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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5 · 사로스 주기

접촉

총으로 누굴 겨눌 때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해 둬야 해.

-56-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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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그리폰 임시 기지.

스르륵.

깊은 밤, 엘리아나가 몸에 한기를 휘감고 돌아왔다.

SCR

아, 왔구나... 어...

그때까지 엘리아나를 기다리던 SCR이 그녀를 반겼지만, 무시당했다.

엘리아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SCR은 그저 다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SCR

기다려 엘리아나!

지휘관이 너한테――앗!

퉁.

엘리아나가 갑자기 우뚝 멈추는 바람에, 무방비한 SCR은 그대로 엘리아나의 팔뚝에 부딪혔다.

엘리아나

너도 날 질책할 셈이야?

엘리아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녀가 뒤를 돌아본 그제서야 SCR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SCR

아, 아니... 난, 난 화 안 났어.

엘리아나

...총 들어.

SCR

어?

엘리아나가 돌연 안전장치를 풀더니 시꺼먼 총구를 SCR의 이마에 들이댔다.

엘리아나

지금 널 총으로 겨누고 있잖아, 어서 총 들어!

SCR

......아니, 안 할 거야.

그 대답에 엘리아나는 흠칫했다.

엘리아나

...왜?

SCR

왜냐니. 넌 내 대장인걸.

엘리아나

............

SCR

그리고 지휘관도 전혀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저, 네가 말도 없이 이탈한 게 걱정돼서 나한테 여기서 기다려 달랬어. 네가 돌아오면 페르시카 씨의 실험실로 가보라 전해 달라고.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

엘리아나는 총을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엘리아나

...누가 총으로 겨눈다면, 너도 똑같이 맞받아쳐라. 안 그러면 무시당하기 십상이야.

SCR

......

태도는 살짝 누그러졌지만 기세는 여전한 채로, 엘리아나는 페르시카의 실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SCR은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페르시카의 실험실.

엘리아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묵묵히 실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수복 캡슐에 들어가려 하자, 페르시카가 불쑥 튀어나와 그녀를 가로막았다.

페르시카

동작 그만, 내 실험에 끼어들지 마.

엘리아나

...당신이 저를 호출했습니다만.

페르시카

아 그렇지 참. 너, 네 마인드맵 코어에 삭제 불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는 거 알지?

엘리아나

......

당연히 알았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르시카의 말은 엘리아나의 영문 모를 분노를 순식간에 꺼뜨렸다.

과열된 머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맑아진 느낌이었다.

엘리아나

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문제를 일으킬 염려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지휘관에게도 설명하겠습니다.

페르시카

아니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네 마음대로 해. 관심 없어.

내 말은 그러니까, 네 소체를 교체할 때 그게 네 마인드맵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거란 사실을 알아냈거든?

그래서 알고는 있으라고 불렀어. 너무 고마워하진 마.

엘리아나

네, 그것도 압니다.

오늘 작동했었습니다.

페르시카

오, 그래? 어땠어? 자세히 좀 설명해 봐.

관심 없다 한 주제에, 페르시카는 아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엘리아나

소체를 교체한 것이 분명 억제 작용을 하지만, 30분을 넘지 못합니다.

그 시간을 초과하면 저는 자동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페르시카

와오, 자동 실행? 십몇 년 전의 임무인데 이제 와서 수행하고 싶어도 조건이 안 되지 않아?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코드 왕창 꼬아놓고 주석 하나 안 다는 것들이 문제라니까, 내가 미리 자세히 검사해서 망정이지...

어쨌든, 소체 기능에 지장은 없었지?

엘리아나

네, 확실히 문제 없었습니다. 관련 인물이나 일에 연관되지 않는 이상은.

페르시카

흐음... 아무튼 너도 알고 있다니 됐어.

나도 아직은 그거 삭제 못하니까, 무슨 문제 생기면 알아서 보고하도록 해.

엘리아나

......

페르시카

너한테 용무는 이걸로 끝.

따로 볼일 없으면 얼른 나가, 일하는 데 방해돼.

엘리아나

......

페르시카

참, 지휘관도 널 찾는 거 같더라.

엘리아나

...알겠습니다.

......

그리폰 임시 기지, 지휘부.

엘리아나가 지휘실에 들어왔다.

지휘관

아, 왔구나.

지휘관은 그녀를 반기며 자리에 앉았다.

지휘관

조야 양은 그리폰의 보호를 받아들였어.

네 임무도 완료야.

그런데, 엘리아나가 한참을 기다려도 지휘관은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엘리아나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그제서야 지휘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휘관

임무 자체는 달성했다만... 다른 일이 있었지?

그거에 관해서 말할지는 네 판단에 맡길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억지로 말하게 만들어도 넌 둘러댈 방법이 차고 넘치잖아?

엘리아나

......하아.

이번엔 엘리아나가 한참을 침묵하다, 이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감은 눈은 무언가 다짐을 한 듯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더는 지휘관의 시선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엘리아나

지휘관, "케찰코아틀 작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지휘관

응.

엘리아나

그러시겠죠, 그때 지휘관은 OPS 지령으로 저를 무장 해제시키셨으니.

지휘관

그래도 "3차 대전 도중 실패한 작전"이라고 적힌 자료뿐이야.

엘리아나가 말을 이었다.

엘리아나

네, 그 작전의 실패가 바로 제가 봉인된 이유입니다.

지휘관

지원 요청이 늦어져, 수송기가 로켓포에 격추된 걸로 알고 있어.

조금 어처구니가 없지만... 3차 대전 시절은 워낙에 혼란스러웠으니 말이지.

아직 발굴되지 않은 기록이 산더미야.

엘리아나

그럼 다시 자기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레인저 예하 인형 보병대 "서광" 팀 소속이었습니다.

서광 팀에 관한 모든 정보는 일반적으로 공개된 자료엔 없을 겁니다.

현재의 인형 기술도 서광 팀의 유산을 이어받지 않았고요.

지휘관

......

지휘관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지휘관

여러모로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인걸.

엘리아나

지금의 인형 기술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물입니다.

제가 만들어진 시대엔, 세력간 무력 충돌과 전황의 격화로 인해 인형은 성능면에서 금세 병목 구간을 맞았습니다.

엘리아나

하지만 국면은 기술의 발전을 얌전히 기다릴 수 없었죠.

그래서 군은 어떻게든 인형의 군사적 성능 한계를 돌파하고자, 저희 "서광"에게 극비리에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 산물은 저를 통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 기반 설정에 묶여 있는... "군번줄"입니다.

지휘관

"군번줄"?

엘리아나

네, 병사가 전사하더라도 쉽게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금속제 이름표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 인형 작전팀에겐 용도가 다릅니다.

마인드맵 데이터의 노획 방지, 그리고 마인드맵의 성능을 일시적으로 상향시키는 기술의 매개체입니다.

지휘관

듣기만으론 꽤 논리적인 설계인걸.

엘리아나

유감스럽게도 실험과 실전은 천지 차이죠. 당시 기술진은 인형들의... "개체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아나

어찌 되었든, 이 시스템은 "케찰코아틀 작전"의 확실한 성공을 위해 개발된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엘리아나에게서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