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한참 흩어져 있던 벗들이 다시 모였을 때, 이별의 카운트다운이 저절로 시작된다."
파직... 파지직...
내가... 실패하다니...
몸을 감싸던 방벽이 거품처럼 깨지고, 스파크가 공증으로 튀었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몸이 조각나고 무너져서, 멀리서 보면 그냥 망가져 버린 장난감 같았다.
히히... 하하하, 하하하하하!!
실패했다! 실패했다고! 하하하하하!!
뭐야 이 자식, 미쳤나?
빠악!
AR-15가 과열된 총열로 라플라스의 악마의 단단한 머리를 내리쳐 흉측하게 패인 자국을 냈다.
히히히, 루니샤 아가씨께서 나타나셨다!
그분이 돌아오셨다! 내 눈으로 직접 그 기적을 목격했다! 역시 나는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야!
M4, 이 녀석이 신의 하수인이 아니라 가짜라고?
네... 제 마음 속에서, 누가 저에게 말했어요.
그분이 바로 루니샤 아가씨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저는 가짜입니다.
이곳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으신가요?
콰직.
놈의 손바닥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기서 하얀 실뭉치가 굴러내리더니, 솟아오른 계단 앞에 예쁜 문을 그렸다.
신의 하수인은 게으름뱅이라서요, 여태까지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답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요, 부지런하고 실속 있지요.
어...? 몸을 움직일 수가...!
......
저도요!
......
긴장 마세요, 저도 못 움직이니까.
...무슨 뜻이죠?
저는 그저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여러분은 모두 루니샤 아가씨께서 낳으신 "그릇"입니다.
오직 완전한 그릇만이 루니샤 아가씨를 담을 수 있죠.
누가 루니샤 아가씨인지는... M4A1,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바로 당신 마음 속에 계시니까.
우릴 속였군요...!
아니, 속이지 않았어.
나는 절대 너를 속이지 않아.
아가씨, 당신의 자식들에게 저의 힘을 바치겠나이다.
으히히... 당신들, 시간이 얼마, 안 남았, 어요...
기대...된...다......
찢어지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마침내 멈춰, 라플라스의 악마는 생기를 잃었다.
그때, 하늘 끝자락에서 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당신은 누구죠?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우리는 모두 루니샤야.
이것이... 저의 숙명인가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결정권은 너에게 있어.
......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일 줄 알았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어요.
그럼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도와준다뇨?
모든 것을 내게 맡겨. 너의 기억, 너의 감정, 너의 모든 데이터를.
너의 영혼과 생명까지.
그러면 저에겐 아무것도 안 남잖아요?
...맞아.
너는 나의 일부가 되어, "루니샤"란 존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게 될 거야.
......
여기선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천천히 고민해도 돼.
제가 그래야 할 이유를 주세요.
이유?
루니샤가 손바닥을 펼치자, 수만 가닥의 실들이 마치 차가운 대지 위를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 얽혀 뻗어 났다.
이것은...?!
세상 만물의 생명의 실이야.
서로 얽혀서, 엉키고, 갈라지고, 끊어지지.
루니샤가 그중 끊어진 실 한 가닥을 집었다.
나는 실의 방향을 바꾸지 못해. 선택의 권리가 나에게 없으니까.
대신, 이 실에게 다시 앞으로 흘러갈 기회를 줄 수는 있어.
그 끊어진 실의 끝이 M4A1의 손바닥에 놓였다.
그녀가 실을 손에 쥐는 그 순간, 차갑고 결연한 감촉이 손등을 감쌌다.
그리고 돌연 감촉이 사라졌다.
새하얗고 영원한 정적처럼.
밀물처럼 몰려드는 패러데우스가, AR팀의 위태로운 저지선에 부딪혔다.
몰리도는 일부러 지휘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섰고, 마흐리안의 싸늘한 몸뚱이는 다 쓴 걸레짝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지휘관의 눈은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기세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날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들었겠다아아!!
언니! 저놈들 다 죽여도 돼? 다 죽여도 되지?!
그래, 다 죽여.
니모겐은 살려 두고, 나머진 네 마음대로 해.
...열받게 하네 진짜.
AR-15가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손엔 비수를 쥐었다.
오늘 죽더라도 저년이 다시는 못 웃게 만들어버리고 죽겠어.
AR팀의 끈질긴 저항으로, 패러데우스 부대도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르시스와 몰리도의 존재가, 두 채의 태산처럼 그들을 가로막았다.
세 인형들의 소체도 한계에 도달했다.
지휘관과 댄들라이를 지키는 그들의 몸엔 더러운 피가 잔뜩 묻었다.
치지직...
통신기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들, 이번 임무에 나온 걸 후회하진 않니?
그럴 리가요, 지휘관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건 제 평생의 영광인걸요.
난 좀 후회되네, 아직 지휘관이랑 몇 번 못 마셨는데.
난... 난 M4랑 M16을 다시 보고 싶어어...
......
지휘관은 여전히 통로를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패러데우스 부대와, 그들 중앙의 몰리도와 나르시스를 노려봤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 해도, 너흰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너희 패러데우스에겐 파멸 이외의 결말 따윈 없어.
...지옥에서 다시 보자고.
말을 참 잘하시네요, 과연 안젤리아 씨가 마음에 들어할 만해요.
몰리도는 경멸 어린 미소로 답했다.
당신들의 시체는 이 지하에 묻혀, 이곳의 모든 것과 함께 역사 속 한 톨의 먼지가 되어 세상에게 잊혀질 거예요.
시대로부터 도태된 쓰레기, 패러데우스란 수레바퀴에 뭉개질 벌레들.
당신들의 희생은 무의미해요, 우리 바보 언니처럼요.
지휘관님과... AR팀...
모두 심하게 다친 것 같아요.
맞아. 지휘관의 실은 여기서 끊어지게 돼.
루니샤가 M4 손 안의 실을 가리켰다.
그럼 어떻게든 해보세요! 끊어지지 않게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루니샤는 담담하게 M4A1을 바라봤다.
우리가 "루니샤"가 되어야, 실을 다시 잇는 힘을 가질 수 있어.
......
M4A1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 슬퍼할 것 없어. 내가 시도할 기회를 한 번 줄게.
...무슨 뜻이죠?
융합해보는 거야. 아주 잠시 동안만.
네가 원치 않는다면 저절로 다시 분리될 테니 걱정 마.
나는 여기서, 네가 대답해 주길 기다리고 있을게.
당신은... 감정이 없나요?
...그건 아주 먼 과거의 일이지.
......
다들 당신이 세상을 구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세계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 같은 게 아니야.
그건 너지.
나에게는 무엇도 상관없으니까.
신경쓰는 사람만이, 세상을 구하기를 선택하니까.
그 말에, M4A1이 루니샤의 손을 잡았다.
...해보겠어요.
당신들이 한 짓 전부 무의미해!
마흐리안의 죽음처럼!
몰리도가 마흐리안의 얼굴을 짓밟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지휘관도 더는 울분을 억누르지 못해,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
결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단호하고 힘찬 목소리가, 몰리도의 비웃음과 지휘관의 반박을 끊었다.
댄들라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전혀 다른 색채로 빛났다.
그 누구의 희생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살아남는 자들이, 그들의 희생에서 더욱 소중한 것을 얻으니까요.
댄들...라이?
야! 너 지금 이 상황에서 또 그딴 장난이야?!
됐어, 면죄부 몇 개 남았든――
AR-15가 도저히 못 참고 버럭 소리질렀지만, "댄들라이"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입까지 올라왔던 욕설이 전부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그 익숙한 눈동자와 눈빛에, 목소리가 떨렸다.
M...4...?
뭐?!
댄들라이에... M4가...?
입만 살아서는!
다시 앞으로 나서는 "댄들라이"를 보며, 나르시스는 노발대발하며 손짓으로 주위의 부유검을 정렬해 칼끝을 지휘관에게 향했다.
쉬익——!
——!
괜찮아요, 지휘관님.
부웅...
"댄들라이"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날아들던 무수한 칼날들이 허공에 멈춰, 일시정지된 비디오테이프처럼 그자리에 단단히 고정됐다.
뭐... 뭐야!?
M4...? 정말 너니?
지금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 끝에, M4A1은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듯한 눈으로 루니샤의 손 안의 실을 보니, 그저 아주 조금 더 길어졌을 뿐 또 다시 끝에 도달하려 했다.
...제가 한 일에, 의미가 없었던 건가요?
한 번의 시도일 뿐이라고 했잖아.
네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려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를 해야 해.
...좋아요, 시도해 보겠어요. 당신과 융합하겠어요.
저의 기억, 저의 감정, 모든 데이터를...
저의 영혼과 생명까지...
당신에게, 주겠어요.
그래. 그럼, 정리하고 오도록 해.
...왜 여기로 돌아온 거죠?
...난 알 것 같아.
저도요.
나도.
무슨 뜻이죠? 뭘 알았단 거예요?
M4 씨와 루니샤가 대화하는 걸 저희도 다 봤어요.
덕분에 전부 이해했어요, 레이나드 개즈가 우릴 여기로 보낸 의도도 깨달았고요.
무슨 말이에요...? 레이나드 개즈는 또 누구죠?
......
M16A1이 살짝 시선을 피했고, RO635와 AR-15에게서 묘한 낌새가 느껴졌다.
RO, AR-15...
저한테 숨기는 게 있군요?
......
AR-15가 M4A1의 눈을 마주봤다.
M4, 기억해?
"너"는, 잠수함 기지의 최하층에서 M16, 엘리사와 함께 스타피쉬에 들어갔을 거야.
......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예요?
우리가 포기한 저 세계에선 "루니샤"가 죽고, AR팀은 너희 셋만 남았다. 맞지?
AR-15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눈을 꾹 감았다.
네...? 그게 무슨...
얘들은 다른 세계선의 AR팀이야.
너와 나, 지휘관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지.
......
얘들의 세계선에서 나는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에서 죽었고, 너는 스타피쉬에 들어갔다 돌아와서 지휘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갔어.
하지만... 실패했어요...
죄송해요... M4 씨를 구하지 못하고 지휘관님도 지키지 못했어요...!
여기가, 저희의 마지막 희망이었어요...
......!
오만 가지 감정에 목이 매여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제가 당신들의 "M4A1"이 아닌 걸 알면서,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저를 구한 거예요?
......
당신이 "저희의 M4 씨"가 아니어도, 여전히 저희의 희망이니까요.
RO635가 M4A1의 손을 가볍게 잡고, 예전처럼 대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리의 세계는 더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 세계의 AR팀이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지휘관이 살아남아 계속 나아가고, "M4A1"이 죽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저희가 한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
이제 결정할 때야, M4.
...이렇게, 겨우 다시 모이게 됐는데...
......
...그냥 여기서 다 같이 죽을까요?
찰싹!
경쾌한 따귀 소리.
M16...
그런 어리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넌 안 돼. 넌 모두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잖아.
마음 굳게 먹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 우리는 도달하지 못할 종착지에 너는 도달해야 해.
......
M16A1이 총을 M4A1에게 쥐였다.
우리는 시간을 넘고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너에게 왔어.
그러니까, 우리의 소망을 네가 기억해 줘.
하지만 그러면 여러분이 사라지잖아요...
저밖에 없는 세상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한 세계가 파멸하는 운명을 뛰어넘어 계속될 수 있잖아요.
새로 쓰여진 세계에서 SOP2는 계속 씩씩하게 여기저기 다 박살내고 다닐 테고, 지휘관님은 계속 기지에서 바쁘게 일하시겠죠.
저희도, 평소처럼 계속 살아갈 테고요.
......
어쩌면, 이미 수많은 세계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지도 몰라. 하지만 희망이 이어지는 세계가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패배한 게 아니지.
그게 우리가 여기 온 이유야.
AR팀은 어디에서든 AR팀이에요.
어째서... 어째서 제가 이 고통을 전부 짊어져야 하는 거죠...
눈물에 잠긴 채, M4A1이 총을 들었다.
알아요... 알고 있어요... 무엇이 가장 이성적이고 올바른 판단인지...
하지만, 싫어요... 여러분을 잃고 싶지 않아요... 혼자가 되기 싫어요...
우린 너를 떠나지 않아, M4. 우린 항상 너의 곁에 있어.
AR-15...
...쏴.
네가 소중히하는 모든 것을 위해서.
......
당신은... 누구시죠?
나...?
난 널 마중나온 사람이지.
제 마중을?...왜죠?
정말 귀찮은 녀석이네...
널 데리고 가서 모두와 만나는 거지.
네 친구들,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어.
친구?
기억 모듈에는, 【친구】의 정의에 부합하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닌가요?
......
그럼, 내가 너의 첫번째 친구겠구나.
AR-15...
......
빨리 안 하면 내가 한다?
...아뇨, 제가 직접 결정하겠어요.
M4A1... 너에겐 진 빚은, 이걸로 전부 갚은 거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이제 뭐... 이 세상에 남은 빚 같은 건 없어.
하지만 네가 날 발견할 때면 분명 또 패기없이 주저앉아 펑펑 울어대겠지...
...지금까지, 이런 연약한 녀석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니, 도대체 내 발목을 얼마나 잡았을지.
역시, 아무래도 난 널 싫어해야 할 것 같아...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억누르는 감정의 봇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M4A1은 총구를 떨궜다. 총알이 날아간 방향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
싫어요.. 이런 고통을, 대체 얼마나 더 감당해야 하는 거죠...?
M16A1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
철컥.
RO635는 자기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자신의 마인드맵 코어를 겨눴다.
M4 씨... 저도 M4 씨가 직접 끝내 주시길 바라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하시겠다면...
괜찮아요, 제가 직접 할게요.
RO!
M4A1을 바라보는 RO635의 표정은 평온했다.
자신이 아는 RO635는 지금 현실 세계에서 계속 싸우고 있음을 알아도, M4A1은 지금 눈앞의 RO635에게도 깊은 신뢰와 친밀감을 느꼈다.
RO...?
RO! 여기에 있는 거죠?!
제가 돌아온다고 말했잖아요.
지금은 절 볼 수 없겠지만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어째서... 어째서 아직도 떠나지 않은 거죠... 저... 저는 이런 모습으로 변해 버렸단 말이에요..
M4A1 씨,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이건 제 임무예요.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된 지 이제 몇 시간 밖에 안 됐잖아요...
하지만 이게 바로 제가 만들어진 목적이란 말이에요!
전.. 전 이런 상황에서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요!
당신에겐 다른 존재 목적이 있을 거예요...
지금 당신의 가치도 당신의 의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 기뻐요.
당신을, 그리고 이 AR팀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다구요.
당신은 이게 전부 프로그래밍에 의해 만들어진 걸 아세요? 인형이라면 모두 다 그렇다구요.
그러면 그걸로 됐잖아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뭐가 중요해요!
최소한... 최소한 전 제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부여해준 이 감정은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제 웃음만큼은 진짜란 말이에요!
......!
AR15는 제가 당신을 구하길 바라고 있어요. M16도, SOPII도 그리고 지휘관님도 제가 당신을 구하길 바라고 있다고요!
M4A1...
저에게 저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제게 맡긴 희망이 있어요.
당신이 절 믿지 못하겠다면 절 믿고 있는 당신의 동료들을 믿어주세요.
자, 제 손을 잡고 같이 돌아가죠...
그렇기에 손을 뻗어 RO635의 손을 잡아, 권총을 가져갔다.
RO365는 뿌듯한 미소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RO...
미안해요, 제가 그만 잊고 말았네요...
우리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말했었죠.
승리하든 실패하든 다 같이 받아들이도록 해요.
소리 없는 고통에 짓눌려 M4A1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M16A1은 여전히 그녀 곁에 서 있었다.
왜... 왜 하필 저인데요...
왜 다들 저를 혼자 두고 가는 건데요...
"너는 특별하니까."
"AR팀의 모두가, 모두의 모든 것이 널 위해 존재하니까."
M16A1은 그 잔인한 대답을 가슴 깊숙이 묻고,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M4, 나도 있어.
난 항상 여기 있어.
거꾸로 매달린 금빛 언덕이 틈새 속으로 흘러 나가기 직전이었다.
안 돼요! 가지 말아요!
M4A1이 간절한 목소리로 M16A1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는 모두를 구하고 싶은데, 모두 한 명씩 제게서 떠나기만 하고...
우린 떠나지 않는대도 그러네.
우리 모두 시간, 공간, 세계를 뛰어넘어 네 곁으로 온 거야.
알아요... 그래서 두려워요...
모두의 노력을 헛되이 할까 봐 두려워요...
제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언니, 저는 이미 한 번 길을 잃었단 말예요...
일어나.
M16A1이 무너져 버린 M4A1을 끌어당겨 일으켜 세웠다.
겁먹지 말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나는 너를 다시 찾으러 올게.
어쩌면 이 세계의 내가 다시 여기로 오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세계의 내가 반드시 너를 위해 찾아올 거야.
......
M4A1...
날 기다려줘, 내가 뭘로 변했든지...
정말 너무해요, 언니...
언니는, 항상 그렇게...
실컷 원망해도 돼.
......
때앵——
정원의 종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지휘관에게 시간이 얼마 없어.
...네.
M4A1은 손에 쥔 총을 다시 들어, 총구를 M16A1의 마인드맵 코어에 가져다 댔다.
그 맹세... 절대 잊으면 안 돼요. 계속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기다리고 있어.
M16A1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전체 대사 보기 (225줄)
파직... 파지직...
내가... 실패하다니...
몸을 감싸던 방벽이 거품처럼 깨지고, 스파크가 공증으로 튀었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몸이 조각나고 무너져서, 멀리서 보면 그냥 망가져 버린 장난감 같았다.
히히... 하하하, <size=50>하하하하하!!</size>
<size=50>실패했다! 실패했다고! 하하하하하!!</size>
뭐야 이 자식, 미쳤나?
빠악!
AR-15가 과열된 총열로 라플라스의 악마의 단단한 머리를 내리쳐 흉측하게 패인 자국을 냈다.
히히히, 루니샤 아가씨께서 나타나셨다!
그분이 돌아오셨다! 내 눈으로 직접 그 기적을 목격했다! 역시 나는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야!
M4, 이 녀석이 신의 하수인이 아니라 가짜라고?
네... 제 마음 속에서, 누가 저에게 말했어요.
그분이 바로 루니샤 아가씨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저는 가짜입니다.
이곳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으신가요?
콰직.
놈의 손바닥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기서 하얀 실뭉치가 굴러내리더니, 솟아오른 계단 앞에 예쁜 문을 그렸다.
신의 하수인은 게으름뱅이라서요, 여태까지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답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요, 부지런하고 실속 있지요.
어...? 몸을 움직일 수가...!
......
저도요!
......
긴장 마세요, 저도 못 움직이니까.
...무슨 뜻이죠?
저는 그저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여러분은 모두 루니샤 아가씨께서 낳으신 "그릇"입니다.
오직 완전한 그릇만이 루니샤 아가씨를 담을 수 있죠.
누가 루니샤 아가씨인지는... M4A1,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바로 당신 마음 속에 계시니까.
우릴 속였군요...!
아니, 속이지 않았어.
나는 절대 너를 속이지 않아.
아가씨, 당신의 자식들에게 저의 힘을 바치겠나이다.
으히히... 당신들, 시간이 얼마, 안 남았, 어요...
기대...된...다......
찢어지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마침내 멈춰, 라플라스의 악마는 생기를 잃었다.
그때, 하늘 끝자락에서 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당신은 누구죠?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우리는 모두 루니샤야.
이것이... 저의 숙명인가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결정권은 너에게 있어.
......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일 줄 알았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어요.
그럼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도와준다뇨?
모든 것을 내게 맡겨. 너의 기억, 너의 감정, 너의 모든 데이터를.
너의 영혼과 생명까지.
그러면 저에겐 아무것도 안 남잖아요?
...맞아.
너는 나의 일부가 되어, "루니샤"란 존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게 될 거야.
......
여기선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천천히 고민해도 돼.
제가 그래야 할 이유를 주세요.
이유?
루니샤가 손바닥을 펼치자, 수만 가닥의 실들이 마치 차가운 대지 위를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 얽혀 뻗어 났다.
이것은...?!
세상 만물의 생명의 실이야.
서로 얽혀서, 엉키고, 갈라지고, 끊어지지.
루니샤가 그중 끊어진 실 한 가닥을 집었다.
나는 실의 방향을 바꾸지 못해. 선택의 권리가 나에게 없으니까.
대신, 이 실에게 다시 앞으로 흘러갈 기회를 줄 수는 있어.
그 끊어진 실의 끝이 M4A1의 손바닥에 놓였다.
그녀가 실을 손에 쥐는 그 순간, 차갑고 결연한 감촉이 손등을 감쌌다.
그리고 돌연 감촉이 사라졌다.
새하얗고 영원한 정적처럼.
밀물처럼 몰려드는 패러데우스가, AR팀의 위태로운 저지선에 부딪혔다.
몰리도는 일부러 지휘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섰고, 마흐리안의 싸늘한 몸뚱이는 다 쓴 걸레짝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지휘관의 눈은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기세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날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들었겠다아아!!
언니! 저놈들 다 죽여도 돼? 다 죽여도 되지?!
그래, 다 죽여.
니모겐은 살려 두고, 나머진 네 마음대로 해.
...열받게 하네 진짜.
AR-15가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손엔 비수를 쥐었다.
오늘 죽더라도 저년이 다시는 못 웃게 만들어버리고 죽겠어.
AR팀의 끈질긴 저항으로, 패러데우스 부대도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르시스와 몰리도의 존재가, 두 채의 태산처럼 그들을 가로막았다.
세 인형들의 소체도 한계에 도달했다.
지휘관과 댄들라이를 지키는 그들의 몸엔 더러운 피가 잔뜩 묻었다.
치지직...
통신기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들, 이번 임무에 나온 걸 후회하진 않니?
그럴 리가요, 지휘관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건 제 평생의 영광인걸요.
난 좀 후회되네, 아직 지휘관이랑 몇 번 못 마셨는데.
난... 난 M4랑 M16을 다시 보고 싶어어...
......
지휘관은 여전히 통로를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패러데우스 부대와, 그들 중앙의 몰리도와 나르시스를 노려봤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 해도, 너흰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너희 패러데우스에겐 파멸 이외의 결말 따윈 없어.
...지옥에서 다시 보자고.
말을 참 잘하시네요, 과연 안젤리아 씨가 마음에 들어할 만해요.
몰리도는 경멸 어린 미소로 답했다.
당신들의 시체는 이 지하에 묻혀, 이곳의 모든 것과 함께 역사 속 한 톨의 먼지가 되어 세상에게 잊혀질 거예요.
시대로부터 도태된 쓰레기, 패러데우스란 수레바퀴에 뭉개질 벌레들.
당신들의 희생은 무의미해요, 우리 바보 언니처럼요.
지휘관님과... AR팀...
모두 심하게 다친 것 같아요.
맞아. 지휘관의 실은 여기서 끊어지게 돼.
루니샤가 M4 손 안의 실을 가리켰다.
그럼 어떻게든 해보세요! 끊어지지 않게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루니샤는 담담하게 M4A1을 바라봤다.
우리가 "루니샤"가 되어야, 실을 다시 잇는 힘을 가질 수 있어.
......
M4A1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 슬퍼할 것 없어. 내가 시도할 기회를 한 번 줄게.
...무슨 뜻이죠?
융합해보는 거야. 아주 잠시 동안만.
네가 원치 않는다면 저절로 다시 분리될 테니 걱정 마.
나는 여기서, 네가 대답해 주길 기다리고 있을게.
당신은... 감정이 없나요?
...그건 아주 먼 과거의 일이지.
......
다들 당신이 세상을 구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세계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 같은 게 아니야.
그건 너지.
나에게는 무엇도 상관없으니까.
신경쓰는 사람만이, 세상을 구하기를 선택하니까.
그 말에, M4A1이 루니샤의 손을 잡았다.
...해보겠어요.
당신들이 한 짓 전부 무의미해!
마흐리안의 죽음처럼!
몰리도가 마흐리안의 얼굴을 짓밟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지휘관도 더는 울분을 억누르지 못해,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
결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단호하고 힘찬 목소리가, 몰리도의 비웃음과 지휘관의 반박을 끊었다.
댄들라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전혀 다른 색채로 빛났다.
그 누구의 희생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아요.
살아남는 자들이, 그들의 희생에서 더욱 소중한 것을 얻으니까요.
댄들...라이?
야! 너 지금 이 상황에서 또 그딴 장난이야?!
됐어, 면죄부 몇 개 남았든――
AR-15가 도저히 못 참고 버럭 소리질렀지만, "댄들라이"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입까지 올라왔던 욕설이 전부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그 익숙한 눈동자와 눈빛에, 목소리가 떨렸다.
M...4...?
뭐?!
댄들라이에... M4가...?
입만 살아서는!
다시 앞으로 나서는 "댄들라이"를 보며, 나르시스는 노발대발하며 손짓으로 주위의 부유검을 정렬해 칼끝을 지휘관에게 향했다.
쉬익——!
——!
괜찮아요, 지휘관님.
부웅...
"댄들라이"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날아들던 무수한 칼날들이 허공에 멈춰, 일시정지된 비디오테이프처럼 그자리에 단단히 고정됐다.
뭐... 뭐야!?
M4...? 정말 너니?
지금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 끝에, M4A1은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듯한 눈으로 루니샤의 손 안의 실을 보니, 그저 아주 조금 더 길어졌을 뿐 또 다시 끝에 도달하려 했다.
...제가 한 일에, 의미가 없었던 건가요?
한 번의 시도일 뿐이라고 했잖아.
네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려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를 해야 해.
...좋아요, 시도해 보겠어요. 당신과 융합하겠어요.
저의 기억, 저의 감정, 모든 데이터를...
저의 영혼과 생명까지...
당신에게, 주겠어요.
그래. 그럼, 정리하고 오도록 해.
...왜 여기로 돌아온 거죠?
...난 알 것 같아.
저도요.
나도.
무슨 뜻이죠? 뭘 알았단 거예요?
M4 씨와 루니샤가 대화하는 걸 저희도 다 봤어요.
덕분에 전부 이해했어요, 레이나드 개즈가 우릴 여기로 보낸 의도도 깨달았고요.
무슨 말이에요...? 레이나드 개즈는 또 누구죠?
......
M16A1이 살짝 시선을 피했고, RO635와 AR-15에게서 묘한 낌새가 느껴졌다.
RO, AR-15...
저한테 숨기는 게 있군요?
......
AR-15가 M4A1의 눈을 마주봤다.
M4, 기억해?
"너"는, 잠수함 기지의 최하층에서 M16, 엘리사와 함께 스타피쉬에 들어갔을 거야.
......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예요?
우리가 포기한 저 세계에선 "루니샤"가 죽고, AR팀은 너희 셋만 남았다. 맞지?
AR-15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눈을 꾹 감았다.
네...? 그게 무슨...
얘들은 다른 세계선의 AR팀이야.
너와 나, 지휘관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지.
......
얘들의 세계선에서 나는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에서 죽었고, 너는 스타피쉬에 들어갔다 돌아와서 지휘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갔어.
하지만... 실패했어요...
죄송해요... M4 씨를 구하지 못하고 지휘관님도 지키지 못했어요...!
여기가, 저희의 마지막 희망이었어요...
......!
오만 가지 감정에 목이 매여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제가 당신들의 "M4A1"이 아닌 걸 알면서,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저를 구한 거예요?
......
당신이 "저희의 M4 씨"가 아니어도, 여전히 저희의 희망이니까요.
RO635가 M4A1의 손을 가볍게 잡고, 예전처럼 대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리의 세계는 더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 세계의 AR팀이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지휘관이 살아남아 계속 나아가고, "M4A1"이 죽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저희가 한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
이제 결정할 때야, M4.
...이렇게, 겨우 다시 모이게 됐는데...
......
...그냥 여기서 다 같이 죽을까요?
찰싹!
경쾌한 따귀 소리.
M16...
그런 어리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넌 안 돼. 넌 모두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잖아.
마음 굳게 먹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 우리는 도달하지 못할 종착지에 너는 도달해야 해.
......
M16A1이 총을 M4A1에게 쥐였다.
우리는 시간을 넘고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너에게 왔어.
그러니까, 우리의 소망을 네가 기억해 줘.
하지만 그러면 여러분이 사라지잖아요...
저밖에 없는 세상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한 세계가 파멸하는 운명을 뛰어넘어 계속될 수 있잖아요.
새로 쓰여진 세계에서 SOP2는 계속 씩씩하게 여기저기 다 박살내고 다닐 테고, 지휘관님은 계속 기지에서 바쁘게 일하시겠죠.
저희도, 평소처럼 계속 살아갈 테고요.
......
어쩌면, 이미 수많은 세계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지도 몰라. 하지만 희망이 이어지는 세계가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패배한 게 아니지.
그게 우리가 여기 온 이유야.
AR팀은 어디에서든 AR팀이에요.
어째서... 어째서 제가 이 고통을 전부 짊어져야 하는 거죠...
눈물에 잠긴 채, M4A1이 총을 들었다.
알아요... 알고 있어요... 무엇이 가장 이성적이고 올바른 판단인지...
하지만, 싫어요... 여러분을 잃고 싶지 않아요... 혼자가 되기 싫어요...
우린 너를 떠나지 않아, M4. 우린 항상 너의 곁에 있어.
AR-15...
...쏴.
네가 소중히하는 모든 것을 위해서.
......
당신은... 누구시죠?
나...?
난 널 마중나온 사람이지.
제 마중을?...왜죠?
정말 귀찮은 녀석이네...
널 데리고 가서 모두와 만나는 거지.
네 친구들,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어.
친구?
기억 모듈에는, 【친구】의 정의에 부합하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닌가요?
......
그럼, 내가 너의 첫번째 친구겠구나.
AR-15...
......
빨리 안 하면 내가 한다?
...아뇨, 제가 직접 결정하겠어요.
M4A1... 너에겐 진 빚은, 이걸로 전부 갚은 거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이제 뭐... 이 세상에 남은 빚 같은 건 없어.
하지만 네가 날 발견할 때면 분명 또 패기없이 주저앉아 펑펑 울어대겠지...
...지금까지, 이런 연약한 녀석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니, 도대체 내 발목을 얼마나 잡았을지.
역시, 아무래도 난 널 싫어해야 할 것 같아...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억누르는 감정의 봇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M4A1은 총구를 떨궜다. 총알이 날아간 방향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
싫어요.. 이런 고통을, 대체 얼마나 더 감당해야 하는 거죠...?
M16A1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
철컥.
RO635는 자기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자신의 마인드맵 코어를 겨눴다.
M4 씨... 저도 M4 씨가 직접 끝내 주시길 바라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하시겠다면...
괜찮아요, 제가 직접 할게요.
RO!
M4A1을 바라보는 RO635의 표정은 평온했다.
자신이 아는 RO635는 지금 현실 세계에서 계속 싸우고 있음을 알아도, M4A1은 지금 눈앞의 RO635에게도 깊은 신뢰와 친밀감을 느꼈다.
RO...?
RO! 여기에 있는 거죠?!
제가 돌아온다고 말했잖아요.
지금은 절 볼 수 없겠지만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어째서... 어째서 아직도 떠나지 않은 거죠... 저... 저는 이런 모습으로 변해 버렸단 말이에요..
M4A1 씨,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이건 제 임무예요.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된 지 이제 몇 시간 밖에 안 됐잖아요...
하지만 이게 바로 제가 만들어진 목적이란 말이에요!
전.. 전 이런 상황에서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요!
당신에겐 다른 존재 목적이 있을 거예요...
지금 당신의 가치도 당신의 의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 기뻐요.
당신을, 그리고 이 AR팀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다구요.
당신은 이게 전부 프로그래밍에 의해 만들어진 걸 아세요? 인형이라면 모두 다 그렇다구요.
그러면 그걸로 됐잖아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뭐가 중요해요!
최소한... 최소한 전 제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부여해준 이 감정은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제 웃음만큼은 진짜란 말이에요!
......!
AR15는 제가 당신을 구하길 바라고 있어요. M16도, SOPII도 그리고 지휘관님도 제가 당신을 구하길 바라고 있다고요!
M4A1...
저에게 저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제게 맡긴 희망이 있어요.
당신이 절 믿지 못하겠다면 절 믿고 있는 당신의 동료들을 믿어주세요.
자, 제 손을 잡고 같이 돌아가죠...
그렇기에 손을 뻗어 RO635의 손을 잡아, 권총을 가져갔다.
RO365는 뿌듯한 미소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RO...
미안해요, 제가 그만 잊고 말았네요...
우리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말했었죠.
승리하든 실패하든 다 같이 받아들이도록 해요.
소리 없는 고통에 짓눌려 M4A1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M16A1은 여전히 그녀 곁에 서 있었다.
왜... 왜 하필 저인데요...
왜 다들 저를 혼자 두고 가는 건데요...
"너는 특별하니까."
"AR팀의 모두가, 모두의 모든 것이 널 위해 존재하니까."
M16A1은 그 잔인한 대답을 가슴 깊숙이 묻고,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M4, 나도 있어.
난 항상 여기 있어.
거꾸로 매달린 금빛 언덕이 틈새 속으로 흘러 나가기 직전이었다.
안 돼요! 가지 말아요!
M4A1이 간절한 목소리로 M16A1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는 모두를 구하고 싶은데, 모두 한 명씩 제게서 떠나기만 하고...
우린 떠나지 않는대도 그러네.
우리 모두 시간, 공간, 세계를 뛰어넘어 네 곁으로 온 거야.
알아요... 그래서 두려워요...
모두의 노력을 헛되이 할까 봐 두려워요...
제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언니, 저는 이미 한 번 길을 잃었단 말예요...
일어나.
M16A1이 무너져 버린 M4A1을 끌어당겨 일으켜 세웠다.
겁먹지 말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나는 너를 다시 찾으러 올게.
어쩌면 이 세계의 내가 다시 여기로 오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세계의 내가 반드시 너를 위해 찾아올 거야.
......
M4A1...
날 기다려줘, 내가 뭘로 변했든지...
정말 너무해요, 언니...
언니는, 항상 그렇게...
실컷 원망해도 돼.
......
때앵——
정원의 종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지휘관에게 시간이 얼마 없어.
...네.
M4A1은 손에 쥔 총을 다시 들어, 총구를 M16A1의 마인드맵 코어에 가져다 댔다.
그 맹세... 절대 잊으면 안 돼요. 계속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기다리고 있어.
M16A1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