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변
주야, 조석, 일월.
......
잠시 후, 베를린 중앙 철도역.
부대가 산개한 뒤, 유일하게 엘리아나와 함께인 SCR이 서둘러 그녀 옆에 따라붙었다.
M26이 수색 80% 완료했고, 다음 계획은 뭐냐고 물어.
완료하면 담당 구역 재수색.
어?
이따 일련의 숫자를 줄 테니 그 숫자에 맞춰 이 객차들의 화물을 전부 꺼내.
그리폰의 수송 차량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니 그 상자를 전부 가져가 싣도록.
이, 이렇게나 많이? 하지만 아직 수색하지 않은 곳이 잔뜩인데...
시키는 대로 해.
......
SCR은 잠시 망설이다 암호화 통신 채널을 켰다.
우리 임무, 실은 폭탄 제거가 아니구나?
...폭발물 처리 임무처럼 수행하면 돼.
대답을 들은 SCR이 바로 통신을 종료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자괴감으로 울상이 되었다.
미, 미안해 내가 좀 흥분해서...
...여태까지 해본 임무 중 가장 위험했던 게 백업 서버 호송하는 일이었거든.
괜찮으면 하나 물어봐도 될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뭐지?
왜 나를 골랐어?
어째서 그런 의문을 품지?
그게... 나, 나는 어딜 봐도 적절한 인선이 아닌걸.
그리폰에서 여태까지 안전한 군수지원이나 가벼운 경비 같은 일만 해봤는데...
갑자기 이런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될 줄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내가 맡긴 임무에 집중해.
병사가 상급자의 신뢰를 얻는 법은 오직 받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뿐이야. 그게 군인이 생존하는 방법이지.
아... 알았어!
SCR이 서둘러 화물칸에 달려간 그때였다.
묵직한 폭음과 함께 화물 차량의 두꺼운 합금 외피에 구멍이 뚫렸다.
엎드려!
엇!?
이와 거의 동시에, 엘리아나가 몸을 던져서 SCR을 덮쳐 감싸고 바닥에 넘어졌다.
——습격이다! 엄폐해!
............
엘리아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창밖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녀 밑에 깔린 SCR은 총탄이 스친 것으로 보이는 엘리아나의 뺨을 멍하니 바라봤다.
임무가 있는데 왜 나부터...?
더는 공격이 없음을 확인한 두 인형은 바닥에서 일어나 각자의 무기를 집었다.
즉시 전 대원들에게 전달, 이동 준비한다.
그렇게 말하는 엘리아나의 눈은 여전히 뺨을 스친 탄환이 날아온 방향을 주시했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인파뿐이었다.
명령 하달을 마친 엘리아나는 곧장 경찰들이 오기 전에 먼저 불타는 차량 안으로 진입했다.
불길 속을 수색하던 그녀의 걸음은 한 상자 앞에서 멈췄다.
잠시 그걸 살펴본 후, 엘리아나는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삑.
통신 연결.
상황 보고해.
엘리아나입니다.
"낮별"을 확인.
...상태는?
......
엘리아나는 사자의 관에 예를 표하듯 상자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낮별"은 추락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운석"뿐입니다.
제길... 알았다.
목표를 "운석" 회수 및 보호로 변경한다.
예.
삐빅.
엘리아나가 대답함과 동시에, 그녀의 시스템이 매우 익숙한 소리를 냈다.
동공이 수축할 만큼 익숙한 알림음이었다.
"달"이 연결되었습니다. 응답하시겠습니까?
응답.
주저 없는 즉답이었다. 하지만...
"달"과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재연결——
대, 대장... 콜록콜록!
소방대가 도착했――
여길 부탁한다!!
엥? 대장? 잠깐 지금 어디가?!!
다급한 SCR의 부름을 무시하고, 엘리아나는 불타는 화물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 저 인파 속으로 달렸다.
...목표, "달". 수색 개시.
삑.
목표의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역시...!
위치는?
좌표 특정 중... 실패.
신호는 반경 200m 내에서 감지됩니다.
겨우 잠잠해졌던 인파는 방금의 총성으로 다시 혼비백산이었다.
엘리아나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 인파를 훑으며, 무기를 단단히 고쳐쥐었다.
도망치게 놔둘까 보냐...
......
베를린 중앙 철도역 바깥.
더 이상의 폭발이 없고 나서야 사람들은 경찰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며 대피했다.
하지만 셰릴은 여전히 제자리서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찾아 헤맸다.
서 있지 마십시오! 위험하니 밖으로 이동하십시오!
저,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물건을 떨어뜨려서 찾으러 갔어요!
내부는 대피가 끝나서 아무도 없습니다! 위험하니 밖으로 이동한 다음 기다리십시오!
으으...!
셰릴은 뭐라 더 둘러대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안인원의 손에 붙잡혀 사모와 약속한 자리에서 멀어졌다.
뭐하길래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약속한 시간 한참 지났다고...
초조한 손으로 사모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질 않았다.
연락 유지하라면서 왜 자기가 안 받는데!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조바심이 난 셰릴은 제자리를 빙빙 돌며 사모가 원래 약속했던 위치에서 자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지, 아니면 다쳐서 어딘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확 그냥 역무원한테 물어봐야지 안 되겠어.
결국 셰릴은 마음을 다잡고 역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거뭇한 색의 훤칠한 모습이 일부러 장난치듯 대피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역행해 와, 셰릴 앞에 멈춰 섰다.
사모! 너 어디 갔다 이제 와!? 한참 기다려서 걱정했잖아!
빨리, 충전된 보조 배터리 다 줘.
......
뭐하려고?
이거 갖고 있어.
다짜고짜 셰릴의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엥?
방금 내 원수 녀석을 봤거든? 날 부품 하나까지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놈이야.
?!!
너한테 돈 될 게 어디 있다고?
아 그러니까 난 비싼 인형이라고 했잖아.
아무튼 지금 그 자식이 나 잡으러 오는 중이니까 빨리 이거 들고 이 주변을 적당히 돌아다니고 있어.
야 잠깐, 내 질문엔 대답 안 했잖아! 똑바로 설명해!
시간 없으니까 나중에! 으아아 벌써 쫓아왔다, 빨리 움직여!
......
...오늘은 좀 늦게 돌아갈게.
뭣, 야!
훌쩍 떠나는 사모의 등에 대고 소리친 셰릴은 어리둥절해하며 손을 펴 보았다.
사모가 준 것은 쓰고 난 탄피였다.
그런데, 탄피의 구경과 길이를 확인한 셰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 이건...!
문득 깨달은 셰릴이 까치발을 들고 사람들 너머로 고개를 들었지만, 사모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리폰의 수송 차량.
아니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러니까, 그냥 이 상자들을 싣고 돌아가라는 거야?
갑작스런 호출에 허둥지둥 수송 차량에 올라탄 M26 MASS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허공을 바라보는 SCR이었다.
얼레, 대장은?
"부탁한다"...
뭐?
SCR이 허공을 응시하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광경에, M26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아, 아... 그게...
대장은... 사람 쫓으러 갔어.
뭐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자기 신분이 뭔지도 까먹은 거야!?
어느 동네 소대장이 소대를 버리고 사람 쫓으러 가!
에, 엘리아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아무튼 여기 이 지시한 물건들을 전부 그리폰으로 싣고 가야 해.
어휴... 그래, 먼저 지휘관한테 연락할게.
넌 계속 걔한테 연락해 봐.
...알았어.
SCR은 고개를 끄덕였다.
삐삑.
"달"의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
정확히 잡아내지도 못하던 스캔이 이번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엘리아나가 의문스러워 걸음을 잠깐 멈추고 다시 확인하려 할 정도였다.
분명 고장은 아니었다. "달"의 신호가 확실히 "2개" 표기되고 있었다.
속임수인가? 아니면...
허나 망설일 여유 따윈 없었다.
찡그렸던 미간을 다시 펴고, 엘리아나는 문자 그대로 찰나의 고민 뒤 두 신호 중 하나를 향해 질주했다.
아니,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베를린 중앙 철도역, 역외 광장.
사모는 어디선가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손바닥에 마구 머리를 비비는 강아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뒤쫓아와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 주인에게 목줄을 건네주었다.
아이고, 우리 멍멍이 붙잡아 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사모는 싱긋 웃으며 강아지의 목줄을 툭 치고선 자리를 떠났다.
이때 그녀 손에서 탄피가 하나 더 줄었다.
자아 그럼 마지막은...
교란기가 붙은 마지막 탄피는 광장 옆 화단에 던져졌다.
이러면 내가 동시에 네 군데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
한 15분...이 아니라 5분 정도 벌 수 있으려나.
사모는 걸음을 서둘러 시끌벅적한 광장을 가로질렀고,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근처에서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건만, 이 저수지 옆 연못 같은 세상엔 물결 하나 없었다.
그냥 무신경한 사람들, 세상 모르게 기운 넘치는 사람들, 활력 없이 산송장 같은 사람들...
기대를 품었든 아무 생각도 없든 저들 모두에겐 각자의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중일 터.
그렇기에 이 드넓은 광장에 오직 사모 그녀만이 녹아들지 못했다.
그녀에겐 목적지가 없으니까.
마침 태양은 하늘에서 내려와,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황금색 노을빛은 모든 행인들의 머리와 어깨에 평등하게 쏟아져, 은은한 황금빛의 테두리를 그렸다.
주야, 조석, 일월.
눈부신 황혼의 풍경.
이때가 바로 하루가 교차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런 황혼 아래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마치 비단을 걸친 것 같았다.
흐릿하게 서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삶"이란 강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독한 영혼들.
언제 서로 만나 같은 길을 걸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다시 뿔뿔이 흩어질 운명인 영혼들.
사모는 빛이 쏟아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늘 끝에 걸린 태양계에서 가장 눈부신 항성은,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부셨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찡그렸다.
너무 눈부시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도록.
호박색 술을 가득 담은 술잔처럼 찰랑이는 빛덩어리.
잡았다.
누런 노을 속, 고작 두세 걸음 거리에.
운명은 그녀에게 사소하면서도 치명적인 장난을 쳤다.
......잡았다.
더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사모는 현실이 아니라 마인드맵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실감나지 않는 목소리라, 아직도 꿈 속을 헤메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모는 고개를 숙였다. 영원히 피곤함에만 찌들어 있을 것 같았던 그 눈에 차가운 살기가 서린 것을 가리려고.
하지만 모자의 챙 아래로 새어 나오는 살의는 감출 수 없었고, 억누르지 못하는 분노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공기를 모조리 밀어냈다.
이런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낀 적이 몇 년 전이었는지조차, 그녀는 잊어버렸다.
내게 그날은 어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네겐 단 하루도 빠짐없는 13년이었겠지.
누더기가 된 소체, 실뭉치처럼 꼬인 마인드맵... 시스템마저 2051년 그때 그대로로군.
............
그 몸으로 총은 들 수나 있겠나?
"서광"의...
...탈주자.
사모가 고개를 들었다.
더는 모자챙으로 가리고 싶지 않은 분노. 그녀는 처음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다.
너만큼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이...
배신자...!
그날, 내가 한 말 기억해?
너도 나도, 변덕스런 창조자 손바닥 안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운명으로 점쳐진 "서광"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운명은 영원히 "서광"을 이을 자는 나라고 점쳤다.
네가 할 일은 그저 받아들이는 거다. 내가 너의 목숨을 끊는 것을 받아들여.
...넌 기필코 죽이겠어.
아니, 못해.
넌 겁쟁이니까.
......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다.
엘리아나, 죽이려면 당장 죽이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안 그럼 네가 내 손에 죽어.
엘리아나가 몇 걸음 다가갔다.
13년 전 마치지 못했던 임무를 마침내 매듭지을 수 있겠군.
지금 내가 널 죽이는 건 개미 한 마리 짓이기는 것처럼 손쉬워.
하지만 다행인 줄 알아라. 주위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널 건드릴 수 없으니까.
......
그래, 그렇게 날 증오해.
지금 못 해서 아쉽지만, 적어도 우리의 마지막 대결에 약간의 즐거움이 되겠지.
.......
석양은 마침내 완전히 꺼져, 마지막 빛줄기도 달빛으로 대체되었다.
...5분 남았다. 내가 너라면 바로 뒤돌아 달렸어.
사모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 불꽃은 밤하늘의 달처럼 활활 타올랐다.
석양의 빛을 받아, 세상을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두고봐.
넌 언젠가 죽어. 내 손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에.
......
전체 대사 보기 (150줄)
......
잠시 후, 베를린 중앙 철도역.
부대가 산개한 뒤, 유일하게 엘리아나와 함께인 SCR이 서둘러 그녀 옆에 따라붙었다.
M26이 수색 80% 완료했고, 다음 계획은 뭐냐고 물어.
완료하면 담당 구역 재수색.
어?
이따 일련의 숫자를 줄 테니 그 숫자에 맞춰 이 객차들의 화물을 전부 꺼내.
그리폰의 수송 차량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니 그 상자를 전부 가져가 싣도록.
이, 이렇게나 많이? 하지만 아직 수색하지 않은 곳이 잔뜩인데...
시키는 대로 해.
......
SCR은 잠시 망설이다 암호화 통신 채널을 켰다.
<color=#00CCFF>우리 임무, 실은 폭탄 제거가 아니구나?</color>
<color=#00CCFF>...폭발물 처리 임무처럼 수행하면 돼.</color>
대답을 들은 SCR이 바로 통신을 종료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자괴감으로 울상이 되었다.
미, 미안해 내가 좀 흥분해서...
...여태까지 해본 임무 중 가장 위험했던 게 백업 서버 호송하는 일이었거든.
괜찮으면 하나 물어봐도 될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뭐지?
왜 나를 골랐어?
어째서 그런 의문을 품지?
그게... 나, 나는 어딜 봐도 적절한 인선이 아닌걸.
그리폰에서 여태까지 안전한 군수지원이나 가벼운 경비 같은 일만 해봤는데...
갑자기 이런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될 줄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내가 맡긴 임무에 집중해.
병사가 상급자의 신뢰를 얻는 법은 오직 받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뿐이야. 그게 군인이 생존하는 방법이지.
아... 알았어!
SCR이 서둘러 화물칸에 달려간 그때였다.
묵직한 폭음과 함께 화물 차량의 두꺼운 합금 외피에 구멍이 뚫렸다.
엎드려!
엇!?
이와 거의 동시에, 엘리아나가 몸을 던져서 SCR을 덮쳐 감싸고 바닥에 넘어졌다.
——습격이다! 엄폐해!
............
엘리아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창밖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녀 밑에 깔린 SCR은 총탄이 스친 것으로 보이는 엘리아나의 뺨을 멍하니 바라봤다.
<color=#A9A9A9>임무가 있는데 왜 나부터...?</color>
더는 공격이 없음을 확인한 두 인형은 바닥에서 일어나 각자의 무기를 집었다.
즉시 전 대원들에게 전달, 이동 준비한다.
그렇게 말하는 엘리아나의 눈은 여전히 뺨을 스친 탄환이 날아온 방향을 주시했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인파뿐이었다.
명령 하달을 마친 엘리아나는 곧장 경찰들이 오기 전에 먼저 불타는 차량 안으로 진입했다.
불길 속을 수색하던 그녀의 걸음은 한 상자 앞에서 멈췄다.
잠시 그걸 살펴본 후, 엘리아나는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삑.
통신 연결.
<color=#00CCFF>상황 보고해.</color>
<color=#00CCFF>엘리아나입니다.</color>
<color=#00CCFF>"낮별"을 확인.</color>
<color=#00CCFF>...상태는?</color>
<color=#00CCFF>......</color>
엘리아나는 사자의 관에 예를 표하듯 상자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color=#00CCFF>..."낮별"은 추락했습니다.</color>
<color=#00CCFF>이제 남은 것은 "운석"뿐입니다.</color>
<color=#00CCFF>제길... 알았다.</color>
<color=#00CCFF>목표를 "운석" 회수 및 보호로 변경한다.</color>
<color=#00CCFF>예.</color>
삐빅.
엘리아나가 대답함과 동시에, 그녀의 시스템이 매우 익숙한 소리를 냈다.
동공이 수축할 만큼 익숙한 알림음이었다.
<color=#99CC33>"달"이 연결되었습니다. 응답하시겠습니까?</color>
응답.
주저 없는 즉답이었다. 하지만...
<color=#99CC33>"달"과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재연결——</color>
대, 대장... 콜록콜록!
소방대가 도착했――
여길 부탁한다!!
엥? 대장? 잠깐 지금 어디가?!!
다급한 SCR의 부름을 무시하고, 엘리아나는 불타는 화물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 저 인파 속으로 달렸다.
...목표, "달". 수색 개시.
삑.
<color=#99CC33>목표의 신호를 감지했습니다.</color>
역시...!
위치는?
<color=#99CC33>좌표 특정 중... 실패.</color>
<color=#99CC33>신호는 반경 200m 내에서 감지됩니다.</color>
겨우 잠잠해졌던 인파는 방금의 총성으로 다시 혼비백산이었다.
엘리아나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 인파를 훑으며, 무기를 단단히 고쳐쥐었다.
도망치게 놔둘까 보냐...
......
베를린 중앙 철도역 바깥.
더 이상의 폭발이 없고 나서야 사람들은 경찰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며 대피했다.
하지만 셰릴은 여전히 제자리서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찾아 헤맸다.
서 있지 마십시오! 위험하니 밖으로 이동하십시오!
저,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물건을 떨어뜨려서 찾으러 갔어요!
내부는 대피가 끝나서 아무도 없습니다! 위험하니 밖으로 이동한 다음 기다리십시오!
으으...!
셰릴은 뭐라 더 둘러대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안인원의 손에 붙잡혀 사모와 약속한 자리에서 멀어졌다.
<color=#A9A9A9>뭐하길래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약속한 시간 한참 지났다고...</color>
초조한 손으로 사모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질 않았다.
<color=#A9A9A9>연락 유지하라면서 왜 자기가 안 받는데!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color>
조바심이 난 셰릴은 제자리를 빙빙 돌며 사모가 원래 약속했던 위치에서 자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지, 아니면 다쳐서 어딘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확 그냥 역무원한테 물어봐야지 안 되겠어.
결국 셰릴은 마음을 다잡고 역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거뭇한 색의 훤칠한 모습이 일부러 장난치듯 대피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역행해 와, 셰릴 앞에 멈춰 섰다.
사모! 너 어디 갔다 이제 와!? 한참 기다려서 걱정했잖아!
빨리, 충전된 보조 배터리 다 줘.
......
뭐하려고?
이거 갖고 있어.
다짜고짜 셰릴의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엥?
방금 내 원수 녀석을 봤거든? 날 부품 하나까지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놈이야.
?!!
너한테 돈 될 게 어디 있다고?
아 그러니까 난 비싼 인형이라고 했잖아.
아무튼 지금 그 자식이 나 잡으러 오는 중이니까 빨리 이거 들고 이 주변을 적당히 돌아다니고 있어.
야 잠깐, 내 질문엔 대답 안 했잖아! 똑바로 설명해!
시간 없으니까 나중에! 으아아 벌써 쫓아왔다, 빨리 움직여!
......
...오늘은 좀 늦게 돌아갈게.
뭣, 야!
훌쩍 떠나는 사모의 등에 대고 소리친 셰릴은 어리둥절해하며 손을 펴 보았다.
사모가 준 것은 쓰고 난 탄피였다.
그런데, 탄피의 구경과 길이를 확인한 셰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 이건...!
문득 깨달은 셰릴이 까치발을 들고 사람들 너머로 고개를 들었지만, 사모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리폰의 수송 차량.
아니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러니까, 그냥 이 상자들을 싣고 돌아가라는 거야?
갑작스런 호출에 허둥지둥 수송 차량에 올라탄 M26 MASS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허공을 바라보는 SCR이었다.
얼레, 대장은?
"부탁한다"...
뭐?
SCR이 허공을 응시하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광경에, M26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아, 아... 그게...
대장은... 사람 쫓으러 갔어.
뭐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자기 신분이 뭔지도 까먹은 거야!?
어느 동네 소대장이 소대를 버리고 사람 쫓으러 가!
에, 엘리아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아무튼 여기 이 지시한 물건들을 전부 그리폰으로 싣고 가야 해.
어휴... 그래, 먼저 지휘관한테 연락할게.
넌 계속 걔한테 연락해 봐.
...알았어.
SCR은 고개를 끄덕였다.
삐삑.
<color=#99CC33>"달"의 신호를 감지했습니다.</color>
......?
정확히 잡아내지도 못하던 스캔이 이번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엘리아나가 의문스러워 걸음을 잠깐 멈추고 다시 확인하려 할 정도였다.
분명 고장은 아니었다. "달"의 신호가 확실히 "2개" 표기되고 있었다.
<color=#A9A9A9>속임수인가? 아니면...</color>
허나 망설일 여유 따윈 없었다.
찡그렸던 미간을 다시 펴고, 엘리아나는 문자 그대로 찰나의 고민 뒤 두 신호 중 하나를 향해 질주했다.
아니,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베를린 중앙 철도역, 역외 광장.
사모는 어디선가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손바닥에 마구 머리를 비비는 강아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뒤쫓아와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 주인에게 목줄을 건네주었다.
아이고, 우리 멍멍이 붙잡아 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사모는 싱긋 웃으며 강아지의 목줄을 툭 치고선 자리를 떠났다.
이때 그녀 손에서 탄피가 하나 더 줄었다.
자아 그럼 마지막은...
교란기가 붙은 마지막 탄피는 광장 옆 화단에 던져졌다.
이러면 내가 동시에 네 군데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
한 15분...이 아니라 5분 정도 벌 수 있으려나.
사모는 걸음을 서둘러 시끌벅적한 광장을 가로질렀고,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근처에서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건만, 이 저수지 옆 연못 같은 세상엔 물결 하나 없었다.
그냥 무신경한 사람들, 세상 모르게 기운 넘치는 사람들, 활력 없이 산송장 같은 사람들...
기대를 품었든 아무 생각도 없든 저들 모두에겐 각자의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중일 터.
그렇기에 이 드넓은 광장에 오직 사모 그녀만이 녹아들지 못했다.
그녀에겐 목적지가 없으니까.
마침 태양은 하늘에서 내려와,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황금색 노을빛은 모든 행인들의 머리와 어깨에 평등하게 쏟아져, 은은한 황금빛의 테두리를 그렸다.
주야, 조석, 일월.
눈부신 황혼의 풍경.
이때가 바로 하루가 교차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런 황혼 아래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마치 비단을 걸친 것 같았다.
흐릿하게 서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삶"이란 강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독한 영혼들.
언제 서로 만나 같은 길을 걸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다시 뿔뿔이 흩어질 운명인 영혼들.
사모는 빛이 쏟아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늘 끝에 걸린 태양계에서 가장 눈부신 항성은,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부셨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찡그렸다.
너무 눈부시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도록.
호박색 술을 가득 담은 술잔처럼 찰랑이는 빛덩어리.
잡았다.
누런 노을 속, 고작 두세 걸음 거리에.
운명은 그녀에게 사소하면서도 치명적인 장난을 쳤다.
......잡았다.
더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사모는 현실이 아니라 마인드맵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실감나지 않는 목소리라, 아직도 꿈 속을 헤메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모는 고개를 숙였다. 영원히 피곤함에만 찌들어 있을 것 같았던 그 눈에 차가운 살기가 서린 것을 가리려고.
하지만 모자의 챙 아래로 새어 나오는 살의는 감출 수 없었고, 억누르지 못하는 분노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공기를 모조리 밀어냈다.
이런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낀 적이 몇 년 전이었는지조차, 그녀는 잊어버렸다.
내게 그날은 어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네겐 단 하루도 빠짐없는 13년이었겠지.
누더기가 된 소체, 실뭉치처럼 꼬인 마인드맵... 시스템마저 2051년 그때 그대로로군.
............
그 몸으로 총은 들 수나 있겠나?
"서광"의...
...탈주자.
사모가 고개를 들었다.
더는 모자챙으로 가리고 싶지 않은 분노. 그녀는 처음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다.
너만큼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이...
배신자...!
그날, 내가 한 말 기억해?
너도 나도, 변덕스런 창조자 손바닥 안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운명으로 점쳐진 "서광"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운명은 영원히 "서광"을 이을 자는 나라고 점쳤다.
네가 할 일은 그저 받아들이는 거다. 내가 너의 목숨을 끊는 것을 받아들여.
...넌 기필코 죽이겠어.
아니, 못해.
넌 겁쟁이니까.
......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다.
엘리아나, 죽이려면 당장 죽이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안 그럼 네가 내 손에 죽어.
엘리아나가 몇 걸음 다가갔다.
13년 전 마치지 못했던 임무를 마침내 매듭지을 수 있겠군.
지금 내가 널 죽이는 건 개미 한 마리 짓이기는 것처럼 손쉬워.
하지만 다행인 줄 알아라. 주위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널 건드릴 수 없으니까.
......
그래, 그렇게 날 증오해.
지금 못 해서 아쉽지만, 적어도 우리의 마지막 대결에 약간의 즐거움이 되겠지.
.......
석양은 마침내 완전히 꺼져, 마지막 빛줄기도 달빛으로 대체되었다.
...5분 남았다. 내가 너라면 바로 뒤돌아 달렸어.
사모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 불꽃은 밤하늘의 달처럼 활활 타올랐다.
석양의 빛을 받아, 세상을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두고봐.
넌 언젠가 죽어. 내 손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