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노출
"헤베 씨"란 명의로 활동하는 여인이 패러데우스의 기지에 나타났다. 새로운 음모가 조용히 알을 깨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마인츠구, 성 마리아 요양 센터.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꽃다발을 든 여인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금방 애 낳은 사람 맞니? 혈색이 너무 좋은걸? 진짜 부럽다.
우리 헤베 아가씨도 여전히 동안이네.
헤베는 우아하게 침상 옆으로 다가가 메이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살 빠졌네, 식사는 잘 하고 있는 거야?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내가 기억하기론 그 가게의...
걱정 마, 난 멀쩡해.
하긴, 넌 그 사촌동생 생각으로 잔뜩이겠구나.
하아...
정말 너무 안타까워.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애인데, 사회 나가자마자 사기를 당해가지고 잘못된 길로 빠졌어...
아니었음 너한테까지 도움 청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레이 교수 말이니? 몇 년 전에 뉴스에서 보고 참 전문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니...
넬레가 그 사람 얘기 한 적 있어?
예전에 몇 마디 해본 적은 있어. 사이도 엄청 좋고, 그레이 교수가 써준 추천서 덕에 갈라테아에 취직했다고.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지고 난 후론 얘기를 잘 안 하더라. 아마 엄청 원망하고 있나봐.
...그래?
응, 내가 그 사람 얘기만 하면 안색이 엄청 나빠져서 말을 돌려.
그렇구나...
나도 그 사람 얘기 하기 싫다.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미래가 창창한 애였는데.
이해해, 나도 막 데뷔했을 때 여기저기서 계속 사기당하고 그랬어. 지금도 그 사람들은 밖에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말이야.
그래도 결국엔 다 견뎌냈잖아. 출연작마다 줄줄이 히트 쳐서 딱 박수 칠 때 잘 내려왔고, 지금은 가정도 잘 꾸리고 있고. 얼마나 좋아?
우리 넬레도 그렇게...
걔라고 못할 거 없지. 그래서 이번에 포크트 씨와 만나기로 한 거잖아?
그 어르신이 고개 한 번만 끄덕해주면 안될 게 어디 있겠니?
오늘 좀 대화가 잘 되면 좋겠는데...
아유 됐다. 전에 사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건 어때, 잘 돼가?
물론이지~
요구사항에 맞춰서 이렇게 몇 명 골라왔어.
헤베가 태블릿을 켜서 메이어에게 프로필을 몇 개 보여줬다.
학력 좋고 출신 좋고, 인성도 내가 알아본 바로는 다들 예의바르고 다정한 신사들이야.
이야, 역시 너한테 맡기는 게 정답이었구나!
그러니까 마음 놓고 푹 쉬어. 넬레하곤 8시에 약속 잡았으니까, 만나면 내가 직접 보여줄게.
진짜 고마워, 나 퇴원하면 꼭 한 끼——
쉬잇.
헤베가 가는 손가락으로 메이어의 말을 끊었다.
그런 거 필요 없어, 알잖아. 넌 그냥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만 생각해. 이 정도 고민쯤 내가 해결해줄게.
내가 진짜 사람 복은 있구나...
자꾸 쑥스럽게 그러지 말고.
헤베는 가져온 디저트의 포장을 뜯어서 예쁘게 한 조각을 잘라 메이어에게 건넸다.
그 사촌동생의 평소 취미 같은 거 얘기해줄래?
프랑크푸르트시 마인츠구, 고속도로.
요양 센터에서 벗어난 검은 리무진이 도시 동쪽 에쉬본구를 향해 질주했다.
헤베 씨, 넬레 씨가 출발했답니다.
운전기사 보고 거리 구경 좀 시켜주라고 해둬. 난 이쪽 일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람 시켜서 그 애 뒷조사 좀 해봐. SNS들 전부 뒤져서 통신 내역, 메일, 사진, 동영상 위주로.
네.
내년도 영화 시상식에서 또 게스트 참석 요청이 들어왔는데 뭐라고 답변할까요?
아직 반 년이나 남았는데? 진짜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아직 스케줄 미정이니까 3개월 뒤에 답변드리겠다고 말해.
네.
그럼 다음 달의 생일 팬미팅은 여실 건가요? 팬들이 회사 사옥까지 몰려와서 아주 그냥 난리 부르스를 추던데요.
정보망도 유지보수는 해줘야지.
저번의 그 레스토랑으로 해줘, 익숙한 기자 몇 명 불러서 밖에서 촬영도 시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인들 몇 분께서 티타임에 초대하셨는데, 전부 C등급이라고 적혀 있는 분들입니다.
미뤄둬.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방금 성 마리아 요양원에 있을 때 "화이트 부인"이란 연락처에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분은 등급이 안 적혀 있는데 어떻게...
뭐라고 왔는데?
"떠나간 나비가 다시 고치를 짜고, 새로운 재탄생을 기다린다."
무슨 연극 대사입니까? 제가 티켓 예매해 드릴까요?
......
뒷좌석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헤베가 두 눈을 떴다.
아니, 티켓은 그쪽에서 준비해놨어.
프랑크푸르트시 에쉬본구, 패러데우스 공장 지하, 배양실.
길게 늘어선 투명 수조에 수십 명의 흑백 니토가 몸이 구속된 채 갇혀 있었다. 마구 몸부림치는 니토가 있는가 하면 그저 멍하니 있는 니토도 있었다.
네메아란은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애슐리가 그들을 하나씩 검사하며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을 지켜봤다.
......
네메아란 언니, 모든 데이터를 집계해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언니가 온 다음에 다시 시작합니까, 아니면...?
이미 왔단다.
......
자신의 예리한 감각에 자부심이 있는 애슐리였지만, 그녀조차 이번엔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언니가 한 조수를 이렇게 오래 쓰다니, 참 별일이네.
......!
가느다란 팔이 자신의 어깨를 감쌌다. 애슐리는 곁눈질로 그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훔쳐봤다.
평범한 니토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네메아란 언니 옆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을까?
궁금한걸... 해부해 보고싶어...
헤베 언니... 혹시 애슐리가 실례를 범했다면 부, 부디 너그럽게 자비를...
후훗, 농담이란다.
헤베가 팔을 풀었고, 애슐리는 그대로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보고서는 이미 받았다. 너는 잠깐 물러나 있거라.
예.
애슐리는 간담이 서늘해진 채로 배양실을 떠났다.
아직 연락 시기가 아닌데 무슨 일로 불렀죠?
보고서를 보거라.
헤베는 애슐리가 남긴 보고서를 훑어보고 눈썹을 씰룩였다.
베를린 쪽은 돌아가는 꼴이 참 예술이네요.
몰리도가 이렇게 기특할 줄이야. 계획은 망치고, 접선책은 다 들키고, 물자는 다 털려서 아무것도 안 남았네.
제가 자금 세탁하는 것도 이렇게 깨끗하겐 못 하는데.
녀석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지금은 더 긴급한 문제가 있다.
의식의 호수 통로가 사라진 거 말이죠?
누가 한 짓이죠?
아직 모른다, 하지만 빨리 예비 통로를 가동해야 해.
안 그러면 계획 진행에 소모되는 인력을 충원이 따라가질 못한다.
아버님의 뜻은요?
즉시 성과를 보시겠다고 하셨다.
즉 대가는 안 따지겠다는 뜻이죠?
나는 명령을 전할 뿐, 해석해주진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쪽의 고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 기존 계획보다 진행도가 27% 정도 앞당겨졌어요.
바로 제3단계를 시작해라.
헤베는 바로 대답하진 않고, 웃으며 테이블 옆에 기댔다.
아무리 이쪽 계획이 순조롭긴 해도 제3단계는 좀 시기상조예요.
그리고 네메아란 언니는 지금까지 모스크바 아니면 아베르누스에 있느라 베를린의 상황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는데, 프랑크푸르트는 어련하겠어요?
......
프랑크푸르트의 고치 계획은 제가 직접 기틀을 세우고, 몇 년에 걸쳐서 인맥과 리소스를 관리한 끝에 지금 이 정도 규모가 된 거예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가 이미 다 계산해 놨으니까, 아버님께선 날짜만 정해주시면 돼요.
떠볼 생각 말거라, 지금 이곳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은 나다.
여기서도 베를린처럼 패러데우스가 망신당한 채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거든요?
베를린의 촌극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그리고 라플라스 교수님의 연구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리소스가 최고로 많이 들어가는 단계지.
그분의 연구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진 너도 알고 있겠지.
......
알겠으면 이 상황에 그런 시시한 수작은 그만두거라.
아베르누스에서 나온 뒤로 네메아란 언니도 참 많이 변했군요.
예전의 언니는 이렇게 강경하지 않았는데...
헤베가 흥미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대체 그 동안 제가 모르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 걸까요?
이렇게 잡담할 시간이 없단다.
몰리도와 브라메드에겐 기댈 수가 없으니, 지금 이 구멍을 메꿀 수 있는 건 너와 나 둘뿐이야.
알았어요.
라플라스 교수님의 연구가 곧 끝난다는 건, 제가 원하는 물건이 곧 온다는 뜻이니까...
알았으면 됐다.
질문 하나 더요. 프랑크푸르트의 그 난장판은 어떻게 수습할 셈이죠?
RPK-16 녀석이 프랑크푸르트를 참 살뜰하게도 들쑤셔 놨다고요.
......
"판도라"의 이름을 꺼낸 이상 당연히 스틱스를 불러서 처리를 맡길 거다.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란다.
또 궁금한 게 있느냐?
없어요. 네메아란 언니는 언제나 믿음직하네요.
더 질문 없으면 어서 떠나거라. 네 신분은 아직 발각되어선 안 돼.
헤베는 웃으며 손짓하고, 마치 베일처럼 가볍게 모습을 감췄다.
애슐리, 현재 공장 복구는 얼마나 진행되었느냐?
현재 전체 시설의 25.8%가 복구되었으며 나머지도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인력 쪽은...
애슐리가 이를 악물었다.
벌침 시스템과 통로의 정상 기능 유지에 전체 인력 중 최소 51%를 소모했습니다.
잔여 인원 중 연결이 끊어져 완전히 통제를 잃은 열등품을 제외하면 현재 복구 가능한 인력은 겨우 33%입니다...
네메아란은 속으로 주판을 굴리면서 무표정으로 스크린에 다가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1분 안에 열등품들을 깨끗이 청소해라.
네.
애슐리가 서둘러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콰앙!!
굉음이 바로 위에서 울리고, 낡은 천장이 흔들려 부스러기와 먼지가 쏟아졌다.
......
무, 무슨 일이죠...?!
당황하지 마라.
네메아란이 가볍게 콘솔을 터치하자, 공장 내외의 감시 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중앙 작업장의 지붕 위로 검은 형체 세 개가 화면 가장자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폭파로 생긴 구멍 속으로 귀신처럼 들어갔다.
리벨리온? 정말이지 여기저기 안 들쑤시는 곳이 없군...
네메아란 언니, 리벨리온의 자료 동기화를 완료했...
그럼 뭘 꾸물거리느냐?
따르르르릉! 경보 버튼이 눌리자, 삽시간에 썰렁한 차고가 경보음으로 가득찼다.
코어를 잘 지켜라.
내가 직접 놈들을 만나보겠다.
전체 대사 보기 (120줄)
프랑크푸르트 마인츠구, 성 마리아 요양 센터.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꽃다발을 든 여인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금방 애 낳은 사람 맞니? 혈색이 너무 좋은걸? 진짜 부럽다.
우리 헤베 아가씨도 여전히 동안이네.
헤베는 우아하게 침상 옆으로 다가가 메이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살 빠졌네, 식사는 잘 하고 있는 거야?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내가 기억하기론 그 가게의...
걱정 마, 난 멀쩡해.
하긴, 넌 그 사촌동생 생각으로 잔뜩이겠구나.
하아...
정말 너무 안타까워.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애인데, 사회 나가자마자 사기를 당해가지고 잘못된 길로 빠졌어...
아니었음 너한테까지 도움 청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레이 교수 말이니? 몇 년 전에 뉴스에서 보고 참 전문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니...
넬레가 그 사람 얘기 한 적 있어?
예전에 몇 마디 해본 적은 있어. 사이도 엄청 좋고, 그레이 교수가 써준 추천서 덕에 갈라테아에 취직했다고.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지고 난 후론 얘기를 잘 안 하더라. 아마 엄청 원망하고 있나봐.
...그래?
응, 내가 그 사람 얘기만 하면 안색이 엄청 나빠져서 말을 돌려.
그렇구나...
나도 그 사람 얘기 하기 싫다.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미래가 창창한 애였는데.
이해해, 나도 막 데뷔했을 때 여기저기서 계속 사기당하고 그랬어. 지금도 그 사람들은 밖에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말이야.
그래도 결국엔 다 견뎌냈잖아. 출연작마다 줄줄이 히트 쳐서 딱 박수 칠 때 잘 내려왔고, 지금은 가정도 잘 꾸리고 있고. 얼마나 좋아?
우리 넬레도 그렇게...
걔라고 못할 거 없지. 그래서 이번에 포크트 씨와 만나기로 한 거잖아?
그 어르신이 고개 한 번만 끄덕해주면 안될 게 어디 있겠니?
오늘 좀 대화가 잘 되면 좋겠는데...
아유 됐다. 전에 사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건 어때, 잘 돼가?
물론이지~
요구사항에 맞춰서 이렇게 몇 명 골라왔어.
헤베가 태블릿을 켜서 메이어에게 프로필을 몇 개 보여줬다.
학력 좋고 출신 좋고, 인성도 내가 알아본 바로는 다들 예의바르고 다정한 신사들이야.
이야, 역시 너한테 맡기는 게 정답이었구나!
그러니까 마음 놓고 푹 쉬어. 넬레하곤 8시에 약속 잡았으니까, 만나면 내가 직접 보여줄게.
진짜 고마워, 나 퇴원하면 꼭 한 끼——
쉬잇.
헤베가 가는 손가락으로 메이어의 말을 끊었다.
그런 거 필요 없어, 알잖아. 넌 그냥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만 생각해. 이 정도 고민쯤 내가 해결해줄게.
내가 진짜 사람 복은 있구나...
자꾸 쑥스럽게 그러지 말고.
헤베는 가져온 디저트의 포장을 뜯어서 예쁘게 한 조각을 잘라 메이어에게 건넸다.
그 사촌동생의 평소 취미 같은 거 얘기해줄래?
프랑크푸르트시 마인츠구, 고속도로.
요양 센터에서 벗어난 검은 리무진이 도시 동쪽 에쉬본구를 향해 질주했다.
헤베 씨, 넬레 씨가 출발했답니다.
운전기사 보고 거리 구경 좀 시켜주라고 해둬. 난 이쪽 일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람 시켜서 그 애 뒷조사 좀 해봐. SNS들 전부 뒤져서 통신 내역, 메일, 사진, 동영상 위주로.
네.
내년도 영화 시상식에서 또 게스트 참석 요청이 들어왔는데 뭐라고 답변할까요?
아직 반 년이나 남았는데? 진짜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아직 스케줄 미정이니까 3개월 뒤에 답변드리겠다고 말해.
네.
그럼 다음 달의 생일 팬미팅은 여실 건가요? 팬들이 회사 사옥까지 몰려와서 아주 그냥 난리 부르스를 추던데요.
정보망도 유지보수는 해줘야지.
저번의 그 레스토랑으로 해줘, 익숙한 기자 몇 명 불러서 밖에서 촬영도 시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인들 몇 분께서 티타임에 초대하셨는데, 전부 C등급이라고 적혀 있는 분들입니다.
미뤄둬.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방금 성 마리아 요양원에 있을 때 "화이트 부인"이란 연락처에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분은 등급이 안 적혀 있는데 어떻게...
뭐라고 왔는데?
"떠나간 나비가 다시 고치를 짜고, 새로운 재탄생을 기다린다."
무슨 연극 대사입니까? 제가 티켓 예매해 드릴까요?
......
뒷좌석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헤베가 두 눈을 떴다.
아니, 티켓은 그쪽에서 준비해놨어.
프랑크푸르트시 에쉬본구, 패러데우스 공장 지하, 배양실.
길게 늘어선 투명 수조에 수십 명의 흑백 니토가 몸이 구속된 채 갇혀 있었다. 마구 몸부림치는 니토가 있는가 하면 그저 멍하니 있는 니토도 있었다.
네메아란은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애슐리가 그들을 하나씩 검사하며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을 지켜봤다.
......
네메아란 언니, 모든 데이터를 집계해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언니가 온 다음에 다시 시작합니까, 아니면...?
이미 왔단다.
......
자신의 예리한 감각에 자부심이 있는 애슐리였지만, 그녀조차 이번엔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언니가 한 조수를 이렇게 오래 쓰다니, 참 별일이네.
......!
가느다란 팔이 자신의 어깨를 감쌌다. 애슐리는 곁눈질로 그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훔쳐봤다.
평범한 니토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네메아란 언니 옆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을까?
궁금한걸... 해부해 보고싶어...
헤베 언니... 혹시 애슐리가 실례를 범했다면 부, 부디 너그럽게 자비를...
후훗, 농담이란다.
헤베가 팔을 풀었고, 애슐리는 그대로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보고서는 이미 받았다. 너는 잠깐 물러나 있거라.
예.
애슐리는 간담이 서늘해진 채로 배양실을 떠났다.
아직 연락 시기가 아닌데 무슨 일로 불렀죠?
보고서를 보거라.
헤베는 애슐리가 남긴 보고서를 훑어보고 눈썹을 씰룩였다.
베를린 쪽은 돌아가는 꼴이 참 예술이네요.
몰리도가 이렇게 기특할 줄이야. 계획은 망치고, 접선책은 다 들키고, 물자는 다 털려서 아무것도 안 남았네.
제가 자금 세탁하는 것도 이렇게 깨끗하겐 못 하는데.
녀석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지금은 더 긴급한 문제가 있다.
의식의 호수 통로가 사라진 거 말이죠?
누가 한 짓이죠?
아직 모른다, 하지만 빨리 예비 통로를 가동해야 해.
안 그러면 계획 진행에 소모되는 인력을 충원이 따라가질 못한다.
아버님의 뜻은요?
즉시 성과를 보시겠다고 하셨다.
즉 대가는 안 따지겠다는 뜻이죠?
나는 명령을 전할 뿐, 해석해주진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쪽의 고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 기존 계획보다 진행도가 27% 정도 앞당겨졌어요.
바로 제3단계를 시작해라.
헤베는 바로 대답하진 않고, 웃으며 테이블 옆에 기댔다.
아무리 이쪽 계획이 순조롭긴 해도 제3단계는 좀 시기상조예요.
그리고 네메아란 언니는 지금까지 모스크바 아니면 아베르누스에 있느라 베를린의 상황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는데, 프랑크푸르트는 어련하겠어요?
......
프랑크푸르트의 고치 계획은 제가 직접 기틀을 세우고, 몇 년에 걸쳐서 인맥과 리소스를 관리한 끝에 지금 이 정도 규모가 된 거예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가 이미 다 계산해 놨으니까, 아버님께선 날짜만 정해주시면 돼요.
떠볼 생각 말거라, 지금 이곳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은 나다.
여기서도 베를린처럼 패러데우스가 망신당한 채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거든요?
베를린의 촌극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그리고 라플라스 교수님의 연구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리소스가 최고로 많이 들어가는 단계지.
그분의 연구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진 너도 알고 있겠지.
......
알겠으면 이 상황에 그런 시시한 수작은 그만두거라.
아베르누스에서 나온 뒤로 네메아란 언니도 참 많이 변했군요.
예전의 언니는 이렇게 강경하지 않았는데...
헤베가 흥미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대체 그 동안 제가 모르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 걸까요?
이렇게 잡담할 시간이 없단다.
몰리도와 브라메드에겐 기댈 수가 없으니, 지금 이 구멍을 메꿀 수 있는 건 너와 나 둘뿐이야.
알았어요.
라플라스 교수님의 연구가 곧 끝난다는 건, 제가 원하는 물건이 곧 온다는 뜻이니까...
알았으면 됐다.
질문 하나 더요. 프랑크푸르트의 그 난장판은 어떻게 수습할 셈이죠?
RPK-16 녀석이 프랑크푸르트를 참 살뜰하게도 들쑤셔 놨다고요.
......
"판도라"의 이름을 꺼낸 이상 당연히 스틱스를 불러서 처리를 맡길 거다.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란다.
또 궁금한 게 있느냐?
없어요. 네메아란 언니는 언제나 믿음직하네요.
더 질문 없으면 어서 떠나거라. 네 신분은 아직 발각되어선 안 돼.
헤베는 웃으며 손짓하고, 마치 베일처럼 가볍게 모습을 감췄다.
애슐리, 현재 공장 복구는 얼마나 진행되었느냐?
현재 전체 시설의 25.8%가 복구되었으며 나머지도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인력 쪽은...
애슐리가 이를 악물었다.
벌침 시스템과 통로의 정상 기능 유지에 전체 인력 중 최소 51%를 소모했습니다.
잔여 인원 중 연결이 끊어져 완전히 통제를 잃은 열등품을 제외하면 현재 복구 가능한 인력은 겨우 33%입니다...
네메아란은 속으로 주판을 굴리면서 무표정으로 스크린에 다가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1분 안에 열등품들을 깨끗이 청소해라.
네.
애슐리가 서둘러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콰앙!!
굉음이 바로 위에서 울리고, 낡은 천장이 흔들려 부스러기와 먼지가 쏟아졌다.
......
무, 무슨 일이죠...?!
당황하지 마라.
네메아란이 가볍게 콘솔을 터치하자, 공장 내외의 감시 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중앙 작업장의 지붕 위로 검은 형체 세 개가 화면 가장자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폭파로 생긴 구멍 속으로 귀신처럼 들어갔다.
리벨리온? 정말이지 여기저기 안 들쑤시는 곳이 없군...
네메아란 언니, 리벨리온의 자료 동기화를 완료했...
그럼 뭘 꾸물거리느냐?
따르르르릉! 경보 버튼이 눌리자, 삽시간에 썰렁한 차고가 경보음으로 가득찼다.
코어를 잘 지켜라.
내가 직접 놈들을 만나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