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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2 · 22중 곤경

공백의 사인

"찢어진 카드 한 장이 그녀의 마지막 의탁이 되었다."

-69-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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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

내가 죽더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녀는 결국 우리의 운명의 땅으로 향해, 오래토록 기다렸던 그 사람을 만나러 갈 거야.

M16A1

그 망상을 안고 얌전히 죽어.

타앙!

어둠의 잔영이 불빛으로 화하여,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환히 비췄다.

나무와 수풀이 바람에 한동안 부스럭거리다, 다시 침묵했다.

"엘리사"라는 이름의 철혈 신호는 완전히 사라졌다.

M16A1

가자, M4가 저 안에 있을 거야.

RO635

......

M16A1이 고개를 돌리니, 매우 복잡한 표정인 얼굴들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M16A1

...왜 그래?

RO635

여기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정말 다시 보게 되니까...

M4 SOPMOD II

<size=50>으아앙——!</size>

M4 SOPMOD II

M16! 나 너무 보고 싶었어어어!!

M16A1

아니, 왜 이래? 이렇게 오버할 정도야?

AR15

......

AR-15가 다가갔지만, 어째선지 평소처럼 SOP2를 끌어내지 않았다.

AR15

어서 돌아와, M16.

M16A1

......

RO635

너무 개의치 마. 네가 그 임무에서 희생한 후로... 우리가 얼마나 널 그리워했는데.

M16A1

...희생?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 같은 위화감에 M16A1이 눈살을 찌푸렸다.

M16A1

무슨 뜻이야?

RO635

......

M4 SOPMOD II

그러니까... 훌쩍, 우리가 팔디스키 잠수함 기지에 침투했을 때...

스타피쉬가 가동할 때 에너지가 너무 커서 지하가 다 무너질 때, 우린 시간이 없어서 M4만 데려갈 수 있었어...

AR15

M4를 구하려고 네가 혼자 아래에 남았잖아.

M16A1

......

RO635

기억 안 나? 안색이 이상한데...?

M16A1

...그리고? 내가 희생한 다음 어떻게 됐어?

RO635

팔디스키에서 퇴각한 후, M4가 스타피쉬에서 본 게 우리의 협상 카드가 됐어.

그렇게 우린 프랑크푸르트로 갔는데...

......

AR15

실패했어.

M4 SOPMOD II

미안해 M16...

M4랑 지휘관을... 지키지 못했어...

M16A1

......

M16A1은 그들이 묘사한 장면을 마인드맵 안에서 빠르게 그려봤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그런 과거를 겪은 적 없다고 확신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M16A1은 단 한 가지의 결론을 얻었다.

M16A1

너희가 얘기하는 M16은 내가 아니야.

M4 SOPMOD II

그, 그게 무슨 소리야?

M16A1

나화 함께한 AR팀도 너희가 아니고.

AR15

잠깐만, 이해가 안 가는데...

RO635

......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

M16A1

간단히 말해서, 너희와 나는 서로 다른 세계선에서 온 거지.

너희의 세계에서 M4는 스타피쉬에서 돌아왔고, "나"는 기지에서 죽었지만..

나의 세계에서 나는 M4와 함께 스타피쉬로 들어갔고, 지금 이렇게 걔를 찾는 중이야.

M4 SOPMOD II

그러니까, M16이면서 M16이 아니라고...?

AR15

SOP2, 됐으니까 넌 머리 안 굴려도 돼.

RO635

뭐가 어떻든, 우리는 AR팀이고 같은 목적으로 여기에 왔단 거네.

M16A1

M4를 찾아내고...

RO635

지휘관님을 구하는 것.

AR15

방금까진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은 확실해졌어.

같은 기억이 없더라도 우리의 팀워크에 지장은 없어.

M4 SOPMOD II

아무튼 간에... M16은 M16인 거 맞지?!

M16A1

그래, 난 M16A1이야. 이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M4 SOPMOD II

다행이다~! M16이랑 만났으니까 절반은 성공한 거네!

이제 M4만 찾아내면 돼! M4만 찾으면 레이나드 개즈의 예언이 실현되는 거야!

M16A1

"레이나드 개즈"?

때——앵!

익숙한 종소리가 다시 숲에 울려 퍼졌다.

AR팀이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샌가 먹구름이 두껍게 드리웠다.

AR15

조심해, 뭔가 온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더니, 정원의 중심에서 돌연 문이 나타났다.

나선 계단이 축을 따라 빙글빙글 솟아올랐다.

그리고, 익숙한 노래가 땅 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

나를 거쳐 번뇌의 성으로...

나를 거쳐 극락의 탑으로...

나를 거쳐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갈지어니...

어두운 정원의 나무들이 화음을 넣었다.

메아리치는 종소리를 반주로, 그들의 장엄한 노래는 구름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M4 SOPMOD II

어라? 이 노래는...?!

RO635

물러서.

AR팀은 차분하게 진형을 조절하고 알 수 없는 상황에 대비했다.

낯선 소녀의 목소리

정의로 창조주는 움직이시어,

전능하신 힘과 지고하신 지혜,

원초의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도다...

미소짓는 어린 소녀가 기도문을 읽으며 지하에서 걸어 나왔다.

장대하던 합주도 발걸음마다 점점 잦아들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M16A1

누구냐.

마티니 헨리

나는 루니샤 아가씨의 충성스런 하인. 아가씨를 대신해 이 정원을 지키고 있지.

"마티니 헨리"라 불러도 좋지만, 굳이 기억할 필요 없어. 어차피 너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으니까.

RO635

루니샤...! 목적이 뭐냐!

마티니 헨리

목적이라니, 나는 그저 너희가 승리해 이 타로 천국에서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러 왔을 뿐이야.

이제, 루니샤 아가씨의 재탄생을 위해 너희의 생명을 바치도록 해.

M4 SOPMOD II

걔는 M4야! 루니샤가 아니라고!

마티니 헨리

"M4A1"은 아가씨의 일부에 불과해. 그녀는 결국 완전한 루니샤 아가씨가 될 거야.

타타탕!

분노가 담긴 총알 세례가 앞줄에 선 마티니 헨리의 수비병들을 꿰뚫었다.

M16A1

저놈이랑 입씨름할 시간 없어.

SOP2, 엄호할 테니까 돌격해.

그 말에 SOP2가 씨익 웃곤 날렵하게 몸을 던져, 적의 방어선을 뚫고 마티니 헨리를 향해 돌진했다.

M16A1은 그 뒤를 바짝 따르면서, SOP2를 가로막으려는 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쓰러뜨렸다.

한편, RO365와 AR-15는 그 틈을 타 적진을 우회해 돌격조의 빈틈을 채워 줬다.

마티니 헨리

쯧쯧, 팀플레이는 너희만 하는 줄 아느냐?

여봐라, 모두 나오거라!

지팡이 정령

예!

계속 기척을 숨기던 카드들이 떨어진 불호령에 냉큼 튀어나와, 마티니 헨리의 앞에 서서 AR팀의 진격을 저지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SOP2는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고작 카드 따위가 막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M4 SOPMOD II

이제 네 차례야!

마티니 헨리

...정말 쓰레기뿐이군.

그런데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위협을 눈앞에 두고서도, 마티니 헨리는 전혀 피하려는 움직임조차 없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웃기만 했다.

마티니 헨리

뭐, 이것들 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지만.

M16A1

......

마티니 헨리

너희는 M4A1의 심정을 생각해보긴 했어?

M4 SOPMOD II

당연하지! M4를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마티니 헨리

헛소리. 네놈들 하나하나 다 이기적인 것들이면서.

자기 목숨 아까운 줄밖에 모르면서, 그녀가 바라는 모든 걸 부술 뿐이지.

M4 SOPMOD II

M4가 이딴 걸 바랄 리가 없잖아!

마티니 헨리는 이미 SOP2의 유효 사거리 안이었다.

마티니 헨리

그래? 그럼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겠어?

루니샤 아가씨,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M4 SOPMOD II

뭐?!

M16A1

――!

몇 걸음 뒤의 M16A1가 SOP2가 당황해서 총구를 내리는 걸 본 순간 둘 다 엄청난 충격파에 나가떨어졌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시 전투 태세를 잡았을 때, M16A1의 시선은 마티니 헨리 곁의 인형에게 고정됐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얼굴이건만, 눈빛이 정말 낯설고 요원하게 느껴졌다.

M16A1

...M4?

루니샤?

......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한 손이 살포시 마티니 헨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소녀는 마티니 헨리의 인도를 받으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M4 SOPMOD II

M4!!

흥분한 SOP2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소녀의 눈빛은 고요하고 냉담했다.

아무런 상관 없는 경치를 훑어보듯 소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마티니 헨리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루니샤?

나 이전에 태어난 것 없었으며, 나 영원히 존재하리.

RO635

M4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루니샤?

사랑이 우리를 함께 살게 하시어,

사랑이 우리를 함께 죽게 하리라.

서로 잡은 두 손을 내리고,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옹기종기 뭉친 AR팀을 눈에 담았다.

그러나 서로 시선이 교차할 때, AR팀은 낯설고 싸늘한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AR15

이 빌어먹을...!

M4!!

마티니 헨리

루니샤 아가씨, 여기 철없는 친구들이 당신의 뜻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직접 설명해 주시죠.

루니샤?

저는 세계의 비참한 운명에 종지부를 찍고자 합니다.

대홍수를 일으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마티니 헨리

이 대답이 만족스러우시려나?

M16A1

......

M4 SOPMOD II

......

감정이 폭주하는 AR팀의 꼴을 감상하며, 마티니 헨리는 가볍게 손짓해 산산조각 났던 카드들을 순식간에 원상복귀시켰다.

되살아난 카드들은 음험하게 웃으며 AR팀에게 달려들었다.

지팡이 정령

루니샤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우린 두려움 따위 없다!

M4 SOPMOD II

M4!

땅을 짚고 일어선 SOP2가 자리를 박차고 달리려던 순간, 발목이 묶였다.

어디서 뻗어 나왔는지 모를 푸른 덩굴이 미친듯이 자라나, SOP2의 다리를 단단히 휘감아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M4 SOPMOD II

<size=50>으아아아아아 M4——!!!</size>

루니샤?

......

SOP2의 절규를 듣고서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녀는 그저 눈살을 약간 찌푸리기만 했다.

루니샤?

...저 아이, 엄청 슬퍼해요.

마티니 헨리

염려치 마세요, 루니샤 아가씨.

저들의 고통은 잠깐일 뿐이고, 아가씨가 이끄는 행복은 영원하니까요.

아가씨의 일부로서 희생되는 것이, 저들의 가장 큰 가치랍니다.

루니샤?

그런데.. 왜 제가 숨이 막힐 것처럼 괴롭죠?

마티니 헨리

그건 아가씨가 선량하시고 연민으로 가득하시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아가씨 같은 분은 오직 아가씨뿐입니다. 하물며 저들도 아가씨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요.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영원히 아가씨의 곁을 지켜드릴 테니.

우리 함께 성가를 부르며, 모든 슬픔과 고통을 정화합시다.

마티니 헨리가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감겨 주어, 나지막이 노래했다.

초조해진 RO635의 사격이 SOP2에게 몰려든 적들에게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AR팀의 화력이 놈들을 손쉽게 찢어발겼는데, 지금은 바위에 던지는 계란마냥 무력했다.

RO635

SOP2!

AR15

RO! 네 발밑 조심해!

RO635

네 카드를 잘 지켜!

AR15

<size=50>니 발밑 조심하라고!!</size>

홀로 기어다니던 덩굴이 기회를 잡아, RO635의 발목을 휘감았다.

비록 보잘것없는 힘이었지만, 인형의 행동을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RO635

으앗!

AR15

제기랄!

위기에 빠진 RO635를 구하기에 급급했던 AR-15도 당해 통째로 끌어올려졌다.

M16A1

AR-15! RO!

AR15

우린 괜찮아 M16!

RO635

SOP2부터 도와줘! 완전히 묶여 버렸어!

M16A1은 M4에게 접근하기를 포기하고, 덩굴과 적들에게 포위된 SOP2를 향해 달려갔다.

타타탕!

덩굴이 몸을 구부려 M16A1의 총알을 막고 SOP2에게 가는 길을 차단했다.

M4 SOPMOD II

으아아아아아아!!

M16A1

SOP2!

점점 더 단단히 조여져 가는 덩굴이 SOP2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고, M16A1은 저 비열한 정령이 SOP2의 카드에 손을 뻗는 것을 목격했다.

타타탕!

정령의 시도는 막았지만, 곧바로 카드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M4 SOPMOD II

M16...

내 힘을, 네가 이어받아!

M16A1

그게 무슨 소리야?

M4 SOPMOD II

이놈들, 내 카드를 뺏으려고 하고 있어.

그건... 절대 용납 못 해!

레이나드 개즈가 우리에게 남긴 카드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놈들이 뺏어가게 두면 절대 안 돼!

몸을 찌그러뜨리는 소리와 함께, SOP2의 목소리도 함께 일그러졌다.

M16A1

나더러 어떡하라고...?

M4 SOPMOD II

나를 쏴! 내 전부를 이어받아서, 다른 애들을 구해줘! M4를 구해줘!

M16A1

......

M4 SOPMOD II

빨리이...! 더는 못 버티겠어...!

M16A1은 총을 들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느껴지지 않았고, 방아쇠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빈틈 없이 조여드는 덩굴 사이로 SOP2는 고개를 들어, 눈부신 미소로 M16A1의 총구를 바라봤다.

M4 SOPMOD II

M4한테 전해줘, 무지무지 사랑한다고! AR팀도, 지휘관도, 그리폰의 모두도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M4 SOPMOD II

<size=50>오늘 여기까지 와서, 나는 조금도 후회 안 해!!!</size>

M16A1

SOP2...

M4 SOPMOD II

<size=50>쏴!!!</size>

RO635

SOP2——!!

타——앙!

무언가가 M16A1의 손에 들어왔지만, 아찔한 현기증에 그녀에겐 RO635와 AR-15가 달려오는 것만 보였다.

루니샤?

...떠났어요.

마티니 헨리

아가씨 곁으로 돌아온 겁니다.

루니샤?

......왜 전혀 기쁘지 않죠?

괴롭기만 해요, 참을 수 없이 괴로워요.

마티니 헨리

그건 그녀가 아가씨를 위해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아가씨의 곁으로 돌아오고서야, 아가씨의 마음을 완전히 깨달은 것이죠.

그러니 더욱 서둘러야 합니다, 남은 3명도 회수하면 아가씨의 고통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루니샤?

네...

저 멀리의 살기를 내뿜는 눈동자를 피해,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노래하기를 계속했다.

AR-15가 눈에 불을 켜고 M4가 있는 방향을 노려봐, RO635가 그녀의 고개를 잡고 돌려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RO635

이제 우리 셋만 남았어.

AR15

어째서... M4가 대체 왜...

M16A1

내 생각엔, 저 마티니 헨리란 놈이 M4한테 무슨 짓을 해서 기억을 잃게 만든 것 같아.

AR15

......

RO635

우리마저 기억 못하는 걸까...

M16A1

기운 내.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명심해.

SOP2는 마지막까지 M4를 구하려고 노력했어.

RO635

......

맞아, 지금까지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순 없어.

M16A1

SOP2가 레이나드 개즈가 남긴 카드가 마지막 희망이랬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

AR15

레이나드 개즈가 우리에게 카드 한 장을 남겼어, 모든 안개를 걷어내는 술로 변할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린 카드를 세 조각으로 나눠 각각 하나씩 갖고 있었어. SOP2는... 자기 걸 너에게 넘긴 거야.

M16A1

......

M16A1이 그제서야 SOP2가 그녀에게 남긴 것을 꺼내 보았다.

그건 술잔의 일부가 그려진 카드 조각이었다.

M16A1

이 레이나드 개즈란 사람을 믿어?

RO635

응, 최소한 지금까지 그 사람이 남긴 메시지는 전부 맞아떨어졌어.

M16A1

그럼, 한 번 더 여기에 걸어보자고.

AR15

뭘?

M16A1

이 술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는 거에.

셋은 시선을 교환했다. 비록 기억이 같지는 않지만, 팀워크는 같았다.

자매이며, 전우이자, 동료들.

수도 없이 이별을 겪었지만, 여전히 희망이 그들 손에 쥐어졌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한자리에 모일 것이라는 희망.

설령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라도.

살기등등한 셋을 바라보며, 소녀의 눈에는 괴로움과 단호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흘렀다.

루니샤?

끝냅시다, 전부 끝냅시다.

루니샤 아가씨가 저들을 어떻게 막을지 상상만 해도 마티니 헨리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마티니 헨리

네, 아가씨. 곧 전부 끝날 겁니다.

AR15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루니샤?

......

AR-15와 RO635가 코앞까지 닥쳐온 그 순간,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양옆으로 갈라졌다.

마티니 헨리

응?

의혹이 뚜렷해지기도 전에, 둘이 양옆으로 갈라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M16A1이 무언가를 마티니 헨리의 얼굴에 끼얹었다.

촤악!

마티니 헨리

뭐, 뭐야!?

루니샤?

마티니 헨리!

마티니 헨리

으윽... 빨리 저놈들을 해치우세요 아가씨!

마티니 헨리는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루니샤"의 얼굴에서 자신이 바란 동정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루니샤"는 지금 경악하고 있었다.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 덩어리로 뭉개지더니, 작은 픽셀들로 변해 팽창하고 쌓여 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라플라스의 악마

왜, 운명의 수레바퀴가 한 장 더 있지...?!

그건 분명...!

AR15

...징그럽네.

RO635

이 자식이 우릴 갖고 놀았다 이거지...

루니샤?

마티니 헨리...? 당신의 모습이, 어째서――?!

당황한 "루니샤"의 아래턱을 누가 덥석 붙잡더니, 입을 억지로 벌려 진하고 화끈한 술을 부었다.

루니샤?

우웁?! 꿀꺽꿀꺽...

AR15

...M4?

RO635

......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이 마인드맵을 때렸다.

M16A1

돌아와, M4.

???

나는...

RO635

M4 씨...

M4A1

나는... 저는... M4A1...!

AR15

휴우, 다행이다...

AR-15가 M4A1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던 그때, 손등에 무언가 차가운 게 떨어졌다.

AR15

M4...?

M4A1

저 때문에... SOP2가...!

RO635

......

M4A1

죽어야 할 사람은 저인데...

M16A1

아니, 죽어야 할 놈은 따로 있어.

M16A1이 저 픽셀로 뭉쳐진 형체에게 시선을 향했다.

M16A1

너, 대체 뭐냐?

???

나는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다.

M16A1

현실의 물건 같지는 않군.

인간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놈이냐 넌?

라플라스의 악마

방금 못 들었냐? 나는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피조물!

동시에 모든 인형의 최고 지휘관이지.

반드시 나의 이름을 입에 담으려 한다면, "라플라스의 악마님"이라 존칭하거라.

라플라스의 악마

허나, 한 사람만은 예외지...

위대하신 루니샤 아가씨는.

M4A1

...저는 루니샤가 아니에요.

라플라스의 악마

전지전능한 신이 되지 않고 저 버러지들과 소꿉놀이를 할 셈이시라고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가씨가 M4A1으로 살기를 택한다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비극으로 끝날 뿐이랍니다?

M4A1

왜죠?

라플라스의 악마

그야, 아가씨가 M4A1으로 남으신다면, M4A1이 가장 아끼는 동료 중 하나인 SOP2가 사력을 다해 찾아왔건만 비정하게도 그녀가 죽는 꼴을 지켜보기만 한 것 아닙니까.

그건 너무 잔혹하잖아요? SOP2는 죽기 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신을 원망하진 않았을까요? 증오하진 않았을까요?

M4A1

아... 안 돼...

라플라스의 악마

하지만 아가씨가 루니샤 아가씨로 계신다면 이건 행복한 이야기가 됩니다.

이 세상의 지배자로서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모든 인연을 끊으셨다.

이 얼마나 슬프고 감동적인 서사시일까!

그래서, M4A1이 되어 괴롭게 살아가실 텐가요?

아니면 루니샤가 되어 진정한 신이 될 자격과 대우를 받으실 텐가요?

M4A1

......

싫어, 저는...

AR15

<size=50>이 XX XXX가 그 주둥아리 안 닥쳐!?</size>

라플라스의 악마

여기 이 "동료"라는 것들을 보세요, 설마 진심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M4A1"은 방금 저들이 얻어맞고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빡 않았습니다!

저 동료라는 것들은 그저 기반 설계 때문에 겉으로는 내색도 안 하는 거지, 실제로는 속으로 M4A1을 원망하고 있답니다!

M4A1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말은 안 믿어요!

RO635

저 놈 말에 휘둘리지 말아요 M4 씨! 저를 보세요!

라플라스의 악마

그럼, 지금 M4A1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은 과연 완전한 모든 세계의 M4A1일까요?

M4A1

완전한... 모든... 세계?

라플라스의 악마

제가 말했죠,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타로 천국이든 무간지옥이든, 다 겉모습일 뿐입니다.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다른 비주얼로 바꿀 수도 있죠!

라플라스의 악마

게임 속에서... 모든 이야기는 다 설계된 거예요.

전부 다 법칙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란 겁니다.

그 어떤 등장인물도,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라플라스의 악마

그리고 바로 그것이, M4A1의 괴로움의 근원이랍니다.

M4A1

...그럼, 저는 대체 누구죠? 대체 무엇이죠?

라플라스의 악마

당신은 루니샤 아가씨께서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M4A1이란 신분으로 2064년에 겪은 비극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M4A1

......

라플라스의 악마

그 이야기에 심취해, 그들을 실제로 여기는 것이 바로 아가씨의 괴로움의 근원이에요.

루니샤의 신분으로 돌아오셔야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되찾으시고, 진정으로 생명의 새로운 길을 여실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게임을 리셋해, 모든 이들의 운명과 결말을 새로 쓸 수 있어요!

M4A1

모든 이들의 운명과 결말을, 새로 쓴다... SOP2도요...?

라플라스의 악마

그야 물론!

타앙!

총알 한 발이 놈의 입에 맞았다.

라플라스의 악마

퉷, 네놈! 또 말을 방해하는 거냐!

AR15

헛소리 작작 지껄이라고!

라플라스의 악마

그래,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어차피 네 의견은 1픽셀만큼도 중요하지 않으니.

AR15

뭐 이 XX야!?

M16A1

AR-15, 잠깐.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

AR15

왜? 저 자식 계속 헛소리로 M4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잖아!

M16A1

일단 여기가 범상찮은 곳이긴 하니까.

우리가 각자 어디서 여기로 들어왔는지 잊었어?

AR15

......

M4A1

...SOP2의 결말을 다시 쓸 수 있다 했죠?

라플라스의 악마

자꾸 말을 끊는 녀석은 참 싫다니까...

그럼 한 번에 다 답해 드리죠.

라플라스의 악마

맞습니다, 루니샤 아가씨.

아가씨께서 루니샤가 되어 "열쇠"를 손에 넣기만 하면, 모든 이들의 운명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M4 SOPMOD II를 되살리는 것은 물론, 그녀가 여기서 아가씨 곁에 영원히 있도록 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죠.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와 방법에 관해서는...

라플라스의 악마

아무래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군요.

저는 전지전능한 라플라스의 악마.

인류의 가장 위대한 피조물.

동시에 모든 인형의 최고 지휘관.

라플라스의 악마

때문에 무수한 인간들이 평생을 바쳐 저의 존재를 찾아 헤맸죠.

저를 부르는 방법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방법을 통해 이곳에 도달한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통로를 수호하는 신의 하수인이에요.

M4A1

......

???

아니, 녀석은 가짜야.

M4A1

...누구세요? 누가 제 귀에 속삭이는 거죠?

???

귀가 아니라 마음속이야.

네 마음속에서 말하고 있어.

너는 날 볼 수 없고...

나를 만질 수도 없겠지만...

우리는... 같아.

???

그리고 저 녀석은 가짜야.

M4A1의 마음속 목소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M4A1

<size=50>아뇨, 당신은 이 통로를 지키는 신의 하수인이 아니에요!</size>

<size=50>당신은 가짜예요!</size>

라플라스의 악마는 "가짜"란 지적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광신도처럼 눈을 반짝였다.

라플라스의 악마

아아, 드디어 깨어나시려는군요 루니샤 아가씨!

눈물 한 방울이 M4A1의 뺨을 흘렀다. 괴로움에 눈을 감았던 그녀는, 굳은 의지로 다시 눈을 뜨고 곁의 세 동료들을 바라봤다.

M4A1

AR팀, 작전을 개시합니다... 목표, 라플라스의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