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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 합성곱 핵

황무지를 휘젓는 밤

하루 종일 분주한 지휘관은 수 년 전 그날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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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61 도로.

밤의 도로는 죽은 듯이 적막했고, 만신창이인 차량들이 갓길에 널브러져 있어 마치 종말의 한 장면 같았다.

기나긴 원정 끝에 팔레트 소대는 마침내 새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AAT-52는 길가에 버려진 자동차 보닛 위에 털썩 주저앉아 시끄럽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AAT-52

아아~ 못해 못해! 나 더는 못 걷겠어!

92식

이제 다 왔으니까 조용히 해.

AAT-52

방금 도보로 약을 한 트럭이나 메고 병원에 갔다가, 이제 바로 도로를 정리하라고 시키고, 이러다 업무 부담에 눌려서 짜부라지겠어!

마카로프

네가 오늘 토마토 통조림이 되더라도 임무는 완수해야 해.

지금 우리만 일손이 부족한 게 아니야, 지휘관의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우리가 여기서 발목을 잡아선 안 돼.

마카로프가 시간을 확인했다.

마카로프

현 위치에서 15분간 휴식, 다른 소대와의 합류를 기다린다.

AAT, 그동안 푹 쉬어. 92식, 나랑 같이 교통 안내 표지판 배치하자.

92식

네!

마카로프와 92식은 교통 안내 표지판을 길목에 배치했다.

바스락... 바스락...

멀지 않은 곳에서 짐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카로프가 바라보니, 피난 중인 가족들인 것 같았다. 일가족이 지친 몸을 이끌며 도로 위를 힘겹게 걷고 있었다.

그들은 마카로프와 설치된 표지판을 보고 잠시 기뻐하는 듯했지만, 인형이라는 것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워지자 경계와 불신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92식

마카로프, 신분증이라도 제시해야 할까요?

마카로프

아니,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저 사람들 못 본 것처럼 하던 일 계속해.

92식

그래요.

마카로프는 어떤 차선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계산했고, 92식은 AAT-52를 끌고 와 작은 시멘트 덩어리와 차량 잔해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한쪽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마카로프는 곁눈질로 그중 한 사람이 잠깐 망설이다가 뒤따라가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지원 부대가 도착했다.

마카로프는 교통 정리 계획을 다 짰고, 모두가 작업에 착수하려는 찰나.

AAT-52가 방금 인간들이 떠난 자리를 살피다 환호성을 질렀다.

AAT-52

우와! 얘들아 이것 봐봐! 여기 물자가 자라났어!

마카로프

......

92식

에너지드링크랑 통조림?

AAT-52

분명 하늘에서 내가 불쌍하다고 내려준 거겠지?

마카로프는 시크하게 집어 들었다.

마카로프

방금 지나가던 인간들이 남긴 거야.

92식

그 인간들 우리를 엄청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마카로프

단순히 고맙다는 뜻일 뿐이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AAT-52

내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 거 아닐까?

마카로프

아니니까 찌그러져 있어.

92식

개꿈 꾸지 말고 일이나 해!

AAT-52

히잉...

인형 소대는 도로 위의 장애물을 치우기 시작했고, 마카로프가 지휘관에게 통신을 걸었다.

...지휘실.

마카로프

<color=#00CCFF>지휘관, 방금 A661 도로 정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완료 예상 시간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color>

지휘관

얼마나 걸릴지, 대략적인 예상 시간이라도 알 수 있을까?

마카로프

<color=#00CCFF>대략 1시간 후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color>

<color=#00CCFF>실제 작업 효율과 난이도를 보고 계산해야 해요.</color>

지휘관

알았어. 안전 주의하고.

마카로프

<color=#00CCFF>예. 지휘관도 휴식 시간 챙기시고, 컨디션 조절 잘 하세요.</color>

모든 소대의 배치와 동선을 지시한 지휘관은 피곤함에 한숨을 쉬고, 30분간 짧게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구석의 약간 불편한 간이침대에 몸을 눕히자, 산사태처럼 밀려오는 졸음에 지휘관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깊은 잠에 빠진 지휘관은 지치고 무거운 몸에서 영혼이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밤하늘 밑에서 과거로 걸어가, 몇 년 전, 오늘 밤과 비슷한 깊은 밤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 지휘관은 더 젊은 몸에 혈기도 넘쳤다.

......

또다시 기억 속 열차 칸 안에 돌아왔다.

지휘관은 게 눈 감추듯 소고기 통조림을 먹어치운 뒤, 맞은편에서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짓는 여자를 보고 약간 불편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

그쪽도 제법 좋은 사람이네.

헬린

잘 안 들렸어... 방금 뭐라고?

지휘관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그럼 방금 그놈들 콱 죽여버렸을 텐데.

헬린은 고개를 젓고는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화면을 힐끗 보니, 그건 어느 흑백 영화였다. 화질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영상미는 훌륭했다.

지휘관

무슨 영화야?

헬린

「병사의 시」, 본 적 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전 영화인데, 요즘은 보는 사람 별로 없어.

지휘관이 고개를 젓자, 헬린은 흔쾌히 이어폰을 내줬다.

30분 후, 지휘관은 시큰둥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휘관

이런 영화가 좋다고? 좀 더 웅장한 전투 씬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헬린

영화 시작에 알료사가 탱크 두 대 때려잡잖아.

지휘관

...탱크 두 대 부순 게 뭐가 대단한 씬이야?

내가 감독이었으면, 알료사가 탱크사단을 지휘해서 평원을 가로지르고, 포탄이 빗발치고 전투기가 잔뜩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는 장면으로...

헬린

푸흡...

지휘관

뭘 웃어!?

헬린

뭐, 아니야. 그냥 애들은 다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지휘관

반올림하면 나도 성인이거든? 그쪽도 나와 평등하게 대화해야 해.

헬린

성인이라... 그럼 우리 현실적인 이야기 좀 해보자.

너 교복을 보니까 나랑 같은 학교인가본데, 군사학교 졸업하면 뭐 할 생각이야?

지휘관

그쪽도 수보로프 군사학교야? 다른 애들은 보통 뭐 하는데?

헬린

일반적으로 군사학교 졸업생들은 지휘학원에 진학 후에 전문적으로 배워서 장교가 되거나, 아니면 바로 입대해서 군인이 되는 선택을 하지.

지휘관

군대 가기 싫으면?

헬린

다른 대학에 지원해서 원하는 전공 나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지휘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난 그냥 나라에서 애국열사 유가족에게 제공하는 우대 정책으로 군사학교에 들어간 거야. 그거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런데 내가 군대에 적응할 수 있을지, 내가 진짜로 군인이 되고 싶은지는 아직 확신이 없어.

헬린

너, 꼭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지휘관

적어도 나는 그쪽처럼 되기 싫은걸.

헬린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 너한테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진심으로 좋아하고 평생을 바칠 수 있는 길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영화는 결말에 이르렀다. 푸른 하늘이 들판을 감싸고, 멀리 떠나는 알료사의 차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것으로 우리의 친구 알료사 스크보르소프에 대해 끝맺겠습니다.

그는 자상한 아버지나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건설가나 공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고, 혹은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밭을 갈거나 대지를 정원으로 아름답게 꾸몄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는 다른 것이 될 시간이 없었고, 그저 한 명의 군인으로 남았습니다.

한 명의 군인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삐삐삐!

긴급 통신이 들어왔다.

지휘관은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지휘관

무슨 일이야?

마카로프

<color=#00CCFF>죄송해요, 지휘관. 이 시간에 깨워서.</color>

지휘관

괜찮아, 무슨 일인지 말해.

마카로프

<color=#00CCFF>저희가 A661 도로를 정리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진행 상황은 1단계의 10% 정도에 불과해요.</color>

<color=#00CCFF>이 속도로는 도로 정리 작업을 끝내는 데 최소 3일은 걸려야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요.</color>

지휘관

3일이나? 너무 늦어.

마카로프

<color=#00CCFF>인력 지원이 필요해요, 지휘관.</color>

지휘관

알았어, 내가 생각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