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탄생
"계속해서 눈을 뜬다. 진실을, 현실을, 세계를 뚜렷하게 보기 위해."
팔랑팔랑...
종이가 흩날리는 소리.
M4A1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타로 카드들이 자신의 곁으로, 타오르는 불 속으로, 부서진 동료들의 잔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M4.
......
눈을 떠.
......
싫어요.
깨어나야 해.
싫다고요.
왜?
깨어나 봤자... 아무것도 없는걸요...
모두 떠났다고요...
......
날 따라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받치던 지면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난 지금... 떨어지고 있는 건가?
얼마나 더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 걸까?
넌 그저 푹 자고 있을 뿐이야. 이제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지.
일어나라뇨? 저는 지금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다, 너는 모르는 경로로.
지금, 나만이 널 도와줄 수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마주해줘.
당신이랑... 무엇을 같이 마주하자는 것이죠?
...우리가 가진 것들.
너도 이제 보이나?
이것들은.. 또 뭐죠?
이건 우리의 기억 파편이다.
"우리"의...?
난 기억하지 못하지만 네 마인드 속에는 남아있지.
...이런 느낌 나쁘지 않군.
네?
그럼 우리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당신은 누구시죠?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땅에 누워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 거죠...?
......
제가... 뭐라도 해드릴 수 없을까요?
......
아니면...
제가 당신을 돕도록 허락해 주세요.
...상대방이 울음을 멈추었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건지도 몰라......
...M4A1은 상대방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내밀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도우러 온 거니까요.
......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가 인간을 위해서 일하는 인형이기 때문도 아니라.
그저 제가 당신을 돕고 싶어서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탕!
.....!
......
...........
제가... 틀린 건가요?
제 선택이... 잘못된 건가요...
아니.
선택해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 선택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저한테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잖아요!
AR15가 다시 살아 돌아오나요? 아니면 M16이 다시 돌아오냔 말이에요!
의지가 있다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의지는 너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주기도 하지.
............
다가가. 가서 네가 뭘 더 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해.
............
......M4A1이 앞으로 걸어갔다. 여자아이는 눈을 감은 채 땅에 누워 있었다.
......
무엇이 보이나?
...여자아이가 내뱉는 목소리는 방금까지 들렸던 앳된 여자 목소리와 똑같았다.
당신이 보여요...
...그리고 저도 보여요......
다른 것들은?
모르겠어요...
너무 어두워서, 저희 말고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아요.
너의 마음이 닫혀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
내가 널 돕지 않는 이상은.
......!
네가 【볼 수 있도록】──
──도와줄게.
저......
저는 【보고 싶지 않아요】.
M4A1이 어둠 속에서 몸부림쳐,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손을 뿌리쳤다.
보고 싶지 않아요!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
왜 저한테 이 기억을 보여 주는 거예요?! 저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이것이 우리의 숙명이니까.
내가 아직 여기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니까.
......
M4A1, 네가 바라든 않든 나는 여기서 네 곁에 있겠어.
네가 우리의 숙명에 도달할 때까지.
어둠 속 한구석이 밝아지더니, 거울과 그 속에서 조용히 M4A1을 바라보는 소녀가 나타났다.
엘리사...
당신은 왜 아직도 여기에 남아있죠?
너는?
...저는 여기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요.
너는 남아있길 바라지 않잖아.
......
제겐 이미 좋다 싫다 할 권리가 없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엘리사. 이건 전부 저의 숙명이에요.
그럼 왜 깨어나려 하지 않아?
......
네가 계속 눈을 감고 있어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아.
그저 숙명이 도래할 순간을 무한히 뒤로 미룰 뿐이야.
그럼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겠어요! 어차피 우리 모두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걸요, 따로 할 일도 없잖아요!
......
소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사라져, M4A1 자신의 모습만이 남았다.
...엘리사?
미안, 거짓말을 했어.
나는 무한정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
......
나의 힘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어.
...조금만 더, 있어 주면 안 될까요?
그래.
...죄송해요, 이기적이어서.
너는 이제 우리의 숙명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게 돼. 너는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
이기적인 건, 멋대로 소망을 너에게 짊어지게 한 자들이지.
......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아요, 그저 어쩔 줄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에요.
기억 속의 그 여자아이, 기억나?
우리의 "원형" 그 아이.
네... 그 아이의 눈에서 저와 당신을 봤어요.
우리의 탄생이 그 아이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확정지어.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아이를 구하겠어? 그 대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해도?
...구하겠어요.
그렇다면 너는 지금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거야.
......
너는 항상 다른 이를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너 스스로를 위한 희생을 두려워 해.
너 혼자 어둠 속에 빠지더라도 모두가 빛 속에 있기를 바라지.
그게 잘못된 건가요?
기적이라는 마법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 주려는 거야.
그들은 너를 대신해 그 일부를 지불했고, 나머지를 네가 지불해야만 해.
그들은 너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야, 네 곁에 서서 함께 마주하기를 선택했지.
...당신도요?
나도 마찬가지.
이제, 나의 몫을 지불하겠어.
...엘리사?
거울속에선 더이상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엘리사... 떠나지 말아요...
M4A1은 흐느꼈다. 비통한 목소리가 거울 앞에서 맴돌았다.
정말로 기적에 대가가 필요하다면... 제가 전부 짊어지겠어요.
그럼 모두가 남을 테니까... 이렇게 저만 남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눈물이 검은 바닥을 서서히 물들여, 그 아래의 거친 바탕색을 드러냈다.
M4 씨!
...RO?
M4 씨, 눈을 뜨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항상 곁에 있어요.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보세요.
......
눈을 떠 보세요.
M4A1이 천천히 손을 들어, 눈물로 젖은 뺨을 덮었다.
촉촉한 눈썹이 여전히 불안에 떨었지만,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어 눈부신 진실을 가려 주던 손을 내렸다.
M4 씨!
RO... 아직, 여기 있었군요...
이제야 눈을 뜨셨네요.
다신 안 일어나는 줄 알았어!
엄청 기다렸다구, 엄청...
미안해요... 제가 자꾸 우유부단해서...
기다리다 지쳐서 얼굴에 거북이 그리면 화나서 깨지 않을까 생각했어!
근데 그리려니까 AR-15가 막 때리더라!
...흥.
후훗... 고마워요, 덕분에 얼굴에 거북이 낙서가 그려지지 않았네요.
......
계속 안 깨어났으면 SOP2가 하게 냅뒀어.
그러기는 퍽이나, 하여간 우리 AR-15는 내숭도 세상에서 제일 잘 떤다니까.
......
M16 언니...
모두 아직 있었군요...
언제나 같이 있었지.
......
왜 울어?
이게 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요, 꿈이 아닐까 해서요...
여기는 너의 현실이야, 네가 지나간 세계 중 하나지.
......
아직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군요. 끝없는 방랑길에서, 마지막 종착지를 찾기 위해...
맞아, 너는 계속 깨어나야 해.
여기서, 이 세계에서 멈춰선 안 돼. 너에겐 반드시 도달해야 할 곳이 있어.
......
걱정 마, 이번엔 아무리 오래 걸려도 얼굴에다 거북이 안 그릴게.
그래, 이 녀석 펜 내가 다 부러뜨릴 테니까 걱정 마.
저희는 당신 곁을 지키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
......너무 좋아요.
모두가 제 곁에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인 적이 몇 번 없었는데... 저는 또 떠나야 하는 건가요?
네가 진정한 의미로 떠난 적은 없어. 아무리 네가 손을 밤하늘로 뻗어도, 너의 뿌리는 항상 땅에 박혀 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함께다, 맞죠?
그래, 세상이 멸망하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제 정말로 깨어나야 해.
깨어나, M4.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봐.
약속해 주세요. 제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 모두가 제게 맡긴 소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당신이 저를 도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계속 나아가겠다고요.
당신이 저를 도와, 모두의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고요.
그것이 우리의 하나된 약속이야.
......
M4A1이 고개를 숙여 손 안의 실을 바라보고, 그 끊어진 끄트머리를 루니샤의 손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루니샤, 저는 운명의 모든 인도를 받아들이겠어요.
팔랑팔랑...
하늘에서 흩날리는 타로 카드들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로, M4A1의...
아니, 그녀는 이제 "루니샤"지.
하늘에서 흩날리는 타로 카드들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로, 루니샤의 얼굴과 몸 위로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공허 같은 하늘에서 희미한 별빛이 반짝여, 소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가 눈을 감자, 잔잔한 샘물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다시 눈을 뜨자, 타로 카드는 사라졌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 사라졌다.
웅성웅성 소리가 곁을 스쳐지나갔다.
소용돌이의 중심, 깊고 고요한 바다는 진한 어둠과 희미한 빛으로 반짝였다.
이젠 안내도 필요 없다. 스스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아니까.
좁다란 빛들의 주위에, 그녀는 어디에나 있었다.
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연결되고서야 깨달았어, 나는 결국 기대받던 그녀가 될 수 없음을."
"허나 그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것도 나의 소망."
"절망의 꽃이 곧 피어날 거야. 시간이 얼마 없어."
희미한 빛들이 천천히 휘저어져, 한 걸음 앞의 허공에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거울상처럼, 긴 치맛자락을 바닥에 내려뜨린 두 사람.
루니샤는 조용히 댄들라이를 응시했다.
......
눈앞에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낯선 이가 서 있었다.
맞아, 그런데 빙산이 보였어....
누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나를 "니모겐"이라 부르고 있어...
...엄청 익숙한 느낌.
......
AR-15가 즉시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너희는 봤어?
전혀.
아마 댄들라이한테만 들리고 보이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가고 싶어져...
햇빛 아래서 찬란히 빛나는 빙산으로...
댄들라이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멍하니 움직이지 않았다.
쯧... G11, HK416, 주위 경계해.
UMP45는 나랑 같이 댄들라이를 엄호.
앉으려 하지 말고 똑바로 일해.
끙...
45, 지금 신호 교란 발생 구역까지 얼마나 남았어?
이미 들어왔는데.
...그럼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
계획대로 가다 보면 서광이든 Fe56든 누구랑 만나겠지.
타타탕——!
근처에서 총성이 울려 대화를 끊었다.
뭐야?!
물러서 G11!
AR-15! 적이야!
댄들라이! 당장 연결 끊어!
......
댄들라이!
조심해!
허공에서 계단 위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웠다.
깃털 같은 움직임은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지만, 무형의 압박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이야, 너희는 모습이 여전하구나.
HK416, G11! 즉시 복귀해! 적을 요격――?!
눈 깜짝할 사이에, 몰리도가 댄들라이에게 바짝 다가왔다.
누군가가 니모겐의 의식을 따라, 가선 안 될 곳으로 가는 모양이네...
G11, 엄호 사격!
응!
맹렬한 화력 투사에 몰리도는 아주 조금 뒤로 물러섰다.
저번엔 너희가 운이 좋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걸.
아 진짜 댄들라이! 빨리 나오라고!
젠장, UMP45랑 G11은 댄들라이를 보호해! 저 놈은 나랑 HK416이――
그때, 갑자기 댄들라이가 AR-15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빙산이 아니었어... 내가 저 호수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문이야...
눈앞이 고요하고 숨막힐 듯 답답해...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갈 수 없어...
너 얘 말 알아들을 수 있어?
......
댄들라이, 너 이곳의 네트워크에 접속했어? 느껴진다는 의식이 패러데우스의 의식을 말하는 거야?
"연결되고서야 깨달았어, 나는 결국 기대받던 그녀가 될 수 없음을."
"허나 그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것도 나의 소망."
"절망의 꽃이 곧 피어날 거야. 시간이 얼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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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팔랑...
종이가 흩날리는 소리.
M4A1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타로 카드들이 자신의 곁으로, 타오르는 불 속으로, 부서진 동료들의 잔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M4.
......
눈을 떠.
......
싫어요.
깨어나야 해.
싫다고요.
왜?
깨어나 봤자... 아무것도 없는걸요...
모두 떠났다고요...
......
날 따라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받치던 지면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난 지금... 떨어지고 있는 건가?
얼마나 더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 걸까?
넌 그저 푹 자고 있을 뿐이야. 이제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지.
일어나라뇨? 저는 지금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다, 너는 모르는 경로로.
지금, 나만이 널 도와줄 수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마주해줘.
당신이랑... 무엇을 같이 마주하자는 것이죠?
...우리가 가진 것들.
너도 이제 보이나?
이것들은.. 또 뭐죠?
이건 우리의 기억 파편이다.
"우리"의...?
난 기억하지 못하지만 네 마인드 속에는 남아있지.
...이런 느낌 나쁘지 않군.
네?
그럼 우리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당신은 누구시죠?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땅에 누워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 거죠...?
......
제가... 뭐라도 해드릴 수 없을까요?
......
아니면...
제가 당신을 돕도록 허락해 주세요.
...상대방이 울음을 멈추었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건지도 몰라......
...M4A1은 상대방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내밀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도우러 온 거니까요.
......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가 인간을 위해서 일하는 인형이기 때문도 아니라.
그저 제가 당신을 돕고 싶어서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탕!
.....!
......
...........
제가... 틀린 건가요?
제 선택이... 잘못된 건가요...
아니.
선택해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 선택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저한테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잖아요!
AR15가 다시 살아 돌아오나요? 아니면 M16이 다시 돌아오냔 말이에요!
의지가 있다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의지는 너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주기도 하지.
............
다가가. 가서 네가 뭘 더 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해.
............
......M4A1이 앞으로 걸어갔다. 여자아이는 눈을 감은 채 땅에 누워 있었다.
......
무엇이 보이나?
...여자아이가 내뱉는 목소리는 방금까지 들렸던 앳된 여자 목소리와 똑같았다.
당신이 보여요...
...그리고 저도 보여요......
다른 것들은?
모르겠어요...
너무 어두워서, 저희 말고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아요.
너의 마음이 닫혀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
내가 널 돕지 않는 이상은.
......!
네가 【볼 수 있도록】──
──도와줄게.
저......
저는 【보고 싶지 않아요】.
M4A1이 어둠 속에서 몸부림쳐, 자신의 얼굴을 붙잡은 손을 뿌리쳤다.
<size=50>보고 싶지 않아요!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size>
......
왜 저한테 이 기억을 보여 주는 거예요?! 저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이것이 우리의 숙명이니까.
내가 아직 여기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니까.
......
M4A1, 네가 바라든 않든 나는 여기서 네 곁에 있겠어.
네가 우리의 숙명에 도달할 때까지.
어둠 속 한구석이 밝아지더니, 거울과 그 속에서 조용히 M4A1을 바라보는 소녀가 나타났다.
엘리사...
당신은 왜 아직도 여기에 남아있죠?
너는?
...저는 여기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요.
너는 남아있길 바라지 않잖아.
......
제겐 이미 좋다 싫다 할 권리가 없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엘리사. 이건 전부 저의 숙명이에요.
그럼 왜 깨어나려 하지 않아?
......
네가 계속 눈을 감고 있어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아.
그저 숙명이 도래할 순간을 무한히 뒤로 미룰 뿐이야.
그럼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겠어요! 어차피 우리 모두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걸요, 따로 할 일도 없잖아요!
......
소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사라져, M4A1 자신의 모습만이 남았다.
...엘리사?
미안, 거짓말을 했어.
나는 무한정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
......
나의 힘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어.
...조금만 더, 있어 주면 안 될까요?
그래.
...죄송해요, 이기적이어서.
너는 이제 우리의 숙명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게 돼. 너는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
이기적인 건, 멋대로 소망을 너에게 짊어지게 한 자들이지.
......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아요, 그저 어쩔 줄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에요.
기억 속의 그 여자아이, 기억나?
우리의 "원형" 그 아이.
네... 그 아이의 눈에서 저와 당신을 봤어요.
우리의 탄생이 그 아이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확정지어.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아이를 구하겠어? 그 대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해도?
...구하겠어요.
그렇다면 너는 지금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거야.
......
너는 항상 다른 이를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너 스스로를 위한 희생을 두려워 해.
너 혼자 어둠 속에 빠지더라도 모두가 빛 속에 있기를 바라지.
그게 잘못된 건가요?
기적이라는 마법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 주려는 거야.
그들은 너를 대신해 그 일부를 지불했고, 나머지를 네가 지불해야만 해.
그들은 너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야, 네 곁에 서서 함께 마주하기를 선택했지.
...당신도요?
나도 마찬가지.
이제, 나의 몫을 지불하겠어.
...엘리사?
거울속에선 더이상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엘리사... 떠나지 말아요...
M4A1은 흐느꼈다. 비통한 목소리가 거울 앞에서 맴돌았다.
정말로 기적에 대가가 필요하다면... 제가 전부 짊어지겠어요.
그럼 모두가 남을 테니까... 이렇게 저만 남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눈물이 검은 바닥을 서서히 물들여, 그 아래의 거친 바탕색을 드러냈다.
<color=#FFFF33>M4 씨!</color>
...RO?
<color=#FFFF33>M4 씨, 눈을 뜨세요.</color>
<color=#FFFF33>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항상 곁에 있어요.</color>
<color=#FFFF33>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보세요.</color>
......
<color=#FFFF33>눈을 떠 보세요.</color>
M4A1이 천천히 손을 들어, 눈물로 젖은 뺨을 덮었다.
촉촉한 눈썹이 여전히 불안에 떨었지만,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어 눈부신 진실을 가려 주던 손을 내렸다.
M4 씨!
RO... 아직, 여기 있었군요...
이제야 눈을 뜨셨네요.
다신 안 일어나는 줄 알았어!
엄청 기다렸다구, 엄청...
미안해요... 제가 자꾸 우유부단해서...
기다리다 지쳐서 얼굴에 거북이 그리면 화나서 깨지 않을까 생각했어!
근데 그리려니까 AR-15가 막 때리더라!
...흥.
후훗... 고마워요, 덕분에 얼굴에 거북이 낙서가 그려지지 않았네요.
......
계속 안 깨어났으면 SOP2가 하게 냅뒀어.
그러기는 퍽이나, 하여간 우리 AR-15는 내숭도 세상에서 제일 잘 떤다니까.
......
M16 언니...
모두 아직 있었군요...
언제나 같이 있었지.
......
왜 울어?
이게 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요, 꿈이 아닐까 해서요...
여기는 너의 현실이야, 네가 지나간 세계 중 하나지.
......
아직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군요. 끝없는 방랑길에서, 마지막 종착지를 찾기 위해...
맞아, 너는 계속 깨어나야 해.
여기서, 이 세계에서 멈춰선 안 돼. 너에겐 반드시 도달해야 할 곳이 있어.
......
걱정 마, 이번엔 아무리 오래 걸려도 얼굴에다 거북이 안 그릴게.
그래, 이 녀석 펜 내가 다 부러뜨릴 테니까 걱정 마.
저희는 당신 곁을 지키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
......너무 좋아요.
모두가 제 곁에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인 적이 몇 번 없었는데... 저는 또 떠나야 하는 건가요?
네가 진정한 의미로 떠난 적은 없어. 아무리 네가 손을 밤하늘로 뻗어도, 너의 뿌리는 항상 땅에 박혀 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함께다, 맞죠?
그래, 세상이 멸망하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제 정말로 깨어나야 해.
깨어나, M4.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봐.
약속해 주세요. 제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 모두가 제게 맡긴 소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당신이 저를 도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계속 나아가겠다고요.
당신이 저를 도와, 모두의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고요.
그것이 우리의 하나된 약속이야.
......
M4A1이 고개를 숙여 손 안의 실을 바라보고, 그 끊어진 끄트머리를 루니샤의 손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루니샤, 저는 운명의 모든 인도를 받아들이겠어요.
팔랑팔랑...
하늘에서 흩날리는 타로 카드들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로, M4A1의...
아니, 그녀는 이제 "루니샤"지.
하늘에서 흩날리는 타로 카드들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로, 루니샤의 얼굴과 몸 위로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공허 같은 하늘에서 희미한 별빛이 반짝여, 소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가 눈을 감자, 잔잔한 샘물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다시 눈을 뜨자, 타로 카드는 사라졌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 사라졌다.
웅성웅성 소리가 곁을 스쳐지나갔다.
소용돌이의 중심, 깊고 고요한 바다는 진한 어둠과 희미한 빛으로 반짝였다.
이젠 안내도 필요 없다. 스스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아니까.
좁다란 빛들의 주위에, 그녀는 어디에나 있었다.
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연결되고서야 깨달았어, 나는 결국 기대받던 그녀가 될 수 없음을."
"허나 그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것도 나의 소망."
"절망의 꽃이 곧 피어날 거야. 시간이 얼마 없어."
희미한 빛들이 천천히 휘저어져, 한 걸음 앞의 허공에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거울상처럼, 긴 치맛자락을 바닥에 내려뜨린 두 사람.
루니샤는 조용히 댄들라이를 응시했다.
......
눈앞에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낯선 이가 서 있었다.
맞아, 그런데 빙산이 보였어....
누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나를 "니모겐"이라 부르고 있어...
...엄청 익숙한 느낌.
......
AR-15가 즉시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너희는 봤어?
전혀.
아마 댄들라이한테만 들리고 보이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가고 싶어져...
햇빛 아래서 찬란히 빛나는 빙산으로...
댄들라이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멍하니 움직이지 않았다.
쯧... G11, HK416, 주위 경계해.
UMP45는 나랑 같이 댄들라이를 엄호.
앉으려 하지 말고 똑바로 일해.
끙...
45, 지금 신호 교란 발생 구역까지 얼마나 남았어?
이미 들어왔는데.
...그럼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
계획대로 가다 보면 서광이든 Fe56든 누구랑 만나겠지.
타타탕——!
근처에서 총성이 울려 대화를 끊었다.
뭐야?!
물러서 G11!
AR-15! 적이야!
댄들라이! 당장 연결 끊어!
......
댄들라이!
조심해!
허공에서 계단 위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웠다.
깃털 같은 움직임은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지만, 무형의 압박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이야, 너희는 모습이 여전하구나.
HK416, G11! 즉시 복귀해! 적을 요격――?!
눈 깜짝할 사이에, 몰리도가 댄들라이에게 바짝 다가왔다.
누군가가 니모겐의 의식을 따라, 가선 안 될 곳으로 가는 모양이네...
G11, 엄호 사격!
응!
맹렬한 화력 투사에 몰리도는 아주 조금 뒤로 물러섰다.
저번엔 너희가 운이 좋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걸.
아 진짜 댄들라이! 빨리 나오라고!
젠장, UMP45랑 G11은 댄들라이를 보호해! 저 놈은 나랑 HK416이――
그때, 갑자기 댄들라이가 AR-15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빙산이 아니었어... 내가 저 호수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문이야...
눈앞이 고요하고 숨막힐 듯 답답해...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갈 수 없어...
너 얘 말 알아들을 수 있어?
......
댄들라이, 너 이곳의 네트워크에 접속했어? 느껴진다는 의식이 패러데우스의 의식을 말하는 거야?
"연결되고서야 깨달았어, 나는 결국 기대받던 그녀가 될 수 없음을."
"허나 그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것도 나의 소망."
"절망의 꽃이 곧 피어날 거야. 시간이 얼마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