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우린 아직도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주점 "미네르바의 부엉이".
딸랑딸랑.
낡은 괘종시계가 초인종 소리에 공명해 흔들렸다.
들어가십시오. 저희는 밖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부탁해요.
경호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다 울릭은 낡은 술집으로 발을 내디뎠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이 술집에는 술의 알코올 냄새와 은은한 꽃향기가 만연했다.
당신이 베를린에서 사업을 한다고는 들었지만... 술집일 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당신의 이미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네요.
홀의 중앙에 문을 등지고 앉은 남자가 있었다. 소리가 들리자 기품 있는 움직임으로 진한 향의 홍차를 내려놓곤, 고개를 돌려 울릭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그런 케케묵은 영국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곳의 분위기를 좋아하죠.
울릭은 훈작사가 내어 준 의자에 조용히 앉아,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울릭 여사.
저야말로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죠?
현상황에서, 당신의 방식은 너무 급진적이지 않을까요? 소련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많다는 건 모르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고풍스런 도자기 찻잔에 든 액체는 이물질도 없고 탁하지도 않은 맑은 차였다.
하지만, 울릭은 잔을 들지 않았다.
저에게 이유 없는 행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전부 명확한 목적이 있죠.
목표를 달성하려면 신뢰가 필요합니다.
훈작사, 우리는 이미 충분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땅한 보답을 받지 못했어요.
그 실종된 소련 요원은 당신의 명령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안젤리아 요원이 저의 명령에 불복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명령을 따랐다면, 결코 지금 같은 처지가 되지 않았을 테지요.
그래도 안심하십시오, 울릭 여사. 저도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길 바라요.
약간이나마 감정이 새어나온 것을 의식한 울릭은 눈을 감아 마음을 다스린 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흥분했습니다.
이 정도의 일로 당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 위업의 성패를 가르는 마지막 단계에 관련된 일이니, 우리의 우려를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께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에 관해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건지 꼭 알고 싶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조금 의외로군요. 여사라면 장군보단 오버슈타인 장관과 접촉한 일을 더 개의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오버슈타인은 독일 정치권의 핵심 구성원이자, 예전부터 배후에서 갈라테아 그룹을 지지하던 자입니다.
당신이 그와 접촉한 것은 이상할 것 없죠. 그는 우리의 위업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니까요.
하지만...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이 그리 중요한가요?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두드려보는 것이지요.
그의 의중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저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이렇게까지 했다고요?
그가 어째서 그쪽에 서기로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폰은 빈 잔을 탁상에 내려놓고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우리가 아무리 힘을 모아도 우리의 상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우린 아직도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아주 불확실하고 위험한 변수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 인물... 오버슈타인 장관이 아니란 말인가요?
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가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문점은 있죠. 제가 해석할 수 없는 의문점이. 그게 언젠가는 우리의 약점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압니다.
허나, 최후에 이 모든 것이 값어치를 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놀랐어요, 훈작사. 당신이 그토록 멀리 바라보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죠... 적은 숨었는데 우리는 드러난 상황은, 아주 불안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의 수단 방법은 상식을 넘었다고 봅니다.
정반대입니다, 울릭 여사.
저는 지금조차도 제 방식이 보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시간은 사실상 이제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그리폰은 잠깐 뜸을 들이고, 미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거의 모든 행동이, 그의 손바닥 안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우물쭈물하다간 결국 그가 짜 놓은 그물에 걸릴 뿐이겠죠.
판을 어지럽히고, 그것도 부족하다면 판을 뒤엎어서라도 그의 예측을 뛰어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현재로선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중도파가 동요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만 해요.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판사판이죠.
...알겠습니다.
당신이 맡기신 일을 처리해드리죠.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울릭이 시계를 보곤 시간이 됐음을 눈짓했다.
그리고 단순 회견이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일어나거라.
잠시 후, 훈작사도 일어나 뒤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인형이 눈을 떴다.
KH2002, 명령 대기 중.
자료와 물품은 전달했다. 그들을 찾아 연락시켜라.
알겠습니다.
베를린 교외의 오두막.
은신처 안에 모인 AR팀에게, UMP45가 한 정보 코드를 전송해 주었다.
이건 몰리도가 M4에게 처리당하기 전에 우리가 가로채는 데 성공한 정보 코드야.
나랑 M4가 연구해보긴 했는데, 몰리도가 이거 말고 보낸 게 있는지 여부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그래도 잘했어.
몰리도가 뭐라고 했나요?
어느 시설의 위치를 말했어. "이아손의 상자"의 개발, 생산에 관계됐다고 해.
그리고... 통일절이 오기 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다고도 하더군.
통일절?
독일 최대의 국경일이지.
해마다 주최 도시를 선정해서, 아주 성대하게 축제를 열어. 모조리 날려버리는 계획을 실행하기엔 안성맞춤이야.
그런 축제가 벌어지는 와중에 움직이려면 엄청 많은 인력이 필요해요.
지원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못할 거에요.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져.
지휘관은 잠깐 머뭇했다.
...그래, 실질적으론 우리의 임무는 진작에 종결됐어.
지휘관은 쉰 목청을 가다듬고 한데 모인 인형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훈작사와 다시 연락이 닿을 때까지, 몰리도가 우리 손 안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도 그녀를 언제까지고 붙잡아둘 이유가 없고.
우리는 일개 PMC에 불과해.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지.
명령 없이는...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 줄 수조차도 없어.
그리폰 소대는 물론이고, 마흐리안, 그리고 생사불명인 안젤리아 씨까지.
이 원한을, 난 절대 내려놓지 않을 거야.
지휘관은 무척 담담한 어조였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설명하는 투였다.
하지만, 베를린에 온 직후부터 수많은 고비와 갈등, 싸움, 절망까지 겪었음에도, 신념만큼은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우리의 동료가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도, 가만 있기만 할 순 없어.
와아, 훌륭한 연설이야 지휘관♪
45, 기지에 연락해서 헬리안 씨에게 지원이 필요하다 전해 줘.
우릴 지원할 여유가 있기는 할까?
적어도 물어는 봐야지.
당장으로선 훈작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지만, 중요한 단서를 얻었는데 무시할 순 없어.
어쩌면 "그 인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기회일지도 몰라.
그리고...
지휘관이 다시 잠깐 뜸을 들였다.
...연락은 안 되지만, 안젤리아 씨는 분명 살아있을 거야.
우리가 움직인다면,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지휘관님...
그럼 바로 움직이죠.
네, 지휘관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시더라도 저흰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몰리도가 우리에게 사로잡혔단 걸 패러데우스도 알고 있는 이상 가만 있지 않을걸?
그년도 능력상 여태까지 겨우 이 정보 코드 한 줄만 보냈을 리가 없다고.
AR-15가 UMP45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 몰리도가 제공한 위치에 가 보는 건 동의해요. 단, 조건이 있어요.
지휘관은 들어가지 마세요.
저희가 몰리도와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또 지휘관님이 목숨이 위태로운 모험을 하시는 것엔 결사반대예요.
그래 알았어, 공장에 들어가진 않을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 남아있을 수도 없잖아.
404 소대와 함께 공장 입구에 대기할게, 그럼 됐지?
몰리도에게 제공받은 위치의 패러데우스 기지.
문 앞에 기기괴괴하게 자란 무성한 잡초를 헤치자 드러난 통로는 저 안쪽으로부터 코를 찌르는 쇠비린내가 풍겨왔다.
문자 그대로,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그 공장이랑 다를 바 없어보이는데.
왜, 우리 아웃테리어 스타일에 불만 있어?
알았어 알았어, 피드백을 수렴해서 다음엔 개선하도록 할게~
흥, 아직도 네가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누가 알아? 로빈이 나더러 그만 가도 좋다고 할지.
그쵸, 로빈~?
AR-15는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몰리도의 등을 개머리판으로 쿡 밀었다.
앞장서.
그럼 이거 풀어 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움직여.
로빈~ 살려 주세요~
이게 진짜... 넌 "이아손의 상자"를 찾아내서 우리한테 건네주면 그만이야.
도중에 아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나기라도 해 봐... 매복이 있다든지, 이아손의 상자가 가짜든지 하면...
그러니까 날 풀어 달라고.
보다시피 여긴 오래전 버려진 공장이고, 저 안엔 위험한 폐기물투성이야.
그래, 너희가 전에 봤던 "이아손의 상자"의 초기형도 있고 말이지.
꽁꽁 묶인 채로는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아서, 난 그냥 짐덩어리밖에 안 돼~
AR-15, 풀어 줘도 돼요.
M4가 조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AR-15는 하는 수 없이 몰리도의 구속을 풀었다.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 몰리도의 거동에 주의하렴.
물론이죠. 그리고 M4 씨도 함께잖아요.
네.
조심해.
몰리도를 앞장 세우고서, AR팀은 다시 한번 폐공장의 시꺼먼 입 속으로 사라졌다.
버려진 패러데우스 기지의 어느 통로.
여기는 UMP45. AR팀~? 잘 들려~?
통신 감도 양호.
지난번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엔 전원에게 위치 추적기와 내부 통신 장치를 달았어.
만약 통신이 두절된다면 그 즉시 사전에 정한 경로로 움직여. 알았지?
확인했습니다.
그럼 작전 수고하고, 정기 연락 기다릴게.
통신을 종료하자마자, 잘만 걷던 몰리도가 갑자기 힘이 빠진 듯 벽을 짚었다. 이를 본 AR-15는 냉큼 총구로 몰리도의 머리를 찔렀다.
일어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
후우... 너도 몇십 시간 고문당해 봐, 나처럼 허약해지지.
니토 주제에 인간 흉내내지 말지?
나도 원래는 인간이었거든? 다치기도 하고, 피로해지기도 하고...
그 실랑이를 중재하듯, M4A1이 몰리도를 부축했다.
가요.
아아~ 역시 지금 나한텐 니모겐밖에 없구나~
공장의 다른 어딘가.
하얀 니토들은 감히 소리를 낼 엄두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감시 카메라에 연결된 모니터가 몰리도의 모습을 또렷하게 비췄지만, 그레이의 명령 없이는 아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곧 투기한 폐기물에 도달합니다.
에피타이저가 손님들 입맛에 맞는다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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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 "미네르바의 부엉이".
딸랑딸랑.
낡은 괘종시계가 초인종 소리에 공명해 흔들렸다.
들어가십시오. 저희는 밖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부탁해요.
경호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다 울릭은 낡은 술집으로 발을 내디뎠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이 술집에는 술의 알코올 냄새와 은은한 꽃향기가 만연했다.
당신이 베를린에서 사업을 한다고는 들었지만... 술집일 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당신의 이미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네요.
홀의 중앙에 문을 등지고 앉은 남자가 있었다. 소리가 들리자 기품 있는 움직임으로 진한 향의 홍차를 내려놓곤, 고개를 돌려 울릭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그런 케케묵은 영국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곳의 분위기를 좋아하죠.
울릭은 훈작사가 내어 준 의자에 조용히 앉아,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울릭 여사.
저야말로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죠?
현상황에서, 당신의 방식은 너무 급진적이지 않을까요? 소련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많다는 건 모르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고풍스런 도자기 찻잔에 든 액체는 이물질도 없고 탁하지도 않은 맑은 차였다.
하지만, 울릭은 잔을 들지 않았다.
저에게 이유 없는 행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전부 명확한 목적이 있죠.
목표를 달성하려면 신뢰가 필요합니다.
훈작사, 우리는 이미 충분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땅한 보답을 받지 못했어요.
그 실종된 소련 요원은 당신의 명령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안젤리아 요원이 저의 명령에 불복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명령을 따랐다면, 결코 지금 같은 처지가 되지 않았을 테지요.
그래도 안심하십시오, 울릭 여사. 저도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길 바라요.
약간이나마 감정이 새어나온 것을 의식한 울릭은 눈을 감아 마음을 다스린 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흥분했습니다.
이 정도의 일로 당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 위업의 성패를 가르는 마지막 단계에 관련된 일이니, 우리의 우려를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께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에 관해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건지 꼭 알고 싶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조금 의외로군요. 여사라면 장군보단 오버슈타인 장관과 접촉한 일을 더 개의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오버슈타인은 독일 정치권의 핵심 구성원이자, 예전부터 배후에서 갈라테아 그룹을 지지하던 자입니다.
당신이 그와 접촉한 것은 이상할 것 없죠. 그는 우리의 위업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니까요.
하지만... 슈바인슈타이거 장군이 그리 중요한가요?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두드려보는 것이지요.
그의 의중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저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이렇게까지 했다고요?
그가 어째서 그쪽에 서기로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폰은 빈 잔을 탁상에 내려놓고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우리가 아무리 힘을 모아도 우리의 상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우린 아직도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아주 불확실하고 위험한 변수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 인물... 오버슈타인 장관이 아니란 말인가요?
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가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문점은 있죠. 제가 해석할 수 없는 의문점이. 그게 언젠가는 우리의 약점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압니다.
허나, 최후에 이 모든 것이 값어치를 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놀랐어요, 훈작사. 당신이 그토록 멀리 바라보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죠... 적은 숨었는데 우리는 드러난 상황은, 아주 불안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의 수단 방법은 상식을 넘었다고 봅니다.
정반대입니다, 울릭 여사.
저는 지금조차도 제 방식이 보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시간은 사실상 이제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그리폰은 잠깐 뜸을 들이고, 미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거의 모든 행동이, 그의 손바닥 안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우물쭈물하다간 결국 그가 짜 놓은 그물에 걸릴 뿐이겠죠.
판을 어지럽히고, 그것도 부족하다면 판을 뒤엎어서라도 그의 예측을 뛰어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현재로선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중도파가 동요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만 해요.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판사판이죠.
...알겠습니다.
당신이 맡기신 일을 처리해드리죠.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울릭이 시계를 보곤 시간이 됐음을 눈짓했다.
그리고 단순 회견이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일어나거라.
잠시 후, 훈작사도 일어나 뒤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인형이 눈을 떴다.
KH2002, 명령 대기 중.
자료와 물품은 전달했다. 그들을 찾아 연락시켜라.
알겠습니다.
베를린 교외의 오두막.
은신처 안에 모인 AR팀에게, UMP45가 한 정보 코드를 전송해 주었다.
이건 몰리도가 M4에게 처리당하기 전에 우리가 가로채는 데 성공한 정보 코드야.
나랑 M4가 연구해보긴 했는데, 몰리도가 이거 말고 보낸 게 있는지 여부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그래도 잘했어.
몰리도가 뭐라고 했나요?
어느 시설의 위치를 말했어. "이아손의 상자"의 개발, 생산에 관계됐다고 해.
그리고... 통일절이 오기 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다고도 하더군.
통일절?
독일 최대의 국경일이지.
해마다 주최 도시를 선정해서, 아주 성대하게 축제를 열어. 모조리 날려버리는 계획을 실행하기엔 안성맞춤이야.
그런 축제가 벌어지는 와중에 움직이려면 엄청 많은 인력이 필요해요.
지원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못할 거에요.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져.
지휘관은 잠깐 머뭇했다.
...그래, 실질적으론 우리의 임무는 진작에 종결됐어.
지휘관은 쉰 목청을 가다듬고 한데 모인 인형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훈작사와 다시 연락이 닿을 때까지, 몰리도가 우리 손 안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도 그녀를 언제까지고 붙잡아둘 이유가 없고.
우리는 일개 PMC에 불과해.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지.
명령 없이는...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 줄 수조차도 없어.
그리폰 소대는 물론이고, 마흐리안, 그리고 생사불명인 안젤리아 씨까지.
이 원한을, 난 절대 내려놓지 않을 거야.
지휘관은 무척 담담한 어조였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설명하는 투였다.
하지만, 베를린에 온 직후부터 수많은 고비와 갈등, 싸움, 절망까지 겪었음에도, 신념만큼은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우리의 동료가 아직 여기에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도, 가만 있기만 할 순 없어.
와아, 훌륭한 연설이야 지휘관♪
45, 기지에 연락해서 헬리안 씨에게 지원이 필요하다 전해 줘.
우릴 지원할 여유가 있기는 할까?
적어도 물어는 봐야지.
당장으로선 훈작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지만, 중요한 단서를 얻었는데 무시할 순 없어.
어쩌면 "그 인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기회일지도 몰라.
그리고...
지휘관이 다시 잠깐 뜸을 들였다.
...연락은 안 되지만, 안젤리아 씨는 분명 살아있을 거야.
우리가 움직인다면,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지휘관님...
그럼 바로 움직이죠.
네, 지휘관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시더라도 저흰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몰리도가 우리에게 사로잡혔단 걸 패러데우스도 알고 있는 이상 가만 있지 않을걸?
그년도 능력상 여태까지 겨우 이 정보 코드 한 줄만 보냈을 리가 없다고.
AR-15가 UMP45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 몰리도가 제공한 위치에 가 보는 건 동의해요. 단, 조건이 있어요.
지휘관은 들어가지 마세요.
저희가 몰리도와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또 지휘관님이 목숨이 위태로운 모험을 하시는 것엔 결사반대예요.
그래 알았어, 공장에 들어가진 않을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 남아있을 수도 없잖아.
404 소대와 함께 공장 입구에 대기할게, 그럼 됐지?
몰리도에게 제공받은 위치의 패러데우스 기지.
문 앞에 기기괴괴하게 자란 무성한 잡초를 헤치자 드러난 통로는 저 안쪽으로부터 코를 찌르는 쇠비린내가 풍겨왔다.
문자 그대로,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그 공장이랑 다를 바 없어보이는데.
왜, 우리 아웃테리어 스타일에 불만 있어?
알았어 알았어, 피드백을 수렴해서 다음엔 개선하도록 할게~
흥, 아직도 네가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누가 알아? 로빈이 나더러 그만 가도 좋다고 할지.
그쵸, 로빈~?
AR-15는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몰리도의 등을 개머리판으로 쿡 밀었다.
앞장서.
그럼 이거 풀어 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움직여.
로빈~ 살려 주세요~
이게 진짜... 넌 "이아손의 상자"를 찾아내서 우리한테 건네주면 그만이야.
도중에 아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나기라도 해 봐... 매복이 있다든지, 이아손의 상자가 가짜든지 하면...
그러니까 날 풀어 달라고.
보다시피 여긴 오래전 버려진 공장이고, 저 안엔 위험한 폐기물투성이야.
그래, 너희가 전에 봤던 "이아손의 상자"의 초기형도 있고 말이지.
꽁꽁 묶인 채로는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아서, 난 그냥 짐덩어리밖에 안 돼~
AR-15, 풀어 줘도 돼요.
M4가 조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AR-15는 하는 수 없이 몰리도의 구속을 풀었다.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 몰리도의 거동에 주의하렴.
물론이죠. 그리고 M4 씨도 함께잖아요.
네.
조심해.
몰리도를 앞장 세우고서, AR팀은 다시 한번 폐공장의 시꺼먼 입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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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
후우... 너도 몇십 시간 고문당해 봐, 나처럼 허약해지지.
니토 주제에 인간 흉내내지 말지?
나도 원래는 인간이었거든? 다치기도 하고, 피로해지기도 하고...
그 실랑이를 중재하듯, M4A1이 몰리도를 부축했다.
가요.
아아~ 역시 지금 나한텐 니모겐밖에 없구나~
공장의 다른 어딘가.
하얀 니토들은 감히 소리를 낼 엄두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감시 카메라에 연결된 모니터가 몰리도의 모습을 또렷하게 비췄지만, 그레이의 명령 없이는 아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곧 투기한 폐기물에 도달합니다.
에피타이저가 손님들 입맛에 맞는다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