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P2 죽음과 소녀
드림박스가 아무것도 이루어주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
왠지 모르게 어눌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살며시 내게 다가왔다.
그래, 폴이야.
폴...
나는 손에 잡힌 물건을 만져봤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아니라, 차가운 쇳덩이였다.
인간이 죽어 몸에서 온기가 사라졌을 때보다도 차가운 쇳덩이였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해?
어... 우선, 네 안색이 아주 안 좋아 보여. 아무래도 충전...이 아니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그래, 뭣 좀 먹어야겠네. 뭣 좀 먹어야...
응... 그러고 보니 나 배고파졌어...
그럼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서 먹을걸 찾아 올게.
그의 목소리는 어눌하고 투박했지만, 상냥하고, 조심스럽고, 무척 안심이 됐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 정리해 준 구석에 얌전히 앉아 그를 기다렸다.
몸을 조금 뒤척이니 골판지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내게 작은 성이라도 지어 준 걸까?
연약한 장미꽃...
유리 덮개로 보호해야 ...
......
그의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어둠 속이지만 포근하게 앉아있으니, 옛날 항상 내게 안식처가 되어 줬던 옷장이 떠올랐다.
......
브레멘, 버얼 고아원.
쾅!
딱딱한 물건이 내 등에 맞고 바닥에 떨어져 큰 소리가 났다.
뒤에서 애들 몇 명이 악마처럼 웃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뒤돌아볼 수도, 소리낼 수도 없었다. 그저 아직 기억하는 길을 따라 벽을 짚으며, 안전한 내 기지로 달리기만 했다.
당장 나와, 장님아!
그래 얼른 나와, 내가 눈 고쳐 줄게! 깔깔깔――
좁은 옷장. 여긴 나만 아는 곳이다.
창고 오른쪽 구석에 있는데, 앞에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여길 찾기 아주 어렵다.
빨랑 나와!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됐어 리나, 보나마나 지금 어디 구석에 숨어서 오줌 지렸을 거야.
문 앞에 숨자, 걔 나오면 놀래키게.
......
그 애들은 깔깔대며 창고에서 나갔다. 하지만 정말 문 앞에서 매복하고 있는지, 흥미를 잃고 떠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계속 옷장 안에 웅크린 채, 시간이 많이 지나길 기다렸다.
......
부스럭부스럭.
누가 상자를 들어올렸다. 폐지를 모으는 사람일까?
나는 잔뜩 웅크렸다.
먹을 걸 가져왔어. 네가 먹을 수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내 코앞에서 군침 도는 향기가 났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걸 덥석 잡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게 사흘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 길가에서 운 좋게 차갑지만 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 빵을 주워 먹었으니까.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가.
응... 고마워...
녹슨 부품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가 내 옆에 앉은 것이 느껴졌다. 약간 거리를 두긴 했지만.
넌... 안 먹어?
나는―― 나는 방금 먹고 왔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무척이나 안심되고 행복해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까지 손길조차 느껴본 적 없는 내 부모님이 왜 나를 이런 세상에 버렸는지 셀 수도 없이 원망했다.
하지만 따뜻한 음식만이, 울분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했다.
브레멘, 버얼 고아원.
옷장에서 얼마나 숨어있었을까, 난 꾸벅꾸벅 졸다 잠들었다.
똑똑.
부드러운 노크 소리가 나를 깨웠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고선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익숙한 감촉...
...로시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 품에 빵이 놓였다.
고아원에서 주는 저녁밥인데, 로시타는 항상 내게 그걸 다 줬다. 이 손바닥의 다정하고 상냥한 체온과 함께.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지? 엄청 배고팠겠다.
고마워!
몇 입만에 그 빵을 다 먹어치운 내 옆으로 로시타도 들어왔다.
나처럼 작은 몸을 통해 안심되는 체온이 느껴졌다.
어휴 참, 너도 너 스스로 이름 좀 지어 봐. 항상 번호로 부를 때마다 느낌 이상하다구.
특히 이렇게 너 찾아다닐 때 말이야.
......
난 상관없는데.
...그래.
다른 애들 말로는, 이름이란 부모가 지어 주어야 하는 거라고 한다. 이름을 받지 못했다면, 스스로 이름을 지어도 그건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아 맞다, 나 좋은 일 있다~
뭔데?
원장 선생님이 있지~ 나도 드림박스에 들어갈 수 있게 됐대!
로시타의 따뜻한 입김이 내 귓가에 닿았지만, 내 심정은 철렁 내려앉았다.
뭐...?! 아, 안 돼!
어, 왜? 여기 애들 모두 드림박스에 들어가고 싶어하잖아.
드림박스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원장 선생님이 말했어!
안 돼, 그거 엄청 무시무시한 거야...!
왜 그렇게 말해? 들어가본 적도 없으면서.
......전에 말했잖아.
어쩌다 원장 선생님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 그리고... 드림박스에 들어간 애들... 엄청 불쌍하게 울었어...
......
네가 잘못 들었겠지.
얼마 후, 로시타는 먼저 옷장에서 나와서 내 손을 잡고 나오게 해 주었다.
드림박스로 나쁜 얘기 하지 마, 알았지?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도 알잖아.
그치만...
계속 그럼 나 화 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얌전히 로시타를 따라 방으로 돌아갔다.
......
나는 "폴"이 가져와 준 음식을 전부 먹고, 배가 불러 벽에 기댔다.
...너는 어디서 왔어?
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네가 폴이 아니란 거 알아.
그 사람이 나한테 먹을걸 가져와 줄 리 없거든.
그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봤지만, 만져지는 것이라곤 말랑한 부분 없이 온통 단단한 쇳덩이였다.
나는 상상력을 총동원해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간신히 그려냈다.
난...
난 시베리아의 황무지에서 왔어.
거기가 어디야?
바르샤바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 난 거기서 대륙간 열차를 타고 바르샤바로 왔어.
대륙간 열차...?
강철 괴물 같은 거야. 열차가 길게 이어져서, 용처럼...
우와아... 그건 어떻게 움직이는데?
철로 위를 엄청 빠르게 달――
......
...왜 그래?
나와 내 동료들은 몇 년 동안 시베리아의 황무지에서 계속 철로를 수리했어.
그래서 열차를 탔을 땐 엄청 복잡한 기분이었어.
대단하다... 엄청 위대한 일을 했구나.
위대한 일... 위대한 일이라...
그럼 너는? 너는 어디에서 왔어?
나는 브레멘의 버얼 고아원에서 왔어. 거기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
고아원... 왜 거기로 돌아가려 해?
내 소중한 친구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거든. 가서 걔한테 사과해야 해.
나는 내 몸을 더듬어 주머니 속을 뒤졌다. 로시타에게 부탁해 안쪽에 기워 둔 주소가 적힌 쪽지가 손끝에 닿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떤 애인지 말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브레멘, 버얼 고아원.
로시타가 드림박스에 들어가는 날은 금방 찾아왔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같이 옷장에서 얘기하자고 로시타를 불렀다.
로시타는 약속한 시간에 왔다. 걔의 가벼운 발소리가 옷장 앞에서 멈췄고, 곧이어 옷장의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미는 소리가 났다.
...어라? 없네?
......!
나는 이를 악물고 로시타를 옷장 안으로 밀어넣고, 미리 준비한 빗자루로 문을 걸어 잠갔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미안해... 미안해...!
로시타는 엄청 큰 소리로 울었고, 약한 주먹으로 옷장 문을 계속 두들겼다.
나는 창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고, 그러자 로시타의 울음소리도 작아졌다.
저녁 식사 때쯤이면 원장 선생님이 찾아내겠지.
미안해 로시타, 정말 미안해...
나는 손을 뻗어 앞을 더듬으며, 로시타의 방의 드림박스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어디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다음... 로시타, 나이 11살, 신장...
차가운 기계가 내 살에 닿자,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됐다.
루고사 선생님, 이 여자아이는 정보와 달라요,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됐다, 또 왔다갔다하면 고생이니까, 다른 장기가 멀쩡하면 들여보내렴.
들여보낸다니... 어디로?
저 사람은 의사 선생님일까? 그럼 내 눈을 고쳐 주는 걸까?
차갑고 딱딱한 판 위에 눕혀진 나는 온갖 상상을 했다.
그 다음 기억은 엉망진창이다.
그들이 나에게 한 짓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끝없이 괴롭기만 했다.
끝없는 어둠의 바다 속에서, 바늘이 무수한 빛줄기처럼 반짝이며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고통의 소용돌이가 내 몸을 휘감고, 의식이 몇 번이나 벗겨져 나갔다가 깨워지고, 또 벗겨져 나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계속 벌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심연에 빠지는 것처럼...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소리질렀다. 모든 단어가 의미를 잃고, 그날 로시타의 원망 섞인 울음소리가 귓가에 되울릴 때까지.
내가 주변의 상황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주위가 전과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귓가에 들리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달랐고, 무언가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까.
야, 너 살아있지?
......여긴... 어디...? 너는 누구야...?
여긴 놈들 쓰레기장이고, 내 이름은 "폴"이다. 여기 담당자지.
쓰레기장...
너처럼 실험에 실패한 폐기물은 다 여기다 버려.
내가 마침 조수가 필요했는데, 넌 아직 숨이 붙어 있길래 꺼내 준 거다.
......
뭘 멍하니 있어? 얼른 와서 시체 옮기는 거나 거들어.
폴은 나를 무시하고 걸어갔다. 나는 그의 발소리를 따라 쫓아야만 했다.
하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자꾸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폴도 눈치챘다.
너 설마... 안 보이냐?
......
아 XX 안 죽은 거 겨우 찾았다 싶었더니 써먹지도 못하는 거였네...
그는 성질을 내며 날 질질 끌고 가, 자동차의 트렁크 같은 곳으로 날 던져 넣었다.
쿵!
그리고 트렁크가 닫혔다.
더는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쯤 마침내 트렁크가 다시 열렸고, 나는 곧바로 게걸스럽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거다, 가져가.
......?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나는 몇 쌍의 손에 붙들려 난폭하게 차에서 끌어내려졌다.
난 본능적으로 무서워졌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내달렸다.
탕 탕 탕——
뒤에서 총소리가 났고, 폴의 비명도 들렸다. 하지만 뒤돌아볼 순 없었다. 난 그저 계속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그리고, "폴"을 만났다.
그는 나를 괴롭히지 않고, 먹을 것까지 가져와 주었다.
...엄청 긴 이야기야. 한숨 자고 나면 얘기해 줄게.
그래.
오늘은 너무 힘들었는지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둥실둥실해져서, 당장에라도 풍선으로 변해 하늘 높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괜찮아?
응... 그냥... 피곤해서...
네 몸의 이 자국들은 뭐야? 병에 걸린 것 같은데...
아 미안, 너는 눈이 안 보이지...
괜찮아... 조금만 잘게...
몸을 천천히 웅크리고, 폴의 다리에 기대서, 나는 깊은 꿈속에 빠지려 했다.
다만 잠이 들기 직전, 아직 폴에게 말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난 "로시타"야.
내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이것 말고는 아는 이름이 없어.
그럼 나도 "폴"이야.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재미있는 대답에 난 피식 웃고, 꿈속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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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모르게 어눌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살며시 내게 다가왔다.
그래, 폴이야.
폴...
나는 손에 잡힌 물건을 만져봤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아니라, 차가운 쇳덩이였다.
인간이 죽어 몸에서 온기가 사라졌을 때보다도 차가운 쇳덩이였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해?
어... 우선, 네 안색이 아주 안 좋아 보여. 아무래도 충전...이 아니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그래, 뭣 좀 먹어야겠네. 뭣 좀 먹어야...
응... 그러고 보니 나 배고파졌어...
그럼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서 먹을걸 찾아 올게.
그의 목소리는 어눌하고 투박했지만, 상냥하고, 조심스럽고, 무척 안심이 됐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 정리해 준 구석에 얌전히 앉아 그를 기다렸다.
몸을 조금 뒤척이니 골판지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내게 작은 성이라도 지어 준 걸까?
연약한 장미꽃...
유리 덮개로 보호해야 ...
......
그의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어둠 속이지만 포근하게 앉아있으니, 옛날 항상 내게 안식처가 되어 줬던 옷장이 떠올랐다.
......
브레멘, 버얼 고아원.
쾅!
딱딱한 물건이 내 등에 맞고 바닥에 떨어져 큰 소리가 났다.
뒤에서 애들 몇 명이 악마처럼 웃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뒤돌아볼 수도, 소리낼 수도 없었다. 그저 아직 기억하는 길을 따라 벽을 짚으며, 안전한 내 기지로 달리기만 했다.
당장 나와, 장님아!
그래 얼른 나와, 내가 눈 고쳐 줄게! 깔깔깔――
좁은 옷장. 여긴 나만 아는 곳이다.
창고 오른쪽 구석에 있는데, 앞에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여길 찾기 아주 어렵다.
빨랑 나와!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됐어 리나, 보나마나 지금 어디 구석에 숨어서 오줌 지렸을 거야.
문 앞에 숨자, 걔 나오면 놀래키게.
......
그 애들은 깔깔대며 창고에서 나갔다. 하지만 정말 문 앞에서 매복하고 있는지, 흥미를 잃고 떠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계속 옷장 안에 웅크린 채, 시간이 많이 지나길 기다렸다.
......
부스럭부스럭.
누가 상자를 들어올렸다. 폐지를 모으는 사람일까?
나는 잔뜩 웅크렸다.
먹을 걸 가져왔어. 네가 먹을 수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내 코앞에서 군침 도는 향기가 났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걸 덥석 잡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게 사흘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 길가에서 운 좋게 차갑지만 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 빵을 주워 먹었으니까.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가.
응... 고마워...
녹슨 부품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가 내 옆에 앉은 것이 느껴졌다. 약간 거리를 두긴 했지만.
넌... 안 먹어?
나는―― 나는 방금 먹고 왔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무척이나 안심되고 행복해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까지 손길조차 느껴본 적 없는 내 부모님이 왜 나를 이런 세상에 버렸는지 셀 수도 없이 원망했다.
하지만 따뜻한 음식만이, 울분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했다.
브레멘, 버얼 고아원.
옷장에서 얼마나 숨어있었을까, 난 꾸벅꾸벅 졸다 잠들었다.
똑똑.
부드러운 노크 소리가 나를 깨웠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고선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익숙한 감촉...
...로시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 품에 빵이 놓였다.
고아원에서 주는 저녁밥인데, 로시타는 항상 내게 그걸 다 줬다. 이 손바닥의 다정하고 상냥한 체온과 함께.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지? 엄청 배고팠겠다.
고마워!
몇 입만에 그 빵을 다 먹어치운 내 옆으로 로시타도 들어왔다.
나처럼 작은 몸을 통해 안심되는 체온이 느껴졌다.
어휴 참, 너도 너 스스로 이름 좀 지어 봐. 항상 번호로 부를 때마다 느낌 이상하다구.
특히 이렇게 너 찾아다닐 때 말이야.
......
난 상관없는데.
...그래.
다른 애들 말로는, 이름이란 부모가 지어 주어야 하는 거라고 한다. 이름을 받지 못했다면, 스스로 이름을 지어도 그건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아 맞다, 나 좋은 일 있다~
뭔데?
원장 선생님이 있지~ 나도 드림박스에 들어갈 수 있게 됐대!
로시타의 따뜻한 입김이 내 귓가에 닿았지만, 내 심정은 철렁 내려앉았다.
뭐...?! 아, 안 돼!
어, 왜? 여기 애들 모두 드림박스에 들어가고 싶어하잖아.
드림박스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원장 선생님이 말했어!
안 돼, 그거 엄청 무시무시한 거야...!
왜 그렇게 말해? 들어가본 적도 없으면서.
......전에 말했잖아.
어쩌다 원장 선생님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 그리고... 드림박스에 들어간 애들... 엄청 불쌍하게 울었어...
......
네가 잘못 들었겠지.
얼마 후, 로시타는 먼저 옷장에서 나와서 내 손을 잡고 나오게 해 주었다.
드림박스로 나쁜 얘기 하지 마, 알았지?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도 알잖아.
그치만...
계속 그럼 나 화 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얌전히 로시타를 따라 방으로 돌아갔다.
......
나는 "폴"이 가져와 준 음식을 전부 먹고, 배가 불러 벽에 기댔다.
...너는 어디서 왔어?
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네가 폴이 아니란 거 알아.
그 사람이 나한테 먹을걸 가져와 줄 리 없거든.
그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봤지만, 만져지는 것이라곤 말랑한 부분 없이 온통 단단한 쇳덩이였다.
나는 상상력을 총동원해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간신히 그려냈다.
난...
난 시베리아의 황무지에서 왔어.
거기가 어디야?
바르샤바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 난 거기서 대륙간 열차를 타고 바르샤바로 왔어.
대륙간 열차...?
강철 괴물 같은 거야. 열차가 길게 이어져서, 용처럼...
우와아... 그건 어떻게 움직이는데?
철로 위를 엄청 빠르게 달――
......
...왜 그래?
나와 내 동료들은 몇 년 동안 시베리아의 황무지에서 계속 철로를 수리했어.
그래서 열차를 탔을 땐 엄청 복잡한 기분이었어.
대단하다... 엄청 위대한 일을 했구나.
위대한 일... 위대한 일이라...
그럼 너는? 너는 어디에서 왔어?
나는 브레멘의 버얼 고아원에서 왔어. 거기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
고아원... 왜 거기로 돌아가려 해?
내 소중한 친구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거든. 가서 걔한테 사과해야 해.
나는 내 몸을 더듬어 주머니 속을 뒤졌다. 로시타에게 부탁해 안쪽에 기워 둔 주소가 적힌 쪽지가 손끝에 닿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떤 애인지 말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브레멘, 버얼 고아원.
로시타가 드림박스에 들어가는 날은 금방 찾아왔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같이 옷장에서 얘기하자고 로시타를 불렀다.
로시타는 약속한 시간에 왔다. 걔의 가벼운 발소리가 옷장 앞에서 멈췄고, 곧이어 옷장의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미는 소리가 났다.
...어라? 없네?
......!
나는 이를 악물고 로시타를 옷장 안으로 밀어넣고, 미리 준비한 빗자루로 문을 걸어 잠갔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미안해... 미안해...!
로시타는 엄청 큰 소리로 울었고, 약한 주먹으로 옷장 문을 계속 두들겼다.
나는 창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고, 그러자 로시타의 울음소리도 작아졌다.
저녁 식사 때쯤이면 원장 선생님이 찾아내겠지.
미안해 로시타, 정말 미안해...
나는 손을 뻗어 앞을 더듬으며, 로시타의 방의 드림박스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어디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다음... 로시타, 나이 11살, 신장...
차가운 기계가 내 살에 닿자,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됐다.
루고사 선생님, 이 여자아이는 정보와 달라요,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됐다, 또 왔다갔다하면 고생이니까, 다른 장기가 멀쩡하면 들여보내렴.
들여보낸다니... 어디로?
저 사람은 의사 선생님일까? 그럼 내 눈을 고쳐 주는 걸까?
차갑고 딱딱한 판 위에 눕혀진 나는 온갖 상상을 했다.
그 다음 기억은 엉망진창이다.
그들이 나에게 한 짓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끝없이 괴롭기만 했다.
끝없는 어둠의 바다 속에서, 바늘이 무수한 빛줄기처럼 반짝이며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고통의 소용돌이가 내 몸을 휘감고, 의식이 몇 번이나 벗겨져 나갔다가 깨워지고, 또 벗겨져 나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계속 벌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심연에 빠지는 것처럼...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소리질렀다. 모든 단어가 의미를 잃고, 그날 로시타의 원망 섞인 울음소리가 귓가에 되울릴 때까지.
내가 주변의 상황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주위가 전과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귓가에 들리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달랐고, 무언가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까.
야, 너 살아있지?
......여긴... 어디...? 너는 누구야...?
여긴 놈들 쓰레기장이고, 내 이름은 "폴"이다. 여기 담당자지.
쓰레기장...
너처럼 실험에 실패한 폐기물은 다 여기다 버려.
내가 마침 조수가 필요했는데, 넌 아직 숨이 붙어 있길래 꺼내 준 거다.
......
뭘 멍하니 있어? 얼른 와서 시체 옮기는 거나 거들어.
폴은 나를 무시하고 걸어갔다. 나는 그의 발소리를 따라 쫓아야만 했다.
하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자꾸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폴도 눈치챘다.
너 설마... 안 보이냐?
......
아 XX 안 죽은 거 겨우 찾았다 싶었더니 써먹지도 못하는 거였네...
그는 성질을 내며 날 질질 끌고 가, 자동차의 트렁크 같은 곳으로 날 던져 넣었다.
쿵!
그리고 트렁크가 닫혔다.
더는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쯤 마침내 트렁크가 다시 열렸고, 나는 곧바로 게걸스럽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거다, 가져가.
......?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나는 몇 쌍의 손에 붙들려 난폭하게 차에서 끌어내려졌다.
난 본능적으로 무서워졌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내달렸다.
탕 탕 탕——
뒤에서 총소리가 났고, 폴의 비명도 들렸다. 하지만 뒤돌아볼 순 없었다. 난 그저 계속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그리고, "폴"을 만났다.
그는 나를 괴롭히지 않고, 먹을 것까지 가져와 주었다.
...엄청 긴 이야기야. 한숨 자고 나면 얘기해 줄게.
그래.
오늘은 너무 힘들었는지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둥실둥실해져서, 당장에라도 풍선으로 변해 하늘 높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괜찮아?
응... 그냥... 피곤해서...
네 몸의 이 자국들은 뭐야? 병에 걸린 것 같은데...
아 미안, 너는 눈이 안 보이지...
괜찮아... 조금만 잘게...
몸을 천천히 웅크리고, 폴의 다리에 기대서, 나는 깊은 꿈속에 빠지려 했다.
다만 잠이 들기 직전, 아직 폴에게 말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난 "로시타"야.
내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이것 말고는 아는 이름이 없어.
그럼 나도 "폴"이야.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재미있는 대답에 난 피식 웃고, 꿈속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