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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 합성곱 핵

바닷가의 모래와 짠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깨끗이 씻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뿐. 나아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74-A-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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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존, 격리벽 아래.

이곳도 프랑크푸르트의 다른 지역들 대부분처럼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존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가장 견고한 방어 지대로,

지상에 있는 것들, 파괴된 것들은 정말 중요하지는 않은 것들이 많았다.

평범한 외형의 의료 인형이 후드를 두른 환자가 탄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움직였다.

그녀는 폭격으로 거의 평탄화된 길거리를 따라 슈타지 2호동 옆의 반쯤 무너진 오피스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통행증을 꺼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문 앞의 보안요원에게 신분을 인증했다.

보안요원

의료 인형 마호로, 통행증 C-2급.

보안요원

신분 인증 통과, 마인드맵 검사 통과.

반면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후드를 벗길 생각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보안요원이 마호로에게 지하로 통하는 엘레베이터를 열어줬다.

보안요원

비스바덴 2호 요양원에 어서 오십시오. 들어가시죠.

...삐익.

출입구 신분 인증 슬롯에 마호로가 자신의 신분 식별 카드를 긁었다.

시커먼 복도에 형광등이 켜지고, 복도 끝에 정장 차림의 요원이 서있었다.

Q

드디어 오셨군요, 울릭 주석님. 저희의 번거로운 절차가 불편하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환자"가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마호로가 그녀의 얼굴을 가린 후드를 벗겨줬다.

울릭

괜찮습니다, Q 요원. 여러분의 업무 절차를 이해합니다.

지금은 특별한 시기이니, 모든 것을 특별히 다뤄야 하는 게 당연하죠.

Q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로미 국장님께서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울릭

정말 다사다난한 회의군요. 여러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Q

이번 회의를 성사시키고 귀하의 칭찬까지 받게 된다면, 국장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시겠죠.

울릭

로미 씨께선 맡은 일을 늘 확실하게 해내죠.

명실상부한 신성입니다.

혹시 제가 초청자 중에서 프랑크푸르트에 가장 늦게 온 건 아닌가요?

Q

아닙니다. 아직 부주석 두 분이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회의 개최까지 이틀이 남았으니, 무사히 도착하시길 바라야죠.

울릭

이번에는 K 요원의 공로가 컸습니다.

추격을 피하고자 여러 경로를 교묘히 위장했으니...

그가 프랑크푸르트에 무사히 도착하면 저 대신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Q

그는 직업 정신 강한 슈타지 요원이죠. 그렇죠, 마호로 양?

마호로

예, 울릭 주석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K 요원은 위장과 잠복에 가장 능숙한 사람이니까요.

...슈타지 특수 통신 채널.

파인 호프만

<color=#00CCFF>정기적 정보 동기화를 시작합니다.</color>

슈타지 부국장C

<color=#00CCFF>3부, 국경 기지 정보를 확인.</color>

<color=#00CCFF>데이터 동기화 중.</color>

슈타지 부국장B

<color=#00CCFF>1부, 제10기갑사단 동향을 확인.</color>

슈타지 부국장D

<color=#00CCFF>대외정보국 및 해외작전국, 카터의 최신 동향을 확인.</color>

슈타지 부국장A

<color=#00CCFF>E팀, 오버슈타인 잔당 명단 작성 완료.</color>

Q

<color=#00CCFF>정보분석 평가 센터 작업 정상 추진 중.</color>

<color=#00CCFF>1호 회의실 참석 인원 중 재석 152명, 조난 89명, 실종 2명.</color>

파인 호프만

<color=#00CCFF>경비단장 쿰 소장은 현재 직무 정지되었고, 처리 결과는 논의 중입니다.</color>

<color=#00CCFF>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1호 회의실에서 회의가 예정대로 개최되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color>

슈타지 부국장들

<color=#00CCFF>수신.</color>

파인 호프만

<color=#00CCFF>이만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나타샤, 잠시 남아주십시오.</color>

Q

<color=#00CCFF>...수신.</color>

<color=#00CCFF>그런데 호프만 씨, 우리 사무실은 바로 옆에 있는데요.</color>

<color=#00CCFF>왜 굳이 인트라넷으로 얘기하는 거죠?</color>

파인 호프만

<color=#00CCFF>국장님께서 두 사람의 정보를 다시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color>

<color=#00CCFF>발라드 폰 오버슈타인.</color>

<color=#00CCFF>그리고 그리폰 라이언.</color>

Q

<color=#00CCFF>...알겠습니다.</color>

......

...여기는 어느 수술실, 접객하기엔 부적절한 장소였다.

하지만 안에는 한 청년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메스 등 의료 기구를 닦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뚜벅 뚜벅 뚜벅... 차분한 발소리가 수술실로 다가왔다.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방문자는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다.

훈작사

오래 기다렸네.

"윌리엄"

지각이야.

훈작사

......

방문자는 여유롭게 코트를 벗어 한쪽에 걸어 두었다.

여기에는 인형도, 니토도 없었다.

마치 허심탄회한 만남처럼 보이는 자리였다.

훈작사는 윌리엄의 옆에 서서 그의 옆얼굴과 빛을 반사하는 메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훈작사

오버슈타인 주니어 씨, 자네가 "윌리엄"의 이름을 계승한 자 중 몇 번째지?

"윌리엄"

그런 건 안 중요해, 훈작사.

수술칼을 내려놓고, 윌리엄과 훈작사는 탁자 옆에 앉았다.

"윌리엄"

그런 시시콜콜한 걸 물으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잖아.

구시대의 종막과 신시대의 개막을 지켜보기 위해 온 거지.

훈작사

부정하지 않겠네.

"윌리엄"

단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거겠지, 신시대가 과연 그쪽에게 얼마나 큰 협상 카드를 안겨줄지.

훈작사

내가 약속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자네가 움직이지 않을 줄 알았다네.

아직 우리 사이엔 절차에 맞는 협약도 이루어지지 않았잖나.

"윌리엄"

협약? 그런 건 그저 종이에 찍힌 먹물일 뿐이야.

내가 먼저 움직인 건, 네가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신경 안 쓰니까 그런 거지.

라플라스와 루돌프의 결말에는 만족해?

훈작사

내게 필요한 건 구시대의 종막뿐일세, 막을 내리는 방식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지.

내가 약속한 건 반드시 이행하겠네.

그 회의가 끝나고, 프랑크푸르트의 불길이 가라앉은 뒤에.

자네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걸세.

"윌리엄"

그럼 나도 더 궁금한 거 없어.

발키리의 조건이 달성됐을 때 약속을 이행해주면 돼.

훈작사

이미 프랑크푸르트가 그 계획을 위해 불바다가 되었네.

"윌리엄"

아직 부족해.

이 화재에는 아직 피가 더 필요해...

대화는 일단락되었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침묵을 가졌다.

...A661 도로.

여러 인형 소대의 밤샘 작업 끝에 이 도로는 이제 정상적으로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급히 도착한 교통부 직원들의 지휘 아래, A661 도로에는 차들이 왕래하기 시작했다.

RO635

지휘관님, 도로 관련 사항 인수인계를 마쳤습니다.

M4 SOPMOD II

와아! 드디어 폐품 안 치워도 된다!

지휘관

그래. 전에 아직 조달 중이라고 한 물자는 어떻게 되어가?

RO635

엘모호에 모두 실었고, 지금 인형들이 물자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휘관

일부를 지하 방공 시설에 보내줘, 시민들 대다수가 지하에 모여있으니까.

RO635

네! 바로 물자 정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렇지, 넬레 씨 쪽에는 지휘관님께서 직접 가져다주실 생각인가요?

지휘관

넬레 씨? 아... 그렇지, 계속 잊고 있었네. 그 사람은 지금 어때?

RO635

520의 소식으론 지금도 아마리스와 함께 마인츠 대학 지하철역에서 부상자를 처치하고 있다고 해요.

지휘관

알았어. 그쪽엔 내가 직접 갈 테니까, 다른 곳을 부탁할게.

RO635

알겠습니다.

RO635가 소대를 이끌고 떠났다.

지휘관은 도로 정비를 마치고 철수하는 인형 소대들을 보면서 마음의 짐덩이를 하나 내려놓았다.

...마인츠 대학 지하철역.

지휘관은 일부 긴급 물자를 가지고 역 안으로 들어가 아마리스와 합류했다.

아마리스

이쪽이야, 지휘관.

아마리스가 지휘관을 붙잡고 지하철역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오랜 시간 밀폐된 환경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보니, 악취가 코를 찔러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때에 찌들어 원래의 하얀색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모습이 인파 속에서 보였다.

아마리스

넬레!

간이 천막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넬레가 고개를 들어 지휘관을 보더니, 발밑의 환자를 조심스럽게 피해 천막 밖으로 나왔다.

넬레

지휘관님?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지휘관

520에게서 여기 의료 물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물자들을 가져왔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물자는 리스트를 주시면 최대한 찾아보겠습니다.

넬레

의료 용품 외에도 비상 식량과 영양제가 필요해요. 정말 절박한 순간에 잘 와주셨어요, 지휘관님.

지휘관

넬레 씨... 며칠 동안 못 주무신 얼굴입니다.

넬레

지휘관님도 딱 보니까...

초췌한 얼굴의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넬레

먼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실 줄 알았는데요...

지휘관

저도 넬레 씨가 얌전히 귀가하실 줄 알았습니다.

넬레

...저는 사실 아직 조금 망설이고 있어요.

넬레는 무언가 떠오른 듯 자신의 백 앞으로 가더니, 깊숙한 곳에서 단단히 포장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넬레

이 마카로프, 돌려드릴게요.

지휘관이 총을 돌려받아 보니 안의 총알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넬레

역시 저는 총이 손에 안 맞아요.

라플라스가 죽기 전에 제게 뭐라 한마디를 남기고 패스워드도 남겼는데, 이따 아마리스가 알려드릴 거예요.

지휘관

뭐라고 했습니까?

넬레

이젠 상관 없어요.

증오에 두 눈이 멀었을 때 저는 총을 들겠지만,

증오를 내려놓으면 역시 메스를 잡고 싶어요.

넬레

저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저는 살인마가 아니예요, 살육에서 기쁨을 느끼진 못해요.

지휘관

참 잘하셨습니다.

넬레

죄송해요, 뭔가 쓸데없는 말만 한 것 같네요. 지금은 그것보다...

지휘관

아니요, 지금이야말로 그런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넬레 씨.

저도 넬레 씨처럼, 이번 재난을 겪으며 제 초심을 되찾았습니다.

넬레 씨는 무엇을 위해 총을 들었습니까?

그리고 저는 무엇을 위해 총을 들었을까요?

넬레 씨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총을 내려놓았고,

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직 총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의 목적은 항상 같습니다. 모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죠.

넬레

...고마워요, 지휘관님.

복수는 아주 기나긴 수술이에요. 앞으로 가면 지옥이고, 물러나도 지옥이죠.

지휘관

......

지휘관은 말없이 넬레의 손을 쥐었다.

그러다 넬레가 주머니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 지휘관에게 맡겼다.

넬레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남았어요.

이 안에 있는 증거로 그레이 선생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어요. 제가 증인으로 나서겠습니다.

지휘관

......

넬레 씨,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분명 엄청난 보복이 닥칠 겁니다... 심지어 당신이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릴 수도 있어요...

넬레

다 각오한 바예요.

넬레는 싱긋 웃으며 힘주어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넬레

선생님의 좌우명이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생명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라면,

제 좌우명은 로맹 롤랑의 남긴 말이에요.

사람들은 몇 세기 전부터 있어 온 십자가의 길을 차례차례 기어 올라간다.

저마다 몇 세기 전부터 있어 온 고통이나 필사적인 희망을 거듭 발견한다.

저마다 일찍이 살아 있었고, 일찍이 죽음과 싸우고, 죽음을 부정하고, 그러다 죽어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더듬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간됨의 세례를 받고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뿐.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