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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5 · 재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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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마인드맵 서버를 무사히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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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난장판이 된 베를린 공항. 지원으로 도착한 철혈 덕분에, 지휘관 일행은 무사히 패러데우스 병력을 격퇴할 수 있었다.

AR15

칫, 역시 함정이었어. 그놈들, 애초부터 안젤리아는 데려올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지휘관

......

UMP45

너무 걱정 마, 지휘관. 안젤리아는 그리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잖아.

지휘관

그래... 그렇지. 우선은 닥친 상황부터 처리하자.

그때, 카이바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지휘관

카이바르? 왜 그래?

카이바르

지... 지휘관...! 방금 엄청 나쁜 소식이...

지휘관

나쁜 소식이라니?

카이바르

어,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지휘관이 직접 뉴스를 보는 게 좋겠어...

그 말을 들은 지휘관은, 왠지 모르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뉴스 사이트를 확인했다.

"특보! 신소련의 PMC 기지 다수에 미사일 폭격!"

지휘관

......

벼락을 맞은 것처럼, 지휘관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

구해 주세요...

에이전트

......

RO635

지휘관님...

지휘관

기지는... 모두 어떻게 됐어!?

KH2002

그게... 게시판이란 게시판은 다 뒤져봤는데, 전자 봉쇄 때문에 아무도 그리폰 기지랑 연락이 안 된대... 내부 상황도 알 길이...

지휘관

당장 돌아간다! 지금 당장!

카이바르, 제일 빠른 항공편 잡아!

카이바르

벌써 공항의 사무실에다 연락은 해놨어.

하지만 공항 활주로가 전투로 손상돼서 새 항공편 배정에 시간이 좀 걸릴 거래...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공항은 썰렁하고 조용해졌지만, 지휘관의 마음은 산불처럼 타들어 갔다.

그리폰 기지, 지하 3층의 마인드맵 서버룸.

종횡으로 얽혀 주욱 늘어선 마인드맵 서버의 위용에, 앞에 선 헬리안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MAC10

이렇게나 크다니... 정말 이 전부에 우리의 데이터가 담겨있다고요?

페르시카

그래, 그러니까 무리라고.

헬리안

......

그럼 방법을 좀 강구해 보세요.

페르시카

우리의 현재 인력만으로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안은, 데이터를 통째로 압축해서 물리적으로 사이즈를 줄이고 옮기는 거야.

그럴 경우, 리스크는 두 가지야. 첫째는 압축한 데이터를 다시 압축 해제할 때 데이터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고, 둘째는 압축한 데이터를 쑤셔넣은 서버가 파괴되면 그대로 끝장이란 거지.

헬리안

백업은 불가능합니까?

페르시카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메모리 디스크를 가져와?

헬리안

......

그럼 그 방법대로 하죠.

페르시카

잘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이야? 이건 그리폰의 모든 기억을 담았다고...

페르시카

인형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지.

조금이라도 잘못돼서 데이터에 손상이 가면... 인형들의 자기 인식에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킬 거야.

MAC10

......

헬리안

심사숙고한 바입니다. 시작하시죠.

페르시카

그,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잖아... 그냥 여길 이대로 내버려 두는 거.

그놈들이 여길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내가 장담할게.

헬리안

놈들이 기지를 지상부터 지하까지 모조리 폭파한다면 어떡합니까?

페르시카

......

헬리안

저 반란군 놈들의 습격 규모로 보건대, 절대 가볍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겨우 시작이란 느낌마저 듭니다.

페르시카

정 그렇다면야... 알았어, 준비 작업 시작할게.

헬리안

부탁드립니다.

페르시카

어... 음... 거기 터프한 인형 아가씨, 나 좀 거들어 줘.

MAC10

네.

헬리안의 통신기가 울렸다.

크루거

<color=#00CCFF>헬리안, 지금 잔존 인형들과 함께 그리 가는 중이네. 도착하면 곧바로 마인드맵 서버를 옮길 수 있도록.</color>

헬리안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크루거

<color=#00CCFF>정면으로는 놈들의 공세에 맞설 수 없으니, 아래로 피하는 수밖에.</color>

헬리안

더 아래론... 길이 없지 않습니까...

크루거

<color=#00CCFF>달리 선택지가 없네.</color>

크루거

<color=#00CCFF>걱정 말게, 헬리안. 막다른 길이어도, 우린 반드시 뚫고 지니갈 수 있어.</color>

헬리안

...예, 알겠습니다.

통신 종료.

저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발에, 천장은 계속 진동했다. 헬리안은 한 서버의 표면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닦았다.

헬리안

모두가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그곳이 바로 그리폰이야.

인형 숙소에서, 크루거는 생존자 인형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크루거

그럼 마지막으로 점호하고 대열을 나누겠다. 번호!

인형들은 정렬해 번호를 불렀다.

점호가 진행될수록, 크루거의 표정도 점점 비장해져 갔다.

크루거

......

뒤의 인형, 계속 번호!

당황한 앞열의 인형들이 창백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톰슨

빅 보스, 남은 건 우리가 다야.

크루거

......

긴 침묵이 흘렀다.

크루거

...알았다.

각 인원은 부상 수준에 따라 GSh-18에게 속히 수복을 받도록.

20분간 정비 후 출발한다.

톰슨

라저.

WA2000

그 다음엔요? 크루거 씨, 그 다음의 작전 계획은 어떻게 돼요?

크루거

마인드맵 서버를 기지 최하층까지 호위하고, 거기서 지원을 기다린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될 테니, 각오 단단히 하도록.

난 말을 지어내면서 부하를 달랠 줄 모른다. 그저 사실대로 말하는 것밖에 못하지...

이건 가망이 거의 없는 싸움이다.

창백한 인형들의 얼굴에 처량함이 더해졌다.

크루거

우리는 처참한 피해를 입었고, 이것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마인드맵 서버를 무사히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뿐이지.

크루거

성공한다면 이 자리의 모두와, 이미 희생한 이들까지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다.

허나 실패한다면, 그리폰은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

M14

우리가... 영영 사라져...

크루거

너희들 중엔 내가 몇 년간 현역이었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래서 솔직히 말한다만, 이 정도는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절망적이었던 전투 3위에도 들지 못한다.

예전 같았다면, 지금 너희들에게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이나 했겠지.

하지만, 난 너희가 이것보다 더 절망적이고 암울한 순간을 겪어봤음을 안다.

그때, 너희는 너희를 이끄는 지휘관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동료와 적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지 않나.

색채를 잃었던 눈동자에, 미약하게 빛이 돌아왔다.

크루거

절망을 겪고, 그걸 극복한 너희들이니, 내 더 말하지 않겠다.

정비를 마친 인형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크루거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질문 있나?

조용한 인형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팔이 올라왔다.

크루거

토카레프.

토카레프

저희는 언제가 되어서야 더는 싸우지 않고, 아무도 피 흘리지도, 희생하지 않게 될까요...?

크루거

......

그에 대한 대답은, 미안하군.

"전쟁의 끝은 오직 죽은 자만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