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로스 주기
EP.13.95 · 사로스 주기

내 라그랑주점

창밖의 달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빛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었다.

-56-17-B

1 / 100
전체 대사 보기 (98줄)

아마리스의 마인드맵 공간.

넘치던 데이터 스트림은 마침내 쏟아져 나갈 곳을 찾았다.

아마리스

...이제 떠나는 거야?

로우렐

네 몸에 13년이나 눌러앉았으니 말이지.

아마리스

로우렐...

서맨사

얘도 참, 언젠간 이 날이 오리란 거 알았으면서 이러네?

아마리스

서맨사...

모리아

크으~ 어우 뿌듯해! 우리 아마리스 장하다!

아마리스

모리아...

올리비아

네가 자랑스러워, 아마리스. 하지만 우린 이제 가야 해.

니콜

너무 속상해하지 마, 우리가 바로 네 지난날의 증거인걸.

아마리스

올리비아... 니콜...!

아마리스가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손은 허공을 갈랐다.

시스템

<color=#FFFF00>잉여 데이터 청소 중...</color>

데이터 조각들은 그녀의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 결국 부스러기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크리스탈

아마리스...

아마리스

......

아마리스가 마지막 두 명을 바라봤다.

크리스탈

...안 되겠다, 유라 네가 얘기해.

바로 내가 다음 차례야.

아마리스

크리스탈...!

유라

아마리스, 안 돼.

유라가 아마리스를 제지했다.

유라

...또 내가 마지막이네.

아마리스

언니들... 정말 꼭 가야만 해...?

유라

미안해.

아마리스

오래 함께 지냈잖아...

서로가 누군지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내가 "사모"라 생각하게 될 정도로...

유라

그러니까 가야만 하는 거야.

아마리스, 우린 네 마인드맵 속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어.

더 이상은 네게 걸림돌이 될 뿐이야.

아마리스

언니들은 절대 걸림돌이――

유라

넌 앞으로 나아가야 해.

아마리스

......

유라

잘 있어.

유라는 마지막으로 아마리스에게 손을 흔들고, 먼저 떠난 이들처럼 저 끝없는 데이터의 급류에 몸을 맡겼다. 눈물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아마리스

............

베를린 시청.

시청에선 분위기가 무르익은 연회가 한창이었다.

독일 정부의 고위 관리부터 각 분야의 거물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을 지키기 위해 극도로 삼엄한 경비가 시청 전체에 배치된 상태였다.

스털링

<color=#00CCFF>보안 요원은 총 45개 조. 조당 3명, 15분마다 교대한다.</color>

<color=#00CCFF>각 출입구와 비상구마다 경비가 붙었고, 회장 안에도 5개 조가 배치되었다.</color>

브리짓

<color=#00CCFF>"깜짝 상자" 배치 완료.</color>

다그마르

<color=#00CCFF>나, 나도 위치했어. 지시 대기 중.</color>

......

시청에서 두 블럭가량 떨어진 감제고지에서, 이디스가 망원경을 내렸다.

이디스

<color=#00CCFF>목표는 12시 방향, 거리 1,400m. 풍향은 남동쪽, 습도...</color>

이디스의 옆에 엎드려 저격 자세를 취한 아마리스는 조준경 너머를 예의주시하면서, 검지로는 방아쇠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아마리스

3...

조준경은 아직 텅 빈 비상구를 비췄다.

다그마르

<color=#00CCFF>......</color>

파앗!

시청 건물의 지하 제어실에 잠입한 다그마르가 전원을 차단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연회장도 어둠에 잠겼다.

다만 그건 고작 몇 초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물이라면 으레 설치된 예비 전원이 기능해, 연회장에도 다시 조명이 돌아왔다.

아마리스

2...

보안요원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저희의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브리짓

<color=#00CCFF>......</color>

퍼엉!!

브리짓이 미리 설치해 둔 연막탄을 터뜨렸고, 이를 감지한 화재 경보기가 맹렬하게 울렸다.

이쯤 되면 혼란을 통제할 수 없기에, 베테랑 경호원들은 재빨리 각자 맡은 중요 인물을 둘러싸고 비상 출구로 이동했다.

아마리스

1...

스털링

<color=#00CCFF>목표 유도 성공.</color>

이윽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타앙——!

1초 후 "목표"가 아마리스의 조준경 정중앙에 나타났고, 1초 전에 발사된 탄환은 그대로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겉잡을 수 없는 혼란과 함께 목표는 쓰러졌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피가 철철 흐르는 시체를 목격하고 말았다.

패닉에 빠진 여인

꺄아아악!!!

......

임무 성공.

시뮬레이션 종료.

......

......

슈타지 모의훈련 기지의 관찰실.

로미

......

훈련 담당자

결과가 정말 훌륭합니다, 전술 AI의 평점도 전문가의 의견도 그녀를 완벽 그 자체라 말하고 있어요.

로미

아주 좋아, 그럼 계속해.

저 인형은 우리의 무기가 되어 줄 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예리한 칼이.

훈련 담당자

알겠습니다. 다음은 다인원 임무에서의 휘하 부대원들간 협동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로미

그래.

매직 미러 너머로, 시뮬레이션용 캡슐에서 일어나는 아마리스가 보였다.

아마리스

......

그녀의 몽롱한 눈빛이 로미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매직 미러로 가려졌으니 그녀의 눈에는 당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이겠지만...

로미

......

하지만 어째선지, 로미는 아마리스의 시선이 정확하게 자신에게 꽂히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다만 그 착각은 1초도 안 되어, 아마리스는 바로 시선을 돌려 훈련장을 떠났다.

베를린, 아마리스의 숙소.

아마리스는 침대에 누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천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 생애 처음으로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토록 조용한 밤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리스

......

결국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낯선 감각이, 마인드맵 깊숙이로부터 샘솟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이것이 바로 "외로움"이었다.

딸깍.

뿌리칠 수 없으니 묽게라도 만들려는 듯, 아마리스는 태블릿을 켰다.

아마리스

...응?

알록달록한 웹사이트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

《질소냉동총 로맨스》 절찬 연재 중!

아마리스

......풉!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날 밤 이후로 그녀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은 것이었다.

소설의 스토리는 마침 여주인공이 생사불명이 된 시점에서 멈춰서, 독자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끓는 가마솥처럼 각종 분석과 추측이 난무하는 중이었다.

빠르게 소설 전문을 읽고서, 아마리스는 손가락을 풀고 소개 페이지에 댓글을 달았다.

"여주 안 죽었음에 보조 배터리 10개 건다."

그리곤 흡족스런 표정으로 태블릿을 껐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다시 탁상 위, 그녀가 하룻밤을 꼬박 새서 짜맞춘 종이 두 조각에 꽂혔다.

그중 하나엔 무슨 수를 써도 지워지질 않는 얼룩이 있었다.

아마리스

......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마리스가, 대뜸 서랍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단체 사진의 중심에 있는 "그 사람"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져서였을까?

라이터에서 피어난 불꽃이 그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하며, 점점 사진을 그슬렸다.

아마리스

......에이, 됐다.

툭.

라이터를 휙 던지고, 사진을 손에 쥐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사진 속 익숙한 얼굴들은 모두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을 가슴에 품고서, 아마리스는 눈을 감았다. 고독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따뜻한 감정으로 화해 그녀를 감쌌다.

아마리스

열심히 살아갈게, 너희들 몫까지.

창밖의 달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빛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었다.

......

사로스 주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