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난 오늘 반드시 들어간다, 아무도 막을 생각 말라고."
2주 전.
......
......
......
익숙한 건물의 입구 앞에서, 그레이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물며 거무튀튀한 액체에 잠긴 폐허를 바라봤다.
냄새 한번 지독하군.
붕괴액입니다... 벌써 이렇게나 침식되다니...
전전긍긍하며 뒤따라오는 하얀 니토와 함께, 그레이는 폐허 안으로 발을 디뎠다.
뾰족한 하이힐이 난잡하게 깨진 벽돌 조각을 밟자 튀어오른 흙탕물이, 그녀의 바지 자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
아무리 나르시스 님이라도, 이건... 지나칩니다.
......
몇 걸음 안 가, 발밑에서 잘근거리던 벽돌 조각과는 색다른 소리가 들렸다.
나르시스의 부유검... 정확히는 부서진 부유검의 조각이었다.
이건... 나르시스 님의 칼날?
아버님의 최고 걸작이 어떻게 이리...
부글부글....
!
그레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 이 사이에 물려 있던 사탕이 으직 깨졌다.
하얀 니토가 칼날 조각을 집는 그 순간, 그녀 앞의 구정물이 끓어오르는 듯 거품이 일었다.
그리고 시꺼멓고 가느다란 형체가 솟구치면서 오물을 흩뿌려, 하얀 니토의 눈을 가렸다.
커헉!?
하얀 니토의 목을, 반토막 난 팔이 움켜쥐었다. 지독한 악취의 점액질의 오물 속에서 뻗어나온 그 팔뚝은 틀림없는 나르시스의 것이었다.
나르시스를 찢어버릴 정도의 힘이라...
목이 졸려 몸부림치는 니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레이는 매우 흥미로워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큭... 카학......
결국 신음이 거의 멎어 갈 지경이 되어서야, 그레이는 하얀 니토를 나르시스의 손아귀에서 풀어 주었다.
허억! 콜록콜록...
――어... 죽여버리겠어...
쓰레기들... 망할 쓰레기들...
인사불성임에도 계속해서 욕을 내뱉는 나르시스가 수면에 떠올랐다. 얼굴은 부서지고, 몸뚱이는 상반신 일부만 남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나, 나르시스 님...!
가엾기도 하지.
죽어... 다 죽어...
대적할 자 없는 나르시스 님이 어떻게 이렇게...
손상도, 약 80%... 즉시 회수해 수복해야 합니다.
그, 그런데...
몰리도 님은 어디에...? 적의 시체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스승님은 여기에 없다.
삐빅.
때마침 하얀 니토의 통신음이 울렸다.
......
그레이 님,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
그 애는 네가 데려가고, 애들한테는 현장 말끔하게 청소하라 해.
나머진 모조리 폭파해 버려.
네.
다... 죽여버릴 거야...
......
......
국가안전국의 차단선이 양옥 주위를 철저하게 둘러싸, 베를린의 경찰들마저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따금씩 경비 담당 요원들이, 할일 없는 기자들이나 혹시 모를 불법 침임자를 경계하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하아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이 안건, 쭉 내가 담당이었잖아.
근데 너 또 왜 이런 타이밍에 나타나선 냅다 지휘권부터 뺏냐? 엉? 그리고 왜 내가 조사하면 안 되는데? 지금 나 따돌리냐?
얌마, 케인. 너 머리에 문제라도 생겼어? 말 좀 해 보라니까?
...일단 진정부터 해라, J.
통신기 너머의 K는 단어 선택에 신중하려는 듯 뜸을 들였다.
우선 너도 알다시피, 이번 일에 대해선 우리 안전국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는 중이다.
담당인 너야 패러데우스가 라이트와 안젤리아를 습격했다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보고만 받던 우리 입장에서 볼 땐 그렇지 않아.
현장에 남은 것이라곤 우리 요원들의 시신과 신소련 인형의 잔해밖에 없었어. 패러데우스는 흔적은커녕 정말 놈들이 정말 습격했는지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지금 너도 저놈들 말을 믿는단 거냐?
뭐? "안젤리아가 요원들을 기습, 살해하고 도주했다"?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제기랄!
내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감정적으로 항변하는 J에게 K도 절로 언성을 높였다.
그저 소련인이라서 안젤리아를 아니꼽게 보던 자들은 진작부터 있었어!
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란 걸 너도 알 거 아니야!
그리고 아직 조사 중이다! 아무도 확답을 내리지 않았으니까 진정하고 결론 나올 때까지 기다려!
그러니까 조사 내가 하겠다니까!? 오늘이면 끝이라고!
내일 동터서 테이프 치우고 현장 인계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못 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쓰으읍...... 왜.
...이 일은 더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일의 복잡함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안젤리아를 찾는 데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기보다, 지금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해.
그러니까... 안젤리아도 포기하고, 젊은 나이에 희생한 녀석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않겠다?
신임 국장의 의사다.
하, 새로 부임했다고 아주 기세가 등등하시구만.
J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니까 잠자코 듣기나 해.
지금은 민감한 시기니, 멍청한 짓은 하지도 말고 생각도――
더는 못 듣겠는지, J가 통신을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통신기를 쥔 손으로 핸들을 쾅 내리쳤다.
바보 짓 하지 말라고?
너나 바보 같은 소리 마셔...
이걸...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
젠장... 오늘 반드시 들어가고 만다. 막을 수 있음 막아보라 해.
경찰 신고 소식을 받자마자 출동한 슈타지였지만, 이번 사건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세간에 공개되선 안 될 단서는 전부 확보했고, 여론의 시선도 전부 희생자들에게 집중되어 정부에게 비난과 질의의 화살이 돌려졌다.
그중 가장 격하게 반응했던 것은 바로 유명 아나운서 겸 기자 섀도리스였다.
섀도...
J가 몸을 뒤로 젖혀 머리를 운전석 머리 받침에 부딪히는 모습에, 따라왔던 부하 요원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정말 하실 겁니까?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거 같냐.
아뇨, 하지만 전혀 형님답지 않아서 말입니다.
슈타지 요원이 슈타지가 봉쇄한 건물에 잠입한다니...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들켰다간 진술서 쓰는 걸로 안 끝날 겁니다!
하, 내가 너보다 규정을 모를까 봐?
아침이 되면 저 안의 물건들은 죄다 부수고 들어내고 치워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남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나중 가서 진실을 파헤치려 해도 신한테 기도나 하는 수밖에 없어!
......
J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양옥에서의 사건 직후 전임 국장은 바로 경질된 한편, 최근 들어 독일의 국내 정세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성되어 갈수록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지는 형국이었다.
J도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라도 이 베를린이라는 불구덩이에서 빠져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나중에 관련 증거물 열람 신청하면 안 됩니까?
......
슈타지의 방식은 내가 잘 알아...
처음부터 안 끼워 준 사람은 영원히 안 끼워 줘.
너도 괜히 불똥 튀고 싶지 않은 거 아니까, 그냥 망만 봐 줘. 나 혼자 들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J는 고개를 끄덕이고, 헌팅캡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차에서 내렸다.
라이트의 죽음이, 이렇게 흐지부지되는 것은 절대 두고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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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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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건물의 입구 앞에서, 그레이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물며 거무튀튀한 액체에 잠긴 폐허를 바라봤다.
냄새 한번 지독하군.
붕괴액입니다... 벌써 이렇게나 침식되다니...
전전긍긍하며 뒤따라오는 하얀 니토와 함께, 그레이는 폐허 안으로 발을 디뎠다.
뾰족한 하이힐이 난잡하게 깨진 벽돌 조각을 밟자 튀어오른 흙탕물이, 그녀의 바지 자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
아무리 나르시스 님이라도, 이건... 지나칩니다.
......
몇 걸음 안 가, 발밑에서 잘근거리던 벽돌 조각과는 색다른 소리가 들렸다.
나르시스의 부유검... 정확히는 부서진 부유검의 조각이었다.
이건... 나르시스 님의 칼날?
아버님의 최고 걸작이 어떻게 이리...
부글부글....
!
그레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 이 사이에 물려 있던 사탕이 으직 깨졌다.
하얀 니토가 칼날 조각을 집는 그 순간, 그녀 앞의 구정물이 끓어오르는 듯 거품이 일었다.
그리고 시꺼멓고 가느다란 형체가 솟구치면서 오물을 흩뿌려, 하얀 니토의 눈을 가렸다.
커헉!?
하얀 니토의 목을, 반토막 난 팔이 움켜쥐었다. 지독한 악취의 점액질의 오물 속에서 뻗어나온 그 팔뚝은 틀림없는 나르시스의 것이었다.
나르시스를 찢어버릴 정도의 힘이라...
목이 졸려 몸부림치는 니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레이는 매우 흥미로워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큭... 카학......
결국 신음이 거의 멎어 갈 지경이 되어서야, 그레이는 하얀 니토를 나르시스의 손아귀에서 풀어 주었다.
허억! 콜록콜록...
――어... 죽여버리겠어...
쓰레기들... 망할 쓰레기들...
인사불성임에도 계속해서 욕을 내뱉는 나르시스가 수면에 떠올랐다. 얼굴은 부서지고, 몸뚱이는 상반신 일부만 남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나, 나르시스 님...!
가엾기도 하지.
죽어... 다 죽어...
대적할 자 없는 나르시스 님이 어떻게 이렇게...
손상도, 약 80%... 즉시 회수해 수복해야 합니다.
그, 그런데...
몰리도 님은 어디에...? 적의 시체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스승님은 여기에 없다.
삐빅.
때마침 하얀 니토의 통신음이 울렸다.
......
그레이 님,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
그 애는 네가 데려가고, 애들한테는 현장 말끔하게 청소하라 해.
나머진 모조리 폭파해 버려.
네.
다... 죽여버릴 거야...
......
......
국가안전국의 차단선이 양옥 주위를 철저하게 둘러싸, 베를린의 경찰들마저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따금씩 경비 담당 요원들이, 할일 없는 기자들이나 혹시 모를 불법 침임자를 경계하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하아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이 안건, 쭉 내가 담당이었잖아.
근데 너 또 왜 이런 타이밍에 나타나선 냅다 지휘권부터 뺏냐? 엉? 그리고 왜 내가 조사하면 안 되는데? 지금 나 따돌리냐?
얌마, 케인. 너 머리에 문제라도 생겼어? 말 좀 해 보라니까?
<color=#00CCFF>...일단 진정부터 해라, J.</color>
통신기 너머의 K는 단어 선택에 신중하려는 듯 뜸을 들였다.
<color=#00CCFF>우선 너도 알다시피, 이번 일에 대해선 우리 안전국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는 중이다.</color>
<color=#00CCFF>담당인 너야 패러데우스가 라이트와 안젤리아를 습격했다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보고만 받던 우리 입장에서 볼 땐 그렇지 않아.</color>
<color=#00CCFF>현장에 남은 것이라곤 우리 요원들의 시신과 신소련 인형의 잔해밖에 없었어. 패러데우스는 흔적은커녕 정말 놈들이 정말 습격했는지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color>
그래서 지금 너도 저놈들 말을 믿는단 거냐?
뭐? "안젤리아가 요원들을 기습, 살해하고 도주했다"?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제기랄!
<color=#00CCFF>내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color>
감정적으로 항변하는 J에게 K도 절로 언성을 높였다.
<color=#00CCFF>그저 소련인이라서 안젤리아를 아니꼽게 보던 자들은 진작부터 있었어!</color>
<color=#00CCFF>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란 걸 너도 알 거 아니야!</color>
<color=#00CCFF>그리고 아직 조사 중이다! 아무도 확답을 내리지 않았으니까 진정하고 결론 나올 때까지 기다려!</color>
그러니까 조사 내가 하겠다니까!? 오늘이면 끝이라고!
내일 동터서 테이프 치우고 현장 인계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못 해!
<color=#00CCFF>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color>
쓰으읍...... 왜.
<color=#00CCFF>...이 일은 더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color>
<color=#00CCFF>일의 복잡함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color>
<color=#00CCFF>안젤리아를 찾는 데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기보다, 지금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해.</color>
그러니까... 안젤리아도 포기하고, 젊은 나이에 희생한 녀석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않겠다?
<color=#00CCFF>신임 국장의 의사다.</color>
하, 새로 부임했다고 아주 기세가 등등하시구만.
J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color=#00CCFF>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니까 잠자코 듣기나 해.</color>
<color=#00CCFF>지금은 민감한 시기니, 멍청한 짓은 하지도 말고 생각도――</color>
더는 못 듣겠는지, J가 통신을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통신기를 쥔 손으로 핸들을 쾅 내리쳤다.
바보 짓 하지 말라고?
너나 바보 같은 소리 마셔...
이걸...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
젠장... 오늘 반드시 들어가고 만다. 막을 수 있음 막아보라 해.
경찰 신고 소식을 받자마자 출동한 슈타지였지만, 이번 사건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세간에 공개되선 안 될 단서는 전부 확보했고, 여론의 시선도 전부 희생자들에게 집중되어 정부에게 비난과 질의의 화살이 돌려졌다.
그중 가장 격하게 반응했던 것은 바로 유명 아나운서 겸 기자 섀도리스였다.
섀도...
J가 몸을 뒤로 젖혀 머리를 운전석 머리 받침에 부딪히는 모습에, 따라왔던 부하 요원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정말 하실 겁니까?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거 같냐.
아뇨, 하지만 전혀 형님답지 않아서 말입니다.
슈타지 요원이 슈타지가 봉쇄한 건물에 잠입한다니...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들켰다간 진술서 쓰는 걸로 안 끝날 겁니다!
하, 내가 너보다 규정을 모를까 봐?
아침이 되면 저 안의 물건들은 죄다 부수고 들어내고 치워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남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나중 가서 진실을 파헤치려 해도 신한테 기도나 하는 수밖에 없어!
......
J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양옥에서의 사건 직후 전임 국장은 바로 경질된 한편, 최근 들어 독일의 국내 정세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성되어 갈수록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지는 형국이었다.
J도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라도 이 베를린이라는 불구덩이에서 빠져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나중에 관련 증거물 열람 신청하면 안 됩니까?
......
슈타지의 방식은 내가 잘 알아...
처음부터 안 끼워 준 사람은 영원히 안 끼워 줘.
너도 괜히 불똥 튀고 싶지 않은 거 아니까, 그냥 망만 봐 줘. 나 혼자 들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J는 고개를 끄덕이고, 헌팅캡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차에서 내렸다.
라이트의 죽음이, 이렇게 흐지부지되는 것은 절대 두고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