤로하고, 지휘관과 댄들라이는 AR팀의 경호를 받으며 미로 같은 공장의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
...지휘관님.
미안하다 RO, 나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아뇨, 그래야 지휘관님다우신데요.
이 주변의 지형은 변동이 너무 심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이 보이지 않네요.
제기랄, 이대로 길을 못 찾으면 그리폰 소대의 희생이 무의미해져...
아예 그냥 천장을 펑~ 하고 박살내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이 바보야! 저 위에 뭐가 있는지 누가 알아?!
그리고 위의 지반이 무너져서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이렇게 단단한 벽을 파괴할 정도의 폭발물도 없어.
아무튼 움직이자, 꾸물거리다간 추격해 오는 놈들에게 따라잡혀서... 전멸하고 말 거야.
지휘관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의 벽을 주먹으로 쳤다.
제기랄!
......똑똑똑.
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벽 너머에서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AR-15 씨? 로빈? 거기 로빈이에요?!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
마흐리안?
치잇.
AR-15는 곧장 노리쇠를 당겼다.
AR-15, 기다려.
기다리긴 뭘 기다려! 넌 아직도 저년을 믿어?
내 장담하는데, 페로사도 저년한테 속았단 말이야!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증거도 있어!
증거...? 무슨 증――
로빈! 로빈!
다급하게 벽을 두드리는 마흐리안의 목소리가 지휘관의 사고를 정지시켰다.
지휘관은 잠시 침묵하다, 벽을 두드리고 대답했다.
마흐리안, 지금 어디 있지?
내부 통로에 있어요!
제 목소리를 따라 오세요!
지휘관님...?
RO, 가서 살펴봐.
네.
RO635가 고개를 끄덕이고, 마흐리안의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벽에 붙은 채로 천천히 움직였다.
네... 여기에요.
이쪽 벽에 비밀문이 있어요. 스위치가 있을 텐데, 그걸 15초 정도 누르면 열릴 거예요.
출구는 이쪽이니, 문을 열고 오세요. 제가 출구로 안내해드릴게요.
보이면 바로 기절시킬까?
함부로 움직이지 마.
나도 생각이 있어. 먼저 뭐라 하는지부터 들어보자.
벽면을 더듬던 RO635가 비밀문의 스위치를 찾았고, 잠시 지그시 누르자 정말 눈앞의 벽이 스르륵 열렸다.
RO635가 경계하며 먼저 들어가 살피니, 텅 빈 비밀 통로 안에 실험용기 몇 개를 품에 안은 마흐리안이 홀로 벽에 기대고 있었다.
로빈...!
그녀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힘없이 축 처진 팔은 더는 피가 나질 않았지만 그 출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혈청입니다.
그녀 품에 들린 물건을 보고, 댄들라이가 지휘관에게 속삭였다.
마흐리안,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여긴... 제 기억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채혈 기계에 이상한 장치가 생겼지만요...
제가 기억하는 길에 숨어, 저들의 눈을 피해서...
하지만 여러분을 찾지 못해서, 계속 위로 달렸어요... 그러다 여기에...
우리가 그딴 소릴 믿을 거 같아? 말을 지어내도 좀 더 성의 있게 하지?
거짓말이 아니에요, 부탁해요... 로빈...
마흐리안은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그녀는 말하면서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것이, 허약한 모습이 연기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벽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너무 설득력 없단 생각 안 들어?
우린 당신 때문에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리폰 소대는 지금 생사도 알 수 없죠.
타당한 이유 없이는 당신을 더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이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혼자 슬쩍 어디로 사라지더니, 이렇게 뻔뻔하게 돌아와?!
......
지휘관!
댄들라이... 네 의견은?
만약 루니샤가 여기 있었다면, 분명 그녀를 믿었을 겁니다.
뭐어? 여기서 M4 얘기가 왜 나와!
내가 틀렸어?
윽... 아무튼 난 반대야!
난...
로빈...
저를 믿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당신을 믿고, 여러분을 돕겠다고 했어요...
......
......AR-15.
지휘관의 싸늘한 눈초리의 의미를 깨달은 마흐리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로빈...
너를 믿었어, 마흐리안.
그리고 호되게 대가를 치렀지.
마흐리안은 고개를 떨궜다.
불쌍한 척 말고 얌전히 있어!
AR-15이 사납게 총구를 들이댔지만, 그러지 않아도 마흐리안에겐 저항할 힘이, 의욕이 없었다.
천천히 다가온 AR-15가 다소 난폭하게 그녀의 품에서 혈청을 빼앗아 RO635에게 맡겼다.
잠깐 들고 있어 봐.
그러고선, 파우치에서 자외선 램프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야?
페로사에게 협력받은 "고전 전술"입니다.
페로사가 이년한테 자외선에만 반응하는 형광 가루를 묻혔다니, 그게 그들과 만났다는 확실한 증거예요.
아하.
AR-15는 기운을 잃은 마흐리안을 보면서, 확신으로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외선 램프를 켰다.
자, 이걸 보고도 어떻게 변명하나——?
하지만, 자외선이 비쳐진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왜 그래?
자, 잠깐만.
당황한 AR-15가 마흐리안을 잡아당겨 다른 어깨도 비춰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빛을 발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결국 인내심을 잃었는지, AR-15에게 그만하라 손짓했다.
시간 없어, 가자. 그녀는 여기 두고 간다.
이게 어떻게 된...
...로빈.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 길 끝에, 갈림길이 있어요...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최상층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내가 왜 네 말을 믿어야 하지?
마흐리안은 애처롭게 웃어 보였다.
당신을... 돕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
지휘관은 대답 없이 뒤돌아 손짓했다.
가자.
지휘관, 잠시만요!
이런 때에 오히려 네가 꾸물거리다니.
정말 널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앞뒤가 안 맞는단 말이야!
앞뒤가 안 맞다니, 뭐가? 저 여자에게 속아서, 우린 위기에 빠졌어!
그게 아니면 뭔데?!
하지만――
지휘관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던 찰나, 머리 위의 등불이 갑자기 깜빡였다.
좁고 긴 비밀 통로의 원래부터 음산하던 공기가, 점점 싸늘해졌다.
또각... 또각...
심연 같은 복도 저편의 어둠 속으로부터.
여인의 구두굽이 바닥을 두드리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지휘관님!
아닛!?
지휘관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늘에서 서늘한 칼날이 솟아났다.
——로빈! 안 돼!!
——!
난... 아직 널 믿어.
출구는 어느 쪽이지?
지휘관?!
AR-15이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휘관을 돌아봤다.
마흐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지휘관이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AR-15가 모두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휘관! 이년이 진짜 우릴 속였다니까요!?
AR-15, 방금 증거가 있다고 했지?
정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 줘 봐.
흥... 좋아요, 당장 증명해 보이죠!
AR-15가 파우치에서 자외선 램프를 꺼내 들었다.
어, 그게 뭐야?
눈 똑똑히 뜨고 잘 보세요!
AR-15이 램프를 마흐리안에게 들이대고 스위치를 켰다.
으음...!
......어어?
당황한 AR-15는 램프를 아예 마흐리안의 어깨에 파묻을 기세였다.
하지만 자외선으로 아무리, 양쪽 다 비춰 봐도, 마흐리안의 어깨는 깨끗했다.
AR-15...?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지금 네 꼴은 루니샤도 비웃었을 거야.
넌 좀 닥쳐 봐!
이럴 리가 없어... 분명 페로사가 어깨에 가루를 묻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자. SOP2, 네가 대신 부축해 줘.
마흐리안, 어서 출구로 안내해.
자, 손!
네...!
AR-15이 혼란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동안, 다른 인원들은 모두 다시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혈청을 전부 RO635에게 맡긴 마흐리안은 SOP2의 어깨에 기댄 채로 선두에 섰다.
SOP2의 부축을 받는 마흐리안이 안내하니, 지휘관 일행은 전진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직접 말한 것처럼, 마흐리안은 이곳의 지리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
지휘관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지휘관도 길을 알 수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혼자 뾰로통한 AR-15은 여전히 납득 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지만, 자외선 램프가 그녀에게 익숙한 흔적을 밝혔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AR-15도 일행이 곧 출구에 도착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댄들라이?
아직 교란 범위를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패러데우스가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문제없습니다.
탈출이 눈앞이었다.
......
마흐리안?
...고마워요, 로빈.
고맙다니, 뭐가?
저를 믿어 줘서요.
약속했잖아.
네, 약속했죠... 당신에게 혈청을 드리겠다고.
그건 이미 지켰어.
당신을 돕겠다고, 출구로 안내하겠다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나가는 중이지.
마흐리안은 힘겨워하면서도 웃다가, 갑자기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조금 흥분하며 낮게나마 폴짝 뛰었다.
저길 보세요!
거의 다 왔어요!
마흐리안이 가리킨 전방에, 햇빛으로 환한 입구가 마치 어두운 밤의 등대처럼 모두를 안내하고 있었다.
마흐리안은 양팔을 벌리고 뒤로 돌며, 평범한 소녀처럼 기쁨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하하...
그 빛을 보자, 지휘관도 마음을 놓으며 미소로 마흐리안에게 화답했다.
조금만 더 가면, 그들의 임무는――
——
——!
익숙한 소리가, 돌연 통로 끝에서 들려왔다.
AR-15도, 무심결에 자외선 램프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지휘관은 호흡을 잊었다.
——마흐리안!!!
로...
마흐리안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토록 그녀를 괴롭혀 왔던, 악몽 같은 발소리가 그녀 바로 뒤에 나타난 것이었다.
——!
잡았다, 사랑스런 우리 언니.
아......
흡사 거미 같은 기계팔이 마흐리안의 양옆에서 뻗어나와 팔을 붙잡았고, 예리한 칼날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녀와 감쪽같이 똑같은 얼굴이 나타나,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그녀의 뺨에 얼굴을 맞댔다.
그 섬뜩한 미소는, 지휘관이 아는 마흐리안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절대 아니었다.
......
이렇게 꼭 안으니, 우리 사이의 거리도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요?
수천 번... 수만 번을 껴안아도...
응?
우리, 사이는... 한 뼘도 가까워지지 않아...
우리 착한 언니, 여전히 고집이 세다니까요. 죽기 직전인데도 전혀 저와 친해지려 하질 않고.
뭐, 괜찮아요. 안심하고 먼저 가세요.
언니의 친구들도 하나씩 하나씩,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
마흐리안이 지휘관을 바라봤다.
로... 빈...
마흐리안의 몸이 움찔거렸고, 눈에서는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출구는...바로...
저 앞...이에요...
불쌍해라.
거대한 의수가 빠르게 수축했다.
마흐리안의 마지막 한마디는, 목에 걸려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저 희미하게, 입모양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웠어요, 로빈."
<Size=60>몰 리 도 ! ! !</Size>
마흐리안이 쓰러지면서 드러난 몰리도의 어깨에서, 형광 가루가 눈부시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