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코르
인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인형 안전 임시 조항」이 프랑크푸르트에 뜻밖의 혼란을 가져왔다.
눈이 그쳤다.
아침이 되자 얼음은 녹아 나뭇가지와 지붕에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갔다.
구름이 아직 걷히지 않아 어두운 아침 하늘을, 프랑크푸르트 비스바덴구 상업 광장의 대형 LED 스크린이 밝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64년 11월 1일, 프랑크푸르트 시간 6시 01분 시사 뉴스입니다.
먼저 어제 벌어졌던 프랑크푸르트 폭발 사건의 최신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폭발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64명, 부상자는 200여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사건의 원인은 신소련의 전술인형 "RPK-16"이 휴대한 자폭형 무기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시점까지 범행 성명을 낸 조직은 없습니다. 다만 범인 RPK-16이 피살 직전 발표한 "인간 선언"을 고려하여, 당국은 이번 사건을 인공지능 인형기계의 일반 인간을 향한 테러로 규정했습니다.
신소련 외교부는 오늘 새벽 이번 폭발 사건에 대한 긴급 회견을 열어, 인형 제조사에 해당 모델 인형의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일절 중지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실험 데이터를 관련 부서에 인계하여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취재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신소련-독일 국제 조사단이 결성될 것이며, 자세한 협력 방식과 경과는 향후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우리나라 경찰은 신소련의 전술인형 소대 "리벨리온"의 AK-12, AN-94, AK-15, 이상 3명의 전술인형에 특수 현상수배령을 내렸으며,
주요 죄목은 "계획적 살인", "테러", "인류 안전 위협"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강력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독일 정부는 금일 새벽 「인형 안전 임시 조치」를 긴급 발표했습니다.
이는 10월 23일 프랑크푸르트 교통 전면 통제에 이어 전국 범위, 특히 수도 내에서 인형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강력한 관제 조치로,
인형의 프랑크푸르트 및 베를린 자유 출입 금지, 주간 고속도로 및 중요 교통 허브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 기존 프랑크푸르트 시내 거주 인형의 신원 등록 및 마인드맵 검사 등...
현장에 나가 있는 DDR2 채널 기자 섀도리스가 시민 인터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현장의 섀도리스입니다, 지금 저는 프랑크푸르트 대철교 입구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이곳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금부터 인터뷰를 통해 기습 발표된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어... 그게 뭐예요?
최근 발생한, 인형이 인간을 습격해 상해를 입힌 사건 때문에 제정된 임시 정책입니다.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의 모든 인형에 대해 강도 높은 감시와 관리를 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어...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어쨌든 치안도 더 나아질 테고.
그렇군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인형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아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인형 안전 임시 조치 철회하라! 철회하라!
인형들의 자유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우렁찬 구호가 섀도리스의 주의를 끌어, 빠른 걸음으로 철교 반대편에서 오는 군중에게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백해무익한 정책입니다! 저희 병원은 업무가 모조리 마비됐다고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은 어디든지 수많은 인형을 안내원, 약사, 간호사, 경비원 등으로 채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뜸 인형을 쓰지 말라면서 대체 인력이고 뭐고 지원하지 않으면 이 공백을 어떻게 메꾸라는 겁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병원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반대를――?!
인터뷰 도중 누군가가 마이크를 덥석 뺏어 갔다.
이거 방송 맞죠!? 저는 이 정책 찬성합니다! 사람 일자리 뺏는 인형들 쫓아내는 걸 이제야 보네!
인간이 헐값에 먹고 자지도 않으면서 일하고 실수도 잘 안 하는 인형이랑 경쟁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번 정책 덕분에 실업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
...의견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이크 돌려주시겠습니까?
XX 그냥 전국의 인형들 싹 다 없애버리라고 해! 임시 조치 말고 정식으로 법전에다 박으라고!
군중 속에서 호응하는 목소리가 몇 번 일다 들려온 더 큰 소란에 섀도리스가 다시 움직였다.
지금 경찰과 함께 마인드맵 검사를 받으러 이동 중인 인형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잠시 취재 가능할까요?
네.
이쪽의 인형 아가씨,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제 이름은 마리고, 가정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맞벌이 가정을 위한 방문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저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왜 제가 체포된 거죠?
안심하세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인형을 색출하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전 시민의 안전을 해치려 한 적 없는데요... 그런데 왜 이러는 거예요? 무서워요...
이만 이동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겁에 질린 눈으로, 인형은 경찰의 손에 붙들려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프랑크푸르트 대철교 인근.
길가에 세워진 지프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뒤 조용히 시동을 걸고 넓은 도로로 나갔다.
지프의 앞좌석에 앉은 여성은 무거운 표정이었다.
......
저 멀리 고화질 도로 감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지프를 위아래로 훑었다.
M16A1은 "착하고 얌전한 인형" 연기를 하면서, 암호화 통신을 켰다.
너도 이미 알겠지만 「인형 안전 임시 조치」가 전면 시행됐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인형은 모두 검사받으러 끌려갔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해당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이 죄다 휴가를 나갔단 말이지?
딱 잘라 말해서, 인형들한테 대처할 시간도 안 주겠단 심산이야.
그래서 너도 잡혔어?
그럼 너랑 통신하고 있겠냐. 그 늙은 여우가 특별 권한 줘서 여유롭게 통과했지.
가장 골치 아픈 건 리벨리온일 거야, 슈타지가 녀석들한테 건 현상금 액수가 암시장의 인형 사냥꾼들 눈이 튀어나올 정도더라.
하긴, 솔직히 나도 좀 욕심날 정도니까.
그래도 걔네는 구시가지에 숨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단속이 거기까지 샅샅이 뒤지진 않을걸?
거기가 확실히 수상한 놈들 숨기 좋은 진흙탕이긴 하지.
하지만 아무리 무관심하더라도 어디에든 보는 눈은 있기 마련이야. AK-15만 해도 그렇게 눈에 띄는데, 이번 일로 인형 혐오가 하늘을 찔러대서 그냥 인형이 길거리에 발을 내디디기만 해도 바로 신고 들어간다.
은신처를 자주 바꾸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네. 근데, 지금 너한테 가장 골치아픈 건 리벨리온이 아닐 텐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아오 진짜, 이젠 임무에 사적 원한 같은 거 안 끌고 온다니까 그러네.
아유 기특해라~ 그럼 M16 말상대 좀 하고 있을래? AR-18한테 볼일이 있어서 이만~
뭐? 야! 어디 가! 아이 씨...
......
그래서, 그쪽 상황은 어때?
지금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의 검문이 아주 철통 그 자체일 텐데.
맞아, 검문소가 눈에 보이게 늘어났어. 허가증 없으면 검문소 그림자도 못 밟아.
게다가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려는 차까지 잔뜩이라, 지금 고속도로가 아주 주차장이 됐어.
AR-18한테선 아직 소식 없어?
오늘 안엔 결과가 나올 거래.
결과가 잘 나올지나 모르겠다고 하긴 했지만.
좀 이따 도로 단속 상황 공유해 줄게, 들어오면 아마 쓸모 있을 거야.
알았어. 만약 AR-18이 방법을 못 찾으면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야지.
그래.
416.
뭐.
나랑 협력하는 거, 정말 괜찮아?
......
아 그러니까 예전 일은 이제 신경 안 쓴다고!
당장의 임무에나 집중하지!?
그럼 됐고. 아무튼 그래, 엄청 중요한 임무니까 집중해야지.
제일 먼저 지휘관의 행방을 찾고, 그 다음 패러데우스의 움직임과 놈들의 시스템을 최대한 감시해야 하는 일이니.
이런 상황에서 내부에서 문제 발생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지.
하, 설마 우리 404가 발목 잡을까봐 걱정돼?
M16A1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훗, 의욕 넘치는구만?
그, 그야 지금 지휘관 앞으로 달아놓은 외상이 얼만데!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받아낼 거라고!
쿠르릉...
아베르누스가 무너지는 소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의 귀에 그 소리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가증스러운 남자의 모습만 보였다.
윌리엄...
...드디어 잡았다.
......
포로 신세건만, 윌리엄은 냉소를 짓기만 했다.
이 홀쭉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지휘관은 심문실 쪽으로 걸어갔다.
쿵!
낯선 천장.
전등도 없고, 오직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거친 천장이었다.
......
깨셨나요, 지휘관님?
안간힘으로 호흡하는 와중 팔다리가 쑤시고 무겁게 느껴졌다.
온몸이 마치 천년 묵은 미이라처럼 허약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가 있었다.
댄들라이?
......
여긴 어디야? 우리 왜 여기 있어?
분명 엘모호의 심문실에서... 설마, 윌리엄 짓이야?
저도 당신만큼 현재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댄들라이의 부축을 받고 윗몸을 일으킨 지휘관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아주 간소한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문만 한 짝뿐이어서, 광원은 희미하게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
바닥도 천장처럼 콘크리트를 대충 깔아둔 모습.
방 안에 있는 건 저기 높이 걸려 있는 감시 카메라, 침대 한 장, 변기 하나, 그리고 물 반 통뿐이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어?
어쩌면 일주일, 어쩌면 10년이 지났을지도요.
지금 유치한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야.
방에서 정보를 얼마 얻지 못한 지휘관은 시선을 댄들라이에게 향했다.
...뭔가 달라진 듯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너 먼저 깨어났어?
네.
우릴 여기로 끌고 온 게 누군지 봤어?
누가 우리를 여기로 끌고 왔는지는 몰라요. 다만, 저번에 이 문이 열렸을 때 들어온 자들은 분명히 윌리엄 수하의 연구원들이었어요.
윌리엄... 놈들이 무슨 짓을 했어?
저를 실험실로 데려가서...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나요.
......
겉으로 드러난 피부를 살펴봤지만, 다치거나 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술 자국은 여기 있어요.
댄들라이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보실래요?
...아니.
일단은 여기서 탈출한 다음에 검사해보자.
지휘관은 굳어버린 몸의 근육을 주물렀다. 몸에 지닌 모든 통신 장비와 무기 모두 사라졌다.
엘모호에 연락 가능해?
아뇨, 여긴 신호가 완전히 차단됐어요.
......
지휘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가, 가볍게 두드려 두께를 가늠해보았다.
묵직한 소리에, 메아리는 벽 속으로 삼켜진 듯한 것이, 두께는 적어도 50cm 이상, 재질은 최소한 콘크리트였다.
한 번 주욱 더듬어본 문은 문고리도, 도어 스코프도 없었다. 대신, 가느다란 틈새가 하나 있었다.
손톱으로 당겨보니, 음식을 밀어넣는 구멍이었다.
여기로 바깥이 보여!
정말이네요. 이 틈새로 빠져나가시려고요?
해봐야지.
틈새를 통해 밖을 보니, 놀랍게도 열쇠가 문에 꽂혀 있었다.
밖의 문고리를 어떻게든 돌리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휘관은 바로 신발끈을 풀고 고리를 만들어 틈새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문고리에 걸었다.
철컥 소리를 내면서, 문은 싱겁게 열렸다.
순간 지휘관의 뇌리에 불안감이 스쳤다. 적이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까? 혹시 함정은 아닐까?
앗...
댄들라이?!
그때, 댄들라이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열린 문으로 들어온 빛으로, 지휘관은 댄들라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안색도 창백하고, 떨리는 가는 팔은 몸을 지탱하지도 못했다.
지휘관님... 빨리 탈출하세요...
저는 됐으니까...
그런 소리 마!
지휘관은 주저 않고 댄들라이를 등에 업고서, 주위를 경계하며 방을 나섰다.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복도에는 감시 카메라는커녕 순찰병조차 없었다.
그래도 지휘관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댄들라이, 실험실로 끌려갈 때의 길은 기억해?
네... 기억해요...
그럼 안내해 줘,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네...
그리고... 어...
너 원래 이렇게 무거웠니...?
댄들라이를 업고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지휘관은 벌써 숨이 찼다.
죄송해요, 제가 짐이 돼서...
지휘관님은 이제 막 깨어나셔서 허약한 상태인데...
역시 안 되겠어요, 저는 신경쓰지 말고 혼자 도망치세요...
......
그런 소리 말고, 안내해.
잠시 후, 지휘관은 다시 익숙한 위치로 돌아왔다.
정말 이 길 맞아...? 이 문을 지나가는 게 벌써 세 번째인데?!
분명 이 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차분히 다시 떠올려 봐.
네...
지휘관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 등에 업힌 댄들라이도 흔들렸다.
잠시 쉬지 않으시겠어요...?
안 돼, 얼른 여기서 나가야지.
네 몸 상태도 검사해야 하고, 엘모호도...
지휘관...
쿵.
지휘관의 몸뚱이가 낡은 초가집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어지러운 시야에 검은 구두 한 쌍이 나타나 지휘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정말 상냥하신 분이라니까요.
그토록 허약해진 몸으로 저까지 데리고 나가려 하시다니.
작은 손이 지휘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토록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오셨으면서, 어쩜 여전히 이리도 순진하세요?
............
너 누구야.
본인이 말씀하셨잖아요? 댄들라이라고.
넌 댄들라이가 아니야...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숙여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동자에 상대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가까이.
그리고 그 연갈색 눈동자가, 서서히 기억 속의 다정하면서도 굳센 뒷모습과 겹쳐졌다.
M4...?!
하지만 그녀의 미간에서 새어나오는 어둠이 익숙함을 다시 한 번 깨뜨렸다.
아니야... 넌 댄들라이도, M4도 아니야...
너 대체 누구야?!
살짝 놀란 얼굴을 짓고, 소녀는 옅은 미소를 지우고서 우아하게 거리를 벌렸다.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루니샤라고 해요.
루니샤...? 네가 왜 여기 있어?
빌이 저의 영혼을 불러서요.
빌...?
당신이 그토록 찾는 윌리엄이요.
그 자식 지금 어딨어!?
빌은 지금 자기 일로 바빠서, 당신을 신경쓸 틈이 없답니다.
빌어먹을――
일어서려 했지만, 몸이 찰흙처럼 늘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루니샤는 입꼬리가 더욱 선명하게 올라갔다.
혹시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제게 말하세요. 기분 내킬 때 대신 전해드릴 테니.
...왜 날 여기 가둔 거지? 왜 굳이 살려 뒀어?
당신이 살아있었으면 좋겠거든요.
......
지휘관이 간신히 일어섰지만, 루니샤가 눈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손가락으로 밀어 다시 넘어뜨렸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있을지는, 저에게 달렸답니다.
......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루니샤는 지휘관의 손을 집어 자신의 뺨에 가져다댔다.
절 때리고 싶으세요?
...아니.
어머, 왜요? 지금 당신을 가지고 놀았잖아요.
......
너는 M4이자 댄들라이니까.
저는 전데요.
너는 단순히 네가 아니야.
...예리하시네요.
루니샤는 벌떡 일어서서, 지휘관의 목덜미 옷깃을 붙잡고는 방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루니샤가 자신의 태블릿을 지휘관에게 내밀었다.
정말 멋진 모습 보여 주셔서 참 즐거웠어요.
포상으로 구조 요청 메시지를 3통 쓰게 해드릴게요. 발송은 제가 할 거지만요.
......
지휘관은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루니샤의 얼굴엔 그저 부드러운 미소만 있었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알아요, 제가 정말 전송해줄지 의심하고 계시죠?
걱정 마세요, 정말이니까. 하지만 암호화를 할지 말지, 또 언제 보낼지는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답니다~
......
지휘관은 손목을 풀고 태블릿에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앞으로도 참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을 보면서, 지휘관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고민했다.
전체 대사 보기 (184줄)
눈이 그쳤다.
아침이 되자 얼음은 녹아 나뭇가지와 지붕에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갔다.
구름이 아직 걷히지 않아 어두운 아침 하늘을, 프랑크푸르트 비스바덴구 상업 광장의 대형 LED 스크린이 밝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64년 11월 1일, 프랑크푸르트 시간 6시 01분 시사 뉴스입니다.
먼저 어제 벌어졌던 프랑크푸르트 폭발 사건의 최신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color=#00CCFF>지금까지 확인된 폭발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64명, 부상자는 200여명으로 집계됐습니다.</color>
<color=#00CCFF>사건의 원인은 신소련의 전술인형 "RPK-16"이 휴대한 자폭형 무기로 확인되었습니다.</color>
<color=#00CCFF>현시점까지 범행 성명을 낸 조직은 없습니다. 다만 범인 RPK-16이 피살 직전 발표한 "인간 선언"을 고려하여, 당국은 이번 사건을 인공지능 인형기계의 일반 인간을 향한 테러로 규정했습니다.</color>
<color=#00CCFF>신소련 외교부는 오늘 새벽 이번 폭발 사건에 대한 긴급 회견을 열어, 인형 제조사에 해당 모델 인형의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를 일절 중지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실험 데이터를 관련 부서에 인계하여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color>
<color=#00CCFF>취재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신소련-독일 국제 조사단이 결성될 것이며, 자세한 협력 방식과 경과는 향후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color>
<color=#00CCFF>한편 우리나라 경찰은 신소련의 전술인형 소대 "리벨리온"의 AK-12, AN-94, AK-15, 이상 3명의 전술인형에 특수 현상수배령을 내렸으며,</color>
<color=#00CCFF>주요 죄목은 "계획적 살인", "테러", "인류 안전 위협" 등으로 알려졌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리고 이와 같은 강력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독일 정부는 금일 새벽 「인형 안전 임시 조치」를 긴급 발표했습니다.</color>
<color=#00CCFF>이는 10월 23일 프랑크푸르트 교통 전면 통제에 이어 전국 범위, 특히 수도 내에서 인형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강력한 관제 조치로,</color>
<color=#00CCFF>인형의 프랑크푸르트 및 베를린 자유 출입 금지, 주간 고속도로 및 중요 교통 허브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 기존 프랑크푸르트 시내 거주 인형의 신원 등록 및 마인드맵 검사 등...</color>
<color=#00CCFF>현장에 나가 있는 DDR2 채널 기자 섀도리스가 시민 인터뷰를 전해드리겠습니다.</color>
현장의 섀도리스입니다, 지금 저는 프랑크푸르트 대철교 입구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이곳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금부터 인터뷰를 통해 기습 발표된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어... 그게 뭐예요?
최근 발생한, 인형이 인간을 습격해 상해를 입힌 사건 때문에 제정된 임시 정책입니다.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의 모든 인형에 대해 강도 높은 감시와 관리를 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어...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어쨌든 치안도 더 나아질 테고.
그렇군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인형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아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size=50>인형 안전 임시 조치 철회하라! 철회하라!</size>
<size=50>인형들의 자유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size>
우렁찬 구호가 섀도리스의 주의를 끌어, 빠른 걸음으로 철교 반대편에서 오는 군중에게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백해무익한 정책입니다! 저희 병원은 업무가 모조리 마비됐다고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은 어디든지 수많은 인형을 안내원, 약사, 간호사, 경비원 등으로 채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뜸 인형을 쓰지 말라면서 대체 인력이고 뭐고 지원하지 않으면 이 공백을 어떻게 메꾸라는 겁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병원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반대를――?!
인터뷰 도중 누군가가 마이크를 덥석 뺏어 갔다.
이거 방송 맞죠!? 저는 이 정책 찬성합니다! 사람 일자리 뺏는 인형들 쫓아내는 걸 이제야 보네!
인간이 헐값에 먹고 자지도 않으면서 일하고 실수도 잘 안 하는 인형이랑 경쟁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번 정책 덕분에 실업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
...의견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이크 돌려주시겠습니까?
<size=50>XX 그냥 전국의 인형들 싹 다 없애버리라고 해! 임시 조치 말고 정식으로 법전에다 박으라고!</size>
군중 속에서 호응하는 목소리가 몇 번 일다 들려온 더 큰 소란에 섀도리스가 다시 움직였다.
지금 경찰과 함께 마인드맵 검사를 받으러 이동 중인 인형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잠시 취재 가능할까요?
네.
이쪽의 인형 아가씨,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인형 안전 임시 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제 이름은 마리고, 가정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맞벌이 가정을 위한 방문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저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왜 제가 체포된 거죠?
안심하세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 인형을 색출하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전 시민의 안전을 해치려 한 적 없는데요... 그런데 왜 이러는 거예요? 무서워요...
이만 이동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겁에 질린 눈으로, 인형은 경찰의 손에 붙들려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프랑크푸르트 대철교 인근.
길가에 세워진 지프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뒤 조용히 시동을 걸고 넓은 도로로 나갔다.
지프의 앞좌석에 앉은 여성은 무거운 표정이었다.
......
저 멀리 고화질 도로 감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지프를 위아래로 훑었다.
M16A1은 "착하고 얌전한 인형" 연기를 하면서, 암호화 통신을 켰다.
<color=#00CCFF>너도 이미 알겠지만 「인형 안전 임시 조치」가 전면 시행됐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인형은 모두 검사받으러 끌려갔어.</color>
<color=#00CCFF>그런데 공교롭게도, 해당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이 죄다 휴가를 나갔단 말이지?</color>
<color=#00CCFF>딱 잘라 말해서, 인형들한테 대처할 시간도 안 주겠단 심산이야.</color>
<color=#00CCFF>그래서 너도 잡혔어?</color>
<color=#00CCFF>그럼 너랑 통신하고 있겠냐. 그 늙은 여우가 특별 권한 줘서 여유롭게 통과했지.</color>
<color=#00CCFF>가장 골치 아픈 건 리벨리온일 거야, 슈타지가 녀석들한테 건 현상금 액수가 암시장의 인형 사냥꾼들 눈이 튀어나올 정도더라.</color>
<color=#00CCFF>하긴, 솔직히 나도 좀 욕심날 정도니까.</color>
<color=#00CCFF>그래도 걔네는 구시가지에 숨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단속이 거기까지 샅샅이 뒤지진 않을걸?</color>
<color=#00CCFF>거기가 확실히 수상한 놈들 숨기 좋은 진흙탕이긴 하지.</color>
<color=#00CCFF>하지만 아무리 무관심하더라도 어디에든 보는 눈은 있기 마련이야. AK-15만 해도 그렇게 눈에 띄는데, 이번 일로 인형 혐오가 하늘을 찔러대서 그냥 인형이 길거리에 발을 내디디기만 해도 바로 신고 들어간다.</color>
<color=#00CCFF>은신처를 자주 바꾸는 수밖에 없겠지.</color>
<color=#00CCFF>그렇겠네. 근데, 지금 너한테 가장 골치아픈 건 리벨리온이 아닐 텐데~</color>
<color=#00CCFF>그건 또 무슨 소리야?</color>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아오 진짜, 이젠 임무에 사적 원한 같은 거 안 끌고 온다니까 그러네.</color>
<color=#00CCFF>아유 기특해라~ 그럼 M16 말상대 좀 하고 있을래? AR-18한테 볼일이 있어서 이만~</color>
<color=#00CCFF>뭐? 야! 어디 가! 아이 씨...</color>
<color=#00CCFF>......</color>
<color=#00CCFF>그래서, 그쪽 상황은 어때?</color>
<color=#00CCFF>지금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의 검문이 아주 철통 그 자체일 텐데.</color>
<color=#00CCFF>맞아, 검문소가 눈에 보이게 늘어났어. 허가증 없으면 검문소 그림자도 못 밟아.</color>
<color=#00CCFF>게다가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려는 차까지 잔뜩이라, 지금 고속도로가 아주 주차장이 됐어.</color>
<color=#00CCFF>AR-18한테선 아직 소식 없어?</color>
<color=#00CCFF>오늘 안엔 결과가 나올 거래.</color>
<color=#00CCFF>결과가 잘 나올지나 모르겠다고 하긴 했지만.</color>
<color=#00CCFF>좀 이따 도로 단속 상황 공유해 줄게, 들어오면 아마 쓸모 있을 거야.</color>
<color=#00CCFF>알았어. 만약 AR-18이 방법을 못 찾으면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야지.</color>
<color=#00CCFF>그래.</color>
<color=#00CCFF>416.</color>
<color=#00CCFF>뭐.</color>
<color=#00CCFF>나랑 협력하는 거, 정말 괜찮아?</color>
<color=#00CCFF>......</color>
<color=#00CCFF>아 그러니까 예전 일은 이제 신경 안 쓴다고!</color>
<color=#00CCFF>당장의 임무에나 집중하지!?</color>
<color=#00CCFF>그럼 됐고. 아무튼 그래, 엄청 중요한 임무니까 집중해야지.</color>
<color=#00CCFF>제일 먼저 지휘관의 행방을 찾고, 그 다음 패러데우스의 움직임과 놈들의 시스템을 최대한 감시해야 하는 일이니.</color>
<color=#00CCFF>이런 상황에서 내부에서 문제 발생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지.</color>
<color=#00CCFF>하, 설마 우리 404가 발목 잡을까봐 걱정돼?</color>
M16A1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color=#00CCFF>훗, 의욕 넘치는구만?</color>
<color=#00CCFF>그, 그야 지금 지휘관 앞으로 달아놓은 외상이 얼만데!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받아낼 거라고!</color>
쿠르릉...
아베르누스가 무너지는 소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의 귀에 그 소리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가증스러운 남자의 모습만 보였다.
윌리엄...
...드디어 잡았다.
......
포로 신세건만, 윌리엄은 냉소를 짓기만 했다.
이 홀쭉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지휘관은 심문실 쪽으로 걸어갔다.
쿵!
낯선 천장.
전등도 없고, 오직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거친 천장이었다.
......
깨셨나요, 지휘관님?
안간힘으로 호흡하는 와중 팔다리가 쑤시고 무겁게 느껴졌다.
온몸이 마치 천년 묵은 미이라처럼 허약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가 있었다.
댄들라이?
......
여긴 어디야? 우리 왜 여기 있어?
분명 엘모호의 심문실에서... 설마, 윌리엄 짓이야?
저도 당신만큼 현재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댄들라이의 부축을 받고 윗몸을 일으킨 지휘관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아주 간소한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문만 한 짝뿐이어서, 광원은 희미하게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
바닥도 천장처럼 콘크리트를 대충 깔아둔 모습.
방 안에 있는 건 저기 높이 걸려 있는 감시 카메라, 침대 한 장, 변기 하나, 그리고 물 반 통뿐이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어?
어쩌면 일주일, 어쩌면 10년이 지났을지도요.
지금 유치한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야.
방에서 정보를 얼마 얻지 못한 지휘관은 시선을 댄들라이에게 향했다.
...뭔가 달라진 듯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너 먼저 깨어났어?
네.
우릴 여기로 끌고 온 게 누군지 봤어?
누가 우리를 여기로 끌고 왔는지는 몰라요. 다만, 저번에 이 문이 열렸을 때 들어온 자들은 분명히 윌리엄 수하의 연구원들이었어요.
윌리엄... 놈들이 무슨 짓을 했어?
저를 실험실로 데려가서...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나요.
......
겉으로 드러난 피부를 살펴봤지만, 다치거나 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술 자국은 여기 있어요.
댄들라이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보실래요?
...아니.
일단은 여기서 탈출한 다음에 검사해보자.
지휘관은 굳어버린 몸의 근육을 주물렀다. 몸에 지닌 모든 통신 장비와 무기 모두 사라졌다.
엘모호에 연락 가능해?
아뇨, 여긴 신호가 완전히 차단됐어요.
......
지휘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가, 가볍게 두드려 두께를 가늠해보았다.
묵직한 소리에, 메아리는 벽 속으로 삼켜진 듯한 것이, 두께는 적어도 50cm 이상, 재질은 최소한 콘크리트였다.
한 번 주욱 더듬어본 문은 문고리도, 도어 스코프도 없었다. 대신, 가느다란 틈새가 하나 있었다.
손톱으로 당겨보니, 음식을 밀어넣는 구멍이었다.
여기로 바깥이 보여!
정말이네요. 이 틈새로 빠져나가시려고요?
해봐야지.
틈새를 통해 밖을 보니, 놀랍게도 열쇠가 문에 꽂혀 있었다.
밖의 문고리를 어떻게든 돌리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휘관은 바로 신발끈을 풀고 고리를 만들어 틈새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문고리에 걸었다.
철컥 소리를 내면서, 문은 싱겁게 열렸다.
순간 지휘관의 뇌리에 불안감이 스쳤다. 적이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까? 혹시 함정은 아닐까?
앗...
댄들라이?!
그때, 댄들라이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열린 문으로 들어온 빛으로, 지휘관은 댄들라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안색도 창백하고, 떨리는 가는 팔은 몸을 지탱하지도 못했다.
지휘관님... 빨리 탈출하세요...
저는 됐으니까...
그런 소리 마!
지휘관은 주저 않고 댄들라이를 등에 업고서, 주위를 경계하며 방을 나섰다.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복도에는 감시 카메라는커녕 순찰병조차 없었다.
그래도 지휘관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댄들라이, 실험실로 끌려갈 때의 길은 기억해?
네... 기억해요...
그럼 안내해 줘,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네...
그리고... 어...
너 원래 이렇게 무거웠니...?
댄들라이를 업고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지휘관은 벌써 숨이 찼다.
죄송해요, 제가 짐이 돼서...
지휘관님은 이제 막 깨어나셔서 허약한 상태인데...
역시 안 되겠어요, 저는 신경쓰지 말고 혼자 도망치세요...
......
그런 소리 말고, 안내해.
잠시 후, 지휘관은 다시 익숙한 위치로 돌아왔다.
정말 이 길 맞아...? 이 문을 지나가는 게 벌써 세 번째인데?!
분명 이 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차분히 다시 떠올려 봐.
네...
지휘관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 등에 업힌 댄들라이도 흔들렸다.
잠시 쉬지 않으시겠어요...?
안 돼, 얼른 여기서 나가야지.
네 몸 상태도 검사해야 하고, 엘모호도...
지휘관...
쿵.
지휘관의 몸뚱이가 낡은 초가집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어지러운 시야에 검은 구두 한 쌍이 나타나 지휘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정말 상냥하신 분이라니까요.
그토록 허약해진 몸으로 저까지 데리고 나가려 하시다니.
작은 손이 지휘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토록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오셨으면서, 어쩜 여전히 이리도 순진하세요?
............
너 누구야.
본인이 말씀하셨잖아요? 댄들라이라고.
넌 댄들라이가 아니야...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숙여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동자에 상대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가까이.
그리고 그 연갈색 눈동자가, 서서히 기억 속의 다정하면서도 굳센 뒷모습과 겹쳐졌다.
M4...?!
하지만 그녀의 미간에서 새어나오는 어둠이 익숙함을 다시 한 번 깨뜨렸다.
아니야... 넌 댄들라이도, M4도 아니야...
너 대체 누구야?!
살짝 놀란 얼굴을 짓고, 소녀는 옅은 미소를 지우고서 우아하게 거리를 벌렸다.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루니샤라고 해요.
루니샤...? 네가 왜 여기 있어?
빌이 저의 영혼을 불러서요.
빌...?
당신이 그토록 찾는 윌리엄이요.
그 자식 지금 어딨어!?
빌은 지금 자기 일로 바빠서, 당신을 신경쓸 틈이 없답니다.
<size=50>빌어먹을――</size>
일어서려 했지만, 몸이 찰흙처럼 늘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루니샤는 입꼬리가 더욱 선명하게 올라갔다.
혹시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제게 말하세요. 기분 내킬 때 대신 전해드릴 테니.
...왜 날 여기 가둔 거지? 왜 굳이 살려 뒀어?
당신이 살아있었으면 좋겠거든요.
......
지휘관이 간신히 일어섰지만, 루니샤가 눈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손가락으로 밀어 다시 넘어뜨렸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있을지는, 저에게 달렸답니다.
......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루니샤는 지휘관의 손을 집어 자신의 뺨에 가져다댔다.
절 때리고 싶으세요?
...아니.
어머, 왜요? 지금 당신을 가지고 놀았잖아요.
......
너는 M4이자 댄들라이니까.
저는 전데요.
너는 단순히 네가 아니야.
...예리하시네요.
루니샤는 벌떡 일어서서, 지휘관의 목덜미 옷깃을 붙잡고는 방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루니샤가 자신의 태블릿을 지휘관에게 내밀었다.
정말 멋진 모습 보여 주셔서 참 즐거웠어요.
포상으로 구조 요청 메시지를 3통 쓰게 해드릴게요. 발송은 제가 할 거지만요.
......
지휘관은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루니샤의 얼굴엔 그저 부드러운 미소만 있었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알아요, 제가 정말 전송해줄지 의심하고 계시죠?
걱정 마세요, 정말이니까. 하지만 암호화를 할지 말지, 또 언제 보낼지는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답니다~
......
지휘관은 손목을 풀고 태블릿에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앞으로도 참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을 보면서, 지휘관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