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R4 피아노 협주곡 F단조
처음부터 나는... 그저 생명을 구한다는 느낌 자체를 좋아했던 거야...
모스크바 벨로루스키역, 대륙간 열차 "미래호".
루카스는 닥터 루고사를 부축하며 일등석 객차에 올라탔다.
선생님, 아직 의료봉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먼저 베를린에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갈라테아 그룹에서 합의를 어긴 걸 알면 아마 비난이 쏟아질 텐데...
우리 귀여운 루카스, 네가 어떻게든 얼버무려 줄 거지?
...알았어요, 선생님.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닥터 루고사는 루카스의 머리카락을 문지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을 쉬세요?
그 난민들이 떠올라서... 그들은 결국엔 치료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선생님...
가끔은 나도 모르게 생각한단다, 만약 내가 끝까지 초심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닥터 루고사는 옆의 꼬마 조수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느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내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만...
뚜벅뚜벅—— 절도있는 걸음 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좌석 옆에 나타났다.
좌석표를 확인하고서 여성은 닥터 루고사의 맞은편에 앚았다.
반갑습니다, 류드밀라라고 합니다.
유진 루고사라 하오. 닥터 루고사라 불러주시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열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담요를 꺼내 의사의 몸에 덮어주었다. 따듯함에 감싸여 의사는 깊은 잠에 빠졌다...
......
......
조용한 실험실 안.
닥터 루고사는 말없이 실험 준비를 하고 있고, 루카스가 곁에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의 실험대상이 도착했습니다.
응, 먼저 한 번씩 확인하자.
네.
루카스는 문을 열고 키가 작은 여자아이들을 들여왔다.
안토니나, 나이 10살, 신장 120cm, 체중 30kg.
통과, 뒤쪽으로 데려가.
네.
다음... 로시타, 나이 11살, 신장...
루카스가 검사를 멈추고 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고사 선생님, 이 여자아이는 정보와 달라요,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
의사는 여자아이 앞에 다가갔다, 소녀의 맑은 두 눈은 초점 없이 앞만을 바라보며 의사의 움직임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실명한 아이였다. 의사는 그녀가 가여웠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지도 못한 채 지옥에 들어선 그 아이가.
...됐다, 또 왔다갔다하면 고생이니까, 다른 장기가 멀쩡하면 들여보내렴.
네.
반 시간 후.
선생님, 실험대상 확인을 전부 마쳤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실험 기록을 시작할 테니까, 밖에서 기다리렴.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니야, 나가 있으렴.
...네, 선생님.
루카스는 어깨를 떨구고서 실험실에서 나갔다.
닥터 루고사는 언제나, 루카스가 실험 과정에 함께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기록 개시, 금일 실험대상 프로필 업로드 완료. 이어서...
닥터 루고사는 방 안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실험 개시.
......
몇 시간 후.
닥터 루고사는 실험용 가운과 장갑을 벗고 몸에 남아있는 핏자국을 씻어냈다.
선생님, 청소부가 실험 폐자재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
근데 아직 숨이 붙어있는 폐자재가 있다고 해서 선생님이 처리해 달래요.
......
알았다.
닥터 루고사는 혈흔이 낭자한 장갑을 다시 쓰고 실험대상을 방치한 방에 들어갔다.
그 실명한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방구석에 잔뜩 웅크려 몸을 떨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할까요?
......
닥터 루고사는 여자아이의 공허한 두 눈을 마주보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루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면제 두 알 먹이렴.
확실한가요, 선생님? 수면제 두 알은 치사량에 미달...
알고 있어, 그냥 내 말대로 하면 돼.
네.
여자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쳐다보고서 닥터 루고사는 실험실을 나갔다.
......
닥터 루고사는 그것이 그 여자아이를 보는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열차에서 그는 그 맑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이 아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닥터 루고사는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혈청 용액이 천천히 주사기에서 빠져나가고, 로시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어수선한 객차 안에서 의사는 로시타의 곁에 쪼그려 앉아 그 아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 아직 혈청 남아있죠!?
남아있는 거 다 꺼내봐요!
우리도 혈청이 필요하다고요! 빨리 내놔요!
원초적인 탐욕과 생존욕구가 지켜보던 승객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더는 없소,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요.
거짓말 마!
빨리 내놓으라고! 빨리!
진정들 하세요, 방금 그게 정말 딱 하나 있던 거예요...
루카스가 나서서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승객들은 의사를 단단히 에워쌌다.
이 영감탱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이렇게 나올 수밖에!
쉭하는 소리와 함께, 앞장 선 남자 승객이 비수를 꺼내 굶주린 늑대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이윽고 다른 승객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서 의사에게 모여들었다...
선생님!
칼 내려놓으시오!
욕심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승객들을 보며, 그는 그날 루카스가 쓰러진 모습이 또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걱정이 피어오르는 순간 닥터 루고사는 바로 그것을 찍어눌렀다.
그는 더이상 자신에겐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야 했다.
닥터 루고사는 이를 악물고 뒷걸음질치던 발을 멈췄다...
다시는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게 두지 않겠소!
닥터 루고사는 양팔을 활짝 벌려 루카스와 로시타 앞을 막아섰다.
콰앙——!
칼끝이 닥터 루고사의 살갗을 찌르기 직전, 객차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빽빽한 포위망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길을 뚫었다.
비켜! 다 저리 비켜!
폴이 스패너를 마구 휘두르며 닥터 루고사의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로시타는... 무사합니까?
혈청을 주사해서 증상은 이미 안정되었소.
다행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닥터 루고사는 로시타 곁으로 돌아가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호흡은 평온했다. 혈청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어디 다치셨어요?
......
괜찮아, 난 괜찮단다.
그런데 왜... 울고 계세요?
닥터 루고사는 멍하니 자신의 뺨을 만져 보았다. 장갑 너머로 차갑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루카스가 세상을 떠나고서 그는 아주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던 적이 없었다.
선생님?
내가... 작은 생명을 구했어.
루카스는 눈을 깜빡이며 의사가 설명해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닥터 루고사는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작은 생명을 구했어...
......
처음부터 나는... 그저 생명을 구한다는 느낌 자체를 좋아했던 거야...
전체 대사 보기 (92줄)
모스크바 벨로루스키역, 대륙간 열차 "미래호".
루카스는 닥터 루고사를 부축하며 일등석 객차에 올라탔다.
선생님, 아직 의료봉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먼저 베를린에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갈라테아 그룹에서 합의를 어긴 걸 알면 아마 비난이 쏟아질 텐데...
우리 귀여운 루카스, 네가 어떻게든 얼버무려 줄 거지?
...알았어요, 선생님.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닥터 루고사는 루카스의 머리카락을 문지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을 쉬세요?
그 난민들이 떠올라서... 그들은 결국엔 치료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선생님...
가끔은 나도 모르게 생각한단다, 만약 내가 끝까지 초심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닥터 루고사는 옆의 꼬마 조수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느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내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만...
뚜벅뚜벅—— 절도있는 걸음 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좌석 옆에 나타났다.
좌석표를 확인하고서 여성은 닥터 루고사의 맞은편에 앚았다.
반갑습니다, 류드밀라라고 합니다.
유진 루고사라 하오. 닥터 루고사라 불러주시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열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루카스는 담요를 꺼내 의사의 몸에 덮어주었다. 따듯함에 감싸여 의사는 깊은 잠에 빠졌다...
......
......
조용한 실험실 안.
닥터 루고사는 말없이 실험 준비를 하고 있고, 루카스가 곁에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의 실험대상이 도착했습니다.
응, 먼저 한 번씩 확인하자.
네.
루카스는 문을 열고 키가 작은 여자아이들을 들여왔다.
안토니나, 나이 10살, 신장 120cm, 체중 30kg.
통과, 뒤쪽으로 데려가.
네.
다음... 로시타, 나이 11살, 신장...
루카스가 검사를 멈추고 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고사 선생님, 이 여자아이는 정보와 달라요,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
의사는 여자아이 앞에 다가갔다, 소녀의 맑은 두 눈은 초점 없이 앞만을 바라보며 의사의 움직임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실명한 아이였다. 의사는 그녀가 가여웠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지도 못한 채 지옥에 들어선 그 아이가.
...됐다, 또 왔다갔다하면 고생이니까, 다른 장기가 멀쩡하면 들여보내렴.
네.
반 시간 후.
선생님, 실험대상 확인을 전부 마쳤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실험 기록을 시작할 테니까, 밖에서 기다리렴.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니야, 나가 있으렴.
...네, 선생님.
루카스는 어깨를 떨구고서 실험실에서 나갔다.
닥터 루고사는 언제나, 루카스가 실험 과정에 함께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기록 개시, 금일 실험대상 프로필 업로드 완료. 이어서...
닥터 루고사는 방 안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실험 개시.
......
몇 시간 후.
닥터 루고사는 실험용 가운과 장갑을 벗고 몸에 남아있는 핏자국을 씻어냈다.
선생님, 청소부가 실험 폐자재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
근데 아직 숨이 붙어있는 폐자재가 있다고 해서 선생님이 처리해 달래요.
......
알았다.
닥터 루고사는 혈흔이 낭자한 장갑을 다시 쓰고 실험대상을 방치한 방에 들어갔다.
그 실명한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방구석에 잔뜩 웅크려 몸을 떨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할까요?
......
닥터 루고사는 여자아이의 공허한 두 눈을 마주보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루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면제 두 알 먹이렴.
확실한가요, 선생님? 수면제 두 알은 치사량에 미달...
알고 있어, 그냥 내 말대로 하면 돼.
네.
여자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쳐다보고서 닥터 루고사는 실험실을 나갔다.
......
닥터 루고사는 그것이 그 여자아이를 보는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열차에서 그는 그 맑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이 아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닥터 루고사는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혈청 용액이 천천히 주사기에서 빠져나가고, 로시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어수선한 객차 안에서 의사는 로시타의 곁에 쪼그려 앉아 그 아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 아직 혈청 남아있죠!?
남아있는 거 다 꺼내봐요!
우리도 혈청이 필요하다고요! 빨리 내놔요!
원초적인 탐욕과 생존욕구가 지켜보던 승객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더는 없소,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요.
<size=50>거짓말 마!</size>
<size=50>빨리 내놓으라고! 빨리!</size>
진정들 하세요, 방금 그게 정말 딱 하나 있던 거예요...
루카스가 나서서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승객들은 의사를 단단히 에워쌌다.
이 영감탱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이렇게 나올 수밖에!
쉭하는 소리와 함께, 앞장 선 남자 승객이 비수를 꺼내 굶주린 늑대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이윽고 다른 승객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서 의사에게 모여들었다...
선생님!
<size=50>칼 내려놓으시오!</size>
욕심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승객들을 보며, 그는 그날 루카스가 쓰러진 모습이 또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걱정이 피어오르는 순간 닥터 루고사는 바로 그것을 찍어눌렀다.
그는 더이상 자신에겐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야 했다.
닥터 루고사는 이를 악물고 뒷걸음질치던 발을 멈췄다...
다시는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게 두지 않겠소!
닥터 루고사는 양팔을 활짝 벌려 루카스와 로시타 앞을 막아섰다.
콰앙——!
칼끝이 닥터 루고사의 살갗을 찌르기 직전, 객차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빽빽한 포위망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길을 뚫었다.
비켜! 다 저리 비켜!
폴이 스패너를 마구 휘두르며 닥터 루고사의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로시타는... 무사합니까?
혈청을 주사해서 증상은 이미 안정되었소.
다행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닥터 루고사는 로시타 곁으로 돌아가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호흡은 평온했다. 혈청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어디 다치셨어요?
......
괜찮아, 난 괜찮단다.
그런데 왜... 울고 계세요?
닥터 루고사는 멍하니 자신의 뺨을 만져 보았다. 장갑 너머로 차갑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루카스가 세상을 떠나고서 그는 아주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던 적이 없었다.
선생님?
내가... 작은 생명을 구했어.
루카스는 눈을 깜빡이며 의사가 설명해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닥터 루고사는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작은 생명을 구했어...
......
처음부터 나는... 그저 생명을 구한다는 느낌 자체를 좋아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