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P1 작은별 변주곡
내가 갈 수 있는 어느 곳에도 장미는 없어.
......
시베리아의 황무지.
시베리아 생명선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수복이 끝나자, 인간 현장 감독들은 바로 이 썰렁한 황무지에서 마지막 기수의 철도 작업부 인형들만 눈보라 속에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 우리 뭐하지?
벌써 몇 번째일까, 인형 한 명이 간이 오두막 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대고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건, 계속 여기서 있으면 나중에 회수업자에게 끌려가서 폐기 처분된다는 거야.
......
"회수업자". 인간 감독들이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었다.
남겨진 인부 인형들에게, 빨리 다음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처리장으로 보내져 폐기될 것이라고 대충 경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한 지 벌써 며칠이나 됐지만, 전설의 "회수업자"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정말 회수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 안 해도 되니까.
하지만 난 이대로 폐기되기 싫은걸.
"책벌레", 너는?
......
"책벌레"라 불린 인형은 읽는 중이던 책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책에서 읽기를, 운명의 장미꽃을 만나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하늘이 별들이 전부 장미처럼 보인대.
"장미"...? 시각 모듈에 오류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야?
검색해봤는데, 인형한테도 무해한 식물이야.
그럼 장미가 어떻게 별들을 꽃처럼 보이게 해?
나도 몰라. 하지만 알아내고 싶어.
"책벌레" 612호는 고개를 더 들어, 시꺼먼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오염도가 높은 탓에 지금 이곳에선 별이 보이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반짝이는 비단처럼 별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어디 가게?
응. 서쪽의 바르샤바로, 내일 바로 출발하려 해.
바르샤바가 어디야?
......
612호가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들의 현재 위치에서 서쪽으로 쭈욱, 거의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야 바르샤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멀어!?
시베리아 생명선을 따라서 가려고?
응, 바르샤바는 내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철도역이야.
......
세상엔 다시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와 쌓인 눈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냥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있자.
인간의 도시는 너무 위험해.
그들이 너한테 엄청 끔찍한 짓을 할 거야!
찾던 걸 찾아내더라도 실망하게 될 수도 있어.
알아. 내가 열차에 올라 바르샤바까지 금방 가게 돼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
612호의 머리 램프가 가볍게 깜빡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작별을 고하는 슬픈 눈의 깜빡임 같았다.
그래도 가보고 싶어. 여기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별도 없고, 장미도 없어.
......
폐기 처분될 때, 밤하늘의 장미를 보고 싶어.
네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야.
투박한 기계손이 612호의 어깨에 얹어졌다.
그럼, 오늘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자.
......
다음날 새벽.
612호는 얼마 있지도 않은 짐을 싸고, 전철역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
왜 그래?
이거 줄게.
634호가 작은 주머니를 612호의 짐가방에 넣었다. 그건 634호가 한가할 때마다 주워 모았던 돌멩이들이 담긴 주머니였다.
네가 좋아하는 돌이잖아.
나랑 590호는 가장 가까운 회수처리장으로 가서 폐기 처분받으려고.
그 인간 감독들이 이 돌멩이는 엄청 비싸게 팔릴 거랬으니까, 네게 쓸모 있을 거야.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잘 가, 612호.
잘 가, 590호. 잘 가, 634호.
612호는 전철역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서 612호를 배웅하는 590호와 634호는 이제 아주 작게 보여, 눈밭에 솟아난 매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듬해 봄이 찾아왔을 땐 저곳에 없을 것이다.
며칠 후, 바르샤바 중앙 전철역.
승객들이 물 흐르듯 출구를 나서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날 때, 612호도 짐가방을 둘러메고 열차에서 내렸다.
다만, 612호는 발걸음을 떼지 않고 한쪽의 승무원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
부름에 고개를 돌린 승무원의 미소가, 612호를 보자마자 질색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열차에서 내리셨으니 당신은 더 이상 승객이 아닙니다. 당신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없어요.
그냥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장미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장미...? 그냥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하세요, 그게 더 빨라요.
승무원은 홱 떠났고, 612호는 홀로 썰렁한 승강장에 남겨졌다.
...내가 찾는 건 진짜 장미인데. 밤하늘을 바라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장미.
속으로 되뇌면서, 그는 천천히 역 밖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바르샤바 교외.
612호는 기운 없이 길가에 걸터앉았다. 그의 질문을 받는 행인들은 하나같이 하찮다거나 조롱하기만 했다.
결국, 612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곳엔 장미가 없다고.
......진작에 알아챘어야 했는데.
책 속의 장미도, 아주 연약해서 유리 덮개로 바깥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했으니.
그렇게 연약한 존재가 이런 데서 살아갈 수 있을 리 없어.
612호의 발 아래의 거리는 악취로 가득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썩는 냄새, 썩다 못해 발효되어 가는 배설물의 냄새, 온갖 것이 뒤섞여 무엇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냄새가 진동했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조차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이어서, 마치 목적지 없는 산송장처럼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듯했다.
612호는 고개를 숙였다. 장기간 오염지대에서 중노동을 한 그의 소체도 온통 흠집투성이였기에, 사람들 눈엔 그도 역시 저 산송장들 중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여기에는 장미가 없어.
내가 갈 수 있는 어느 곳에도 장미는 없어.
밤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 그의 목에서, 녹슨 부품이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밤하늘은 칙칙했다.
......
여기서도 별은 안 보이는구나.
그의 램프가 빛을 잃었다.
......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으니, 이제 됐어.
나도 회수처리장에 가야지.
612호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바르샤바의 인형 회수처리장으로 향했다.
얼마 후, 인형 회수처리장.
612호의 소체 검사 결과가 처참하자, 회수업자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알아서 걸어 들어온 건 좋은데, 이딴 고물을 회수해서 어따 쓴다고...
......
죄송합니다.
612호는 측정기 앞에 가만히 서서, 출고 후 동료들과 철로를 수리하던 나날을 떠올렸다.
그 시절엔 자주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의 저편을 바라보며, 이 위로는 과연 무엇이 지나갈까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그 해답을 얻었다.
그는 강철의 괴수 같은 열차를 타고, 무수한 인부 인형들을 소모해 수복된 철로 위를 빠르게 달렸다.
가슴이 무척 설레였지만, 누구와도 이 기분을 나눌 수 없었다. 열차에는 철로가 어떻게 수복됐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팔 들어.
예.
얌전히 양팔을 든 612호의 눈에, 회수업자의 어깨 너머로 웬 여자아이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골목길을 달려나오다 질척한 길바닥에 넘어지는 광경이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안색이 창백한 것이 영양실조인 듯했고, 낡고 펑퍼짐한 옷으로 감싼 비쩍 마른 몸은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메마른 꽃송이 같았다.
저기에 누가 다쳤습니다.
그 말에 회수업자는 반사적으로 힐끗 보기만 하곤 계속 손을 움직였다.
이윽고 양아치처럼 보이는 사람 몇 명이 골목길 밖으로 나타나, 욕설을 내뱉으며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잡곤 어두운 심연 속으로 도로 끌고 들어갔다.
저 여자애...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경 꺼.
......
612호는 여자아이가 울면서 도움을 청하다 질질 끌려가면서 남겨진 흔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연약하고 어린 생명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 덮개 밖 나쁜 것에 의해 다치게 될 터였다.
612호는 결단을 내렸다. 회수업자를 살며시 밀어내고, 몸을 돌려 회수처리장 밖으로 걸어갔다.
너 뭐야 진짜!?
죄송합니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폐기 처분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회수업자가 뒤로 마구 욕설을 퍼붓는 것을 무시하며, 612호는 곧장 그 골목길로 향했다.
......
잠시 후, 어두운 골목길.
갖고 있던 스패너와 무쇠 소체를 십분 활용해, 612호는 양아치들을 쫓아냈다.
그런데, 망연하게 바닥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누... 누구세요...?
마침내 무언가 다름을 느낀 여자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데, 맑고 예쁜 눈동자건만 초점이 없는 것 같았다.
......
612호는 어린 인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폴? 혹시 폴이야?
폴...?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
여자아이는 "폴"이란 이름을 부르며 휘청휘청 다가왔다.
그녀가 앞으로 뻗어 허우적대는 손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생명의 마지막 빛줄기를 붙잡으려는 듯 초조했다.
612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살며시 스패너를 내밀어 그녀가 붙잡고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왜 말을 안 해? 폴... 너 맞아?
......
그래, 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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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의 황무지.
시베리아 생명선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수복이 끝나자, 인간 현장 감독들은 바로 이 썰렁한 황무지에서 마지막 기수의 철도 작업부 인형들만 눈보라 속에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color=#ffcc00>...이제 우리 뭐하지?</color>
벌써 몇 번째일까, 인형 한 명이 간이 오두막 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대고 중얼거렸다.
<color=#99CC33>내가 아는 건, 계속 여기서 있으면 나중에 회수업자에게 끌려가서 폐기 처분된다는 거야.</color>
<color=#ffcc00>......</color>
"회수업자". 인간 감독들이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었다.
남겨진 인부 인형들에게, 빨리 다음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처리장으로 보내져 폐기될 것이라고 대충 경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한 지 벌써 며칠이나 됐지만, 전설의 "회수업자"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color=#ffcc00>정말 회수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 안 해도 되니까.</color>
<color=#99CC33>하지만 난 이대로 폐기되기 싫은걸.</color>
<color=#99CC33>"책벌레", 너는?</color>
......
"책벌레"라 불린 인형은 읽는 중이던 책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책에서 읽기를, 운명의 장미꽃을 만나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하늘이 별들이 전부 장미처럼 보인대.
<color=#99CC33>"장미"...? 시각 모듈에 오류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야?</color>
<color=#ffcc00>검색해봤는데, 인형한테도 무해한 식물이야.</color>
<color=#99CC33>그럼 장미가 어떻게 별들을 꽃처럼 보이게 해?</color>
나도 몰라. 하지만 알아내고 싶어.
"책벌레" 612호는 고개를 더 들어, 시꺼먼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오염도가 높은 탓에 지금 이곳에선 별이 보이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반짝이는 비단처럼 별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color=#99CC33>어디 가게?</color>
응. 서쪽의 바르샤바로, 내일 바로 출발하려 해.
<color=#99CC33>바르샤바가 어디야?</color>
<color=#ffcc00>......</color>
612호가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들의 현재 위치에서 서쪽으로 쭈욱, 거의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야 바르샤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color=#99CC33>이렇게 멀어!?</color>
<color=#ffcc00>시베리아 생명선을 따라서 가려고?</color>
응, 바르샤바는 내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철도역이야.
<color=#99CC33>......</color>
세상엔 다시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와 쌓인 눈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만이 남았다.
<color=#99CC33>...그냥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있자.</color>
<color=#ffcc00>인간의 도시는 너무 위험해.</color>
<color=#99CC33>그들이 너한테 엄청 끔찍한 짓을 할 거야!</color>
<color=#ffcc00>찾던 걸 찾아내더라도 실망하게 될 수도 있어.</color>
알아. 내가 열차에 올라 바르샤바까지 금방 가게 돼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
612호의 머리 램프가 가볍게 깜빡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작별을 고하는 슬픈 눈의 깜빡임 같았다.
그래도 가보고 싶어. 여기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별도 없고, 장미도 없어.
<color=#99CC33>......</color>
폐기 처분될 때, 밤하늘의 장미를 보고 싶어.
<color=#ffcc00>네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야.</color>
투박한 기계손이 612호의 어깨에 얹어졌다.
<color=#ffcc00>그럼, 오늘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자.</color>
......
다음날 새벽.
612호는 얼마 있지도 않은 짐을 싸고, 전철역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color=#99CC33>......</color>
왜 그래?
<color=#99CC33>이거 줄게.</color>
634호가 작은 주머니를 612호의 짐가방에 넣었다. 그건 634호가 한가할 때마다 주워 모았던 돌멩이들이 담긴 주머니였다.
네가 좋아하는 돌이잖아.
<color=#99CC33>나랑 590호는 가장 가까운 회수처리장으로 가서 폐기 처분받으려고.</color>
<color=#99CC33>그 인간 감독들이 이 돌멩이는 엄청 비싸게 팔릴 거랬으니까, 네게 쓸모 있을 거야.</color>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color=#ffcc00>잘 가, 612호.</color>
잘 가, 590호. 잘 가, 634호.
612호는 전철역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서 612호를 배웅하는 590호와 634호는 이제 아주 작게 보여, 눈밭에 솟아난 매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듬해 봄이 찾아왔을 땐 저곳에 없을 것이다.
며칠 후, 바르샤바 중앙 전철역.
승객들이 물 흐르듯 출구를 나서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날 때, 612호도 짐가방을 둘러메고 열차에서 내렸다.
다만, 612호는 발걸음을 떼지 않고 한쪽의 승무원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
부름에 고개를 돌린 승무원의 미소가, 612호를 보자마자 질색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열차에서 내리셨으니 당신은 더 이상 승객이 아닙니다. 당신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없어요.
그냥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장미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장미...? 그냥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하세요, 그게 더 빨라요.
승무원은 홱 떠났고, 612호는 홀로 썰렁한 승강장에 남겨졌다.
...내가 찾는 건 진짜 장미인데. 밤하늘을 바라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장미.
속으로 되뇌면서, 그는 천천히 역 밖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바르샤바 교외.
612호는 기운 없이 길가에 걸터앉았다. 그의 질문을 받는 행인들은 하나같이 하찮다거나 조롱하기만 했다.
결국, 612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곳엔 장미가 없다고.
......진작에 알아챘어야 했는데.
책 속의 장미도, 아주 연약해서 유리 덮개로 바깥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했으니.
그렇게 연약한 존재가 이런 데서 살아갈 수 있을 리 없어.
612호의 발 아래의 거리는 악취로 가득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썩는 냄새, 썩다 못해 발효되어 가는 배설물의 냄새, 온갖 것이 뒤섞여 무엇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냄새가 진동했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조차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이어서, 마치 목적지 없는 산송장처럼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듯했다.
612호는 고개를 숙였다. 장기간 오염지대에서 중노동을 한 그의 소체도 온통 흠집투성이였기에, 사람들 눈엔 그도 역시 저 산송장들 중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여기에는 장미가 없어.
내가 갈 수 있는 어느 곳에도 장미는 없어.
밤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 그의 목에서, 녹슨 부품이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밤하늘은 칙칙했다.
......
여기서도 별은 안 보이는구나.
그의 램프가 빛을 잃었다.
......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으니, 이제 됐어.
나도 회수처리장에 가야지.
612호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바르샤바의 인형 회수처리장으로 향했다.
얼마 후, 인형 회수처리장.
612호의 소체 검사 결과가 처참하자, 회수업자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알아서 걸어 들어온 건 좋은데, 이딴 고물을 회수해서 어따 쓴다고...
......
죄송합니다.
612호는 측정기 앞에 가만히 서서, 출고 후 동료들과 철로를 수리하던 나날을 떠올렸다.
그 시절엔 자주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의 저편을 바라보며, 이 위로는 과연 무엇이 지나갈까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그 해답을 얻었다.
그는 강철의 괴수 같은 열차를 타고, 무수한 인부 인형들을 소모해 수복된 철로 위를 빠르게 달렸다.
가슴이 무척 설레였지만, 누구와도 이 기분을 나눌 수 없었다. 열차에는 철로가 어떻게 수복됐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팔 들어.
예.
얌전히 양팔을 든 612호의 눈에, 회수업자의 어깨 너머로 웬 여자아이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골목길을 달려나오다 질척한 길바닥에 넘어지는 광경이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안색이 창백한 것이 영양실조인 듯했고, 낡고 펑퍼짐한 옷으로 감싼 비쩍 마른 몸은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메마른 꽃송이 같았다.
저기에 누가 다쳤습니다.
그 말에 회수업자는 반사적으로 힐끗 보기만 하곤 계속 손을 움직였다.
이윽고 양아치처럼 보이는 사람 몇 명이 골목길 밖으로 나타나, 욕설을 내뱉으며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잡곤 어두운 심연 속으로 도로 끌고 들어갔다.
저 여자애...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경 꺼.
......
612호는 여자아이가 울면서 도움을 청하다 질질 끌려가면서 남겨진 흔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연약하고 어린 생명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 덮개 밖 나쁜 것에 의해 다치게 될 터였다.
612호는 결단을 내렸다. 회수업자를 살며시 밀어내고, 몸을 돌려 회수처리장 밖으로 걸어갔다.
너 뭐야 진짜!?
죄송합니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폐기 처분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회수업자가 뒤로 마구 욕설을 퍼붓는 것을 무시하며, 612호는 곧장 그 골목길로 향했다.
......
잠시 후, 어두운 골목길.
갖고 있던 스패너와 무쇠 소체를 십분 활용해, 612호는 양아치들을 쫓아냈다.
그런데, 망연하게 바닥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누... 누구세요...?
마침내 무언가 다름을 느낀 여자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데, 맑고 예쁜 눈동자건만 초점이 없는 것 같았다.
......
612호는 어린 인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폴? 혹시 폴이야?
<color=#A9A9A9>폴...?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color>
여자아이는 "폴"이란 이름을 부르며 휘청휘청 다가왔다.
그녀가 앞으로 뻗어 허우적대는 손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생명의 마지막 빛줄기를 붙잡으려는 듯 초조했다.
612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살며시 스패너를 내밀어 그녀가 붙잡고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왜 말을 안 해? 폴... 너 맞아?
......
그래, 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