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쇼크
EP.14 · 만성쇼크

AUT 돈 강의 밤

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알면서도 당신은 꼭 나아가려고 하죠.

-58-1-D7

1 / 98
전체 대사 보기 (90줄)

베를린, 노이템펠호프 구역의 교외.

......

Q의 SUV는 세워뒀던 자리에 멀쩡하게 있었지만, 본인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연락이 닿지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AK-12도 낙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AK12

...미안해, 안젤리아. 놓치고 말았어.

안젤리아는 무언가 눈치를 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안젤리아

그 녀석... 지금 우릴 약올리면서 일부러 시간을 지체시키고 있군.

좋아, 녀석은 일단 무시한다. Q에게 연락도 안 되니 지금부터 우리끼리만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AK12

좋은 소식이랑 나쁜――

안젤리아

그냥 말해.

AK12

나쁜 소식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레이의 꼬리에 붙였던 발신기를 들켰어.

베를린을 벗어나기도 전에 파괴됐어.

좋은 소식은, 지휘관이 보낸 댄들라이의 위치 추적 기록이야.

공교롭게도 그레이랑 같은 방향이더라고. 목적지도 파악했어.

안젤리아

어딘데?

AK12

...내비에 안 찍히는 좌표.

안젤리아

...오염지대?

AK12

베를린에서 멀지는 않아.

안젤리아

......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걸.

차 키 내놔. 내가 운전하겠어.

AN94

안젤리아,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

AK-12는 AN-94의 어깨를 툭 치며 그녀를 다독였다.

AK12

걱정 말고 AK-15랑 같이 뒤에 타, 내가 조수석에서 지켜볼게.

AN94

...알았다.

둘은 자리를 바꿨고, 안젤리아는 운전석에 앉아 조절하는 백미러에 피로에 절은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AK12

근데... 진짜 괜찮겠어?

적어도...

안젤리아

적어도 뭐.

안젤리아가 곁눈질하며 대꾸했다.

안젤리아

무슨 생각인진 알겠는데, 우리에게 더는 지원이 없어.

내가 그 위치로 가는 걸 막는 게 RPK의 목적이라면, 가야지. 그게 내 원칙인 거 알잖아.

AK12

......

AK-12는 뒷좌석의 AN-94와 AK-15를 슬쩍 보며 답했다.

AK12

말려도 당연히 안 들을 거지?

안젤리아

......

AK12

그럼 적어도 너 혼자 가게 둘 순 없지.

......

베를린 교외.

부르릉——

조용히 핸들을 잡은 안젤리아는 백미러에 비치는 표정에 짜증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창밖의 풍경은 변하질 않고 차 안의 분위기는 답답해, 각 자리에 앉은 모두가 각자 고민이 있어 보였다.

AK12

――어휴 진짜 못 참겠네! 이 특공대 좀 봐봐!

대장은 몸이 상처투성인데도 제발로 오염지대로 들어가려 하지! 지원은 이제 없지! 차도 훔쳐 탔지!

이 꼴로 최종보스한테 직진이라니...

안젤리아

...생각이 있어.

AK12

그야 있으니까 이러겠지요.

근데 고작 우리 몇 명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한계가 명확하단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안젤리아

......

안젤리아는 신경질적으로 코를 살짝 풀었다. 며칠 내내 이어지는 피로감에 숨까지 막혀, AK-12의 농담 아닌 농담에 어울려 줄 기운도 나질 않았다.

AK12

...? 잠깐만 안젤리아, 차 잠깐 세워 봐.

안젤리아

여긴 고속도론데.

AK12

우리가 여태 저지른 범죄가 얼만데 교통 법규 하나 더 어긴다고 뭐가 달라져? 지금 우리 앞뒤로 차가 한 대도 안 보인다고.

...응, 차 얼른 세워. 너 지금 눈꺼풀에 지진나서 계속 운전하게 뒀다간 진짜 큰일나겠다.

안젤리아

......

끼이익...

차가 천천히 갓길에 멈춰 섰다.

AK12

그래야지.

안젤리아

또 죽어라 구르기 전에 체력 보충이나 하고 가지 뭐.

안젤리아는 차에서 내려, AK-15와 자리를 바꿨다.

AK12

내가 운전하겠단 소리였는데... 그래 맘대로 해.

안젤리아

......

차에 시동이 다시 걸리는 걸 확인하고, 안젤리아는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AK15

......

백미러를 조절한 AK-15는 뒤를 살짝 보며 말없이 차량 라디오를 켰다.

그러자 바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밤이 깊어진 탓인지 드리운 안개가 더해져, 잠시나마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AN94

......이상하다.

AK12

뭐가?

AN94

이 음악...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AK-12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깐 귀를 기울여봤다.

AK12

흠... 그냥 프로그램 넘어갈 때 자주 쓰이는 멜로디야, 이상할 거 없어.

AN94

......아니, 이상해.

AK12

또 뭐가?

AN94

우리, 출발하고 시간이 상당히 지나지 않았나?

그런데 이 고속도로...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올 때는 이렇게까지 소요되지 않았다.

이론상 지금쯤 격리벽을 넘었어야 정상이다.

지직...

그때, 라디오에 약간 기괴한 전류음이 끼어들었다.

RPK16

<color=#00CCFF>안젤리아... 당신은 항상 그렇게 고집을 부리죠.</color>

RPK16

<color=#00CCFF>당신의 무모함 때문에 지휘관이 베를린에 파견된 거예요.</color>

<color=#00CCFF>당신의 무모함 때문에 벌써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독한 대가를 치렀는지 보세요. 조금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color>

AN94

RPK...!

RPK16

<color=#00CCFF>안젤리아, 당신은 평생 남의 말을 듣지 않을 사람이에요.</color>

<color=#00CCFF>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알면서도 굳이 나아가려 하는 사람이고요.</color>

<color=#00CCFF>그래서 저는 제 진정한 주인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color>

AK12

네 진정한 주인...?

AK15

차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AK12

94! 안젤리아를 보호해!

AK15

——!

바퀴가 급커브를 돌아, 누구도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자동차가 옆으로 뒤집혔다.

차는 그대로 관성에 의해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찰나의 무중력 속에서, 안젤리아는 자신이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안젤리아

으으윽...!

......

차의 천장, 좌석, 그리고 리벨리온까지 전부 사라진 듯... 아니, 눈앞이 어둠에 삼켜진 듯했다.

끝없는 추락으론 부족했는지, 고막을 찢는 이명까지 울렸다.

안젤리아

으아아악!!

......

AK12

네가 목숨을 걸 전장은 여기가 아니잖아.

여기서 쓰러져선 안 돼, 안젤리아.

안젤리아

AK-12...?

AK15

안젤리아, 일어나십시오.

안젤리아

나... 지금 어디 있는 거야...?

AN94

미안하다, 안젤리아... 우리의 실패다...

......

RPK16

삶이 결국 덧없을 운명이라면, 몸부림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쿠웅——!

......

배반으로서 나는 충성하니.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

????

기억을 몇 번이고 잃어도, 곁의 인물이 어떻게 바뀌어도, 너는 언제나 네 결정을 결코 바꾸는 법이 없구나.

과연 내 제자야.

???

당신은 그녀에 대해 좀 모르는 것 같네요.

????

괜찮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특히 너에 대해서는, 이제부터야 비로소 모든 걸 알 수 있겠어.

마사 마이트너, 이게 사실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자신의 제자를 희생시키다니... 이미 결론짓지 않았었나요?

영생이든 부활이든, 다 헛된 환상이라고.

이건 그냥 살인이에요. 이상이란 이름으로 타인의 목숨을 짓밟는 학살이라고요.

이건 이상에 대한 배신이에요.

만약 처음부터 당신이 "복음중추"를 사용하려는 목적을 알았더라면... 절대 사나에게 쓰도록 두지 않았을 거예요.

마사, 당신은 저를 속였어요... 당신은 사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걸로 비로소 깨달았어요. 당신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악마의 하수인이었군요.

블랙웰, 베를린 205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