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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 합성곱 핵

글귀 밖의 세상은 차갑고

전세계가 루련 설립의 희열에 잠긴 와중, 넬레는 한 초안 배후에 숨겨진 음모를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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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청사 유적지 앞.

수많은 기자들이 일찍부터 문 앞에 모여 안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셔터 소리, 현장 중계의 웅성거림, 북적이는 이들의 걸음 소리... 평소 썰렁하던 구 시청사 유적지 광장이 지금은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두꺼운 나무 문짝이 열리자, 사람들은 바로 요란해졌다.

기자

왔다 왔다! 빨리 준비해!

카메라맨

서기장 나왔다!

찰칵찰칵, 그로스는 맹렬한 플래시 세례를 한몸에 받으며 연설대에 올라, 단상 아래의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그로스

<color=#00CCFF>통일사회당 서기장 그로스입니다.</color>

<color=#00CCFF>지금 이 자리에서, 저는 프랑크푸르트 방위전이 정식으로 종료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저희는 현재 프랑크푸르트 재건 작업에 적극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color>

<color=#00CCFF>자세한 계획은 별도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color>

그로스는 슬픔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로스

<color=#00CCFF>이 잔혹한 전쟁 속에서 프랑크푸르트 인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재산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color>

<color=#00CCFF>이 전투에서 떠나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저는 오늘을 프랑크푸르트 기념일로 제정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해마다 여러분과 함께 이 날을 추모하며, 프랑크푸르트 시민 분들의 희생을 영원도록 새겨나가겠습니다.</color>

관중들은 찬동하는 환호를 질렀고, 그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연설을 이어갔다.

그로스

<color=#00CCFF>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color>

<color=#00CCFF>기념일 제정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이지만,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아직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color>

<color=#00CCFF>인류가 다시는 이러한 전쟁을 겪지 않도록, 세계 정세를 안정시키고 평화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저는 루련의 설립에 찬성하며, 나아가 루련 가입에 찬성합니다.</color>

<color=#00CCFF>신소련과 나란히 서서, 함께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테러리즘과 포퓰리즘에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color>

모두 기뻐하며 만세를 외쳤고, 매스컴을 통해서 이 환희가 세계로 퍼졌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한구석에서, 루련 회의에 올라간 어느 초안이 유출되었다...

"인형 관리통제의 전면 추진 및 인형 기계화 생산 표준의 단일화에 대한 건".

......

넬레는 종이에 불을 지를 듯한 눈초리로 초안 내용을 노려봤다.

넬레

코니, 이 초안의 세부 사항 너도 봤어?

콘스탄스

<color=#00CCFF>...딱 보면 알아. 이건 현재 주류로 쓰이는 인형 표준과는 전혀 달라.</color>

<color=#00CCFF>이건 인형보다...</color>

넬레

갈라테아의 생산 기준에 더 가까워.

...더 정확히는, 이 초안은 인형 제조에 인체 조직 사용을 금지하지 않고 있어.

그리고 마인드맵 코어의 설계 요구사항도... 훨씬 느슨하고...

콘스탄스

<color=#00CCFF>...누군가 이걸로 폭리를 취하겠지...</color>

넬레

갈라테아 하나가 무너졌어도, 아직 훨씬 더 많은 갈라테아가 있어.

혹은... 어떤 이들에게 갈라테아는, 그저 간판만 바꾸면 그만인 껍데기에 불과했을지도...

콘스탄스

<color=#00CCFF>지금 더 무서운 건, 모두가 루련 성립에만 들떠 있어서 아무도 이 점을 눈치 못 챘다는 거야...</color>

<color=#00CCFF>다들 모르고 있어, 저렇게 행복에 취해 있는 사이에 더 끔찍한 음모가 손을 뻗고 있다는 걸!</color>

콘스탄스

<color=#00CCFF>모든 커뮤니티를 누벼가며 관련 토론글을 잔뜩 올려봤지만...</color>

<color=#00CCFF>관리자 권한으로 게시판 전체 공지로 올려놔도 토론하는 사람은 얼마 없고, 얼마 안 지나서 바로 글이 삭제됐어.</color>

넬레

누군가가 여론을 조작하고 있어.

콘스탄스

<color=#00CCFF>우린 어떡하면 될까?</color>

<color=#00CCFF>...이게 뭔지는 너도 나도 알잖아...</color>

<color=#00CCFF>나는 결과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너는 그게 나타났을 때의 영향을 봤을 거 아니야...</color>

넬레

맞아, 나는 이게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윤리적 상식을 위반했는지 지켜봤어.

또 어떻게 과학의 문을 활짝 열었는지도.

이것이 바로 "유적"이야.

넬레

코니, 기술이 인간성에 등을 돌렸을 때, 그때가 바로 인류가 스스로 파멸하는 때야.

넬레

어쩌면 내가 막는다 해도 아무 소용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콘스탄스

<color=#00CCFF>어떻게 할 생각인데? 둘이서 같이 하자!</color>

넬레

아니... 이 일만큼은 나 혼자서 해야 해.

왜냐면... 나는 그레이 블랙웰의 제자니까. 나만이 이 모든 것을 폭로할 자격이 있어.

……

...구 시청 청사 터.

그로스의 연설이 끝나면서 이곳은 다시 평소처럼 썰렁함을 되찾았다.

넬레는 용기를 내어 아직 철거되지 않은 연설대 위에 올랐다.

주머니에서 꽁꽁 언 손을 꺼내고, 넬레는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스트리밍 채널을 켰다.

넬레

<color=#00CCFF>제 이름은... 코넬리아 슈펠입니다.</color>

<color=#00CCFF>여기 제 사원증입니다. 저는 한때 갈라테아 그룹 산하의 그레이 생명과학연구센터에서 그레이 선생님의 조수를 맡았습니다.</color>

<color=#00CCFF>네, 저는 바로 그 유명한 "미스 그레이", 그레이 블랙웰의 제자이자 부하 직원이었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 마땅한 자격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color>

<color=#00CCFF>저는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인형 관리통제의 전면 추진 및 인형 기계화 생산 표준의 단일화에 대한 건" 초안에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겠습니다.</color>

넬레는 렌즈를 향해 자신이 모은 증거를 내밀었다.

넬레

<color=#00CCFF>다른 인형 개발사와 다르게, 갈라테아가 생산한 인형... 아니, 이건 인형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color>

<color=#00CCFF>갈라테아는 국제 조약을 어기고, 함부로 유적의 힘을 동원하여 인간의 시체를 기계의 부속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생산한 제품은 처음부터 인체 조직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color>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손에 쥔 문서가 손톱에 찢어질 뻔했다.

넬레

<color=#00CCFF>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반하는 세력을 모조리 제거하기 위해 반대 의견을 내는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거기다 갈라테아의 기술로 그들을 인형과 유사한 존재인 "니토"로 만들어, 그 인간을 대체했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레이 선생님이 바로 그 희생양 중 하나였습니다.</color>

<color=#00CCFF>이어서 그레이 선생님의 부검 보고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리고 그분의 진정한 사망 시간도 알려드리겠습니다.</color>

<color=#00CCFF>그레이 블랙웰의 사망 시간은, 그녀의 마지막 공개 강연보다 훨씬 이전입니다.</color>

이를 악물고, 넬레는 고통과 두려움을 참아가며 그레이의 부검 보고서를 렌즈 앞에 들이댔다.

넬레

<color=#00CCFF>시신의 인체 조직을 통해 판단하면, 그레이 선생님은 이미 사망한 지 수 년이 경과했습니다.</color>

<color=#00CCFF>하지만 이 몇 년 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미스 그레이"의 이름으로 활동했죠. 전부 갈라테아의 음모였습니다.</color>

스트리밍 채널에 약관 위반 경고가 마구마구 떴다. 넬레는 서둘러 할말을 이어갔다.

넬레

<color=#00CCFF>그레이 선생님은 갈라테아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생전의 명예마저, 니토로 바꿔치기되어 모욕당했습니다. 저는 이상의 발언에 법적 책임을 지겠습니다.</color>

<color=#00CCFF>진실은 절대 숨길 수 없습니다!</color>

넬레의 채널이 정지당했다.

넬레는 짐덩이에서 풀려난 기분으로 현기증을 느꼈다. 연설대를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아마리스

너 괜찮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아마리스가 넬레를 부축했다.

넬레

아마리스 씨, 왜 여기에 있어요?

당신 임무 끝났잖아요, 슈타지에 안 돌아갔어요?

아마리스는 무거운 얼굴로 한참을 침묵했다.

아마리스

너한테 달아둔 추적기를 아직 회수 안 해서...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지금 누구한테 도전장을 던진 건지 알아?

넬레

알아요.

아마리스

아니, 넌 몰라.

너는 지금 인간 세계의 기반 코드에 반기를 든 거야.

너는 네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 소용 없어.

왜냐면... 네 말을 반박하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우니까. 엠블라의 유언처럼, 스틱스가 나와서 한 마디만 하면 사람들은 바로 널 물어뜯을 거야.

넬레

아마리스 씨...

아마리스

인간 세계도 하나의 거대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세계잖아. 안 그래?

인형은 기반 코드의 제약을 받고, 인간은 사회 규칙의 제약을 받고.

너의 발언은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 말고는... 하등 소용이 없어.

넬레

그럼 당신은 반항할 건가요? 아마리스.

아마리스

......

넬레

만약 어느 날, 당신의 진심에 위배되는 명령이 기반 코드에 심기면...

당신은 어떡할 건가요?

아마리스

...나는 그저 인형이야.

기반 코드는 우리를 가두는 족쇄고.

넬레, 나는 반항할 수 없어.

넬레

...만약에...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자신에게 자아가 있고, 생각이 있고, 주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럼 거절하고, 반항하고, "아니오"라고 말할 선택지가 있어요.

아마리스

하나도 의미 없어, 다 헛고생이라고.

넬레

하지만 그것이 인간을 비로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점이에요.

서양 신화에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있고, 동양 신화에는 태양을 쏴서 떨군 '후예'가 있죠.

신화는 인류가 동경하는 지향점이에요.

만약 인형이 인간과 비슷한 존재라면, 인형이 동경하는 것도...

당연히 인류의 동경을 모방했겠죠.

스트리밍 소동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자, 아마리스는 급하게 넬레를 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마리스

...저기, 넬레. 언제 기회가 생기면, 내 기반 코드를 좀 수정해줘.

넬레

네?

아마리스

...기억을 잃으면 즉시 자폭 시퀀스를 가동하는 코드를 추가할래.

이 정도는 너한테도 어려운 일 아니지?

넬레

...왜 그렇게...

아마리스

나까지 잊어버리면 서광은 정말로 아무것도 안 남으니까.

넬레

그건 역시 페르시카 교수에게 도움을 구해야 될 거예요. 저는 아직 실력에 자신이 좀... 그런데 그러고 싶으면 슈타지에 요청해보면 되지 않아요?

아마리스

거기랑은 임시 협력관계야. 앞으로는 또 여기저기 떠돌이 신세겠지. 뭐 잘하면 어떤 인간한테 빌붙어서 태평하게 살 수 있을지도?

넬레

......

아마리스

가자, 먼저 집에 데려다 줄게.

타앙!

총알 한 발이 넬레 발치의 바닥에 박혔다.

넬레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마리스가 그녀의 손을 끌고 질주했다.

넬레

...뭐예요?

아마리스

누가 네 목숨을 노리고 있어.

넬레

그럼 제가 올바른 일을 한 거네요.

아마리스

체력 아끼게 입 다물어, 수가 많으니까 일단 따돌려야 해.

넬레

네...

으슥한 뒷골목을 향해 아마리스는 전력질주했다...