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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 세로변형

35-P3 사랑의 인사

그가 지켜내려는 것은 그가 찾아낸 천사, 다신 없을 한 송이 장미꽃이었다.

-54-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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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교외.

로시타는 잠들었다. 조그마한 머리를 폴의 다리에 기대고서 깊은 잠에 빠졌다.

폴은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당장은 꼼짝도 못하니, 그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이런 쪽으론 지식이 없는 폴이 봐도 로시타의 몸은 영양실조가 심각해 보였다. 비쩍 마르고 가늘어서, 자신이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바람에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자국들은 대체 뭘까?

다른 인간한테선 본 적 없는데...

로시타의 팔에 난 이상한 자국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폴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내장된 간단한 검색 엔진을 켜, 자국의 특징을 검색했다.

답은 의외로 몇 초만에 얻었다.

광역성 저복사 감염증, 통칭 ELID.

폴은 시베리아 황무지에서 일할 적 인간 감독들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인간 감독

내가 여기서 왜 내려? 여긴 너네 같은 쇳덩어리나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인간은 나가면 바로 ELID가 돼!

인간 감독

그렇게 되면 집에 돌아가긴커녕 열차 도로 타지도 못해!

......

아무래도 인간에게 이건 감염성이 엄청나고 매우 위험한 질병 같다.

이런 몸으로 새근새근 잠든 로시타를 보는 폴은 마음이 아팠다. 유리 덮개가 벗겨져 잎이 벌레에 먹힌 가여운 장미가 떠올랐다.

로시타에게 무언가 해 주고 싶어졌다.

마침내 "장미"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간이니까.

"갈라테아 그룹이 ELID 치료용 신약 '이둔'을 개발했다.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효과는 몇 배나..."

"갈라테아 그룹 산하 신약 개발 실험실이 봉쇄당하다..."

ELID 환자와 관련된 기사들이 그의 눈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고,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베를린에 간다면 병을 고칠 희망을 찾을지 모른다.

인간은 몸이 손상되면 어떻게 고치지? 인간 전용 오일이 있는 걸까?

이 이둔이 병을 치료할 희망인 걸까?

폴은 마인드맵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 두며, 로시타를 베를린으로 데려가 병을 고친 다음 브레멘에 있다는 버얼 고아원을 찾기로 결정했다.

로시타

폴...

로시타

나... 집에 돌아가는 꿈 꿨어...

응, 내가 널 집에 데려다 줄게.

로시타는 잠에서 덜 깨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베를린으로 간 다음, 거기서 브레멘으로 가자.

로시타

하지만 난 돈이 없는걸...

괜찮아. 나한테 모아둔 돈이 조금 있어.

폴은 634호가 준, 돌멩이가 가득한 주머니를 바라봤다.

바르샤바로 오면서 알게 된 사실로, 이것은 "사르디스 골드"라는 이름의 금괴 조각이었다. 듣기로는 인간 사회의 통용 화폐 중 하나라고 한다.

이 만큼으로 로시타를 브레멘으로 데려가기에 충분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폴은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열차에서 브로커를 만났는데, 그녀에게 어떡하면 표를 살 수 있을지 물어볼게.

로시타

응! 폴 말대로 할게.

몇 시간 후, 폴은 임시 거처로 삼은 버려진 오두막에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의 발소리를 들은 로시타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반겼다.

로시타

어서 와 폴.

......

로시타

...무슨 일 있었어?

어린아이 키만 한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온 폴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로시타에게, 그녀는 병에 걸려서 열차에 탈 수 없으니 이 짐가방에 숨어서 타야 한다고,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폴은 로시타의 초점은 없어도 맑은 눈동자를 보다가, 결국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미안해 로시타, 내가 가진 돈으로는 탑승권을 한 장밖에 구할 수 없었어. 많이 힘들겠지만, 이 짐가방에 숨어서...

로시타

괜찮아, 집에 갈 수만 있다면 힘들어도 괜찮아!

...응, 그럼 크기가 맞나 재 보자.

폴은 구해 온 짐가방을 열어, 바닥에 놓고 조심조심 로시타를 안아 속에 넣어보았다.

폴이 확인차 짐가방을 닫을 때, 로시타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로시타

고아원에 있을 때가 생각났어. 그때도 이런 곳에 숨어서 걔가 날 찾아오길 기다렸거든...

......

로시타

폴, 나 이야기 들려 줘. 폴이 책 읽는 소리 많이 들었어.

폴이 읽는 책의 이야기를 들려 줘.

알았어.

폴은 짐가방 옆에 앉았고, 로시타는 짐가방 속에 편하게 웅크렸다.

옛날옛적에, 다른 별에 사는 어린 왕자가 있었어.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은 엄청 작았는데,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훨씬 작았지.

그 별에 사는 건 어린 왕자랑 장미꽃 한 송이뿐이었어.

로시타

장미꽃?

그래. 장미꽃은 이상한 녀석이야, 연약하고 가녀려서 유리 덮개가 지켜 줘야만 살 수 있었어.

게다가 자기 몸을 지키려고 온몸에 가시를 키웠는데, 제일 친한 어린 왕자까지 자꾸 찔렀어.

결국 어린 왕자는 참지 못하고 그 별을 떠나서, 다른 세상을 보러 가기로 했어.

로시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린 왕자는 별을 떠나 다양한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어. 연약한 장미는 단지 그를 꼭 껴안고 싶어했다는 걸.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온몸에 키운 가시를 자신도 어쩌지 못해서 상대를 다치게 한 거였어.

로시타

그래서? 어린 왕자랑 장미꽃은 화해했어?

그후로, 어린 왕자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모든 별이 장미꽃처럼 보였대.

하나뿐인 그의 장미꽃처럼.

로시타

......

로시타가 잠든 것을 본 폴은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이 세상은 이미 연약한 장미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고 했어.

하지만 난 널 찾아냈어. 넌 아직 너무 어려서, 스스로를 지킬 가시조차 키우지 못했을 뿐이야.

로시타

......

네가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만 가시는 안 키워도 돼. 그럼 상대를 다치게 할 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난 회수처리장에서 폐기 처분을 받을 때 분명 밤하늘에서 장미를 잔뜩 볼 수 있겠지.

폴은 곤히 잠든 로시타의 얼굴을 보며, 밤하늘에 장미꽃이 한가득 피어난 광경을 상상했다.

며칠 후, 대륙간 열차 "미래호"의 일반석 차량.

콰아앙!!!

엄청난 충격에 짐가방이 선반에서 굴러떨어졌고, 가방이 활짝 열려 로시타가 튕겨져 나왔다.

<size=50>로시타!!</size>

로시타

폴...!

뒤집히며 구르는 열차칸 속에서, 폴은 다급하게 로시타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가 또 다시 유리 덮개에서 튕겨져 나와, 이 위험천만한 세상을 뒹굴게 둘 수 없었다.

열차가 다시 잠잠해지자마자, 폴은 곧장 로시타에게 달려갔다.

로시타

폴... 난 괜찮아...

인형A

세상에, 저것 봐! 감염자가 있었어!

인형B

어쩐지 왜 정화 장치가 계속 경보를 울리나 했다... 얼른 쫓아내야――

<size=50>건들지 마!</size>

부웅! 부웅!

어째선지 모를 용기가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올라, 폴은 스패너를 마구 휘둘렀다.

인형C

저거 미친 거 아니야?!

<size=50>아무도 이 아이를 건들 생각 마!</size>

언제나 침착하고 상냥하던 폴이, 모여드는 인간과 인형들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가 쥐고 휘두르는 스패너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철로를 수리하던 도구가 아니라 악귀를 토벌하는 보검이 되었다.

"다른 장미는 대신할 수 없는 완벽한 장미꽃 한 송이."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희망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지켜내려는 것은 그가 찾아낸 천사, 다신 없을 한 송이 장미꽃이었다.

그는 로시타를 위해 맞서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