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
달은 빌려온 빛으로 길을 밝히지만, 안개를 거두어주기엔 충분하다.
............
사모의 마인드맵 깊숙한 그곳.
그녀가 나타났어.
13년만에...
사모, 우리 모두가 여기 갇힌 지 벌써 13년이야.
다 그녀 때문이지.
하지만 우린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다른 소체로 갈아탈 수도 없고.
서로의 기억을 구별하지조차 못하지.
난 누구지?
넌 누구고?
사모, 넌 네가 누군지 기억나?
유라 언니...
로우렐 언니...
나는... 나는......
............
인적 없는 어느 뒷골목의 정적을 셰릴의 초조한 발소리가 깨뜨렸다.
양손으로 태블릿을 든 그녀는 삐딱한 자세로 볼과 어깨로 휴대폰을 귀에 고정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에 표기되는 지도의 반짝이는 좌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여기인 거 확실해요...?
아 걱정 마시래도요, 저희 이런 물건 찾기 의뢰 엄청 많이 해결했다구요!
가출한 개나 고양이부터 몰래 바람 피러 나간 남편까지! 다~ 찾아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저희가 판매한 인형이라면 전원 켜져 있는 한 세상 어디 숨었든 바로 좌표 찍을 수 있어요!
......
미심쩍어하면서도, 셰릴은 걸음을 멈췄다. 골목의 막다른 끝에 다다른 것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태블릿 화면을 확인하니, 반짝이는 좌표와 자신의 위치가 완벽하게 겹쳐졌다.
...근데 여기 쓰레기 더미밖에 없는데요.
그럼 확실하네요~ 몸을 숨기려면 당연히 자연스레 녹아들 환경에 숨어야죠!
즉 저한테 쓰레기를 팔았다? 지금 인정하는 거죠? 그쵸!?
어머나 고객님은 농담도 차암~
아이쿠 하필이면 이런 때에 새 주문이 들어왔네! 아무튼 찾으셨으니까 이만 끊을게요!
......
이번에도 어김없이 저쪽에서 먼저 허겁지겁 전화를 끊어버렸다.
셰릴은 태블릿과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사모가 주었던 탄피를 조심조심 꺼냈다.
어휴, 그 약팔이 놈들의 소굴이 어딘지 기억해 둬서 다행이라니까...
손바닥 안의 탄피를 꼬옥 쥐고, 소녀는 쓰레기 더미로 다가갔다.
아직 쓰레기차가 수거하러 올 시간이 되지 않아, 이 쓰레기통은 넘칠대로 넘치고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이를 꾹 참으며, 셰릴은 침착하게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좀만 참아 언니, 내가 바로 구해줄게...
그때, 언니가 나를 구해줬던 것처럼.
잇따른 총성이 폭풍처럼 실내에서 메아리치니, 어린 셰릴은 지금 자신이 총격전의 한복판에 놓인 건지 아닌지도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는 것뿐이었다.
훌쩍... 엄마아...
으아앙!!!
옆에서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몇은 같은 반의 친구들인 것까지 구분이 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소리들이 공포에 뒤틀리고 떨려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모두! 이쪽으로 와, 얼른!
훌쩍... 구, 구하러 왔대! 빨리 가자!
이윽고 총성은 점점 멀어지고 약해졌다.
그 대신,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달음박질치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옆에 있던 같은 반 애들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셰릴은 당황하며 손을 뻗어, 뭐라도 붙잡으려 했다.
기다려... 같이 가...!
비켜! 당기지 마!
하지만 그녀의 앳된 손은 몇 번이고 같은 앳된 손에게 뿌리쳐졌다. 혼란스런 어둠 속에서 홀로, 셰릴은 세게 밀쳐져 넘어졌다.
셰릴은 그때 깨달았다. 어둠이라고 다 똑같지 않고, "차원"이 따로 있음을.
지금과 같은 어둠은 한밤중의 거센 파도처럼 그녀의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와줘... 아무것도 안 보여...
셰릴은 또 다른 공포에 몸을 떨었다. 실험용 생쥐처럼 출구가 어딘지도 모를 미궁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손을 뻗고 더듬으며, 애매모호한 형상과 이질적인 촉감만으로 어떻게든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던 그때, 차가운 두 손이 셰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리 꼬마 친구, 왜 언니들 따라 안 가고 여기 있어요?
나... 나 눈이 안 보여...
어머 그래? 큰일이네. 그래도 앞이 안보이는데도 이렇게 의젓하니 장하네.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 언니가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차갑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그 손이 셰릴의 머리에 난 상처를 상냥하게 살피고, 엉망이 된 옷도 다듬어 주었다.
머리를 다쳐서 피가 많이 나네... 일단 붕대 감아 줄게.
언니 나 무서워... 평생 눈 안 보이는 거야...?
머리를 다치면 눈이 놀라서 잠깐 안 보일 수도 있어.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고쳐 주실 거야.
병원에 가서 진찰받은 다음 네 엄마 아빠를 기다리면 되겠다.
...언니는 누구야?
나? 미안하지만 이름은 말해 줄 수가 없어.
그럼 뭐라고 불러...?
으음...
...그냥 언니라 불러도 돼?
하하, 그거 좋지.
그냥 언니라 불러.
차가운 손은 셰릴을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붙잡을 곳조차 없었던 그녀는 그 손을 꼬옥 붙잡았다.
조금 거칠고 이상하게 단단했지만, 의지가 되고 안심이 되는 손이었다.
후우... 찾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온몸이 지저분해진 셰릴은 거친 숨을 고르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사모를 바라봤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라도 하려던 건지, 사모는 쓰레기 더미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리고 셰릴은 생각해 보니 역시나 짜증났는지, 미동도 않는 사모의 뺨을 몇 번 찰싹찰싹 치곤 수레에 싣고서 집으로 향했다.
베를린, 슈타지 사무실.
J와 K는 회의실에 앉아 탁상에 놓인 자료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자료는 분량이 고작 인쇄용지 몇 장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두 요원은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었다.
아아니 어떻게 겨우 이 정보만 가지고 베를린에서 인형을 찾아? 이 특징에 부합하는 인형이 시내에만 몇천 명은 되겠다.
게다가, 그 옛날에 만들어진 인형이 정말 아직도 움직인다고? 진짜로?
적어도 소련 안전국에 있을 땐 움직였다잖냐.
그리고 말이야, 소련네 안전국이 고이 보관 중이시던 "전설의 인형"이 어떻게 이리도 쉽게 딴 나라로 빠져나갔대냐?
무슨 고물상에 팔아넘긴 것도 아니고...
이해는 하는데 협력국이니까 빈말로라도 존중 좀 해라.
모르겠다아...
아니 진짜 모르겠어, 이 뭐가 뭔지 영문도 모를 의문점투성이인 임무를 넌 왜 또 냉큼 받아버린 거야?
머리를 굴려 봐.
지금 소련 상황이 어떻지? 안으로 아주 난리도 아니야, 내통자라면 인형 하나보다 더한 것도 어렵잖게 빼돌릴 수 있었을 만큼.
그런데 저쪽의 높으신 분들은 왜 훨씬 위험한 무기들의 행방은 묻지도 않고 이 특별한 인형을 찾으려고 국경 넘어 우리한테, 그것도 대가를 불문하고 협력을 구했을까?
K에게 온 통신 알림음이 대화의 흐름을 끊었다. 그런데 통신 상대를 힐끔 확인한 K가 J에게 고개를 돌렸다.
Q의 연락이다, 말조심해.
엥, 그 여자가 웬일로?
알았어 알았어 입에 지퍼 잠그면 되지 뭐.
K가 수신을 누르자, Q의 화상 통신이 바로 스크린에 떴다.
야아, 오랜만. 어, J도 있네? 안뇨옹.
J는 고개를 홱 돌려 못 본 척하는 것으로 답했다.
무슨 일입니까?
나한테 감사하셔, 일 있어서 출장 중만 아니었어도 너희는 그 일 구경도 못 했어.
아 예에예에 덕분에 베를린에서 생쥐 코털만한 정보만 가지고 낡아 빠진 인형 찾으러 다니게 됐네요.
거참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J, 말 끊지 마.
냅둬 냅둬, 우리 J 요원도 이런 도전 정신이 필요한 임무는 처음 받아볼 거 아니야. 긴장되겠지~
크흠... 목표인 인형의 프로필은 받아 봤습니다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쉬운 일이었음 소련이 먼저 고개 숙이고 우리한테 부탁하지도 않았어.
......
그럼 당신도 추가적인 정보는 없는 겁니까?
없었는데 생겼어, 연락하기 3분 전에 내 정보통이 쓸 만한 단서 하나를 가져왔더라고.
단서요? 무슨 단서요?
내 자리 가서 책상 왼쪽 서랍 열어 봐.
엑, 어떻게 미리 거기다 뒀어요?
아니, 거기에 내 저번 달 출장비 영수증 있거든? 시간 없어서 경비 신청 제출 못했는데 곧 기한이라 대신 좀 내줘.
.....
......갔다 와.
J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걷어차고 나갔다.
J 요원도 가끔은 쓸모가 있는걸.
그래서, 단서는요?
벌써 네 메일로 보내놨어. 빠른 소식 기대할게.
그리고 Q가 통신을 종료했다.
K는 곧장 이메일함을 열어 Q가 보낸 파일을 받아 확인했다.
위치 추적 기록들이었다.
"발자국"인가.
이 기록이라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지.
전체 대사 보기 (96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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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의 마인드맵 깊숙한 그곳.
그녀가 나타났어.
13년만에...
사모, 우리 모두가 여기 갇힌 지 벌써 13년이야.
다 그녀 때문이지.
하지만 우린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다른 소체로 갈아탈 수도 없고.
서로의 기억을 구별하지조차 못하지.
난 누구지?
넌 누구고?
사모, 넌 네가 누군지 기억나?
유라 언니...
로우렐 언니...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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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없는 어느 뒷골목의 정적을 셰릴의 초조한 발소리가 깨뜨렸다.
양손으로 태블릿을 든 그녀는 삐딱한 자세로 볼과 어깨로 휴대폰을 귀에 고정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에 표기되는 지도의 반짝이는 좌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여기인 거 확실해요...?
<color=#00CCFF>아 걱정 마시래도요, 저희 이런 물건 찾기 의뢰 엄청 많이 해결했다구요!</color>
<color=#00CCFF>가출한 개나 고양이부터 몰래 바람 피러 나간 남편까지! 다~ 찾아낼 수 있답니다!</color>
<color=#00CCFF>그리고 저희가 판매한 인형이라면 전원 켜져 있는 한 세상 어디 숨었든 바로 좌표 찍을 수 있어요!</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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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어하면서도, 셰릴은 걸음을 멈췄다. 골목의 막다른 끝에 다다른 것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태블릿 화면을 확인하니, 반짝이는 좌표와 자신의 위치가 완벽하게 겹쳐졌다.
...근데 여기 쓰레기 더미밖에 없는데요.
<color=#00CCFF>그럼 확실하네요~ 몸을 숨기려면 당연히 자연스레 녹아들 환경에 숨어야죠!</color>
즉 저한테 쓰레기를 팔았다? 지금 인정하는 거죠? 그쵸!?
<color=#00CCFF>어머나 고객님은 농담도 차암~</color>
<color=#00CCFF>아이쿠 하필이면 이런 때에 새 주문이 들어왔네! 아무튼 찾으셨으니까 이만 끊을게요!</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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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이 저쪽에서 먼저 허겁지겁 전화를 끊어버렸다.
셰릴은 태블릿과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사모가 주었던 탄피를 조심조심 꺼냈다.
어휴, 그 약팔이 놈들의 소굴이 어딘지 기억해 둬서 다행이라니까...
손바닥 안의 탄피를 꼬옥 쥐고, 소녀는 쓰레기 더미로 다가갔다.
아직 쓰레기차가 수거하러 올 시간이 되지 않아, 이 쓰레기통은 넘칠대로 넘치고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이를 꾹 참으며, 셰릴은 침착하게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좀만 참아 언니, 내가 바로 구해줄게...
그때, 언니가 나를 구해줬던 것처럼.
잇따른 총성이 폭풍처럼 실내에서 메아리치니, 어린 셰릴은 지금 자신이 총격전의 한복판에 놓인 건지 아닌지도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는 것뿐이었다.
훌쩍... 엄마아...
으아앙!!!
옆에서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몇은 같은 반의 친구들인 것까지 구분이 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소리들이 공포에 뒤틀리고 떨려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모두! 이쪽으로 와, 얼른!
훌쩍... 구, 구하러 왔대! 빨리 가자!
이윽고 총성은 점점 멀어지고 약해졌다.
그 대신,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달음박질치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옆에 있던 같은 반 애들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셰릴은 당황하며 손을 뻗어, 뭐라도 붙잡으려 했다.
기다려... 같이 가...!
비켜! 당기지 마!
하지만 그녀의 앳된 손은 몇 번이고 같은 앳된 손에게 뿌리쳐졌다. 혼란스런 어둠 속에서 홀로, 셰릴은 세게 밀쳐져 넘어졌다.
셰릴은 그때 깨달았다. 어둠이라고 다 똑같지 않고, "차원"이 따로 있음을.
지금과 같은 어둠은 한밤중의 거센 파도처럼 그녀의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와줘... 아무것도 안 보여...
셰릴은 또 다른 공포에 몸을 떨었다. 실험용 생쥐처럼 출구가 어딘지도 모를 미궁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손을 뻗고 더듬으며, 애매모호한 형상과 이질적인 촉감만으로 어떻게든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던 그때, 차가운 두 손이 셰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리 꼬마 친구, 왜 언니들 따라 안 가고 여기 있어요?
나... 나 눈이 안 보여...
어머 그래? 큰일이네. 그래도 앞이 안보이는데도 이렇게 의젓하니 장하네.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 언니가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차갑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그 손이 셰릴의 머리에 난 상처를 상냥하게 살피고, 엉망이 된 옷도 다듬어 주었다.
머리를 다쳐서 피가 많이 나네... 일단 붕대 감아 줄게.
언니 나 무서워... 평생 눈 안 보이는 거야...?
머리를 다치면 눈이 놀라서 잠깐 안 보일 수도 있어.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고쳐 주실 거야.
병원에 가서 진찰받은 다음 네 엄마 아빠를 기다리면 되겠다.
...언니는 누구야?
나? 미안하지만 이름은 말해 줄 수가 없어.
그럼 뭐라고 불러...?
으음...
...그냥 언니라 불러도 돼?
하하, 그거 좋지.
그냥 언니라 불러.
차가운 손은 셰릴을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붙잡을 곳조차 없었던 그녀는 그 손을 꼬옥 붙잡았다.
조금 거칠고 이상하게 단단했지만, 의지가 되고 안심이 되는 손이었다.
후우... 찾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온몸이 지저분해진 셰릴은 거친 숨을 고르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사모를 바라봤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라도 하려던 건지, 사모는 쓰레기 더미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리고 셰릴은 생각해 보니 역시나 짜증났는지, 미동도 않는 사모의 뺨을 몇 번 찰싹찰싹 치곤 수레에 싣고서 집으로 향했다.
베를린, 슈타지 사무실.
J와 K는 회의실에 앉아 탁상에 놓인 자료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자료는 분량이 고작 인쇄용지 몇 장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두 요원은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었다.
아아니 어떻게 겨우 이 정보만 가지고 베를린에서 인형을 찾아? 이 특징에 부합하는 인형이 시내에만 몇천 명은 되겠다.
게다가, 그 옛날에 만들어진 인형이 정말 아직도 움직인다고? 진짜로?
적어도 소련 안전국에 있을 땐 움직였다잖냐.
그리고 말이야, 소련네 안전국이 고이 보관 중이시던 "전설의 인형"이 어떻게 이리도 쉽게 딴 나라로 빠져나갔대냐?
무슨 고물상에 팔아넘긴 것도 아니고...
이해는 하는데 협력국이니까 빈말로라도 존중 좀 해라.
모르겠다아...
아니 진짜 모르겠어, 이 뭐가 뭔지 영문도 모를 의문점투성이인 임무를 넌 왜 또 냉큼 받아버린 거야?
머리를 굴려 봐.
지금 소련 상황이 어떻지? 안으로 아주 난리도 아니야, 내통자라면 인형 하나보다 더한 것도 어렵잖게 빼돌릴 수 있었을 만큼.
그런데 저쪽의 높으신 분들은 왜 훨씬 위험한 무기들의 행방은 묻지도 않고 이 특별한 인형을 찾으려고 국경 넘어 우리한테, 그것도 대가를 불문하고 협력을 구했을까?
K에게 온 통신 알림음이 대화의 흐름을 끊었다. 그런데 통신 상대를 힐끔 확인한 K가 J에게 고개를 돌렸다.
Q의 연락이다, 말조심해.
엥, 그 여자가 웬일로?
알았어 알았어 입에 지퍼 잠그면 되지 뭐.
K가 수신을 누르자, Q의 화상 통신이 바로 스크린에 떴다.
<color=#00CCFF>야아, 오랜만. 어, J도 있네? 안뇨옹.</color>
J는 고개를 홱 돌려 못 본 척하는 것으로 답했다.
무슨 일입니까?
<color=#00CCFF>나한테 감사하셔, 일 있어서 출장 중만 아니었어도 너희는 그 일 구경도 못 했어.</color>
아 예에예에 덕분에 베를린에서 생쥐 코털만한 정보만 가지고 낡아 빠진 인형 찾으러 다니게 됐네요.
거참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J, 말 끊지 마.
<color=#00CCFF>냅둬 냅둬, 우리 J 요원도 이런 도전 정신이 필요한 임무는 처음 받아볼 거 아니야. 긴장되겠지~</color>
크흠... 목표인 인형의 프로필은 받아 봤습니다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color=#00CCFF>그야 당연하지, 쉬운 일이었음 소련이 먼저 고개 숙이고 우리한테 부탁하지도 않았어.</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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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신도 추가적인 정보는 없는 겁니까?
<color=#00CCFF>없었는데 생겼어, 연락하기 3분 전에 내 정보통이 쓸 만한 단서 하나를 가져왔더라고.</color>
단서요? 무슨 단서요?
<color=#00CCFF>내 자리 가서 책상 왼쪽 서랍 열어 봐.</color>
엑, 어떻게 미리 거기다 뒀어요?
<color=#00CCFF>아니, 거기에 내 저번 달 출장비 영수증 있거든? 시간 없어서 경비 신청 제출 못했는데 곧 기한이라 대신 좀 내줘.</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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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와.
J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걷어차고 나갔다.
<color=#00CCFF>J 요원도 가끔은 쓸모가 있는걸.</color>
그래서, 단서는요?
<color=#00CCFF>벌써 네 메일로 보내놨어. 빠른 소식 기대할게.</color>
그리고 Q가 통신을 종료했다.
K는 곧장 이메일함을 열어 Q가 보낸 파일을 받아 확인했다.
위치 추적 기록들이었다.
"발자국"인가.
이 기록이라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